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뇌를 통하면 네트워크의 망을 타고 다니며 사람을 만나고 사랑을 나누며 범죄를 저지를 수도 있다. 전뇌를 통하면 인체는 더 이상 필요가 없어진다. 네트워크를 통해 빛처럼 그곳에 도달할 수 있으며 사람과의 접촉도 네트워크로 하게 된다. 아이도 가질 수 있는데 이는 우리가 생각하는 교접의 형식으로 낳은 아이가 아니라 하나의 정보 덩어리나 네트워크의 모듈의 형태로 태어나게 된다.


전뇌를 만들어낸 것은 공각기동대 쿠사나기 대령을 탄생시킨 오시이 마모루였다. 그는 앞으로의 먼 머래에는 인간과 인간의 관계가 더 이상 육체적이지 않아도 된다고 했다. 영화 ‘루시’에서 루시가 뇌를 100% 사용하게 되었을 때 네트워크 속으로 들어가면서 영화가 끝이 난다. 네트워크 자체가 된다.


이런 관계는 인간적이지 못하고 그런 미래는 없다고 치부하지만 스티븐 호킹 박사처럼 모든 신체기관이 멈춰있고 뇌의 사용만 가능한 사람들에게는 이런 부분으로 섹스를 대신할 수 있는 충분한 동기부여가 된다. 주위에는 장애 때문에 비극적인 삶을 지내고 있는 사람들이 많다.


그렇다면 반대로 말을 하면, 사랑하는 사람과 지금 현재 육체적 접촉을 하고 있지만 어쩐 일인지 이 사람의 마음이나 생각이 나에게 있지 않다고 느끼는 경우가 있다. 그저 로봇처럼 수동적으로, 내가 키스를 하는데 이 사람의 마음이 다른 곳에 가 있다는 것을 알게 되면 마음에 손상을 받게 된다. 여기서 우리가 마음이라고 부르는 것은 실은 ‘뇌’다.


작별인사 속에는 블레이드 러너의 이야기가 나온다. 블레이드 속의 휴머노이드 즉 레플리컨트는 인간과 똑같이 사고하고 감정, 기억 그리고 쾌락을 느낀다. 하지만 인간이 수명을 4년으로 제한해놨다. 6명의 레플리컨트들이 수명이 너무 짧아서 죽음에 대한 두려움에 지구 밖 오프 월드에서 반란을 일으키고 지구로 잠입을 하는데 그중에 4명만 지구에 들어온다.


블레이드 러너 속에서 과연 인간이 휴머노이드, 레플리컨트보다 낫다고 할 수 있나 하는 것이다. ‘죽음’보다는 ‘제거’, ‘고친다’보다는 ‘수리’로 표명되는 레플리컨트에게 총구를 들이대는 건 결국 인간인 데커드(헤리슨 포드)다. 데커드와 사투 끝에 데커드의 총에 맞은 프리스(레플리컨트)는 몸을 바들바들 떨며 고통스러워한다. 어째서 인조인간이 총을 맞고 이렇게까지 고통스러워할까.


영화 속에서 소름 끼치게 아름다운 것은 인간보다 인간다웠던 레플리컨트라는 것이었다. 인간은 인간을 죽이고 돈을 뺐고 아무렇지 않지만 레플리컨트는 동료가 죽자 괴로워하고 살리려고 안간힘을 쓴다. 래플리컨트 로이는 인간인 데커드를 구해주고 “나는 네가 상상도 못 할 것들을 봤어, 오리온 전투에도 참가했었고, 탄호이저 기지에서 빛으로 물든 바다도 보았지. 이제 그 모든 순간들이 시간 속에서 사라지겠지, 빗속의 내 눈물처럼,, 이제 죽을 시간이야”라는 말을 남기고 죽음으로 간다.


김영하의 장편소설 ‘작별인사’에서도 철이가 인간 세계에서 나와서 휴머노이드들과 만남을 가지면서 관계에 대해서 우리에게 알려준다. 이 관계 속에서 과연 인간이 인간이 만들어낸 휴머노이드보다 더 우월하다고 할 수 있는가 하는 것이다.


달마라는 휴머노이드가 철이와 선이에게 ‘고통’에 대해서 설명하는 부분이 있다. 이 부분이 정말 좋다. 즉 인간은 고통에서 벗어나려 하고, 고통을 두려운 무엇으로 여기지만 ‘고통 그 자체로는 악이 아니다’라고 달마는 설파한다. 고통이라는 것은 생물체를 보호하는 필수적 장치다. 고통을 느껴야 위험을 피하고 자신을 지키려 한다. 인간이 사고하지 못하는 부분에 대해서 달마라는 휴머노이드가 사고한다.


