엘리베이터를 추상화로 그려봄 ㅋ



매일 밥을 먹듯 엘리베이터를 매일 타고 다니다 보니 엘리베이터가 이상하게 느껴질 때가 왕왕 있다. 내가 엘리베이터를 타는 건물은 아파트와 일하는 건물이다. 엘리베이터를 탈 때에는 될 수 있으면 혼자 타려고 한다. 누군가 탄다고 해서 별로 싫어할 이유는 없지만 지금까지 늘 엘리베이터를 아파트와 일하는 건물에서 탈 때에는 사람들이 썩 없을 시간에, 사람들이 없다 싶을 때 탄다.


엘리베이터 앞에 사람들이 셋 이상 있으면 그냥 계단을 이용한다. 특히 내가 매일 타는 엘리베이터는 문 빼고 3면이 거울로 되어 있어서 이렇게 서나, 저렇게 서나 사람이 같이 타면 시선을 폰에 박을 수밖에 없다. 아파트에서 나올 때 오전에는 책을 읽으며 엘리베이터를 타고 내려오니 누군가 탄다고 해도 시선을 책에 두면 깔끔하다.


그런데 작년에 아파트와 일하는 건물의 엘리베이터가 교체를 하면서 그 거울들이 다 없어졌다. 속이 시원하다. 일하는 건물에는 엘리베이터가 3대인데 마지막 한 대는 그대로 두고 2대는 깔끔하게 교체를 했다.


기묘한 일은 아파트 엘리베이터와 일하는 건물의 엘리베이터, 두 곳에서 일어나는 일이다. 일하는 건물의 엘리베이터를 탈 때에는 지하 4층에 주차를 하고 올라간다. 지하 4층은 지하 주차장 중에 제일 밑이다. 나는 늘 제일 밑에 주차를 한다.


저녁에는 조깅을 하고 지하 4층으로 오면 차들도 없고 사람은 아무도 없다. 매일 그렇다. 제일 마지막 지하 4층에는 늘 혼자니까 혼자인 것이 당연하기 때문에 누군가 있다는 느낌이 전혀 없다. 그때 엘리베이터가 지하 4층으로 내려온다. 나는 조깅을 하고 내려온 후라 엘리베이터를 탈 마음이 없다. 버튼을 누르지 않았기에 누군가 지하 4층으로 내려오는 것이다. 그리고 문이 열린다.


하지만 아무도 내리지 않는다. 교체된 새것의 엘리베이터는 큰 소리의 컴퓨터 여자 목소리로 “지하 4층입니다. 문이 닫힙니다”라며 엘리베이터는 문을 닫고 올라가버린다. 어째서 알아서 지하 4층으로 내려와서 굳이 문을 열었다가 닫고 다시 올라갈까. 올라간다는 말은 위에서 누군가 버튼을 눌렀다는 말이다. 그렇다면 바로 올라가지 왜, 어째서 아무도 타지 않았는데 알아서 지하 4층으로 내려오는 것일까.


아파트에 들어오는 시간은 21시나 22시 정도다. 역시 사람들이 엘리베이터 앞에 없다. 늘 그렇다. 아파트 입구에 들어와 휴대폰을 보느라 올라가는 버튼을 누르지 못했다. 엘리베이터는 천천히 내려온다. 나는 폰을 들여다보다가 엘리베이터가 내려와서야 내가 버튼을 누르지 않았다는 걸 알았다.


엘리비에터 문이 열리는데 안에는 누구도 타지 않았다. 텅 빈 공간이 나를 반기고 있다. 횡횡한 밤에 엘리베이터 안에 들어오면 묘한 기분이 든다. 센서? 같은 것도 아니고, 어째서 아무도 타지 않은 엘리베이터가 알아서 내려와서 문을 열어 주는 것일까. 아파트에서만 그러면 그러려니 하겠지만 일하는 건물과 아파트의 엘리베이터가 동시에 그런 기묘한 일을 한다.


특히 일하는 건물의 지하 4층에서 알아서 내려와서 "문이 열립니다"라고 큰 소리를 말을 하며 아가리를 벌리는 엘리베이터는 괴괴한 기분까지 든다. 무엇보다 새로 교체된 엘리베이터서 나는 소리, 컴퓨터가 내는 듯한 여자 목소리가 적요한 지하에 울리기 때문에 더 기묘하다.


이러다 보면 도시괴담 하나 정도는 탄생할 수 있다. 엘리베이터에서 일어나는 이상하고 무서운 이야기는 도시에 많으니까 도시의 무서운 이야기 중에 엘리베이터에 관련된 이야기가 많다. 우리나라 근래의 호러 영화에도 엘리베이터 괴담을 가지고 만든 영화가 있고, 일본과 미국은 차고 넘쳤다.


