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전에 최애라고 불릴만한 나만의 로컬카페가 있었다. 최애라는 말이 붙을 수 있는 건 몹시 세련되거나 화려하거나 메뉴가 많아서가 아니라 내가 아주 편안하게 언제든 쓱 들어갈 수 있는 곳이기 때문이다. 커피 역시 나의 입맛에 딱 맞았다. 커피라는 건 말이야 무릇 이런 맛을 지니고 있어야 해.라고 하는 것만 같았다.


커피라는 건 둔감함과 예민한 구석을 동시에 가지고 있는 양가감정 같은 것이다. 뜨거울 때 마시면 맛있고, 차갑게 해서 먹어도 맛있다. 그런데 뜨거운 커피가 식으면 맛이 떨어진다. 하지만 여기 커피는 식어도 맛있다. 식었는데 커피가 맛있는 것이다.


이곳은 정말 편안하게 들러서 커피를 한 잔 마실 수 있었다. 커피를 마시는 동안 그저 멍하게 유리 밖의 모습을 본다. 특별히 뷰가 좋은 것도 아닌데, 그래서 특별하지 않은 뷰가 특별하게 느껴져서 늘 앉는 자리에 앉아서 커피를 홀짝였다. 이제는 그 카페가 없어졌다.


그때가 아마 2015년쯤이었다. 라바짜에서 커피를 마시고 있었다. 정오가 되기 전의 시간이었는데 그 시간에 라바짜 바에 앉아서 커피를 마시고 있는 사치를 누리고 있었다. 창밖으로는 비가 내리고 사람들은 우산을 들고 저기서 여기로 오고 갔다. 자동차들은 노면 위의 고인 물을 가르며 붕 지나갔다. 부쩍 외제차가 많아졌다. 국산차가 비싸졌고 외제차가 가격이 떨어졌다고는 하나 잘 모르겠다.


라바짜에는 재즈가 흐르고 있었다. 카페까지 빠른 걸음으로 신경을 써 걸어오느라 들어와서 좀 더운 기운 때문에 후끈 달아오른 것 빼고는 모든 것이 완벽하다. 최애 카페는 그런 일반적인 기대를 가지게 만든다. 그곳에 가면 그 맛있는 커피를 마실 수 있다는 기대, 그 자리에 앉아서 멍하게 아무 생각 없이 있을 수 있다는 기대, 유행을 좇지 않는 재즈를 들을 수 있다는 기대가 있다. 더운 기운은 앉아서 오분만 있으면 사라질 것이다.


나의 상태가 주위의 온도, 창밖의 풍경. 무엇보다 커피의 향과 맛. 이 모든 것과 조화를 이루어 완벽했다. 완벽한 시간을 느낄 수 있게 해주는 곳이 지금 이 순간의 라바짜 카페에 앉아 있는 이 시간이다.라고 최애 카페에서 자주 느꼈다. 카페에는 비 때문인지 사람들이 없다.


카페에 흐르는 소리는 오직 내가 마시고 내려놓을 때 부딪히는 커피 잔과 접시의 마찰음과 재즈뿐이다. 거기에 밖에서 지나가는 자동차의 소리 정도. 이 정도면 시끄럽고 요란한 도심 속에서 고요라고 해도 좋을 것이다. 창밖의 비는 기분 나쁘게 내리고 있었다. 우산을 쓰지 않고 걸어도 될 법한 비다. 하지만 우산 없이 걷고 나면 머리카락의 끝이나 옷의 연약한 부분이 비에 젖어서 기분이 나쁘다.


그런 비는 사람을 평소보다 빠르게 걷게 만든다. 그 정도에 우산까지 썼어?라는 말을 들을 법한 비는 기분이 나쁘다. 우산을 쓰기에 모호한 비는 사람을 바삐 움직이게 만든다. 이런 비는 우산을 쓰고 걸어도 이상하게 우산을 쓰고 있어서 젖지 않을 것 같은 가슴 쪽이나 손에 들고 있는 휴대전화는 꼭 젖어 있다. 그런 비가 내리고 있었다.


일기예보에서는 저녁까지 비가 내릴 거라고 했지만 언제나 일기예보는 빗나가고 만다. 일기예보는 그때나 지금이나 그렇다. 앉아있는 동안 비가 그치고 사람들은 우산을 접어서 들고 다니고 있다. 누군가 외설스럽게 생긴 남자(팔에 문신을 잔뜩 한)가 전화를 받으며 걸어가면서 나와 눈이 마주쳤다. 그는 전혀 피하지 않고 시야에서 사라질 동안 나를 쳐다보며 지나갔다.


눈빛에 악의라든가 적의는 없었다. 늘 그래 왔다는 듯 나를 쳐다보며 전화기에 대고 이야기를 하며 지나쳤다. 어떻든 사람들은 머무르지 않고 스쳐 지나갔다. 무릇 이 시간의 사람들만 그런 것은 아니었다. 모든 사람들이 머물지 않고 스쳐가거나 지나쳐갔다.


한 사람의 인생에 있어서 또 다른 사람과의 스침이 많은 것이 잘 살아온 길인지 묻는다면 나는 알지 못한다. 답을 알고 있는 사람이 이야기를 해 준다면 맨 앞의 학생처럼 똘망똘망하게 듣고 싶다. 흘러나오는 재즈는 피아노 선율에 맞추어서 나오는 노래였다. 콰르텟이나 트럼펫처럼 관악기를 사용하지 않고 오직 피아노와 가수의 목소리만으로 나오는 재즈였다.


재즈에 대해서 아는 것은 없지만 나오는 노래는 꽤나 따뜻한 정감이 들게 만들었다. 꼭 중학교 2학년 때의 겨울을 떠오르게 만들었다. 조그만 동생을 데리고 토요일 학교가 일찍 끝나고 어머니가 동생을 데리고 치과에 갔다 오라는 말에 동생을 손을 잡고 집에서 멀리 떨어진 치과에 가서 동생의 치료를 받고 온 날이 떠올랐다.


