브로커의 재미있는 포인트가 있다.



1.

소영의 아이유가 싸가지 부부에게 욕을 퍼부을 때다. 지들의 상판대기는 생각지도 않고 얼굴을 가지고 어땠네 어쨌네 할 때 소영이가 앞으로 나와서 야 이 이런 씨발 라먹을 수박 새끼들아 라고 술술 욕을 할 때 마치 소화제를 먹은 기분이다. 욕이 이렇게 듣기 좋을 수 있다니. 그동안 영화 속에서 욕은 임창정이나 조폭들의 전유물처럼 느껴졌는데 이거 완전 일상적인 욕이잖아.

-

욕은 소설과 영화 속에서 양념이 된다. 과하거나 어설프게 하면 독이 된다. 덱스터 시리즈가 세계적으로 인기를 얻은 이유 중 하나도 데브라의 찰진 욕이 한몫했다. 소설 속에서도 욕이 나오면 집중이 더 잘 된다. 김영하의 '너의 목소리가 들려'에서도, 영화 '박화영'에서도 듣도 보도 못한 욕들이 파도를 이룬다. 하지만 과하지 않다.


우리는 의지와 관계없이 태어나 삶을 이어간다. 원하는 삶을 사는 사람도 있고 원하지 않는 삶을 살아가는 사람도 있다. 원하는 삶을 살아가는 사람도 그 삶을 얻기 위해 원하지 않는 부분을 이겨냈기에 그 삶을 살아가고 있을 것이다. 그 사이에서 욕을 통해서 카타르시스를 얻기도 한다. 욕이라는 건 나보다 못한 사람이나, 나보다 약한 사람에게 하는 것보다 영화 속 소영이가 부부에게 하는 식의 욕은 시원하다. 예전 막영(막돼먹은 영애 씨)에서 김나영이 사무실에서 갑질을 못 견뎌 부장과 까칠한 여선배에게 욕을 퍼부으며 사표 던질 때 모두가 시원했다. 욕은 그렇게 우리의 삶을 파고들었다. 욕 한 마디 못 하면서 사람을 괴롭히는 괴물 같은 인간들보다 욕할 줄 아는 소영이가 보기 좋았다.



2.

그다음 포인트는 소영과 상현과 동수가 우성이를 데리고 가는 중에 꼬마 해진이까지 껴서 가족 아닌 가족이 되어서 자동세차 기계를 통과할 때 실제 가족보다 더 가족 같았을 때다. 이 장면에서 괜스레 가슴이 뜨거워졌다. 우리가 흔히 말하는 가족이라는 건 가족이 아닌 완전히 다른 사람을 만나 관계를 맺고 가족을 이룬다. 그래서 가족이 아주 친밀하고 행복할 것 같지만 가족이라 더 싫고 보기 싫은 경우도 많다. 영화 속 주인공들은 가족에게 다 버림받은 사람들이다. 상현도 딸과 아내에게 버림을 받았고 동수도 버려진 아이로 혼자서 지냈다. 소영 역시 자신의 아이가 자신과 같은 삶을 살까 봐 두려워 좋은 집안에 보내려 한다. 그리고 해진이는 아직 가족의 품이 그리운 나이. 엄마 아빠가 필요하지만 부모에게 버려진 자신의 삶을 받아들였다.


이들이 모여 가족 아닌 가족이 되었다. 이 가족이 세차기계를 통과할 때는 정말 행복하게 보인다. 가족 중에 어린이가 없었다면 작은 일에도 이렇게 재미있지 않을 수 있다. 지금 집에 해진이 같은 아이가 있으면 매일이 전쟁통이며 매일이 재미있고 매일이 꽃과 같을 수 있다.



3.

수진의 배두나와 이형사의 이주영이 잠복근무 때문에 꼬질꼬질 씻지 못한 얼굴로 임무를 수행하는 모습을 볼 때다. 얼굴이 꼬질꼬질하다. 배두나의 표정은 늘 일그러져있고 무표정하다. 범죄자들을 바라보는 태도가 얼굴에 나타난다. 배두나에게도 곧 가족을 이루려는 남자 친구가 있다. 하지만 남자 친구와 그렇게 살가운 사이가 아니다.