고통 그 자체는 나쁜 게 아니다. 고통을 통해서 우리는 다시 마주할 고통에 대한 내성을 가지게 된다. 이 소설은 읽으면 읽을수록 정말 많은 것들을 생각하고 사고하게 해 주었다. 물론 이런 미래적 디스토피아 스토리텔링을 좋아해서 그럴지도 모르지만 등장하는 모든 캐릭터에 몰입이 되었다.


김영하가 좋은 점은 작가의 말에 달마와 선이의 대화는 윤리학자 누구의 무슨 책을 참고했다고 밝히고 있다. 요즘 온통 표절시비에 얼룩진 가요계도 이렇게 밝히고 음악을 한다고 해서 누가, 나무라는 사람이 없을 텐데.

작별인사를 읽으니까 넷플릭스 ‘나의 마더’와 무라카미 류의 ‘노래하는 고래’가 떠올랐다. 암울한 디스토피아적 미래에서 인류는 사라지고 인간은 로봇에 의해 길러진다. 마더라는 로봇에 의해서 학습을 하고 댄스, 의학, 역사를 배운다. 류의 '노래하는 고래'는 2012년쯤에 나왔는데 세세한 내용은 기억이 잘 않나지만 시대적 배경이 올해, 2022이다. 암울한 미래의 내용을 무라카미 류 식으로 풀어낸, 나에게는 조금 어려웠던 소설이었다. 나의 마더에서도 노래하는 고래에서도, 아무튼 어떻게 보면 미래에서 작별에 관한 이야기가 들어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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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tella.K 2022-07-16 20:04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저는 교관님 여길 떠나시겠다는 줄 알고 순간 덜컹했습니다.ㅋㅋ

교관 2022-07-17 12:00   좋아요 1 | URL
아이쿄 주위에서도 떠난다고 하면 말리지 않는데 ㅋㅋㅋ 감사해요
 

여름에는 뭐니 뭐니 해도 땀을 있는 대로 흘리는 겁니다. 이 날은 비가 와서 산스장 같은 곳의 천막이 있는 곳에서 아무 생각 없이 앉았다 일어났다를 반복했습니다. 그랬더니 조깅할 때보다 더 땀이 흐른 것 같았어요. 그저 아무 생각 없이 앉았다 일어났다, 그러다가 다리가 너무 땡기고 아프면 팔 굽혀 펴기를 또 아무 생각 없이 합니다. 조깅을 하지 않는 사람은 비가 쏟아지는 날에 무슨 조깅이야,라고 할지도 모르겠지만 이렇게 아무 생각 없이 앉았다 일어났다를 하고 있으면 저쪽에서 이쪽을 지나 다시 저쪽으로 가는 사람들이 꽤나 많습니다. 우산을 쓰고 지나가는 사람이 있고 비를 맞으며 아흐 시원하군, 하며 열심히 달리는 사람도 있습니다. 또 자전거를 타고 미간을 좁히며 이쪽에서 슝 하며 지나가는 사람도 있습니다.


조깅으로 땀을 홀라당 뺀 다음 찬물로 샤워를 하고 시원한 맥주를 홀짝이는 것입니다. 발가락을 꼼지락거리며 맥주를 홀짝홀짝 마시고 가자미를 고기처럼 뜯어먹는 것이지요. 그리고 좋아하는 소설을 읽습니다. 여름을 아주 맛있게 보내는 방법입니다. 개인적으로 이상하지만 여름에 책을 가장 많이 읽는 것 같습니다. 그래봐야 소설이지만. 주위에는 허무할 만큼 책을 읽는 사람이 없습니다. 그렇다고 그들보다 책을 훨씬 많이 읽는 제가 더 돈을 많이 번다던가, 더 현명하다던가, 더 똑똑하지도 않습니다. 그들은 내가 책을 읽을 시간에 다른 것으로 소비를 하는데 그게 전부 현실에 더 잘 맞아떨어지는 이익이나 수익을 불러들이는 사고와 행동입니다.


