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강변 호텔’은 짐 자무시의 ‘커피와 담배’ 단편들을 바늘로 잘 이어 붙여서 다시 죽 늘려 놓은 영화 같았다. 한 마디로 너무 좋았다. 특히 기주봉과 권해효는 로베르토 베니니처럼 능청맞게 연기를 잘한다.


박광정이 죽지 않고 살아 있었으면 여기에 껴서 능청맞고 지질하고 생계 위기형 코믹 슬픈 연기를 잘했을 텐데, 하는 생각이 든다.


강변 호텔에는 ‘괜찮아’가 많이 나온다. 보통 영화에서 ‘괜찮아’ 대사가 영화를 망치는 경우가 더러 있는데 강변 호텔에서 ‘괜찮아’는 참 괜찮다.


강변 호텔을 본 사람은 알겠지만 김민희와 송선미가 눈밭에 서 있는 장면은 무척 인상적이다. 나는 그 장면이 너무 좋아서 그 장면을 따라 그려봤다. 저 멀리 강 건너에는 마을이 있지만 마을의 모습은 어려워서 그리지 못했다.


괜찮아, 가 남발이 되면 사실 괜찮지 않다. 위로에도 적당해야 한다. 정말 괜찮은 시가 있다. 한강 시인의 ‘괜찮아’이다.


태어나 두 달이 되었을 때

아이는 저녁마다 울었다

배고파서도 아니고 어디가

아파서도 아니고

아무 이유도 없이

해질녘부터 밤까지 꼬박 세 시간


거품 같은 아이가 꺼져버릴까 봐

나는 두 팔로 껴안고

집 안을 수없이 돌며 물었다

왜 그래.

왜 그래.

왜 그래.

내 눈물이 떨어져

아이의 눈물에 섞이기도 했다


그러던 어느 날

문득 말해봤다

누가 가르쳐준 것도 아닌데

괜찮아.

괜찮아.

이제 괜찮아.


거짓말처럼

아이의 울음이 그치진 않았지만

누그러진 건 오히려

내 울음이었지만, 다만

우연의 일치였겠지만

며칠 뒤부터 아이는 저녁 울음을 멈췄다


서른 넘어야 그렇게 알았다

내 안의 당신이 흐느낄 때

어떻게 해야 하는지

울부짖는 아이의 얼굴을 들여다보듯

짜디짠 거품 같은 눈물을 향해

괜찮아


왜 그래, 가 아니라

괜찮아.

이제 괜찮아. - 시집 [서랍에 저녁을 넣어 두었다]



강변 호텔에는 딱 한 편의 ‘시’가 나온다. 그 시가 어찌나 좋은지 기주봉이 술이 되어서 그 시를 읊을 때 정말 시 속의 그 아이와 그 아이를 놓을 수 없는 그 집단이 눈앞에 그려지는 것 같았다. 강변 호텔의 이 한 장면 만으로도 이야기의 상상을 잔뜩 불러낸다.


희망과 기대의 차이를 존 버거가 고민 끝에 말했다. 기대는 몸이 하는 것이고, 희망은 영혼이 하는 것이라고. 하지만 기대도 희망도 없을 때 '시'가 눈이 되어 잠깐 잠든 사이에 온 세상에 내렸다. 눈이 된 '시'는 왜 그래, 가 아니라 괜찮아, 괜찮아, 이제 괜찮아.라고 해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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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전혜린의 글 중에서 이 부분을 가장 좋아했다. 전혜린이 남편을 만나 결혼을 하고 행복했던 때의 일이다.


[그러나 우리는 젊었고 대체로 행복했다. 먹거나 입는 것보다 책을 사는 것과 책을 읽는 것을 중시하고 좋아하는 우리의 근본적 공동 요소는 그대로 허용되고 유지되었다. 그 점에서는 우리는 언제나 의견이 완전히 일치해 있었고 지금도 그렇다. 가령 수입의 반을 넘는 책 한 권을 사기를 우리는 한 번도 주저해 본 일이 없다.

