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추리알 장조림은 정말 도시락 반찬으로 인기가 끝이었다. 물론 도시락 통을 열기 전에 각오를 해야 한다. 각오를 하는 것도 아침에 엄마가 싸주는 도시락에 뭐가 들어가는지 봤을 때나 가능하지 아침에 일어났을 때 이미 도시락이 다 준비되어 있고 아무 생각 없이 들고 학교에 왔다가 점심시간에 뚜껑을 열었다가는 늘 배고픈 어린 노무 늑대 새끼들의 레이더망에 걸려 5초 컷이 되고 만다. 순식간이다. 후다닥 하면 메추리알 장조림은 바닥이 드러난다.


도시락 하면 이제 겨울이니 보온 도시락이 최곤데 이상하게 보온 도시락에 대한 기억이 없다. 기억이 없는데 마치 보온 도시락에 밥과 국과 반찬을 먹었다고 자꾸 착각이 들기도 한다. 보온 도시락이라고 해도 뜨거운 온도가 유지되는 건 아니고 차갑지 않게 보온을 해 줄 뿐이었지만 보온 도시락은 아무래도 신파적으로 엄마의 마음의 온도가 밥과 국을 식지 않게 유지해주었을 것이다.


지식백과에 메추리알을 이용한 장조림은 어린이들 밥반찬으로 영양 만점입니다.라고 되어 있다. 메추리알 장조림을 도시락으로 먹을 수 있다는 건 행복한 일이었다. 뺐어 먹는 아이들도 행복한 얼굴이고, 뺏기긴 했지만 주인공도 행복한 얼굴을 한 채 점심시간을 하하하 웃으며 보냈다. 메추리알 장조림은 먹으려는 전쟁이 심하니까 반찬통 밖으로 튀어 나간 메추리알도 어떤 놈이 밀사의 눈초리를 하고 있다가 그 순간을 포착해서 집어간다.


메추리알은 가장 작은 알이라고 나와 있다. 메추리가 참새보다 큰데, 참새 알이 더 작을 텐데 하는 생각이 들다가도, 참새 알은 잘 본 적이 없어서 혹시 참새는 바로 새끼를 낳나? 하는 말도 안 되는 생각을 잠시 해본다. 메추리를 요즘은 잘 볼 수 없다. 코로나 전 5일장에 구경을 가면 메추리 고기를 팔았다. 메추리구이도 닭튀김처럼 아주 맛있다.


외가가 불영 계곡에 있는 작은 마을에 있는데 그 마을의 작은 술집에서는 메추리구이도 팔았다. 외가에 놀러 가면 저녁에(꼭 저녁이 아니라도 술집이 오픈하면) 그 술집에 가서 메추리구이에 소주를 마시곤 했다. 앞에는 개울물이 흐르고 푸릇푸릇한 벼의 냄새가 난다. 그런 작은 동네의 이름도 없는 작은 술집이다. 여름의 계곡물은 좋다. 우리만 아는 그런 조금 깊은 곳에서 물놀이를 하면 물이 맑아서 물속의 벌레나 작은 물고기가 다 보이고, 물비린내가 나는데 그 냄새가 좋았다. 논과 밭 사이를 흐르는 개울물이 맑아서 컵으로 퍼 마셔도 될 만큼 투명하다. 개구리들이 밤이 되면 여기저기 얼굴을 드러내고 개굴개굴 울었다.


그런 모습을 보면서 메추리구이와 함께 소주를 마신다. 술집은 2층에 있다. 1층에는 무슨 비료를 파는 곳이고 위층이 술집인데 한 집에서 비료도 팔고, 술도 팔고 다 한다. 계단은 밖으로 난 계단인데 단단한 나무로 되어 있다. 올라가면 작은 주방이 보이고 홀에 테이블도 3개 정도밖에 없다. 동네 사람들이 와서 마시는 곳이다. 창문은 두 벽면에 크게 나 있어서 창문을 다 열면 이쪽저쪽으로 위에서 말한 그런 풍경이 다 보인다. 개굴개굴 소리를 들으며 소주를 털어 넣는다. 메추리구이를 주문하면 준비하는 동안 기본 안주로 오이가 길쭉하게 썰려 나온다. 그리고 된장이 딸려 나오는데 이 된장의 맛이 기가 막힌다. 촌 된장에 푹 찍은 오이가 참 맛있어서 메추리 구이가 나오기도 전에 이미 같이 간 친구들은 한 병을 비워 버린다. 연탄 위에서 지글지글 구운 메추리 구이가 나오면 여기가 무릉도원이다.


