낮에는 덥고 밤에는 춥고.

낮에는 따뜻하다고 하는 게 맞지만 오전과 밤에 춥기 때문에 두꺼운 겉옷을 낮에도 입고 있어서 낮에는 좀 덥게 느껴진다. 남부지방이라는 특성 때문인지 낮에는 온도가 올라 그늘에 있으면 시원하고 해가 비치는 곳에 있으면 따뜻하고 좀 더운 감이 있어서 잠이 쏠쏠 온다.


요즘 같은 날에 산책하기 좋으나 자본주의 노예가 되어서 인지 미드를 섭렵하느라 시간만 나면, 또는 시간을 내서 미드를 보고 있다. 이상하지만 미드는 길면 길수록 더 재미있다. 예전 왕좌의 게임도, 덱스터 시리즈도, 베이츠 모텔도 길어서 더 재미있고 좋았다. 끝나가려고 할 때 다음 회가 또 있었지? 하며 기대가 있다. 자본력이 막강해서 그런지 영상으로 보이는 화면 속에 놀라운 효과들이 많다.


비행기가 추락하고 대도심지에 땅이 꺼져 아주 큰 싱크홀이 나타나고 태풍이 와서 대 홍수가 일어 빌딩이나 모든 집들이 물에 잠기는 모든 영상을 영화보다 더 실감 나게 만들어낸다. 게다가 수위가 높은 시리즈, 즉 액션이 너무나 지독하게 현실감이 있어서 피를 낭자하게 하는데 인상을 쓰게 만든다던가 - 너무나 실제 같아서, 또는 젝스 신의 수이가 높은 것도 그렇다. 무엇보다 심리 스릴러에서는 악마인지 인간인지 실제인지 비현실인지 구분이 모호한 현상 속에서 주인공들이 사건을 파헤치려는 이야기들은 너무나 재미있다.


미드를 보면 일본 자본이 대거 들어간 시리즈도 많다. 거기에는 일본 배우들이 왕창 나오는 미드도 있다. 사람들은 일본은 더 이상 죽었다 같은 말을 하지만 미드 속에 나오는 일본 배우들과 일본문화 같은 것을 보면 그렇지도 않은 것 같다. 재미있는 미드는 흘러넘치고 그 시리즈를 보면 드라마의 기본이 되는, 이 긴 이야기의 각본은 어떻게 적었을까 하는 생각이 가장 먼저 든다. 이런 멋진 이야기들이 영상이 되려면 먼저 스토리가 있어야 하고 그건 활자로 먼저 세상에 나와야 한다.


어떻게 적었나 하는 기술적인 부분을 말하는 게 아니라 이런 이야기를 머리에 어떻게 생각을 했을까 하는 것이다. 물론 세상의 사람은 70억이나 되고 그중에서 스토리를 잘 짜는 사람도 있고 또 그중에서 글을 잘 적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지구에 사는 사람들을 그저 숫자로 70억이라고 하니 크게 와닿지도 않는다. 70억이라는 하나의 숫자는 모호하다.


이번 참사에도 156명의 희생자라고만 해 버리면 그저 하나의 숫자에 사망한 사람들이 묻히게 된다. 기타노 타케시의 말처럼 156명이 죽은 하나의 사건이 아니라 한 사람이 죽은 156건의 사건이어야 한다. 그래야 국가에서 버리다시피 죽음을 맞이한 희생자들이 그저 숫자에 묻히지 않을 수 있다.


생명체는 고도의 질서다. 우리가 사는 지구, 우주 이 모든 것이 고도의 질서다. 생명체뿐만 아니라 천체 이 모든 것들이 고도의 질서인데 아직 왜 그런지 해명이 되지 않고 있다. 그러나 점점 무질서를 향해 간다고 물리학자들은 말한다. 그런데 이런 현상이 물질의 세계뿐만이 아니라 인간의 문화, 인간의 사회현상에도 마찬가지의 법칙이 적용이 된다고 유시민 작가는 말했다. 누군가가 의지를 가지고 질서를 유지하려고 하지 않는다면 인간 사회 역시 무질서로 가는 것이라고. 고도의 질서를 가지고 논하기에는 물적인 부분만 이야기하는 너무나 원시적인 사건이다.


나는 사실 안 그런 척 하지만 코로나가 덮쳤을 때 무서웠다. 잠자는 시간 빼고 계속 뉴스만 틀어 놓고 있으니 확진자의 상태, 전염되는 속도, 죽는 순간, 일부러 퍼트리는 사람들까지. 무섭지 않을 수 없었다. 공포란 이렇게 오는 것이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고 그런 생각 때문에 더 무서웠다. 그런 느낌은 예전에 세월호가 물에 빠지는 모습을 하루 종일 실시간으로 볼 때에도 비슷했다. 그때에도 무섭고 두려웠지만 아무것도 할 수 없었고 뭔가를 하고 싶어서 매주 열리는 촛불집회에 참석을 했다. 매주 나갈 때마다 나눠주는 팸플릿을 들고 왔다. 그건 아직 저 서랍 안에 있다. 거기서 고함을 지르고 떼창을 하기도 했다. 그랬는데 코로나가 좀 잠잠해질 무렵에는 또 이태원 참사 현장을 실시간으로 보게 되었다. 물론 나와는 모두가 상관없는 사람들이다. 어쩌면 그래서 더 슬플지도 모르겠다.


