날이 추워지면 야외의 강변에 운동을 하러 나오는 사람들의 수가 부쩍 줄어든다. 그래서 나는 좋다. 아마 강변의 조깅 코스를 꾸준하게 달리는 사람이라면 그 이유를 알 것이다. 올해도 오늘까지 4일을 제외하고 매일 한 시간 이상 조깅을 했다. 오늘 이전의 일주일 정도는 겨울이라고 하기에는 애매할 정도로 따뜻한 오물 같은 포근한 날의 연속이었다.


그래서 강변으로 나와서 5분 정도 달리고 나면 그때부터 등이 후끈후끈 부스터를 달아 놓은 것처럼 몸이 달아올라 땀이 날 정도였다.


내가 싫어하는 계절, 겨울은 아름다운 계절이다. 모든 것을 차갑게 만들고 시리게 하는 마력이 있다. 세상의 모든 생명들이 몸을 웅크리고 추위를 피해 몸을 말고 있는 모습을 겨울에는 볼 수 있다. 그 생명력을 유지하는 존재들 속에 나도 속해 있다.


매일 조깅을 하는 것에 큰 의미는 없다. 그저 습관 같은 것이다. 매일 배고프면 밥을 먹고, 잠이 오면 자는 거와 비슷하다. 포근하다고는 하나 얼굴에 닿는 그것은 겨울이라는 걸 알려준다. 벤치가 있는 곳에서 잠시 멈춰서 운동화 끈을 당긴 다음 숨을 고르고 나무와 거리를 두고 외롭게 떠 있는 별을 본다.


지난날과 그리고 그 사람을 떠올려본다. 외롭다 한들 매일 외롭게 저 하늘에 떠 있어서 나를 봐 달라 반짝이는 별 만 할까. 하지만 그 별을 매일 밤 나무가 바라본다. 별은 나무의 관심은 모른 채 몸을 밝히고 있다.


어느 날 밤은 구름 사이로 달이 나오려고 안간힘을 쓰고 있었다. 후후 하하 숨을 토해내며 달리다가 또 잠시 멈추어 그 모습을 봤다. 이 날도 새삼 포근해서 달을 보며 턱밑까지 차오른 말들을 내뱉어보고, 그래서 조금 놀랐다.


뭐라 그랬냐 하면

영화 ‘러브레터’에서

히로코가 설원에서 외친 말.


“오~~~ 뎅~~ 다~~~ 낑~~~~ 가~~~ 노~~~ 코~~~~ 가~~~ 끼~~~~ 예~~~”


달린다. 달리는 건 일상 속 일탈하는 기분이다. 스포츠카든, 에르메스든 일상 속으로 들어오면 더 이상 그것들도 일탈이 아니게 된다. 아이폰 14를 구입해서 일탈 같은 그 기분도 일 년이 지난 오늘이 되면 일상이 되어서 벌 감흥이 없다.


그러나 매일 달리다 보면 다리의 근육에 기분 좋은 무리가 오고, 심장에 자극을 준다. 가만히 그저 하루를 보낸다면 그 자극과 무리가 가져오는 일탈 같은 기분 좋은 고통은 느낄 수 없다.


겨울과 여름의 조깅이 다른 건 땀이다. 여름에, 특히 폭염 속에 조깅을 하면 땀이 비처럼 흘러내리는데 정말  상쾌하다. 역시 조깅이니 운동이니 하고 나면 땀을 흘리는 게 좋다. 하지만 겨울은 땀이 나도 안에 입고 있는 티셔츠가 살짝 젖는 정도라 찝찝하다.


그러다가 한파가 와서 조깅을 하면 마치 북극곰처럼 후후 입김이 많이 나온다. 입김은 미스트가 되어 어때? 뛸만해? 그만두지 그래? 이렇게 뛴다고 뭐 달리지나? 괜히 춥기만 하고 시간만 낭비한다구,라고 한다. 온갖 방해로부터 리추얼을 형성하지 않으면 안 된다.



