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등학교 때 같은 반 친구 중에 수업시간에 꼭 손을 들고 화장실에 가고 싶다고 하는 놈이 있었다. 그 녀석은 수업시간에 화장실에 가서 변기에 앉아서 볼일을 보면서 생라면을 부셔 먹었다. 그래서 그 녀석 별명이 멀티였다. 야이 새끼야 왜 똥 싸면서 생라면을 먹고 그래 더럽게.


그 녀석은 모두가 수업을 들을 때 혼자서 자유를 느끼는 순간이 바로 변기에 앉아서 생라면을 먹는 순간이라고 했다. 더럽다고 하지만 그저 따로 할 뿐이지 누구나 다 똥 싸고 밥 먹잖아. 나는 그걸 동시에 하는 것뿐이야. 동시에 먹으면 시간도 절약되고 말이지. 게다가 묘한 쾌감 같은 게 느껴진다고 했다.


이런 변태 새끼. 그 녀석은 변태 새끼라는 말을 들어도 낄낄거리며 너도 한 번 그런 쾌감을 느껴봐라 중독되면 계속하게 돼.


그 녀석은 합기도 3단으로 운동을 아주 좋아하는 녀석이었다. 몸도 좋고 운동이라면 다 잘하는 그런 부류의 녀석이었다. 그런데 그 녀석은 겁이 참 많았다. 사람은 겁내지 않았는데 귀신같은 초자연, 초현실 같은 것에 겁을 먹었다.


자율학습시간에 녀석이 내 자리 앞에 앉았다. 어쩌다 보니 그 녀석에게 호러 이야기를 하나 해주었다. 가출해서 바닷가의 한 여인숙에서 한 방에 지내게 된 여자의 이야기. 물론 막 지어내서 했다. 폭우가 내려 숙박시설이 만실이어서 비가 그칠 때까지 한 여자와 작은 여인숙의 한 방에 잠시 같이 있게 되었다.


그 여자는 큰 가방을 가지고 다녔는데 여자가 음료를 사러 밖으로 나간 사이에 같이 가출을 한 친구 중에 한 명이 가방을 열었는데 큰 비닐봉지가 튀어나왔다. 봉지를 푸니 이상한 썩은 피 냄새가 방안에 확 퍼졌다. 비닐 속에는 아기의 시신이 토막이 나 있었다.


그때 그 녀석이 너무 놀란 나머지 자율학습 시간이었는데 으악 하며 소리를 지르더니 의자에서 바닥으로 넘어진 것이다. 물론 그때 내가 웍 하며 점프 스퀘어를 하기도 했는데 그렇게 놀라리라고는 생각하지 못했다. 덕분에 당직인 물리에게 들켜 복도에서 벌을 섰다. 그리고 그 녀석이 놀라면서 내 팔을 얼마나 세게 꽉 잡았던지 멍이 들었다.


벌을 서면서도 바지 주머니가 약간 볼록 한 것이 비닐봉지 소리가 났다. 똥 싸면서 먹다 남은 생라면이었다. 씩 웃으며 주머니에서 생라면을 꺼내서 물리에게 들키기 잔에 재빠르게 입에 넣고 녹여 먹었다. 극한의 긴장으로 먹는 생라면은 꽤나 스릴 있는 맛이었다.


생라면 참 좋아했던 그 녀석은 잘 지내고 있겠지. 며칠 전에 오랜만에 생라면을 뿌셔 먹었다. 그 녀석 생각이 확 났다. 생라면은 우걱우걱 씹어먹는 맛도 있지만 입에서 살살 녹여 먹는 맛 또한 좋다. 녹여 먹으려면 일단 환경에 영향을 받아야 한다. 그저 무방비 상태인 곳 - 집이나, 길거리, 사무실 같은 방해가 없는 곳에서 먹는 생라면은 그저 씹어 먹을 수밖에 없다.


하지만 학교 수업시간이나, 자율학습을 할 때는 소리를 내며 씹어 먹을 수 없다. 살살 녹여 먹어야 한다. 스프가 침에 의해 녹으면서 입 안에 있는 생라면 사이사이에 스며들어 꽤나 맛도 좋다. 생라면을 입 안에서 녹여 먹는 건 극장이 최고였다. 특히 예전에 극장 안에서 파는 팝콘이나 음료만 반입되는 시기에 생라면은 극장 안에 가지고 갈 수 없다.