현재 미국 사회에서 클로이 모레츠를 공격하고 경멸하고 욕을 하고 킴 카다시안을 떠받드는 건 미국 사회가 병들었다는 증거다. 그 병은 너무나 깊고 전염이 강해서 더 빠르고 강력하게 사람들을 전염시킨다. '왜'가 아니라 그저 '너'라서 싫고 밉다고 할 뿐이다. 이 문제를 브라이언 싱어가 영화 엑스맨 1, 2에서 잘 녹여냈다. 돌연변이들은 우리 인간사회에서 같이 생활하는 다양한 인종, 질병에 노출된 사람, 사고로 인해 팔다리가 잘리거나 없는 사람들일 뿐이다. 하지만 그들을 바라보는 우리의 시각은 왜 싫은지가 아니라, 그저 너라는 이유로 싫은 것이다. 엑스맨 1편에서 가장 멋진 대사는 트럭에서 로그가 울버린에게 아다만티움의 갈퀴가 손을 뚫고 나올 때 아프지 않아?라고 물으니 "매번"라는 대사였다. 장애를 가진 사람들에게 정상적이지 못하는 말을 하는 사람들이 있다. 장애는 비정상적인 모습이 아니라 몸이 좀 불편할 뿐이다. 비정상적인 사람은 그렇게 바라보는 시각을 가진, 정상적이지 못한 생각을 하는 우리들의 모습이다. 병이 깊은 것이다. 그 병은 거대한 미국에서 곧 옆 나라로, 옆 나라로 전염이 될 것이다.


이렇게 날이 좋고 세상에 더 없을 좋은 계절에 허망한 마음이 드는 건 자연은 인간의 마음과는 무관하게 예뻐야 할 때에는 앞뒤 재지 않고 예쁨을 뽐내기 때문이다. 코로나가 세상을 덮쳐도, 세월호가 바다에 빠져도, 이태원에서 사람들이 압사를 당해도 자연은 그러거나 말거나 가을이 되면 가을의 옷을 입고 예쁨을 뽐낸다. 그렇기에 인간은 허망하다.


예쁜 건 빨리 망가진다. 아무짝에도 쓸모없다. 그러나 인간은 예쁜 걸 찾는다. 아름답다, 고혹적이다, 매혹스럽다, 귀엽다는 예쁘다를 이길 수 없다. 만약 이렇게나 예쁜 나의 사람이 다른 사람과 바람을 피우는 장면을 목격했다면 어떻게 해야 할까.


오토가 젊은 남자와 자신의 집에서 바람을 피우는 장면을 목격하고도 조용히 문을 닫고 밖으로 나와야 했던 가후쿠처럼 할 수밖에 없지 않을까. 가후쿠는 예쁜 아내를 잃고 싶지 않을 만큼 사랑하고 있다. 그런데 오토는 가후쿠가 자신이 바람을 피우고 있는지 알고 있는 그 사실을 알고 있다. 어느 날 오늘은 일을 마치고 들어오면 할 이야기가 있다고 말한다. 가후쿠는 알았다고 웃으면서 말하지만 집으로 들어가기가 싫다. 무서운 것이다. 가후쿠는 상처를 받았지만 제대로 받지 않았다. ‘드라이브 마이카’에서 주인공 가후쿠가 자신의 아내인 오토가 죽고 나서야 제대로 상처를 받아야 한다는 것을 알게 된다.


미안한 마음이다.라는 말은 무슨 말일까. 미안한 건 알겠지만 미안한 마음은 도대체 어떤 의미일까. 미안한 마음입니다,라고 말하는 사람들은 대체로 미안하지 않은 얼굴을 뒤에 감추고 있다. 미안한 마음이라는 말은 닭볶음탕 같은 말이다. 닭볶음이면 닭볶음이고 탕이면 탕이어야지 닭볶음탕은 도대체 뭔가. 어쩐지 그 모양새가 떠오르지 않는다. 닭도리탕은 어째서 안 된다는 것일까. 닭도리탕은 이미 머릿속에 그 모습이 선하게 떠오르는데.