재즈를 들으며 어째서 그때가 떠오르는지 알 수는 없지만 분명 내 감정은 그때를 떠올리고 있었다. 동생은 신기한 것이 많은지 길거리의 모든 풍경을 눈에 담으려는 듯 여기저기 간섭하려 했다. 때는 겨울이었고 토요일에는 체육시간이 있어 발야구를 했는데 수비를 잘해서 체육선생님에 칭찬을 들었다. 우쭐해진 기분으로 동생을 데리고 XXX 치과에서 동생이 치료를 받는 동안 따뜻한 로비에 앉아 있었다.


그러다가 화장실에 갔는데 그 통로에는 지하로 가는 계단이 있고 철망이 쳐 있어서 밑으로 내려갈 수는 없었지만 고개를 주욱 빼서 보면 그 밑은 장난감 창고였다. 장난감의 세계로 향하는 문이었던 것이다. 저 안에는 아주 많은 장난감을 가지고 놀 수 있겠구나. 언젠가는 저곳에 갈 수 있을까. 동생은 울지 않았고 치과에서 나오는 길목의 겨울은 따뜻했다. 그리고 기억은 칼에 잘린 무처럼 싹둑 끊어졌다.


그때 최애 카페에 흐르는 재즈가 나의 따뜻한 기억을 꺼내 주었다. 노래란 그런 것이다. 노래도 따뜻했다. 겨울의 차가운 물속에서 따뜻한 얼음을 감싸 쥔 느낌처럼 아이러니했다. 창 앞에 트럭이 주차를 하여 풍경을 몽땅 가로막았다. 비가 내리지 않는다고 생각했는데 비가 떨어져 트럭의 앞 유리창에 맺히는 모습이 보였다.


비가 내리면 모든 것이 젖는다. 비에 젖지 않는 것이 있을까. 그래 맞다, 바다가 있다. 바다는 젖지 않는다. 앉아 있는 동안 빗방울이 또 굵어지고 촘촘하게 내리기 시작했다. 더불어 막히지 않았던 도로가 자동차들로 조금씩 막히기 시작했다. 손님이 들어왔다. 고요가 삽시간에 깨졌다. 시원한 음료를 주문해서 빨대로 죽죽 빨아 마셨다.


신경을 건드리는 소리는 대부분 사람이 내는 소리다. 두 사람은 어떠한 일에 대해서 이야기를 주고받았는데 욕이 이야기 속에 가득 나오는 미저러블 한 대화였다. 나는 남은 커피를 다 마시고 최애 카페를 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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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월이 되었다는 건 가을이 오는 소리가 들린다는 것이다. 패티 김의 노래 중에 ‘가을의 연인’이라는 노래가 있다.


낙엽이 지기 전에 구월은 가고

시월이 가기 전에 그리운 사람


패티 김의 예전 노래, 사랑과 그리움에 대한 노래 가사는 어쩐지 길옥윤을 향한 가사처럼 들린다. 나는 패티 김의 노래를 꽤 많이 듣고 있고, 많은 노래를 알고 있는데 그중에서 ‘가시나무새’와 ‘못잊어’를 가장 많이 듣는다.


근래에 김태연이 ‘화요일은 밤이 좋아’에 나와서 자신의 어머니와 함께 ‘가시나무새’를 부르는데 미치는 줄 알았다. 어떻게 이렇게 가슴을 후벼 파게 노래를 부르는 거지? https://youtu.be/ui5qrZ4kl10


태연이의 노래는 어머니에게서 물려받았을 정도로 어머니 역시 노래를 너무 잘 불렀다. 나는 패티 김의 공연을 한 세 번 정도 보러 갔었다. 그리고 패티 김을 둘러싸고 있는 여러 이야기들. 모친이 패티 김을 좋아해서 내가 어린 시절에 집에는 내내 패티 김의 노래가 울려 퍼졌다. 그래서 자연스럽게 패티 김의 노래가 흡수가 되었다. https://brunch.co.kr/@drillmasteer/944#comment


패티 김의 목소리는 50대가 넘으면서 정말 아름답고 좋다. 그건 분명하다. 초기의 앨범을 들어보면 낭랑한 목소리로 노래가 들린다. 그런데 또 그런 패티 김의 초기 목소리가 좋아서 요즘은 오래전에 어머니가 듣던 카세트테이프를 듣고 있다. 노래라는 게 시끄럽고 듣기 싫을 때도 있는데 또 없으면 허전해서 찾아서 듣게 되고, 음악이라는 건 참으로 희한하고 요상한 요물단지다.


시월이 되자마자 하늘과 공기 그리고 사람들이 시월의 옷으로 갈아입었다. 하늘도, 강도, 공기도 모두가 시월이다. 이 글을 작성할 때까지만 해도 28, 9도를 오가는 늦더위가 기승인데 가을비가 그치고 나면 찬바람이 불거라고 한다. 이제 조깅을 하는 복장에도 변화가 있어야 할 시기다. 여름 내내 헐벗고 달렸는데 이제는 그럴 수 없게 되었다.


조깅하러 나오면 사람들이 부쩍 늘었다. 어르신들이 강변에 마련한 벤치에 오종종 모여 앉아서 담소를 나누는 모습마저 정겨운 시월이다.


내가 있는 도시는 3년 가까이 바이러스 때문에 매년 열렸던 행사가 열리지 못했는데 10월 7일부터 전국체전이, 10월 19일부터는 전국 장애인체전이 개최하게 되어서 도시는 정비에 열을 올리고 있어서 분주하다.


