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


어느 날 아들이 신발 없이 맨발로 집에 걸어 들어온 적이 있었다. 아이의 엄마가 아들을 추궁했다. 고개를 푹 숙인 아들의 모습은 마치 뜨거운 물에 데쳐진 시금치처럼 아무런 기운을 찾을 수 없었다. 맨발로 뜨거운 도로를 걸어와서 양말 바닥이 다 찢겨서 발바닥에 상처가 나면서도 그대로 집까지 걸어온 것이다. 엄마는 아들에게 신발에 대해서 물었다. 그랬더니 아들은 겨우 이야기를 하게 되었다. 아들의 반에는 아들의 친구는 없다. 만약 나와 친구가 되면 그 친구는 나보다 심한 괴롭힘을 당하고 폭행까지 당한다. 그래서 어떤 아이도 무서워서 나와 친구가 될 수 없다. 아이들의 세계는 잔인하다. 절대 말랑말랑하지 않으며 요지를 남겨두지 않는다. 거짓을 말할 줄 모르니 거짓말을 맑은 눈동자로 교묘하게 진실처럼 이야기한다. 아이들 여러 명이서 어른 한 두 명을 속이는 건 아무것도 아니다. 설령 어떤 일이 들켰다 하더라도 크게 겁먹지 않으며 고개를 숙이고 그저 딱한 표정을 짓고 네, 네, 하는 대답만 잘하면 그대로 넘어간다는 것 역시 아이들은 잘 알고 있다.


경찰을 부를 수도 없다. 학교에 진정서를 넣을 수도 없고 담임도 만날 수 없다. 그 이유는 아들이 그걸 원하지 않기 때문이다. 아들은 반 아이들에게 따돌림을 당하더라도 이대로 학교를 다니는 게 경찰을 부르고 진정서를 넣는 것보다 낫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후배는 자신이 한 잘못으로 인해 자신의 아들이 벌을 받고 있는 거라는 생각에 잠을 이룰 수가 없다. 당연하지만 업무도 제대로 집중할 수가 없었다. 공무원의 일이라 집중을 하지 않고 잘못하면 일반 시민들에게 피해가 갈 수 있다. 결국 후배는 아들의 일에 신경을 쓰느라 윗선에서 한 소리를 듣고 그 일에서 한 발 뒤로 물러나야만 했다. 그러다가 결국 대기발령을 받거나 무급휴가를 받게 될 거라는 걸 잘 알고 있었다. 서서히 자신의 생활이 어린 시절에 했던 잘못으로 인해 망가져가는 것을 받아들여야 한다는 것도 알고 있다. 모든 것을 내팽개치고 달려들어 경찰에 알리고 청소년 범죄예방 센터에 신고를 하려고 했지만 그렇게 했다가는 아들이 아버지와 말도 하지 않고 고등학교를 졸업하는 순간 집을 나가서 다시는 아버지를 보지 않을 것이라고 했다.


후배는 어린 시절에 같은 반 아이를 괴롭히고 따돌린 사실이 있다. 그리고 그 아이는 심각한 정신적 고통을 겪었고 학교도 제대로 다니지 못했다. 또 하나의 사실은 후배가 어른이 된 지금 후배의 아들이 심한 따돌림을 당하고 있다는 것이다. 그 사실들은 후배의 아들이 마땅히 따돌림을 당해도 싸다는 사실이 되었다. 그 사실에 약자인 당사자 또한 그 사실에 수긍을 해버린 것이다. 나는 당해도 싼 인간이야, 나는 그런 인간의 아들이기 때문이야. 같은 생각이 마음을 지배했다.


후배의 아들을 따돌리는 주동자 아이는 자신의 아버지가 오래전 후배에게 심한 따돌림을 당하고 이제 그 일이 대물림되어서 후배의 아들에게 옮겨졌다. 그러나 후배에게 따돌림을 당했던 그 아이는 커서 자신의 아들에게 그런 사실을 말하지 않았다. 그 점은 아들 때문에 후배가 주동자의 아버지, 즉 어릴 때 자신에게 따돌림을 당하던 그 아이를 찾아갔기 때문이다. 거기서 후배는 친구에게 이런 이야기를 들었다. 나는 다 잊었는 걸, 어릴 때 따돌림당하는 것쯤 어른이 되면 다 잊게 돼. 아마 지금의 아이들도 그런 과정을 겪고 있는 거겠지. 거기에 대해서 어른들이 나서서 왈가왈부해봐야 친구들끼리 사이만 더 나빠질걸. 속을 알 수 없는 인간이었다. 설령 말하지 않았다고 해도 후배는 친구에게 구걸하다시피 빌었다. 제발 이번 한 번 도와달라고, 아들이 반에서 매일 따돌림을 당하고 신발까지 잊어버리고 집으로 온다고. 그러나 친구는 자신은 아이들의 세계에 관여하지 않겠다고 했고, 정 그러면 학교에 가서 담임을 찾는 게 훨씬 나은 편이라고 했다.