라디오에 이문세 노래가 많이 나온다. 이문세 4집 정도의 노래. 이문세 4집은 정말 좋은 거 같다. 앨범 속 모든 노래가 좋으려면 노래를 잘 만들어야 한다. 아마도 노래를 만든 이영훈이 혼을 담아 노래를 만들었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그는 살아생전 이문세에게만 노래를 주었다. 다른 기획사에서 거대 자본을 준다고 했지만 자신의 노래를 가장 잘 부를 수 있는 사람은 이문세라며 그와 끝까지 하고 싶다는 의사를 비쳤다.


이영훈의 노래가 가장 애틋하고 아름답고 처절하게 들리는 노래는 이문세와 이소라가 같이 부른 ‘슬픈 사랑의 노래’다. 노래 한 곡이 만들어지는데 10년이 걸렸다고 한다. 꼭 오래 걸려서 좋은 노래라는 건 아니다. 이 노래가 좋다는 건 노래를 들어본 모든 사람이 알고 있을 것이다. ‘세상에 너밖에 없는데,,,,’라는 가사가 그렇게 슬픈 것도 아닌데 노래를 듣고 있으면 슬퍼진다.


이영훈은 이 노래를 “내가 가장 사랑하는 곡이고, 내 생애에 다시 작곡하기 힘든 곡”라고 말했다. 이 노래를 듣고 있으면 노래의 형태가 살아나서 마치 영화를 한 편 보는 것 같다. 이영훈은 망가져 가는 몸에도 불구하고 86년에 작곡을 시작해서 6년 만에 멜로디를 완성했다. 그리고 이 멜로디에 맞는 가사를 쓰는데 또 4년이나 걸렸다. 10년에 걸쳐 이 노래가 완성이 되었다. 이 노래를 듣고 있으면 노래 속 두 사람의 10년의 역사가 필름이 되어 테이크, 테이크가 되어 흘러간다. 노래는 말하고 있다. 세상이 조금 더 아플지라도 너는 내 곁에 있어야만 한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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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치가 먹고플 때 수육을 좀 삶는다. 수육만큼 간단한 음식도 없다. 그저 물에 풍덩 빠트려 삶으면 끝이다. 집에서의 수육은 워낙 간단하기 때문에 여러 재료가 들어간 육수에 끓여낸 수육 전문점에 비해 맛은 별로다. 별로라도 상관없다. 김치가 먹고 싶기 때문이다. 김치가 먹고 파서 수육을 삶았으니까. 김치에 싸서 와암 먹으면 된다. 이렇게 자기 최면을 걸면 된다.


된장을 좀 풀어서 삶으면 맛이 훨씬 낫다. 소주를 부으면 좀 더 낫다. 아직은 넣어본 적이 없는 월계수 잎이나 한약재료 같은 것을 넣으면 더 맛이 있겠지. 그러면 간단한 수육이 아니다. 간단한 수육은 그저 간단하게 만들어서 김치와 먹는 것이다. 김치가 먹고 싶기 때문에 수육을 삶았다.


수육 말고 찜이나 짜글이를 해 먹을 때 맛있게 먹으려면 쌍화탕 한 두 병 따서 넣으면 맛있다. 쌍화탕에서 한약 맛이 나는데 이게 끓으면서 위에서 말한 월계수 잎이니 한약재료를 잔뜩 넣는 효과를 낼 수 있다. 그러니까 그냥 맛있다. 그러나 지금은 수육의 시간이다. 집에서 간단하게 먹는 수육의 시간.


수육의 시간은 간단하게 조리해서 먹을 시간이어야 한다.


생각해보면 수육 전문점은 잘 없다. 우리 동네에도 수육 전문점이 있는데 집으로 가다가 보면 손님이 없다. 굴지의 제조업 회사가 있어서 맛이 좋은 어지간한 식당은 사람들이 많을 텐데 손님이 없다. 코로나 이전부터 경기가 안 좋아진 제조업 사정이나, 또 코로나의 여파 떼 문일지도 모른다. 그것이 아니면 그 집의 수육이 맛이 없거나.


수육의 사촌쯤 되려나, 족발은 여기저기서 많이 판다. 족발집도 예전에는 참 많았던 것 같은데 족발전문점도 요즘은 예전만큼 잘 볼 수 없다. 예전에 자주 가던 족발집에는 수육도 같이 팔았는데 수육보다는 딸려 나오는 무채 썰이가 너무 맛있어서 사람들이 너도나도 수육을 주문했다.


수육은 돼지국밥 집에는 다 팔기 때문에 굳이 수육 전문점에 가서 사 먹지 않아도 된다. 돼지국밥집에서 파는 수육이 내 입맛에는 가장 맛있다. 국밥도 분명 국밥집마다 맛이 다 다르다. 국밥을 만들 때 돼지머리로 육수를 내느냐, 뼈로 육수를 내느냐, 고기로 육수를 내느냐, 고기와 뼈로 육수를 내느냐에 따라 맛은 다 다르다. 거기에 먹는 사람의 스타일에 따라 들어가는 양념이 새우젓이냐, 소금이냐, 깍두기 국물이냐에 따라서도 맛이 또 갈라진다.


