별을 바라보는 아이들



한 계절이 죽어 갑니다. 계절이 죽어가면서 공허가 조금 깊어졌습니다. 이 공허라는 건 설명이 불가능합니다. 내 몸속에 무엇이 있지만 아무것도 없고, 너무나 어둡고 컴컴해서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데 하얗게 빛이 보입니다.


아무것도 하기 싫고 할 수도 없습니다. 그저 허무한 마음이 둥둥 떠다니는 것만 같습니다. 당신은 그런 공허를 느껴본 적이 있습니까. 지난번 계절이 죽어갈 때 들었던 공허보다 좀 더 크고, 깊고, 끈적하고, 짙어졌습니다. 앞으로 몇 번의 죽어가는 계절을 볼 수 있을까요.


이 세상에 형태가 있는 것이든, 형태가 없는 것이든 태어나는 순간 죽어갑니다. 죽지 않으려면 태어나지 말아야 합니다. 하지만 계절은 비록 죽어갈지라도 때가 되면 태어나는 것을 두려워하지 않습니다. 그리고 죽습니다. 그리도 태어납니다. 이것을 저는 ‘영원’이라고 부릅니다.


태어나서 죽지 않고 사는 게 영원이 아니라 죽음을 알고 태어나고 죽어가는 걸 반복하는 것이 영원이라고 생각합니다. 사실 이 세상에 ‘영원’이나 ‘절대’는 존재하지 않습니다. 그래서 섣불리 해서는 안 되는 말입니다. 영원히 사랑한다는 말이나, 절대로 헤어지지 말자고 하는 말은 쉽게 내뱉으면 안 되는 말입니다. 왜냐하면 좋아했던 그 이유가 헤어지는 이유가 되는 게 우리 인간이니까 말입니다.


오늘 대기의 가스층이 걷혀 깔끔한 밤하늘이었습니다. 불순물이 껴 있지 않은, 아주 검은색에 가까운 밤하늘을 봤습니다. 그리고 별을 봤습니다. 별이 마치 당신의 작고 예쁜 귀에 걸린 귀걸이처럼 반짝거렸습니다. 별을 보면 김환기 화백의 ‘어디서 무엇이 되어 다시 만나랴’라는 그림이 떠오릅니다. 그림 속 수백만 개의 작은 점들은 별입니다.


그중에서 김환기 화백이 진하게 찍어 놓은 점이 있습니다. 그 점을 그릴 떼 아마도 김환기 화백의 벗에 대한 그리움이 가장 크지 않았나 싶습니다. 김환기 화백은 70년대 초반 몸이 너무 아파서 그림을 그릴 수 없었습니다. 의사의 권유로 수술을 받았습니다.


수술을 받지 않으면 그림을 더 이상 그릴 수 없다는 소리를 듣습니다. 그래서 수술을 받고 회복하는 중에 침대에서 떨어져 죽음을 맞이한 것으로 저는 압니다. 그런 김환기 화백이 친구인 김광섭 시인의 시 ‘저녁에’를 보고 ‘어디서 무엇이 되어 다시 만나랴’라는 그림을 그리게 됩니다.


김광섭 시인은 김환기 화백보다 10살 정도 많습니다. 요즘에는 잘 쓰지 않는 단어 ‘벗’이라든가 ‘동무’ 같은 말들이 이름처럼 친근하게 들렸던 때입니다. 김광섭 시인은 독립운동가이기도 한데 말년에 미국에 있었습니다. 몸이 좋지 않았던 시인은 밤하늘의 별을 보며 벗들을 그리워합니다.


그리고 ‘저녁에’라는 시를 씁니다. [저렇게 많은 별들 중에 저 별 하나가 나를 내려본다. 이렇게 많은 사람 중에 저 별 하나를 올려본다. 중략. 이렇게 정다운 너 하나 나하나는 어디서 무엇이 되어 다시 만나랴] 김환기 화백은 벗인 김광섭 시인의 ‘저녁에’를 보고 그림을 그렸습니다.


그렇게 70년대에서 잊혔던 이 소중한 이야기는 80년대에 유심초라는 그룹이 그림과 같은 제목으로 노래를 불렀습니다. 예술가들이 마음 깊이 새겼던 밤하늘의 그 별을 오늘 저는 봤습니다. 별이 당신의 귀걸이처럼 반짝일 때마다 저는 당신을 그리워합니다. 이 죽어가는 계절 앞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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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심한 사과가 한동안 여러 곳에서 이슈몰이를 하고 있다. 댓글로 사람들의 이목을 끌었던 이 화재거리는 유명인들이나 방송에서도 다루면서 수면 위로 솟아올랐다. 어쩌다 ‘마음의 표현 정도가 매우 깊고 간절한 심심한’이 ‘하는 일이 없어 지루하고 재미가 없는 심심한’과 글자가 똑같아서 사람들은 찾아보는 귀찮음 따위 하지 않고 생각을 걸러버리지 않고 그대로 뱉어내게 되었다.