정말 무서운 건 후배의 아들이 지옥 같은 하루를 보내면서도 아버지에게 자신이 당하는 그 모습을 보여주려고 한다는 것이다. 일 년, 일 년, 정도만 견디면 된다,라고 하면서 매일 곤죽이 되어서 집에 들어오면서 처절하게 따돌림당하는 자신의 모습을 아버지에게 보여주려고 한다. 이제 초등학교 5학년인데. 후배의 아내는 도대체 아들이 왜 그러는지, 아들의 일에 적극적으로 나서지 못하는 남편은 또 왜 그러는지 답답하기만 하고 이상하기만 하다. 아내가 학교를 찾아가려고 하니 후배가 적극적으로 말했다.


당신은 아들의 일인데 이렇게 가만히 있을 수가 있어요?


아들을 위해서 이러는 거야.


도대체 이게 뭐가 아들을 위한다는 거예요. 아들은 학교에만 가면 만신창이가 되어서 집으로 오는데, 아버지가 되어서 어떻게 아무것도 하지 않을 수가 있어요!


아내와 후배는 결국 사이가 벌어지기 시작했다. 그렇게 좋아하고 사랑해서 결혼을 하고 얻은 예쁜 아들인데 한 번 틀어진 가족관계는 다시 원래대로 돌아가기란 불가능에 가깝다.


따돌림이란 무엇인가. 따돌림이라는 건 인간이 도래하는 곳에는 항시 인간과 함께 존재했다. 사람이 사람을 괴롭히는 것 중에서 제일 재미있고 가장 지독한 방법일지도 모른다. 옆에 두되 없는 사람 취급을 하거나, 대놓고 무시하거나, 깔보는 행위는 사회에서도 마찬가지다. 벌의 침처럼 한 번 찔렸을 때는 괜찮은데 침이 점점 살갗을 파고들어 몸속을 후비고 다니면서 자극을 주고 자극은 고통이 된다. 그리고 점점 상처를 남기고 상처는 흉터가 된다.


후배의 아들은 반 아이들에게 심각한 따돌림을 당하면서도 아버지에게 죄를 묻기 위해서인지 성직처럼 십자가를 등에 짊어지고 있는 것처럼 보였다. 그래 봐야 고작 5학년일 뿐이다. 마치 아버지에게 ‘당신이 저지른 과오가 되돌아온 것이니까요’라고 하는 것만 같다. 아들은 아이들에게 배척당하는 소수에 속하지만 아버지를 배척함으로 다수의 배척하는 아이들 틈에 끼었다고 믿어버렸다. 아들의 그 선택은 겁이 날 만큼 확고했다. 우리는 선택을 마주하면 늘 어렵고 무섭다. 후배의 아들은 이제 고작 5학년의 몸으로 연료를 하루에 다 소진하고 살아가는 게 아니라 다 태우고 남은 숯을 가지고 다음 날도, 그다음 날도 그저 버티고 있는 것이리라. 그을음이 되어서 아들은 아버지에게 그 냄새를 풍기며 하루하루를 보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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잉크냄새 2022-07-31 13:0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결은 약간 다르지만 얼마전 종영된 ˝돼지의 왕˝도 떠오르고 ˝파리대왕˝도 떠오르는 글이네요.

교관 2022-07-31 13:12   좋아요 0 | URL
인간이 있는 곳이면 그곳이 어디든 따돌림은 늘 따라다니니까요. 심지어 가정에서도 따돌림은 존재하니까요 ㅎㅎ
 


1.


어느 날 후배가 찾아왔다. 후배라고는 하지만 대학교를 졸업하고 거의 왕래가 없었다. 복학해서 같은 학년이 되었고 제법 친하게 어울렸다. 술도 자주 마시고 어떤 부분의 이야기는, 딱히 설명할 길은 없으나(왜냐하면 후배와 나는 전혀 다른 스타일의 인간이었다) 세상 돌아가는 것들에 대해서 이야기를 하면 제법 잘 통했다. 그래 봐야 스무 살 안팎의 좁은 시야로 보는 세상의 치기 어린 이야기들뿐이다. 후배는 제대 후 마음에 맞는 여성을 만나 결혼을 했고 아들을 낳아서 행복하게 지냈다. 여기까지가 내가 후배에 대해서 알고 있는 전부다. 결혼을 하면서 결혼을 하지 않은 나와는 자주 만나지 않게 되었다. 왕래가 점점 줄어들어 끊어지다시피 했다. 그러다가 후배가 거의 10년 만인가, 나를 찾아왔다.