그래서 결론을 내리자면 국밥집의 국밥은 대체로 다 맛있다. 그리하여 국밥집에서 파는 수육 역시 다 맛있다. 우리가 왕왕 가는 국밥집은 국밥만 주문하면 그 안에 고기가 별로 없다. 그래서 수육을 따로 한 접시 주문해서 국밥에 넣어서 같이 먹는다. 코로나가 터지기 전에는 24시간 하는 그 국밥집에 일주일에 한 번은 갔었는데 이제는 잘 가지 않게 된다.


그래서 김치가 집에 있으니, 요 맛있는 김치가 있으니 김치를 싸 먹을 수 있는 수육을 간단하게 삶았다. 아, 고기만 먹으니 참 맛없다. 그러나 김치와 함께 먹으니 음 맛있다. 그저 간단하게 삶아버려 텁텁한 고기의 맛을 김치의 상쾌함이 잡아준다. 비싼 소주나 싸구려 와인이 없는 것이 아쉽다.


집에서 이렇게 간단하게 삶은 수육은 누군가에게 대접하기는 애매하다. 그저 나 먹으려고 먹는 것이다. 분명 입이 까다로운 사람이 먹으면 입에서 험난한 크레바스처럼 뾰족한 말들이 튀어나올지도 모른다. 아니 나올 것이다. 나는 못 먹는 것 빼고는 크게 맛있다와 맛없다의 차이가 없는 이상한 입과 혀를 가지고 있다. 매운 음식을 먹지 못하니 매운 음식을 빼고는 대체로 다 맛있다고 생각하고 먹는 편이다. 쓰고, 시고, 새그랍고, 짜고, 밍밍하고, 싱겁고, 시그럽더라도 매운 것보다는 다 낫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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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현재 두 대의 아이패드를 사용하고 있다. 아이패드 미니와 아이패드 6세대를 매일 사용한다. 주로 기록하는 데 사용을 하고 있다. 아이패드로 사진을 찍을 일이 없다고 여러 유튜브에서 말하지만 여기에 올리는 음식 사진은 싹 다 아이패드로 찍었다.


나는 아이패드 두 대 전부 보호필름이 없다. 아이패드에 사실 보호필름 같은 건 필요 없다.라는 게 나의 생각이다. 보호필름은 스크래치에 강해서 붙인다고 하는데 보호필름 없이도 스크래치는 거의 나지 않는다. 화면에 무엇인가 떨어져 마찰이 있더라도 무거운 것이 아니라면, 요컨대 볼펜이나 연필 같은 것이 떨어져도 스크래치가 나지 않는다. 보호필름이 아이패드를 떨어트렸을 때 화면을 보호해주는 가 하면 애매하다.


예로 카시오 시계 중에 디다블류오천사백인가, 그 모델은 기네스에 등록이 되어 있는데 트럭이 밟고 지나가도 아무렇지 않기 때문이다. 그러나 사고가 나서 트럭이 시계를 밟기 전에 인간이 먼저 트럭에 깔려 죽는데 시계가 살아난 듯 무슨 소용일까. 하는 것과 비슷하다. 아이패드를 떨어트려 기기가 파손되면 보호필름을 부착했더라도, 그리하여 화면만 살아났다고 해서 무슨 소용일까, 라는 생각이다.


중고로 되팔기 위해서 조금이라도 돈울 더 받으려고 깨끗하게 사용하려는 목적이 있다면 보호필름이 있는 가장 좋은 예가 아닐까 싶다. 보호필름 없이 수 년째 사용하고 있는 내가 볼 때에는 화면을 매일 터치를 하고 매일 닦는데 스크래치가 나지 않는다. 나는 그렇다는 말이다.


아이패드 같은 기기를 사람들은 조심히 다룬다. 나도 보호필름을 부척하지 않고 사용하고 있지만 막 다루지는 않는다. 그런데 너무 조심스럽게 사용하는 것도 어딘가 이상하다. 직관적인 터치로 사용하는 아이패드 같은 기기는 너무 조심스럽게 다루기보다는 조금은 막 다뤄도 괜찮은 것 같다. 그렇게 사용을 한다고 해도 보호필름이 반드시 아이패드에게 필요하지는 않다.


아이패드의 보호필름은 뭐랄까. 아이패드를 보호한다는 의미보다 마음을 안정시켜주는 필름이라 생각된다. 아이패드 화면을 보호하는데 보호필름은 딱히 크게 역할을 하지 않지만 만에 하나라는 인간의 불안한 마음에 보호망을 친다. 인간의 불안한 마음에 보호필름을 붙여 안정감을 준다.