코로나가 오기 전에는 저 강에서 세계 카누 대회도 열려서 외국인들이 바글바글 하기도 했었다. 3년 동안 코로나 때문에 멎었던 인간사회가 이제 서서히 작동을 하려고 한다.


여름의 뒤 꽁무니에서 뜨거움을 발판 삼아 열심히 허공을 날아다녔던 고추잠자리들도 사라졌다. 가을이 오는 소리가 바야흐로 들리는 시기다.


그리움을 가을바람에 말려 본다

날이 좋아서 바닷가에서 눈을 감고 저곳을 바라보니

아 글쎄 문정희 시인이 그리움을 말리고 있었다

나 또한

우기에 축축해진 그리움을 모처럼 꺼내 가을바람과

가을 햇살에 말렸다


바다도 파랗게 질려있고

하늘도 질린 얼굴에

햇살은 참 좋아 울고 있는


미세 먼지 하나 없이 이리저리

호롱 호롱 불어오는 가을바람에

발가락을 드러내고 그리움의 이불을 말리고 나니

마른 그리움에 그대의 언어가

군데군데 노랗게 스며들어 있었구나


시도 한 번 적어보고 노래도 한 번 흥얼거려본다. 조깅을 하면 이런 것들을 할 수 있다. 그때 아마 음악은 에스더의 노래가 나왔을 것이다.


그러나 가을은 말랑말랑 하지만은 않다. 가을은 여름에 타고 남은 만큼 처절하며 지독한 계절이다.

최승자 시인의 가을은 개 같은 가을이었다.

개 같은 가을이 쳐들어온다.

매독 같은 가을, 그리고 죽음은, 황혼 그 마비된 한쪽 다리에 찾아온다고 했고,

김남조 시인의 가을은 모든 가을에 앞질러 그리움이 오곤 했었지 병이 깊어지듯 가을도 무겁고 힘든 수레라고 했다.

가을은 그렇게 짧지만 강하게, 곁을 스치듯 팔에 금을 긋고 지나갔다.

그 어느 계절보다 아름다워서 따갑고 슬픈 이름 가을, 당신은 그런 가을을 닮았더랬다.


가을이 오는 소리가 들린다. 야금야금 맛있는 것을 갉아먹듯, 애틋하지만 의지를 가지고 열심히 가을이 오는 소리가 들린다. 그 소리 중심에 우리가 서있다.

더위가 보이지 않는 가을 하늘


삼삼오오 모여 앉은 어르신들


체전 경기를 위해 한창 강물 정비 중이다


저기 붉은 바리케이드를 넘어가면 바다이기 때문에


그림처럼 하늘이 붉은 빛깔을 뿜어냈다


노을이 지는 자리


한참을 보게 한다


불놀이 중인 가을 하늘

일상, 에세이, 일상수필, 수필, 가을, 가을의소리, 가을이오는소리, 노을, 불놀이, 붉게물든하늘, 가을가을한, 하늘, 강변, 패티김, 김태연, 화요일은밤이좋아, 너무좋아, ㅋ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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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사리를 특별히 좋아하는 건 아닌데 예전부터 집에서 고사리를 무치면 대부분 내가 다 먹었었다. 집에는 고사리를 먹는 사람도 없는데 왜 고사리를 자꾸 무치는지 모르는 일이다. 돌아가신 아버지도, 시집간 동생도, 태어난 조카도, 조카의 아빠도, 그리고 고사리를 열심히 무친 장본인도 고사리 따위는 쳐다보지도 않는다. 정말 가족 중에서 고사리에 젓가락을 대는 사람은 1명도 없다.


그럼에도 고사리는 내가 모르는 사이에 어느 순간 밥상 위에 올라와 있다. 그러면 결국 내가 다 먹게 된다. 나물은 어느 정도의 시간이 지나면 상하기 때문에 먹어치우지 않으면 버려야 한다. 그래서 조급함이 밀려올 땐 이렇게 밥과 함께 비벼서 해치워야 한다. 그 누구도 고사리에 젓가락을 대지 않는데 아무튼 때가 되면 고사리를 무쳐 놓는다.


아무래도 모친은 어릴 때부터 아무도 먹지 않아서 내가 먹는 이 고사리가 내가 좋아서 먹는 건 줄 알고 자꾸 무치는 모양이다. 이렇게 말을 하면 누군가는 모친에게 말을 하세요,라고 할지도 모른다. 이미 모친에게는 한 스무 번은 이야기를 했다. 아무도 먹지 않는데 고사리 따위 제발 하지 말라고 10년 전부터 말을 했지만 어디서 받아왔네, 누가 주었네, 라는 거짓말을 하면서 잘 도 밥상 위에 올려놓는다. 고사리 귀신이 따라다니는 모양이다. 그래서 내쪽에서 백기를 들며 포기하고 먹다 보면 냠냠 고소하기도 하면서 참기름에 샤워를 해서 그런지 맛이 없지는 않다.


게다가 내가 밥을 비벼 먹는 스타일은 고추장을 넣지 않는다. 비빔밥에 들어가는 반찬에 어지간한 양념이 되어 있어서 그대로 비벼 먹어도 괜찮은 맛이다. 안동식 제삿밥이다. 고사리는 남자에게 별로니 같은 말이 있지만 뭐 어때, 라는 마음으로 먹을 때는 맛있게 해치워버린다.


고사리가 들어가서 맛있는 음식은 육개장이다. 정확히는 닭개장이다. 더 정확히는 외가가 있는 촌에서 개울에서 물놀이를 하고 집에 들어가면 외숙모가 큰 솥에서 닭을 한 마리 넣고 고사리와 대파와 여러 가지를 넣어서 끓인 닭개장을 준다. 물놀이를 하면 허기가 져서 닭개장이 아주 맛있다.


