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시야 쥰.


한국 이름 길옥윤은 치대에서 재즈 음악에 심취해 1950년 초에 일본으로 가서 재즈와 색소폰에 빠져든다. 그는 52년 주일미군 캠프촌을 순회하는 악단을 조성하고 본격적인 색소폰 연주를 하며 음악 만들기에 돌입한다. 이때 자신의 이름 길옥윤을 일본 이름 ‘요시야 쥰’으로 바꾼다.


길옥윤은 지금에서 보면 천재라는 말이 어울리는 사람이다. 주옥같은 노래를 계속 만들었는데 그 곡수가 무려 3500곡에 이른다. 호리호리한 몸으로 학생 같은 맑은 얼굴을 가진 길옥윤은 색소폰을 불 때면 혼을 실어 폭발하듯 음을 뽑아냈다.


‘사랑은 영원히’는 길옥윤이 만든 음악 중에 한 곡이다.


폐암과 척추암이 퍼져 고통스러운 나날을 보내던 길옥윤은 자신을 위한 마지막 콘서트에서 이혼해서 헤어졌던 패티가 ‘4월이 가면’을 부른다. 1998년 서울 등촌동 SBS 공개홀에서 열린 무대였다. 밤 9시 50분부터 1시간 30분 동안 생중계로 이어진 ‘이별 콘서트’였다.


이날 객석의 중간에 휠체어에 몸을 실은 길옥윤은 49년의 음악인생을 이 마지막 무대에서 정리를 했다. 사람들은 박수로 그를 향한 아쉬움을 말했고, 수많은 눈물로 그는 위로를 받았다. 패티가 ‘4월이 가면’을 부르고 나니 길옥윤이 신청곡이 있다며 “짧은 시간이었지만 알차고 기름진 시간을 함께했다. 헤어진 건 몸이었지 마음이 아니었다”라며 ‘사랑은 영원히’를 신청한다. 패티는 애틋하게, 특유의 목소리로, 아 길 선생님 이 곡은 너무 어려워요.라고 하지만 노래를 부른다.


못 부른다던 패티는 ‘사랑은 영원히’를 정말 세상에서 가장 멋지게 부른다. 휠체어에 앉아서 노래를 부르는 패티를 흐뭇하게 바라보는 길옥윤의 마음은 어땠을까. 패티가 20년 동안 무대에서 결코 부르지 않았던 ‘이별’을 눈물을 참아가며 부르고 난 뒤에 길옥윤은 “역시 옛 친구가 최고다”라고 했다. 패티는 인사를 하고 분장실로 돌아가 한없이 소리 내어 울었다.


‘사랑은 영원히’라는 노래는 1974년 제4회 동경 국제 가요제에서 14개국이 참가해 450곡이 나온 가운데 3위를 차지했다. 이 곡은 이별의 곡이다. 길 선생님과 패티의 헤어짐에 관한 노래다. 그러나 헤어지는 건 비록 몸이지만 마음은 그렇지 않다고 노래는 말한다. 두 사람의 애절함이 깃든 곳인 것이다.


길옥윤과 패티는 결혼하여 한 6년 정도 같이 살았다. 66년에 결혼을 한다. 주례를 김종필 총재가 맡았다. 72년까지 결혼 생활을 함께 한다. 두 사람은 1958년 일본에서 처음 만났다. 패티가 미 8군 가수 공연단의 일본 공연 때였다. 길옥윤은 당시 치과의사로, 색소폰 연주자로, 작곡가로 활동을 하고 있었다. 길옥윤은 패티의 공연을 보자마자 아, 저 사람은 후에 대형가수가 될 것이다,라고 생각했다.


가수와 작곡가로서 만난 패티는 도도했다. 어디를 가나 다리를 꼬고 앉았고 인사도 먼저 하지 않았다. 아주 당돌한 아가씨였다. 스타는 좀 오만해야 되는 거 아닌가요? 패티는 당당했다.


시간이 흘러 1966년 패티의 어머니가 위독해서 미국에서 활동하던 패티는 한국으로 온다. 그때 길옥윤도 일본에서 한국으로 와서 다시 두 사람이 만나게 된다. 그때 처음으로 길옥윤이 패티에게 준 곡이 ‘4월이 가면’이다. 이 곡은 패티에게 바치는 프러포즈의 곡이었다. 그때의 길옥윤의 모습은 파릇파릇 청춘의 얼굴을 하고 야리야리한 체형에 포마드로 빗어 넘긴 헤어 스타일에 색소폰을 불었다. 반면에 패티는 도도하고 볼륨감이 넘치는 스타일과 말아 올린 머리가 상징처럼 되었고 얼굴에는 자신감이 흐르고 있었다.


‘4월이 가면' 이 곡을 받은 패티는 이건 길 선생님이 나에게 프러포즈를 하는구나, 아 나를 사랑하는구나,라고 생각하고 노래를 받고 패티가 먼저 결혼하자고 길옥윤에게 말을 해버린다. 두 사람은 아주 재미있고 행복한 결혼 생활을 시작한다. 하지만 행복할 것만 같았던 결혼 생활은 그리 오래가지 못했다.