갑자기 무릉도원 하니까 인터넷 사연이 생각난다. 미용실에서 머리를 하고 감겨주는데 잠이 쏠쏠 오고, 그때 무릉도원입니까?라고 예쁜 미용사 누나가 말하는 것이다. 잠이 너무 쏟아지는데 네? 네, 무릉도원이에요.라고 하니까 미용사 누나가 웃으며 아니 물 온도 어떠냐고요.


아무튼, 메추리를 요즘은 잘 볼 수 없다. 내가 사는 이곳에서도 코로나 이전 5일장에 나가면 메추리 고기를 팔았는데 요즘은 거의 보지 못했다. 그러나 검색을 해보면 메추리 구이가 요즘에도 많이들 먹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인터넷 쇼핑몰에서도 10마리에 만 칠천 원 정도에 팔고 있다. 대부분 바비큐로 해 먹는데 맛있어 보인다. 냠냠.


외가에서 아주 작은 술집에서 메추리구이를 먹고 있으면 마을 사람들이 술을 마시러 온다. 테이블 간격이 좁고 다닥다닥 붙어있다 보니 얼굴을 모르는 이들이 동네 술집에 앉아 있으면 서로 안부를 묻게 되고, 어디 집 누구의 아들이라고 하면 아아 그렇구나, 하며 같이 왁작지껄 어울리게 된다.


그런 분위기가 참 좋다. 이야기를 하다 보면 전혀 접점이 없을 것 같은데  어느새 다 같이 어울려 웃음을 지으며 이야기를 같이 하고 있다. 마치 꼭 예전부터 알고 지낸 사람들을 떨어졌다가 다시 만나서 이야기하는 것처럼 이야기를 하게 된다. 음식이 중간에서 사람과 사람을 이어준다. 그렇게 동네 사람들과 술을 마시며 그들의 이야기를 듣고 있으면 순박하구나, 하는 생각이 든다.


마찬가지로 우리의 이야기를 들으며 그들도 그런 생각을 했을지도 모른다. 그런 유대가 이어지는 것이 신기하면서도 좋다. 다음 날에 외가 바로 앞의 개울가에 텐트를 치고 라면을 끓여 먹고 있으면 집에서 들어와서 삶은 감자와 고기도 들고 와서 주고 가기도 했다.


그래서 그런지 몰라도 삶은 계란은 모르겠지만 메추리알 장조림을 도시락 반찬으로 들어와서 친구들과 같이 왁작지껄하게 먹게 되면 그런 유대를 가지게 된다. 물론 우르르 한 바탕 지나가고 나면 싹 없어지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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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 다웃의 보컬 그웬 스테파니는 그야말로 살아있는 마네킹의 모습이었다. 길쭉길쭉한 키와 팔다리로 무대를 흐느적거리며 노래를 부르는 모습은 남자들뿐 아니라 여자들에게도 워너비 같은 모습이지 않을까.


헤비메탈에 심취해있던 중고등 록음악충들에게 슬슬 그런지 메탈과 펑키한 메탈이 들어오기 시작했다. 너바나와 펄잼에 목숨을 걸었던 녀석들도 있었다. 다 때려 박살 낼 것 같았던 헤비 한 메탈을 벌리고 그런지 록이 파고들었다. 그리고 이쪽에서는 펑키한 록이 또 후두부를 강타했다.


그린데이가 세상에 나오더니 씹어 먹기 시작했다. 도대체 그린데이의 노래를 모르는 아이들이 없을 정도로 모든 곳에서 흘러나왔다. 모든 곳이라 하지만 티브이나 대중매체는 그린데이를 뭔가 똥물로 취급해서 인지 전혀 비추어주지 않았고 라디오, 레코드 샵, 카페, 길보드 샵 같은 곳에서 봇물 터지듯 흘렀다.


후에 우리나라에도 미칠듯한 펑키한 밴드가 나와서 말 달리자고 노래를 불렀다. 와 정말 대단했다. 이 우는 땅콩들은 지금까지 꾸준하게 처음과 거의 흡사하게 미쳐서 펑키한 록을 하고 있다. 그들이 아직 미쳐서 음악을 한다는 게, 그게 쿠우~ 슈우~ 푸우~ 콰앙~만 하다 끝나버렸지만, 10년 동안 거의 처음으로 보고 나서 가슴이 미칠 듯이 뜨거워졌던 매버릭을 본 느낌과 비슷하다.


