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빔면은 봉지 뒤 조리법에 따라서 해 먹으면 맛있게 먹을 수 있다. 광고에서처럼 오른손 왼손 양손으로 잘 비벼서 호로록 먹는 게 비빔면이다. 비빔면을 언제 처음 먹어봤는지 잘 기억은 없지만 비빔면을 먹을 때마다 느끼는 건 라면 만드는 사람들은 도대체 어떤 머리와 노력을 하는지 이렇게나 새콤하면서 맛있는 라면은 끊임없이 계속 만들어 내는 것에 감탄을 하게 된다.


비빔면은 확실하게 하나로 모자란다. 두 개 정도가 국물 있는 라면 하나 정도 먹는 것과 비슷하다. 그래서 세 개를 끓여서 천천히, 딴짓을 해가며 먹는 맛이 있다. 딴짓이라면 비빔면을 먹으면서 짜파게티를 생각한다던가, 는 새빨간 거짓말이고 주로 소설을 읽으며 호로록 먹기에 좋다. 라면처럼 빨리 먹어 치워야 하는 강압적인 분위기가 없는 게 비빔면이다. 차갑기 때문에.


근래에 비빔면을 오랜만에 먹었는데 이상하게 매워진 것 같았다. 내가 매운 음식을 잘 못 먹는 맵찔이 이기는 하지만 이상하게 맵다고 느꼈다. 오이 물김치도 매워서 이 두 음식을 합치니 아주 매워서 연신 입에서 소리를 내며 먹었다. 이상하다, 예전에 비빔면을 먹을 때에는 이렇게 맵지 않은 것 같았는데 점점 매운 음식을 못 먹는 어린이 입맛으로 변해가는 것 같다.


그래서 비빔면을 뜨겁게 해 먹었다. 비빔면을 뜨겁게 해 먹으면 시원하게 해 먹는 것보다 개인적으로는 훨씬 맛이 좋다. 비빔면을 뜨겁게 해 먹었던 건 군대에서였다. 군대에서 봉지라면을 많이 해 먹었는데 비빔면도 그렇게 해 먹을 때가 많았다. 쫄다구 시절, 점심을 먹고 나도 돌아서면 배고프지, 근무 시간 외에는 빨래에, 내무반 걸레질에, 화장실 청소에 땀이 마를 새 없이 움직여야 했다. 허기는 시도 때도 없이 찾아오고 봉지라면의 국물까지 호로록 먹을 시간은 없다. 그때 비빔면을 봉지라면으로 해 먹는다.


시간에 쫓기니 뜨거운 물에 면이 붇기를 느긋하게 기다렸다가 찬물에 씻어서 비벼서 먹을 수가 없다. 그냥 봉지의 뜨거운 물을 버리고 뜨거운 면에 비빔면 소스를 비벼서 봉지를 촥 펼쳐서 호로록 먹고 근무에 투입이 된다. 생각 외로 맛있어서 자주 해 먹었다. 집에서 비빔면을 뜨겁게 해 먹으면 훨씬 맛있게 먹을 수 있다.


먼저 팔팔 잘 끓인 다음에, 짜파게티처럼 물을 다 버리지 않고 그대로 양념장을 짜 넣어서 다시 팔팔 끓여 졸인다. 그때 치즈를 한 장 넣어서 휘휘 비빈다. 그다음에 케첩을 양 껏 뿌린 다음에 마지막으로 토핑을 해서 먹으면 아주 맛있는 토마토 스파게티의 맛이 난다. 면 자체가 맛있어서 스파게티 면보다 더 졸깃하고 맛있는 것 같다.


요즘은 국물 라면을 세 개를 끓여서 먹지 못한다. 불과 몇 해 전까지만 해도 라면은 보통 세 개를 끓여서 먹었는데 이제는 한 개를 먹고 밥 말아먹고 나면 포만감이 들어 화가 나기도 한다. 하지만 비빔면을 뜨겁게 해서 스파게티화 시켜서 오물오물 천천히 먹으면 두 개 정도 먹고 나면 약간 아쉬운 생각마저 든다.