후배는 축구를 잘해서 늘 날씬했고 허벅지가 굵었는데 그동안 운동을 하지 않았는지 살이 많이 찐 모습이었다. 그래도 얼굴 낯빛은 나쁘지 않았다. 수염이 잘 나지 않았던 후배의 얼굴은 수염이 거뭇하게 피부를 뚫고 올라와 있었다. 그 모습이 어쩐지 낯설기도 했다. 살이 찌면서 얼굴에도 살이 붙었다. 나이가 들어 얼굴에 살이 빠지면 그것만큼 보기 싫은 것도 없다. 그래서 그 균형이 나쁘지 않게 보였다.


오랜만에 나를 찾아온 후배와 술은 마시지 않았다. 둘 다 운전도 해야 하고, 나는 술을 마시지 않은 지 오래되었고, 또 후배가 술을 마시며 해야 할 이야기를 하러 온 건 아닌 것 같았다. 그저 커피를 한 잔씩 마시며 이런저런 이야기를 했다. 이런 것을 보면 대단한 발전이다. 나이가 든다는 건 전혀 그렇지 않을 것 같은 모습도 변화시킨다. 받아들이는 것에 익숙해지기도 한다. 운전과 몸과 날씨 같은 것들을 받아들이는 나이가 되었다. 대학교 때에는 내일 따위 전혀 생각지도 않고 그저 오늘만 사는 것처럼 술을 마시고 밤을 지새우고, 하릴없는 이야기를 하고 공을 차거나 음악을 듣고, 건축 모형을 만들곤 했다. 후배는 전공을 살려 착실히 공부를 하여 시청의 공무원이 되어 그쪽 계통에서 일을 하고 있었다. 누구나 되고 싶어 하는 신의 직장, 공무원인 것이다. 축하해주었다.


낯빛이 나쁘지 않았지만 좋지도 않았던 후배는 서서히 고민을 이야기하기 시작했다. 고민이라기보다 그저 누군가에게 털어놓고 싶었던 이야기였다. 후배에게는 아들이 하나 있고 이제 초등학교 3학년이 되었다. 그런데 아들이 같은 반 아이들에게 따돌림을 당하고 있다는 것이다. 아들은 아버지에게는 대 놓고 말은 하지 않았지만 그런 자신의 비관을 아버지에게 풍기는 인상을 주고 있다고 했다.


그게 무슨 말이야? 나는 이해를 할 수 없었다. 아들은 학교 반 아이들에게 따돌림을 당하는데 아들이 아버지에게 그런 자신의 모습을 내비치고 있다는 말이.


아들은 몇 개 월째 같은 반 아이들 모두에게 따돌림을 당하고 있던 모양이었다. 도대체 왜 아이들이 전부 한 아이를 따돌림하는 거지?


후배의 아들은 태어날 때 소아마비로 몹시 앓은 적이 있었는데 그때 한쪽 다리를 절게 되었다는 것이다. 체육시간에 아들과 같은 조가 되면 반드시 진다며 아들을 따돌리기 시작한 것이 도미노처럼 점점 번지기 시작했다. 따돌림을 참아내는 건 너무 힘든 모양이었다. 연필을 감추고, 찾아서 주지도 않는다. 다음 날이면 또 다른 물건을 감추고, 다른 날에는 신발을 감춰서 버려 버리고, 아픈 다리로 걷는 흉내를 내며 욕을 한다. 그 수위가 강물의 수면처럼 벗어나지 않으며 늘 일정한 상태를 유지한 채 아들을 매일 괴롭히는 것이다. 아들의 편이 되어주기라도 하는 친구가 있으면 다수에 의해 공격 대상이 된다. 아들은 잔잔한 수면에서 벗어나지 않게 따돌림당하는데 아들과 친하게 지내는 같은 반 아이는 괴롭힘 당하는 수위가 잔혹할 만큼 괴로운 것이다.


아이들의 세계는 단순한 것 같지만 복잡하기만 하다. 비슷한, 힘이 없는 아이들이 한데 뭉쳐 거대한 힘을 만들어서 가장 연약한 아이를 끝없이 따돌린다. 따돌림이라는 건 당사자가 모르게 하는 것이 아니다. 절대적으로 이건 너를 따돌리는 것이다, 그러니 너는 응당 괴로워야 해. 라며 따돌린다. 주동자가 있고 주동자의 추종세력이 아들의 주위를 돌며 호시탐탐 따돌릴 기회를 노린다.