여름날은 길고 길습니다.라고 생각하는 순간 이미 7월도 반이나 가버렸습니다. 15일이 이렇게나 금방 지나가리라고 알고 있었지만 알면서 코베인다는 말처럼 알고 있지만 너무 빠릅니다. 세월은 그렇게 빨리 지나갑니다. 그런 생각에 또 시원한 맥주에 얼음을 동동 띄워서 마십니다. 꿀꺽꿀꺽. 이번에는 크로켓과 계란 스크램블입니다. 그 위에 마법의 하얀 양념 마요네즈를 얹었습니다. 정말 마요네즈는 모든 것을 무마시키는 아주 얄미운 맛입니다. 마요네즈는 고소한 맛에 섞어서 먹는 맛이 더 좋습니다.


양념이 된 음식 – 명란이나, 고추장이나 양념이 되어 있는 음식에 뿌려 먹는 것보다 계란 프라이나 두부나 크로켓 같은 고소한 맛이 나는 음식에 뿌려 먹는 맛을 저는 더 좋아합니다. 왜냐하면 그냥 그래요. 더 고소하고 굉장히 고소하고 자꾸 고소합니다. 고소한 맛이 좋아요.


물론 후라이드에 마요를 뿌려 먹어도 맛있습니다. 역시 고소한 기름 맛에 마요가 합세하여 최고 조합, 극강의 꼬숨을 뇌에 강타합니다. 보통 이렇게 칼로리가 높은 고단백 음식을 먹으면 안 좋다고 여기저기서 이야기를 합니다. 맞는 말입니다. 이런 음식들은 인간의 몸을 망가트리죠. 그러나 칼로리를 잘 지키고, 적당하게, 적정량을 먹으면 괜찮습니다. 거기에 매일 조금씩의 운동을 해주면 더 괜찮습니다. 그래서 그걸 잘 지킨다면 먹고 싶은 음식을 먹으며 꽤나 날씬한 몸을 유지하며 지낼 수 있습니다.


여름이면 몇 통을 먹어치워 버리는 오이장아찌 냉국입니다. 얼음 동동 띄워서 후루룩 하고 국물을 마시고 오이장아찌를 아작아작 씹어 먹습니다. 쓴맛과 신맛이 죽 나오는데 이 맛이 중독입니다. 어린이들은 절대 모를 미묘한 맛이죠. 저 또한 초등학생 입맛이기도 하지만 또 혀의 저편에는 노인 입맛이기도 해서 여름이 되면 이 맛을 찾아서 야금야금 먹어치웁니다. 먹을 수 있을 때 맛있게 먹는 것입니다. 놓칠 수 없는 맛이죠. 이런 맛은 시골집 맛이고, 저의 시골은 외가로 관통하고 있고 외할머니의 맛이기도 합니다. 그래서 이런 맛에는 늘 추억이 반 이상은 차지합니다.


민초단으로 또 민초를 먹어줘야죠. 지난번에는 민트 초코파이를 두 박스인가 선물로 받아서 야금야금 잘 먹었습니다. 이번 민초도 선물로 받았는데 더불어 잘 먹었습니다. 민초를 부추전과 함께 먹기도 했는데 사진을 찍었는데 찾을 수가 없네요. 민초를 부추전에 이렇게 올려서 같이 와암 먹는 겁니다. 이상하다고요? 우리 삶 자체가 이상한데 이 정도는 뭐.