 그 대신에 언제나 가난했고 가난이 우리에게는 재미있었다]라고 전혜린을 말했다.


이 부분을 그는 무척이나 좋아했다. 책이 좋아 엘리베이터 안에서도 책을 보는 그에게 전혜린의 이 행복이 그에게도 그대로 전해졌다. 그는 가난하더라도 이렇게 책을 구입할 수 있고, 책을 읽을 수 있는 공간이 있고, 그 책을 같이 나눌 수 있는 사람이 있다면 가난해도 정말 행복하겠구나, 상상을 했다.

 

 전혜린은 프랑스와즈 사강의 글을 읽고 그 글에 대해서 남편과 이야기를 하고 남편은 그 글을 한국에서 출판할 수 있게 도와주고. 가난해도 이렇게 지낼 수 있다면, 이런 일상이라면 그는 죽음이 온다고 해도 슬퍼하지 않으리라 생각이 들었다.

 

 그러나 시간이 갈수록 전혜린 같은 일은 일어나지 않았고 무엇보다 어린 시절 가난하게 보냈던 그는 다시 가난해지는 것이 너무나 불안하고 무서웠다. 그는 요즘 흔히 소재로 등장하는 ‘단칸방’에서 가족이 지냈던 일을 떠올렸다. 하지만 떠올린 기억 속에서 그는 가난 때문에 불안하거나 싫어하는 모습은 없었다. 왜냐하면 그 역시 그때에는 몹시 어렸기 때문이다.


어린이들은 전시 속 포화가 터진 건물에서도 재미있게 놀기 때문이다. 어린이는 가난이라는 굴레에 얽매이지 않고 그저 매일매일 재미있게 지낼 뿐이다. 누군가 너 가난하구나,라고 욕을 하지도 않고 친구들과 놀다가 넘어져 피가 철철 나도 그때만 아파서 울 뿐, 또 조금 지나면 멈출 줄 모르는 기계처럼 달리고 또 달렸다. 어른이 된 지금에서 가난이란 책 속에서처럼, 상상 속에서처럼 가난해도 괜찮지 않았다.

 

그는 겨울에 수입이 확 줄어들어 난방을 못 한 적이 있었다. 집에 난 방을 못하니 너무 추워서 몸이 제대로 말을 듣지 않았다. 옷을 아무리 많이 껴 입어도 좀체 나아지지 않았고 위스키를 있는 대로 마시면서 밤을 지새웠다. 가난은 쪽팔리는 게 아니라 불편할 뿐이라고 했는데, 상상 이상으로 불편해지면 가난이라는 건 어느새 날카롭게 바뀌고 만다. 그는 그 사실이 무섭고 두려웠다.


부부가 가난하면 그 가난을 재미있게 보내는 게 아니라 가난 때문에 부부는 서로 싸움을 하게 되는 경우가 더 많다. 수입의 반이 넘는 돈으로 책 한 권을 구입하는 것을 반기는 사람은 요즘에는 아마도 없을 것이다. 설령 책벌레라고 불리는 사람이라 할지라도. 요즘처럼 고도의 산업화 시대(이런 말도 이미 20년 전부터 시작되었지만)에 가난한 사람을 없애고, 모두가 평등한 생활이 가능한 나라로, 같은 말을 정치인들은 늘 했다. 그는 언젠가부터 이런 말들을 믿지 않았다.


분명 사회는 고도화를 넘어 초고도화가 되었고 기본금이라든가 소득이 올라갔다는 것도 안다. 하지만 생활고로 죽는 사람은 매년 더 늘어가는 분위기다. 사람이 가난 때문에 내몰려서 결국은 죽음으로 가는 현상은 아주 오래전 5, 60년대의 일로만 여겼다. 그는 오늘도 책을 손에 들고 읽고 있다. 예전만큼 책을 읽어도 썩 행복하지 않다는 기분이 드는 건 책 속으로 들어갈수록 가난과 자꾸 가까워지는 것 같기 때문이라고 생각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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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휴에도 조깅을


하늘이 색을 갈아입는 시간



명절이 다가오면 일주일 내내 토요일인 것 같은 기분이 든다. 추석이 다가오기 때문이다. 그런 기분은 어릴 때나 나이가 들어도 거의 변하지 않는 거 같다. 어른이 되어서 명절이 되면 어린 시절만큼 풍족한 마음을 느끼기보다 불안하고 불편한 시간이 틈을 벌리고 들어온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추석이 다가오면 그 전 주는 평일인데도 늘 토요일 같은 기분이 든다. 토요일이란 일요일 같지도 않고 평일 같지도 않으니까.