늘 드는 생각이지만 케첩과 마요네즈는 정말 식탁 위에서 마법을 부린다. 요물스러운 물건임에는 틀림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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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로나 전에는 추석이 끼인 이맘때 해가 떨어지고 난 후 밤에 할 수 있는 것 중에 가장 마음에 드는 것이 바닷가에서 맥주를 마시며 책을 좀 읽는 것이었다. 해변을 거니는 사람들은 반팔이지만 바닷가에 가만히 앉아 있으면 바닷가 바람에 추우니 겉옷이 필요하다.


조깅을 하고 난 후 맞는 바닷바람이 아주 시원한 날의 연속이다. 시월 어느 정도까지 이렇게 좋은 날은 계속되다가 어느 날 밤부터 볼기짝을 후려치듯 추운 날이 된다. 하지만 지금은 아주 좋은 계절의 바람이 분다. 선풍기도 에어컨도 필요 없고, 두꺼운 옷도 필요 없는 날이다.


이런 날 바닷가에 앉아서 버드와이저를 홀짝이며 책을 읽고 있으면 어느새 술이 오른다. 조깅을 하면서 에너지를 소모한 탓에 약한 술에도 금방 달아오른다. 누군가와 이야기를 하며 맥주를 마시면 이만큼이나 마셔야 술에 취하지만 조깅을 하고 난 후에 책을 읽으며 홀짝홀짝 마시면 한 두병에도 술이 오른다.


바닷소리와 사람들의 소리, 맥주를 마시는 소리가 어우러져 기분 좋은 잡음이 되어 조금만 마시는 맥주의 양에도 금방 술이 오르고 만다. 술이 오르면 책을 덮고 밤바다의 정취에 한 번 더 취하고 풍경을 멍하게 바라본다. 바다는 아주 고요한데 묘하게도 파도치는 소리는 의외로 크게 들린다. 밤바다를 바라보는 사람들의 등을 본다. 오랫동안 앉아서 바다만 하염없이 바라보는 사람도 있다. 아마도 그리움이 많은 사람일 것이다.


그리움이 많은 사람은

계절의 바다를

당신보다 오래

붙잡아두려 한다


여기 바닷가에는 속초의 대포항에서 나는 냄새는 나지 않는다. 강한 바다의 짠내가 없다. 대포항에서는 겨울에도, 여름에도 작은 횟집이 몰려 있는 포구에도, 오징어순대를 파는 곳에도 바다의 짠 내가 있지만 여기 바다는 없다.


보통, 바다는 가물면 짠 내가 심해지는데 이곳 바다는 그런 바다의 냄새가 없다. 이곳에 살며 매일 바다에 나와서 냄새를 맡지 않으면 알 수 없는 일들이다. 몹시 가물거나 비가 많이 내리는 날에도, 유월에 달과 지구가 가까워져 조수간만의 차가 심해지는 날에도 짠 내는 나지 않는다. 오히려 고여있는 호수에서 나는 물비린내가 난다. 민물에서 나는 물 비린내가 여기 바다에는 도사리고 있다.


저 먼 수평선에 오징어 배가 일렬로 죽 늘어서 있으면 어두워도 하늘과 바다의 경계가 보이는데 오늘은 하늘과 바다의 색이 같다. 도화지에 검은 물감으로 채색을 한 것처럼 보인다. 날이 좋아 거리를 두고 삼삼오오 나온 사람들이 보인다. 예전보다 못 하지만 외국인들도 보인다. 그들 모두는 마스크를 쓰고 있다.


바다를 찾는 사람들에게서 조급함은 찾아볼 수 없다. 분명 누군가는 지금 이 시간에도 아무도 보지 않는 곳에서 여러 사람들을 위해 영차영차 페달을 열심히 밟고 있을 것이다. 세계는 눈에 드러나지 않는 그들 덕분에 잘 굴러가고 있는 건지도 모른다. 이 시간에 행복한 사람도 있고, 덜 불행한 사람도 있고, 아픈 사람도 있고, 더 아픈 사람도 있을 것이다. 세계는 그렇게 생겨먹은 것이니까.