여름에는 역시 수박입니다. 보통 여름이 되면 여름 동안 수박을 그래도 세 통은 깨 먹는데 올해는 글렀습니다. 비싸고, 비싸고 비쌉니다. 수박 한 덩이 정도 수월하게 사 먹을 수 있는 여름이어야 하는데 누구한테 하소연할 수도 없고요. 얼마 전에 조깅을 끝내고 들어와서 ‘고독한 미식가’에서 고로 상의 전주 편을 다시 봤습니다. 답답하고 뭔가 꽉 막힐 때 고로 상이 맛있게 먹는 모습을 봅니다. 그는 진정 음식을 맛있게 먹습니다. 요즘 먹방으로 뜬 100만 유튜버들의 먹방은 잘 먹는다, 많이 먹는다, 라는 느낌은 있지만 맛있게 먹는다는 모습은 아닌 것 같습니다. 전주 편에서 청국장을 주문해서 비빔밥으로 비벼 먹습니다. 제육볶음도 나오고, 각종 나물과 계란 프라이, 상추도 나오고 뚝배기에 청국장도 나옵니다. 그렇게 해서 육천 원입니다. 하지만 요즘에 그 가격으로 먹을 수는 없을 겁니다. 물가의 고공행진으로 육천 원에 그렇게 먹는다는 건 이제 꿈같은 일처럼 되었습니다. 그런데 또 금리가 올라서 물가가 오를 거라는 뉴스가 있습니다. 사람의 기본권이라 함은 의식주를 해결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요즘에 집을 산다는 건 불가능한 일이 되었어도, 옷도 개인적으로 패션감각이 없어서 잘 입지 못하니 먹는 것 하나에 몰두합니다. 그러나 커피도 컴포스 커피정도를 마시고, 좋아하는 제과점에서 사 먹는 빵도 횟수를 줄였습니다. 먹는 것 하나 정도 내 마음대로 먹었다가 이제는 그럴 수 없을 때, 에이 그냥 다음에 사 먹지 뭐, 하고 돌아설 때 마지막 남은 자존심, 끝까지 보류했던 인간적인 나의 자존심에 금이 가는 걸 느낍니다. 요즘 정치를 보면 재미있는 게 여야가 물고 뜯고 대치하고 미친 듯이 싸워야 하는데 어째서 지금은 야당은 야당대로, 여당은 여당대로 자기들끼리 물어뜯고 있습니다. 이렇게 지들끼리 서로 날을 세워서 싸우는 광경을 본 적은 이전에는 없었는데 말입니다. 게다가 대통령은 지지율이 바닥을 치고 있습니다. 아무래도 주위에 이건 안 됩니다,라고 말하는 충신이 한 명도 없는 것 같습니다. 어제는 제임스 웹 카메라로 담은 우주의 신비로운 모습이 공개되었습니다. 엄청난 거리에 있는 아름다운 별의 모습에 우주의 다른 존재가 있지 않을까 많은 사람들은 기대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먼 우주의 모습도 좋지만 바다에 뭐가 살고 있고 왜 고래가 울산 앞바다에서 먹이를 먹고 낮잠은 일본의 앞바다에 가서 잠을 자는지 제대로 다 알려지지 않습니다. 바닷속에도 외계인이 숨어서 그동안 살 수 있고, 빙산 속에도, 에베레스트의 촐라체 크레바스 그 밑에 뭐가 있는지도 아직 모릅니다. 먼 우주에 뭐가 있는지보다 가까운 지구 더 관심을 가지는 게 낫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합니다. 기업들은 지구를 살리는데, 지구에 사는 생명에게, 멸종 희귀종에게 더 관심을 갖는 게 더 기업을 알리는데 바람직한 일이 아닐까, 그런 생각이 듭니다. 이렇게 무더운 날 좀 더 전기를 효율적으로 사용해서 모두가 시원하게 보낼 수 있게 하거나, 매년 폭우가 쏟아지면 물이 새고, 하수구가 넘치는데 어째서 해결을 하지 못할까요.라는 걸 생각하면 맥주 맛이 떨어지니까 그저 다 잊고 시원한 맥주를 마시며 시원하게 맛있는 여름을 보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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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영화는 독립영화로 이런 발상으로 이런 이야기를 만들어냈다는 것이 재미있다. 예전부터 지금까지 꾸준하게 듣고 있는 노래가 있는데 그게 윤시내 노래와 저짝 천조국의 조니 미첼과 제니스 조플린이다. 이 가수들의 노래는 오래되었는데도 정말 기가 막히게 좋다. 들어도 들어도 질리지 않는다. 세상에 그런 노래가 있나? 있다.라고 말할 수 있는 가수들이다. 나는 음색이 좋은 가수에게 계속 끌리고 그들의 노래를 듣는 걸 좋아하는데 조니 미첼과 윤시내가 그렇다. 제니스 조플린의 목소리 음색은 말 다 했다. 무라카미 류의 소설에서도 제니스 조플린의 방귀 소리는 쉿소리가 날 거야,라고 했을 정도로 음색이 강했다.


제니스 조플린의 그 주렁주렁 스타일과 패션, 그리고 헤어 같은 모습은 지금까지 많은 예술가 내지는 가수들이 따라 하고 있다. 그 자유분방함과 뿜어내는 울분 같은 것들의 관념들, 총과 칼을 음악으로 밀어낼 수 있다고 진정으로 믿었던 아티스트였다. 그러나 아쉽게도 제니스 조플린은 '헤이 죠'를 연주한 지미 헨드릭스처럼 28살 꽃다운 나이에 가버리고 말았다. 묘하지만 시간이 많이 흐른 후 커트 코베인 역시 28살에 짧은 삶을 마감했다. 마치 타오르는 불꽃처럼 한 번에 확 피었다가 사라졌다.