창작의 고통에서 오는 영혼이 갉아 먹히는 불안으로 연명하는 작곡과 창작 연주의 매일은 길옥윤을 순간적인 쾌락의 세계에 빠져들게 만들었다. 그리고 철저한 자기 관리와 절제의 생활이 습관이 된 패티김에게는 그런 그의 모습이 용납되지 않았다. 불행의 시작은 골이 깊어지고 두 사람을 갈라놓게 만들었다. 두 사람 사이에는 한 명의 딸이 있었지만 결국 헤어지게 된다.


그리고 98년 이계진의 사회로 마지막 콘서트 무대를 가진 길옥윤은 그 무대에서 패티의 ‘사랑은 영원히’를 듣고 미소를 그린 후 이듬해 3월에 저세상으로 간다. 길옥윤은 패티김과 작업을 많이 했지만 혜은이와도 많은 작업을 했다. 당신은 모르실 거야, 제3 한강교 등 정말 많은 곡을 남겼다. 길옥윤은 갔지만 예술은 그렇게 사람들의 마음속에 영원히 남아 있다. 그래서 예술은 길다.


나는 패티김을 좋아하는 어머니 덕분에 어린 시절에도 아침에 눈을 뜨면 집안에 패티김의 노래가 흐르는 것을 들으며 일어났다. 아침에 뉴스 소리 나 드라마 소리가 아닌 학창 시절에도 내내 오전에는 패티김의 노래로 아침을 맞이했다. 그래서 패티김의 앨범이 나이별로 있었다. 나는 패티김의 공연을 3번 정도 보러 갔다. 그 멋짐과 압도당하는 목소리에 시간 가는 줄 모르고 노래들을 따라 불렀다. 가수로도 활동하는 둘째 카밀라가 늘 엄마의 공연에서 함께 해주었다.


'사랑은 영원히'는 패티김의 버전도 좋지만 길옥윤의 색소폰 연주만으로 된 연주곡 버전도 참 좋다. 아마 사람들은 마음속에 헤어진 연이이나 절대 만날 수 없는 사람과의 헤어짐이 몸의 헤어짐이지 마음까지 헤어짐이 아니라고 생각할지도 모른다.



내가 쓴 패티 김 이야기들


https://brunch.co.kr/@drillmasteer/3149


https://brunch.co.kr/@drillmasteer/944


98년 SBS 마지막 무대에서 '사랑은 영원히' https://youtu.be/S7TG4iQ7n1U 영상출처: 천칼라CheonColor CC


사랑은 영원히 색소폰 버전 https://youtu.be/GF_jKYTjEhw 영상출처: 길옥윤 - 주제


댓글(0) 먼댓글(0) 좋아요(6)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전망 좋고, 조망 좋고


오전에 엔진오일 교체하러 갔다가 차가 오래되어서 여기, 여기, 여기, 여기 교체해야 합니다, 몇 시간 있다가 오세요,라고 해서 바닷가를 어슬렁거렸다. 빛이 바다에 부딪혀 튕겨 나는 모습이 무엇을 암시하는 듯 시선을 잡아끌었다. 이 공간에 서 있는 지금 이 순간은 2022년의 시월이 아니라 같지만 다른 세계의 2Q22년에 서 있는 것 같은 기분이었다. 소음이 소거되었고 바다가 어딘가에 부딪혀 우는 소리만 들렸다. 마치 이쪽 세계의 수많은 사람들의 간절한 소망들이 파도처럼 밀려와 포말이 되는 것 같았다.


포구에 서서 한참 수평선을 바라보았다. 그러다 문득 젝스가 하고 싶어졌다. 어떤 연상도 없이 그저 그런 생각이 들었다. 어째서 나라는 인간은 저 먼 아름다운 수평선을 보고 젝스가 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까. 하루를 시작하는 사람을 위해 반기는 이 깨끗하고 투명한 빛이 얼굴에 닿는 기분이 좋았다. 왜 이런 때에 젝스가. 구름은 그림처럼 떠 있었고 수평선 위에는 존재를 알리는 유조선들이 점처럼 보였다. 어떻든 아름다운 모습이다. 바닷가에 살면 자주 볼 수 있지만 아파트 현관처럼 매일 보다 보면 시큰둥해져서 마음껏 감상을 하지는 않는다.


사람도 그렇다. 늘 가까이 있을 때 얼굴을 자주 보고 어루만지고 표정의 변화를 살펴야 하는데 멀리 떨어져야 그 사실을 깨닫는다. 그래서 인간은 알 수 없는 존재다.


