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찮은 일상 속 화창한 하늘



주차장으로 올라가는 샛길에 쓰레기가 늘었다. 썼다가 버린 마스크, 마신 음료, 각종 종이와 비닐봉지 같은 것들이 일주일 새 부쩍 늘었다. 내가 주차장으로 가는 시간에는 거의 이동하는 사람이 없는데 이 샛길로 사람들은 많이 다니는 모양이다. 사람이 있는 곳이면 반드시 차별이 있듯이 쓰레기 역시 꼭 있는 것 같다. 그 누구도 저는 아닌데요?라고 하지만 쓰레기는 치우는 사람이 없으면 늘어만 간다. 아마도 용역에 고용되는 어르신들이 폭염 때문에 회사에서 움직이지 못하게 하는 것 같다. 이 더위에 까딱 잘못 청소를 하다가 쓰러지기라도 하면 큰일인 것이다.


내가 일하는 건물에도 화장실이 있는데 지나다니는 사람들이 화장실을 너무 더럽게 사용을 하는 바람에 비밀번호를 달았다. 왜 그렇게까지?라고 하는 사람도 있지만 비밀번호를 달고 나니 거짓말처럼 화장실이 너무 깨끗해졌다. 공중 화장실이 아닌데 사람들은 공중 화장실이라고 생각하고, 공중 화장실은 그렇게 사용해도 된다고 무의식 중에 생각을 하는 것 같다. 비밀번호를 달기 전에 화장실 청소하는 아주머니들이 세 번이나 바뀌었다. 못하겠다고 도망을 가버렸다. 어떤 사람은 큰 볼일을 보고 신발을 양변기에 빠트려 놓아서 손을 댈 수도 없게 하고, 또 어떤 사람은 양변기 엉덩이 대는 부분에 자신의 배설물을 싸놓기도 했다. 이해할 수 없는 일들이 정말 많이도 일어났다. 여자화장실에서는 쓰레기통에 버리면 될 패드를 바닥에, 또는.


아무튼 청소하는 아주머니들은 그때 대체로 조선족 아주머니들이었는데 어지간하면 청소를 할 텐데 세 번이나 교체가 되었지만 결국 다 도망가 버리고 말았다. 사람들은 자기 것이 아니면 기를 쓰고 더럽히고 망가트리고 싶은 욕구를 가지고 있는 것 같다. 그것이 좋게 발현하면 경쟁에서 상대방을 이기는 계기가 되고 안 좋은 쪽으로 가면 결국 타인에게 피해를 준다. 때로 이기주의와 개인주의를 헷갈리는 것 같다. 개인주의는 미국적 또는 유럽적 사고방식일지도 모른다. 햄버거 세트를 주문하면 내 건 내가 먹고, 너껀 네가 먹고. 감자튀김을 같은 곳에 부어서 먹는 것이 아니라 내 거, 네 거 지키는 것. 이기주의는 같이 먹는 사람은 신경 쓰지 않고 자기 먹고 싶은 대로 먹는 것을 말하겠지.


어제오늘 이곳은 대기의 가스층이 걷혀서 하늘이 아주 맑다. 습도가 없다. 그래서 쨍하고 맑은 날이다. 하지만 해가 있는 곳은 무덥다. 대신 그늘은 시원하다. 오늘은 바람이 많이 분다. 또 비 소식 때문인지 바람이 불어온다. 꼭 가을이 되기 전의 날 같다. 아이폰 4가 나왔을 때만 해도 이렇게 여름이 다 지나갔다고 느끼면 바닷가에 있는 목욕탕을 찾았다. 동네 목욕탕은 아니었다. 소박한 목욕탕은 아니었다. 탕 안에 몸을 담그고 대형 통유리로 밖의 바다를 볼 수 있는 그런 목욕탕이다. 때를 민다는 것보다 그저 탕 안에 몸을 담그고 있다가 몸이 뜨거워지면 다시 나와서 냉탕이 들어가고. 따지고 보면 온탕에 앉아서 흘리는 땀이 고스란히 탕에 스며들었다. 탕 안에 들어온 사람들이 전부 얼굴에 흘리는 땀을 그대로 탕에서 씻었다.


그때는 당연하던 것들이 코로나 이전과 이후로 너무나 바뀌었다. 동네 목욕탕도 운치가 있었지만 바닷가에 있던 그 목욕탕이 좋았다. 여름에 가면 일단 로비가 시원해서 목욕을 하고 나오면 로비에 배치된 덱체어 같은 곳에 앉아 있으면 졸음이 솔솔 왔다. 바나나우유에 꽂은 빨대를 쪽쪽 빨며 졸음과 음료의 그 간극을 느끼며 조는 그 순간이 좋았다. 그때 한창 일큐팔사 1권이 대한민국에 나왔을 때였다. 나는 그 책을 들고 열심히 읽었다. 1권 속에는 하루키의 모든 소설 저변에 깔려 있는 유전자에 대한 이야기와 리틀피플이 나타나는 이야기가 너무나 흥미로웠다. 리틀피플은 어떻게 생겨먹었을까.