그래서 팝콘 통에 생라면을 뿌셔 넣고 음료 대신 거기에 맥주를 부어서 맨 뒷자리 맨 구석 자리에서 생라면을 살살 녹여 먹으며 맥주를 홀짝거리고 영화를 보면 아주 재미있다. 그럴 수밖에 없다. 재미있을 수밖에 없지 않은가. 그런 스킬이 쌓이면 일반 라면에서 짜파게티로 넘어가게 된다. 짜파게티로 생라면으로 먹는 맛이 참 좋다.


생라면으로 라면을 먹으면 스프가 남는다. 스프는 마요네즈처럼 모든 음식에 다 잘 어울린다. 그냥 밥 위에 뿌려 먹어도 되고, 빵에 뿌려 먹어도 맛있다. 대학 때 빙 둘러앉아 술을 마실 때 안주가 떨어지면 과자 대신 어김없이 생라면이었다. 처음에는 에이 안주가 이게 뭐야 하지만 금방 동이 난다.


생라면을 오물오물 먹고 있으면 예전으로 잠시 돌아간 기분이 든다. 생라면은 어른이 되면 잘 먹지 않는다. 맥주 안주에 생라면이 좋은데 안주 머 먹을래?라고 묻기에 생라면이라고 말하면 대체로 에이, 라는 반응이다. 고요한 밤에 싸구려 와인을 홀짝이며 생라면을 우두둑 씹어 먹는 소리가 있는데 그 소리가 적막 사이의 틈을 파고들어 리듬을 탄다.


생각해보면 주위가 온통 적막 속에 있었던 적이 언제였던가 싶다. 하지만 오늘 아침에는 바닷가에서 책을 좀 읽었다. 8월이 되고 모처럼 해가 쨍쨍하게 떴다. 8월 내내 흐리거나 비가 오락가락하거나 날씨가 애꿎었다. 습도가 없어서 해가 떠 있으면 쨍하다.


맑고 뜨거운 태양빛을 받을 수 있다. 바닷가에는 다른 소음을 들리지 않고 잔잔한 파도 소리와 갈매기가 우는 소리만 들린다. 이런 날 책을 좀 읽으면 집중이 잘 된다. 소설 속에 퐁당 빠져버린 것 같다. 옆에 생라면이 있었다면 참 좋을 텐데 하는 생각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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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차장 샛길에 너저분하게 깔려 있던 쓰레기들이 싹 사라졌다. 쓰레기가 없으니 주차장 샛길이 갓 알에서 부화한 새끼 새 같았다. 깨끗하고 아직 세상이 뭔지 모르는 새끼 새 마냥 귀엽게 보였다. 샛길은 한 사람이 지나갈 정도의 넓이이며 맞은편에서 사람이 온다면 서로 몸을 돌려 비스듬히 지나쳐야 한다.


폭염이었을 때 한 달 가까이 이 샛길에 쓰레기가 하나둘씩 떨어지더니 며칠 전까지 아주 더러웠다. 사진을 찍으려 하다가 그만두었다. 사진은 기록을 하지만 상상을 방해한다. 쓰레기는 사람이 오가는 횟수가 적은 곳에도 늘어난다.


쓰레기라는 건 생각해보면 벌어들이는 돈이 평소보다 적어도, 움직이는 활동량이 적어도 나오는 쓰레기 양은 언제나 비슷하다. 한 건물에 가게가 5군데가 있을 때 나오는 쓰레기 양과 두 군데의 가게가 나가고 비었어도 나오는 쓰레기 양은 비슷하다. 쓰레기는 그런 것이다.


10명이 뱉어내는 쓰레기 양과 5명이 쏟아내는 쓰레기 양이 비슷하다. 크게 차이가 나지 않는다. 쓰레기란 그런 것이다. 그런 것을 생각하면 쓰레기 섬이 한반도 만하다는 말에 수긍이 간다.


얼마 전에 인도의 공포영화 구울을 봤고, 레지던트 이블 시리즈 중 넷플릭스 바이오 하자드 더 시리즈로 나온 것도 봤는데, 괴물들이 잔뜩 나오고, 구울이 나오고, 사람을 잡아 뜯어먹고, 개에 물려 혈액이 마구 변형을 하고. 무서운 공포영화인데 그 속을 잘 벌리면 이 지구상에 가장 무서운 건 바로 인간이더란 말이다.