포구에는 누가 봐도 이제 모든 일손과 생활의 전선에서 손을 놓은 노인들이 나와서 담소 중이었다. 아마 친밀하게 담소를 나눌 수 있는 지금 이 시간이 그들에게는 하루 중 제일 소중한 시간일지도 모른다. 오전에 집에서 나오다 보면 경로당 앞에 모인 할아버지들을 봐도 그렇다. 어떤 노인은 나 아직 건장해,라고 하는 듯 담배를 피우고 있고 또 어떤 노인은 멋진 체육복을 입고 자랑이라고 하듯 배에 잔뜩 힘을 주고 있다.


나는 포구의 풍경을 사진으로 담으려 그들에게 조금 가까이 다가갔다. 노인들은 김문수에 대해서 신나게 이야기를 하고 있었다. 들어보니 칭찬일색이었다. 내가 좀 더 가까이 다가가니 큰 소리로 김문수 잘한다!라고 말하기도 했다. 김문수가 대통령의 부름을 받고 유튜브를 닫았지만 이전에는 유튜브 슈퍼쳇으로 엄청난 돈을 벌었다고 한다. 그 짝 유튜브 중에 슈퍼쳇으로 번 돈이 세계에서 1등과 2등을 했다고 한다. 세상에는 참 재미있는 사람들이 많다. 한 번 눈물을 흘리거나 큰 소리를 내며 울면 통장에 돈이 우르르 들어온다니.


아직 10시 전인데 문을 연 로컬카페가 있어서 들어왔다. 카푸치노를 마셨다. 매일 싸구려 커피만 마시다가 예쁜 잔에 담긴 비싼 커피를 마셨더니 색다르고 맛있었다. 나는 예전부터 컵과 접시가 있는 컵에 커피를 마시는 걸 좋아했다. 한 입 마시고 컵을 놓을 때 접시에 닿는 그 소리가 듣기 좋았다. 그렇지만 매일 마시는 싸구려 커피도 맛있다. 싸구려 입맛인 나에게는 매일 마시는 커피가 일상이라 좋다. 가끔 이렇게 마시는 비싼 커피는 커피의 맛보다 일상 속 일탈의 맛이라 좋다.


카페의 주인은 50대로 보이는데 기분 좋은 목소리를 가졌다. 프랜차이즈 카페의 발랄한 목소리와는 다른 매력이 있었다. 카푸치노에 시나몬을 뿌려 드릴까요?라고 하는데 사투리의 억양도 없고 웃음도 밖의 빛처럼 밝고 좋았다. 그리고 커피를 가져다주었다. 가끔 이런 카페를 오면 대접받는다는 기분이 든다. 카페는 1층인데 2층이다. 1층인데 창문 밑으로는 도로가 밑으로 내려가기 때문에 그 밑에서 보면 2층처럼 보인다.


사진을 찍었는데 색감이 다른 이유는 하나는 폰이고 하나는 아이패드로 찍어서 그럴지도 모르겠다. 느닷없이 막대한 시간이 주어지니 마땅히 해야 할 것들이 생각나지 않았다. 아이패드가 ios16로 업그레이드를 하기 전에는 ‘ㄷ’ 자를 두 번 두드리면 ‘ㄸ’이 되었는데 업그레이드 후에는 그게 되지 않는다. 폰으로도 그렇다. 다닥하고 두 번 두드리는 게 습관이 되다 보니 쌍디귿을 칠 때는 ㄷㄷ이 자꾸 된다. 참 별거 아닌데 거슬린다. 아이패드 6세대는 업그레이드를 하지 않았는데 그건 다닥하고 두 번 두드리면 바로 ‘ㄸ’가 된다. 정말 쓸데없는 이야기다.


인간의 활동반경을 보면 아주 단순하다. 어제와 오늘이 크게 다를 바 없고 작년이나 올해나 비슷하다. 내년에도 올해처럼, 오늘의 움직이는 활동반경 내에서 움직일 게 뻔하다. 그러나 인간의 마음은, 즉 생각은 너무나 복잡하다. 여러 개의 끈을 마음의 손이 잡고 있는데 그걸 놓치면 안 되는 지점까지 간다. 아차 싶으면 그 끈을 놓치게 되고 그걸 계기로 일순간 무너진다. 그럴 때 버스 안에서도 하염없이 눈물을 흘리게 된다. 모르는 이가 옆에 앉았다면 당황할지도 모른다.


나는 어디에 있는 것일까. 여기는 도대체 어디일까. 우리는 어디로 가는 것이며 어디에서 시작되었을까. 같은 원초적인 질문과 문제에 봉착하고 그 안에 ‘나’를 집어넣으면 자아가 보이지 않을지도 모른다. 아무리 찾아서 ‘나’라고 하는 자아가 보이지 않는다. 지금까지 살아왔으면 이제 ‘나’라고 하는 한 인간의 형태가 어느 정도 갖추어져야 하는데 이만큼이나 긴 시간을 살아왔는데 전혀 내가 보이지 않으면 생각의 탑이 허물어진다. 허무하고 마냥 울고 싶어 진다. 눈물이 나오지만 눈물의 원인을 알 수 없고 아무리 흘려도 끝없이 눈물이 나온다.