어릴 때 추석은 지금처럼 이렇게 덥지 않았다. 그랬다고 생각된다. 추석이 되면 아버지는 나에게 꼭 청바지를 사주었다. 청바지가 잘 어울린다고 아버지는 그랬다. 새 청바지를 입고 친구들에게 자랑하고 싶었다. 추석이 오면 동네 친구들은 전부 어딘가로 갔지만 우리는 집에 머물렀다. 그래서 추석 전날이나 전전날에 청바지를 입고 친구들 앞에 나서고 싶은 그 마음이 어느 순간 퇴색하더니 기다리던 전화가 뚝 끊기듯 사라져 버렸다. 바야흐로 어른이 된 것이다.


어른이 되었다는 건 일상을 12로 나뉜다면 6과 5 사이에는 미묘한 불행과 덜 행복함과 고민과 불안이 불순물처럼 껴 있다는 것이다. 어른이 되면 불순물의 이물감을 매일 느낀다. 눈으로 보이는 숫자와 숫자 그 사이에 겁이 나는 수치가 숨어 있는 모습을 깨닫게 되는 게 어른이다. 그래서 명절이라고 해서 마냥 기뻐하고 새 옷을 입고 자랑하며 다닐 수는 없다. 어른의 세계란 생각보다 훨씬 고고(높고 오래된)한 관념이 틈입해있다.


라디오를 듣고 있으면 사연을 보내는 대부분의 사람들이 어른이고, 사연의 대부분은 명절이라 힘들고 괴로운 이야기가 차지한다. 재미있는 건 즐겁고 행복한 사연은 짧게 맨트가 이어지는데, 힘들고 고통스러운 사연은 길게 맨트가 이어지고 뒤에 이런저런 위로의 맨트까지 덤으로 듣게 된다. 명절이라 쉬지 못하는 사람들은 그것대로 힘들고, 내내 쉬는 사람들은 도로 위의 정체와 누구의 부모님 집에 먼저 가느냐부터 시작된 논쟁은 명절이 끝날 때까지 이어진다.


어제 한 사연이 있었는데(라디오는 아니었다) 이번에 결혼하게 되어서 처음 명절을 맞이한 신부의 사연이었다. 결혼 전에 신랑이 될 남자 친구에게, 자기네 집에는 명절에 제사 지내?라고 물으니, 아니 제사 안 지내.라고 해서 처음 명절이라 시댁과 처가댁에 들렀다가 호캉스를 가는 게 어떠냐고 남편에게 물었다. 그랬더니 남편이 뭐래는 거냐며 추석에 차례 지내는데 음식 해야지 호캉스는 무슨.라고 하는 것이다. 신부는 화가 나서 내가 결혼 전에 물었을 때 왜 제사 안 지낸다고 했잖아,라고 물으니 남편이 제사는 안 지내지, 명절이니까 차례를 지내지. 그니까 음식을 해야지,라고 했다는 것이다. 뭐 이런 내용의 사연으로 패널들이 각각의 의견을 내고 죽네사네, 하는 게 지금의 명절 분위기를 차지하게 되었다. 지질한 남녀로 보일지 몰라도 어른의 세계란 생각보다 복잡하고 생각만큼 단순해져 버렸다.


라디오 하니까 라디오 디제이들도 명절에 일을 할 수 있어서 더 좋아하지 않을까 싶다. 방송가의 일이라는 게 명절 기간에는 특별한 날로 지정을 해서 쉬지 못한다. 그래서 오히려 더 좋아하는 디제이들도 있지 않을까 싶다. 멘트를 할 때 말속의 리듬이나 분위기를 보면 대놓고 나는 명절 기간에 라디오를 할 수 있어서 좋아 죽어요,라고 하지 않아서 그렇지 분위기는 그렇다.