덱체어에 앉아서 시원한 에어컨 바람에 바나나우유를 마시고 있는데 누군가 나의 바나나우유를 가져가 버렸다. 이렇게 보니 1미터 정도 되는 인간이 나의 바나나우유를 맛있게도 쪽쪽 빨고 있는 것이다. 나는 너무나 황당해서 야! 하고 소리를 질렀는데 그 소리가 입 밖으로 나오지 않는 것이다. 손으로 입을 만져보니 입이 없어졌다. 나는 리틀피플이야 히히히. 하며 그 작은 인간은 가버렸다. 나는 그 리틀피플을 잡으려고 일어나다가 그만 덱체어에서 넘어지고 말았다. 나는 까무룩 잠이 들었던 것이다. 그 일큐팔사를 지금도 읽고 있다. 지금 읽으면 아마도 7번째? 뭐 그 정도 되는 것 같다.


목욕탕들이 변화를 꾀하고 있다. 코로나가 오기 전부터 동네 목욕탕은 자취를 감추기 시작하더니 코로나로 인해 원흉처럼 되어버린 사우나 시설과 목욕탕은 입지가 더 좁아지더니 이제는 굴뚝 있는 목욕탕은 거의 사라졌다. 목욕탕은 지금 변신을 하고 있다. 나는 코로나가 오기 훨씬 이전부터 목욕탕에 발을 끊었다. 그 전에는 위에서 말한 것처럼 목욕탕을 좋아했다. 조깅을 하고 집에서 샤워를 하기보다 목욕탕에 가서 목욕을 하고 집으로 와서 바로 잠들기도 했고, 여자 친구와 함께 목욕탕에 가서 – 따로 각자 여탕, 남탕에 가서 목욕을 하고 나와서 같이 선지 해장국 한 그릇을 먹는 게 즐거운 일이기도 했다. 그러다가 칼로 두부를 싹둑 자르듯 목욕탕의 발길을 끊었다. 이유는 단순했다.


어느 날 목욕을 하다가 문득 목욕탕에서 보내는 시간이 너무 많다는 것을 알았다. 회귀성이 강한 나 같은 경우는 한 번 갔던 목욕탕에 계속 가다 보니 좀 멀어도 거기에 가서 탕에 들어앉아야 뭔가 기분이 풀리는 느낌이었다. 오가고 하는 시간이 어림잡아 한 시간은 넘어 걸렸고, 목욕탕에 머무르는 시간도 오래 걸렸다. 때를 미는 시간은 금방 끝나는데 온탕 냉탕, 거기에 기포가 보글보글 올라오는 탕에 들어 등과 허벅지에 기초 마사지를 받으며 멍하게 아무 생각도 하지 않고 있는 시간도 삼사십 분이나 되었다.


목욕을 하고 나오면 몸을 말리고 바로 옷을 주섬주섬 입지 않고 폰을 만지작 거린다던가, 양말만 신고 아기마냥 잠든 아저씨들을 한 번 보고, 티브이를 본다던가. 또 목욕탕에는 이발소도 딸려 있었는데 이발사와 홀딱 벗은 채 머리를 맡긴 아버님들의 대화를 엿듣는다던가. 목욕탕에서의 목욕은 할 때보다 목욕이 끝난 다음 전해오는 개운함과 시원함을 느끼는 게 좋아서 내내 그 기분을 만끽했다. 그렇게 목욕을 하고 나오면 두 시간 가까이 지나가 버렸다. 그런 시간에 대한 생각이 전혀 없다가 문득 목욕탕에서 보내는 시간이 너무 길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 뒤로는 정 없는 시어머니처럼 단 한 번도 목욕탕에 가지 않았다. 그리고 몇 년이 지나 코로나가 왔고 오늘에 이르러 목욕탕이라는 곳은 이제 나의 문화권에서는 찾아볼 수 없게 되었다.


목욕탕 주인 입장에서는 자본을 많이 들여 목욕탕을 지었는데 이제 사람들이 찾지 않으니 안타까울 수밖에 없다. 매일 와글와글해야 들어간 비용을 충당할 수 있을 텐데 이젠 그런 영광을 찾기는 어려워졌다. 특히 도심지에서 사무실이 많은 곳에 위치한 건물의 3층이나 4층에 대출을 왕창 받아 목욕탕, 사우나 시설을 만들어 놓은 곳은 나갈 때 철거까지 해야 한다. 밀린 월세에 대출에, 이어받을 사람이 없으니 원래대로 다시 되돌려 놓아야 하는 비용까지 낭패인 것이다. 실로 개인에게는 막대한 좌절을 안겨준다.