어느 날부터 조깅을 하는 나를 응원하려는 조명쇼가 펼쳐지고 있다. 한 조명이 달에 가서 닿았다. 달은 흥 하며 인공조명에 질 수가 있나. 나는 몇십억 년 동안 여기에서 매일 밤 너희 인간들을 위해 밤을 밝혀줬는데.


달은 루나틱과 인세인으로 나뉜다.   


서양의 달은 어떤 사람들에게 영향을 미치는데, 인세인은 천성적으로 머리에 문제가 있는 것으로 전문적인 치료를 받는 게 바람직한데, 루나틱은 달에 의해 즉 루나에 의해 일시적으로 정신을 빼앗기는 것이라 오래전 서양에서 루나틱은 달 때문에 일시적으로 정신이 미쳐버리는 것으로 그 사람의 문제를 달에게 넘기기도 했다.


하지만 동양에서 달은 신성한 존재, 소원을 빌거나 안위를 바라는 토테미즘적인 신성함을 담고 있다. 뭐 그렇다는 얘기다. 어디서 주워 들었다.


조깅을 하고 돌아오면 그 기묘한 엘리베이터가 나를 맞이한다. 건물의 총 3대의 엘리베이터가 있는 2대는 교체가 되었고 이 엘리베이터만 그대로다. 교체된 엘리베이터는 뭔가 너무 기계 동물의 뱃속 같은 느낌이라 지하 4층으로 아무도 누르지 않았는데 알아서 내려와서 아무도 내리지 않고 타지도 않는데 컴퓨터 목소리로 “지하 4층입니다. 문이 닫힙니다”라고 한다.


시작이 끝이며 끝이 곧 시작이다. 다크 시즌 3에 나온 대산데, 우리는 결말을 알 수 없지만 결말은 우리를 안다. 이제 곧 12월의 마지막을 보내고 나면 다시 1월의 시작이다. 이런 무한 굴레는 절대 변하지 않는다. 미래의 인간들이 이런 시간의 무한 굴레를 바꾸려고 인간이 의지라는 환상에 빠져 이것저것 해보지만 결국에 인간의 운명, 즉 시간의 무한 굴레를 벗어나지 못한다.


다른 결정을 내릴 순 있으나 결국에 결과는 같은 결과라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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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주 가는 동네 빵집에서 사 먹는 우유식빵은 저녁에 가면 다 떨어지는데 가끔 남아 있는 식빵을 운 좋게 사 올 때가 있다. 우유식빵은 식빵만 먹는 게 가장 맛있는 거 같다. 부드러운 게, 말랑말랑한 게 그저 식빵만 먹어도 좋다. 우유식빵의 맛은 다 알겠지만 단맛이 없다고 해서 설탕이 안 들어간 건 아니다.


마시멜로가 칼로리가 아주 높다고 살이 엄청 띠는 식품으로 알고 있지만 사실 마시멜로 하나는 바나나 하나 보다 칼로리가 높지 않다. 우유식빵의 부드러운 맛에 현혹되어 ‘음, 달지 않군. 좋아’하며 한 번에 많이 먹다 보면 아마 운동을 해야 할 걸.


동네 빵집이라고 해서 사는 집의 동네 빵집은 아니다. 살고 있는 동네에는 전부 대기업 베이커리 밖에 없다. 코로나 전까지만 해도 작은 빵집이 있었는데 대기업 베이커리에 치이고, 동네에 쏙쏙 늘어나는 로켈 카페에서도 빵이나 조각 케이크를 판매하는 것에 치여 없어지고 말았다.


내가 가는 동네 빵집은 조깅을 하고 돌아오는 길에 들리는 곳이라 집과는 거리가 먼 동네다. 아주 작은 빵집인데 한 40년 정도 된 집이다. 노부부가 하는데 주인 할아버지가 주방에서 새벽부터 빵을 굽고, 할머니가 손님이 오면 계산을 한다.