하지만 그런 심각한 문제를 나를 찾아와서 이야기를 한다고 해서 나는 후배에게 아무런 도움이 안 된다. 그 사실을 후배도 알고 있을 것이다. 왜 경찰이나, 학교의 전담반이나 이런 문제를 전문적으로 다루는 곳으로 가서 이야기를 해야 하지 않느냐고 했다. 후배는 씁쓸한 미소를 지었다. 그 미소에는 내가 알 수 없는 진실이 숨어 있을 것이다. 후배는 나에게 어릴 때 누군가를 따돌려 본 적이 있냐고 물었다. 나는 없다고 했다. 생각이고 할 것도 없었다. 왜냐면 누군가를 따돌릴 만큼 영악함이나 노련함 그리고 대범함 내지는 악독함 같은 것들이 나에게는 없었다. 굳이 따지자면 나는 당하는 쪽에 속했다. 그러나 요즘처럼 괴롭힘이 아니라 짝지와 친구 몇 이서 나를 빼고 하교를 한다든가, 그 정도의 따돌림이었다.


후배는 씁쓸한 미소를 유지한 채 사실은 자신이 어릴 때, 초등학교 시절 같은 반 아이를 심하게 따돌렸던 적이 있다고 했다. 그때 왜 그랬는지 모르겠지만 아이들과 함께 매일 그 아이를 따돌리는 재미에 하루하루를 보냈다고 했다. 화장실 청소할 때 밀대에 물을 많이 묻힌 다음에 거기에 얼굴을 파묻기도 했다고 했다. 맙소사.

물건을 숨기는 건 물론이고, 돈까지 빼앗었던 적도 있다고 했다. 물론 후회하고 있고 고등학교에 갔을 때 그 친구를 찾아가서 용서를 빌기도 했다고 했다.


그래, 그 애가 너의 용서를 받아줬어? 후배는 아니라고 했다. 집 앞에서 무릎까지 꿇었지만 얼굴도 보기 싫어했다고 했다. 그 후로 시간이 흘러 지금이 되었다. 그리고 현재 후배의 아들이 학교에서 반 아이들에게 심각한 따돌림을 당하고 있다. 후배는 숨을 들이마신 후에 이야기를 했다. 아들을 따돌리는 주동자의 아버지가 어릴 때 후배가 따돌렸던 그 아이라고 했다. 맙소사.


그렇다면 그 아이의 아버지가 자신의 자식에게 따돌림을 가르쳤던 말인가? 아니다. 그럴리는 없다. 누군가를 따돌리라고 할, 아버지가 세상에 어디 있겠는가. 그저 우연이라고 밖에 할 수 없는 일이다. 하지만 후배의 아들이 반 아이들에게 당하는 따돌림은 후배가 어린 시절에 그 아이에게 했던 따돌림과 방법이 같은 것이었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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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깅 후 엘베샷


조깅만으로 살을 뺄 수 있을까


결론적으로는 불가능에 가깝다고 본다. 조깅을 거의 매일 10년 정도 하고 있으니 내가 내린 결론도 옳지 않은 건 아니라고 생각한다. 조깅을 시작한 지는 15년 정도 되었으나 처음 5년 동안은 달리는 것에 집중을 하지 않거나 달리고 싶을 때 달렸으니 5년은 빼고, 거의 매일(달린다고 하는 이유는 달리지 못하는 날을 제외하고 일 년에 350일 정도는 달리고 있다) 달린 지 10년 정도가 되었다. 나는 겸손과는 거리가 좀 먼 인간인데 조깅에 대해서 물으면 대체로 겸손해진다.


왜냐하면 운동을 매일 하는 사람은 알겠지만 자신이 하는 운동시간이 그렇게 길지 않다. 사람들은 보통 두 시간 운동을 했다고 하지만 두 시간 내내 운동을 하지는 않는다. 옷 갈아입고 벗고, 물 마시고, 허리에 손 올리고 주위 간섭하고, 휴대폰 보고, 앉아 있거나 샤워하는 시간이 운동 두 시간 중에 한 시간은 넘을 것이다. 그래서 하루 24시간 2시간 운동을 했다는 말은 거짓말이 된다. 그러니까 “나 이전에 3년이나 운동했는데?”라고 하는 사람의 말을 분리해보면 3년 내내 운동을 한 것이 아닌데 자신은 3년 내내 온동을 했다고 착각을 한다. 그런 점에서 매일 조깅을 하지만 하루에 한 시간 넘게 하는 거라 달리기에 대해서 물어보면 겸손해진다. 그저 조금씩 달리고 있어요,라고 말해 버린다.