이제 그런 맛있는 닭개장은 더 이상 나에게는 없다. 그저 추억 속에만 있을 뿐이다. 여름의 개울에는 물 냄새가 나는데 그 냄새가 좋아서 개울가에 앉아서 내내 맡았던 기억도 있다. 개울은 맑아서 가재도 있어서 잡아 보기도 했다. 개울의 물은 근처 논으로도 흘렀는데 거기에는 개구리 밥이 동동 떠 있었고 밤이 되면 개구리가 기분 좋은 소리를 내며 노래를 불렀다.


그런 분위기에서 물놀이를 하고 외가에 들어오면 맛있는 냄새가 나고 외숙모가 끓인 닭개장을 한 그릇씩 먹었다. 맛있었다. 중학생 주제에 닭개장 안에 들어간 고사리가 맛있다는 걸 알게 되었다. 생각해보면 고사리도 우리나라만 먹는 게 아닐까. 그런 생각이 든다. 우리나라에서도 고사리 전문점 같은 곳은 없다. 콩나물 비빔밥은 있지만 고사리 비빔밥이나 고사리 찌개 같은 음식은 없다. 고사리는 그 정도로 밥상 위에서 주가 되는 음식은 아니다.


고독한 미식가의 고로 상이 고사리를 옆 테이블에서 먹는 모습을 본 다면 입을 아 벌리고 고개를 자라처럼 쭉 빼서 뚫어져라 쳐다볼 것 같다. 그리고는 메뉴판을 정독하며 고사리가 들어가는 음식을 주문하려고 고민을 할 것이다. 이렇게.

고독한 미식가의 고로 상은 옆 테이블에서 맛있는 먹는 모습은 호오 하는 모습으로 본다. 그러다가 생각에서 벗어난 음식이면 거기에 호기심이 들어와서 뭐지? 하며 더 유심히 본다. 만약 현실에서 그렇게 다른 테이블에서 먹는 모습을 본다면 요즘은 일이 날지도 모른다. 그러나 고로 상이 현실에서 호오 하는 표정으로 본다면 사람들은 아, 고로 아저씨구나, 하며 넘어갈지도 모른다.


타인의 음식 먹는 모습을 보는 건 이상하지만 재미있다. 특히 맛있게 먹는 모습은 빠져들게 된다. 하지만 실제로, 고로 상처럼 호오 하며 다른 테이블에서 먹는 모습을 빤히 볼 수 없다. 그래서 먹방이 유행을 했고, 지금도 하고 있고 사람들은 먹방을 보며 대리만족을 느낀다. 물론 여기에는 편집이나 스킬 같은 것들이 잔뜩 가미되어 있어서 더 볼거리가 풍성해지는지도 모르겠다. 어쨌거나 먹방은 계속 늘어나고 있고 잘 먹고 맛있게 먹는 모습을 보는 건 즐거운 일이 되었다. 간혹 남이 먹는 걸 왜 보냐고 하는 사람도 있지만 먹는 모습을 재미있게 보는 사람이 훨씬 많기 때문에 이렇게 먹방이 많아지고 먹방으로 인해 여러 콘텐츠가 늘어났다.


먹방은 먹방이라는 이름이 있기 훨씬 전부터, 유튜브가 있기 전부터 있어왔다. 말이 너무나 많은 브이제이 특공대부터 맛있는 음식점을 찾아가서 연예인들이 음식을 먹고 소개하는 프로그램이 아주 많았다. 그런 프로그램은 인기였다. 왜냐하면 맛있게 음식을 먹는 모습을 보는 건 즐거운 일이기 때문이다. 요즘에는 '나는 자연인이다'에서도 가장 재미있는 장면은 이승윤이 자연인과 함께 음식을 만들어서 먹는 장면이다. 산속에서 몸을 움직여 노동을 한 후에 얻어 낸 식품으로 조리한 음식은 맛있을 수밖에 없다.


또 여전히 인기가 아주 좋은 최불암 아저씨의 한국인의 밥상이 있다. 이런 프로그램은 마냥 먹기보다 그 음식에 대해서 접근을 한다. 그래서 그 지역, 그 지역인들이 해 먹던 음식이 나오고 지역 사람들이 그 음식을 만들어 먹게 된 스토리가 있다. 물론 가장 즐거운 장면은 역시 음식을 만들어서 먹는 장면이다. 동네 사람들이 평상에 빙 둘러앉아 요리한 음식을 먹는다. 식객 허영만의 백반 기행은 2019년부터 시작했는데 아직도 하고 있고 여전히 인기며, 앞으로 계속할 것이다.


고사리 하면 개인적으로 양희은의 밥상이 떠오른다. 예전 방송 중에 ‘양희은의 시골밥상’라는 프로그램이 있었다. 농촌의 한 집에서 머물려 땅에서 얻어낸 것들로 음식을 만들고 밥을 지어서 먹는 프로그램이었다. 양희은은 몸이 안 좋았던 적이 있어서 먹거리에 신경을 쓰지 않을 수 없었다. 그러다 보니 치유가 되는 음식을 찾게 되고 조리법을 연구하게 된다. 흔히 요즘의 먹방과는 거리가 있는 음식으로 상을 차리게 되었다. 시래깃국이나 나물이나 된장찌개 같은 음식들. 먹고 나서 위장에 무리가 가지 않는 음식들이 주가 되었다. 그리고 게스트가 와서 같이 밥을 해서 먹는다. 이 역시 전국을 떠돌며 그 지역의 시골의 집에서 머물며 그 지역에서 나는 농산물이나 나물을 캐서 고사리 전이며 부추전 같은 것을 해 먹는다.