어쩌면 인간의 그런 마음을 기업은 잘 노렸다. 인간의 불안한 마음을 노린 물품을 팔아치우는 기업은 대체로 성공을 하는 것 같다. 인간은 누구나 보호받기를 원한다. 아이 때에는 엄마의 보호 속에서 놀이터에서 놀면 재미있다. 놀이터에서 놀다가도 아이는 고개를 돌려 엄마의 존재를 확인한다. 본능적으로 엄마의 보호를 받고 있다는 안정감 속에서 마음 놓고 놀이터에서 놀 수 있다.


커가면서 사랑하는 이의 보호를 받았다는 느낌을 받으면 행복해진다. 가족을 이루어 가족 안에서 보호받는다는 이 기분은 엄마의 양수 속에서 몸을 말고 편안하게 있는 태아의 안정감이다. 인간은 모순적이게도 자유를 갈망하고 자유를 늘 바란 다지만 인간이 바라는 자유는 보호 속 자유다. 진정한 자유를 던져주면 인간은 불안해하고, 두려워하고, 무서워서 견디지 못할지도 모른다. 그런 세계관의 영화가 2017년작 ‘보케’다. 한 연인만 남기고 지구의 모든 인류가 사라졌다. 막대한 자유가 주어졌다. 그러나 결국 견디지 못한다.


그래서 인간은 권력을 미워하지만 권력을 숭배하고 권력에 기대기를 바란다. 권력에 편승하고 권력에게 몸을 구부린다. 그 안에서 안정된 자유를 보장받기를 바란다. 하지만 권력에게 금이 가도 권력은 그것으로 그만이지만 결국 깨지고 부서지는 건 개인이다. 지켜주리라는 마음의 안정이 있었지만 실제로 권력은 개개인의 안정에 신경을 쓰지 않는다.


아이패드 보호필름은 핫팩 같은 것과 비슷하다. 이제 곧 덜덜덜 하는 차가운 겨울의 나날의 연속일 것이다. 그리고 사람들은 핫팩을 주머니에 넣어서 다닐 것이다. 핫팩은 일정한 시간 동안만 뜨거워지기 때문에 구입하자마자 비닐을 뜯지는 않는다. 대부분 시간을 대충 계산해서 뜯어서 나를 따뜻하게 해 줘야지, 하는 마음을 가진다. 그러면 아직 뜯지 않은 핫팩이 주머니에 들어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마음은 어쩐지 안정이 된다.


나는 원래 그런 인간인지는 잘 모르겠지만 카메라든, 폰이든, 대체로 아주 깨끗하게 쓰는 편이다. 마구잡이로 사용을 하는데 한 번도 떨어트린 적이 없다. 그래서 그런지 아이패드를 구입해서는 아예 보호필름 같은 건 붙이지 않았다. 주위에서는 아니 왜? 같은 반응이다. 아이패드의 보호필름이 점점 비싸지고 사실 떨어트렸을 때 화면의 보호에는 크게 작용하지는 않을지 모르나 보호필름을 붙였다는 것만으로도 우리 인간은 마음이 편안해진다. 그러면 됐지. 왜냐하면 인간은 모순덩어리고 인간은 전부 제각각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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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밤중에 참지 못하고 견디다 견디다 라면을 꺼내 들었다. 라면만 간단하게 끓여 먹으려 했으나 콩나물이 있어서 듬뿍 넣었다. 신김치가 옆에 있기에 같이 넣어서 끓였다. 이왕 이렇게 먹는 거 좀 더 맛있게 먹기 위해 계란을 그냥 넣지 않고 옆에서 스크램블로 만들어서 넣었다.


오밤중에, 자정에 이게 무슨 짓이지,라고 하면서 끓이지만 일단 한 젓가락 하게 되면 모든 생각은 액토플라즘이 되어 공중으로 떠 올라 허공으로 사라진다.


맛있다. 맛있게 먹는다면,

그렇다, 맛있게 먹는 다면 0칼로리가 아니라 행복하다.


이렇게 야심한 밤에(라고 적지만 요즘 밤은 이상하지만 야심하지 않은 기분이다) 콩나물을 듬뿍 넣은 라면을 먹으며 본 것은 미드 서번트 시리즈다. 나이트 엠 샤말란을 좋아하는 사람들은 이 시리즈에 나처럼 그대로 빠져들 수밖에 없을 것이다.


이 기괴함, 이 어두움, 이 음험함과 이 찝찝함 그리고 이토록 답답함과 그리고 등줄기를 잡고 당기는 이 알 수 없는 긴장감과 숨쉬기 어려울 저도로 무거운 공기의 압박감을 느낄 수 있는 시리즈를 나잇 샤말란 감독이 만들어냈다. 오 하면서 보다가 하 하면서 느끼면서 호로록 라면을 먹으면서 보는 것이다.