요즘 조깅은 땀으로 옷이 홀딱



조깅으로 살을 빼려면 하루에 8시간씩 달려야 하지 않을까 싶다. 요즘 같은 날 조깅을 한 시간 정도 하고 나면 사진에서 처럼 온통 땀이다. 땀으로 옷을 쥐어짜도 될 정도다. 그러나 이건 전부 수분이다. 소금기라든가 몸 안에 찐 살이 빠져나오는 게 아니다. 오히려 운동으로 살을 빼려면 조깅보다는 살이 찐 부위를 빼려는 고강도 근력 운동이 더 좋지 싶다.


그동안 주위에서 내가 매일 조깅을 하니까 따라붙었다가 떨어져 나간 사람들이 몇 있다. 그들은 40대 회사원들로 회사에서 대체로 한 자리까지 오른 사람들이다. 그 자리까지 오르기 위해 열심히 일을 했다. 가정도 돌봐야 했다. 주위 인간관계도 원만히 유지해야 했다. 그러다 보니 자신의 몸을 돌보지 못했다. 회식에서 쌓인 스트레스를 술로 달랜 후 그다음 날에는 꼭 짬뽕 같은 국물 음식으로 배를 채웠다. 그런데 어느 날 보니 살이 너무 찐 것이다. 그래서 조깅을 매일 하는 나 같은 경우 10년 전이나 지금이나 엇비슷한 체형과 체격을 유지하고 있어서 조깅을 할 때 따라붙었다.


그러나 그들에게 일단 달리는 것에서 문제가 생겼다. 무릎이 아파서 거의 걷는 수준으로 달려야 했고, 몇 주일 동안 어느 정도 달리기에 적응이 되면 운동이 끝나고 집으로 들어가서 고픈 배를 채우기에 바빴다. 공복 상태에서 조깅을 권했지만 그러다가는 쓰러진다며 배부르게 먹고 나와서 조깅으로 소화를 시키고 집에 가서 야식을 또 먹는다. 이렇게 해서 살이 빠지지는 않는다. 어떤 이는 먹는 것에 스트레스를 받으며 살을 빼기는 싫다고 했다. 근데 잘 생각해보면 스트레스를 받지 않고 현재 먹는 그 맛 좋은 음식을 고르는 것이 행복한 고민이 아니라 그게 스트레스일 수도 있다.


살은 식단을 조절해서 빼고 조깅은 달리는 것 자체를 좋아해서 달리면 아주 좋다. 분명 인간은 언젠가 달리지 못할 때가 온다. 요즘은 통통한 어린이도 많지만 아이들은 대체로 말랐다. 아이들은 주로 뛰어다닌다. 늘 뛰어다니고, 자꾸 뛰어다니고, 계속 뛰어다닌다. 자신의 에너지를 측정할 수 없으니까 고갈이 될 때까지 끝없이 뛰어다닌다. 그렇게 에너지를 소비하니까 살이 찔 틈이 없는 것이다. 어린이 때를 벗어나면 대부분의 사람들은 시간을 내서 달리지 않는 이상 그저 걸어 다니거나 붕어처럼 가만히 앉아만 있다. 그러다가 나이가 들어 늙어 버리면 더 이상 달리고 싶어도 달리지 못하는 날이 온다. 그래서 그전까지 달릴 수 있을 때 실컷 달리는 것이다. 이런 폭염에 두 시간 걷는 건 너무 짜증이 나지만 한 시간 달리는 건 아주 상쾌하다. 숨이 끊어질듯한 그 데드 포인트까지 닿는 것도 아주 기묘한 경험이다. 이 시점을 넘기면 심장에 강한 무리를 주어 어떻게 될지 모르겠구나, 하는 정도까지 가는 경험도 한다.


눈으로 들어오는 광경을 뇌에 리플렉션 시킬 때 나만의 방법으로 새로운 세계로 입력한다. 그런 일들을 매일 조깅하면서 가질 수 있다. 조깅을 하는 동안에는 아무런 생각을 하지 않지만 잠깐 쉴 때에는 많은 상상을 한다. 그리고 뇌의 7구간에 입력해놓은 상상을 조금씩 글로 풀어내 보기도 한다.