그 덕에 양희은의 '양희은이 차리는 시골밥상'이라는 농촌 음식 에세이 책도 구입해서 열심히 읽었다. 그 안에 고사리 무침이 나온다. 책을 아무리 찾아도 못 찾아서 사진은 '은혜 갚은 베짱이'라는 네이버 블로그에서 가져왔다.

양희은과 함께 보조 출연자로 가수 아가가 있었는데 아주 복스럽게 잘 먹었다. 잘 먹고 많이 먹었는데 맛있게 먹었다. 분명 고로 상이 있었다면 호오 하며 봤을 것이다. 만약 요즘 먹방 프로그램이나 먹방 유튜브를 했다면 엄청 인기를 끌었을 것이다. 그렇게나 많이 먹고 잘 먹는데 늘씬했다. 양희은은 매일 아침 라디오를 하고 방송에도 자주 나오는데 아가라는 가수는 요즘 어떻게 지내는지 모르겠다.


다시 고로 상의 먹방으로 돌아와서 고로 상은 음식 먹는 것에 오직 집중한다. 요즘 여러 기사나 칼럼에는 음식을 먹을 때에는 오직 음식에 집중을 하라고 되어있다. 고사리 비빔밥을 고로 상에게 내놓으면 역시 집중을 하며 산에서 보물이 입으로 들어오는 군, 와암. 하며 먹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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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깅을 하다가 건널목에서

잠시 멈추어서 하늘을 보니

하늘은 보이지 않고

전깃줄이 눈에 들어왔다

뭘 많이도 먹었던지

뚱뚱해진 전깃줄이

지 몸의 무게를 겨우 이겨내고 있었다

전깃줄은 원래 일직선이었겠지

사람이 늘어날수록

전깃줄도 하나씩 늘어나기 시작했다

눈물이 늘어갈수록

전깃줄도 새롭게 생겨났고

웃음이 많아질수록

전깃줄의 굵기도 굵어졌다

여기서 저 멀리 연결해주기 위해

전깃줄은 통화량을 먹고

점점 배가 부르고 살이 찌기 시작했다

이러다 과부하로 끊어지겠어요

조금만 먹어 주세요

전깃줄은 사람들에게 말했지만

내 이야기만 할게

나의 말만 전달해줘

숟가락 하나 더 얹는 게 어려운 일인가

사람들은 전깃줄이 뚱뚱해지는 것은

자신의 탓이 아니라 했다

한 사람의 생을 여러 번 먹다 보니

많은 사람의 여러 번의 생은

세상의 전깃줄을 전부 뚱뚱하게 만들었다

전깃줄은 사람들의 통화량을 먹으며

혼자가 아니라고 생각했지만

어느 날 혼자라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전깃줄은 기실 뚱뚱해지는

자신의 모습을 보며

포기를 받아들이고

무거워지는 자신의 몸에

익숙해지기를 바랄지도 모른다

그것이 전깃줄로서 생을 소리 없이

지속할 수 있는

단 한 가지의 선택이라는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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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게 먹으면 문제는 배부른지 모르고 먹게 된다. 세상 가장 맛있는 조합이 아닌가. 햄버거, 그것도 패티 두 장 짜리 햄버거에 계란 스크램블, 거기에 마성의 맛 마요네즈. 무슨 말이 더 필요할까. 내가 이렇게 하나만 먹었을 줄 아는데(주위 사람들은) 나 사실 햄버거, 그러니까 패티 두 장 짜리 두툼한 햄버거를 이렇게 두 개를 먹었다. 마요네즈가 미친 것처럼 입 안으로 죽죽 들어왔다.


거기에, 또 거기에 텀블러에 얼음을 잔뜩 채우고 맥주를 콸콸 부어서 마셨다. 이건 정말 미식을 향한 허영도 아니며 그저 먹기 위해 살아가는 것처럼 냠냠 먹게 된다. 햄버거를 이렇게 해서 매일 먹고 싶다. 이건 정말 진심이다. 진심을 다해서 매일 한 끼는 이렇게 먹고 싶다. 하지만 이렇게 먹으면 나 같은 경우는 정말 살이 많이 찔 것이다. 특히 신체의 앞쪽보다는 뒤쪽에 살이 많이 붙을 것이다.


몇 달 전부터 마요네즈에 빠져 있는 나는 평소에 먹지 않았던 마요네즈의 맛에 눈을 뜬 후 몇 달 동안 야무지게 마요를 모든 음식에 곁들여 먹었더니 겨드랑이와 겨드랑이 주위에 살이 붙었다. 여기에 붙은 살은 잘 빠지지도 않는다. 음식은 본디 생존을 위해 먹는 것이지만 지금 어떤 사람들에게는 취미나 여가의 한 부분 내지는 모든 부분을 차지하게 되었다.


음식을 향한 인간의 욕망 내지는 탐욕 그리고 여러 감정을 담아낸 영화가 있다. 1985년의 이타미 쥬조 감독의 영화 ‘탐포포(담뽀뽀)’가 그렇다. 영화를 봤을 때 나는 정말 대단하다.라는 생각이 먼저 들었다.


음식의 탐미와 미식의 허영.

굴에 떨어진 피가 퍼지는 예술작품 같은 마법.

단 음식에 대한 인간의 갈망.

라면을 빨아 당겨 목구멍으로 넘기는 쾌감.

쾌락적 후추와 쾌락적 레몬을 젖가슴에 뿌려 먹는 욕망.

죽음을 앞두고도 끊을 수 없는 완탕면의 유혹.

인간의 미식을 채우기 위해 무수히 죽어간 생물들.

쾌락의 절정은 음식에서 완성되고.