등장인물이 몇 안 되는 요상한 시리즈다. 한 정 된 공간, 번화한 도심지에 있는 아주 오래된 집에서 네 명의 주인공이 이야기를 끌어간다. 잘 나가는 기자와 일류 요리사 부부가 사는 이 집에 보모, 즉 서번트로 18살의 리엔 그레이슨이라는 소녀가 들어오면서 알 수 없는 음험한 일들이 벌어지는 이야기다.


모든 것이 수수께끼와 매 화면마다 메타포가 가득한 이 영상미는 마치 한니발 시리즈를 보는 것 같은 긴장감을 준다. 이 시리즈를 보면 이 집도 이상하지만 터너 부부도, 리엔도, 그리고 도로시의 남동생 - 한때 론 위즐리의 줄리안도 전부 이상하다. 누가 정상이고 누가 비정상인지 구분이 안 된다.


사이코 심리 스릴러 같으면서 오컬트 호러를 표방하다가 무서운 공포 영화처럼 보이기도 한다. 이런 긴장감과 기이한 음악이 한몫을 하는데 마치 피부 밖으로 실밥 하나가 나왔는데 뽑으면 계속 딸려 나오는 것 같은 기기괴괴한 이야기다. 시즌 1, 2가 이 정도의 느낌이라면.


시즌 3으로 가면서 이 서번트가 바뀌려고 하고, 그러다가 서번트가 쥐도 새도 모르게 - 이러면 재빠르게 바뀌는 것 같지만 아주 천천히 쥐도 새도 모르게 - 바뀌는 것이 드러난다. 그러면서 기괴한 일들은 점점 그 폭이 넓고 깊어진다. 시즌 4가 제작 확정이라니까 빨리 보고 싶다.


이 시리즈는 현실과 환상의 구분이 모호하다. 주인공들 역시 현실감과 환상 속에서 지내는 듯한 모습을 보인다. 리엔이 신경 물질 때문인지 광신도 때문인지 격리를 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도로시의 표정과 말을 들으면 도로시가 더 현실감에서 멀어지는 이상한 인간으로 보인다.


무엇보다 연출, 음산하고 기괴하고 웅장한 음악은 한니발의 그 분위기를 느끼게 한다. 빛과 어둠을 잘 다뤄서 마치 카메라로 인물 사진을 느낌 있게 담아내는 것 같다.


시리즈 내내 야금야금 라면을 먹으면서 보다 보니 먹는 라면이 ‘서번트 라면’ 같은 기분이 든다. 서번트 라면이지만 서번트가 아닌, 마치 라면은 인간 생활 전반에 파고들어 이제 서번트가 아닌 본격적인 인간 제어에 동참해버리는,,,,,


이렇게 보다가 옆 채널에는 고로 씨도 라면을 맛있게 먹고 있다. 고로 씨의 먹방을 제외하고 일본 드라마에서는 집에서도 대체로 컵라면을 먹는 모습이 많다. 우리나라 드라마에서는 라면을 끓여 먹는 모습이 많다. 고로 씨가 먹는 라면도 라멘집에서 먹는 라면이다. 아주 맛있게 먹는다.


콩나물을 잔뜩 넣어서 이렇게 끓인 라면을 본다면 호오 하면서 관심을 가질게 분명하다. 고로 씨의 먹방을 보면서 고로 씨가 실제로 있다면 어떤 사람일까 하는 생각을 하게 된다.


고독한 고로 씨는 실제로 보면 밥만 혼밥 할 뿐이지 겉으로 보는 것만큼 고독하지 않다. 시즌 1의 4화를 보면 고로 씨에게 깜짝 고백을 하는 예쁜 여배우에게 퇴짜를 놓는다. 그리고 여배우는 10년 후에 실망할지도 모른다고 한다. 웨딩드레스 입은 모습을 가장 가까이에서 볼 수 있었는데 그걸 놓쳤다며 말이다. 고로 씨는 그러거나 말거나 단 음식이나 먹으러 가자고 한다.


인간이 고독한 이유를 생각해보면 곁에 누군가가 없어서다. 곁에 기대고 싶고, 나의 어깨를 내줄 수 있는 사람, 즉 사랑하는 사람이 옆에 없어서 인간은 고독하다고 느낀다. 그래서 군중 속에서 오히려 더 고독해지기도  한다. 고독은 외로움에서 기인한다고 생각된다. 어딘가에서는 외로움은 견디고 고독은 즐기라고 했는데 그렇게 할 수 있는 인간은 보통의 인간은 아닌 것이다. 보통의 인간은 외로움으로 힘들고 고독을 견디기 어려워한다.


그렇게 보면 고로 씨는 보통의 인간은 아닌 것이다. 고로 씨는 여자를 사랑하기보다는 음식을 사랑하는 것이 우선이 된 것 같다. 사랑은 원한다고 해서 마음껏 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그에 반해 음식은 원하면 언제든 사랑할 수 있다. 언제든지 먹을 수 있는 게 음식이다. 한 음식만 사랑하지 않아도 된다. 다양한 음식을 먹으며 그 음식 맛에 행복하다고 느끼는 것으로 고로 씨는 풍족한 생활을 하고 있다. 그래서 고독하지만 고독하지 않을지도 모르는 미식가 고로 씨가 아닐까 싶다.