곤충의 ‘변태’라는 말, 이 변태는 생물의 변화로 metamorphosi의 의미를 가지고 있다. 이 말은 변형이라는 말이다. 하지만 ‘성적으로 비정상적인 행동을 하는 사람’의 ‘변태’와 같아서 요즘은 ‘탈바꿈’으로 부른다고 한다. 완전 탈바꿈, 불완전 탈바꿈으로 바뀌고 있다고 한다. 완전 탈바꿈하는 곤충과 불완전 탈바꿈하는 곤충은 어떻게 다르게?라고 옆에 있는 사람에게 물어보면 다 알고 있는 사실인데 또 잘 모른다. 글의 맥락에서는 멀어졌지만 잠시 이야기를 하자면 나비처럼 애벌에서 번데기 상태를 거쳐 완전하게 그 모양이 변하는 곤충을 완전 탈바꿈 곤충이고, 매미처럼 번데기 상태 없이 모양의 변화가 없이 껍데기를 두고 그 안에서 똑같은 모습으로 탈바꿈하는 곤충을 불완전 탈바꿈 곤충이다. 뭐 아무튼 변태라는 말은 곤충의 세계에서 줄곧 사용하다가 어감이 이상해서 탈바꿈으로 바뀌고 있다.


며칠 전에 후배와 이야기를 하다가 마트에서 장을 보고 있는데 옆에 한 아이와 아이의 엄마가 물건을 고르는데 음료수 병에 붙은 깨알 같은 글씨를 전부 읽어 보고 물건을 고르고 있다면서, 아니 그걸 왜 읽어요? 그냥 사 먹으면 되는데?라고 하는 것이다. 물건을 고를 때 읽으라고 써 놓은 건 한 번쯤은 좀 읽자. 읽어보면 내가 원하는 물건에 어느 정도 근접할 수 있다.


오렌지주스나 포도주스 같은 경우 생과일이 90% 이상인가? 95%인가? 아니면 완전히 전부 과일로 주스를 만들어야 병 껍데기에 과일 사진을 사용할 수 있다. 그걸 아는가? 그런데 당장 마트에 가서 주스 코너를 가 보자. 아마 전부 과일 사진이 붙어 있을 것이다. 하지만 과즙 착향 머시기 색소로 음료를 만든 주스는 그림으로 되어 있는데 사진과 그림의 구분이 거의 어렵다. 그래서 붙어있는 글자를 읽어 보면 된다. 그러면 이 주스는 과일이 몇 %가 들어가서 과일주스로 쓰였고, 또 몇 %가 되지 않아서 그저 음료?로 아마 쓰여 있을 것이다. 왜 이렇게 애매하게 구분을 해놨냐 하면 좀 쉽게 말해서 환경부와 식약청 같은 곳에서 서로 일하기를 떠밀어서 그렇다.


요즘 알코올이 없는 맥주가 인기다. 마시면 정말 맥주와 똑! 같! 다! 정말 신기하고, 참 신기하다. 그래서 알코올이 없으니 실컷 맥주처럼 마시고 운전을 해도 된다. 그런데 무알콜,라고 써 놓은 맥주가 있고, 논알코올, 비알코올,라고 써 놓은 맥주가 있다. 이게 다 같으냐 하면 다르다. 역시 맥주에 붙어있는 라벨을 잘 읽어 보면 의미를 알 수 있다.


좀 더 나아가면 우리가 마시는 생수. 생수도 완전한 그저 샘물이 있고 음료로 분리된 것도 있다. 딱 들어서 보면 완전히 그냥 물인데 어떤 회사에서 나온 생수는 그저 H2O이고 어떤 생수는 또 음료로 구분되어 있다. 뭐 둘 다 인체에 크게 다른 영향은 주지 않겠지만 온전한 지하수를 끌어올려 병에 담은 물과 어떤 과정을 여러 번 거쳐 뭔가를 넣어서(나쁜 게 아님) 유해한 성분을 제거한 물은 음료로 구분된다. 이 또한 환경부와 식약청에서 따로 검사를 하는 걸로 알고 있다. 식약청은 워낙에 하는 일이 많아서 그런지 인간이 먹고 죽지 않으면 다 음식으로 인정해준다고 예전부터 사람들이 떠들고 다녔다.


마트에서 아이의 엄마가 음료를 꼼꼼하게 고르는 이유는 아마도 아이가 먹는 음식이기에 그랬을 것이다. 후배처럼 그저 나 하나야 뭐, 하는 사람이라면 보통 그렇게 마트에서 구입하는 음식에 꼼꼼하지는 않을 것이다. 어감이 읽는 사람의 마음을 상하게 하는 ‘심심한'을 사용했다고 해서 욕을 먹을 이유도 없지만 이제는 이런 문제 하나하나가 전부 수면 위로 떠올라 사람들의 관심의 대상이 되고 있어서 재미있기도 한다.