아주 작고 좁은 빵집이라 빵집 안에서 먹을 수는 없다. 예전에 역이 있던 곳의 빵집인데 역은 없어졌고 주위의 상가들도 역이 사라짐과 동시에 같이 사라졌지만 빵집은 아직까지 그 자리에 있다. 그래서 들어가면 세월의 흔적을 느낄 수 있다.


빵 가격도 베이커리의 빵보다 저렴하다. 여기의 빵은 여러 빵 중에서 식빵류가 인기다. 저녁에 가면 다른 빵에 비해 식빵류는 싹 떨어지고 없다. 그러다가 운 좋게 식빵이 진열대에서 사라지지 않은 걸 볼 때가 있다. 쓱 들어가면 주인 할머니께서 아이구 이 추운데 오늘도 열심히시네, 같은 말을 건넨다.


그래서 우유식빵을 사들고 들어오는 날이면 꽤나 신난다. 우유식빵은 어떤 음식과도 잘 어울린다. 라면 국물에 찍어 먹어도 맛있고(라면 국물에 밥을 말아먹기보다 식빵을 찍어 먹는 게 더 맛이 좋아), 멸치볶음을 올려 먹어도 맛있다. 그냥 김치와 먹어도 맛있다.


우유식빵 3개 사이에 치즈를 넣고 계한 프라이를 위에 올려 전자레인지에 돌리면 식빵의 맛이 확 달라진다. 무엇보다 우유식빵은 뜨겁게 먹으면 더 맛있는 것 같다. 빵과 빵 사이에 빛처럼 녹아내린 치즈가 뜨거운 우유식빵에 놀러 붙어 풍미를 더해준다.


뜨거워서 입 안에서 쓰으 후 하며 식혀 먹는 그런 맛이 있다. 어릴 때 어머니가 식빵을 밥을 할 때 그 위에서 쪄 준 적이 있다. 그러면 식빵에 밥의 냄새와 열기가 쌓여 식빵 같지만 식빵 같지 않은 뜨거운 식빵을 호호 불어 먹곤 했다. 물론 겨울이어야 그렇게 먹을 수 있었다.


박찬일 요리사의 글처럼, 추억의 절반은 온통 맛이 차지하고 있다. 맛으로 둘러싸인 추억을 벌리면 그리운 것들이 선물처럼 우르르 들어있어서 종종 벌리게 된다. 뜨거운 계란, 녹아내린 치즈, 하얀 식빵. 한국적인 맛은 아니지만 맛있음에 국적을 따지는 건 바보들만 하는 짓이다. 이렇게 먹으면 배가 불렀는지 모르게 자꾸 몇 개씩 해 먹게 된다.


이렇게 먹다가 다르게 먹어보는데 - 빵 위에 굽고 난 뒤 하루 지난 고등어구이를 올리고 치즈를 올린 다음 전자레인지로 돌린다.

음, 이게 무슨 맛일까,

젠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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몇 안 되는 나의 인스타 친구들을 위해 미리 크리스마스 인사를 했다.라고 하지만 대부분 디엠으로만 대화를 하고 댓글 창은 고요하다.


나의 인스타그램은 다른 사람들과는 달리 빽빽한 글자가 가득하다.

그리고 전부, 싹 다, 몽땅 하루키의 소설이나 하루키에 관한 글이기 때문에 친구들이 몇 없다.


몇 안 되는 인스타 친구들을 위해 크리스마스 디자인을 한 번 해보았다. 트리의 장식으로 크리스마스 분위기를 한 껏 냈다. 우습지만 한 껏 냈다. 만드는 동안에는 캐럴도 틀어 놓고, 뭐 들었더라. 그래 이번에는 부불래 씨의 캐럴을 들었다.