엘리베이터라는 공간은 아주 기묘한 곳이다. 나와 상관없는 모르는 타인과 가장 가까운 거리를 유지해야 한다. 그래서 무서운 공간이기도 하다. 그렇기에 도시괴담에서 엘리베이터가 차지하는 비중은 크다. 편리하지만 아주 불편한, 그런 이상한 공간이다. 회사에서 빌링 꼭대기까지 엘리베이터를 타고 가야 하는데 꺼리고 싫어하는 상사와 엘리베이터에 타게 되면 불편하고 불안하다. 나에게 무슨 헛소리를 할지 불안하기만 하다. 꼭대기까지 올라가는데 층층마다 문이 열리고 사람들이 내리고 탄다. 입이 바짝바짝 마른다.


공포라는 건 질이 분명 다르고 같은 질의 공포라도 깊이가 다르다. 옆의 사람이 느끼지 못하는 공포를 내가 느낀다고 해서 그게 웃음거리가 되어서는 안 된다고 생각한다. 벌레를 무서워하고 벌레를 보면 공포를 느끼는 건 인간의 신체 생김새와는 별개의 문제다. 또 갇힌 공간에 혼자 있는 것을 무서워하는 것 역시 튼튼하게 생긴 것과는 전혀 다른 문제다. 공포라는 건 사람의 얼굴처럼 다 달라서 공포를 느끼는 것 역시 전부 제각각이다.


아예 모르는 사람과 엘리베이터를 타는 건 괜찮지만 어설프게 아는 사람들과 한 공간에 있는 건 비극이다. 세상에는 다양한 비극이 존재하지만 얼굴 정도 아는 사람과 엘리베이터를 타고 밑으로 죽 내려가거나 또는 위로 죽 오르는 일은 비극적인 일이다.


엘리베이터가 왜 기묘한 공간이냐, 문이 열릴 때마다 다른 장소가 나타나기 때문이다. 문이 층층마다 열리고 보이는 장소가 비슷해 보일지라도 그 다른 공간이다. 만약 전혀 변화가 없이 똑같은 공간이라면 더 이상하다고 생각을 해야 한다. 물론 현실에서 그런 일은 없겠지만.


경험해 본 사람은 알겠지만 엘리베이터에 갇히게 되면 약간의 흥분과 크고 깊은 불안이 공생하게 된다. 이런 경험을 크게 하게 되면 4층과 5층 사이에서 멈추면 어떻게 하지, 하는 생각이 공존하기도 한다. 엘리베이터는 도심에서 흔히 만날 수 있는 장소이지만 소외된 장소이기도 하다.


엘리베이터는 머무는 공간이 아니기 때문이다. 흔한 계단이나 복도에서마저 사람들은 잠시 머물러 담소를 나누거나 서류를 확인하거나 흡연의 기쁨을 맛보기도 한다. 하지만 엘리베이터는 딱딱하고 빠르게 흘러가는 차가운 도시 속, 그 안에서도 빨리 스쳐 지나가고 더 차갑고 다 딱딱하다.


회식 후 술 취한 아버지가 잠시 탔다가 빠져나가도 그 노동의 냄새가 낙인처럼 엘리베이터에 각인되어 있는 설명할 수 없는 장소다. 나는 그 냄새를 좋아한다. 작업복의 냄새. 찌든 땀의 잔상이 가득한 냄새. 그 냄새가 엘리베이터 안에 머문다.


엘리베이터가 가장 기묘한 이유는 엘리베이터는 나를 닮았다. 누구도 머무를 수 없는, 한없이 이동을 해야만 삶의 존재를 인정받는, 그래 봐야 아래위로 밖에 이동하지 못하는, 그런 엘리베이터 속에 있으면 잊어버린 나를 떠올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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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기하게도 신라면과 안성탕면을 끓여 놓고 보면 다른 게 눈에 확 들어온다. 면발도, 국물의 색도 다른 게 눈에 띈다. 물론 맛도 다르지만 눈으로 보기에도 이렇게 다르다. 별거 아니지만 신기하다. 신라면은 좀 더 붉은 쪽에 가깝고 안성탕면은 덜 붉은데 나 안성탕면의 면발이야,라고 한다.


시간이 흐르는 동안 신라면은 매운맛이 좀 줄어든 것 같아서(예전에는 정말 매웠는데, 나의 입맛이 좀 변한 건지) 맛있어진 것 같고, 안성탕면은 밀가루 냄새가 없어져서 더 맛있어진 것 같다. 개인적인 입맛이 그렇다.


집에서 매운 라면을 끓여 먹을 때에는 늘 방울토마토를 넣어서 먹는다. 예전에는 큰 토마토를 슥슥 잘라서 풍덩풍덩 넣어 먹었는데 토마토가 익으면서 신맛이 국물에 가미되어서 매운 라면과 너무나 잘 어울려 맛이 좋았다.


그런데 생각해보면 매운 라면은 매운맛 때문에 먹는 건데 그 안에 덜 맵게 하려고 계란이나 파나 집어넣어서 먹는다. 그러면 매운맛이 좀 중화된다. 또 안 매운 라면은 안 매운맛에 먹는데 고춧가루나 땡초를 넣어서 맵게 먹는다. 참 이상하다. 그러나 이상한 게 정상이다.