콩나물 잔뜩 넣은 라면 얘기하다가 결국 서번트를 거쳐 고로 씨까지 와버렸다. 고로 씨가 서번트에 나오는 저 부부, 터너 부부에게 저녁 초대를 받아서 가면 좀 재미있을 것 같다. 터너는 일류 요리사라 시리즈 내내 맛있는 요리를 만들어서 먹는 장면이 많이 나온다. 그런데 미국 영화를 보면 알겠지만 아주 조금 칼로 잘라서 포크로 집어서 입에 넣어 오물오물 먹는다. 고로 씨가 음 하면서 싫어하겠지.


서번트에는 줄리안으로 루퍼트 그린트가 나오는데 모두가 식사하는데 혼자서는 거의 내내 와인만 마신다. 모두가 요리를 먹을 때에도 줄리안은 술만 마신다. 그래서 그런지 나오는 주인공들 중에 제일 살이 쪘다. 서번트 시리즈에서는 루퍼트의 젝스 신을 볼 수 있다. 현실에서 루퍼트는 이미 아버지가 되었다.


역시 해외 가십 이야기는 라면 먹으며 하는 게 젤루 재미있다.



https://youtu.be/P77p8LSKvMc 예고편, 앱흘티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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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로케는 어디서 팔든 – 시장이든 베이커리든 다 맛있다. 코로나 전에는 조을 하고 돌아오는 길에 들러서 매일 고로케를 하나씩 사 먹었다. 지역 빵집으로 유명한 곳으로 저녁 8시가 되면 20% 세일을 하기 때문에 매일 들러서 하나 내지는 두 개 정도 고로케를 사 먹었다. 그러나 매일 고로케가 남아 있지는 않다. 그러면 다른 빵에 눈을 돌리고 쟁반에 담다 보면 만원 가까이 담게 된다.


전통시장에서 사 먹는 고로케도 맛있는데 이유는 5일장이 열리면 시장 여기저기 기웃기웃 어슬렁 둘러보면 허기가 지는데 그때 바로 만들어 놓은 고로케를 와암 먹으면 정말 맛있다. 그럴 때 사이다가 있으면 더 좋다. 사이다는 김밥과 삶은 계란과 고로케에 참 잘 어울리는 음료다. 그러고 보니 사이다를 마신 지도 언제인지 모르겠다. 오늘 한 번 사 먹어야겠다. 전통시장의 한 편에 앉아서 고로케를 먹을 때 사이다는 병 사이다였으면 좋겠다. 그러나 병 사이다는 좀체 찾아볼 수 없다. 긴 빨대를 꽂아서 먹는,,,,, 전통시장의 5일장에 가보면 고로케 보다 맛있는 것들이 훨씬 많다. 닭강정도 있고, 어묵 튀김도, 떡꼬치도, 교자 같은 만두 말고 중국 풍의 만두도 있고, 애기 김밥이나 조각 스테이크, 또,,,,


전통시장에 고로케는 오래전부터 있었다. 스테이크니 닭강정이니 하는 것들은 생긴 지 얼마 안 됐다. 고로케는 내가 어린이였을 때에도 시장에서 사 먹었으니까 꽤 오래되었다. 전통시장 안에는 시장표 제과점이 꼭 있다. 내가 예전에 살던 동네에서도 걸어서 가는 전통시장이 있었다. 걸어서 한 30분 정도 가야 하지만 시장 가는 길은 언제나 재미있었다. 역전시장이라 불렸다. 시장 안에는 빵집이 있었다.


당시에 빵집 부부는 50대로 하루 종일 맛있는 빵을 만드느라 분주했다. 종류는 요즘만큼 다양하지 않았지만 단팥빵, 크림빵, 땅콩샌드빵, 그리고 이름이 생각나지 않지만 한 입에 쏙 들어가는 – 그 외 산타 고깔모자처럼 생긴 작은 그런 빵 과자 같은 것들을 매일매일 만들었다. 우리도 시장에 가면 거기서 고로케를 하나씩 사 먹곤 했다. 우리라는 건 어머니와 시장에 갈 때가 아니라 외할머니와 시장에 갈 때, 외할머니와 나를 말하는 것이다.


외할머니와 시장에 가면 꼭 순대를 같이 먹거나 고로케를 같이 먹었다. 외할머니는 타지에 살고 있었지만 우리 집에 왕왕 오셨고 오실 때마다 나를 데리고 전통시장에 가곤 했다. 그래서 빵집 부부와도 인사를 하는 사이가 되었고 빵집 부부에게서 한 이야기를 듣게 되었다. 새벽에 나와서 오전 9시까지 빵을 구워서 판매를 하는데 언전가부터 새벽에 빵을 구워 매대에 올려놓고 빵을 구우러 들어갔다가 나오면 구워 놓은 빵 여러 개가 없어진다는 것이다.