첫날에는 이렇게 디자인한 것을 스토리에 올렸다. 역시 사람들이, 아니 인스타 친구들이 좋아했다.


둘째 날에는 디자인 작업을 한 것을 출력을 해 보았다. 그리고 이렇게 사진으로 담아 스토리에 올렸다. 여기서 문제는 아니지만 문제라면 - 나는 인스타그램을 하나 더 하고 있는데 거기는 전부 영화에 관한 이야기만 있다. 보통 3일에 두 편 정도 영화를 보는 편이라 방대하게 본 영화 중에서 짤막하게 이야기를 올리고 있는데 거기는 대부분 넷상에서 만난 친구들이다. 대체로 영화, 소설, 시 같은 카테고리가 맞는 사람들. 나와 실제로 만나본 적이 없는 사람들이다.


그런데 요기는 반 정도는 오프라인에서 실제로 아는 사람들이라 이렇게 출력물을 올렸을 때 ‘나 이거 줘’하며 디엠이 온다. 그러면 오는 족족 다 만들어 주지만 나의 욕심상 출력물의 색감이 썩 마음에 들지 않으면, 그러면 주기가 조금 망설여진다. 받는 사람이야 전혀 그런 것에 문제를 느끼지 못하지만 색 분배가 모니터로 보는 것만큼 출력물이 따라오지 못할 때 그 이상한 기분이 있거든.


색이라는 게, 컬러라는 건 휴대폰 액정으로 보는 거와 모니터로 보는 것, 그리고 출력물이 다 다르다. 눈으로 보는 것과도 다르기 때문에 이 모든 것을 엇 비슷하게 색감을 맞춰서 출력을 한 결과물의 색감을 만들고 싶은데 그게 내 생각과 잘 안 되었을 때 기분이 조금 다운이 된다.


그거랑 비슷할지도 모르겠다. 휴대폰으로 옷을 주문했는데 받아 보면 액정으로 보던 색감과 약간 달라 보이는 경우. 그럴 때 마음이 안정되지 않은 사람도 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크리스마스 카드를 만들었다. 나는 매년 크리스마스 카드를 직접 만들고 있는 편이다. 내가 나의 성격을 봤을 때 나는 너무 귀찮아서 뭔가를 만들고 하는 걸 정말 싫어할 것 같은데 또 손으로 꼼지락꼼지락 하며 만든 게 여러 개가 있다.


분명 나는 귀찮다, 그런데 일단 시작하고 나면 열심히 한다. 귀찮은데 열심히 한다. 귀찮지만 귀찮지 않다. 나는 좋아하지 않다고 생각하는데 좋아하는 것처럼 이걸 하고 있다. 그러니 이걸 하는 것을 좋아하는 것이 맞을지도 모르지만 실은 좋아하지 않는다. 패러독스다.


여하튼 직접 만든 걸 주면 좋아하는 사람이 있고 또 썩 좋아하지 않는 사람도 있다. 마녀 배달부 키키에서 할머니의 청어 파이를 대 놓고 싫어하던 손녀딸처럼 싫어하는 사람이 있다. 그 손녀딸은 키키에서 정도 없고 아주 얄미운 인물로 유일하게 등장한다.


그런데 하야오는 그 얄미운 손녀딸 캐릭터를 아주 좋아한다고 한다. 왜냐하면 그 손녀딸 덕분에 키키가 성장하게 되는 가장 솔직한 캐릭터이기 때문이다. 싫어하는 걸 싫다고 말할 수 없는 요즘의 분위기가 있다. 조직이나 단체에서는 더 그렇다. 친구 관계에서도 그렇지만 연인관계가 그렇다.


비록 내가 좋아하지 않는 음식이라도 나의 사랑하는 이가 좋아한다면 기꺼이 하얀 거짓말을 하며 그 음식을 먹는다. 솔직해지기를 꺼려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키키에서 그 손녀딸은 비가 오는 날 비를 맞으며 시간에 맞춰 할머니와 열심히 구운 청어 파이를 배달했을 때 손녀딸의 솔직한 반응이 키키가 생각하는 반응과 너무 달라 충격을 받는다.