명절을 맞이해서인지 예전의 팝들이 많이 나왔다. 미스터 빅의 ‘투 비 위드 유’가 나왔고, 테이크 댓의 ‘아이 파운드 해븐’도 나왔다. 그리고 토미 페이지의 노래도 나왔다. 소년 같은 목소리의 토미 페이지. ‘아일 비 어 에브리띵’을 오랜만에 들었다. 토미 페이지는 가족 중 누군가가 한국인과 밀접한 관계가 있어서 한국을 좋아한다며, 오래전 배철수 음캠에 나와서 라이브로 노래를 불렀다. 라이브로 부르는 노래는 엉망이었지만 끝까지 부르려고 했다. 배철수도 그런 그의 태도를 존중했다.


토미 페이지는 노래를 불러 유명해지고 싶었다. 학창 시절부터 학교 밴드에서 노래를 불렀다. 자신의 노래가 조금 떴을 때 티파니와 뉴 키즈 온 더 블록의 오프닝 무대에 섰다. 그때 사람들에게 “너 같은 거 말고 빨리 뉴 키즈를 불러내”라는 소리를 들을까 봐 너무 긴장을 했다. 투어 중에 혼자서 호텔 로비에 앉아서 피아노를 치고 있었는데 뉴 키즈의 조던 나이트가 그 모습을 보고 자신이 부를 노래를 준다. 그 노래가 ‘아일 비 어 에브리띵’이었다. 그리고 뉴키즈의 대니 우드도 붙어서 토미 페이지가 그 노래를 완성할 수 있게 도와주었다.


그랬던 토미 페이지는 하늘로 가버렸다. 노래 부르는 건 즐거운데 그것으로 수익을 창출하고 생활을 해 나가는 건 너무나 힘든 일이다. 인기는 한순간이고 유한한 삶을 이어 붙이지 못했던 토미 페이지는 그렇게 짧은 생을 자신의 손으로 마감하고 말았다. 자신의 별로 돌아갔다.


나의 별은 어디일까. 데이빗 보위도 몇 해 전에 자신의 별로 돌아갔다. 나의 별을 어디에, 같은 쓸데없는 생각도 바닷가에서는 해도 된다. 그들의 음악을 잔뜩 늘어놓고 들었던 기억은 분명 살아있는데 죽은 기억이 되어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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힌남노가 할퀴기 24시간 전
힌남노가 할퀴기 하루 전 자동차를 철수시킨 저녁의 강변 주차장 모습, 시간상 위의 사진 하루 전 저녁
힌남노가 제주도 가까이 왔을 저녁 시간에 내리는 비바람

태풍이 오는 날 조깅을 하지 않고 일찍 집으로 갔다. 이 시간이 대략 7시 정도였다. 비가 많이 내렸고 바람도 많이 불었다. 바닷가에 살고 있어서 태풍이 온다고 하면 일단 긴장을 하게 된다. 게다가 이번에 기상청에서 하도 역대급이라는 말을 해서 베란다 창문을 잘 고정하려고 일찍 집으로 갔다.


태풍이 새벽에 할퀴고 갔고, 이 시간은 대략 오전 11시쯤이었다. 다행이라면 다행으로 이번 태풍 이전의 태풍만큼 피해가 있지는 않았다. 강물은 불어났지만 2015년 돈가, 그때에 온 태풍은 자동차를 강변의 나무에 비스듬히 걸쳐 놓고 했었는데 이번에는 강물만 좀 불어났을 뿐이다. 태풍이 오면서 대기층의 먼지까지 싹 몰고 가서 하늘이 아주 맑았다. 인간의 삶도 비슷할 것이다. 큰 태풍이 지나가고 나면 후처리가 기다리지만 일단 살아남았다면 이렇게 맑은 날을 대하게 된다.


언제 그랬냐는 듯 힌남노가 물러간 날의 하늘
평온하기만 한 강변의 모습과 하늘에 뜬 달

신호대기를 하고 있는데 리어카를 몰고 가던 할머니께서 느닷없이 의자를 꺼내서 도로에 앉았다. 할머니가 앉은 도로는 좌회전을 해야 하는 자동차 도로인데, 저 신호가 초록색이 되면 차들이 좌회전을 해야 하는데 할머니 뒤에 서 있던 차 속의 운전자가 당황을 했다. 어쩌지 못하고 있다가 문을 열고 나오는데 건널목의 신호가 파란색으로 바뀌었다. 그러자 할머니가 의자를 리어카에 올리고 리어카를 밀어서 유유히 건널목을 건넜다. 이야 이 분위기가 정말 재미있는 장면이었다.