그리고 또 다른 쪽에서 ‘노 다웃’이 ‘돈 스피크’를 들고 나왔다. 노 다웃 하면 돈 스피크 같은 음악을 한다고 생각하겠지만(나도 그랬지만) 그 노래 한 곡을 빼고는 나머지는 대부분 펑키한 록이다. 신나면서 강렬한, 그리고 빠져드는 록을 한다. 그 중심에 당연하지만 그웬 스테파니가 있다. 그웬은 지금도 모습이 거의 변함이 없다. 물론 이런저런 화장과 의학과 뭐 그런 도움을 받았지만 일단 자기 관리가 없으면 늘 그런 모습을 유지하기가 어렵다.


그웬 스테파니는 노래보다는 의상, 화장품 모델을 하거나 셀럽으로 더 유명해서 그쪽으로 자본을 어마어마하게 끌어 모으는 것 같다. 그웬 스테파니 하면 외국에서도 늘 초동안의 외모에 떠오른다. 요즘도 일상이 파파라치 컷에 늘 드러나는데 도대체 나이가? 같은 반응이 대부분이다. 솔로로서도 성공적이라 21년, 지금까지 곡을 내고 있다.


그웬 스테파니가 지금까지도 계속 노래를 할 수 있는 건 아무래도 예전의 밴드들은 기획된 것이 아니라 어린 시절부터 음악을 좋아하는 친구들이 창고 같은 곳에 모여서 열심히 노래를 연습하고 연주를 하며 합을 맞추어서 동네 길거리 공연부터 각종 공연장에서 노래를 계속 불렀기 때문이 아닐까 싶다. 그웬은 오빠인 에릭 스테파니와 밴드를 만들고 어릴 때부터 그렇게 공연을 하면서 노래를 불렀다.


노 다웃으로 돈 스피크를 불렀을 때 정말 전 세계는 환호했다. 처음부터 잘 되지는 않았다. 데뷔 앨범은 실패를 맛보았다. 음악은 예술이지만 음반은 산업이라 투자를 받지 못하게 되었다. 그래서 사비를 털어서 2집을 만들었지만 또. 그러다가 돈 스피크가 수록된 3집이 미국에서만 천만 장이 넘게 팔려나간다.


재미있는 건 우리나라에도 공연을 왔었는데 지금의 분위기와는 다르게 작은 공연장에, 얼마 없는 관객에, 호응도 거의 없는 무대에서 그웬이 노래를 불렀다. 그래도 최선을 다해서 노래를 부르는 모습에 역시 프로는, 같은 생각이 들었다.


그럼 가장 유명한 돈 스피크를 들어볼까

https://youtu.be/TR3Vdo5etCQ



신나는 노래도 부른다고요 저스트 걸 https://youtu.be/PHzOOQfhPF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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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을이 오면


눈부신 아침 햇살에 비친 그대의 모습이 아름다워요.라는 노래가 떠오른다. 가을이 세상에 내려앉으면 모든 풍경이 비싸 보인다. 푹푹 찌는 여름의 풍경은 더위에 허덕이는 풍경이라 그저 줘도 가져가지 않을 것 같지만 가을의 풍경은 모든 순간을 바꾸어 놓는다.


지난주까지만 해도 저녁에 조깅을 하고 나면 무릎에서 땀이 물처럼 흘렀는데 일주일 만에 기세 등등하던 더위가 가지 꺾이듯 푹 꺾이고 말았다. 습도 때문에 부얘 보이던 하늘도 가스층이 걷혀 파랗게 질린 얼굴을 그대로 드러냈다. 흐린 날에도 여름과는 다른 하늘의 모습을 보여 주었다.


"나는 이제 너의 바람과 마음과 무엇과도 무관하게 가을의 모습으로 갈 거야, 흥” 하는 얼굴을 하고 있다. 여름이 저 멀리 가는 모습을 보는 건 정말, 몹시, 너무 아쉽고 싫다. 줄이라도 있으면 휙 던져서 잡고 싶다.


어둠이 오는 속도도 빠르다. 고독한 미식가 고로 상이 주문한 음식을 먹어 치우는 속도와 맞먹는다. 하야이. 젠장. 어둠이 빨리 온다는 말은 이제 슬슬 긴팔에 긴 체육복으로 갈아입고 조깅을 해야 한다는 말이다.


날이 선선해서 강변의 조깅 코스에 나온 사람들이 많다. 본격적으로 달리는 러너들은 여름에도 꾸준하게 나왔으니 여전히 계절과는 무관하게 이쪽에서 저쪽으로 슉슉 숨을 쉬며 달려간다. 그 모습을 보는 건 꽤 즐거운 일이다. 그 외에도 유모차를 몰고 나온 사람, 어르신들, 손주와 함께 나온 할아버지 등 많은 사람들이 시원해진 날씨에 강변을 찾았다. 주로 운동을 한다. 걷거나 달린다.