쓰레기가 그런 것처럼 인간도 그렇다. 근간에 아기가 운다고 비행기에서, 아이가 시끄럽다고 기차에서 난동을 부린 사람을 봐도 그렇고 인간이 가장 무섭고 쓰레기 같다. 이 둘을 합치면 바로 ‘인간쓰레기’가 된다. 어제는 일하는 건물의 번영회 회장이 탄원서를 해 달라며 직접 오지 않고 밑의 직원이 왔다.


간단히 말하자면 회장은 건물에 세든 세입자들과 전부 등을 돌리고 적으로 몰고 있으면서 뭔가 일이 터지면 세입자들에게 탄원서 같은 걸 구걸한다. 하지만 직접 오지 않는다. 이미 회장과 같이 일했던 사무실 직원들과 기계실 직원들이 몇 번이나 바뀌었다. 갑질, 슈퍼갑질에 치를 떨며 나갔다. 여름에 마지막으로 대리가 견디지 못하고 나가고 말았다.


그리고 나는 천장의 물이 새는 건으로 5시간이나 회장이 실장을 불러서 로비에서 소리를 치고 욕을 하는 것을 들었다. 녹음을 하다가 그냥 지워버렸다. 5분 정도 하면 되는 말을 어째서 5시간이나 할 수 있을까. 2시간은 그냥 차렷 자세로 큰 소리로 욕을 하는 것이고 3시간은 천장에 새는 물을 공사하면서 욕을 했다.


나는 저녁에 건물을 나왔기에 5시간이라 말하지만 실은 내가 건물에서 나오고 난 후에 아마도 밤 10시까지 지속되었을 것이다. 실장에게 욕을 하며 했던 말을 간추리면 여기 세입자들에게 잘해줄 필요가 없다, 는 말이었다. 세입자들과는 싸우더라도 친하게 지낼 필요가 없다고 말하는 회장이 관리비 문제로 4층의 어느 사무실 문을 따고 들어갔다가 그 세입자가 주거침입으로 고발을 한 모양이었다.


그런 문제로 탄원서를 써 달라고 찾아왔다. 매번 그렇다. 벌써 몇 년 전 이야기지만 일 잘하던 수더분하던 기계실 직원의 정강이를 발로 차며 욕을 하던 모습이 떠오른다. 그는 참고 견디며 일을 하다가 결국 떠나고 말았다.


탄원서를 받으러 왔던 여직원은 나에게 설명을 하는 와중에 어떤 사람에게 전화를 받았는데 아마 회장과 무슨 문제로 인해 싸우는 사람이 회장에게 연락이 되지 않아 여직원에게 전화를 한 모양이었다. 처음에는 여직원도 저는 그 부분은 잘 모른다, 회장님과 어쩌고 하더니 왜 저에게 소리를 지르냐,며 복도로 나가서 전화를 한참이나 받더니 들어왔는데 지옥 같은 매일을 보내고 있는 모양이었다. 전화를 받는 동안 탄원서를 훑어봤더니 회장과 사무실 직원들만 탄원서를 작성했다.


그래서 내가 하고 싶은 말은 무엇일까. 나는 왜 이런 곳에 징징 거리며 일기 같은 글을 쓸까. 인간쓰레기는 주위에 늘 도사리고 있다는 것이다. 심각한 꼰대처럼 타인의 말을 듣지 않고 공감능력이 제로이며 자신이 하는 말이 옳다며 했던 말을 계속하는 인간쓰레기. 그런 사람은 이상하지만 권력도 쥐고 있다. 그래서 주위의 사람들이 쉽게 덤벼들지도 못한다.


모처럼 만에 주차장 샛길에 쓰레기가 싹 없어졌다. 인간쓰레기도 많지만 인간이 더 많기 때문에 인간들 속에 숨어서 살아가려면 쓰레기는 될 수 있으면 쓰레기통에 버리도록 해야겠다.



오늘의 선곡은 내용과 너무 어울리지 않지만 노랫말이 너무 예쁜 김광석의 '너에게' 로이 킴 버전으로 https://youtu.be/Y-u7KBjJdww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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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은 사람들이 너무 힘들다고 합니다. 그런 이야기를 많이 듣습니다. 그리고 그 말이 진실되게 들립니다. 정말 힘들어서 자신도 모르게 탄식처럼 힘들어 죽겠다는 말이 튀어나오는 것 같습니다. 생계에 타격을 받은 사람은 그것대로 힘들고, 육아에 지친 사람은 그것이 힘들고, 매일 반복되는 하루가 지겹고 앞이 보이지 않는 사람은 그게 힘듭니다.