점점 사람에 대한 감정이 없어지고 누군갈 미워한다거나 싫어하지도 않게 된다. 슬퍼하지도 않으며 기쁜 것 역시 없어진다. 인간으로 살아가는 건 너무나 힘들다. 에너지가 필요한데 어떤 식으로 보충을 해야 하는지 알 길은 없다. 감정에 치우치다 보면 가장 가까이 있는 사람에게 피해를 주고 하지 말아야 할 말을 하고 듣기 싫은 소리를 듣는다. 여기가 전쟁터라면 오히려 낫다. 전쟁터라면 끝이 보이고 승산이라고 있지만 여기는 지옥이다. 지옥이라는 무한 굴레 속에서 감정을 소모시키기만 할 뿐이다. 왜 이렇게 살아야 하나 왜 이런 삶 밖에 누리지 못하는 것일까. 내가 그렇게 잘난 것은 아니지만 그렇다고 해서 잘못 살아온 것은 아닌데. 올바르게 살아왔다고는 못해도 나쁘게 살지는 않았다. 도대체 인간의 삶이란 무엇일까.


카페에 앉아서 바다를 바라보니 정말 내가 앉아 있는 이곳이 2022년과 동떨어진 2Q22년의 세계가 아닐까 하는 기분이 들었다. 바다의 너울거림을 바라보고 있으니 알 수 없는 무력감에 휩싸였다. 무력감의 크기와 넓이를 잴 수는 없지만 자꾸 확대되는 것만 같았다. 무력감은 어디에서 오는 것일까. 바다는 어제도 저 모습이었고 한 달 전에도 저 모습이었고 일 년 전, 백 년 전에도 저 모습이었다. 앞으로도 저 모습일 것이다. 바다는 변하지 않는다. 변하는 건 바다를 바라보는 인간의 모습이다. 인간의 모습은 시시때때로 변하지만 시간에 영향을 가장 많이 받는다. 시간이 지나 같은 바다를 찾을 때 인간의 모습은 그렇게나 변해있다. 형태가 있건 없든 간에 세상의 모든 것이 변하지만 바다는 거기에서 비켜가 있다. 바다의 모습에서 나는 무력감을 느끼지 않을 수 없었다.  


정신을 차리고 보니 카페에는 카를라 부르니의 스탠 바이 유어 맨이 흐르고 있었다. 바람은 좀 차가운, 그러나 햇빛은 약간 따갑고 한 계절이 또 끝나가려는 오늘 아주 잘 어울리는 노래였다.


여기가 안 본 사이에 야영장이 되었다, 자동차와 텐트를 칠 수 있는


고만고만한 바닷가 포구는 늘 포근하다


꼬질한 벤치에 앉아 커피를 홀짝이며 몇 시간이라도 있을 수 있는


아이패드로 찍은


걷다가 어딘지 모를 건물에서


댓글(0) 먼댓글(0) 좋아요(8)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어때? 좀 무서워? ㅋㅋ



여러분은 귀신이 있다고 생각합니까.라고 물으면 그렇다고 대답하는 비율은 어떻게 될까. 요 근래 심야 괴담회를 보고 있는데 꽤 재미있다. 백퍼 사연으로 구성된 이야기라 그런 것 같다. 사연이라는 의미는 사람들이 귀신을 직접 겪은 사연을 이야기로 재구성을 했다는 말이다. 그러니까 사연을 보낸 모든 사람들은 귀신을, 귀신의 존재를, 초자연적인 현상을 믿는 사람들이다. 그래서 심야 괴담회를 보고 있으면 후욱 빠져들어 아주 재미있다.


심야 괴담회가 나오기 전에는 역시 직접 겪은 귀신의 사연으로 된 일본의 무서운 이야기나 기묘한 이야기 시리즈를 많이 봤지만 심야 괴담회에 나오는 귀신의 퀄리티가 훨씬 무서워서 이쪽을 보게 된다. 나는 공포 영화를 좋아하는데 뱀파이어부터 좀비물을 비롯하여 초자연이나 스티븐 킹, 러브 크래프트의 소설이 영화가 된 공포물도 좋다. 심령이니 폴터가이스트도 좋고, 오컬트 역시 좋아한다. 그래서 공포영화는 정말 많이 본 것 같다. 공포 단편 영화들도 많이 봤는데 외국에는 기가 막히게 잘 만든, 정말 무서운 5분 미만 짜리 공포 영화들이 많다.


밤에 무서움을 주는 공포영화도 좋지만 미드 소마처럼 환한 대낮에 무서움을 주는 공포가 더 겁이 난다. 이 정도로 말을 하면 내가 귀신의 존재를 믿는다고 생각하겠지만 나는 전혀 귀신이 있다고 믿지 않는다. 어릴 때부터 무서운 이야기를 많이 듣고, 또 무서운 이야기를 하기도 하지만 귀신이라는 건 이 세상에 없다는 게 나의 생각이다. 귀신의 존재를 믿지 않아서 공포물을 좋아하는지도 모른다. 귀신을 보지 못했기도 했지만 귀신이 없다고 주위에도 말하고 다니는 이유가 있다.