한주는 구름이 정말 구름 한 날이다. 구름이 입체감을 장착하고 여봐란듯이 멋지게도 떠 있다. 매일 조깅을 라면서 매일 구름을 본다. 구름은 매일 뜬다. 구름은 비가 오는 날에도 떠 있는 경우가 있다. 하지만 같은 구름은 없다. 지구가 생겨난 이래 구름이 보였을 텐데 그때부터 지금까지 같은 모양의 구름이 없다는 게, 이게 정말 불가사의하다. 하물며 전부 제각각인 인간도 쌍둥이가 있는데.


강변을 따라 죽 달리다 보면 공항에 내려앉는 비행기도 볼 수 있다. 폰으로 이 정도면 아주 낮게 떠 있다는 말이다. 비행기를 타 본지 꽤 되었다. 사진 속의 색감이 마치 80년대 같다. 80년대 하니까 88년도가 배경인 ‘서울대작전’을 봤다. 근데 감독은 일본의 ‘살색의 무라니시’를 보지 않았을까. 80년대라는 건 무라니시가 나오는 그 배경을 말하는 것이다. 한국 남자라면 무라니시의 작품이나 그 이후 나오는 작품을 보지 않는 남자가 없을 것이다.


서울대작전은 분명 ‘베이비 드라이버’를 따라 하려고 했다. 그랬다는 생각이 든다. 영화 ‘특송’에서는 카 체이싱은 그래도 꽤 좋았다. 서울대작전은 카 체이싱 영화라고 알고 있었는데 영화가 촌스럽다. 촌스럽다는 말은 무슨 말이냐 하면 영화 속이 더 촌스러워야 영화가 세련되었을 텐데 덜 촌스러워서 영화가 촌스러워진 것이다.


영화 ‘서울대작전’에 대해서 말해보자. 이 영화에서 미장센은 억지로 꾸며 놓은 듯한 80년대다. 더 확실하게 촌스러워야 했는데 그러지 못했다. 영화 ‘써니’의 색감을 흉내 냈고, 80년대의 거리를 복원하려 했지만 ‘응답하라 1988’에 미치지 못한다. 그래서 영화가 촌스러워졌다.


조크든요,를 따라 한 인터뷰 영상 장면이나, 소맥을 말아먹으면서 이게 소맥이야 하는 장면 역시 억지스럽게 보인다. 게다가 각 그랜저라는 말은 그 당시에 나오지 않았던 말이다. 훨씬 후에 2000년대 정도에 사람들이 초기 그랜저가 그리워서 나온 말인데 영화 속 88년도 해버렸다.


아무튼 80년대 정서나 감성이 영화에서 혀끝으로 할짝거리는 수준이라는 게 아쉽다. 카 체이싱이 영화 내내 나 올 줄 알았는데 아쉽다. 포니를 끌고 도심지를 누비는 강렬한 80년대 카 체이싱을 볼 줄 알았는데 아쉽다. 200억이면 카 체이싱 장면에 돈을 더 써도 되지 않았냐 싶은 게, 그게 아쉽다는 말이다. 좋은 하이스트 무비가 될 뻔했는데 그게 아쉽다.


유아인의 연기를 보는 것은 늘 즐거운 일이다. 문소리와 김성균의 연기를 보는 것 역시 즐거운 일이다. 오정세의 연기를 보는 것 역시 즐거운 일이다. 이렇게 멋진 연기자들을 데리고 이 정도밖에 못 해냈다는 게 아쉽다는 말이다. 그래도 후반부에 소방차의 노래와 함께, 송골매의 어쩌다 마주친 그대와 함께 달리는 카 체이싱은 또 신난다. 그런 영화가 ‘서울대작전’이었다. 영화에서 MBC는 MBC라 표기하면서 영웅본색은 쌍웅본색이라 표기한 건 다 뜻이 있겠지. 민호둥절한 영화 서울대작전.


영화 얘기는 여기까지 하고, 요 며칠 동안 저녁에 조깅을 하면 잠자리들이 아주 많아졌다. 사실 잠자리들은 지지난주, 폭염이었을 때도 저녁에는 꽤 많이 나와서 투명하게 날아다녔다. 고추잠자리들이 하늘을 장식했다. 가을이 오고, 잠자리가 눈에 보이면 어김없이 다자이 오사무의 수필 ‘아, 가을’이 떠오른다. 다자이 오사무는 가을을 말할 때 ‘잠자리, 투명하다’라고 했다. 가을이 되면 잠자리도 쇠약하여 너훌 너훌 날아다니는 것만 같은 모습을 오사무는 말하고 있다. 잠자리의 모습이 가을 햇살에 투명하게 보인다고 했다. 그리고 그 멋진 말 ‘가을은 여름의 타고 남은 것’라고 했다.