그러나 조니 미첼과 윤시내는 지금까지 우리 곁에서 열심히 노래를 부르고 있다. 물론 조니 미첼의 건강이 안 좋다는 소리가 몇 해 전부터 여기저기서 나오기 시작했다. 그에 비하면 윤시내는 우리가 정말 미치도록 사랑하지 않을 수 없는 예술가이자 아티스트이자 대중가수다. 이런 수식어를 아마도 부담스러워하겠지만 그렇게 부르고 싶다. 윤시내는 인기가 정말, 아주 많다. 인기에 비해 티브이에 자주 나오지 않아서 그렇지 윤시내의 팬들은 전국 방방곡곡 구석구석 퍼져있다.


윤시내의 노래 중에 ‘고목’이라는 노래가 있다. 아마 이 노래는 저짝의 (이미 고인이 되었지만) 비비 킹이나 블루스의 신이라 불리는 애릭 클랩튼도 앞 줄에서 차렷, 열중 쉬어, 차렷, 쉬어해서 입을 아 벌리고 듣지 않을까 싶을 정도로 놀랄만한 블루스다. 노래를 이렇게 부를 수 있다니, 그런 생각을 들을 때마다 하게 된다. 내가 사는 곳은 바닷가이고 방파제가 있다. 이곳에 겨울의 끝물에 나가면 봄의 햇살이 따스하리 내려앉는, 시리고 차가운 겨울 속을 젤리처럼 벌리고 나온 선물 같은 날을 만날 수 있다. 조금은 슬퍼 보이는 바다를 보며 우리는 윤시내의 ‘고목’을 듣기도 했다. 윤시내의 노래가 이렇게 멋졌어요?라고 하던 모습이 생각난다. 우리나라 가사 중에 블루스를 이렇게 부를 수 있는 유일한 가수이지 않을까. 그때 방파제의 바다도 블루스적이며 하늘도 블루스적이다. 역동하지 않고 생과 사의 경계도 알 수 없는. 그저 블루스적인 모습과 블루스적인 냄새를 낼 뿐이다. 여기에 어울리는 건 블루스적인 윤시내의 고목뿐이었다.


윤시내가 티브이에 나와서 노래를 부르며 춤을 춘다. 그 춤은 춤에서 벗어난 표현의 한 부분이자 예술의 모든 것이다. 윤시내의 동작을 보면 백남준이 건설했던 독일의 플럭서스가 떠오른다. 규정적이지 않다. 누구나 따라 할 수 있지만 누구도 똑같이 따라 할 수 없다. 실험이며 변화를 받아들이고 변화를 꿈꾸는 듯한 춤. 동작. 행동. 그래서 윤시내만이 할 수 있는.


이 영화는 그런 윤시내가 공연장에서 공연 시작 몇 분을 남기고 사라져 버렸다. 그리고 윤시내와 합동 무대를 하기로 한 이미테이션 가수 연시내(주인공)는 망연자실한다. 연시내로 살아가는 순이가 윤시내를 찾으러 다니면서 일어나는 이야기를 그리고 있다. 이 이야기는 가짜와 진짜, 진짜를 따라 하는 가짜도 빛날 수 있고, 관종 유튜버 딸과의 관계도 회복해가는 그런 일상 성장의 이야기다.


세상에는 많은 이미테이션 가수들이 있다. 진짜가 가지 못하는 곳, 채워줄 수 없는 부분을 이미테이션 가수들이 그 다리를 대신 채운다. 이미테이션이라고 해서 술렁술렁하거나 허술하게 노래를 부르지도 않는다. 그들은 무대 위에서 진짜에게 누가 되지 않도록 피를 토해낼 정도로 노력을 한다.


윤시내가 사라진 발상은 영화적으로 좋다. 영화에서는 윤시내 이미테이션들이 여럿 나온다. 연시내, 윤신애 등. 그들 모두가 하나씩의 사연이 있고 고민을 가지고 있다. 사실 순이가 연시내의 가면을 쓰고 살아가지만 우리 모두 가면을 쓰고 매일매일 보내고 있다. 회사에서는 부장이나 대리 또는 말 딴 직원으로 굽신거리며, 학부형으로, 인사 잘하는 카페 손님으로, 자신을 숨기며 가면을 쓰고 이미테이션으로 살아간다.


과연 드러내고 이미테이션 삶을 살아가는 그들에게 가면을 쓴 사람들이 나무랄 수 있을까.