일드 ‘오! 마이. 보스! 사랑은 별책으로’에서처럼 아주 까다로운 편집장 호라이 레이코 같은 편집장이 쪼랩 신참 스즈키에게 “너 내일은 오렌지 주스로 오전 10시에 가져와”라고 하니, 스즈키가 매일 이런 잔 심부름이나 하는 자신을 한탄하면서 다음 날 마트에서 오렌지 주스를 사 가지고 호라이가 출근하는 길에 딱 줬는데, 호라이가 스즈키를 편집장실로 부르더니 “누가 오렌지 음료를 사 오라고 했어! 오렌지 주스를 가져와야지! 너 이따위로 일을 하면서 이 바닥에서 살아남을 것 같아!”라고 하는 것이다. 스즈키는 안 그래도 짜증 나는데 그게 다 그거지! 그 오렌지 주스가 그 오렌지 주스지! 하며 냉장고에 가득 사 넣었던 오렌지 음료를 전부 꺼내서 편집장의 얼굴에 부었다. 아 그런데 피부가 민감한 편집장의 얼굴이 울긋불긋하더니 느닷없이 피부에 수포가 생기고 점점 커지더니 수포가 퍽 터지면서 아임 언데드. 으,,, 스,,, 즈,,, 키,, 유다희,,, 라면서.


최근 몇 달 동안 마요네즈에 미쳐서 계속 먹다 보니 아 이래선 안 되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마요를 먹으면서 이게 왜 이렇게 맛있지? 하면서 마요네즈에는 뭐가 들어있는지 첨가물을 본 적이 있다. 정말 심정이 복잡해졌다. 대두유부터 난황액, 난백액, 향신료 조제품, 복합 조미식품-당류, 식염, 향신료, 단백 가수분해물, EDTA, 향미유, 포도당, 효소제제, 간장 믹스 등 아무튼 엄청났다. 이에 대해서 ‘마요네즈에 미쳐서’라는 글을 한 번 쓴 적이 있었다.


그래서 하고 싶은 말은 글을 읽을 줄 알면 돈이 드는 것도 아닌데 한 번쯤 읽어보자. 심심한 위로의 뜻도 한 번 읽어보고, 마트에서 물품 라벨에 붙어 있는 글도 한 번 읽어보고. 버스에 붙은 광고도 한 번 읽어보고, 걸어 다니다가 식당이나 가게 간판도 한 번 읽어보고, 건물 앞에 있는 조형의 설명도 한 번 읽어보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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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렌스 스티븐 라우리, 1958, Industrial Landscape를 그려봄


매일 눈뜨면 좀비 같은 몰골로 시간에 맞춰 전철을 타야 하고 꽉 끼는 듯한 조여옴과 사람 냄새를 참아가며 회사에 도착해서 정신없이 오전 근무를 하고 나면 짤막한 점심시간에 허겁지겁 밥을 먹고 다시 오후 업무에, 직장상사에게 깨지고 퇴근 후에 부장을 씹으며 소주를 털어 넣다가 차 시간이 다 되어서 땀을 흘리며 겨우겨우 막차를 집어타고 집으로 와서 씻자마자 잠이 든다. 그리고 눈을 뜨면 어제와 똑같은 오늘의 반복.


또 한국 회사에서 일하는 외국인들이 놀랐다는 이야기도 들을 수 있다. 새벽 4시까지 술을 마시고 집에 5시가 넘어 들어가서도 오전 출근 시간에 칼같이 나와서 아무렇지 않게 열심히 일하는 모습에 놀라는 외국인들.


보통 티브이나 영화에서 회사원들은 이렇게 비쳤다. 똑같은 업무를 매일 반복적으로 보다 보니 인생의 허무를 느끼고 통렬한 결락에 의해 회사를 뛰쳐나와 자기 하고픈 일을 하여 성공을 한 케이스는 또 여러 프로그램에서 소개가 되었다. 하지만 회사원 모두가 이런 생각을 하지는 않을 것이다. 자신이 속한 집단에 대한 애착과 뿌듯함은 가장 작은 단위 ‘가정’에서부터 우리는 익혔다. 우영우 역시 그 뿌듯함을 느끼며 마지막을 장식했다.


한때 회사원이 사람들의 선망의 대상이 되었던 적이 있었다. 지금의 크리에이터처럼 말이다. 90년대 사람들이 기를 쓰고 공부를 해서 들어가고 싶어 하던 회사는 ‘미생’이나 ‘무한도전’에서 정 과장이 있었던 무슨 무슨 상사 같은 회사였다. 당시에는 모두가 들어가고 싶어 하는 회사였다. 야근이 많았고 점심시간과 야근이 끝나고도 회사원들은 자기 계발을 위해 배우고 싶은 학원에서 영어회화나 취미 활동을 열심히 했다. 하루가 촘촘한 인도인 머리카락처럼 빽빽했다.