외국이나 우리나라나 귀신이 나오는 영화를 보면 귀신에게 죽임을 당하는 사람이 귀신과 직접적으로 관련이 있는 사람, 즉 누군가를 죽였는데 그 사람이 귀신이 되어서 복수를 한다던가, 아니면 사람에게 해를 끼쳐서 귀신이 찾아와서 죽이는 경우를 제외하고 아무 관련도 없는데 귀신에게 죽는 경우가 많다.


심야 괴담회를 봐도 귀신이 재보자를 데려가기 위해 빨간 실을 묶어서 끌고 간다던가, 또는 이사 간 집에 살고 있는 귀신이 이사 온 가족을 죽인다던가 하는 경우는 귀신과 관련이 없음에도 죽는다. 그럴 때는 죽은 사람도 귀신이 될 수 있으니 나를 죽인 귀신과 결투를 신청해서 싸우자.라고 할 수 있지 않을까.


귀신이 있다면 그래서 귀신에게 잘못도 없이 그저 끌려가서 재물이 되어 죽었다면 그 사람 역시 귀신이 되어서 죽인 귀신에게 달려들 수도 있다. 이미 한 번 죽었는데 더 이상 무서울 것도 없다. 귀신 씻나락 까먹는 소리 하고 있네, 라며 귀신에게 덤비는 것이다.


공포물을 좋아해서 열심히 보지만 정말 무섭군, 하는 영화는 드물다. 사실 거의 없다. 보고 돌아서면 생각도 나지 않는다. 공포물이 아닌데 정말 끔찍하게도 무서웠던 영화가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의 ‘아무도 모른다’였다. 그 영화는 참 무서웠다. 귀신보다 가족이 더 무서운 경우가 실제로는 많다. 연예인들의 경우도 가족이 참 무섭다는 걸 온 천하가 다 알게 되었고, 오은영에게 상담받는 가족들 역시 가장 사랑하는 사람과 결혼을 했는데 제일 싫어하고 미워하는 사이가 되기도 한다.


공포영화가 세상에 끊임없이 나오는 이유가- 공포물에서 귀신이나 초자연적인 존재가 무섭게 나오는 이유가 현실에서 인간이 제일 무섭기 때문에 영화 속에서나마 가상의 공포를 만드려고 노력을 했을지도 모른다.


요즘 워킹데드 시즌 1을 다시 보고 있는데 1화인가 2화에 글렌을 만나기 전 말을 타고 가다가 말이 좀비 떼들에게 물어 뜯기는 장면이 있다. 말의 배를 가르고 그 안의 순대를 꺼내서 좀비들이 막 먹는데 다시 보니 입으로 가까이 가져가지 먹지는 않는다. 아 뭐야? 먹지를 않네? 그게 지금 보면 너무나 눈에 확 들어온다. 어째서 처음에 볼 때는 안보이던 것들이 다시 보면 보이는 걸까. 왜 그럴까.


그게 바로 인간의 삶이라는 것도 그런 것이야 라고 말하려는 것일까. 당장 눈앞에 것은 잘 보지 못하고 그대로 믿어 버리다가 시간이 지난 후에 다시 보면 보이는 것들.


관계가 꼭 그렇다. 관계가 어려운 건 관계를 맺으려는 사람들이 혈액형이나 MBTI로만 구분할 수 없기 때문이다. 개개인이 전부 제각각이기 때문에 관계를 맺고 이어가는 것은 굉장한 일이다. 잘못된 관계, 틀어진 관계, 찢어진 관계, 뜯긴 관계는 당시에는 보지 못한다. 지나고 나서야 보인다. 꼭 세상이 멀홀랜드 드라이브 같다.


어제도 공포영화 미드 시리즈를 끝냈다. 시각적으로 직접적인 무서움보다 미드 시리즈의 공포영화 속에서 정말 무서운 건 사람들이다. 사람들이 겉과 속이 다르기 때문에, 어제는 이 말을 했다가 오늘 말을 바꾸어 버린다. 자신의 이익을 위해, 자신의 가족은 중요하고 타인은 중요하지 않기 때문이다. 공포가 확산되는 것도, 확산된 공포로 몰아넣는 것도 인간들인 것이다.


얼마 전에 ‘에브리씽 에브리웨어 올 앳 원스’를 봤다. 요즘 유행을 따라 멀티버스, 다중우주의 세계관으로 만들어졌는데 이 영화 역시 관계에 대해서 이야기를 한다. 가족의 관계에 대해서. 가족이란 가장 가까우면서 가장 알 수 없는, 제일 멀리 있는 존재이기 때문이다.


이 영화에서 마음을 홀딱 빼앗겨버릴 정도로 마음에 드는 장면이 있었다. 좀 웃기지만 두 덩어리의 돌멩이가 나오는 장면이었다. 인간은 겉과 속이 같은 사람이 없지만 돌이 되는 순간 순수하게 겉과 속이 같은 존재가 된다. 인간의 표정을 보고 그 사람의 생각은 알 수 없지만 돌은 겉과 속이 같기 때문에 진실한 대화를 할 수 있다. 몹시 인상 깊었다.