정상이란 무엇일까. 매운 라면을 매운맛으로 먹기 싫어서 덜 맵게 해서 먹고, 안 매운 라면을 맵게 해서 먹는 것은 이상하지만 정상이다. 정상은 꼭 제일 꼭대기를 말하는 것만은 아니다.


그래서 사람들은 정상적으로 살고 있다고 생각하지만 실은 이상하게 살고 있는 것이다. 그게 정상이니까. 짜파게티는 짜파게티 맛으로 먹는 게 맛있는데 이상하게도 짜파게티를 짜장면처럼 먹으려고 그 안에 쌈장이나 된장이나 여러 조리법으로 해 먹는다. 이상하지만 정상이다.


그렇다면 비정상은 무엇을 말하는 것일까. 간단하게 말하면 정상을 제외하면 비정상이다. 제외하는 방법으로 오컴의 면도날 법칙을 대입하면 된다. 가장 먼 것부터 하나씩 제거하고 남은 것이 정답일 가망이 높다. 그러나 여기서는 그것도 애매하다.


이상한 걸 이상하게 보는 사람이 비정상이다. 이상한 걸 정상으로 받아들이면 되는데 그게 안 되는 사람들이 있다. 이런 사람들은 대체로 수치심을 모른다. 우리가 소변이 너무 마려워서 그만 아무도 없는 곳에서 소변을 보는데 그곳에 개나 돼지가 있다고 해서 소변보기를 끊을까. 그러지 않는다.


우리는 개나 돼지, 짐승에게는 수치심을 느끼지 않는다. 김필영 박사가 한 말인데 수치심을 가지지 않는 사람은 우리를(대중을, 국민을) 개나 돼지 같은 짐승으로 보기 때문에 수치심이 없다고 한다. 이걸 비정상이라고 한다. 이런 비정상을 비정상이라고 말을 해야 하는데 그게 참 힘들다. 혼자서 비정상이라고 해봐야 목소리는 비정상에게 닿지 않기 때문이다.


라면을 먹으면, 라면을 많이 먹으면 큰일 날 것처럼 여기저기서 이야기를 한다. 라면은 어쩌고 저쩌고 블라 블라. 건강을 해친다는 말이다. 라면을 먹고 죽었다는 기사는 지금껏 본 적이 없다. 라면에는 들어가는 성분이며 칼로리 같은 것들이 자세하게 표기가 다 되어 있다. 그러나 식당에서 조리한 음식에 무슨 성분이 어떻게 들어갔는지 자세하게 알 수 없다. 그저 고기는 호주산, 김치는 어디, 정도뿐이다. 모든 식당에서 라면만큼 성분을 알 수 있게 요리를 할까. 천만의 말씀이다.


어느 학교의 학생들이 어느 식당에서 조리한 음식을 단체로 먹고 식중독을 일으켰다는 뉴스는 매년 보는 것 같다. 어느 모임에서 주문한 음식을 먹고 노인들이 식중독, 패혈증이 걸려, 같은 기사도 본 적이 있지만 라면을 먹고 식중독을 일으켰다거나 죽었다는 기사는 없다.


비정상의 정상화.


이는 인간관계에서도 여실히 드러난다. 우리는 잘 안다고 생각하는 사람에 대해서 사실은 잘 모르고 있는 경우가 많다. 부모님의 10대에 대해서, 20대 초반에는 어땠는지 잘 모른다. 내가 지금 사랑하는 사람도 사랑에 눈이 어두워 이 사람의 지금 마음이 어떤지 잘 모른다. 그래서 안 좋은 결과로 온갖 뉴스를 장식하는 남녀들이 있다. 그렇다고 해서 이게 비정상인가? 아니다. 그렇다면 정상일까? 그건 잘 모르겠다.


애초에 누군가가, 또는 어딘가에서 정상과 비정상을 나눈 것 자체가 기이한 일이다. 이건 정상이다. 저건 비정상이다,라고 지정하는 것 자체가 너무나 이상하고 이상한 일이다.


신라면과 안성탕면은 보기에도, 맛도 다르지만 결과는 다 맛있다는 점이다. 그럼 라면을 맛있게 먹자. 라면을 맛없게 먹는 사람도 택시를 타면 기사가 라디오 헤드의 노래를 틀어 줄 만큼 드문 일이다. 택시기사가 라디오 헤드의 노래를 틀어 주는 건 어쩌면 일어나지 않을지도 모른다.


라면을 밥 대신 주식처럼 먹으면 위에서 말한 것처럼 큰일이 난다고 한다. 그러나 우리는 안다. 춥고 배고플 때 라면만큼 우리를 위로해준 음식은 없다는 것을. 불편한 사람과 소고기를 구워 먹는 것보다 친구와 라면을 같이 먹는 게 얼마나 좋은지 우리는 안다.


라면을 자주 먹는다고 이상한 건 아니다.라고 생각한다.  매운 라면을 맵지 않게 먹는다고 해서 이상한 것도 아니며 안 매운 라면을 맵게 먹는 것 역시 이상하지만 이상하지 않다. 비정상이 아니니까.