다자이 오사무 – 오, 가을

본직이 시인이라면 언제 어떤 주문이 있을는지 모르므로 항상 시제를 준비해 놓아야 한다. [가을에 대하여]라는 주문을 받으면, 그래 좋아, 하면서 [가]의 서랍을 열고, 가 줄의 여러 개 노트 중에서 가을 부문 노트를 꺼내놓고는 침착하게 그 노트를 살핀다. 잠자리, 투명하다,라고 쓰여 있다. 가을이 되면 잠자리도 나약해져서 육체는 죽은 채 정신만으로 비틀비틀 날고 있는 모습을 가리켜 한 말 같다. 잠자리의 몸이 가을 햇빛에 투명하게 보이는 것이다.


가을은 여름이 타고 남은 것, 이라 쓰여 있다. 초토다. 여름은 샹들리에, 가을은 등롱, 이라고도 쓰여 있다. 코스모스, 무참하다,라고도 쓰여 있다.


언제였던가, 교외의 메밀국수집에서 국수를 기다리는 동안 식탁 위의 낡은 화보를 열어보았더니 그 속에 처절한 사진이 있었다. 전체가 타버린 들판, 바둑판무늬 유카타를 입은 여인이 달랑 혼자서 피곤에 지쳐 주저앉아 있었다. 난 가슴이 타들어갈 만큼 딱한 여인을 사랑했다. 무섭도록 욕정마저 느꼈다. 비참과 욕정은 표리인 모양이다. 숨이 막힐 만큼 괴로웠다.


그리고 밑으로 다자이 오사무의 코스모스에 관한 글이 이어진다. 다자이 오사무의 글은 공허가 있고 그 공허 속에는 허무가 가득하다. 그리고 황량함이 마지막으로 허무의 자리에 차고 오른다. 이번 여름에도 폭염이었다. 폭염 속에 모든 것이 다 타고 남은 것이 가을로 이어진다.


폭염에 활활 타오르는 저 하늘,

붉은색으로 세상을 다 태운 여름이 울고,

우는 틈을 타서 가을은 몰래 숨어 들어와 치장을 하고 교활한 악마처럼 잠자리를 투명하게 비춘다.

가을은 저 여름이 온전히 타고 남은 것.

타고 남은 재를 뚫고 그을음에 붙어 코스모스가 피고 나면 가을은 무섭도록 나를 노랗게 물들인다.

나는ㄴㄴㄴㄴ 조깅을 했을 뿐이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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쓰고 있는 글이 자꾸 미뤄지고 지난 추억에 관한 일만 떠올라서 나도 모르게 과거로 들어가서 그곳에서 행복했던 생각 속에서 허우적거리며 글을 쓰고 있다. 추억 속에 들어가고 나면 일단 기분이 좋다. 그 당시에도 스트레스가 있었겠지만 기억 속의 나는 너무나 행복한 모습으로 지내고 있다.


별 고민도 없어 보이고, 공부도 못해서 성적도 안 좋은데 크게 신경도 쓰지 않는 것 같고, 그렇다고 해서 학교에서 잘 나가는 그런 아이도 아니며, 잘 웃는 아이도 아니었고, 운동을 꽤나 잘하는 것도 아니었다. 오히려 먼지 같아서 있으나 마나 한, 그런 존재였는데 아마도 매일 음악을 듣고 있어서 그게 꽤나 즐거웠던 모양이다.


중학교에 입학해서 무시무시한 레슬링부 아이가 음악 감상실에 대해서 이야길 하는 걸 듣고 가게 된 이후로 주말이면 늘 거기서 음악을 들었고, 평일에도 일찍 보내주면 음악 감상실로 들어갔다. 덕분에 다른 아이들이 느끼지 못하는 재미를 느낄 수 있었다. 음악 감상실은 형태는 변했지만 내가 있는 여기 이 도시에 10여 년 전까지 있었는데 이제는 싹 사라졌다.


레코드 가게가 싹 사라지듯이 몽땅 거짓말처럼 지상에서 소거되었다. 백화점과 대형 마트에 아주 크게 자리를 잡았던 레코드 코너가 하나둘씩 사라지더니 서적 코너도 싹 사라졌다. 서적 코너가 집 근처 대형마트에 있었을 때는 마트에 자주 갔다.