이 영화 속에 등장하는 주인공들의 가족상이 우리 대부분의 가족들의 모습일지도 모른다. 가장 가까이 있지만 알 수 없는 존재들이다. 어떤 이는 가족에게 전화가 오면 반가워하지만 또 어떤 사람은 가족에게 전화가 온다는 건 어떤 일이 터졌다는 연락이다. 그래서 가족은 식구보다 더 못한 관계일지도 모른다.


수진(배두나)은 매일 상현과 동수의 현장을 잡기 위해 꼬질꼬질한 채로 빌어먹을 얼굴을 하고 있다. 정말 배우들은 영화 속에서 다 까발려야 하니까 이런 몰골로 수영과 동수와 상현을 내내 시선에서 놓치지 않으려 한다. 그렇게 꼬질꼬질 늙어 보이던 얼굴의 배두나가 마지막 우성이가 3살이 되었을 때, 마치 다시 아가씨로 돌아간 듯한 얼굴이 된다. 깨끗하고, 맑고, 밝아졌다. 소원했던 남자 친구와 가족을 이루고 꼬질꼬질했던 얼굴에 빛이 들어왔다. 그 모습도 아주 좋다.


드라마 ‘나의 아저씨’ 13화에서 폰으로 듣고 있을 지안에게 동훈이 이런 말을 한다. “죽고 싶은 와중에, 죽지 마라, 당신 괜찮은 사람이다, 파이팅 해라. 그렇게 응원해주는 사람이 있다는 것만으로 숨이 쉬어져. 고맙다. 옆에 있어줘서.” “이런 말을 누구한테 해. 어떻게 볼 지 뻔히 아는데.” 동훈의 말을 도청해서 들은 지안은 눈물을 흘린다.


고맙다. 옆에 있어줘서.


가장 아플 때 위안이 되고 위로받고 싶은 사람도 가족이다. 가족이라는 울타리 안에서 포근하게 있고 싶은 게 또 우리들, 나약해마지 않는 인간이다. 수진(배두나)은 남자 친구와 결혼을 하고, 소영 대신 그렇게 부모를 찾던 우성이를 수진이가 키우면서 가족에 대해서 눈을 뜨고 알아가는 모습이 짧은 장면으로 크게 화면을 뚫고 비친다.  



4.

그다음 포인트는  여관에서 수영이가 우성이를 안고 등을 두드릴 때 동수가 우성이를 이렇게 안으라며 조언하고 수영이가 안다고 하며 둘이 티격태격 같은 티키타카 할 때, 그때 수영(아이유)의 그 표정. 그 표정은 대단히 일상적이라 영화 속에서 쉽게 볼 수 없을 것 같은데 아이유가 그런 표정을 지었다. 그리고 편의점에 가면서 다녀오겠슴다~같은 그 말투.


너무나 지극히 일상적인 표정과 말투라 영화가 아니라 그 부분은 마치 다큐를 보는 것 같았다. 영화는 영화적 언어가 있다. 그래서 늘 경상도 사투리가 도마 위에 오르기도 한다. 하지만 영화적 작법으로는 영화적인 언어를 구사하는 게 맞다. 영화 속에서 너무 일상적이면 오히려 이질감이 드러나기도 한다. 진짜 사투리를 쓰는 배우가 진짜 사투리를 쓰는 것보다 어쩌면 최민식의 그 부산 사투리가 영화 속에서 더 어울릴지도 모른다. 그렇지만 소영의 일상적인 말투와 표정은 가족에게서 멀어졌던 그녀의 표독함과 세상을 악으로 보는 그녀 마음속에 일상에 스며들고 싶어 하는 안타까움이 보였다.



5.