회사원들은 본인의 하루 일과가, 루틴의 반복이라는 것을 알고 있다. 그래서 그 사이를 벌려서 하고 싶은 것들을 해야 했다. 운동을 했고, 책을 읽었다. 책을 읽는 것과 운동을 하는 것은 시간이 날 때 할 수 있는 것들이 아니다. 시간을 내서 해야 한다. 그래서 회사원들은 근성이 강하다. 근성이라는 말이 언젠가부터 조금 호러블 한 의미로 쓰였지만 근성만 있는 놈이 근성도 없는 놈보다는 낫다. 회사원들이 시간을 내서, 시간을 들여 공연을 보지 않고, 음악을 듣지 않고, 극장에 가지 않고 미술관에 가지 않으면 예술과 문화는 망가진다.


더 나아가 문화와 예술에 종사라는 작가들은 굶어 죽을지도 모른다. 제 아무리 글을 잘 쓴다고 한들 사람들이 책을 사보지 않으면 굶어 죽는다. 음악을 아무리 잘 만들어도 듣지 않으면 역시 굶어 죽는다. 회사원들이 빽빽한 루틴으로 한 달을 열심히 보낸 후에 받은 월급으로 문화의 1선에서 활동한다. 회사원들이 여러 권의 책을 구입해서 읽고 그 책이 마음에 들면 사진과 함께 짤막한 코멘트를 sns에 올린다. 그 정보는 파도처럼 퍼져나간다.


우리나라 사람들이 독서를 하지 않는다는 이야기는 어제오늘의 말이 아니다. 그런데 2016년 돈가? 아무튼 대한민국은 전 세계에서 출판 7위다. 어마어마한 책을 만들어 내고 있고 또 소화를 하고 있다는 말이다. 내 주위를 둘러봐라. 책을 읽는 인간이 거의 없다. 그런데 어떻게 이렇게 출판을 많이 할까. 그건 바로 책을 좋아하는 회사원들이 월급을 타면 읽고 싶은 책을 왕창 구매하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매달 수많은 책벌레 회사원들이 문화의 일선에서 책을 왕창 구입해서 읽고 그것을 공유한다. 그렇기 때문에 작가들이 수면 위로 떠오를 수 있는 것이다. 그건 시스템은 지금도 여전하고 앞으로도 유효할 것이다.


노래도 마찬가지다. 노래를 만드는, 일종의 독특하고 천재 소리를 듣는 뮤지션이라는 사람들이 일반 대중을 무시하는 듯한, 음악을 창작하는 것은 엄청난 일이기에 일반 대중은 카피, 오마주, 레퍼런스 같은 의미를 알지 못하니까 표절이라고 시시비비를 따지지 말라고 하는 언행은 올바르지 않다. 정치인들도 대중의 지지율 2, 3%에 공약이 파기되거나 숨거나 싹싹 비는데. 음악인들끼리 하는 말을 대중을 상대로 하는 곳에서 무시하듯 하지 말라는 말이다.


회사원들이 아니었다면 지금의 대한민국도 없지 않았나 싶다. 1세대 회사원들이 일주일에 6일씩 일을 했기에 이 작은 나라에 선박을 만들어 수출하는 나라가 되었다. 또 자동차를 만드는 회사가 몇 군데나 있다. 이건 어떻게 봐도 너무 신기한 일이다. 또 포털 사이트 역시 몇 개나 가지고 있는 나라가 있을까. 휴대전화를 만들어서 꾸준하게 세계적으로 팔고 있는 회사도 한국에 있다.


이 모든 게 회사원들이 아니었으면 해 낼 수 없는 일이었다. 나라가 발전을 하는 것은 대통령 한 사람이 노력을 한다고 해서 될 문제도 아니고, 정치인 몇 명이서 외국에 나가서 홍보를 한다고 될 문제도 아니다. 먹고살기 힘든 시기에 문화예술은 더 그렇다. 코로나가 덮쳤던 때를 생각해보면 잘 알 수 있다.


사는 게 하루하루가 전쟁이더군, 하는 노래처럼 매일이 전쟁이고 지옥 같은 하루지만 근성을 가지고 이른 아침에 회사에 출근하는 사람들의 등을 보고 있으면 아버지도 떠오르고 기분이 나쁘지 않다.



회사원들은 공감할 노래, 장미여관의 퇴근하겠습니다 https://youtu.be/xmAsPX0xYCY

뮤직비디오는 초현실이라 좋음. 트루먼 쇼도 생각나고.



하루키의 소설 '세계의 끝과 하드보일드 원더랜드', 또 다른 제목 ‘일각수의 꿈’에는 세계의 끝에 있는 마을이 나온다. 아주 춥고 몹시 추운 긴 겨울이 있고 그곳에 일각수가 꿈틀대고 있다. 그 마을에 살고 있는 사람들은 그림자가 없다. 그림자는 마을에 들어오면서 따로 떼어 놓고 오기 때문에 시간이 지날수록 마을에 들어온 사람들은 ‘마음’이라는 것이 점점 사라지게 된다.