이 영화에 독립영화의 감초 내지는 히로인 김재화가 나오는데 연기가 참 좋다. 이미테이션들의 진심이 비죽비죽 비어져 나오는 영화 ‘윤시내가 사라졌다’였다. 영화에 실제 윤시내가 나올까 안 나올까. 나는 정말 놀라 부렀다. 윤시내는 실제로 요즘 빌리 아일리시 음악을 많이 듣는다고 한다. 그리고 늘 비슷한 몸무게를 유지하기 위해 포기한 것들이 많다고 한다.


https://youtu.be/f1enp-uMZ3E <= 예고편


https://youtu.be/C-ZWHdSgrdA <= 고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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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름도 멋진 글렌 메데이로스. 너는 영어 이름이 글렌이 어울려,라고 누군가 나에게 말했었다. 글렌, 뭐 그런가 하고 생각을 한 번 했었다. 코로나가 오기 전 줄곧 어울리던 영국댁은 나를 부를 때 관, 내지는 과니, 뭐 이렇게 부른다. 나의 영어 이름은 글렌이야, 그러니 글렌으로 불러.라고 했더니 오케이 하고는 관,라고 불렀다. 다음 해에(죽 영국에 있다가 여름이면 바닷가가 있는 친정에 오기 때문에)는 나 영어 이름 매튜로 하기로 했어. 그러니 매튜로 불러.라고 했더니, 그건 영국 이름인데?라고 하더니 관,라고 불렀다. 아무튼 쓸데없는 말이지만 글렌 메데이로스는 이름도 멋지지만 노래도 멋지게 잘 불렀다.


https://brunch.co.kr/@drillmasteer/533 <=그 영국댁


아마 글렌 메데이로스가 활동했을 시기가 미국 부흥의 시기가 아닐까. 노래가 전부, 몽땅 아름답게 달달하고 부드럽고 행복하다. 60년대의 미국은 캘리포니아가 작은 나라의 자본과 맞먹을 정도로 부를 축척하던 시대였다면 70년대부터 레이먼드 카버의 소설에 등장하는 서민층이 두드러지게 드러나는 시기였고 80년대와 90년대에는 미국 문화가 세계를 전부 휘어잡을 정도로 강국으로 발전했다. 그때 미국과 더불어 패션이나 잡지, 음악은 또 일본에서도 활발했다. 그러니까 세계의 패션 유행은 런던과 도쿄에서 거의 나온다고 해도 될 법했을 정도였다.


우리나라 방송국 피디들이 모여서 이제 다른 예능 프로그램을 하나 제작하자,라고 계획을 짜면 몇몇 피디들이 일본으로 가서 한 4, 5일 정도 호텔에만 묵으며 티브이를 주야장천 본다. 그리고 거기서 본떠서 우리나라 예능 프로그램을 만들었다. 이는 문화뿐이 아니라 정부 정책적인 일도 그런 식이었다. 60 몇 년도 인지는 모르겠지만 60년대에 우리나라 농수산부 장차관들이 일본으로 가서 그곳의 소고기 등급제를 보고 아주 좋다고 했는데 그게 와규였다. 그 등급제를 따라 한 것이 지금 우리나라 한우 투뿔, 원뿔 같은 등급으로 나뉘게 되었다. 아마 고기를 주식으로 먹는 저짝 사람들, 미국이나 유럽의 고기 국가들의 프라임 고기가 우리나라 3급 정도밖에 되지 않을 것이다. 그러니까 전 세계에서 기름이 많아서 좋은 고기로 불리는 나라는 일본과 한국밖에 없지 않을까 싶다. 정부에서 기름이 많이 낀 고기가 좋은 고기라고 하면서 기름을 먹으면 성인병에 걸리니 개인적으로 조심하라고 하는 게 너무 이상하지 않은가. 기름이 많이 낀 소고기를 만들어야 하니까 소에게 여물 대신 곡물을 자꾸 먹이는 것이다. 소는 초식 동물이라 풀을 먹어야 하고 위장이 4개라서 먹은 풀을 돌려가면서 계속 씹어서 소화를 시켜야 하는데 옥수수 곡물을 먹여 키우니 살이 쪄 기름이 끼는 소가 된다. 60년대부터 잘 못 된 법을 뜯어고치려고 해도 만만찮고, 암튼 이상한 건 여전히 이상하다.