디제이 하니까 좀 쓸데없는 이야기로, 이제 라디오 디제이는 전문 디제이가 디제이를 하는 경우가 없다. 거의 없는 것 같다. 그러니까 예전의 이종환의 밤의 디스크쇼나 김기덕의 2시의 데이트, 김광한의 추억의 골든팝스처럼 전문 디제이가 라디오를 하지 않고 가수나 연예인들이 디제이를 한다. 그래서 뭐랄까 재미는 더 있어졌다. 이들도 아슬아슬하니까 6개월마다 평가를 해서 다른 디제이로 갈아치우는 일이 비일비재해졌다. 전문 디제이보다 연예인이 대중에게는 더 알려졌으니까 라디오 관계자들은 머리를 맞대고 고민을 했을 것이다. 그리고 지금처럼 이렇게 흘러가게 방향을 잡았다. 그래야 청취율이나 실시간 반응이나 이런 것들로 살아남아야 하니까. 역시 어른들의 세계는 눈으로 보이는 그 세계 너머의 세계가 있다. 무시무시한 것이다.


나는 실시간으로 들어보지 못했지만 이종환의 밤의 디스크쇼를 유튜브로 들어보면 80년대 감성이 물씬 난다. 밤 11시부터 자정까지 한국의 청춘 내지는 감성이 풍만한 사람들은 라디오를 끼고 매일 밤을 음악의 바닷속에서 춤을 추었을 것이다. 사람들은 정성스럽게 적은 엽서를 보내고 일주일 동안 나의 사연이 나올까 조마조마하며 매일 라디오 주파수를 맞추었다. 조용한 이 밤을 음악과 함께 즐기겠다며 사연이 이종환 디제이의 입을 통해 흘러나오는 것이다.


[소중한 내 마음 당신께 드립니다.

하늘처럼 파랗고, 진실한 사랑의 눈동자.

깊은 곳에 있는 내 사랑은,

아름다운 얼굴은 나를 길을 잃게 했습니다.

나를 믿으십시오. 내 사랑을 믿으십시오.

당신의 모든 걸 열망하는 내 사랑을 믿으십시오.

캐니 로저스, 조지 해리슨 그 외 여러 가수들의 노래를 신청해 주셨는데 그중에 사이먼 앤 가펑클의 노래를 골랐습니다. 브리짓 오브 트레블 워터, 험한 세상에 다리가 되어드리겠습니다]


가을을 수놓는 디제이의 맨트와 밤하늘에 퍼지는 사이먼 앤 가펑클의 노래가 하늘의 별처럼 반짝였다. 사람들의 마음을 덜 불안하게 하는 디제이의 중량감 있는 목소리와 멘트.


이제 우리 집에서는 명절에 음식을 하지 않는다. 몇 해에 걸쳐 타협을 한 결과 이제 명절에 아무것도 하지 않는다. 어르신들의 고집이나 생각을 바꾸는 아주, 너무, 무척이나 어려운 일이다. 정말 계란으로 바위를 치는 격이다. 유교문화에서 시작된 제사상 차리기는 잘못된 것이 많다. 거침없는 세계사의 썬킴의 이야기를 들어보면 그런 걸 잘 말해주고 있다. 또 말도 많고 탈도 많은 맛 칼럼니스트 황교익도 예전부터 그런 걸 주장했다. 홍동백서는 일본에서 건너왔고 유교문화에서는 간소함과 무소유가 원칙이라 지금도 퇴계 이황 종갓집에서 지내는 제사상에는 밥상과 술이 전부다. 전을 부치고 하는 것도 원래 없었다. 기름을 먹어야 했던 스님들이 명절에 전을 굽고 하던 불교식 음식 만들기가 명절 음식으로 들어왔다. 유교문화에서는 기름 음식을 올리지 않았다고 한다.