목욕탕은 추억의 장소가 되었다. 어제도 라디오에 목욕탕에 대한 사연들이 나왔다. 그 옛날 물 튀기며 논다고 할머니에게 혼났는데, 탕에 나와서 떠든다고 또 그 할머니에게 혼났다는 이야기, 혼나고 그 할머니가 요구르트 준 이야기. 탕 안에서 바가지 두 개를 가지고 수영을 했다는 이야기, 모르는 사람이라도 등을 밀어줬다는 이야기. 아주머니에게 등을 맡기며 아아 아파요,라고 하면 이 정도는 참아야지 으이그 이때 좀 봐라, 라며 있는 힘껏 때를 밀어줬던 이야기. 동네마다 목욕탕이 있었던 르네상스 시절이 있었다.


하찮은 일상이 지나간다. 형태가 있는 것이든, 형태가 없는 것이든 시간이 지나면 변하고 일그러진다. 하찮은 일상 속에 쓰레기가 주차장 가는 샛길에 늘어난다. 이 무더위가 조금 지나면 하찮은 일상 속 쓰레기들이 깨끗하게 치워질 것이다. 앞으로 먼 미래의 하찮은 일상 속에서 예전의 일상 속에는 목욕탕의 추억이 있었지 하며 회상을 할지도 모른다. 그렇게 하찮은 일상이 구름처럼 흘러간다. 단지 구름은 매일 하늘에 떠 있지만 같은 구름은 없다. 하찮은 일상이라도 늘 다르게 흘러간다.


같은 모양이 없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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젓갈은 참 맛있는데 자주 먹어지지 않는다. 젓갈은 염장이 되어 있어서 듬뿍 집어서 마구 먹을 수가 없다. 젓갈을 요만큼 먹으면 밥은 이만큼 떠서 입안에 넣어야 아 맛있구나,라고 느끼게 된다. 요즘 염도가 덜 한 젓갈이 나온다지만 젓갈인데 짠맛 없이 먹을 바에는. 고기를 먹고 말지 고기 맛이 나는 콩 요리를 먹을 바에는.


젓갈은 우리나라에만 있는 음식인 줄 알았는데 옆 나라 미식가인 고로 상이 젓갈을 먹는 것을 보고 아 그렇군, 하게 되었다. 한때 유머 게시판에 어떤 할머니에 대한 이야기가 있었다. 버스 운전을 험하게 모는데 일어서 있던 어떤 할머니가 짐을 꽉 껴안고 아이구 이눔아, 나 젖 터진다, 아이구 운전 좀 살살혀라, 젖터진다.라고 해서 보니 짐 안에 젓갈이 있었다는 이야기다.


오징어젓갈은 정말 맛있어서 밥을 많이 먹게 된다. 또 기묘하지만 이상하게도 라면에 더 잘 어울리는 것 같다. 라면도 짜고, 오징어젓갈도 짠데 짠 거와 짠 게 만났는데 짜게 느껴지지 않는다. 거기에 혹 해서 먹다 보면 어느새 오징어젓갈도 이만큼 먹고 라면도 다 먹어 버린다.


젓갈은 좀 슬픈 음식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오래전 논과 밭에서 농사를 지어서 밥을 먹던 조상들이 곡물로만 식사를 먹으니 너무 한 것이다. 그래서 장을 담그기 시작했다. 장에 찍어 먹고 비벼 먹으니 쌀과 보리가 그나마 잘 들어갔다. 그러다가 어패류 같은 음식은 냉장 시설이 없으니 염장을 해서 담그기 시작한 것이다.


그러니까 젓갈이라는 음식은 살기 위해서 생존을 위해서 탄생된 음식인 것이다. 염장해 놓으면 숙성되는 그 과정에 소금이 균이 발생하는 것과 음식이 부패하는 것을 막아준다. 그러면서 맛도 좋아진다. 그러다 보니 동남아 지역의 여러 나라들이 이렇게 염장을 해서 음식을 먹는 방법이 발전을 했다.


디저트로 먹는 음식이 아니라 생존에 밀접하게 관련된 음식이 젓갈인 것이다. 우리나라 젓갈의 최초 문헌은 ‘삼국사기’에 나타나 있다. 그리고 조선시대에 이르러 다양한 젓갈의 종류와 담는 방법이 기록이 되어 있다고 한다. 세종실록 지리지, 산림경제 등 많은 문헌에 기록되어 있다.