마지막으로 해진이의 어른스러운 어린이 짓이 깜찍하고 귀엽지만 마음속에 어른으로 이미 커 버린 모습이 딱하여서 안타까운 모습일 때다. 해진이는 영화 내내 웃음을 잃지 않는다. 아이가 내내 웃을 수만은 없다. 아이들은 감정을 그대로 표현하기 때문에 울고, 떼쓰고, 소리 지르고, 막 달려야 한다. 그러나 해진이도 부모에게 버려졌다. 자신의 처지를 너무나 잘 알고 있다. 그래서 상현과 동수를 아빠와 삼촌으로 흡수하려고 한다. 아이이지만 어른이 된 것이다. 누구도 해진이에게 어른이 되라고 하지 않았지만 해진이는 그만 자신도 모르게 어른이 되었다.


어린 꼬꼬마 해진이가 누워서 “소영아, 소영이도 태어나줘서 고마워”라고 하던 해진이의 모습에서 해진이의 눈빛이 그때 잠깐 천사가 된 것 같았다. 해진이가 부르는 이름에 내 이름을 넣는다면 나는 정말 태어나서 고마운 존재일까, 같은 생각이 들었다.


고레에다 히로카즈의 영화는 머리가 아니라 마음으로 생각하며 보면 참 재미있다. ‘그렇게 아버지가 된다’의 케이타와 류세이, 그리고 ‘바닷마을 다이어리’의 스즈처럼 우성이도 앞으로 어떤 생활을 하며 지낼까, 열린 결말이 마음으로 생각하게 한다.

이 포스터가 마음에 든다. 마음이 아프고 병든 사람들이 만나서 가족을 이루어 행복한 얼굴을 하고 있다. 우성이 아니었다면 이들은 만나지 않았을 인연들인데 어쩌다가 이렇게 가족이 되었다. 이 세상의 모든 해진이와 우성이가 영차영차 열심히 살아가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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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 방구차를 봤다. 방구차가 아파트 단지를 빙빙 돌며 방귀를 붕붕 하얗게 피워댔다. 방구차는 금세 자신의 존재감을 뿜어냈다. 방구차가 부우 우우웅하며 오래된 비행기 같은 소리를 내며 똥구멍으로 하이얀 연기를 뿜어내면 동네 아이들이 따라가며 아아아 하고 소리를 질렀다. 그러나 어제의 방구차 뒤에는 아이들의 모습은 소거되어 있었다.


소독차가 뿜어내는 소독약의 냄새는 예나 지금이나 크게 변함이 없다. 소독차는 내가 어린 시절에 살던 동네에 여름이 시작할 무렵이면 어김없이 나타났다. 소독차는 대기에도 방귀를 붕붕 뿜어댔지만 하수구 안에도 뿌려졌다. 마치 공포영화의 한 장면처럼 소독차가 지나가고 땅 밑의 하수구 구멍에서 연기가 퐁퐁 올라왔다. 그다음 하수구의 구멍으로 기괴한 크리처가 뚫고 올라올 것만 같은 생각이 들기도 했다. 그때 맡았던 소독약 냄새가 어제 오전에 맡은 소독약 냄새였다. 시간이 흐르는 동안 많은 것들이 변했는데 소독약 냄새는 그대로였다. 올바른 일인지 그렇지 않은지 알 수는 없다.


사실 소독차가 작년, 재작년 그리고 그 이전에는 나타나지 않았다. 그러다가 올해, 근래에 아파트 단지를 돌아다니며 소독약을 뿌릴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아마도 가뭄과 폭우 때문이지 싶다. 윗 지방에서는 러브 버그 때문에 난리라는 기사를 봤다. 이 러브 버그는 해충이 아니라 인간에게 유익한 벌레라고 하는데 개체수가 상상 이상이 되어 버리니 사람들이 겁을 먹게 되었다. 잠자리가 인간에게 전혀 피해를 주지 않고 잠자리 유충은 모기의 유충을 먹으며 자란다. 그런데 잠자리가 하늘에 수백 마리가 윙윙하며 떠 있으면 무섭다. 굉장한 공포다. 자연이란 그런 것일지도 모른다. 움직이지도 못하는 풀과 나무밖에 없는 깊은 산속에 혼자 갇히게 되면 두려움에 벌벌 떠는 것이다.