명절에 상다리 부러지게 차리는 건 절대 권력자가 오래전에 명절에는 배부르게 먹자며 전통시장을 살리는 계기도 되어서 그날은 대목으로 불리게 되며 점점 퍼져나갔다. 어르신들은 이게 마치 정말 조상들이 그렇게 해서 지금까지 해야 하는 것으로 여기고 있기 때문에 한 번 입력된 프로그램을 바꾼다는 건 너무나 힘들 일이다. 무엇보다 위에서도 말했지만 언젠가부터 추석은 아직 여름의 더운 기운이 빠지지 않았는데 맞이하게 되었다. 더운 날 불판 앞에서 그 많은 음식을 지지고 볶고 굽는 행위는 너무 이상하다.


썬킴의 말에 따르면 홍동백서가 왜 나왔냐 하면 돈을 주고 족보를 사버린 노비들이 좀 더 있어 보이기 위해 상차림을 거하게 차리게 되었는데, 일본 전통에 1180년에 원평 전쟁이라고 해서 원 씨와 평 씨, 두 집안의 전쟁이 있었다. 원 씨는 흰색 깃발, 평 씨는 붉은 깃발. 두 집안에 싸우기 시작했는데 그때부터 일본의 모든 경쟁 구조를 홍백으로 나누기 시작했다. 지금까지 그 잔재를 알 수 있는 문화가 홍백가합전이다. 이걸 일제강점기 때 누군가 튀어 보이려고 제사상차림에 만든 게 홍동백서라고 한다. 우리 전통, 대한민국 전통에는 홍, 백이라는 개념이 없다고 한다.


그리고 성균관에서 얘기한 것 중 결정적인 것은 유교 제사 음식은 남자가 만들었다고 한다. 100% 남자가 만들었다. 유교문화에서 왜 제사음식을 남자가 만들었는지 예전에도 한 번 올렸던 글을 링크해본다. https://brunch.co.kr/@drillmasteer/2493


내가 사는 곳은 바닷가인데 예쁜 카페들이 많다. 어느 카페에서는 여기 테라스에 앉아서 일출을 보면 아주 아름답다고 해 놨다. 과연 예쁜 자리이기도 하고, 앉아서 저기 먼바다의 수평선 너머로 오메가를 뿜으며 이글거리는 해가 떠오르는 모습은 아름다울 것이다.


그런데 일출은 아파트에서 봐도 아름답다. 밤을 새우고 찌뿌듯한 몸으로 길거리를 걷다가 보는 일출도 아름답다. 변기에 앉아서 창문으로 보는 일출도, 만취에 보는 일출도, 다리 위에서 보는 일출도 다 아름답다. 일출이란 어디서 보든 아름답다. 단지 일출은 살면서 몇 번 보지 않기에 어쩌다 보는 일출은 몹시 아름답다고 느낀다. 그걸 일탈이라고 부른다. 일상에서 매일 일출을 본다면 아름답지만 일탈 속에서 보는 아름다움과는 또 다를 것이다. 에르메스를 구입할 때의 마음과 일상 속으로 들어온 에르메스를 대하는 마음이 같을 수는 없다.


명절이 일탈이라면 아름답고 행복해야 하지만 그렇지 않은 어른들이 많아졌다. 어찌 되었던 연휴가 시작되었다. 일출은 어디서든 볼 수 있지만 일출이 아름다운 건 매일 보지 않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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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밤중에 출출하면 이 출출함을 다른 것으로 달랠 줄 방법이 없다. 뭘 하지? 뭘 하면 이 출출함을 잊어버릴까 싶지만 우왕좌왕의 생각으로 출출함의 게이지가 좀 더 상승을 한다. 아몬드를 몇 개 씹어 먹고 호두를 앞니로 야무지게 씹어 먹으며 출출함을 달래야지,라고 하지만 3분 뒤면 출출함이 눈사람처럼 커지기만 할 뿐이다.