그 충격이 모이고 모여 키키가 지금보다 좀 더 성장하게 만든다.


지브리의 모든 영화를 좋아하지만 키키를 나는 제일 좋아한다. 그래서 조카를 위해 키키의 디오라마를 한 번 만들어 보기도 했다.




사실 디오라마 만들기는 엘사에서 시작되었다.

한창 코로나 시기에 밖으로 나갈 수 없어서 심심해 죽으려고 하는 조카를 위해 처음에는 얼음공주, 엘사 디오라마를 만들기 시작했다.

나뭇가지, 돌멩이 주워오고 씻고 다듬고 칠하고 말리고 배경 작업하고 프린트하고 숲처럼 만들고 등등등



그러다가 귀멸의 칼날의 네즈코 디오라마를 만들어 버렸다. 어떻든 이 세상에 딱 하나뿐인 디오라마라서 그런지 이걸 사진을 찍어 인터넷에 올렸더니 비싼 돈을 줄 테니 팔아줘 하는 사람들이 있었다. 하지만 팔지 않았다. 지금은 팔 걸, 하는 후회가,,,,


그래서 남은 재료들로 이런 것도 만들어 보고



또 다른 토토로 버전

나뭇잎 우산은 다이소에서 조화를 천 원주고 구입해서 잎을 잘라서 강력 접착제로 붙여 우산을 만들었다.


병 안에 있는 별들이 야광이라 불을 끄면 아주 환하게 밝을 줄 알았지만 여지없이 무너지는 나의 생각.


인스타 친구들 크리스마스 카드로 시작해서 키키, 엘사, 토토로로 이어지는 세계관이었다. 다중우주론이 뭐 따로 있나 이게 바로 다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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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기 속에 고요가 침잠되어 있고 해는 아무리 애를 써도 구름 때문에 나타나지 않았다. 바람은 없는데 기온이 너무 낮아 을씨년스럽다. 먼지가 많아서 아무 짓도 안 했는데 재채기가 나오고 사람들의 표정은 무슨 꿍꿍이가 있는 것처럼 굳어 있고 무섭게 보였다.


도대체 지금까지 죽어간 사람들의 숫자는 얼마나 될까. 지구에서 태어나 지구에서 죽은 사람은 몇 명이나 될까. 일천억 명? 쯤 될까. 죽는다 해도 일천억 명 중에 그저 한 사람일 뿐이다. 우주로 나가서 죽는다면 최초로 우주에서 죽은 사람으로 인류는 기억할지도 모른다. 어쩌면 그래서 돈이 많은 사람들은 나이가 들수록 우주로 자꾸 가려고 하는지도 모른다.


일천억 명이라는 숫자는 얼마나 되는 숫자일까.

우리는 이런 얼마나 되는지 알 수 없는 수치를 보통은 경험하지 못하고 죽는다.


얼마나 되는지도 모르는 수치의 돈을 마음껏 써먹는 회사도 있다. 이런 회사의 대표는 법인카드로 이 모든 것들을 누린다. 이런 대표가 있는 회사는 보통 ‘가족 같은 회사’를 표방한다. 하지만 실상은 '가 족같은 회사'다. 우리 회사는 가족 같은 분위기와 핏줄처럼 서로 연결을 할 수 있어야, 같은 말로 직원들을 사로 잡거나 휘어잡는다.