러브 버그도 개체수가 어마어마해지니까 너무 징그럽게 보인다. 러브 버그는 5, 6월부터 천천히 나타나는데, 이 벌레의 특징은 흙속에서 부화를 한다. 그래서 부화한 채로 흙속에 있다가 흙이 축축해지면 밖으로 나온다고 한다. 흙이 축축해지려면 비가 내려 땅을 적셔야 한다. 5월 중에 흙속에서 부화를 해서 대기하고 있다가 비를 맞은 땅, 흙이 축축해지면 부화한 순서대로 서서히 밖으로 나온다. 그런데 올해는 계속 가뭄이 지속되니 러브 버그가 땅 밖으로 나올 수 없었다.


러브 버그들이 계속 부화를 한 상태로 대기를 타고 있다가 7월에 폭우가 내리면서 우르르 밖으로 쏟아져 나와 버렸다. 이 러브 버그의 수컷은 일주일 정도 산다고 한다. 일주일 정도 삶을 사는데 사랑을 나눈 다음에 암컷과 떨어지면 다른 수컷에게 자신의 암컷이 뺏길까 봐 붙어서 안 떨어진다고 한다. 아니 벌레 주제에 그런 것까지 신경을 쓰나? 싶지만, 다른 어떤 벌레는 러브 버그보다 더 하다. 어떤 벌레는 암컷의 생식기에 수컷 자신의 물질을 쏘아서 생식기의 구멍을 막아버린다고 한다. 정말 자연은 까도 까도, 후벼 파도 모르는 것들이 너무 많다.


벌레들도 자신의 사랑을 다른 벌레에게 빼앗기기 싫어서 안간힘을 쓰며 일주일의 삶을 열심히도 살아간다. 방구차의 등장은 이런 가뭄과 폭우와 폭염 때문일지도 모른다. 모든 것이 인간의 오류가 만들었다. 인간도 소독약으로 소독이 되었으면 얼마나 좋을까. 인간은 나이가 들어갈수록 오염이 된다. 불과 어제까지 믿었던 같은 편이었는데 오늘 배신을 하고, 가장 가까이 있는 사람에게 피해를 주고 사기를 치기도 한다. 가장 가까이 있는 사람은 가족 내지는 부부관계일지도 모른다.


할리우드 배우 중에 케이트 보스워스라는 배우가 있다. 한때 장동건과도 영화도 찍고, 브랜든 루스의 슈퍼맨 리턴즈에서 루이스 역을 하기도 했다. 그녀가 주연한 영화 중에 어느 날 하늘에 비행기들이 날아다니며 소독약 같은 것을 뿌려 그걸 마신 지구의 대부분의 인간들이 죽어 버리는 대재앙의 영화가 있다. 거기서 케이트 보스워스는 내내 고려대학교 점퍼인가, 코리아 점퍼를 입고 나온다. 영화는 엉망진창이지만 거기서처럼 하늘에 비행기가 날아다니며 소독약을 뿌리면 인간들도 소독이 좀 되었으면 좋겠다.


그러거나 말거나 자연은 늘 경이롭다. 하늘은 매일 다른 그림을 그려준다. 여어 이봐 인간 따위야 이게 진정 그림이라는 거야.


달과 비행기

달과 비행기의 크기가 비슷하게 보여서 한 컷. 저 비행기에서 보면 여기서 보는 달의 모습과 조금은 달리 보일까.


비가 올 거라는 소식이 내내 나왔지만 오늘, 지금까지 비는 한 방울도 내리지 않았다. 어제도 남부지방에 비가 어쩌고 하는 방송이 계속 나왔는데 여기는 너무하다 싶을 정도로 맑고 무덥고 가끔 흐리고 자주 짜증이 나고 조깅하기 좋은 날들의 연속이다.


하늘이 오렌지빛으로 물들기 시작했다. 오렌지 빛으로 물드는 시간이 바로 개늑시다. 개와 늑대의 시간을 요즘은 매일 볼 수 있다. 하루 중에 가장 진중하고 슬프게 아름답고 고독한 시간이다. 매직 아워가 펼쳐지는 시간. 시간의 경계를 만날 수 있는 시간인 것이다.