생각해보면 만약 전기가 몇 달 동안 들어오지 않는다고 했을 때 사람들은 우왕좌왕 엄청난 패닉 상태에 빠질 것이다. 이 무더운 날 많은 음식들이 상하고 부패한다. 그럴 때 염장한 젓갈 만한 음식이 없다. 그런 음식이 실은 사람의 목숨을 살리게 된다. 일본 영화 ‘서바이벌 패밀리’를 보면 일본 전역에 정전사태가 벌어지고 정전이 몇 달간 이어지면서 주인공들이 살아남기 위해서 먹는 음식은 염장을 한 음식뿐이다. 이 영화감독의 다른 영화들도 재미있다. ‘로봇 G’ 같은 영화들.


국수에 후루룩 비벼 먹어도 맛있는 음식이 오징어젓갈이다. 어디에도 다 잘 어울리는 음식을 한 마디로 말하자면 ‘축복’이다. 하지만 요즘은 나도 그렇고 잘 찾아 먹지 않는다. 짜고 매운 음식은 요즘 사람들은 많이들 피하게 된다. 하지만 가끔씩 먹을 때는 맛있게 먹는다. 맛있게 많이 먹으면 살찌지만 또 그만큼 열심히 조깅을 해주면 된다. 그런 단순한 반복이 하루를 견디고 받아들이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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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습함, 이 무더움. 그래서 달리기 좋아


나는 책을 매일 읽는 편이고, 그러다 보니 책을 많이 읽는 편이다. 대부분이 카페에서 음료를 마시며 편안 의자에 앉아서 책 읽는 것에 반해 나는 좀 불편하게 책을 읽는 편이다. 주로 이동할 때, 또는 바쁠 때 그 사이사이 틈을 벌려 읽는 게 잘 읽힌다. 여름에는 집 앞이 바닷가이니 오전에 옷을 훌러덩 벗어 버리고 해변에 앉아서 책을 좀 읽는다. 그때가 가장 집중이 잘 된다. 책을 읽고 나면 대체로 다 잊어버리는데 여름의 오전에 해변에서 읽었던 부분은 꽤 기억 속에서 오래 자리 잡고 있다. 책은 나의 하찮은 일상을 좀 더 입체적으로 만들어주기 때문에 포기할 수 없다. 나를 잘 알지 못하는 사람들은 피부가 까맣고 매일 조깅을 하기 때문인지 어떤지 몰라도 책에 대한 이야기를 하면 깜짝 놀라는 사람도 있다.


일상은 어제와 별반 다를 바 없고 올해 여름은 지난여름과도 전혀 다르지 않다. 아주 하찮고 하찮게 흘러간다. 그래서 싫으냐 한다면 아니라고 말할 수 있다. 하찮은 일상이 좋은 이유는 더 이상 나빠질 일이 없기 때문에 작은 변화나 조그만 좋은 일에도 크게 기뻐할 수 있는 요지가 있다. 빨강머리 앤 소설을 좋아하는데, 앤과는 다른 이유로 하찮은 일상이 좋다. 앤은 아침에 눈을 떠 오늘은 또 어떤 일이 나를 기다리고 있을까 같은 기대에 차 있지만 나는 전혀 그렇지 않다. 기대가 없다. 내일도 크게 오늘과 다를 바 없을 테고. 그러다가 작은 변화에 허덕이거나 기뻐하거나 한다. 그렇기에 새벽 호텔 수영장의 수면처럼 잔잔한 일상이 나는 좋다. 그러다 보니 책을 읽는 일상도 하찮은 나의 일상이 되었다.


책을 아주 많이 읽는 사람은 시간이 남아도는 사람이거나, 그쪽 계통의 일을 하거나, 딱히 친구가 없는 사람일 경우가 많지 않을까 싶다. 저는 아닌데요?라고 한다면 할 수 없지만. 나의 경우를 보면 친구가 없다. 친구들이 있지만 친구가 없다. 친구들을 만나서 이야기하며 노는 것보다 책을 읽는 게 훨씬 재미있어서 책을 택했다. 책은 어떻든 혼자 읽는 것이고 시간을 내야 한다. 그래서 책을 많이 읽는 사람은 친구가 그렇게 많지 않을 것이다. 또 책을 많이 읽는 사람이 그쪽 계통의 일을 하지 않는다면 할 일이 없는 사람일지도 모른다.


책도 중독 같은 것이라 재미를 붙이면 계속 찾게 된다. 특히 소설 속 이야기에 매료가 되면 걷잡을 수가 없다. 그럴지 않을까. 책을 매일 읽고 있으니까 옆에서 책을 많이 읽으면 글을 잘 쓸 수 있냐고 하는데, 글쎄다. 변호사들은 책을 정말 많이 본다. 의사들도 그렇고, 또 건축사들도 책을 많이 봐야 한다. 그렇다고 해서 그들이 전부 글을 잘 쓰는 건 아니다. 그러나 글을 잘 쓰는 사람들 중에 대부분이 책을 많이 읽었기 때문에 무시할 수는 없는 규칙일지도 모른다. 그렇다고 해서 책일 읽는 것과 글을 잘 쓰는 것이 관계가 있는 것인지는 잘 모르겠다.