출출함이 오밤중에 밀려오면 빨리 판단해서 라면을 먹는 게 낫지. 이것저것 주워 먹고, 다른 생각을 해봐야 소용이 없다. 하지만 여기서 또 라면을 팔팔 끓여서 계란을 넣고 파를 넣고 어쩌고 하면 일이 커진다. 출출함을 달래는 게 아니라 포만감 충만으로 또 후회가 몰려오기 때문에 컵라면으로 출출함을 달래기로 한다.


컵라면 또한 라면만큼 막강한 힘을 가지고 있다. 끓여 먹는 라면만큼 덜 미안하고 출출함도 달래주는 컵라면으로 왕뚜껑으로 선택을 한다. 일단 보기에도 크고 넓어서 좋다. 왕뚜껑 라면이라 봐야 뭐 양도 얼마 안 된다. 어떻든 내가 나에게 덜 미안한 마음을 가지게 한다. 물을 끓여서 붓고 난 뒤 3분 있다가 뚜껑을 열었다.


저녁을 먹고 남은 반찬으로 두부와 부추전이 있어서 그걸 토핑으로 이렇게 올렸다. 국물이 잘 배어 들 수 있도록 또 1분 정도 있었다. 먼저 국물을 빨아먹은 부추전을 한 입 먹었다. 아, 이 맛은 우리가 흔히 고급 뷔페에서 맛보는 천상의 맛이 아닌가. 두부의 맛 또한 어떠하리. 그저 맛있다는 말 밖에 할 말이 없다.


시간은 새벽 1시.


라면 한 그릇 하기에 딱 좋은 시간이다. 호로록 먹으면 왕뚜껑 라면 특유의 맛이 위장으로 흘러들어 간다. 부추전이 좀 더 있었는데 그걸 다 넣어서 먹었다. 두부 역시 더 있었는데 냠냠 맛있게 먹었다. 먹고 남은 그릇 밑바닥에 찰랑거리는 그리움처럼 미미하게 국물이 좀 남아 있다. 헤헤 거리며 남은 밥을 살짝 말았다.


말았다기보다 비벼먹는 기분으로 호로록. 분명 나는 덜 미안하다. 냄비를 꺼내고, 팔팔 끓이고 계란을 깨지 않아서 요란스럽지 않고 한 끼 정도가 아니기 때문에 분명 나는 덜 미안하다. 덜 미안하다. 내가 미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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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힌남노가 덮쳤을 때 태화강에서 불어난 강물에 나무에 매달려 있다가 구조된 노인의 기사가 떴을 때 실시간 댓글로 사람들이, 할아버지 왜 가지 말라는 곳에 갔어요? 어쩌자고 거길 갔나요? 같은 댓글이 많았다. 저 할아버지는 그곳에 나간 것이 아니라 내내 그곳에 늘 계신다.


매일 조깅을 하러 강변에 나가면 할아버지는 매일 저곳에 늘 멍한 눈빛으로 앉아 있다. 이번에 힌남노가 왔을 때에도 그곳에 있었던 걸 보면 가족이 없는 것처럼 보인다. 할아버지는 이번 여름, 폭염이 기승을 부리는 날에도 사진에 보이는 두꺼운 옷을 입고 한 번도 씻지 않은 얼굴과 손을 하고 늘 앉는 곳에 앉아있거나 때로는 잠이 들어 있다.

가족이 없거나 돌아갈 집이 없다고 생각을 했는데, 언젠가부터 할아버지보다 조금 더 나이가 적은 할아버지가 매일 저녁에 도시락을 싸와서 저 할아버지에게 먹인다. 할아버지는 다른 할아버지가 가져다준 도시락을 맛있게 남김없이 드신다. 할아버지가 매일 이곳에 나와서 앉아 있는 모습을 보게 된 건 올해가 들어서였다.


작년, 재작년, 그 이전에는 못 보던 할아버지다. 올해 봄이 지나서부터 보게 되었다. 나는 거의 매일 일정한 시간에 조깅을 하러 강변에 나가다 보니 할아버지를 보게 되었는데 봄이 지난 후부터 매일 저녁에는 저렇게 저 자리에 앉아서 어딘가 한 곳을 응시하고 있다. 태풍이 오기 직전까지 아마도 여기에서 그대로 누워서 잠이 들었다가 아침이 되면 일어나거나 할지도 모른다.