조깅이 끝나면 들어와 먹고 싶은 것을 마음껏 먹는다. 단, 적당하게 먹는다. 맥주는 한 캔, 치킨은 4조각 정도, 국물음식은 일주일이나 한 달에 한두 번 정도. 배부르지 않게 맛있게 먹는다면 좋아하는 음식을 매일이고 먹으며 뺀 살을 유지할 수 있다. 하지만 이렇게 말을 하는 나도 근래에 마요네즈의 미친 맛에 현혹되어서 지금까지 몇 통을 먹어 버렸다. 그랬더니 사진으로는 보이지 않지만 겨드랑이와 그 밑으로 살이 쪘다. 살이 찌는 건 그렇다고 생각한다. 10년을 조깅을 하면서 비슷한 몸을 유지해도 며칠만 배부르게 먹게 되면 – 마요네즈를 왕창 곁들이면 이전에 했던 운동은 전혀 무용지물이 된다. 그냥 살이 쪄 버린다. 하루 많이 먹고 하루 많이 운동해야지, 한다고 찐 살이 빠지지는 않는다.


우리가 가지는 상식 중에서 잘 못된 상식이 아주 많은데 그중에서 ‘죽’도 그렇지 않을까 싶다. 아플 때 죽을 먹거나 소화가 안 되면 죽을 먹는데 사실 죽을 계속 먹으면 위에 더 좋지 않다. 소화는 위만 하는 것이 아니라 음식물을 입 안에서 씹을 때 나오는 침 속에도 분해액이 있어서 거기서부터 소화를 하는 작용을 하는데 죽은 그런 과정이 없이 그대로 위로 꿀꺽 넘어간다. 그러다 보니 죽이 좋다고 계속 죽만 먹다가는 나폴레옹 꼴이 난다. 나폴레옹은 위장 장애가 있기로 유명했다. 그 병이 평생 자신을 괴롭혔다. 그래서 죽을 많이 먹었는데 그게 오히려 독이 되었다고 한다. 대식가에 음식을 아주 빨리 먹고 탄수화물 중독이었다. 심각한 비만이 되었는데 세인트 텔레나 섬에서의 말년을 묘사한 초상화에는 엄청난 지방으로 둘러싸인 펭귄의 모습이었다. 그러니까 조깅을 하면 살이 빠진다는 생각은 죽을 계속 먹으면 소화가 잘 될 거야, 하는 것과 비슷할지도 모른다.


그래서 단 기간에 살을 빼고 몸을 만들어서 바디 프로필을 찍는 건 좋으나 그 몸을 죽 끌고 유지해야 하는데 프로필 촬영만 끝나면 이전보다 더 살이 쪄 버리는 경우를 본다. 내가 일하는 곳에는 위에 거대한 헬스클럽이 있어서 그런 모습을 자주 본다. 운동 자체를 목적을 가지고 하는 건 어쩔 수 없으나 조깅 정도는 즐겨야 매일매일, 지치지 않고 달릴 수 있다. 그리고 해 보면 달리기만큼 원초적으로 즐길 수 있는 운동이 또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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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즈응말 잘 만들었다. 픽사에서 만들면 영화는 참 잘 만든다. 이음새 하며, 우주선이 날아가며 분사하는 하얀 연기며, 캐릭터들의 대사와 행동은 나무랄 데가 없다. 그저 입을 벌리고 신나게 보다 보면 한 시간 반이 휙 지나간다. 

그리고 무엇보다 등장하는 고양이 삭스, 이 삭스의 대활약이 없었다면 이 영화는 재미가 떨어졌을지도 모른다. 이 영화는 95년도에 나온 토이 스토리의 꼬꼬마였던 앤디가 가장 좋아했던 영화 속 주인공 ‘버즈’가 나온 영화의 내용이다. 

이 영화를 보고 꼬꼬마 앤디가 버즈에 반하여 장난감으로 가지게 되며 후에 대학생이 되면서 그 유명한 대사 ‘소 롱 파트너’라며 떠나게 된다. 

그러나 이 영화 ‘버즈 라이트이어’를 토이 스토리와 동일선상에 놓고 봐서는 안 된다. 왜냐하면 분명 27, 8년 정도가 흘러 영화는 진일보했지만 그간의 픽사 영화에서 쿵 하며 받았던 그런 감정적 흥분이나 감흥은 훨씬 떨어지기 때문이다.

그저 신나고, 또 신나고, 자꾸 신나다가 끝이 난다. 이 영화는 꽤 많은 영화를 버무려놓았다. 캡틴 마블도 떠오르고, 요즘 대 유행인 평행우주, 깨진 우주 뭐 이런 것들부터 해서 긴 줄거리는 ‘로스트 인 스페이스’가 아닌가 할 정도다. 