라면을 어떻게 참을 수가 있어.

현기증 나니까 빨리 젓가락으로 호로록 건져 먹고 싶을 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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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월이 되면 방앗간을 들리는 참새처럼 밴드 에이드의 ‘Do They Know It's Christmas’를 몇 번이고 듣게 된다. 밴드 에이드 속에는 죽어버린 조지 마이클도, 프레디 머큐리도, 데이빗 보위도 아주 젊은 보노도 있다. 수많은 캐럴이 존재하지만 빙 크로스비와 머라이어 캐리와 다른 점은 그저 뭉클하다는 점이다. 첫 시작의 드럼 소리가 가슴을 두드린다. 요즘은 그저 릴리 콜린스의 아빠로 불리지만 전설의 제네시스의 드러머이자 팝 스타 필 콜린스의 드럼이 정말 굿이다.

https://youtu.be/j3fSknbR7Y4 <= 밴드 에이드의 ‘Do They Know It's Christmas’ 영상: Christmas Music Videos


80년대 당시 유럽의 최고 슈퍼스타들이 전쟁과 기근에 발 벗고 나선 것이다. 84년에 노래가 나오고 후에 라이브 에이드에서도 같이 부르는데 이때에는 멤버가 조금 바뀐다. 데이빗 보위, 프레디 머큐리까지 합세한다. 정말 좋다. 유튜브 만세! https://youtu.be/NxaGnK3A-Pc <= 85년 라이브 에이드 영상: Chief Mouse


밴드 에이드의 여러 버전이 있고 시간이 한참 지난 후에 에드 시런을 비롯해서 유럽의 후배 스타들이 리메이크를 하는 버전도 있다. 밴드 에이드가 먼저 출범했지만 다음 해에 유럽에 질 수 없다며 퀸스 존스를 주축으로 어마어마한 미국 미국 한 ‘위 아 더 월드’가 나와서 전 세계를 휩쓸었다. 죽어가는 많은 사람들을 돕게 된 정말 좋은 노래였다. 중심에 당연히 마이클 잭슨이 있었다. 시간이 지나 2010년에 아이티 대지진으로 아이티 국민들이 전부 도움의 손길이 필요할 때 ‘위 아더 월드’가 다시 한번 뭉쳤다.


퀸시 존스가 다시 한번 늙은 몸을 일으켜 전사들을 불러 모았다. 30년이 흘렀기에 대부분의 슈퍼스타가 교체가 되었다. 라이오넬 리치로 시작하는 위 아더 월드는 저스틴 비버가 스타트를 끊는다. 그리고 신디 로퍼의 고음은 셀린 디온의 터질 것처럼 폭발하는 고음으로 대신하게 되었다. 그러나 마이클 잭슨의 빈자리는 너무나 컸다. 자넷을 불렀지만 무리였다. 할 수 없는 퀸시 존스는 영원히 잠든 마이클 잭슨을 찾아간다.

이봐, 잠자는데 미안하네,

이번 한 번 다시 위 아 더 월드를 불러줘야겠어.

자네가 아니니까 도저히 노래가 완성이 안 되네.

노래를 부르고 난 다음에, 그리고 푹 자게.

그리하여 위 아 더 월드 2에서는 마이클 잭슨이 부활하여 자넷과 그 부분을 부른다.




아무튼 밴드 에이드의 ‘Do They Know It's Christmas’를 매년 듣다 보면 우리나라에도 이 노래를 불렀을 텐데, 하는 생각이 들어서 유튜브를 찾다 보니 85년과 88년에 크리스마스 성탄 특집 방송을 보게 되었다. 가수들이 나와서 캐럴을 부르는 그런 방송이다. 근데 보니 아주 재미있다.


세또래부터 전인권이나 유익종의 아주 어리고 젊은 모습을 볼 수 있고 이들이 부르는 캐럴 속에는 탄일종이 땡땡땡 같은, 요즘에는 들을 수 없는 캐럴을 들으니 촌스러워 더 새로웠다. 무엇보다 방송을 진행하는 진행자들의 진행이 아주 세련됐다. 85년에는 이수만과 왕영은이 진행을 하고, 88년에는 송승환이 혼자 진행을 하는데 마치 연극을 보는 것처럼, 단막극을 보는 것처럼 카메라를 데리고 다니며 진행을 해서 우리는 카메라 속의 드라마를 보는 것 같다.


85년 방송의 제목은 ‘노래실은 크리스마스’다. 이수만과 왕영은이 진행을 하는데 느닷없이 산타 복장을 한 전유성이 나와서 진행을 망치고 지금과 비슷한 고정관념을 깨버린 맨트를 한다. 재미있다. 좀 놀랐던 건 85년에 최고의 선물은 컴퓨터라고 한다. 쿵. 학생들이 컴퓨터를 선물로 받기를 원한다는데 당시 컴퓨터로 무엇을 할 수 있었을까.