서적 코너에는 책을 편안하게 읽을 수 있게 좋은 의자도 있어서 한 시간 정도는 책을 읽고 올 수 있었다. 약속시간보다 일찍 나와서 대형 마트의 서적 코너에 앉아서 책을 좀 보다가 일어나서 바로 앞에 있는 수족관 코너에 가서 여러 물고기나 동물을 구경하면 시간이 가는 줄 모른다. 물고기 중에는 음식을 먹으면서 똥을 동시에 싸는 물고기도 있었다. 하나씩 하면 좋을 텐데. 인간은 동시에,,, 까지 생각하다가 다시 음악 감상실로 돌아와서.


중 고등학생 때 무척 무덥고 숨이 턱턱 막히는 날까지 수업을 하고 끝나면 가방을 둘러매고 학교를 나오면 덥덥한 바람도 시원하게 느껴지던 여름의 날, 코 등에 땀이 송골송골 맺힌 채 달려간 곳은 어김없이 음악 감상실이었다. 디제이들이 풀어놓는 록스타들의 썰은 듣는 것만으로도 흥미진진했다. 늘 외국의 매틀 밴드에 관한 이야기만 듣다가 블랙홀이나 백두산, 시나위 같은 한국 밴드에 대해서 듣게 되었는데 정말 흥미진진했다.


세계적으로 록이 전성했던 시기는 6, 7, 80년대였다. 세계적으로 기근과 전쟁이 기승을 부리고 있었고 산업혁명이 여러 나라에서 일어나고 있었다. 나와 다르다는 이유로, 종교와 이념이 맞지 않다는 이유로 인간이 인간에게 총구를 겨누고 방아쇠를 스스럼없이 당겼다. 전 세계에서 사람을 가장 많이 죽이는 동물 랭킹에 인간이 있다. 그리고 개도 그 속에 있다. 개에 물려 죽는 사람이 매년 4만여 명에 이른다고 하고, 인간이 인간을 실수나 고의로 죽이는 경우는 더 많다고 한다. 그래서 모기나 각종 동물들과 함께 인간도 랭킹에 올라있다.


그러한 시기에 반항, 저항을 울부짖던 록은 사람들을 한 목소리로 뭉치게 만들었다. 시작점은 주다스 프리스트, 롤링스톤즈 같은 그룹이었다. 그들의 공연은 사람들을 구름 떼처럼 몰고 다녔고 음악으로 전쟁의 중심에 있는 총을 이길 수 있다고 굳건하게 믿었다. 그러면서 한국에도 록이 상륙한다. 625 전쟁, 한국전쟁 때문이다. 전쟁을 치렀던 나라는 혁명이 빨리 일어난다. 한국이 전쟁을 치르면서 미군이 들어오고 따라서 미제 문화가 많이 들어왔다. 그중 하나가 음악이었다.


신중현과 엽전들, 미니스커트의 윤복희, 미 8군에서 노래를 불렀던 패티 김을 선두로 해서 포크 록의 대부라 불리는 한대수 등이 저항을 노래하기 시작했다. ‘물 좀 주소’로 유명한 한대수의 아버지는 우리나라 1세대 격인 물리학자였다. 그것도 핵물리학자였는데 어느 날 실종이 되었다. 아직도 미스터리로 남아있다. 한대수의 조부는 연세대학교 신학대학의 초대 학장을 지냈다. 아버지가 실종 상태로 지내다가 한대수가 16살이 되던 무렵에 미국 FBI에게 연락이 와서 아버지를 만났는데 한국말을 전혀 할 줄 모르고 과거를 싹 잊어버렸다고 한다. 시간이 많이 지나 한대수가 한 방송에 나와서 이런 전반적인 이야기를 하기도 했다.


음악감상실에서 디제이들의 썰로 듣는 록스타들의 이런 이야기는 빠져들 수밖에 없었다. 먼지 같은 나에게는 기폭제 같은 것들이었다. 음악감상실에서 시나위 6집의 보컬을 맡았던 김바다의 목소리를 들었다. 우리나라에도 이렇게 록을 하는 사람이 있다니, 하며 우리는(음감 죽돌이들) 놀랐다. 시나위 6집에 수록된 곡들이 전부 시대정신과 저항을 말하고 있다.