처음에는 말을 걸어 보았으나 전혀 대꾸가 없어서 말을 하지 못하는 줄 알았다. 그리고 저녁밥을 챙겨주는 다른 할아버지가 가족인 줄 알았는데 그것도 아닌 것 같았다. 기사를 접하고 사람들은 집에서 왜 나왔냐고 하는데 집도 없는 것 같고, 할아버지는 강변의 늘 저 자리에 앉아 있다가 문명과 동떨어져 있어서 태풍이 오는 것도 모른 채 불어난 강물에 나무에 매달려 있다가 구조가 되었지 싶다.


이 기회를 통해 가족도 찾았으면 좋겠고 무엇보다 위생이 너무 안 좋은 것 같아서 목욕을 좀 했으면 한다. 할아버지는 손과 얼굴이 아주 까맣다. 한국인 아니라고 할 정도로 검은색을 띠고 있어서 몸에 큰 문제가 있나 싶었는데 팔을 걷으면 다른 피부는 하얗다. 얼굴과 손은 그저 그을려서 그렇게 되었지 싶다. 할아버지는 폭염이 왔을 때에는 겉옷을 벗는데 그 안에도 스웨터를 입고 있다. 그리고 몸이 가려우면 늘 들고 다니는 긴 나무 꼬챙이로 등을 긁는다. 그때 보면 피부가 하얗다. 물론 언제 씻었는지 알 수 없기 때문에 폭력적인 냄새가 난다.


어제저녁에 조깅을 하러 나갔을 때에는 물론 할아버지는 그 자리에 있지 않았다. 아직 조깅 코스에 흙물이 빠지지 않아 진흙처럼 되어서 앉아 있을 수도 없다. 이렇게 저 할아버지를 언급하는 건 이전에도 한 번 저 할아버지에 대해서 한 번 글을 쓴 적이 있기 때문이다. https://brunch.co.kr/@drillmasteer/2901


 구부리고 앉아서 초점 없는 눈으로 한 곳을 바라보는 할아버지의 등을 보고 있으면 고독의 정점을 이룬다. 그날이 유월인데 비가 내려 추운 날이었다. 아마도 그날 할아버지에게 말을 걸지 않았나 싶다.


비가 오는 날에는 강변에 조깅을 하러 나오거나 운동을 하러 나오는 사람이 거의 없다. 그럼에도 저 할아버지는 늘 저곳에 앉아있다. 나는 비가 와도 조깅을 하러 나가니까 넓고 넓은 강변에 저 할아버지와 나는 저곳에서 이상하지만 정신적인 유대 같은 것으로 점점 이어지는 기분이었다. 할아버지는 늘 어딘가를 응시하고 있고 나는 몸을 풀면서 할아버지의 굽은 등을 본다. 얼마 전에 다 떨어진 운동화가 새것으로 바뀐 것을 보았다. 아마 이런 정신적인 유대가 없었다면 그것을 눈치채지 못할지도 모른다.


분명 누군가에게 도움을 받고 있다. 하지만 할아버지는 그 이상의 도움은 바라지 않을지도 모른다. 딱 그 정도의, 딱 배곯지 않을 정도의, 딱 운동화가 떨어지면 새로운 운동화를 신을 정도의 도움만을 필요로 할지도 모른다. 힌남노가 지나갔다. 말 그대로 동해안은 강타했다. 머리를 짓누르고 지나갔다. 인명피해는 없을 줄 알았는데 피해가 났다. 할아버지는 나무에 붙어 있다가 구조가 되었다. 이제 이후에는 오늘 이전과는 달랐으면 한다. 할아버지는 분명 그렇게 오래 살지 못할 테고 더 이상 바라는 것도 굉장한 것이 없을지도 모른다. 딱 그 정도의. 어딘가 초점 없는 눈으로 실컷 볼 수 있는 그 정도의 삶을 지낼 수 있다면 이렇게 변수가 많은 강변의 벤치보다는 더 나은 곳도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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