곧이어 시간의 문을 통과한 아주 젊은 이동원이 실버벨을 부른다. 향수로 잘 알려진 이동원은 작년에 죽었다. 식도암으로. 그때 친구인 전유성이 임종을 지켜봤다고 한다. 영상 속 크리스마스는 너무나 따뜻하고 정겹고 크리스마스 다운데 현실은 또 씁쓸하고 그렇다.


1800년대에 한 할아버지가 손주들에게 선물을 주려고 산을 타다가 굴렀다. 그래서 산타 굴렀어. 두둥. 이게 자음 접변, 구개음화, 묵음화, 격음화, 경음화를 거쳐 산타 클로스가 되었다는 이야기를 이수만이 하고 왕영은이 흥 하며 진행을 한다.


그리고 지금은 국악인이 된 예솔이가 아빠와 예술이 가족과 함께 나와서 캐럴을 부른다. 아아 정겨워라. 캐럴은 처음 들어보는 노래로 예솔이가 산타 할.머.니.는 안 계신가요~~ 같은 가사의 노래를 부른다.


엄지검지라는 듀엣이 창밖을 보라,를 부르는데 이런 캐럴을 요즘은 전혀 들을 수가 없지만 이때에는 방송에서도 가수들이 신나게 부른다.


아주 젊은 유익종이 화이트 크리스마스를 부른다. 유익종의 목소리는 사람을 편안하게 만드는 마법이 숨어 있는 것이 분명하다. 그리고 뒤이어 가수들이 캐럴을 죽 부른다. 겨울에 태어난~~ 하며 부르는 겨울 아이도 이때에 나온다. 무대도 현란하지 않고 소박하며 조그맣다. 가수들 역시 몸동작이 거의 없이 정적이며 부드럽다.

https://youtu.be/OIHQX3t3kWY <= 85년 성탄 특집 옛날티비 : KBS Archive


88년은 좀 더 재미있다. 88년 12월 24일 KBS를 통해 방송되었던 ‘고요한 밤 거룩한 밤’이다. 여기서는 송승환이 단독 진행을 하는데 모노드라마식으로 진행을 하여 더 재미있다. 첫 주자로 이치현과 벗님들이 나와서 라스트 크리스마스를 부른다. 1절은 조지 마이클의 원곡처럼 부르고 2절은 한글 개사로 부른다. 이치현은 정말 잘 생겼구나. 얼마 전에 전주방송에서 이치현 특집을 봤는데 요즘이나 저때나 외모가 비슷하다. 요즘의 이치현의 얼굴만 보면 평행선에 김영하 작가, 배우 김상경이 있다. 그런 얼굴이다. 셋 다 비슷하다.


노래가 끝나면 아주 어린 송승환이 그 특유의 목소리로 자신을 따라오라며 카메라를 데리고 어딘가로 간다. 우리는 그 카메라를 통해 송승환을 따라간다. 거기로 가니 여자 세 명이 구세군 모금을 하고 있다. 송승환이 요즘 많이 모이냐고 물어보면 여성 세 명은 잘 모이지 않는다, 학생들은 전부 헌금을 하는데, 부자처럼 보이는 사람들은 모른 척한다, 식으로 말을 한다.


그러면 송승환은 마음은 그렇지 않은데 먹고 살기가 각박해서 그렇다며 자신이 헌금을 한다. 이 세 명이 세또래다. 세또래 역시 캐럴을 신나고 산뜻하게 부른다. 징글벨, 산타할아버지 우리 마을에 오시네 같은 캐럴을 연달아 부른다. 세또래는 일본의 소녀대를 벤치마킹해서 나왔다. 88년에 나왔는데 88년 연말 크리스마스 특집에 나와서 이렇게 신나게 캐럴을 불렀다.


노래가 끝나면 송승환이 카페처럼 만들어 놓은 무대에서 저 옆 테이블에 남녀가 크리스마스이브에 싸우고 있는데 함 볼까요,라고 한다. 카메라는 그 테이블로 이동을 한다. 여자는 이브에 같이 보내자고 하고 남자는 지금 야근을 해야 한다고 한다. 여자는 왜 하필 오늘 야근을 해야 하느냐, 남자는 나 아니면 이 일처리를 할 수 있는 사람이 없다, 라며 싸우다가 여자는 그래 가라! 흥.라고 남자는 테이블에 일어나서 무대로 와서 노래를 부른다.


남자는 김범룡이고 여자는 홍리나다. 단막극처럼 이들의 모습을 보여준다. 젊은 김범룡의 목소리에는 호소력이 있다. 깊고 깊다. 노래 참 잘 부른다.


이번에는 세상 여리여리하고 아주 젊은 강인원이 기타를 치며 노래를 부른다. 강인원의 노래가 끝나니 송승환이 나온다. 진행을 하는데 세 명의 남녀가 와서 모금함을 내밀고 송승환이 모금을 한다. 이들은 KBS합창단으로 무대가 바뀌면서 노래를 부르는데 밴드 에이드의 ‘Do They Know It's Christmas’를 부른다. 이 한국 버전을 찾으려고 지금까지 예전 영상들을 많이도 검색을 했다. 물론 밴드 에이드만큼 아니지만 한국어로 부르는 이 버전의 의미는 다 같이 나누자는 내용이다.