주인공은 그림자와 함께 현실의 세계로 돌아오는 계획을 짜 놓지만 마지막에 마을에 남기로 한다. 주인공은 아직 조금 남아있는 마음이 시키는 대로, 마음을 잃어버린 그녀와 함께 있기로 한다. 너무 흥미롭고, 아주 재미있는 소설이었다. 상실의 시대에서도 와타나베는 목숨보다 사랑하는 피 같은 나오코를 따라가지 않고 마음이 시키는 대로 녹음이 짙은 미도리에게 희망을 건다. 다자키 쓰쿠루에서도 다자키는 이 전화가 사라에게서 오는 전화라는 걸 안다. 마음이 그렇게 움직이게 한다.


마음이 사라지면 얼굴의 표정도 없어지고 타인에 대한 공감 능력도 없어지기 때문에 이 행동이 상대방에게 피해를 주는지 인지하지 못하게 된다.


로렌스 스티븐 라우리의 ‘Industrial Landscape (1958)’ 그림을 따라 그렸다. 라우리의 그림 속 인물들은 가늘고 길쭉한 성냥개비 인간들 같다. 세계의 끝과 하드보일드 원더랜드에 나오는 마을 속 사람들의 모습이 꼭 라우리 그림 속의 사람들 같다. 그들은 1950년대 영국 산업 시대의 사람들로 모두가 생존하기 위해 공장에서 밤낮으로 일을 한다. 그림 속 성냥개비 인간들은 그림자를 잃어버리고 살아간다.


라우리는 고독하지 않았다면 그릴 수 없었을 것이라고 했다. 회사에서 돌아와 저녁을 먹고 어머니가 잠든 후 고요한 새벽에 그는 매일 낮에 본 쓸쓸한 산업 시대의 풍경을 그림으로 그렸다. 고독은 라우리 그림의, 그의 예술의 원천이었다. 라우리는 공장에서 일하는 동료들에게 자신은 화가라는 사실을 알리지 않았다.


그저 밤이 하늘을 수놓으면 캔버스를 꺼내서 가늘고 긴, 그림자를 잃어버린 사람들을 그렸다. 1950년대 당시의 영국 노동자 사람들을 볼 수 있다. 라우리의 그림 속, 사람들은 전부 굳은 표정에 등을 구부리고 어딘가로 바쁘게 걸어가며 그림자도 없지만 색감만큼은 생동감이 강하다. 인파 속에서 고독하고 외롭지만, 고독하여 외로워서 그림을 그릴 수 있었다는 라우리의 그림을 보는 것이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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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을 찍으려고 앨범을 찾으니 스키드 로우 1, 2집이 사라졌다. 이상하다. 작년에도 본 것 같은데 어느 날 보면 없어지고 만다. 비사이드 앨범은 엘피로 가지고 있었지만 역시 사라지고 없다. 서브 휴먼 레이스 앨범의 제일 처음에는 "안녕, 안녕"하는 인사를 하며 시작한다. 발음이 아주 구리지만 한국 팬들을 위해서 그런 육성도 들어있다.


라디오에서 스키드 로우의 노래가 나오면 그저 반갑다. 마치 멀어졌던 고바리안과 다시 만난 기분이다. 굳이 고바리안이라 함은 마징가제트나 그렌다이저, 그레이트 마징가가 더 좋은데 그건 스키드 로우 보다 조금 윗 세대, 딥 퍼플이나 레드 제플린, 블랙 사바스에 견줄만하기 때문이다.


마징가 제트와 그레이트 마징가와 그렌다이저 중에 누가 가장 강할까. 극장판을 보면 마징가 제트는 대미지를 입어서 다 망가졌고 그 보다 훨씬 강한 그레이트 마징가를 개발했고, 이런저런 우당탕 탕 하며 지구를 구하고 난 뒤 그레이트 마징가는 로봇 박물관에 전시가 되어 있고, 듀크 프리드가 그렌다이저와 함께 제2의 고향 지구를 지키고 있는데 빌런 군단의 친위대장 바렌 도스라는 놈이 가부토 코우지를 가두고 로봇 박물관으로 가서 그레이트 마징가를 훔쳐 타고 원반수와 함께 도시를 박살 내는 와중에, 히카루와 꽁냥꽁냥 하고 있다가 아! 큰일이군 하며 그랜다이저를 타고 출격하는데 그랜다이저가 그레이트 마징가에게 밀린다. 일단 출격할 때 시간이 오래 걸린다. 마징가제트나 그레이트 마징가에 비해 두 단계가 더 걸린다. 그리고 제트 스크 랜드로 날아가는 마징가들에 비해 원반과 합체해서 비행을 해야 한다. 아무튼 밀리는 와중에 잡혀 있던 가부토 코우지와 연락이 되어서 그 이름도 멋진 듀크 프리드가 그레이트 마징가의 약점을 물어보고 가부토 코우지가 일시 정지하는 방법을 알려준다. 그랜다이저의 얼굴은 황소의 얼굴처럼 보인다. 듀크 프리드의 여동생인 마리아 프리드도 나오는데 사람들에게 인기가,,, 나는 어디? 여긴 누구? 참 쓸데없는 말이었다.