로스트 인 스페이스도 영화가 정말 재미있었다. 영상도 그렇지만 평행우주 속에서 미래의 나와 만나는데 미래의 나는 지금의 내가 상상할 수도 없을 정도로 악마처럼 변해있고. 아폴로 440의 음악 역시 굿이었다. 베이스의 중저음 소리가 난타 강타하며 기가 막히게 연주하는 이 음악은 지금 들으면 더 미친다. 아폴로포포스의 음악은 정말 굿.

그래서 이 영화 ‘버즈 라이트이어’에서 버즈는 그간의 토이 스토리에서 나온 로보트 버즈의 모습이 아니라 인간의 모습이다. 버즈의 시그니처인 녹색 수트를 왜 입게 되는지. 그런 걸 알 수 있다. 어쨌거나 이 영화를 보려면 소울이나 업, 코코처럼 생각하지 말고 보기 바람요. 

그냥 신나게 봐야 신나게 즐길 수 있는 신나는 영화 ‘버즈 라이트이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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씹었을 때 후아 하며 뜨거운 김이 입 밖으로 나오며 바삭하며 깨지는 소리가 들리는 튀김의 맛은 말로 표현할 수 없다. 튀김은 뜨거울 때 먹으면 정말 맛있다. 그래서 새 모이를 받아먹는 새끼 새처럼 앉아서 기름에서 바로 꺼냈을 때 젓가락을 휙휙 저어서 먹는 맛이 있다. 맛있는 튀김은 식어도 맛있지만 식은 튀김은 뜨거운 튀김보다 아무래도 그래. 후라이드도 식은 것도 맛있지만 뜨거울 때 후아 하며 먹는 그 맛이 있다.


튀김은 기름 맛으로 먹는다. 기름 맛으로 먹는 맛이 좋다는 걸 알았을 때가 초등학생 5학년인가, 그때쯤이었다. 내가 어릴 때에는 튀김을 그렇게 먹지 않았던 것 같다. 요즘처럼 에어프라이어가 집집마다 있던 것도 아니고. 현재 우리 집에는 아직도 에어프라이어가 없다. 편리하긴 하나 아무래도 있으면 자주 해 먹지 싶다. 음식이란 자고로 과하지 않게 먹는 게 좋다. 튀김도 분명 몸에 해롭지만 적당하게만 먹고 운동을 해준다면 아무런 문제가 없다고 본다.


커피머신과 비슷하다. 커피머신을 몇 해 전에 누군가가 선물로 나에게 주려고 했을 때 아이구 감사합니다만 정중하게 거절했다. 커피는 하루에 한 잔 마시는 게 나에게는 딱이다. 커피머신이 집에 있으면 아무래도 몇 잔씩 계속 만들어서 먹게 된다. 커피가 몸에 좋은 음식이라고는 하나 어떻든 음식은 과하면 별로다. 그게 나의 생각이다. 피망이 몸에 좋다고는 하나 과하면 별로다. 왜냐면 피망을 많이 먹었다고 치면 그 많은 피망이 위에서 다 소화가 되지 않는다. 그러면 다음 날 아침에 피망의 모양을 그대로 유지한 채 변기 속으로 빠져나온다.


어떻든 현재, 현대인들에게 음식은 생존보다는 그저 선택의 문제가 되었다. 손만 뻗으면 어떤 음식이든, 어느 시간이고 간에 먹을 수 있다. 자제와 절제가 필요하다.


내가 어릴 때에는 튀김을 그렇게 먹지 않았는데 나의 조카를 보면 현재, 조카도 튀김이나 튀긴 음식에 시큰둥하다. 그래서 조카는 빼빼 마르고 손가락에 살도 없다. 참 요즘 어린이 같지 않다. 그 이유를 보면 지 엄마가 집에 에어프라이어나 커피머신 같은 것들을 집에 두지 않으며 어릴 때부터 주로 할매(나의 모친)가 만든 멸치볶음 같은 것에 맛을 들이게 해 놨다. 그리고 초등학교를 대안학교에 보냈는데 거기는 아이들의 음식을 부모들이 돌아가면서 점심을 한다. 그래서 아이들 음식에 모두가 진심이다. 어른들이 우르르 아이들이 먹는 음식에 신경을 쓴다. 아무래도 어릴 때부터 먹는 것에 습관을 들여놓으면 튀김이나 치킨 같은 것에 달려들지 않는다. 조기교육이란 꼭 영어에만 국한된 것이 아니다.