독서광들과 나의 차이점은 그들은 다독을 하고 나는 읽었던 책을 자꾸 읽는 편이다. 인스타그램에도, 블로그에도 한 달에 전투적으로 읽은 책들을 정리해서 올려놓은 사람들이 있다. 그런 사람을 보면 역시 대단하다는 생각이 든다. 한 달에 스무 권을 어떻게 읽을 수 있을까. 회사에서 일을 하고, 아이들을 키우는 엄마의 경우 그게 정말 가능이나 할까 하는 생각이 들지만 책벌레들은 가능하다. 읽은 책의 내용을 잘 리뷰해서 정리까지 해 놓는다.


책을 많이 읽어서 좋은 점이라면 다른 곳에 돈을 쓰지 않아도 된다. 또 장소에 크게 구애받지 않고 읽을 수 있다. 강변 같은 벤치에 앉아서 읽어도 된다. 책을 읽고 있으면 그 누구도 이상하게 보지 않는다. 강변의 모습은 매일 조깅을 하면서 매일 담는다. 매일 비슷한 강변인데 매일 다르다. 여기는 폭우가 내리지 않아서 습하고 무더운 나날들의 연속이다. 여름이니까 각오해!라고 자연이 단단히 상기시키는 것 같다. 이런 습하고 무더운 날에 조깅을 하고 나면 땀이 나지 않는 곳이 없다. 신체의 모든 부분에서 땀이 나온다.


윗 지방에서 폭우가 내려 사람들이 실종되고 사망하기까지 했다. 그 와중에 비가 와서 사진이 잘 나왔으면 하고 말한 정치인이 있었다. 이런 사람도 정치인이 되기까지 책도 많이 읽었을 것이다. 물론 읽지 않았을 수도 있지만 정치인으로 오르기까지는 아마도 여러 권 책을 읽었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봉사활동을 나간 자리에서 그런 말을 한다는 건 타인에 대한 공감능력이나 인지하는 능력이 전혀 없는 사람이다. 게다가 그 자리에서 정치인들은 모여서 여성 신발 사이즈가 크면 어떻니, 나 의원님 못 본 사이에  나잇값 어쩌고. 하며 희희낙락하고 있다가 한 주민이 짐 실은 차가 못 들어온다면서, 여기서 길 막고 뭐하냐고. 큰 소리로 항의를 하기도 했다. 이런 사람들이 책을 적게 읽었을까. 책을 적게 읽어서 타인에 대한 공감을 전혀 하지 못하고 생사가 오가는 현장에서도 헤헤거리고 있을까.


독서는 좋은 습관이나 책을 맹신하는 건 바보 같은 일이라고 생각한다. 책만 보고 사랑을 못해본 사람이 사랑에 대해서 이야기를 한다던가, 책만 읽고 인간관계를 다 아는 것처럼 말을 한다던가. 오히려 전투적으로 책을 읽는 사람들의 성격이 날카로운 모습을 많이 봤다. 읽어야 하는 양을 채우지 못했을 때 화를 낸다. 대체로 방해를 하는 사람들은 가족 내지는 가장 가까이 있는 사람들이라 더 화가 난다. 그래서 책은 그저 술렁술렁 손을 뻗어서 잡히는 대로 읽을 수 있다면 좋다고 생각한다. 문득문득 책을 많이 읽는 것에 대한 생각을 한다. 특히 나 같은 경우는 머리가 너무 나빠서 읽고 나면 까먹고 만다. 올리버 색스의 ‘의식의 강’도 꽤 여러 번 읽어서 몇 개는 기억이 나는 정도다.


책 속에 파묻혀 지내다 세상을 떠난 이어령 작가(라고 하겠다. 많은 호칭이 있지만 작가라고 불리기를 바라지 않았을까 싶다)에 대한 일화를 하나 말하며 끝내자. 이어령 작가는 1990년에 초대 문화부 장관까지 역임했다. 원래는 문공부 장관을 제의받았는데 문화 쪽은 알겠지만 공보행정에 관한 일은 모르니 싫다고 했다. 그랬는데 문화부와 공보처가 분리되면서 문화부 장관을 역임했다. 64년에 ‘무진기행’의 김승옥 문단에 나타나서 대한민국의 문학에는 일대 파란이 일어났다. 김승옥의 모든 단편소설은 승승장구였다. 그러다가 1980년 518 광주 민주화운동이 일어난다. 그때 김승옥은 그만 충격에 절필을 선언하게 된다.