윤도현의 라디오나 배캠에서 그래도 스키드 로우의 음악을 들을 수 있다. 잊을만하면 들려준다. 별거 아니지만 어찌나 반가운지 모른다. 스키드 로우의 노래를 처음 들었을 때, 그리고 세바스찬 바의 얼굴을 처음 봤을 때 그 엄청난 충격은 잊을 수 없다. 아니 이 세상에 이렇게 생긴 사람이 있을 수 있나? 대부분 그런 생각을 했으리라. 190이 넘는 키에 늘씬한 몸매에 청바지가 이렇게도 잘 어울린다. 그런데 노래를 미칠듯한 고음으로 죽 내지르는데 지치지도 않아. 게다가 금발이라고. 금발.


이 녀석들 머틀리 크루처럼 공연을 하면 미친 듯이 공연을 한다. 무대를 휘어잡는다. 그 엄청난 피지컬로 무대를 뛰어다니며 고음을 내지른다. 거의 약을 한 것처럼 음악에 몸과 정신이 다 삼켜진다. 공연이 끝나면 자정이나 새벽이 되고 그때부터 광란의 파티가 펼쳐진다. 호텔로 여자들을 불러서 밤새도록 술을 마시며 난잡해진다. 그리고 눈을 뜨면 오후. 다시 옷을 주섬주섬 입고 공연장으로 가서 또 공연을 한다. 지치지 않는다. 공연이 끝나면 또 새벽에 광란의 술파티다. 무슨 기계처럼 막강하게 움직이고 노래를 부른다. 엄청나다. 지치지 않는 것은 정신도, 노래도, 연주 실력도 무엇보다 몸이 절대 지치지 않는다.


세바스찬 바는 ‘웨이스티드 타임’이나 ‘멍키 비즈니스’ 같은 박살 내는 음악도 멋지지만 리메이크 한 ‘리틀 윙’을 부를 때 기가 막히다는 생각이 든다. 노래를 부르기 전 음을 맞추는 표정에서는 아이 같은 순수한 모습이 나오고 곧이어 190이 넘는 피지컬로 무대를 압도하는데 지미 핸드릭스의 리틀 윙을 메틀과 블루스의 경계를 허물고 조화를 이루어 가며 노래를 부른다. 아 정말 좋다. 금발의 긴 머리와 만화에서 욕하며 튀어나온 것 같은 얼굴, 고음의 목소리와 부드러운 목소리의 연결, 긴 팔다리로 마이크를 잡은 모습. 어느 것 하나 소홀하지 않고 멋지지 않은 것이 없다. 세바스찬 바의 미모에 가려졌지만 레이첼 볼란을 비롯한 멤버들 역시 멋진 얼굴을 한 채 연주를 한다.


세바스찬 바가 부르는 리틀 윙은 제임슨을 홀짝이며 듣는 게 어울린다. 그걸 들고 마시며 겉멋처럼 노래를 들었다. 먼지가 춤을 추는 어두운 실내에 다운 라이트를 켜면 그 빛을 따라 먼지가 이동을 하고 우리는 세바스찬 바의 리틀 윙을 들었다. 여기 다운타운에 엘피를 엄청나게 가지고 있던 선배가 조그만 바를 열었었다. 그리고 엘피를 들고 가면 틀어주기도 했다. 작은 곳이지만 영화에서나 볼 법한, 그런 분위기가 있는 바였다. 앉아서 그저 음악을 들으며 홀짝 할 수 있는. 하지만 몇 년 전에 사라졌다. 도저히 이윤을 남길 수 없고 월세는 자꾸 오르고. 거기서 우리는 리틀 윙을 자주 들으며 제임슨을 홀짝였다. 한 손에 제임슨을 들고 몸을 흐느적거리며 마치 세상에 스며들어 녹아 없어져도 좋을 것처럼 말이다. 아니 없어져도 좋다고 생각했다. 당시에 우리는 세간의 말 따위는 썩 신경 쓰지 않았다. 스키드 로우의 그렇고 그런 이야기들, 세바스찬 바의 가십들. 우리가 듣고 좋으면 음악에 스며들 뿐이었다.