저요? 저라고 뭐 별 거 있겠습니까. 별반 다르지 않습니다. 살얼음판을 걷는 기분이지요. 살얼음판을 겨우 건너고 나면 또 다른 살얼음판을 걸어야 합니다. 조금 덜 두껍거나 더 두껍다 뿐이지 한 번 깨지면 그대로 왕창 무너져 내려갑니다. 그것을 알기에 매일 불안합니다.


개인이 힘들어도 사회가 부흥하고 정부나 국가가 탄탄하다면 희망을 가지고 영차영차 힘을 낼 텐데, 사람들의 마음속 희망이라는 것이 소멸해 버린 것 같습니다. 70년대 초반 영상을 보면, 오래된 티비 같은 영상을 보면 뉴스의 한 기자가 길거리로 나가서 리어카를 끌며 장사를 하는 아주머니에게 요즘 살기가 어떻냐고 물으니 불경기라 힘들다는 말을 합니다.


불경기라는 말은 년대를 막론하고 늘 그런 것 같습니다. 단지 그때는 몸이 너무 힘들어서 살기가 힘들다는 말이 나오는 것처럼 보였습니다. 요즘은 몸도 힘들지만 보고 느끼는 모든 것이 정신을 무너트려서 더 힘이 든 것 같습니다.


현실은 힘듭니다. 어른이 되면 매일이 힘들어서 하루를 견디며 매일을 보내게 됩니다. 그러다 보면 옛 추억에 젖어 들어 기억을 계속 재생하기도 합니다. 어린 시절은 온통 행복의 꽃으로 만발해있어서 어렸을 때를 기억하며 행복해합니다. 왜 현실은 힘든데 기억 속은 언제나 행복하기만 할까요.


어린 시절의 기억은 올바른 기억일까요. 가끔 어릴 때 기억 속 친구와 이야기를 하면 같은 장소에서 같은 재미로 보냈지만 서로 다른 기억을 공유하고 있습니다. 내 기억이 옳다고 우기기도 합니다. 어제 먹은 점심은 잘 기억이 나지 않는데 오래전, 어린 시절의 기억은 생생합니다. 참 이상도 하지요.


시간이 오래 지날수록 기억이 생생한 것은 기억에 대한 사실을 나의 행복에 맞게 긴 시간 동안 계속 변형하고 왜곡시켜 현실이 힘들면 힘들수록 어린 시절의 기억은 행복합니다. 다시 돌아갈 수 있을까. 그럴 일은 절대 일어날 수 없기 때문에 우리는 추억 속의 나는 행복한 얼굴을 하고 있는 것으로 기억을 만들어 갑니다. 그리하여 영화는 끊임없이 타임루프를 하고, 타임머신을 타고 과거로 가거나 시간을 되돌리는 이야기가 많습니다.


시대를 막론하고 이렇게 힘든 현실은 과연 진짜일까요? 물론 진짜라는 걸 부정하려는 건 아닙니다. 행복은 대체로 추상적인 반면에 힘든 건 세세하고 명료하고 정확합니다. 사람들은 진실을 믿고 싶어 합니다. 하지만 진실을 믿는 것이 아니라 진실을 향한 자신의 그 마음을 믿어 버립니다. 그래서 진실이란 늘 모호하고 부정확합니다.


처음에 말했던, 요즘 너무 힘들다고 느끼는 건 내가 살고 있는 이 현실이 어쩌면 진짜가 아니라 가짜라서 그럴지도 모릅니다. 가짜라는 걸 깨닫지 못하는 겁니다. 설사 가짜라는 걸 알아도 진실을 바라는 그 마음이 가짜에서 머무르기를 바랍니다. 진실보다는 진실을 향한 그 마음을 믿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진실을 믿고 싶어 하지만 진실을 바라는 그 마음이 잘못된 방향으로 가버린다면 그게 진실이라고 믿어 버립니다.