음악 감상실에서 음악을 트는 디제이들은 방송국에서 라디오 방송을 진행하는 프로들이었다. 그만큼 음악에 대한 지적 호기심을 불러일으키는 이야기나 지식을 많았다. 특히 여자 디제이가 한 명 있었는데 신청하는 노래를 대부분 잘 틀어 주었다. 그래서 그 여자 디제이가 하는 시간대에는 사람들이 늘 많았다. 여자 디제이는 어깨까지 오는 머리에 부스에서 맨트를 칠 때에는 검은 뿔테 안경을 썼다. 그렇다고 해서 학구파적인 스타일은 아니었다. 얼굴은 몹시 예뻤고 방송할 때를 제외하고도 사투리를 쓰지 않았다. 음악 감상실 부스 밖 디제이 대기실에서 담배를 피우는 모습은 꽤 멋있었다. 소문이 많았다. 서울에 있는 방송국에서 일을 했는데 거기 국장과 그렇고 그런 사이였다가 쫓겨났다느니. 하지만 전부 소문이었다.


그녀가 위의 록에 대한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그녀가 썰을 풀면 사람들은 눈에 힘이 들어가서 이야기에 귀를 기울였다. 그녀가 들려준 밴드 이야기는 흥미 그 자체였다. 거기에 시나위의 이야기도 나왔다. 나에게는 시나위 4집도 있었는데 그 앨범에는 불모지 같은 바위에 올라 사진을 찍은 멤버의 사진이 앨범 뒷 표지에 있다. 보컬에 김종서, 베이스에 서태지, 기타에 신대철 등.


시나위 6집은 김바다가 보컬을 맡았다. 김바다는 6집에 이어 7집도 보컬을 맡았던 걸로 안다. 김바다는 뭐랄까 참 이상한 보컬이다. 노래를 부를 때 얼굴에 전혀 변화가 없다. 음을 소거하고 본다면 그저 조용한 노래를 부르는 것처럼 보일 것이다. 그런데 표정은 평온한데 내지르는 고음은 높은 파도가 갯바위에 부딪쳐 크게 부서지는 것처럼 강렬하다.


6집에서 ‘은퇴 선언’으로 한국에서도 너바나만큼의 얼터너티브를 하는 밴드, 보컬이 나왔다며 난리 났었다. 은퇴 선언과 사이클은 정말 대중적으로도 인기가 많은 곡이었다. 김바다의 얼굴은 아주 매력적으로 생겼다. 오래전 영화 ‘베스트 오브 더 베스트’의 주인공 필립 리를 보는 것 같다. 미국에서 만든 태권도 영화인데, 그 영화에서 아마 한국 태권팀이 좀 뭐랄까 호러블 하게 비치는 것 같았다. 아무튼 김바다의 얼굴은 매력적이다. 김바다는 키도 크다.


6집에서 사람들은 은퇴 선언과 사이클을 좋아하지만 나는 ‘내버려 둬’와 ‘블루 베이비’가 아주 좋다. 내용도 너무 좋은 것이다. 어린놈의 자식 때에는 들으면 그냥 풍덩 빠져들 수밖에 없는 내용이 아니던가. 김바다의 목소리가 이렇게도 어울릴 수 있을까. 노래를 들으면서 늘 생각했었다. 김바다는 시나위를 나와서 나비효과 밴드를 만들어서 유명한 첫사랑을 불렀다.  


은퇴 선언 https://youtu.be/JzTG1HGKzVg


내버려 둬 https://youtu.be/aY6YcZBiFnE


표정 하나 바뀌지 않고 노래를 부르는 김바다의 첫사랑 https://youtu.be/jasFDPkRiag


아무래도 이 노래는 정말 너무 좋아 죽음 ㅠㅜ 블루 베이비 https://youtu.be/DXzmtliKc9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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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요일은 짜파게티 먹는 날,라고 한 광고는 정말 문구를 잘 만들었다고 생각한다. 짜파게티는 참 맛있지만 이상하게도 라면만큼 자주 먹지는 않는다. 라면 같은 국물이 없어서 보통 끓일 때 3개 정도 먹는데 먹다 보면 아마도 물리게 되어서 그렇지 않나 싶다. 라면은 매일 하나씩 끓여 먹어라면 넵! 하며 먹겠지만 짜파게티는 글쎄다. 하지만 일요일마다 먹는다면 달라진다.


학창 시절에 토요일에 일찍 마치면 집으로 달려와 끓여 먹는 짜파게티는 정말 맛있었다. 짜파게티도 먹다 보면 스킬이 늘어난다. 집된장을 조금 넣어서 같이 끓이면 묘하게도 중국집 짜장면과 맛이 비슷하다. 나는 위가 좋지 않아서 짜파게티는 라면보다 소화를 잘 못 시킨다. 그래서 물을 다 버리지 않고 반쯤 버리고 아주 팔팔 조리듯이 끓인 다음에 아주 천천히 먹는다. 3개를 끓여서 집구석에서 좋아하는 영화를 보며 거의 영화 한 편이 끝날 때까지 먹는다. 천천히 먹다 보면 식지만, 짜파게티는 그렇게 먹어도 맛있다.