정중하게 꺼져가는 태양의 깃털처럼 신사적으로 내려앉는 어둠이 만나는 시간이다. 소박하고도 화려한, 그래서 슬프면서 아름다운 교향시. 이 시간만큼은 백건우 버전의 리베스트라움이 어울린다.


작은 그림자들이 일어나는 시간

사색하는 자들은 운명을 생각하는 시간

어둠을 향한 긴 호흡을 할 시간

아마추어 소설가들은 고독하게 홀로 되려고 준비하고

모두가 시인으로 향해 문을 여는 시간

낮 동안 잠들어있던 모텔은 이제부터 가장 근사한 일을 젊은이들에게

제공하기 위해 분주해지는 시간


드디어 낮과 밤이 주연과 조연을 맞바꾸는 마법의 시간이다. 이 초연함을 리스트는 연주했다. 우리는 그대로 백건우의 버전으로 그 연주를 흡수하면 된다. 자연주의적인, 자연에 귀 기울이면 당연하게도 자연은 듣는 이를 위해 슬프면서 아름답게 연주를 해준다. 복잡하고 자질구레한 설명은 생략한 채. 리스트는 영혼을 팔아 클라이맥스를 연주한다.


내가 너를 지켜 줄 거야

라며 자연이 노래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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잉크냄새 2022-07-10 13:28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사진 속의 연기만으로도 그 냄새가 떠오르는 강렬한 기억....

교관 2022-07-11 12:27   좋아요 0 | URL
소독차의 등장이 추억과 기억과 더불어 벌레까지 ㅋㅋ

stella.K 2022-07-10 19:12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그런 징그러운 벌레에 그런 이름이 가당키나 한가요?
교관님의 사진은 정말...! 특히 마지막 사진은 정말...ㅠ

교관 2022-07-11 12:28   좋아요 1 | URL
저의 휴대전화가 아이폰8인데 요즘 휴대전화 카메라가 참 좋네요 !! ㅎㅎ
 


나는 그 녀석에게 강수연이 죽어서 안타깝다고 했다. 그러자 그 녀석이 무슨 소리야? 강수연 안 죽었어.라고 하는 것이다. 아니야 일전에 죽었다고 뉴스가 났잖아. 그러니까 그 녀석이 어이없다는 듯 ‘미미와 철수의 청춘 스케치’를 보여 주었다. 봐, 이렇게 살아 있잖아. 영화를 기억하는 내내 강수연은 죽지 않고 살아있어.


그래, 미미와 철수의 청춘 스케치에서 미미는 너무하다 싶을 정도로 공부가 뒷전인 철수와 천재 보물섬과 함께 살아 있었다. 철수는 술을 마시며 하는 생각이 어떻게 하면 미미를 꼬실까,였다. 파릇파릇 청춘으로 미미는 살아 있다. 마시는 술도 맛있다. 골치 아프게 사회문제로 고민하면서 술을 마시지 않아도 된다.


철수 녀석에게는 법학과에 다니는 천재 보물섬이 있다. 보물섬은 그 어렵다는 법학과에도 수석을 먹고 들어왔다. 독서실에서 먹고 자고 할 정도로 열심히 공부를 하는 보물섬은 철수와 친하게 지내면서 매일 술자리에서 철수의 고민, 미미를 어떻게 꼬시는가 하는 범우주적 문제에 봉착한다.


미미는 발랄하다. 철수 못지않게 공부와는 거리가 멀다. 레미제라블이 장발장이 쓴 줄 안다. 상식에서 벗어나고 상식을 파괴하고 상식과는 친하지 않다. 그러거나 말거나 미미의 강수연은 예쁘기만 하다. 이들은 친해지면서 맨날 놀 궁리만 찾고 술만 마시다가 보물섬이 쓰러진다. 미미와 철수는 보물섬의 병을 알게 되면서 이야기는 새로운 국면을 맞는다.


보물섬은 공부도 일등이며 권투를 배워서 깡패들과도 맞서서 이겨버리는 녀석이었다. 그리고 뇌성마비를 가진 아이들에게 공부도 가르치는데 이제 곧 죽게 된다. 그리고 보물섬이 죽고 난 후에 미미와 철수는 친구인 보물섬의 죽음을 진정으로 슬퍼한다. 미미에게 굳이 요즘의 휴대전화 같은 건 필요하지 않다. 그저 그대로의 모습으로 살아있으면 된다. 우리가 돈이 없지 가오가 없냐고 말하던 당찬 미미의 강수연이었다.