느닷없이 밤의 바람이 시원해졌습니다. 바람에서 풀냄새가 납니다. 쑥 냄새에 가까운 냄새가 바람에 섞여 납니다. 잠이 잘 올 것 같습니다. 이런 날은 잠이 들면 꿈을 꿉니다. 꿈을 꾸는 그곳이 현실이고 지금 이곳이 그저 꿈이었으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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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8월 16일, 화요일) 배철수의 음캠을 듣는데 휴가를 떠난 배철수 디제이 대신 디제이를 보는 자우림의 김윤아가 청취자의 신청곡을 틀었다. 초등학교 5학년의 신청곡입니다. 샘 스미스의 스테이 윗 미.라고 하는 것이다. 속으로 아니 무슨 초딩이 벌써,라고 했다가 생각해보니 나도 초딩시절부터 가요보다는 팝을 많이 들었다.


생각해보니 그랬다. 내가 처음 접한 팝은 아바의 노래였고 용돈을 있는 대로 끌어 모아 아바의 앨범 한 장을 구입해서 닳고 닳도록 들었다. 그럴 수밖에 없었다고 생각한다. 초등학생이 유행을 따라가고 음악적 취향은 집 안의 누나나 형이 그 유행을 어딘가에서 끌어당겨와서 자연스럽게 막내에게도 스며들게 되어 있다.


하지만 나는 내 위로 형이나 누나가 없었다. 내 친구들은 전부, 싹 다, 거짓말하지 않고 두 살 터울의 누나가 있었다. 그녀들은 고작 두 살 차이가 남에도 불구하고 우리를 마치 어린놈의 자식처럼 대했고 학교에서 유행하는 가요와 패션을 고집했다. 자연스럽게 친구들은 그런 영향을 받지 않을 수 없었다. 실제와 티브이 속 유행이 비슷하게 흘러가는 것이다.


그러나 나는 그런 답습이 어려웠다. 나의 방향은 자연스럽게 버스정류장과 다운타운에 있는 레코드 가게에서 흘러나오는 팝에 꽂혔다. 그건 물이 위에서 아래로 흘러가듯 자연스러운 현상이었다. 되도록 덜 질릴 수 있는 노래, 한 번 듣고 바로 버리지 않을 수 있는 노래, 될 수 있으면 혼자서 즐길 수 있는 노래에 마음과 신경이 갈 수밖에 없었다.


중학생이 되면서 음악 감상실에 들어가서 좋아하는 팝을 들었다. 비교적 밖에서 보다 많이 들을 수 있었지만 실컷 들을 수는 없었다. 어떤 디제이는 팝가수에 대한 가십도 이야기해주었다. 그들은 아마도 임진모, 박은석 같은 음악평론가가 칼럼을 기고한 것을 읽고 와서 거기에 약간의 살을 붙여서 이야기를 해 주었다. 그런 이야기를 듣는 게 학교에서 수업을 듣는 것보다 백배는 재미있었다. 요컨대 곤센 로즈의 엑슬 로즈가 이번에도 호텔에서 묵고 있는데 팬들이 찾아오니까 2층에서 1층으로 의자를 집어던졌다고 합니다. 같은 이야기들.


그러다 보니 닥치는 대로 팝을 들었다. 일단 가사 내용을 모르니까 리듬이 좋으면 질리지 않고 들을 수 있었다. 꼭 반항아 기질이 있어서 그렇다기보다 주로 록음악이 많았다. 세바스찬 바가 있던 스키드 로우, 메탈리카의 메탈리카 앨범, 데프 레파드, 건스 앤 로지즈, 본 조비의 여러 앨범, 노 다웃, 오비츄어리, 바쏘리, 미스터 빅 등. 하지만 나탈리 임부룰리아, 조지 마이클, 브라이언 아담스 같은 앨범도 많이 들었다. 우리나라 밴드는 없을까 하면서 듣다 보니 블랙홀의 앨범도 좋고, 시나위의 앨범도 좋았다. 블랙홀이나 시나위의 이야기는 차차 하기로 하자.