‘매일이 소란스럽고 전쟁 같지만 엄마는 오늘도 나에게 온 선물 같은 너를 위해 치열하게 싸운다’가 이 영화를 보고 든 생각이었다.


아무튼 워킹데드 다시 보니 그 시기에 나온 다른 시리즈에 비해 영상이 좀 허술해. 그래도 재미있다. 심야 괴담회는 어떻든 지금 현재 나에게 있어 가장 최고의 공포물이다. 나도 사연을 한 번 보내보고 싶은데 당최 귀신을 만날 수가 없으니. 흉가 체험이라도 해야 하나.



댓글(0) 먼댓글(0) 좋아요(6)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정말 요즘에는 안성탕면에 푹 빠져있다. 안성탕면을 10년 가까이 먹지 않고 그 전에는 신라면, 삼양라면, 진라면을 주로 먹었는데 요즘은 안성탕면을 내내 먹고 있다. 어릴 때 안성탕면을 많이 먹었는데 언젠가부터 안성탕면에 이상하게 밀가루 냄새가 많이 났다. 밀가루 냄새는 라면을 끓이면 보통 없어지는데 그 냄새가 라면을 끓이고 나서도 계속 남아서 다른 라면으로 눈을 돌렸다.


라면의 종류는 굉장히 많지만 먹게 되는 라면은 몇 종류가 안 된다. 이상하지만 늘 먹던 라면을 끓여 먹게 된다. 새로운 라면이 나왔다고 해서 한 번은 먹어보겠지만 시간이 지나면 늘 먹던 라면을 먹는다. 새로운 짜장 라면도 무수히 많지만 결국엔 짜파게티다. 잘 나가는 먹방 유튜버들이 아무리 새로운 라면을 끓여서 맛있게 먹고 홍보를 해도 라면만큼은 자신만의 라면을 고수한다.


안성탕면은 신라면과도 다른 면발이고, 팔도에서 나오는 도시락과도 다르며 삼양라면보다 국물 맛이 더 좋다. 그러니까 밀가루 냄새가 국물에서 싹없어졌다. 삼양라면을 먹을 때에는 라면을 푹 삶아서 퍼진 맛으로 자주 먹었다. 나는 라면의 퍼진 맛도 좋아한다. 숟가락으로 떠먹어도 될 법한, 그렇게 퍼진 맛도 좋다. 그런데 안성탕면은 꼬들꼬들하게 끓여서 먹게 된다.


우리나라에서 라면은 1인당 일주일에 1.7개라는데 나처럼 라면을 잘 먹지 않는 인간도 일주일에 두 번은 끓여서 먹는다. 고작 두 번 이기에 한 번 끓여 먹을 때 두 개 이상 먹어야지, 하며 덤비지만 이제는 위가 작아져서 그런지 라면 하나를 먹고 나면 배가 어느 정도 찬다. 배가 부르지는 않지만 밥과 반찬과 먹고 나면 야심 차던 공격성은 뒷전으로 밀려가 버리고 오늘은 이 정도로 해두지 뭐. 같은 마음이 되어 버린다.


안성탕면 하면 라끼남의 강호동이 생각한다. 강호동의 포포몬쓰로 대책 없을 것 같지만 철학적으로 끓여서 푸릅푸릅하며 안성탕면을 야외에서 정말 맛있게 먹는다. 강호동은 음식을 다 맛있게 먹지만 라면을 제일 맛있게 먹는 것 같다.


전국에서 가장 인기가 좋은 라면은 신라면이라고 한다. 1등이 신라면인데 전국의 모든 지역에서 신라면이 1등을 차지하고 있지는 않다. 2020년에는 부산 경남에서는 안성탕면이 가장 많이 먹는 라면으로 인기가 제일이라고 한다. 내가 사는 곳도 경남이라 그런지 요즘 내 입맛에는 안성탕면이지만 주위에서 안성탕면을 먹는 사람은 잘 못 본 것 같다. 나의 입맛도 언젠가 바뀔지 모르겠지만 지금은 그렇다.


안성탕면은 밀가루 냄새를 잡기 위해 쌀을 첨가해서 그 냄새를 완화시켰다고 한다. 특유의 밀가루 냄새가 나지 않는 것이 아니라 줄어든 것이겠지만 예전 같은 그런 냄새는 나지 않는다. 안성탕면은 파란 봉지의 해물 안성탕면도 있다. 나는 아직 먹어보지 못했는데 앞으로도 먹어 보려고 노력은 하지 않을 것 같다.