그래서 글렌 메데이로스가 노래를 부를 때는 미국적인, 미국식의, 미국에서 건너온, 같은 것들이 대접받는 시기였다. 글렌 메데이로스는 인기가 막 어마어마했다. 소년 같은 얼굴에 누구나 입고 있는 수수한 옷차림에 배려가 흘러 넘 칠 것 같은 모습으로 여러 히트 곡을 불렀다. 우리나라로 친다면 손지창 같은 이미지였다. 나이도 비슷할 것이다. 글렌 메데이로스 하면 조지 벤슨의 곡을 다시 부른 ‘낫 띵스 고나 체인지 마이 러브 포 유’가 가장 알려진 노래지만 프랑스의 가수 엘자와 같이 부른 노래가 더 인기가 좋았다. 글렌 메데이로스 하면 엘자를 빼고 이야기할 수 없게 되었다.


글렌 메데이로스와 엘자가 듀엣을 부르게 된 계기가 있다. 엘자는 프랑스에서 잘 나가는 음악 집안에서 태어났다. 지금부터는 하는 이야기는 나의 뇌피셜이다. 어디서 주워들은 것 같은데 가물가물하기도 한 이야기일 뿐이다. 정확한 이야기를 알고 싶으면 유튜브에 전문적으로 글렌 메데이로스와 엘자에 대해서, 그들의 생활과 소식 그리고 음악에 대해서 리뷰를 하는 영상이 많기 때문에 찾아보기 바람요. 엘자도 노래를 잘 불러서 일찍이 프랑스에서 가수의 길로 접어들었다. 엘자의 목소리는 흔히 옥구슬이 굴러가는 목소리다. 나에게는 엘자의 앨범도 하나 있는데 모든 노래가 아주 좋다. 물론 프로듀싱을 잘했겠지만 노래도 잘 부른다. 엘자는 지금은 그런 목소리가 전혀 나오지 않는다고 한다. 노래를 잘 불렀지만 엘자는 인지도가 그렇게 높지 않았다. 학생인 엘자도 세계적인 스타 글렌 메데이로스의 노래를 들으며 그에게 반했다.


엘자가 프랑스의 한 프로그램에 출연해서 사회자의 질문을 받았다. 글렌 메데이로스가 요즘 인기인데 블라블라, 그래서 그를 어떻게 생각하느냐.라고 물으니 엘자가 흥분해서 막 이야기를 했다. 그는 어쩌고 저쩌고. 같이 노래를 부를 수 있다면 소원이 없겠어요. 그렇게 한 프로그램에서 엘자가 이야기를 하는데 무대 뒤에서 몰래 글렌 메데이로스가 나와서 엘자 옆에 슬쩍 앉아 버리고 엘자는 놀라 자빠지고. 그 영상이 유튜브를 보면 있다.


그 계기로 두 사람은 그 유명한 듀엣 ‘프랜드 유 기브 미 어 리즌’을 부른다. 이 버전은 엘자가 블란서어로 부른다. 둘 다 영어로 같이 부르는 버전이 있는데 제목이 약간 다르다. ‘러브 올웨이즈 파운드 어 리즌’이다. 이 버전은 엘자가 불어로 부르는 버전보다 조금 짧다. 아무래도 나는 ‘프랜드 유~~~~~’ 이 버전을 너무 들어서 그런지 엘자의 불어 버전이 좋다.


두 사람은 듀엣을 계기로 늘 같이 붙어있게 되었다. 뮤직비디오를 보면 80년대 아름다운 해변가를 거닐며 노래를 부르고, 스튜디오에서 장난도 치며 노래를 불렀다. 둘 다 한창 청춘이었다. 세상의 시선도 좋았다. 반짝반짝했던 두 사람은 손을 잡게 되고 그리고 입맞춤도 하게 되는 사이가 된다. 그렇게 두 사람은 연인으로 발전을 했다. 아마도 그때 팬들은 지금처럼 요란 떨지 않고 아마도 커플이 된 두 사람을 응원해주지 않았을까. 세상은 두 사람을 축복했다.