강력한 록을 하는데 거기에 얼굴까지 잘생긴 밴드가 많았다. 신데렐라가 그랬고(작년인가 기타리스트였던 제프 라버가 58세의 나이로 죽었다. 밴드 멤버가 죽으면 그렇듯이 사망원이 밝혀지지 않고 있다고만 기사를 내보낸다), 포이즌도 그랬다. 좌아아아알 생겼다. 머틀리 크루의 뒤를 잇는다는 밴드였는데 머틀리 크루도 잘생겼다고 할 수 있다. 지구에서 제일 골 때리는 악동, 정말 상상 이상의 짓을 많이 했던 머틀리 크루도 이제는 할아버지 대열에 끼게 되어서 아쉽다. 머틀리 크루의 영화 '더 더트'가 있는데 꼭 보자. 음악 영화가 많은데 이 영화가 제일 골 때리고, 제일 이상하고, 제일 재미있음. 머틀리 크루의 드러머 토미 리가 엄청난 비주얼인데 여자들도 굉장했음. 영화를 보면 엘튼 존의 영화처럼 다 까발려준다.


밴드 넬슨 역시 얼굴이 어우 잘생겼다. 넬슨은 단지 얼굴로 먹고 산다는 말이 있었지만 이미 아버지 때문에 10살 때부터 쌍둥이들이 기타와 베이스, 드럼을 연주했다. 본조비의 존 본조비 역시 얼굴이 끝내줬다. 노래 부르다가 밑의 입술을 지그시 깨물고 윙크를 살며시 하면 관객들은 그저 죽어 넘어갔다. 또 역시 얼굴 하면 스키드 로우의 세바스찬 바가 있다. 190이 넘는 피지컬로 목이 터져라 내지르며 록을 하는 모습은 뭔가 신성하기까지 했다. 그리고 미스터 빅의 에릭 마틴도 잘생겼다.


개인적인 생각이지만 세바스찬 바의 조각 같은 얼굴보다 에릭 마틴의 소년 같은 얼굴이 나는 좋았다. 에릭 마틴의 얼굴은 꼭 케이트 블란쳇의 소년 버전처럼 보이기도 하고, 노래를 부를 때 얼굴에 장난기가 발동하는 모습도 재미있다. 에릭 마틴의 이 목소리가 정말 좋다. 에릭 마틴의 이력을 보면 재미있는 게 하나가 보이는데, 에릭 마틴은 60년 생인데 70년부터 85년까지 ‘에릭 마틴 밴드’를 했다. 그러니까 10살부터 밴드를 했다는 말일까. 그래서 그런지 지금의 목소리도 예전과 거의 다르지 않다. 허스키 하면서 맑고 뻥 뚫려있는, 그런 목소리로 록을 한다. 정말 매력적인 목소리다.


미스터 빅의 드러머 팻 토페이는 2018년에 안타깝지만 세상을 떠나고 말았다. 당시의 록밴드는 일본에서 대체로 사랑을 받았다. 미스터 빅도 그랬다. 엄청난 인기였다고 한다. 영상을 찾아보면 빌리 시한이 드릴 기를 들고 기타 연주를 하는 모습도 볼 수 있다. 에릭 마틴이 져스트 텍 마이 하트~할 때 그 표정은 은유가 가득한 것 같아서 좋다.


이런 음악적 시끄러움과 난잡하지만 흥미 있는 이야기가 어렸던 나의 몸과 마음을 대체로 꽉 움켜쥐었다. 친구들은 좋았지만 어울릴 수 없는 부분은 포기하고 받아들였다. 그때부터 친구들과 뭔가를 하다가 맞지 않으면 그것대로 받아들였다. 괜히 고집부리고 말을 해봐야 어차피 시간낭비라는 걸 알아버렸다. 미스터 빅이 중국에서는 ‘대선생악대’라고 불린단다. 미스터 빅, 이 앨범의 ‘데디, 브러더, 러버, 리틀 보이’가 좋은데 제일 유명한 ‘투 비 위드 유’를 들어보자. 에릭 마틴의 얼굴이 블랏쳇과 닮았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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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tella.K 2022-08-18 13:1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대선생악대! 대단하네요 ㅋㅋㅋ 저도 가요보단 팝송을 좋아했죠. K 팝이 저 때도 인기를 끌었다면 팝송을 들었을까 의문스럽기도하고 그래서 요즘 아이들은 팝송을 안 들을까 싶기도 해요. 저는 조하문이 이끌었던 마그마란 밴드 좋아했어요. 그양반 지금은 목사님 됐지만. ㅋ

교관 2022-08-19 11:58   좋아요 0 | URL
제가 요즘 중고생들, 특히 여학생들과 자주 접하는데요, 팝 많이 들어요 ㅋㅋㅋ 주말씨(위캔드), 찰리 푸스 - 찰리 푸스는 이번에 방탄의 정국과 같이 노래도 부르고, 앤 마리는 뭐 떼창수준이고요. 예전이나 지금이나 비슷한 거 같아요