하지만 그게 너무나 아까웠던 이어령 작가가 김승옥을 붙잡아서 호텔에 넣어서 제발 소설을 써라, 장편 소설 연재하던 것을 계속 쓰자, 응?라고 소설 쓰기를 강요와 부탁을 오가며 했다. 거기서 김승옥이 쓰던 소설이 ‘서울의 달빛’ 연작이었다. 그런데 김승옥은 광주에서 일어난 사태를 보며 도저히 앉아서 글을 쓸 수 없었다. 그래서 원래 1장, 2장, 3장 죽 이어져야 하는데 절필을 하는 바람에 단편 소설 ‘서울의 달빛 0장’이 탄생하게 되었다.


이어령 작가는 죽기 직전까지 책을 읽고 글을 썼다고 한다. 책을 많이 읽는 모든 사람들이 이어령 작가 같을 수는 없지만 위에서 말한 정치인 같은 사람은 되지 말아야지 하는 생각 정도를 하지 않을까 싶다. 이어령 작가의 마지막 말 “너무 아름다웠어요. 고마웠어요”라고 우리에게 말했는데 그건 우리가 하고 싶은 말이다.

비가 내리는 날에도 운동 중이신 어르신들 귀여우셔


러브크래프트의 소설 속에 나올 법한 기묘한 빛의 색감



요즘 달리면 온통 땀 벅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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잉크냄새 2022-08-14 13:4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책을 읽고 나면 대체로 다 잊어버리는데>... 참 공감되는 부분입니다.
가끔 다 잊어버리는데 ˝왜 책을 읽지?˝ 싶은 생각이 들기도 합니다.

교관 2022-08-15 11:43   좋아요 0 | URL
잊어버리기는 해도 잃어버리지는 않으니까 계속 우리 읽어요 ㅎㅎ
 


이 세상에서 계란이 없어지면 나는 어떻게 살지?라고 생각할 인간이 있다면 그게 나다. 매일 먹는 음식이 계란이고 계란의 변신은 식탁 위의 모습까지 변화시킨다. 정말 계란이 없어지면 큰일 나지 않을까.


미국의 코미디 영화를 보면 근육질의 주인공이 아침에 일어나면 계란을 10개 정도 그대로 꿀꺽꿀꺽 먹는다. 또 노래대회가 있을 때 노래를 부르기 전에 날계란을 먹기도 한다. 삶은 달걀은 식사 대용으로 먹는다. 나는 매일 점심을 삶은 계란으로 먹는다. 그러나 삶은 계란은 뭐니 뭐니 해도 기차에서 사이다와 함께 먹는 맛이 있다. 마녀 1에서 김다미가 먹었던 것처럼.


계란말이는 도시락의 추억을 고스란히 살려준다. 요즘은 술안주로 당당하게 한 자리를 차지한다. 계란말이는 맛도 좋은데 다른 안주에 비해 저렴하기까지 하다. 또 계란찜은 감기가 걸렸을 때 좋다. 오므라이스는 쉬워 보이지만 계란지단을 만드는 것도 경험치가 필요하다.


이런 계란이 세상에서 없어지면 정말 난리가 난다. 계란은 과자나 아이스크림이나 빵에 반드시 들어간다. 계란이 들어가지 않고서는 이런 음식은 나올 수가 없다. 박찬일 요리사의 말을 빌리면 계란이 인간사에 들어옴으로써 요리의 신기원이 열렸다고 했다. 프랑스 요리에서 사람들을 감탄하게 하는 크렘 브뤨레 슈크림, 커스터드로 넣은 샌드가 노른자의 마력이라면, 한없이 부풀어 올라 미식의 허영을 충족시켜주는 수플레, 중독성 강한 마카롱 같은 과자는 흰자의 변신으로 가능해졌다고 한다.


요즘은 보지 않지만 예전의 ‘맛있는 녀석들’에서 계란 특집을 한 적이 있었는데 그때 네 녀석의 요리를 해준 요리사들은 계란으로 마법을 부렸다. 계란의 변신은 정말 무궁무진했다. 이런 계란이 2017년에 한 번 위협을 받은 적이 있었다. 계란 파동으로 인해 가격이 자꾸 올라갔었다.


무방비로 배고플 때 계란 프라이 냄새가 아파트 복도에 퍼질 때만큼 좋은 냄새가 없다. 계란 프라이 맛을 알고 있기에 그 냄새가 더 위장을 쥐어짜게 한다. 집에서 스크램블을 만들면 맥주와 함께 마신다. 입에서 부드럽게 녹아내리면서 계란의 맛있음도 입 안 가득 퍼질 때, 그때 맥주를 한 모금 마신다.