송승환이 이번에는 카드 판매하는 곳으로 가서 카드를 구경한다. 한 여대생이 와서 카드를 골라보라고 한다. 그러면서 돈을 버는 게 이렇게 어려울 줄은 몰랐다고 수줍게 말을 한다. 송승환은 부모님들이 우리를 위해 돈을 참 어렵게 버는 거 같다고 하니 여대생은 카드를 팔아서 번 돈으로 부모님의 선물을 사려고 한다고 한다. 송승환이 가고 이 여대생이 무대로 수줍게 나와서 겨울의 노래를 부른다.


바로 민혜경이다. 민혜경의 놀라운 점은 아주 수줍다가 노래를 부를 때에는 그 표정, 확 바뀌면서 노래에 집중을 한다. 민혜경이 노래를 부르는 중간중간 카메라는 홀로 있는 홍리나의 모습을 보여준다. 가장 행복해야 할 날에 가장 불행한 표정의 홍리나.


야근하러 갔던 김범룡이 홍리나에게 온다. 부장님이 나의 야근을 대신해주겠데.

아니 왜요?

부장님은 얼마 전에 상처했고 아이들은 친정에 가서 할 일이 없데. 그래서 나보고 가래.

그러자 홍리나는 그러면 안 되잖아요, 저는 기다리는 사람이 있어서 덜 외롭고, 범룡 씨도 기다려 줄 수 있는 사람이 있으니까요. 그런데 부장님은 얼마나 외롭겠어요.

그러면서 김범룡은 아 내가 잘못 생각했군, 그럼 우리 소주와 만두라도 사서 부장님에게 갈까. 하며 두 사람의 뒷모습을 보여준다. 그리고 무대가 바뀌며 김범룡과 홍리나가 듀엣을 하는데 홍리나는 노래도 잘 부른다. 홍리나가 김범룡보다 키가 커서 듀엣을 할 때에는 홍리나는 앉아 있다.


크리스마스이브에 생각해보는 사랑의 의미는 무엇일까. 라며 진행을 하는 송승환을 밀어내며 사람들이 여기서 자선공연을 하니 비켜달라고 한다. 무대가 바뀌며 아주 젊고 선글라스를 쓰지 않는 전인권이 나와서 캐럴을 부르는데, 나 정말 김c를 보는 줄 알았다. 얼굴도 목소리까지 이렇게나 닮았다니. 전인권은 캐럴이 끝나면 존 레넌의 Imagine을 부른다. 영락없는 김c다. 전인권은 정말 뭔가에 홀린 듯 노래를 부른다.


https://youtu.be/qREDK2yYkh8 <= 88년 성탄 특집 옛날티비 : KBS Archive


촌스러운 전구의 불빛, 탄일종이 땡땡땡 같은 이제 사라져 버린 캐럴송. 열심히 카드를 작성해서 전해주던 메리메리한 크리스마스. 밴드 에이드 한국 버전을 찾다가 재미있는 영상을 봤다. 캐빈만큼 재미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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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tella.K 2022-12-03 18:3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ㅎㅎ 이리 쓰시니 갑자기 교관님이 저기 안드로메다에서 오신 분 같습니다.ㅋㅋㅋ
85년. 그때 거론하신 분들 참 파릇파릇 했죠.
이동원 씨가 작년에 별세했군요. 몰랐네요.
그 무렵 통기타 가수들이 나름 유명세를 떨치고 있어 이동원 씨도 이름을 올리고 있었는데
안타깝게 됐네요.ㅠ 60줄을 타고 있는
왕영은 씨는 지금 어떻게 살고 있을지 궁금하네요.
몇년 전만해도 쇼핑호스트 일을 했던 것도 같은데. 암튼 옛날 사람들 그립네요.

교관 2022-12-04 11:59   좋아요 1 | URL
모임에서도 앤디 워홀, 에디 세즈윅, 짐 모리슨, 지미 핸드릭스, 데이빗 보위를 이야기하면 아무렇지 않아 하는데 ㅋㅋ 한명숙, 신중현과 엽전들, 최무룡이 감독하고 나온 영화 이야기나 길옥윤, 패티 김 같은 이야기를 하면 이상하게? 신기하게 보는 것 같아요 ㅋㅋ 전부 동 시대에 예술 활동을 했는데 참 묘합니다 ㅋㅋ
 

몸 어딘가에 오백 원짜리 동전만 한 구멍이 뚫린 것 같아,라고 말하던 그녀가 찾던 음식이 떡국이었다. 떡국의 떡을 한 숟가락 퍼 먹으면 뜨겁고 부드러워 구멍이 전부 매워진다며 우리는 여름에도 땀을 흘려가며 뜨거운 떡국을 종종 먹었다.