그러나 이 세상에 ‘절대’와 ‘영원’은 존재하지 않았다. 두 사람은 결국 각자의 길을 가게 되었고 시간이 흘러 버렸다. 엘자는 청년이 된 아들이 있고, 글렌 메데이로스는 저 모습에서 조금 살이 붙어서 하와인가 거기의 한 고등학교의 교장을 하고 있다고 하는 것 같다. 노래를 여러 곡 만들어서 수익이 대단할 텐데 글렌 메데이로스는 교육자의 길로 접어들어 박사까지 땄다고 한다. 그래서 학생들은 교장 선생님이 누구인지 모르지만, 우리 엄마가 팬이래요, 우리 아버지가 샘의 팬이래요,라고 하며, 학교 행사에서 가끔 노래도 부른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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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락방 2022-07-13 12:31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와 너무 재미있게 읽었어요. 저 중학교때였나 글레메데이로스 노래가 어디에서나 나왔고, 저도 저 앨범 갖고 있어요. 엘자랑 같이 부른 노래를 비롯해서 저 앨범(타이틀이 아마 NOT ME 였죠?)의 곡들을 다 좋아했어요. 아주 여러번 들었던 앨범입니다. 그런데 엘자와 그런 스토리가 있는지는 몰랐네요. 저는 엘자가 더 먼저 유명해졌고 또 더 크게 유명했었다고 기억하고 있는데 엘자가 글렌메데이로스를 좋아했군요! ㅎㅎ 게다가 지금 교장선생님 이라니. 와 ㅋㅋㅋㅋ

정말 재미있게 잘 읽었습니다.

교관 2022-07-14 12:04   좋아요 0 | URL
저도 그냥 어디서 주서 들은 거 뇌피셜이에요 ㅋㅋ 다락방님의 말씀이 사실일 수 있어요. 정말 저 앨범 곡들 많이 들었어요. 요즘 들어도 좋습니다!

잉크냄새 2022-07-13 12:51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프랜드 유 기브 미 어 리즌’ 얼마만에 들어보는 노래 제목인가요.
개인적으로 ‘낫 띵스 고나 체인지 마이 러브 포 유‘는 에어 서플라이보다 글렌 메데이로스 노래가 더 좋은 것 같아요.

교관 2022-07-14 12:05   좋아요 0 | URL
기호와 취향의 문제니까요 ㅎㅎ. 그래도 에어 서플라이가 노래는 훨씬 잘 부르니까요
 


사랑스러움과 귀여움을 동시에 지니기 힘든 이 세상에 그 어려운 두 가지 길을 가고 있는 우영우 변호사 보는 재미에 홀딱 빠졌다. 어떤 정신과 전문의 유튜버는 우영우의 자폐에 대해서 알아보기도 하고 유튜브 알고리즘이 썸네일 절반을 우영우로 도배하고 있을 정도다.

 

한 회당 에피가 끝나는 이야기도 좋고, 우영우 주위의 사람들도 좋다. 단지 우영우 변호사의 사무실 창문 뒤의 밖의 풍경이 사진이라 전혀 움직임이 없어서 보면서 어? 하는 정도를 빼면 우영우 보는 재미가 너무 좋다.


우영우 변호사를 보면 드라마 속에 알게 모르게 둥근 동그라미가 아주 많이 나온다. 우영우의 이름 속에서 동그라미가 많고 우영우가 가장 좋아하는 김밥도 둥근 동그라미다. 절친의 이름마저 동그라미, 우영우에게 가장 난관도 뱅뱅 돌아가는 동그란 회전문이다.


유영석의 푸른 하늘이 부른 ‘네모의 꿈’을 보면 세상은 온통 네모네모다. 모서리가 있어서 자칫 찔리면 아프다. 네모난 침대에 일어나, 네모난 창문으로 보이는 풍경, 네모난 문을 열고, 네모난 테이블에 앉고, 네모난 조간신문, 네모난 책가방, 네모난 책과 네모난 버스, 네모난 건물, 네모난 학교, 네모난 교실, 네모난 컴퓨터, 네모난 달력에 그려진 똑같은 하루. 거기에 요즘은 네모난 태블릿에 네모난 휴대전화까지.


그러나 이 딱딱한 세상 속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은 둥글다. 하지만 어른이 되어 갈수록 점점 마음이 모서리가 아픈 네모난 마음으로 변해간다. 그때 마음이 온통 둥글둥글한 고래 같은 우영우 변호사가 나타나 그들의 마음에 날 선 모서리를 깎아준다. 우영우라는 특별한 사람을 만나 사람의 ㅁ이 사랑의 ㅇ으로 바뀐다. 이미 첫 화에서 집주인 부부의 다리미 사건의 변호를 맡으며 그 특별함을 사람들에게 보여주었다.


딱딱한 모서리가 있는 네모 같은 사람들의 마음속에 특별한 둥근 동그라미 같은 마음을 심어주는 우영우 변호사는 의뢰인을 진정 마음으로 대한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으어? 흐어? 응? ㅋㅋㅋ 아이구 깜찍한 생명체야.


한바다, 바다도 왜 그런지 둥근 이미지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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