태풍이 몰고 간 후, 며칠이 지난 바닷가 역시 하늘과 바다가 아주 깨끗했다. 해변은 아직 태풍의 영향으로 모래가 덜 말랐지만 바다와 하늘은 깨끗했다. 해도 떠서 뜨거움을 뿜어냈다. 아직은 여름의 열기가 남아있는 날이었다. 이른 아침에 나와서 햇빛을 받으며 책을 좀 읽었다. 이렇게 앉아서 읽는 책이 개인적으로는 가장 잘 읽힌다.


강변의 흙구덩이가 있는 곳은 아직 진흙과 냄새가 났지만 하늘이 여름의 하늘이 아니었다. 구름은 늘 다른 형태를 띠고, 인간의 마음과 비슷한 이데아를 지니고 있다. 조깅을 하러 나와서 그런 구름을 보는 재미도 좋다. 하늘과 구름은 3D처럼 아주 입체적이다. 어떻게 이렇게 매일 다를까. 그건 어떻게 생각을 해도 신기하기만 하다.


저녁이 되면서 저 먼 하늘에서 오렌지빛이 물들고 있다. 이제 곧 가을에게 계절을 온전하게 반납하게 되는 날이 오면 저녁의 오렌지빛은 더욱 진해져서 아주 멋진 색감을 하늘은 만들어낼 것이다. 아름답다. 멋지다.라는 말이 어울리는 하늘이다. 마치 너를 닮았다. 너의 모습을 빼닮았다.


추석이 다가오면서 보름달이 뜨기 시작했다. 아직도 강가는 태풍으로 불어난 물 때문에 축축하고 냄새가 미미하게 났다. 조깅하기에 아주 좋은 저녁, 산책하기에 더없이 괜찮은 저녁이다. 좋지 않은 나의 폰카메라로 이렇게 보름달을 담을 정도면 아주 괜찮은 폰카메라로 사진을 담으면 크고, 멋진 왕의 얼굴을 닮은 보름달을 담을지도 모른다.


다음 날에는 보름달이 더 보름달이 되었다. 더 밝고 크게 떴다. 추석이 하루 남았던 날이다. 모두가 이렇게 밝게 뜬 보름달을 보며 소원을 빌고 그 소원이 다 이루어졌으면. 넌 무슨 소원을 빌었어? 나는 너의 소원이 이뤄달라고 소원을 빌었지.



추석이 지나고 나서 한풀 꺾인 흥분과 연휴의 후유증과 마음 같은 것들 때문인지 날씨도 아주 고요했다. 적막이 온 세상을 덮은 것 같고, 적요한 곳에 뚝 떨어진 기분이다.

사람들도 연휴의 후유증 때문인지 평소의 루틴을 찾기가 힘든지 천천히 산책을 하고 있다. 인간이란 정말 희한하다. 매년 이런 후유증을 앓는다. 명절 연휴가 다가오면 기대에 차서 계획을 잡는다. 그리고 연휴가 끝나면 늘 그렇듯이 크고 확대된 월요병을 앓는다. 그렇지만 또 금방 일상에 적응을 하고 하던 일에 몰입한다. 그리고 이런 반복을 매년 하는 것이다. 인간은 참 하찮은데 정말 대단하다. 원하던, 그렇지 않던 어떻게든 삶을 살아가고 있으니까.


강물의 흐름이 없으니까 정말 세상이 멎은 것 같다. 이 고요와 이 적막은 공허를 불러온다. 이 강물의 끝은 바다로 이어진다. 강의 끝자락에 가면 강과 바다가 만나는 곳에서 많은 사람들이 낚시를 한다. 그리고 시에서 낚시를 할 수 있게 그곳만 낚시터로 만들었다. 숭어와 전어가 동시에 올라오기 때문에 일 년 열두 달, 비가 오나 눈이 오나 낚시꾼들이 없는 날이 없다. 마치 강은 끊임없이 흐르는데 마르지 않는 것과 비슷하다. 아마 이 강이 마르는 날이면 이 도시도 생명이 다 했다고 봐야겠지.