스크램블을 만들 때 흰자가 보이지 않게 만들기도 하고, 프라이를 하면서 휘휘 저어서 흰자와 노른자가 반반씩 보이게 굽는다. 이때는 버터로 구우면 아주 맛있다. 역시 맥주를 부른다. 맥주도 모든 음식에 어울리고, 계란도 모든 술에 어울리니 이만큼 궁합 좋은 것도 없다. 요즘처럼 더울 때 실컷 달린 다음 스크램블과 맥주 한 잔이면 시원하게 보낼 수 있다.

쿠테타마 녀석 ㅋ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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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tella.K 2022-08-13 18:2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계란처럼 가성비 좋은 식재료도 없죠.
학창시절 계란말이 하나면 부잣집 자제처럼 인식되었던 시절도 있었죠.
근데 나이 드니까 별로 안 먹게 되더군요.
10개 먹기를 거의 한달 걸려 먹기도 합니다.ㅋ
맨 마지막 사진은 장식 인형인가요?

교관 2022-08-14 11:55   좋아요 0 | URL
운동 후에 간단하게 단백질 섭취 할 수 있는 계란이 최고!! ㅋㅋ

마지막은 쿠테타마라고 너무 유명한데욤 ㅋㅋ
 



컵라면에 폴폴 끓인 닭 육수를 부어서 먹은 건 군대 있을 때부터였다. 군인일 때니까 뭘 먹어도 맛있고, 컵라면은 언제나 맛있었지만 닭 육수를 부어서 컵라면을 먹어보고는 이렇게 맛있다니! 하면서 먹었다. 선임이 되었을 때 컵라면 회식을 하면 내무반 아이들에게 전부 그렇게 컵라면을 끓여서 먹게 했던 적이 있었다. 인기가 좋아서 기분도 좋았지만 선임이 되었어도 귀찮은 일은 내가 해야 했다.


왜냐하면 그때 피엑스 병이기도 했는데 컵라면 물 받는 대형 찜통기 안에 닭 두 마리의 다리에 실을 묶어서 물에 퐁당 담가 놓으면 푹 삶기면서 육수가 우려 나는데 그 뒷정리는 이상하지만 짬밥이 짠, 경험이 있는 나만 할 수 있었다. 경험이 없고 짬이 안 찬 쫄다구들에게 뒷정리를 시켰다가는 찜통기가 고장이 나기도 하고. 푹 삶긴 닭을 건져 올릴 때도 요령이 있어야 했다. 요령 없이 그냥 건져 올리다가는 푹 삶긴 닭이 그대로 풍덩 빠지고 만다. 그럼 맙소사가 된다.


이렇게 찜통기에 닭을 우려내서 뜨거운 물을 끓이면 컵라면을 먹을 때 스프를 다 부을 필요도 없다. 한 시간 정도만 폴폴 끓여도 육수가 우려 나기 때문에 실을 살살 잡아당기면 푹 삶긴 닭이 ‘에?’ 하는 모습으로 딸려 올라온다. 닭은 살을 발라내어서 컵라면 안에 찢어서 넣는다. 아주 맛있다. 그럴 수밖에 없다. 그게 인기를 타고 중대장들도 줄을 서서 닭 육수 컵라면을 해 달라고 했다.


군대 이야기고, 중대장 하니까 요즘 정말 재미있게 본 드라마 ‘신병’의 중대장이 생각난다. 장삐쭈의 원작 만화를 극화한 것이다. 몇 해 전부터 3일에 두 편 정도의 영화를 보는 편인데 요 근래의 영화들은 영 마음에 들지 않았다. 제일 마지막에 본 영화가 ‘미니언즈 2‘였는데 이 영화는 정말 보면서 소리 내어서 웃었다. 그 전에는 프레데터가 1700년대 서부개척시대로 가서 인디언 소녀와 결투하는 이야기 ‘프레이’였는데 새삼 속 터지고 답답하고 갑갑한 영화는 실로 오랜만이었다. 주원 주연의 ‘카터’도 액션은 멋지나 스토리가 너무. 아무튼 영화는 성공할 확률이 50 대 50인데 비해 드라마는 대부분 성공을 한다. 이번 신병 시즌 2까지 급물살을 타듯 보게 된다.


드라마 ‘신병’은 대한민국에서 군대를 다녀온 남자라면, 아니 군대를 다녀오지 않았어도 그냥 재미있게 볼 수 있다. 몰입도가 120프로다. 장삐쭈 원작 만화 속 캐릭터 싱크로율이 어쩜 이렇게 완벽할 수가 있을까 싶다. 특히 시즌 2에 등장한 성윤모는 만화 속 폐급 캐릭터를 그대로 실사화한 것 같았다. 민폐로 친다면 최고가 아닌가. 세상 비굴하고 아무것도 모르는 바보 천지 고문관인 척 지내는 성윤모의 만행이 드러나는 공중전화 장면은 진짜 보는 이들의 주먹을 꽈아아아악 쥐게 만들었다.