또 이상하지만 라면은 친구들과 여러 개 끓여서 같이 먹으면 맛있지만 짜파게티는 혼자서 먹는 게 더 맛있다. 뭐 나만 그렇겠지만 왜 그런지 참 알 수 없다. 강가에 가서도 라면은 여러 개 끓여서 다 같이 모여 앉아서 호로록 먹었지만 짜파게티는 그게 잘 안 된다. 알 수 없는 건 여전히 알 수 없다.


짜파게티를 혼자서 끓여 먹는다 해서 외롭구나, 같은 생각도 들지 않는다. 냄비째 잡고 호로록 먹는다. 짜파게티에는 그냥 김치도 좋지만 파김치가 잘 어울린다. 왜 그런지 생각해보면 간단하다. 파김치 역시 짜파게티처럼 매일 먹지는 않기 때문이다. 김치는 매일 먹을 수 있는데 또 파김치는 매일 먹지 않는다. 역시 알 수 없다. 일요일에 끓여 먹으면 맛있다는 짜파게티는 정말 딱 그러했다. 광고라는 건 늘 느끼는 거지만 사람의 마음을 파고든다. 그래서 칩 키드가 좋아.


짜파게티를 먹으며 보는 영화는 늘 ‘쿵푸허슬’이다. 이 영화만큼 짜파게티와 어울리는 영화가 없다. 쿵푸허슬은 2005년에 나왔는데 아직도 이토록 눈물이 쏙 나올 만큼 강렬하고 통쾌하고 기가 막힌 후속작이 나오지 않고 있다. 주성치만 빠지고 나머지 멤버들로 후속작 비슷한 영화를 만들었지만 정말 형편없었다.


그래서 영화는 어떤 감독이 만드느냐에 따라 완전히 달라진다. 이번 ‘헤어질 결심’에서 박찬욱이 감독을 하지 않았다면 그런 영화가 나왔을까.


쿵푸허슬에는 아주 많은 권법이 나온다. 곤륜파의 함마공이나 시후공 대나팔 초식 같은 권법을 단지 대사로 말하는 것만으로 권법을 만들어 낸 원작자에게 엄청난 돈을 지불해야 하는데 주성치는 그걸 과감하게 다 해버렸다. 레디 플레이어 원에서 아주 쪼그마해서 잘 보이지도 않지만 영화 속에 등장한 원작 캐릭터들의 저작권료를 어마어마하게 지불한 스티븐 스필버그도 그랬다.


쿵푸허슬은 웃긴데 엄청 웃긴데 주성치가 화운사신에게 맞아서 경동맥이 다 끊어지고 죽어갈 때 땅바닥에 사탕을 그리는 장면은 또 울컥한다. 쿵푸허슬에는 그런 타이밍이 존재한다. 그렇다고 해서 주성치가 다시 주연으로 등장하는 후속작을 꼭 바라는 건 아니다. 더 안 나와도 된다. 왜냐하면 쿵푸허슬은 계속 봐도 재미있기 때문이다.


이상하지만, 역시 알 수 없지만 쿵푸허슬은 짜파게티를 먹으며 보는 게 재미있다. 돼지촌의 초반 결투 장면은 정말 명장면 아님. 봐도 봐도 재미있네. 호로록. https://youtu.be/C0LjdGXaADY


키득키득 거리며 짜파게티를 먹다 보니 어느새 밥까지 비벼서 야무지게 먹었다. 짜파게티는 도시락과 비슷하다. 도시락은 혼자서 먹는다. 하지만 도시락을 싸주는 누군가가 있다면 도시락에 마음을 담아서 싸준다.


그 사람의 마음을 도시락을 통해 전달받는다. 짜파게티도 혼자서 먹는 맛이 좋지만 사랑하는 이가 끓여 주는 짜파게티를 같이 앉아서 먹는다면 더 맛있지 않을까 싶다. 그리고 그 사람과 함께 쿵푸허슬을 보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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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tella.K 2022-08-28 19:41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엇, 그점 저 짜파게티도 앤님께서...? ㅋ
면을 끓일 때 집된장을 넣는다는 건 처음 알았습니다.
한번 넣어봐야겠습니다.
저는 면을 삶을 때 양파를 다져 넣습니다.
원래 짜장이 양파가 반 아닙니까? 그럼 짜파게티의 맛을 끌어올려주죠.^^

교관 2022-08-29 11:41   좋아요 1 | URL
짜파게티는 무한 변신이 가능한 트랜스포머 ㅋㅋ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