여기 이곳 강의 낚시터에 한때는 외국인들이 낚시를 많이 했다. 외국인이라고 해서 유럽이나 아메리칸은 아니고 주로 중국인과 베트남 사람들이었다. 중국인들은 전 세계, 어느 도시에나 있는 것 같다. 여기에도 중국인들이 많이 산다. 한때는 베트남 사람들이 낚시를 열심히 했다. 마치 대회라도 하듯이 조깅을 하러 나오면 베트남 언어가 들리며 죽 일렬로 서있거나, 10대가량의 낚싯대를 드리우고 낚시를 했다. 코로나 전이었다. 지금은 이상하지만 거의 볼 수 없다. 지금 낚시를 하는 사람들은 다 한국인들이다. 그 많던 외국인 낚시꾼들은 다 어디로 갔을까.


어제인가, 아침에 출근을 하면서 도로에서 캡아를 봤다. 두두둥 정말 멋있게 앞으로 붕 지나갔다. 그러고 보면 이제 마블의 영화나 드라마에서 세대를 교체하고 있다. 아이언맨에서 스파이더맨으로 바뀌었고, 헐크도 이제 쉬 헐크가 대신하고 있다. 이 정도면 이제 마블도 영광을 누렸으니 그만해도 되잖아, 하는 생각이 들지만 아직 라인업을 보니까 또 10년은 더 캐릭터가 나올 거라고 한다. 쉬 헐크는 초인들의 변호를 맡는 변호사가 되는데, 어보미네이션의 변호를 맡는다. 어보미네이션은 헐크 2편-인크레더블 헐크 때, 그때는 에드워드 노튼이 헐크였는데 그때 초인 약물을 투여받고 헐크보다 더 괴물 덩어리 어보미네이션이 되었는데, 쉬 헐크에서 그때 자신은 혈청을 받아서 헐크와 대적할 마음이 없었는데 국가가 나를 그렇게 내밀었다. 나는 국가를 상대로 변호를 맡아달라고 해서 쉬 헐크가 변호를 맡으면서 이야기가 진행된다. 마블은 정말 참으로 다양한 이야기가 전개된다는 생각이 든다.


조깅을 마치고 돌아오는 길은 항상 시장통을 지나서 온다. 그곳은 오래된 곳이라 허물어지는 것과 저 멀리 새로운 것이 동시에 보인다.


새로운 것과 사라지는 것,

헌 것과 새것,

지는 것과 떠오르는 것이 동시에 존재하는 세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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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전 5시 38분. 폰이 켜지고 노래가 흘러나오며 그 소리에 저는 잠에서 깼습니다. 아, 지금은 여행 중이었지, 이틀 정도 가까운 곳으로 여행을 다녀왔습니다. 눈뜨자마자 바로 일어나 창문을 열고 낯선 곳의 공기를 맡아봤습니다. 그래 봐야 20초 정도 열었다가 창문은 닫아 버렸습니다. 공기가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차가웠습니다. 마치 겨울의 한가운데에서 발가벗은 채 서 있는 것 같았습니다.


때 묻지 않은 오전과 손상받지 않은 하루가 주는 기분으로 낯선 곳에서 여행이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낯선 곳에는 일탈의 자유가 있습니다. 반면에 일상의 편안함과는 거리가 조금 멉니다. 폰 속에서 조안 바에즈의 ‘Blowin’in the wine’가 나오고 있었습니다. 보브 딜런이 부른 것보다 훨씬 더 듣기가 좋았습니다. 조안 바에즈의 목소리에는 그런 매력이 있습니다. 이른 아침의 평온함을 방해하지 않는 목소리였습니다. 차가운 공기를 맡으며 잠시 노래에 심취했습니다.


맥락 없이 이어지는 시간 속에서 조금은 벗어났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맹점이 흐트러져 지겨운 기분이 들 때쯤 이곳으로 왔습니다. 7시까지 시간의 사치를 즐기다가 양치질만 하고 밖으로 나와서 30분 정도 조깅을 했습니다. 숨어 차더군요.