안성탕면은 83년 9월에 출시가 되었다. 라면이 나와서 인기를 끌면 그에 따른 재미있는 이야기가 있다. 오징어 짬뽕 라면, 신라면, 카레라면 같은 라면 이름은 이름만으로 라면을 짐작할 수 있는데 안성탕면은 이름이 왜 안성탕면이지? 하며 사람들이 궁금해했다. 농심 관계자가 이런 건 말해주지 않아서 사람들이 추측을 했는데 아마도 안성은 지역명이라는 가능성이 많다고 했다.


그래서 그 뒤에 삼영라면 쪽에서 호남탕면, 영남탕면, 서울탕면을 만들었다고 한다. 그러나 이런 라면을 먹어본 사람들이 거의 없다. 홍보를 못한 탓인지 소리 소문 없이 사라졌다고 한다. 삼양라면 하면 한때 또 재미있는 인터넷 작은 사건이 있었는데 누군가 디시에 글을 올렸다. 삼양라면을 먹고 들어간 햄 때문에 햄 맛이 강해서 삼양라면의 진정한 맛이 나지 않아서 빼 달라고 한 사연을 보냈는데 시간이 지나 삼양라면에 햄이 빠져 있었다는 글을 올렸다.


그랬는데 그 밑에 댓글들이 난리가 난 것이다. 사람들이 성지순례를 오게 되었고 댓글들이 대부분 욕이었지만 그중에 찰진 욕이 있고, 재미있는 댓글들이 아주 많았다. 조회수가 160만이 넘었었다. 댓글들을 보면 우리나라에서 정말 재미있는 사람들은 다 수면 밑에 숨어 있는 것 같다. 그 짧은 글 하나에 고수의 냄새가 나는 사람들이 많다.


또 라면 하면 재미있는 이야기가 있는데 예전에 한 번 올렸었다. ‘라춘쇠’에 관한 이야기다. https://brunch.co.kr/@drillmasteer/1346#comment


댓글(0) 먼댓글(0) 좋아요(3)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로렌스 스티븐 라우리의 그림을 보는 듯


하늘 보는 맛이 난다


연일 오늘이 최고의 날씨다. 오전 시간에 마음껏 해가 비치는 곳을 따라 돌아다니고 싶은 날이다. 어제까지 바람도 불고 추웠지만 오늘은 따뜻한 햇살에 바람도 없고 온도도 적당해서 붙잡고 징징거리며 놓치기 싫은 날이다. 커피를 투고하러 갈 때 빨리 걸어가는데 오늘은 천천히 걸었다.


밤이 되면 이러니 저러니 해도 추워지고 조깅을 끝내고 샤워를 하고 나면 피부가 건조해진다. 그러기 전에 가을의 햇살에 따뜻한 맑은 오늘을 주욱 느끼고 싶다.라는 생각이 강하게 드는 날이다.


이런 날의 오전은 사람들의 모습도 비관적인 모습이 없다. 어젯밤까지 슬프더라도 오늘 오전만은 날씨에 압도당해서 환한 얼굴이 되고 만다. 암에 시달리는 환자들도 오늘만은 해의 에너지를 받아 기운을 차리고 벤치에 앉아 지난날의 추억을 떠올리기 좋다.


이렇게 맑은 날과 닮은 사람을 안다. 그녀는 이런 날의 웃음을 지녔다. 화가 나더라도 그녀가 환하게 웃어버리면 게임은 그대로 끝나버린다. 그녀가 사라진 날 내내 하늘도 흐리고 그런 날의 연속이었다. 그녀가 하늘 저편에서 웃고 있는 모양이다. 그렇기에 이렇게나 맑고 밝은 날이 되었지 싶다. 이 계절의 맑은 날이면 손을 잡고 걸었던 그 바닷가가 생각난다.


걷다가 벤치에 앉아 쓸데없는 이야기에 웃고 저 먼 곳을 바라보던 그때가 떠오른다. 이렇게 예쁘고 아름다운 날은 일 년에 며칠이나 될까. 아름답고 예쁜 건 빨리 질리지만 그럴지라도 인간은 예쁜 걸 원한다.


커피를 받으러 가는 오전의 길목에서 생명들이 오밀조밀하게 모여 있는 모습을 보았다. 이렇게 있으면 사람이 밟고 지나가더라도 다치지 않는다는 걸 아는지 구멍이 난 그 안에 생명들이 야아 유후 하며 모여 있었다. 마치 봄의 그것처럼. 가을에 떠난 사람들을 보며 겨울을 견디고 다가오는 봄에게 무엇인가를 바라는 것처럼.


포지션의 ‘봄에게 바라는 것’이라는 노래가 떠오른다. 이 노래를 너무 좋아해서 내내 부르고 다녔던 적이 있었다. 사랑이 전부였던 그 시절의 노래들. 그래 봐야 고작 10년 정도 전이다. 피아노가 도입 부분을 적시고 나면 임재욱의 애달픈 목소리가 나온다.


‘바람에 나부끼다 어느 거리를 떠돌다가 널 닮은 하늘을 바라보니 자꾸 눈물만 훔쳐낸다'


정말 요즘은 하늘을 더 많이 쳐다본다. 매일 두세 번씩 가만히 서서 멍청하게 하늘을 보는 것 같다.