스키드 로우의 1, 2집은 온통 약을 하고 총을 쏘고 자살을 하고 노예가 되면서 앞을 가로막는 무엇인가를 전부 부숴버릴 것 같았는데 리틀 윙에서는 절제를 한다. 절제된 내지름. 내지를 때 내 속의 어떤 울분과 분노 그리고 광기를 같이 내뿜었다. 아, 제임슨이 이렇게나 맛있게 느껴지는 건 세바스찬 바가 리틀 윙을 부르기 때문이다. 막바지로 가면 스코티 힐과 데이브 사보와 레이첼 볼란의 기가 막힌 연주가 이어진다. 연주가 마치 노래를 하는 것처럼 느껴져. 아니 노래를 해. 연주가 세바스찬 바와 주거니 받거니, 티 키 타 카 하며 노래를 한다.


https://youtu.be/7zPBpWwTiPs



키드 로우 하면 역시 박살이지,라고 하는 사람이 많겠지만 그럴 땐 ‘인 어 다크엔드 룸’을 들어보자. 리듬이 어쩐지 우리 한국과 친숙해. 이렇게 부드럽게 부르다가 내지르는 목소리를 들어봐. 반하지 않을 수 있을까. 라이브를 봐, 이 엄청난 피지컬을 가지고 노래를 부르며 자신감에 오른 모습을.


위에서 말한 것처럼, 머틀리 크루의 이야기를 다룬 영화 ‘더 더트’를 보면 20대 초반의 이렇게나 멋진 얼굴에, 이렇게나 강한 피지컬에, 이렇게나 사그라들지 않는 목소리로 공연을 하면, 저녁 9시에 공연에 올라 새벽에 끝나면 그때부터 술과 약으로 다음 날 오후까지 보낸다. 그러다가 거지 같은 몰골로 일어나면 그대로 무대로 올라 미친 피지컬로 노래를 토해낸다. 그리고 공연이 끝나면 또다시 술과 약의 파티 타임. 그럴 때마다 호텔에는 여자들이 늘어났다. 머틀리 크루를 비롯해서 세계의 정점을 찍었던 밴드들은 그게 일상이었다. 하지만 세바스찬 바는 지치지 않았다.


전 세계 여자들이 어디를 가나 환호하고 따라다녔다. 무대를 씹어먹고 박살 내는 노래를 부르는 와중에 리틀 윙을 부르고 어두운 방안에서를 세바스찬이 부르면 모두가 약에 취한 듯 홀렸다.


사람들은 리즈 시절의 세바스찬 바와 지금의 세바스찬 바를 비교하며 조롱하거나 안타까워한다. 하지만 그게 무슨 의미가 있을까. 세바스찬 바는 리즈 시절에는 최고의 자리에 올랐다. 조롱하는 이들은 그런 자리에 올라본 경험이 있을까. 안타까워할 필요도 없다. 왜냐하면 지금 세바스찬 바는 여전히 노래를 부르고 있는데 어쩌면 리즈시절보다 더 행복할지도 모른다. 나이가 들어서도 하고 싶은 걸 마음껏 하면서 보낸다는 기쁨을 누구보다 더 잘 알지 않을까.


보니 타일러의 2017년도의 공연을 보면 정말 어마어마한 인파가 몰렸다. 보니 타일러는 와, 하는 소리가 나올 정도로 노래를 부른다. 그녀의 나이 듦과는 무관하게 무대를 찾은 팬들은 그 자체를 즐기고, 보니 타일러를 좋아할 뿐이다.


지미 핸드릭스는 28살에 죽었지만 리틀 윙은 영원히 남아서 이렇게 대대로 대물림되면서 그 시기의 최고의 스타들이 계속 부르고 있다. 그리고 그 노래를 제임슨을 홀짝이며 듣는 사람들이 있다. 역사의 중심이지 않더라도 한 페이지에 세바스찬 바도 우리도 모두가 함께하고 있다.


https://youtu.be/UG8YURv36ew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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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여행을 떠나고자 하는 이유 내지는 그 목적은 다시 집으로 돌아오기 위함일지도 모른다. 집이라는 건 세상에서 가장 편안한 장소이기에 나만의 방법으로, 나만의 쉴 수 있는 공간이다. 그러나 집에서 머물러 있는 시간이 길어지면 집에서 벗어나고 싶은 게 또 인간이다. 인간이란 그래서 참 알 수 없다. 집에 10일만 있으라고 하면 지겹고 심심하기만 하다. 좀이 쑤셔 미칠 것만 같다. 아무리 집이 좋아도 이건 정말 아니다 싶다. 나는 아직 코로나에 걸려보지 않았지만 일단 걸리면 집에서 격리를 하기 때문에 많은 사람들이 이 같은 지겨움을 겪었다.


집이란 악착같이 들어가고 싶은 곳인 동시에 어떻게든 떠나고 싶은 곳이기도 한, 세상에서 가장 아이러니한 장소이다. 그래서 어딘가 여행을 갈 때에는 집으로 간다. 여기서 말하는 집이란 도착지의 숙소가 집에 가까운 형태를 띤 장소를 말한다. 호텔이나 모텔 같은 박스형 숙소에서 벗어난 곳을 찾아서 간다. 내가 지내는 집처럼 생긴 구조물에서 숙박을 하려고 애를 쓴다. 여행을 하다 보면 집이 또 그리워지고 집으로 들어오는 그 순간의 그 느낌과 그 기분을 우리는 알고 있다. 집이란 그런 곳이다.