이 모든 것들이 나대거나 모자라지 않게 영화 속에 잘 스며들어 있다. 마치 탐탐포의 네기소바 속 국물처럼 말이다. 이 영화는 웨스턴의 대결구도를 따라간다. 찰스 브론슨이나 클린트 이스트우드 서부영화의 전개를 답습하듯 진행된다. 마성의 총잡이가 한 시골에서 악당들에게 매일 당하는 한 농가에 들어가서 악당들에게 멋지게 총질을 하고 농가를 위기에서 구해주는 이야기처럼 진행된다. 거기에 농가에는 꼭 한 명의 어린 소년이 있는데 총잡이는 마초이지만 그 어린 소년과 나중에는 아주 친하게 되는 것까지 멋지게 해낸다.


영화 탐포포에서 주인공 고로(여기서도 이름이 고로다. 역시 음식과 고로라는 이름은)는 카우보이 모자를 내내 쓰고 나온다. 심지어 목욕을 하면서도 그 카우보이 모자를 쓰고 있다. 트럭 운전사인 고로는 배가 고파 라멘을 먹으러 한 라멘 가게에 들어가는데 그 집의 라면이 맛이 너무 없는 것이다. 그런데 그 안에는 서부극처럼 라멘 가게 여주인을 희롱하고 있는 마을의 건달들이 앉아서 맥주를 마시며 담배를 피워대고 있었다. 고로는 맛은 없지만 라면을 먹다가 건달들에게 조용히 하라고 하고 여주인을 희롱하는 건달들과 라멘 가게 밖에서 결투를 하게 된다. 5대 1로 결투를 했기에 고로도 여러 군데 몸에 상처가 났고 여주인은 고로를 집에서 하룻밤 재워준다. 여주인의 아들과 함께 아침에 밥을 아주 맛있게 먹으면서 고로는 여주인에게 라멘에 대한 몇 가지 충고를 해주고 여주인은 고로에게 진정 맛있는 라멘을 만들 수 있도록 도와달라고 부탁한다.


고로는 생각 끝에 라면 수련에 들어간다. 그 여주인의 이름이 탐포포였다. 맛이 없는 탐포포네 라멘을 일으키기 위해 은둔 고수들을 찾아 나서고 그들이 하나둘씩 모여들어 라면 맛의 1을 올리기 위해 노력과 훈련을 처절하게 한다.


라멘집에서 라멘과 주인장인 탐포포를 둘러싼 대결은 그야말로 웨스턴 서부극의 일대일 총잡이 결투와 맞먹는다. 5대 1에서 패한 5명 중의 우두머리가 다시 찾아온다. 고로에게 일대일로 붙어 보자고 한다. 그때는 우리가 다섯 명이라 너무 비겁했다면서. 그리하여 두 사람의 결투가 펼쳐진다. 장엄하고 비장한 음악과 배경은 없지만 라멘에 대한 집념과 80년대 도쿄의 도시를 배경으로 하수구에서 두 사람이 대결을 펼치는 장면은 너무나 멋지다. 두 사람은 얼굴이 엉망이 되었지만 서로를 인정하고 건달은 탐포포 라멘 가게를 일으키는데 도움을 주기로 고로와 약속을 한다.


라멘 하나로 이렇게나 재미있게 인간의 모든 욕망을 표현할 수 있다니 정말 놀랍다. 인간의 발끝부터 시작하는 말초신경을 자극하는 것은 당연하지만 음식이다. 음식은 죽음과 직결한다.


고로는 자신의 스승을 찾아간다. 스승은 의사였는데 요리에 미쳐서 병원도 집도 아내에게 빼앗기고 집에서 쫓겨 나와 노숙자들과 생활을 하는데 이 노숙자들이 엄청난 요리 전문가들이다. 어떤 음식이든지 먹기만 하면 어떻게 만들어졌는지 재료는 뭐가 들어갔는지 알아내는 사람부터 대단한 집단인 것이다. 그중에 한 거지가 탐탐포의 12살 아들에게 뭐가 먹고 싶은지 묻고 소년은 오므라이스가 먹고 싶다고 한다. 거지는 소년을 데리고 한 골목으로 들어가 작은 문을 따고 들어가니 한 음식점의 주방으로 이어졌고 거기서 경비가 오기 직전에 빠르게, 그것도 너무나 맛있는 오므라이스를 휙 만들어낸다.


그렇게 탐포포는 고로를 선두로 은둔 고수들을 찾아낸다. 영화 속에는 김치와 상추에 싸서 먹는 돼지갈비가 나온다. 돼지갈비는 꽤 오래전에 일본에 상륙한듯싶다. 그렇게 각고의 노력 끝에 탐포포는 네기소바를 만들어낸다. 바로 줄을 서서 먹는 라멘. 그것을 해내고 만다.


마지막 장면은 아주 인상적이다. 아기가 엄마의 품에서 엄마의 젖을 빨고 있는 장면이 나온다. 이 장면은 긴 호흡으로 점점 클로즈업이 되며 영화는 끝난다. 인간의 탄생은 음식과 함께 출발한다. 음식은 인간의 죽음과도 직결하지만 바로 인간의 탄생도 음식과 함께 한다. 그 출발을 알리는 것이 엄마가 만들어낸 모유였다. 엄마 젖을 빨아먹는 아기의 마음속에는 생존과 함께 오감도 열리게 된다.


음식이 인간의 탐욕을 잘 말해주는 영화가 시간이 흐른 후에 또 나오게 된다. 브라질과 이태리 영화 ‘에스토마고’다. 요리 영화가 아닌데 요리 영화인 이상하고 굉장한 영화다. 음식을 가지고 권력을 가지게 되는, 인간의 욕망 충족에 대한 갈망을 음식과 요리로 만들어낸 영화였다.