이곳도 바닷가라 아침 일찍부터 문을 여는 오래된 식당과 스낵바, 잡은 해산물을 바로 튀겨주는 곳이 있는 곳입니다. 날은 어제보다 기온은 낮았지만 30분쯤 달리고 나니 몸에 데워졌습니다. 9시까지 산책을 했습니다. 그러다가 문을 연, 바다가 코앞인 노천 테이블에 앉았습니다.


오전이라 기름으로 하는 음식은 준비 중이라서 안 된다고 하더군요. 말린 문어로 만든 샐러드와 햄에그 샌드위를 주문했습니다. 그리고 맥주를 주문했는데 맥주는 리투아니아의 맥주라고 하더군요. 그렇게 앉아서 조안 바에즈의 노래를 계속 들으며 맥주를 홀짝이고 샌드위치를 먹고 있으니 여행객들이 어슬렁 체육복 바람으로 나와서 자리를 잡고 식사를 했습니다.


거리는 이내 커피를 볶아대는 향과 햄을 굽는 냄새와 그 사이를 파고드는 바다의 미미한 짠 내가 이곳으로 몰려든 사람들의 피로를 들어주었습니다. 여행을 가면 읽으려고 책을 들고 왔지만 결국 읽지 못했습니다. 넙치를 들고 왔는데, 가슴이 세 개 달린 여자와 미각을 자극하여 욕망을 건드리는 음식이 나오는, 읽다 보면 귄터 그라스의 면모를 느낄 수 있는 책이지만 펼쳐보지도 못했습니다.


샌드위치를 씹어 먹으며 리투아니아의 맥주를 한 모금 마신 다음 아무런 미동도 없는 바다를 봤습니다. 그저 바라보는 겁니다. 그것에 무슨 이유라든가 의미 같은 건 없습니다. 우리나라 사람들은 의미를 너무 따지는 것 같습니다. 바다를 바라보는데 아무 의미가 없습니다. 미미한 해가 이동을 하는지 옅은 그림자가 여기에서 조금 움직인 것 같았습니다.


괜찮았는데 수염이 체셔의 입 모양 같은 주인이 나와서 파라솔을 펼쳐 주었습니다. 안약을 넣은 것처럼 희미한 햇빛이 내려오다가 나에게 닿지 못하고 파라솔에 차단이 되었습니다. 거리의 식당에 사람들로 꽉 들어찼고 시끌벅적해지기 시작했습니다. 괜스레 기분이 들떠 리투아니아의 맥주를 한 잔 더 주문했습니다. 외국인들도 많이 보였습니다. 게다가 르완다 언어까지 들렸습니다. 맙소사. 마치 해저 수만 리에 사는 눈이 없고 학명도 모르는 고생물 같은 물고기가 내뱉는 언어 같았습니다. 그들이 듣기에는 우리의 언어가 또 그렇겠지요.


사람들은 모두 즐거워 보였습니다. 그 속을 벌려보면 씁쓸함도 있을 겁니다. 누군가가 담배를 피우는 모양이었습니다. 담배 연기는 자석처럼 저에게로만 옵니다. 참 이상하지요. 저의 폐를 더럽히지 마세요!라고 말하고 싶었습니다.


제가 매일 보는 바다와는 달랐습니다. 개를 데리고 산책을 하고 집에 왔을 때 목줄만 손에 들린 것처럼 놀랄만한 푸르름이라서 아찔했습니다. 바다는 몹시 깊은데 그 안이 다 보인다는 게, 그게 무서운 것 같습니다.


바다는 어째서 바다일까요. 너무 진부하지요. 바다는 시간이 시간을 만나 지나면서 조금씩 희생한 시간의 유전자 같습니다. 바다는 클래식과 같으며 여자의 마음과 비슷합니다. 종잡을 수 없습니다. 바다를 사랑하게 된 많은 이들이 바다를 두 팔로 안으려고 하지만 그게 마음처럼 되지 않습니다.