잉크냄새 2022-08-18 15:46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전 미스터 빅의 wild world를 좋아했는데,대학 시절 동인천 뒷골목 라이브 카페에서 주로 들었어요. 무명의 듀엣 남자 그룹이었는데 담배연기 자욱한 무대 바로 앞에서 귀가 얼얼하도록 들었죠.
졸업하고 나중에 직장 다닐때 동인천 대화재가 발생해 많은 학생이 죽었죠. 그때 문이 잠겨 학생들이 나오지 못한 라이브 카페가 바로 그 곳인데 학생들이 죽은 장소가 저 무대 앞, 제가 술 마시며 노래 듣던 자리였어요.
이런 저런 이유로 참 잊히지 않는 곡이 되었네요.

교관 2022-08-19 11:59   좋아요 0 | URL
와일드 월드 좋죠 ㅎㅎ. 이 곡도 리메이크 곡인데. 노래로 옛 추억이 생생한 기억으로 떠오르고. 노래란 노래를 감싸고 있는 여러 가지 은유가 있네요.
 

요맘때 먹는 요맘때


부라보콘 같지만 같지 않은 슈퍼콘


요맘때와 슈퍼콘을 처음 먹어봤다. 뭐 다 그렇겠지만 아주 맛있다. 마파람에 게눈 감추듯(이게 맞나? 찾아봄 – 마파람이 아니라 맞바람이 아닌가 싶었는데 마파람이다. 마파람은 남풍이라고 한다. 마파람의 ‘마’는 ‘마주 보다’의 의미로 집을 등지고 섰을 때 불어오는 바람을 마파람이라고 한다. 마파람의 반대말? 은 된바람이다. 된바람은 북풍인데 마파람을 마주 맞을 정도로 바람의 세기가 역한 반면에 북풍은 세게 분다는 의미라고 한다. 그래서 겨울바람이 아주 차갑고 세게 불어서 붙은 이름이라고 한다. 높바람이라고 불린다) 먹어 치웠다.


슈퍼콘은 부라보콘의 바리에이션인데 슈퍼콘의 종류만도 5가지나 된다. 거기에 부라보콘은 6종류, 월드콘 역시 4종류인가 그렇다. 사진에서 보는 것처럼 크기가 그렇게 크지 않다. 어릴 때 부라보콘은 큰 아이스크림에 속했는데 시간이 야속해.


이런 아이스크림, 아이스크림이라는 말이 어울리는 이런 콘 종류나 투게더 아이스크림은 어쩐지 겨울에 더 어울리는 것 같다. 겨울에 목욕을 하고 집으로 와서 이불을 덮고 퍼먹는 투게더는 정말 맛있었지. 거기에 부라보콘까지 먹으면 정말 행복한 밤이었다. 투게더는 1974년에 탄생했다. 빙그레의 투게더는 미국의 퍼모스트 맥킨사(라고 검색을 하면 바로 빙그레 투게더가 나옴)와 제휴해서 만들어졌다고 한다. 재미있게도 2020년 매출액 기분으로 한국에서 가장 많이 팔린 아이스크림이 투게더라고 한다.


그런데 이 투게더보다 더 오래된 아이스크림이 바로 해태 부라보콘이다. 그 유명한 노래 ‘해태 부라보콘’은 1970년에 나왔다고 한다. 슈퍼콘은 빙그레 제품이지만 부라보콘의 바리에이션 정도로 보면 되겠다. 아무튼 거의 신경 쓰지 않고 있다가 가끔 생각이 나서 편의점이나 근처 슈퍼에 가서 아이스크림을 사려고 하면 입이 다물어지지 않을 정도로 많은 종류의 아이스크림을 볼 수 있다. 일 년에 한두 번 정도 먹으니 정보가 없어 뭘 먹을지 몰라 이것저것 주워 담아 오곤 한다.


투게더나 콘 종류의 아이스크림은 식빵과도 잘 어울린다. 또는 바게트 안에 빡빡 욱여넣어서 먹어도 맛있다. 많이 먹게 되고 먹고 나면 후회한다. 상상 이상으로 먹게 되니 다 먹고 나면 아 이런 제길, 하게 된다.