영화 ‘탐포포’에는 우리가 알만한 많은 배우들의 젊은 모습을 볼 수 있다. 실락원과 큐어에서의 야쿠쇼 코지는 얼굴이 너무 젊어서 잘 알아보지도 못할지도 모른다. 일본인이라면 대번에 알아보겠지만. 그리고 일본에서 가장 말이 많았던 부부 - 안 와타나베와 히가시데 마사히로 부부는 히가시데가 아직 18살이었던 카리타 에리카(예쁜 얼굴을 가지고 있는 배우로 우리나라 아스달 연대기에도 나왔다. 상승세를 타고 일본에서 뻗어 나갈 것 같았는데 히가시데와 불륜 이후 맥을 못 추고 있다)와 불륜을 저지르고 있어서 헤어지게 되었다.


그때 안은 임신을 하고 있었던 걸로 아닌데 지금은 시간이 지나 히가시데는 아이 세 명의 양육비를 줘야 하는데 돈이 없어서 어쩌고 하는 가십이 있다. 게다가 4개의 광고 계약이 빠지면서 2억 엔의 위약금도 물어야 하는 처지다. 그럼에도 꾸준하게 어린 여자 친구를 만나면서 촬영장에도 데리고 다녀서 소속사에서도 화가 잔뜩 나 있다고 한다.


그 부부였던 안 와타나베의 아버지, 켄 와타나베가 고로의 트럭을 모는 동료 조수로 나온다. 역시 얼굴이 청년 청년 하다. 와타나베 켄은 일본의 자랑 같은 배우로 할리우드 영화에도 많이 나왔다. 고질라부터 너무나 재미있게 본 웨스 엔더슨의 개들의 섬, 디카프리오와 함께 인셉션에도 나왔다.


아무튼 배우로서는 타이틀이 좋은 배우이나 재혼한 아내 카호(는 제일 교포 2세인데 역시 배우이며 최근에는 파친코에서 에츠코 역, 심은경과 카호의 블루 아워에도 나왔는데 그때 연기가 참 좋았음)가 유방암으로 투병 중일 때 21살 연하의 보석 디자이너와 불륜 소식이 퍼지면서 일본은 충격에 빠졌었다. 그때 두 사람은 침대에서 꽁냥꽁냥 사진까지 모두 공개되었다.


와타나베 켄은 암으로 투병하는 아내를 두고 불륜녀에게 “나 이혼할 테네 내 아를 낳아도”라고 해서 일본인들은 충격의 망치를 머리 앞뒤로 맞는 상황. 왜 그런가 하면 와타나베 켄은 처음 결혼을 하고 아들인 다이 와타나베와 딸인 안 와타나베를 낳고 난 다음 백혈병에 걸려 쓰러져 버린다. 그때 전처인 유미코가 사채를 끌어다 써 버려서 집은 차압당하고 엉망진창이었다. 거기에 켄은 백혈병으로 투병하는데 유미코가 신흥종교에 빠져서 거액을 거기에 다 갖다 바치는 등.


그러다 2005년에 이혼을 하고 미나미 카호와 재혼을 하고 지내던 중에 2016년에 백혈병이 재발하는데 그때 카호가 헌신적으로 간호를 했다고 한다. 그래서 켄 와타나베의 불륜은 일본은 도가니, 충격의 도가니로 몰아넣는다. 그랬는데 딸인 안 와타나베도 남편인 히가시데의 불륜으로 이혼을 하게 되고. 가장 최근의 소식은 안 와타나베는 유튜브에 요리하는 브이로그를 올렸는데 거기에 오늘 이 자리에 같이 요리할 사람이 있다며 아버지를 불러 같아 요리를 한다.https://youtu.be/QsSZv1-38qk


아무튼 탐포포에는 와나타베 켄의 청춘 청춘 한 모습도 볼 수 있다. 또 영화 속 야쿠쇼 코지와 함께 관능의 마성으로 인간의 아름다움을 마음껏 뽐내는 여성이 나온다. 이 배우는 구로다 후쿠미로 아마 한국인보다 한국을 더 잘 알고 있는 일본 배우일 것이다. 한국에서 책도 여러 권 출판했고, 한국과 일본을 연결하려고 많은 일을 하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다.


오래전에 탁경현이라는 한국인이 가미카제 대원으로 출격하여 억울하게 죽었던 일이 있었다. 그리하여 후쿠미가 탁경현이라는 한국인을 위해 비석을 세웠다. 이 탁경현이라는 사람은 일본 육군항공대 51진무대 소속 소위, 일본 이름 미츠야마 후미히로다. 사후 2계급 추서로 대위가 되었다. 한국인 탁경현은 당시 나이 25세. 고향은 경남 사천시 서포면이었다. 그럼 이 비석이 사천시에 세워져야 하는데 비석은 용인시의 법륜사에 세워져 있다.


탁경현은 여섯 살 때 지독하고 엄청난 가난으로 가족을 따라 일본으로 이주했다. 당시 일본에서 한국인은 굉장한 멸시와 말로 할 수 없는 차별을 받고 편견을 가진 일본인들에게 고개도 들지 못하며 살았다. 영화 파친코에도 잘 나오지만. 그렇게 어려운 생활 속에서도 학업을 놓지 않고 약학 전문대학을 졸업한 수재였다고 한다.


그때 군국주의의 전쟁 광기가 최고조에 달한 일본은 중일전쟁에 이어 태평양전쟁까지 돌입한다. 전쟁이 길어지고 피해가 늘어난다. 또 전세가 날로 바뀌고 악화되자 일제는 한인들도 강제로 징집하여 전쟁 속으로 보내려 한다. 바로 총알받이로 죽음을 맞게 한다. 계속되는 패배와 함께 패전이 눈앞에 뻔히 보였지만 일본은 국민들을 속이며 입을 막고 진실을 보지 못하게 했다. 근래의 러시아를 보면 잘 알 수 있다.