그의 영화를 보고 기억한다면 강수연은 내내 살아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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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에게 사과는 겨울의 과일이었다. 겨울에만 먹는, 겨울에 맛있는, 겨울과 함께 오는 그런 과일이 사과였다. 아버지는 사과를 참 좋아하셨다. 사각사각 껍질도 예술적으로 깎았다. 껍질이 마치 종이처럼 얇아서 우리는 그걸 들고 이야이야 하며 감탄을 연신 쏟아냈다. 아버지는 손재주가 남달라서 회사에서 용접을 해서 쌍절곤도 만들어 오고, 돈파도 만들어 오셨다. 그리고 과도 같은 것도 여러 개 직접 만들어서 갉고 갉아서 사과를 깎았다. 그렇게 사과를 예쁘게 깎아서 우리에게 먹이는 게 아버지 식 사랑의 방식 중 하나였다.


사랑이야기는 수세기에 걸쳐 무수히 많은 이야기로 쏟아졌다. 더 이상 새로울 것도 없고 더 이상 이상할 것도 없는 게 사랑이야기다. 사랑 자체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어떤 사랑을 하느냐, 어떻게 사랑을 하는 가는 아직도 할 이야기가 많다. 어떻게 사랑을 지켜나가는 가, 하는 이야기에 따라 재미있을 수 있다. 사랑 이야기하면 주로 남녀의 이야기가 주를 이루고 있지만 부모 자식 간의 사랑이야기도 있고, 친구와 친구의 사랑, 형제간의 사랑도 있다.


아버지는 사과를 좋아해서 종류에 상관없이 어떤 사과든지 잘 드셨다. 한 손에 과도에 올려진 사과를 들고 입으로 가져가는 그 과정이 어린 우리에게는 멋있게 보였다. 동생은 사과를 아버지만큼 좋아해서 아버지가 사과를 깎고 있으면 옆에 앉아서 날름날름 사과를 받아먹었다. 그에 비해 나는 사과를 썩 좋아하지 않았다. 아버지의 말로 사과는 다 맛있고 몸에도 좋으니까 밥을 먹고 나면 꼭 사과를 깎아서 주었다. 아버지는 다 맛있다고 했지만 맛없는 사과는 맛이 없었다. 부사든 홍옥이든 뭐든 아버지는 겨울에는 아침에 사과로 식사를 간단하게 때우는 일도 있었다. 요즘에 나오는 사과는 전부 맛있고 달다. 어쩌면 그래서 손이 쉽게 가지 않는다. 예전을 떠올리면 사과가 전부 맛있지는 않았다. 오히려 맛있는 사과를 내내 먹을 수는 없었다. 녹색 사과는 먹으면 좀 텁텁한 맛이 있었는데 지금은 그런 맛이 그립기도 하다. 지금의 사과는 하나를 먹으면 하나를 더 부를 정도로 맛이 좋다.


좀 벗어난 얘기지만 사과하면 요즘은 역시 애플을 빼놓을 수 없다. 그래, 그 애플. 애플사. 맥킨토시의.


원래 매킨토시라는 사과는 사과 중에서 맛이 좀 떨어지는 사과라고 한다. 그래서 주로 잼으로 만들어 먹기도 한다. 그런데 또 캐나다의 사람들은 그 매킨토시를 좋아하는 것 같다고 말하는 사람도 있다. 이 조금 맛이 떨어지는 매킨토시의 스펠링은 Mclntosh이다. 이 사과에 스티브 잡스가 약간 마법을 부렸다. 잡스는 Macintosh로 만들어서 우리가 알고 있는 그 사과 로고가 탄생했다. 그리고 지금까지 ‘맥’이라는 고유 명사화된 사과농장 속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이 부쩍 늘었다. 그러고 보면 나는 IT기기와 거리가 먼 인간이라고 생각했는데 대부분 애플 기기를 사용하고 있고 종류도 몇 개나 된다. 아이폰도 4s, 6s, 8이 있고 아이팟 터치도 4, 5 세대 해서 두 대나 있다. 아이팟 클래식과 아이팟 셔플도 있고, 최초의 맥북에어도 있다. 아이패드도 3대나 된다. 키보드도 하나 있다. 기계와 거리가 멀다고 생각한 나 같은 인간에게도 애플의 생태계는 큰 영향을 주었다.