이렇게 시작하는 글로 소설을 죽 적어 나가면 떡국에 관한 단편 소설 한 편이 만들어질 것 같다. 떡국을 사이에 두고 남녀는 열렬히 사랑을 하고 두 사람이 좋아하는 떡국을 같이 먹다가 나중에는 떡국이 점점 식어가 굳어지는 모습을 봐야만 하는 여자는 결국 남자를 떠나게 된다.


여자는 사랑했던 순간보다 더 깊이 이별을 받아들이고 만다. 남녀의 사랑에는 음식이 등장하고 그 음식을 두고 변해가는 남녀의 모습을 잘 적는다면 재미있는 소성이 될 듯싶다. 물론 나는 재능이 없지만.


개인적으로 떡국을 너무 좋아하는데 자주 먹을 수는 없다. 이유는 단순하다. 맛있어서 너무 많이 먹게 된다는 것, 당연하지만 살이 찐다는 것. 떡국은 다른 뜨거운 음식에 비해 이상하게도 뜨거울 때 다 먹어치워야 더 맛있다. 대부분 뜨거운 음식이 빨리 먹게 되지만 떡국도 그렇다. 떡국 안에 들어간 모든 서번트 음식이 떡국에 빠지는 순간 마치 원래 떡국의 고명이었던 것처럼 어울린다. 후후 불어서 떠먹다 보면 아직 그 뜨거움이 그릇에 고스란히 남아있다.


밥을 말아서 먹거나 또 한 그릇 떠먹게 된다. 떡국은 그릇에 담긴 한 그릇으로 모자라는 잘 설명하기 힘든 음식이다. 설령 떡국을 잘 못 끓여서 맛이 없다 하여도 양념장을 넣는 순간 얼굴을 싹 바꾸기 때문에 떡국은 어떻든 맛에서 멀어질 수 없다.


떡국에 만두를 넣어서 먹으면 떡만둣국일까, 만두 떡국일까. 음식 주인공의 이름이 뒤에 오는 게 정석이다. 양념치킨, 소갈비, 아귀찜, 대구탕 등. 떡국의 주인공은 떡국떡이니까 만두 떡국이라 불러야 할까. 하지만 만두 떡국이라 부르는 곳은 어디에도 없다.


떡국은 집에서 해 먹는 것도 맛있지만 분식집 떡국도 맛있다. 분식집에는 떡국이 대부분 메뉴에 당당하게 올라 있다. 분식집에서 갈비탕을 주문하면 레토르트 갈비탕을 데워주는데 떡국은 떡 넣고 고명을 넣어서 조리를 해 주었다.


우리의 분식집이었던 강원 분식의 주인은 학생들을 좋아했다. 생각해보면 시궁창 같았던 10대를 지탱해주는 몇 곳이 있었는데 그중에 한 곳이었다. 학교 앞 분식집의 관건은 주인아주머니나 아저씨가 학생들을 좋아하느냐 그렇지 않으냐 하는 것이다.


우리는 10대를 겪고 지나왔음에도 10대를 이해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시끄럽지, 깔끔하지 않지. 휴지 많이 쓰지, 공동체 의식이 연약해서 절약과 거리가 멀지. 어떻게 봐도 음식점 주인 입장에서 좋아할 만한 부류가 아닌 게 10대다. 그러나 학교 앞의 분식집 주인들은 대체로 학생들과 친밀하다. 그런 사람들이 분식집을 하면 그 집의 떡국은 맛있다.


우리의 분식집, 강원 분식집은 약간 지하였는데(반지하보다 덜 지하?) 홀과 방이 있었다. 우리의 분식집이라고 하지만 강원 분식집은 근처에 있는 학교 학생들 모두에게 인기였다. 여고도 두 학교나 있고, 남고도 두 학교, 중학교도 세 학교나 있었다. 중학생들은 고등학생 언니 오빠들에 치여 강원 분식집에 거의 들어오지 못했지만 고등학교 아이들만으로도 북적북적거렸다.


수업시간이나 주말에는 비교적 한산(하다고 해도 늘 테이블은 거의 차 있었다) 해도 아이들은 앉아서 라면을 먹고 있었다. 방도 세 개나 되었고 방에서 앉아 숙제를 하면서 라면이나 만두를 먹는 학생들도 있었다. 벽면에는 온통 포스트잇이 붙어 있거나 낙서가 가득했다.


누구누구는 똥걸레부터 누구는 어떤 학교 누구를 좋아한다 같은 낙서들이 잔뜩 있었다. 우리들 중에는 강원 분식집 뒤에서 하숙을 하는 녀석이 있었다. 그 녀석 때문에라도 강원 분식집에 자주 갔다. 우리는 주로 라면이나 떡국을 먹었다. 가장 저렴한데 배부르게 먹을 수 있었다. 라면과 떡국을 조리할 때 마지막에는 계란 물을 위에 부어 주는데 맛있었다.


강원 분식집에는 보이지 않는 룰이 있었는데 이쪽 구석에는 우리 학교 애들이 앉아서 밥을 먹었고, 저쪽 구석에는 다른 학교, 방안의 저쪽에는 무슨 여고. 그렇게 규칙이 있었고 대부분 규칙을 잘 지켰지만 규칙이라는 건 꼭 어기기 위해 만들어졌다는 걸 몸소 보여주는 아이들이 꼭 있었다. 눈빛 싸움, 말다툼, 그리고 밖으로 나와, 같은 이야기들.