영원히 고문관으로 군 생활 편하게 할 것만 같았던 폐급 성윤모에게 중대장이 내지르는 한 마디 한 마디는 샤우팅의 시원함을 그대로 우리에게 전달해 주었다. 중대장의 이 멋진 샤우팅이 뭔가 억압되고 꽉 막혔던 모든 일반 병들의 고충을 한꺼번에 날려 주는 것 같았다. 드라마 ‘신병’을 보면서 이렇게 시원할 수가 있나. 성윤모 이 새끼 밖에서 범죄 저지르고 군대로 도피했다가 결국 형사 입건된다. 그 폐급의 절정을 볼 수 있다. 성윤모 역을 한 배우부터 배우들이 정말 원작 속 인물인 것만 같아서, 우리나라에 정말 잘 알지 못하는 연기 천재들이 많구나, 하게 된다. 드라마 ‘신병’에는 정말 다양한, 아주 다양한 캐릭터들이 등장한다. 정말 최고다. 내가 군 생활할 때 중대장들은 같은 군인이 아니라 일반인에 속했다. 나는 구치소에서 군 생활을 했고, 국방부가 아닌 법무부 소속으로, 중대장들은 구치소에 출퇴근을 하는 일반 공무원들이다. 재미있다고 생각이 되는 건 그들도 군생활을 거쳤을 텐데 우리가 해 먹는 컵라면, 소시지, 음료에 타서 마시는 술, 같은 것들에 환장을 했다. 하지만 나이가 많은 중대장이나 소대장들은 그러지 않았는데 40대나 젊은 소대장은 밤샘 근무할 때면 늘 우리와 함께 술을 마셨다.


군인들이 무식할 것 같아도 기발한 아이디어가 많다. 일단 하지 않으면 큰일 나기 때문이기도 하고, 또 졸병 때부터 늘 하다 보니 짬밥이 차면 그게 경험치가 되어서 뭔가를 해도 기발하다. 요컨대 제복을 수선해서 입는다든지, 군화를 교묘하게 리폼한다든지. 구치소니까 사방에 올라가는 영치품 중에 소시지가 많은데 친하게 지내는 재소자들에게 소시지를 얻어와서 물에 삶아서 먹어도 맛있지만 겨울에 칼집을 내어서 난로 위에서 빙글빙글 돌려서 먹는 맛이 좋다. 물론 컵라면에 넣어서 먹어도 맛있다.


찜통의 닭 육수는 금방 바닥이 드러난다. 맛있게 컵라면을 먹을 수 있지만 찜통을 깨끗하게 씻어야 하는 후처리는 힘이 들지만 내가 해야 했다. 그게 몹시 귀찮았다. 집에서 닭 한 마리를 마늘을 엄청 때려 넣고 끓이면 맛있는 육수가 나온다. 팔팔 끓여서 컵라면에 부어서 먹으면 맛있다. 닭은 죽죽 찢어서 같이 넣어서 먹는다. 이렇게 하면 아이들도, 외국인도, 어른도 맛있게 먹는다. 맛있게 많이 먹으면 모다? 살은 찐다.




장삐쭈 원작, 드라마 신병에서 샤우팅으로 성윤모를 일갈하는 중대장 https://youtu.be/tm9L39fgSPw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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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tella.K 2022-08-11 15:4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와, 정말 맛있겠습니다. 저희 집은 닭볶음탕은 먹어도
닭곰탕은 안 좋아하는지라 먹을 기회가 없죠.
저는 좋아하는데 가족들이 안 좋아해서…ㅠ
군대 때 좋은 선임이셨나 봅니다.
한번이라도 같이 먹었던 사람들은 두고두고 교관님 말 할 것 같습니다.
신병이 재밌나요? 1편 앞에 조금 보다 말았는데…
지금은 뭐 우영우가 대세라. 나중에 함 챙겨봐야겠군요.
참, 오래 전에 이경규가 닭으로 만든 라면을 만들어 출시했는데
지금도 있나 모르겠어요. 스프요.
근데 역시 푹 우려낸 것만 같겠습니까?
혹시 부대 앞에서 장사하실 생각은 없으신지요? ㅋ 농담입니다.

교관 2022-08-12 11:31   좋아요 1 | URL
군대 이야기는 대체로 다 재미있는 거 같아요 ㅋㅋ 디피도 그렇고, 푸른거탑 시리즈도 그렇고, 드라마로 나오는 건 참 재미있는데 웃긴 건, 군대 이야기는 거의 부대에서 사고 치고, 잘못하고, 비리 같은 내용이 잔뜩 나오는데 또 군대에서 촬영을 하게 해 주고요 ㅋㅋ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