겨울에 이불에 몸을 폭 넣어서 투게더를 떠먹으며 어두운 밤하늘의 별을 보며 이야기를 하는 건 새빨간 거짓말이고 티브이를 보며 동생과 누가누가 더 많이 퍼먹나 내기를 하다가 엄마에게 혼나고 내일 먹어라, 하며 다시 냉장고에 들어가는 모습을 봤던. 여름에는 이런 콘 종류나 아이스크림보다는 쮸쮸바가 제격이다. 쮸쮸바의 꼭지를 물어뜯어 물을 쪽 빼먹은 다음 본격적으로 내용물을 공략하는 전법은 누가 가르쳐주지도 않았는데 자연스럽게 터득하게 된다. 마치 바지를 입으려면 먼저 팬티를 입는 것처럼 누가 가르쳐주지 않아도 알게 된다. 세상에는 그런 것들이 있다.


딸기 맛이 나는 쮸쮸바를 빨고 있으면 무더운 여름의 땡볕 아래에서도 견딜만했다. 대야에 물을 받아 놓고 그 안에 들어가서 쮸쮸바를 빨아먹는 재미 또한 어떠했을까. 더위에 대야 속의 물이 미지근해도 상관없었다. 이야기 잘하는 녀석이 해주는 무서운 이야기를 들으면 시원하게 보낼 수 있었다. 물이 찰방 한 대야에 몸을 담그고 쮸쮸바를 먹으며 무서운 이야기를 듣는 건 여름을 잘 보내는 3종 세트다. 그날 저녁에는 꼭 일기를 썼다. 쮸쮸바가 여름에 더욱 잘 어울리는 건 손에 쥐고 있기 때문에 손의 온도와 쮸쮸바의 냉기가 서로 만나서 공유를 한다. 손바닥의 열기는 딱딱하고 얼어붙은 쮸쮸바로 옮겨가서 조금씩 녹이고 쮸쮸바의 냉기는 뜨거운 손바닥을 시원하게 해 주었다. 그래서 쮸쮸바는 다른 아이스크림에 비해 다 먹을 때쯤에는 더욱 아쉬웠다.


비비빅은 작년에 먹었는데 역시 역사가 오래되었다. 껍데기에도 쓰여있지만 1975년에 탄생했다. 외국 친구는 아니 왜 팥을 열려서 먹으려고 그래! 라면서 비비빅을 이상하게 보지만 막상 먹어보면 또 달라진다. 음, 오물오물, 음, 와우. 모친은 비비빅에 무슨 원수를 졌는지 오늘도 비비빅을 냉장고에 가득 사 넣어 놨다. 비비빅이 냉장고에 많다면 비비빅을 부셔서 우유를 붓고 얼음과 인절미 쪼가리와 함께 빙수를 만들어 먹으면 맛있다. 거짓말 좀 보태서 팥빙수 맛과 똑같다.


요맘때는 참 이름도 잘 지었다. 요맘때 먹는 요맘때. 맛도 있다. 아니 맛있다. 한 번에 세 개를 먹어야 할 것 같다. 양도 작고 몇 번만에 없어지는 흠결을 가지고 있어서 한 번에 몇 개는 먹어야 할 것 같은데 참는다. 아이스크림은 꼭 희극과 같다. 멀리서 볼 때 보이는 그 희극. 아주 잠깐의 행복을 느끼고 어느 순간 그 행복은 사라지고 만다. 행복이란 길게 느끼기보다 잠깐이지만 자주 느끼는 게 낫다고 아이스크림 따위가 말해주고 있다.


이 죽일 놈의 비비비비비비비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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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tella.K 2022-08-17 19:3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런데 쌍쌍바는 잘 모르시나 봅니다. 두 개가 한몸으로 붙어있어
둘로 쪼개 먹는 맛이 있었죠. 그래서 너 하나, 나 하나 먹는 맛.
줄 사람 없으면 다 먹어도 좋고.
바밤바와 아맛나란 바도 있었죠.ㅎ
암튼 저런 아이스크림들이 지금도 나와준다는 게 고마울 때가 있어요.
옛날 생각도 막 나고. 흐흑~

교관 2022-08-18 11:26   좋아요 0 | URL
ㅋㅋㅋ 글의 맥락 상 저 정도에서 종류는 끝을 내는 게 맞을 듯요 ㅋㅋ. 쌍쌍바에 대해서 한 번 멋지게 에세이 적어 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