아직 오픈을 하지 않아서 문을 닫은 채였고 아내는 아침밥을 먹여 아이들 학교에 보내느라 오픈 시간이 되어야 도착한다. 만약 길고양이가 혹시라도 그랬다면 그런 흔적이 남았을 텐데 그렇지 않았다. 즉 아무도 들어온 흔적이 없는데 매일 구워 놓은 빵이 몇 개씩 사라진다는 것이다. 처음에는 알아채지 못했지만 경력이 오래되다 보니 이틀 만에 구운 빵들이 사라졌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어렸던 나는 옆에서 고로케를 먹고 있었고 그 이야기를 기만 듣고 있던 외할머니가 그건 사람이 한 것이 아니라고 했다는 말은 새빨간 거짓말이다.


어린 시절에 외할머니와 시장에 가면 할머니와 사이좋게 고로케를 하나씩 사 먹었는데 겨울에 주로 사 먹었다. 두꺼운 옷을 입고 고로케를 하나씩 먹고 나와서 어묵에 국물을 마셨다. 그게 우리의 코스였다. 외할머니에게는 손주들이 우르르 있는데 나는 꽤 귀여움을 받았던 것 같다. 이상하지만 여름에는 고로케를 먹은 기억이 없다.


애니메이션 속에서는 주로 여름에 고로케를 먹는다. 애니메이션이라 함은 ‘허니와 클로버’와 ‘고쿠리코 언덕에서’다. 허니와 클로버는 시리즈로 미대생들의 이야기다. 정말 재미있게 봤고 지금도 보고 또 보고 있다. 거기서 타케모토 녀석이 여름에 고로케를 먹는 장면이 나온다. 기름에 절어 유통기한이 다 된 고로케를 전설의 모리타 선배가 엄청 사들고 와서 자취촌의 아이들이 모여서 고로케를 먹고 또 먹고 계속 먹는 장면이 있다. 여기서 먹는 일본의 고로케는 우리가 자주 먹는 고로케와는 좀 다르다. 한입에 쏙 들어가는, 어떤 소스에 반드시 찍어 먹어야 하는, 그런 고로케다. 이 시리즈는 드라마가 되었는데 딱 거기까지가 좋았다. 영화로도 나왔는데 이렇게 긴 이야기를 두 시간 안에 욱여넣으려니 뭔가 이상해졌다.


고쿠리코 언덕에서는 주인공 우미가 선배인 슌과 함께 자전거를 타고 내려서 시장에서 고로케를 하나씩 사 먹는다. 이 두 주인공이 사 먹는 고로케가 우리가 일상에서 자주 사 먹는 그런 고로케의 형태다. 이 영화, 이 애니메이션의 시대는 1960대 초 쯤이다. ‘코쿠리코 언덕에서’의 이야기는 애틋하고 안타깝고 슬프면서 아름다웠다. 엄마에게 안겨 울 때 보이는 그 작은 발이 이 애니에서 모든 것을 말해주는 것 같았다. 이 애니에서는 지키려는 자와 바꾸려는 자들이 부딪힌다. 전통과 변혁의 중심에서 소중한 것을 지키려는 모습이 나온다. 지브리의 세계관은 전쟁은 전쟁을 일으킨 자나 전쟁을 당하는 자 모두에게 피해를 준다는 것을 말하고 있다.


모든 영화 속에서 진보개혁을 일으키는 쪽은 대체로 악당이다. 악당, 즉 빌런은 현재의 시스템에 불만이 있어 지금의 시스템을 바꾸려고 한다. 그래서 노동자들은 빌런을 응원하고 따라가게 되고 기대고 싶어 한다. 그에 비해 슈퍼히어로들은 현 시스템을 지키려고 빌런과 대치를 한다. 그래서 대중은 매력적인 빌런에게 매료된다. 요컨대 영화 조커 같은 캐릭터에 빠져들 수밖에 없다. 천조국 인간들이 코스프레를 하면 제다이 보다 다스베이더의 코스프레를 더 한다. 바로 그런 이유다. 영화 조커에서는 초반 조커의 웃음이 듣기 싫지만 영화 말미에 조커의 그 웃음이 듣기 좋아진다.


고로케 이야기하다가 쫄쫄이 메리야스 입은 슈퍼파워를 쓰는 맨들의 이야기까지 와버렸다. 맨 중에 맨은 부시맨이 아닌가. 부시맨 요즘도 살아 있으려나. 콜라병 하나도 전 세계를 휘어잡았었는데.




오늘의 선곡은 검정치마의 젊은 우리 사랑 https://youtu.be/loysypSfVN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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