응답하라 1988을 보면 그런 집이 잘 나온다. 오래 전의 가구와 벽지, 그리고 소파. 밥상에서 라면을 먹는 모습. 그리고 티브이. 작은 티브이 앞에 모여 앉아서 보는 아이들. 응답하라 1988, 7회에는 소중한 것이 무엇인지 잘 보여준다.


크리스마스에 들떠있는 진주에게 진지하게 말하는 성보라. 산타 할아버지는 없어. 그 말은 들은 진주는 6세 인생 전반에 큰 좌절을 맛본다. 반상회에 모인 골목 어른들은 크리스마스에 산타 할아버지에게 눈사람을 갖고 싶다는 진주의 소원을 들어주기 위해 모두가 의견을 내고 머리를 맞댄다.


철없는 정봉이의 마니또 게임에 골목의 전사들이 모여들고, 전부 투덜거리지만 자신의 마니또에게 선물을 준비하려고 한다. 덕선이는 자신의 마니또는 정환이나 택이라고 생각한다. 그리고 핑크 핑크 털장갑을 선물로 받고 싶어 한다.


택이는 크리스마스가 아버지의 생일이라 덕선에게 전화로 선물 뭘로 사면 좋을까 물어보고 덕선이는 핑크 핑크 털장갑이라 대답한다. 택이 아버지는 인터뷰를 하면서 택이에 대해서 대답을 잘하지 못해 슬퍼한다.


엄마 없이 크게 한 택이에게 미안한 아버지는 자신은 쓸데없는 인간이라 자책한다. 우리 택이도 다른 애들처럼 사랑도 많이 받고 철마다 깨끗한 옷 입히고 맛있는 거 많이 먹고 아프면은 엄마가 꼭 안아주고,,, 하필이면 아빠가 살아가지고,,


한편 덕선은 민옥과 자현이와 함께 압구정 햄버거 가게에서 크리스마스 시즌이라 모두가 커플인데 여자들끼리만 있어서 정환을 부르는데 절대 안 올 거라 여겼단 정환이 오고, 정환은 덕선이의 식탐을 나무라며 한 번에 많이 주문하지 말고 다 먹고 또 주문하라고 한다. 집까지 같이 온 덕선이는 정환에게 야, 개정팔, 너 내 마니또지? 아닌데 왜 나에게 잘해줘? 정환은 덕선의 얼굴을 양손으로 잡고 요 머리로 잘 생각해 보라고 한다.


택이를 기다리던 덕선은 그대로 집으로 가는 택이에게 최택, 장갑은?라고 묻자, 택이는 고마워, 덕분에 잘 골랐어, 아빠가 좋아하실 것 같애.라고 한다. 그렇다, 사랑은 늘 한 방향이었다. 이거다 싶으면 마음은 저기에 가 있고 저길 가면 저 위로 가버리고 마는 사랑.


핑크 털장갑을 받은 택이 아버지는 당황하지만 무뚝뚝한 아들 택이가 이 장갑을 골랐을 마음을 생각하며 택이를 끌어안는다.


내 남자로서의 생의 시작은 내 턱 밑의 수염이 나면서가 아니라 내 야망이 내 자유가 꿈틀거림을 느끼면서 이미 시작되었다고 믿기 때문이다. 우리의 아버지들은 아직 수줍다. 그들은 다정하게 뺨을 부비며 말하는 법을 배운 적이 없다. 그를 흉보던 그 모든 일들을 이제 내가 하고 있다. - 넥스트. 아버지와 나 파트 1


봉황당은 스펀지에 물이 스며들듯 택이도 자신을 닮을까, 그런 무뚝뚝한 인간이 될까 봐 가슴이 시리고 아프다.


크리스마스에 핑크 핑크 장갑을 받은 덕선이는 택이에게 고마움을 느끼며 소리를 지르고 좋아한다. 그거 정환이 형이 준거야. 누나 크리스마스 선물이래. 그 형 미쳤나 봐.


박 기자로부터 아버지 인터뷰 영상을 받은 택이는 기원에서 틀어본다. 그 무뚝뚝하고 말이 없던 아버지가 수줍게 입을 연다. 사랑해, 아들. 사랑한다, 우리 아들.


사랑한다면 지금 말해야 한다. 숨 가쁘게만 살아가는 이 순간들이 아쉬움으로 변하기 전에 말해야 한다. 어쩜 시간이 남기는 가장 큰 선물은 사랑했던 기억일지도 모른다. 그러니 더 늦기 전에 쑥스러움을 이겨내고 고백해야 한다. 사랑하는 그대에게.


네, 이번에는 맨 마지막 참가팀, 참가번호 16번 서울 대표 그룹사운드 무한궤도의 그대에게.

https://youtu.be/TPoDCVSK1wA



집은 내 아버지의 등이자 엄마의 품일지도 모른다. 그래서 나이가 되면 비록 떠나야 하지만 돌아오면 좋은 곳일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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