밥도 얼마든지 퍼 먹을 수 있었고 국물도 달라는 대로 퍼 주었다. 무엇보다 단무지를 얼마든지 먹을 수 있었다. 우리는 이상하지만 김치보다 단무지를 라면에도, 떡국에도 같이 먹는 걸 좋아했다. 단무지가 중국집 단무지가 아니라 물이 약간 빠진, 그래서 좀 더 얇고 말랑말랑한, 그래서 몇 개씩 집어서 떡국과 함께 아작아작 씹어 먹었다.


떡국은 좋은 음식이다. 추운 요즘 같은 날에 먹기에 더없이 좋다. 속을 따뜻하게 해 주는 게 꼭 마음까지 훈훈하게 하는 음식이 떡국이 아닐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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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이자 마지막 2022년의 11월도 열심히 자연의 변화와 흐름을 기록했다. 아니, 기록하려고 했다. 오늘 밤(11월 30일)부터는 본격적인 겨울에 들어선 기분이다. 조깅을 하면서 얼굴에 닿는 공기에서 냉기가 촤르르 흐른다.


11월 초와 11월 말을 비교하면 전경의 흐름이 눈에 드러난다. 그런 모습을 가만히 기록을 한다. 오로지 밖으로 나와야만 볼 수 있는 세계다. 이렇게 차가운 날에도 강변을 달리다 보면 정경의 매력에 빠지기도 한다.


소설 속의 정경처럼 오리들이 삼삼오오 강가의 물 위에서 서로서로 속삭이며 겨울을 준비하는 모습이 보이고 하늘은 오늘 이전에 비해 좀 더 어둡고 탁한 색으로 변한다. 나뭇잎들은 전부 바람에 날려 강물 위에 흩어지고 뾰족하고 날렵한 모습으로 변한다.


시간이 밤으로 갈수록 강물 위의 오리들이 오선지의 음표처럼 물결친다. 자세하게 들여다보지 않으면 알아채기 힘든 11월의 흐름을 기록한다. 그러다 보면 조금씩 달라지는 모습을 느끼고 그 속에 내가, 우리가 속해 있음을 실감한다. 거대한 슈퍼컴퓨터의 시스템은 때가 되면 회로가 작동을 하며 전동의 불빛을 갈아치우듯 자연도 계절에 맞는 시스템을 가동한다. 그리고 우리는 그 속에 존속되어 가고 있다.


이 세상은 빛과 어둠만이 다가 아니야

그 사이에는 그늘도 있고 밝음도 있어

남자와 여자만으로 세상이 존재하지는 않아

그 사이에 너도 있고 나도 있어

우리는 그늘이기도 하고 밝음이기도 해


11월 밤하늘에는 늘 달과 별이 외롭게 떠 있다. 그리고 그 별과 달을 바라보는 나무조차 고독하고 우울해 보인다.


몸속의 우울은 깊고 깊어서 꺼내려해도 닿지 않았다.

조용하게 몸을 말고 있는 우울은 꺼내서 버리기에는

너무나 작고 연약해서 딱해 보였다.

할 수 없이 같이 지내는 방법을 택했다.


갈대는 별을 형해 끝없이 머리를 향하고 있다. 노르웨이 숲에서 와나타베는 그걸 느꼈다. 나오코가 바라는 건 나의 품이 아니라 누군가의 품이며 나의 어깨가 아니라 누군가의 어깨라는 것을. 있는 그대로를 사랑하지 못하는 나는 그만큼 상처를 받는 것에 소홀했던 것이다.


밤의 강변을 달리면서 늘 드는 생각은 하늘에 뜬 달은 초초하고 외롭게 빛을 내고 있는데 땅 밑에서 세상을 낮처럼 불 밝히는 인공광원에 뒤지지 않는다는 것이다. 사진 속의 거리상으로는 고작 7센티미터 정도 떨어져 있을 뿐인데 인공광원이 가지지 못하는 초현실적인 빛을 낸다. 달은 존재를 알리기 위해 매일 있는 힘을 다해 몸을 밝힌다. 그 짓을 몇 년이나 했던 것일까.


바람이 한 차례 불면 갈대들은 춤을 춘다. 바람이 만들어내는 운율에 맞게 몸을 흔든다. 이 멋진 광경, 이토록 아름다운 모습을 기록으로 남겨둔다. 언젠가, 그 언젠가 지금의 이 순간을 꼭 다시 느껴보리라.


일하는 건물에도 크리스마스가 다가왔다. 메리메리 한 크리스마스. 크리스마스는 일 년 중 가장 설레고 좋은 날이다. 다가오는 매일매일이 기분 좋은 날들의 연속이다. 마치 그 사람을 만나기 하루 전의 기분처럼.

별과 갈대


달 빛


세상을 삐딱하게


춤을 추는 갈대


광원 대 광원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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