스티브 잡스는 픽사라는 단어도 만들었다. 픽셀과 아트를 조합해서 pixar를 만들었다. 픽사를 처음 설립하고 10년 동안 하나의 애니메이션에 매달리는데 그게 바로 전 세계를 깜짝 놀라게 만들었던 토이 스토리였다. 그리고 그 애니메이션을 만드는데 데리고 온 사람이 존 라세티였다. 존 라세티는 70년대부터 스타워즈의 루카스 필름에서 그래픽을 담당하는 부서에서 애니메이터로 일을 하고 있었다. 그러면서 3D를 담당하면서 디즈니사에 왔다 갔다 했다. 86년에 잡스가 애플사에서 쫓겨나서 존 라세티를 데리고 와서 10년 동안 애니메이터들과 토이스토리를 만들어서 10년 만인, 95년에 개봉을 했다. 70년대부터 나온 스타워즈도 이번에 디즈니 플러스에서 오비완 캐노비를 개봉했는데 그걸 보니 감개무량이었다. 그러나 오비완 캐노비의 전설 같은 이야기를 풀어내는데 뭔가 허술한 점이 많았다. 오비완과 다스 베이더의 결투도 썩 마음에 들지 않았다. 일단 이야기에 그저 소비되는 캐릭터들이 나오는 것이 별로였다. 또 토이 스토리도 이후에 시리즈가 계속 나오고 있는데 이번에도 버즈의 이야기, 버즈 라이트이어도 개봉했다. 버즈의 목소리를 또 캡아의 크리스 에반스가 했다. 아무튼 사과로 시작한 사과 이야기는 끝없이 이어질 것이다. 이야기, 스토리텔링이라는 건 그런 것이니까.


다시 사과 이야기로 돌아가서 내가 아버지가 깎아주는 사과를 잘 먹지 않았던 걸 지금에 와서 생각해보면 나는 사과를 껍질 채 먹는 걸 좋아한다. 그게 훨씬 맛있다. 껍질의 맛이 좋은 것이다. 이상하지만 껍질을 깎아 놓으면 손이 가질 않는다. 그건 참외도 마찬가지다. 참외를 잘 씻어서 반으로 자른 뒤, 참외 안의 씨를 다 파내고 껍질 채 그대로 와작 씹어 먹는 맛이 좋다. 참외 껍질을 깎아서 먹는 맛이 껍질 채 먹는 맛을 따라오지 못한다.


바나나, 귤 정도를 빼고는 포도나 자두, 복숭아 등 다른 과일은 껍질 채 먹는 게 훨씬 맛있다. 아마도 아버지는 한 손에 자신이 만든 자랑스러운 과도를 들고 사과를 깎아서 자식들에게 먹이고픈 그런 꿈이 있었을 것이다. 자식들에게 어떤 무엇인가를 잔뜩 해주고 싶지만 그런 여건이 되지 않다는 걸 받아들이고 다른 것에서 아이들에게 기쁨을 주고 싶었던 대부분의 아버지의 마음이었을 것이다. 요즘은 여름휴가라고 하지만 예전에는 피서였다. 집집마다 에어컨이 없기 때문에 여름방학이 되면 대부분의 가정집에서 피서를 갔다. 피서를 가면 아버지들은 늘 가족 앞에서 망가졌다. 수박 통을 깎아서 머리에 쓰고 아이들과 놀아주고 아이들을 튜브에 태워서 개울에 데리고 갔다. 평소에 무뚝뚝해서 표현 할길 없었던 자신의 마음을 내보이는 날이었다. 비록 그 당시에는 아이들이 그런 아버지의 마음을 몰라도 시간이 지나면 스펀지에 물이 스며들듯 똑같이 그렇게 아이들을 위해서 하고 있다. 인간의 삶은 정말 알 수가 없다. 요즘은 돈을 잘 벌어서 아이들에게 좋은 휴대전화에 구글 적립카드를 선물로 주는 게 더 나을까. 아무튼 인간은 알 수 없고 사과나 먹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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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끔 드는 생각입니다. 이건 정말 가끔 드는 생각이지만 이 가끔 드는 생각이 저를 굉장히 괴롭힙니다. 저를 매몰차게 구석으로 몰 때가 있습니다. 지나치는 어떤 한 마디를 들었을 뿐인데 그 말이 내내 머리를 헤집고 다니면서 규칙과 정리해 놓은 모든 것들을 다 무너트립니다. 그 한 마디를 떨쳐버릴 수가 없습니다. 그저 흘려버리면 그만인 말, 넘기면 아무것도 아닌 말인데 부유물처럼 머릿속에서 떠다니며 저를 괴롭힙니다.