무장도 안 된 병사들을 총검 만으로 기관총과 중무장한 타국 앞에 무작정 돌격하여 그대로 죽음으로 내몰았다. 현재 러시아 징집의 모습이 그렇다고 볼 수 있다. 일본은 당시 가망이 없는 곳의 주민들까지 자살로 내몰아 죽음을 강요하기도 했다. 어떻든 전쟁은 패망으로 가는 판국에 마지막 발악으로 나온 것이 일명 가미카제였다. 폭탄을 장착한 비행기를 그대로 적함에 부딪혀 죽음으로 일본에게 충성을 보여주는 것이다.


이게 얼마나 무서운 일이냐면 이제 갓 비행기 조종만 배운, 앞으로 날아가는 비행 법만 배운 젊은이들을 한 번만 갈 수 있는, 편도행 기름만 넣고 영영 돌아올 수 없는 하늘길로 보내는 것이다. 무엇보다 성공률이 거의 없었다. 그때 탁경현의 입대도 강요당했다. 입대를 거부하면 집안의 장사를 못하게 하고 일본에서 거의 생활할 수 없게 만들었다. 결국 견디지 못한 탁경현은 입대를 하게 된다. 1945년 5월 10일에 탁경현에게 출격 명령이 떨어진다. 오키나와에 가미카제로 죽음을 맞이하라고.


탁경현은 그날 저녁 육군 지정식당에서 술 한잔을 마셨다고 한다. 식당의 주인아주머니가 그가 한국인이라는 것을 알고 있었고 눈물을 흘리며 술을 마시며 탁경현은 아주머니에게 마지막 가는 길에 고향노래를 부르고 싶다며 아리랑을 불렀다고 한다. 이 이야기는 영화 호타루에서 출격 전날 밤 식당에서 아리랑을 부르는 장면이 나온다.


1945년 5월 11일 8시에 출격하여 9시가 조금 넘은 시각 일본의 오키나와 상공에서 격추되어 일제의 가미카제 대원으로 죽음을 맞이했다. 일본을 위해 죽은 탁경현의 죽음은 숭고라든가 어떤 이름으로 포장될 것이 아닌 그저 일본에 의한 개죽음이었다.


그를 위해 여배우인 후쿠다는 탁경현의 비석을 사천시에 세우려고 했다. 후쿠다는 어째서 탁경현의 비석을 세우게 되었을까. 그녀는 꿈에서 그 당시의 전투비행사가 나와서 일본인으로 일본 이름으로 죽는 것이 억울하다고 했다고 한다. 그 꿈속의 비행사가 계속 맴돌아서 시간을 들여 그의 행적을 찾기 시작했고 그가 바로 탁경현이라는 사람이라고 한다.


그래서 사천시에 비석을 세우려는데 사천시 시민과 광복회와 시민단체가 들고일어났다. 독립투사도 아니며 일제를 위해 죽은 가미카제 특공대원의 위령비를 세울 수는 없다며 반대 목소리를 냈다. 그래서 반대에 부딪혀 탁경현의 비석은 사천시에 세우지 못했다. 그때가 2008년 5월 10일인데 그날이 아마도 탁경현이 출격하기 하루 전날이어서 그날로 정했던 모양이었다.


사천시에서는 후쿠미에게 연락을 해서 사천시의 상황을 전하고 분위기가 좋지 않아서 비석을 세우는 제막식은 하지 말았으면 했다. 하지만 후쿠미는 다음 날 일본의 언론인과 사람들을 데리고 제막식을 강행하려고 했고, 당연하게도 난리가 났고 제막식은 열리지 못했다. 후쿠미는 그날 눈물을 흘리면서 돌아섰다. 결국 비석은 탁경현의 고향인 사천시에 세워지지도 못하고 지금은 위에서 말한 용인 법륜사에 세워졌는데, 세워졌다기보다 비석이 넘어져 누워있다.


여기서 사람들은 의문을 품게 되었다. 후쿠다는 지금도 한국을 일본에 알리는 한국을 정말 많이 아는 일본 사람인데 탁경현의 비석에는 그를 추모하는 내용은 있지만 전쟁을 일으킨 일본의 책임을 본질적으로 인정하는 문구가 없다. 후쿠다는 선의로 비석을 세우려고 했을 것이다. 그녀의 이전 행적들을 보면 그렇다. 많은 한국의 도시와 여러 가지 일을 하는 것을 보면 그것에 의심은 없으나 그날 사천시에 비석을 세우려 하다 저지를 당해 쫓겨나는 모습이 대동한 일본의 언론인들에는 후쿠다의 선의가 반일감정이 강한 한국에서 무참히 짓밟혔다고 보였을 것이다.


후쿠미의 사진을 검색하면 대부분 한국에서의 사진이 검색이 된다. 한국의 도시에서는 그녀를 초대해서 한국의 홍보를 알리고 있는 것은 자명한 사실이다. 구로다 후쿠미의 재미있는 사실은 27세 때부터 우리나라 배구선수 강만수 선수를 짝사랑한 것으로도 유명했다. 그 이야기가 일본의 배구 전문지 [월간 발리볼]에 자세히 소개가 될 정도였다. 강만수는 84년에 대표팀 은퇴를 하고 일본으로 유학을 가서 와세다 대학에서 교육학과를 졸업한다. 젊은 강만수 선수 옆에 매미처럼 붙은 구로다 후쿠미의 사진도 유명하다. 아무튼 그런 후쿠미의 아주 젊고 아름다운 모습도 영화 탐포포에서 볼 수 있다. 그리고 주인공 고로에 대해서 이야기하려 하는데 너무 TMI라 패스.


그래서 결론은 이렇게 맛있게 해서 햄버거를 두 개나 먹었다는 이야기다. 이런 고칼로리, 누구나 한 번 당길 때, 그럴 때가 있잖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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