그러다가 내가 5학년일 때 기름 맛에 확 빠졌던 적이 있었다. 튀김이라기보다 전에 가까운데, 친구의 누나가 깻잎으로 묽게 반죽한 밀가루 옷을 입혀 프라이팬에 기름을 잔뜩 부어서 촤르르 소리를 내가며 깻잎튀김 같은 깻잎전을 부쳐 주었다. 이게 전혀 맛이라고는 없어야 하는데, 그때 놀다가 허기가 져서 그랬는지 맛있는 것이다. 누나는 우리보다 고작 2살이 많았는데 엄마들이 하는 것을 용케도 잘 익혔는지 깻잎에 밀가루 옷도 입혀서 촤르르르 하며 튀김을 만들어 주었다. 친구의 부모님은 맞벌이 부부로 아침에 나가서 저녁에야 집으로 들어오셨다. 그래서 친구의 누나는 일찍부터 동생을 돌봐야 했고 덩달아 누나가 없었던 나까지 한데 엮어서 친동생 취급을 했다. 그때 깻잎전을 튀김이라 부르기는 민망하지만 워낙 얇아서 씹으면 바삭거렸다.

튀김도 이 집이나 저 집이나 엇비슷하니 다 맛있다. 그러나 맛에 차이가 있다. 튀김이 먹고 싶을 때가 있는데 그럴 때 자주 가는 튀김 집에서 튀김을 포장해온다. 그 집은 튀김이 유명해서 튀김 집이라고는 하지만 그 집에는 어묵이 정말 맛있다. 어묵 국물에 미역을 넣어서 끓이는데 그게 기가 막힌다. 국물을 떴을 때 미역이 들어있으면 호록 같이 먹게 된다. 참 맛있다. 국물만 따로 사 가는 사람도 있다. 집에 국수 삶아서 어묵 국물에 말아먹으려는 것이다. 김밥도 순대도 있는데 인기가 가장 많은 역시 튀김이다. 한, 몇 년 동안 조깅을 하고 돌아오는 반환점에 있는 이곳 튀김 집에 들러 매일 오뎅, 어묵을 한 두 개씩 먹었다. 겨울이면 어김없이 들러서 차가워진 몸을 따뜻하게 해 주고 다시 달리곤 했다.


이 튀김집의 특징이라면 그저 길거리에서 서서 먹을 수 있을 정도로 작은 곳인데 일하는 직원이 최소 5명이나 된다. 시간별로 돌아가면서 음식을 만드는데 5명 중에 3명은 외국인이다. 베트남인지 태국인지 필리핀인지, 타국에서 온, 갓 스무 살을 넘긴 앳된 여성들이 일을 한다. 그녀들은 이른 나이에 한국 남자에게 시집을 왔다. 어쩌다가 이 튀김집을 소개받아 일을 하게 되었는지는 모른다. 계속 그런 여성들이 로테이션을 한다. 그녀들은 아직 한국말이 서툴러 손님과 응대하는 전면에 나서지 않고 뒤돌아 서서 열심히 재료를 손질하거나 김밥을 말고 튀김옷을 입히거나 떡볶이 양념을 만든다.


집으로 포장해온 튀김을 맥주와 함께 먹으면 아주 맛있다. 내가 가장 좋아하는 튀김은 김밥 튀김이다. 김밥을 튀기기만 했을 뿐인데 어찌 그리 맛있을까. 하나에 400원이다. 2,000원어치만 먹어도 배가 부르다. 가성비가 이만한 음식이 또 있을까. 그러나 김밥 튀김은 늘 금방 없어진다. 다른 튀김처럼 많이 만들어 놓으면 되는데 김밥 튀김은 꼭 만들어 놓은 게 다 나가면 다시 만들어 놓지 않는다. 왜 그럴까.


아무튼 바삭바삭 아사사삭 거리며 씹는 맛도 좋은 튀김을 먹는다. 오징어튀김도 맛있고 김말이가 역시 맛있다. 튀김을 된장 푹 찍어 한 입 먹어보자. 이 여름을 즐기는 방법일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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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tella.K 2022-07-25 17:59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저도 에어프라이어는 없습나다. 커피 머신도.ㅋ
에어프라이어는 기름없이 튀길 수 있다는데 건강을 생각하시면
하나 장만해도 좋지 않을까요?
저희 집은 사면 이고 있어야할 형편이라서요.
거 친구의 누님 정말 기특하네요. 그래봐야 중학교1학년 아닙니까?

김밥튀김 맛있죠. 고추튀김도 맛있는데...ㅋ

교관 2022-07-26 11:28   좋아요 1 | URL
튀김은 그냥 기름에 튀겨 먹어야죠 ㅋㅋ 어쩌다 한 번 먹는데 기름없이 튀김을 먹기는 싫어요 ㅋㅋㅋ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