그럴 때는 한 없이 숨고 싶고 웅크리고 앉아서 주위를 어둡게 하고 나오고 싶지 않습니다. 저는 한없이 작아져서 내 몸에서 떨어져 나옵니다. 괴로워하는 저의 모습이 보입니다. 작아진 저는 괴로워하는 저의 코를 통해 들어가서 머리에 도달합니다. 구불구불 힘든 길을 따라 어렵게 뇌로 올라갑니다. 그리고 여러 구간 중 감정을 조절하는 구간의 신경을 또각 끊습니다. 그런 작업은 그리 어려운 게 아닙니다. 하지만 절대 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그러다가 당신의 기억마저 같이 없어지는 게 아닐까 하는 두려움 때문입니다.


저는 관계에 있어서 어려움이 많습니다. 인간이 인간과 관계를 맺으며 살아간다는 게 저에게는 너무나 어려운 일입니다. 지나치는 어떤 한 마디가 이 사이에 낀 음식 찌꺼기처럼 혀 끝으로 하루 종일 만져집니다. 저에게 관계란 그런 것입니다. 관계를 축소하고 축소해서 소멸하고 싶습니다.


당신에게 가고 싶다는 생각을 자주 합니다. 그러면 모든 것이 평온할 텐데요. 당신이 있는 그곳에는 내내 따뜻하여 눈도 내리지 않고 추위 때문에 등을 굽히지 않아도 될 텐데요. 눈이란 내리면 모든 건물과 사람이 다 맞습니다. 눈은 죽음과 동일하다고 생각합니다. 평등하거든요. 죽음만큼 평등한 것은 없습니다. 차별하는 법이 없습니다. 그래서 눈이 좋으냐고 묻는다면 글쎄요, 잘 모르겠습니다. 사실 눈이 좋다고 느껴본 적은 없는 것 같습니다.


요즘은 앞이 전혀 보이지 않는 안갯속을 계속 걷고 있는 기분입니다. 시간을 보면 1시간을 걸었는데 채 5미터도 벗어나지 못하고 있습니다. 날개를 떼어버린 파리가 한 곳에서 뱅뱅 도는 것처럼 어지럽기만 합니다. 마음으로 생각을 하려고 합니다. 물론 잘 안 됩니다. 생각은 언제나 머리로 해왔기 때문에 온 마음을 다해 생각하는 것은 쉽지 만은 않습니다. 그러나 마음으로 생각을 해야만 당신께 조금이라도 닿는다는 것을 압니다.


당신에게 답장이 없는 편지를 그동안 얼마나 부쳤는지 모릅니다. 물론 써놓고 부치지 못한 편지도 있습니다. 하고 싶은 말은 헤어 나올 수 없는 안개 속인 걸 알지만 계속 걷는 이유는 그 안에서 희미한 당신의 모습을 봤기 때문입니다. 사실 당신의 모습이 자꾸 흐려집니다. 그게 겁이 납니다. 언제나 일정한 거리를 두고 떨어져 있는 당신에게 닿고 싶습니다. 또 편지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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