남들이 나를 제대로 알아주지 않더라도 그것에 휘둘리지 않는다고 바다는 그렇게 말을 합니다. 그래, 바다를 닮자,라고 생각을 했습니다. 이봐 넌 이미 바다를 닮았어.라고 바다가 말을 해주었습니다. 리투아니아 맥주는 그런 마법이 있는 것 같군요. 맥주를 한 잔 더 주문하니 쳬셔의 웃음 같은 수염을 지닌 주인이 와서 마지막 잔이라고 했습니다. 일 인당 3잔 이상은 안 된다고 했습니다.


다시 리와인드해서 ‘Blowin’in the wine’를 들었습니다. 아직 덜 손상받은 하루가 있는, 그런 날입니다. 또 편지하겠습니다. 그동안 잘 지내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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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날 밥상에 다리가 하나 없는 문어가 통으로 올라왔다. 다리가 하나 없는 채 잡힌 것이다. 그 모습을 보니 안도현 시인의 ‘스며드는 것’이 떠오른다. 간장게장이 된 살아있되 죽어가는 엄마 게가 꿀렁꿀렁 살 속으로 스며드는 간장 속에서 알을 품으며 이제 잠잘 시간이라고 나지막이 말해주는 그 시가 떠올랐다.


문어는 가두리가 안 되니 죽창이나 통발을 던져 잡아야 한다. 똑똑한 문어는 사람들이 자꾸 잡으러 오니 제 살 곳을 버리고 더 깊은 곳으로 바위 사이를 파고들었다. 꿈틀거리며 비집고 들어가 몸을 말고 뱃속의 새끼를 움켜잡았다. 해수의 영향으로 차가워진 바다가 바위 사이에 스며들었다.


문어는 바다의 수온이 차갑게 변하면 몸을 움직이지 못한다. 차가워진 바닷물이 몸을 덮치면 깜짝 놀라 움직이지 못하고 몸을 더 단단하게 말고 가만히 가만히 새끼들을 부여잡는다. 바다는 더 차갑게 변한 얼굴로 문어를 덮는다.


꾹꾹 저며오는 기나긴 파랑.


문어는 먹이도 먹지 못하고 움직이지도 못한 채 오랫동안 그 자리에 머문다. 그러다 문어는 뱃속의 새끼들을 생각한다. 움직일 수 없는 문어는 자신의 다리 하나를 떼서 먹으며 새끼들에게 영양분을 공급한다. 차디찬 바닷물이 물러갔을 때 문어는 파란 하날을 본다. 다리가 하나 없는 채 밥상에 오르는 것이다.


문어는 푹 익히면 질겨진다. 박찬일 요리사의 책에 문어는 슬쩍 덜 삶아서 근조직은 부드러워지고, 탱탱한 문어의 맛은 살려주는 게 문어 삶기 선수의 특징이라고 했다. 문어는 스테이크보다 익히는 기술이 더 어려울지도 모른다. 해물은 조직이 연해서 타이밍을 놓치면 눈 깜짝할 사이에 완전히 익어버리고 만다.


고기 맛도 먹어본 놈이 안다고 문어를 자주 먹어본 사람은 동해 돌문어를 수입산 문어 맛과 구분한다. 그러나 이제 돌문어가 씨가 마를 날도 얼마 남지 않았다고 생각한다. 밥상 위의 모든 문어가 수입으로 가득 찰 날이 멀지 않았고, 그날이 서로를 미워하고 아이들이 아토피 같은 새로운 변종 바이러스가 도래하는 날이 될지도 모른다.


뼈 없이 살을 지탱하며 부력을 죽도록 견뎌 수심이 깊은 곳으로 기어들어가 안식을 만난 지 얼마 지나지 않아 불현듯 지상을 만난 문어의 꾸물거림을 우리는 소중하게 생각한다. 소리 한 번 내지 못하고 새끼를 지키려 제 다리를 뜯어먹으며 삶을 견뎌온 문어의 생을 존중한다.


생을 위한 안타깝고 우아한 움직임도,

눈이라 부를 수 없는 검은 점과 흡착을 위한 문어의 발판도,

내 안에서 희망으로 꿈틀거림을 기억한다.


음식을 대하는 자세가 진지해졌다. 어른이 되었다는 것이다. 슬프고도 기쁜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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