저녁에 조깅을 하고 돌아오는 길에 저 먼 하늘에 반짝이는 당신을 찍었다. 왜 사라지지 못하고 밤이면 늘 그곳에 떠서 반짝이며 울고 있을까. 이제는 그만 편하게 잠들어도 될 것 같은데.라는 쓸데없는 생각을 한 번 해본다. 밤에도 구름이 보이는 건 이맘때 정도뿐일까. 유독 구름을 자주 볼 수 있다.



감성적이기를 주욱 바라지만 이런 사진을 보면 어쩔 수 없이 기기의 문제에 대해서 생각하게 된다. 으휴 하며.


이 사진에도 저 먼 하늘의 어느 지점에서 반짝이는 별이 있다. 세상은 정말 고요에 휩싸여 적요한 것 같다. 강변에 나와 달리다 보면 좋은 건 자동차들의 소리를 거의 들을 수 없다는 것이다. 생각해보면 전국 어디를 가나 자동차 소리를 듣게 된다.


자동차의 엔진 소리, 지나가는 소리, 굴러가는 소리. 달리는 소리, 끄는 소리 등. 애써 인적이 드문 곳으로 가지 않는 이상 어디든 자동차가 있다. 한집에 한 대씩 있던 자동차가 한 집의 가족수대로 자동차가 있는 시대가 되었다. 신기하다면 신기하고 이상하다면 이상하다. 자동차 관련 업계는 승승장구일까.



그림 같은 하늘이다.


하늘과 구름과 달이 한 화면에 들어왔던 날이다.


인간의 원대한 꿈,


하늘을 날 수 있다면,


그렇다면 저기 저 구름 위에서 멋지게 포즈를 잡고

하늘을 날아볼 텐데.


사실 나는 고소 고포증이 심해서 하늘을 날지는 못할 것이다.


밑을 쳐다보는 것이 죽기보다 싫을 정도로 높은 곳이 싫다.


만약 이 사진에

피터팬을 그려 넣으면 완벽할지도 모를 하늘이다.


피터팬이 웬디와 함께 하늘을 날아다니는 그 장면은

정말 어릴 때 봤는데 커서도 여전히 기억이 난다.


피터팬 영화 하면 나는 로빈 윌리암스의 ‘후크’가 제일 좋았다.


줄리아 로버츠가 웬디로 나오고 더스틴 호프만이 후크였다.


웬디가 아니라 팅커벨이다. 


어른이 되면서 나는 법을 잃어버린 피터팬.


기억도 함께 잃어버린다.


그러나 잃어버렸던 마음을 되찾아

피터팬이 날 수 있게 된다.


그때 정말 찌릿하고 쾌감이 좋다.


그 영화에서 그런 말이 나온다.


사는 것이 가장 큰 모험이라고.


이상은의 삶은 여행에서 처럼 우리 모두는 긴 여행을 하는 것이고

매일 모험을 하고 있고 그걸 즐기는 사람이 있고 그렇지 못한 사람도 있다.


저 사진에 피터팬과 웬디, 까지 생각을 하고 보니

합성해서 집어넣는 건 나에게 어려운 일이 아니다.


짜잔.

날 수 있다는 생각을 버리지 마.


저녁에 조깅을 하러 나오면 자주 볼 수 있는 모습이다.

오렌지 빛의 하늘.

개와 늑대의 시간.

근사한 일이 벌어질 거라는 기대에 찬 시간.

곧 호텔의 방들이 분주해지는 시간.

많은 이들이 황혼이 지면 하루의 고생을 곧 일어날 밤의 기대로 바꾸는 시간이다.

그러나 이 시간은 쓸쓸한 시간이기도 하다.

이 사진을 수채화로 바꾼다면 아마 제임스 맥닐 휘슬러의 그림처럼 보일지도 모른다.

정말 아름답고 눈을 뗄 수 없지만 쓸쓸한 휘슬러의 그림.

금빛의 야상곡이 펼쳐지는 시간이다.


딱 가을의 하늘 모습이다.

높고 푸르고 하얀 구름이 양 떼처럼 가득 펼쳐 있는.

다운타운에 아직 남아있는 오래된 건물을 허물지 않고 잘 활용해서 카페로 변신한 곳들이 있다.

예쁘기도 하고 커피 맛도 좋다.

저 옥상의 문형을 사랑하는 이들이 아직 곳곳에 있다.

어른이 되어서 날아가는 방법을 잃어버린 피터팬 같은 사람들이.


요즘은 날이 좋아서 조깅을 하고 나면 등과 얼굴에서 땀이 많이 난다. 그러나 반환점에서 잠시 쉬고 있으면 땀이 금방 마르는, 그런 날의 연속이다. 좋은 날의 하루하루다.



그래서 오늘의 선곡은 포지션의 봄에게 바라는 것 https://youtu.be/6N9csW10GFU



댓글(0) 먼댓글(0) 좋아요(9)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