한국 사회에서 가장 문제적인 제도, 가장 부패한 제도, 가장 비인간적인 제도는 가족이다. 가족은 곧 계급이다. 교육문제, 부동산 문제, 성차별을 만들어 내는 공장이다. 부(자본) 뿐만 아니라 문화, 자본, 인맥, 건강, 외모, 성격까지 세습되는 도구다. 간단히 말해 만악의 근원이다 – 정희진, 가족 밖에서 탄생한 가족


우리는 아주 친밀한 사람에게 ‘가족 같은 사람‘이라는 말을 특별하게 사용하고 있지만, 실재하는 가족은 특별함을 일찌감치 지나쳐 온갖 문제가 산적한 집합체가 되어 있다. 우리들 내면에 간직된 상처의 가장 깊숙하고 거대한 상처는 대부분 가족으로부터 얻은 것이다 – 김소연, 사랑에는 사랑이 없다



사회에서 가족 같은 회사를 표방하는 회사는 문제가 많다. 너를 가족이라는 울타리에 가두고 착취를 하겠다는 말로 들리기만 한다.


이 같은 회사의 대표는 잘 나가는 직원이 계약이 끝나서 이번에 계약은 하지 않겠다고 하면 ‘가족 같은’을 들먹이며 협박을 하게 된다.


네가 지금까지 이루어 놓은 것들은 전부 가족 같은 우리가 해 준 것들인데 배신을 해? 아주 너의 남은 앞길을 망쳐 주겠어.


이런 회사는 가족 같은 회사가 아니라 그저 가 족같은 회사일뿐이다. 츄의 사태만 보더라도 대중이 연예인을 감싸고도는 경우는 아주 드물다. 츄의 소속사의 행태가 아주 나쁘다고 돌려서 말하는 인증의 글들을, 츄와 같이 일을 했던 의상, 스텝의 관계자들이 자신들의 이름을 걸고 올리고 있다.


무엇보다 모든 광고에서 퇴출시키려는 소속사의 협박에도 불구하고 타격감은 0이다. 업계에서는 전폭적인 지지를 더 해주고 있다. 모델로 계속 활동을 하고 있다.


이 같은 가 족같은 행태가 어째서 지금까지, 21세기의 대한민국에서 이루어지는가. 그건 초기 60년대부터 이어져온 가 족같은 회사의 잔재가 아직까지 있기 때문이다. 소위 조폭들이 건축업을 끼고 사업을 하던 분위기가 연예계로 들어오면서 같이 일을 하는 연예들을 외국처럼 평행선 상의 중요한 직원으로 여기는 것이 아니라 데리고 있는 애들처럼 여기는 것이다.


해외에서는 사진작가, 화가, 작가, 배우, 코미디언 할 것 없이 전부 에이전시를 통해서 활동한 모든 내역서를 투명하게 받아 보는 것에 비해 이번 사태에서 보듯이 가 족같은 회사는 가족끼리 그런 건 안 봐도 돼, 같은 분위기로 일관한다.


이 가 족같은 회사를 좀 더 큰 의미로 보면 이번을 마지막으로 떠나는 벤투 감독을 보면 알 수 있다. 그는 이번에 떠나면서 인터뷰를 가졌다. 그리고 거기서 이런 이상한 행태를 4년 동안 경험했던 것에 대해서 이야기를 했다.


“선수들 휴식은 필요 없고, 중요한 게 돈, 스폰서 이런 게 아닌가 생각하고 있습니다. 제 의견은 ‘대표팀이 한국에서 중요하지 않다고 보는 것 같다’는 겁니다.”


이 말은 한국축구협회라는 거대한 회사는 가 족같은 회사를 표방하며 선수들에게 휴식은 제대로 주지 않으면서 성적은 잘나길 바라는, 그래서 선수들을 오로지 협회의 돈벌이로 밖에 보지 않는 이상하고 이상한 행태를 말하고 있다.


그럼 이 가 족같은 회사의 못된 습성을 어떻게 해야 할까. 대표들을 불러서 꿀밤이라도 놓고, 30센티미터 젓가락으로 똥침을 찔러야 할까. 아쉽지만 방법은 오직 하나다. 그저 투명하게 공개하는 것이다. 선수들에게 들어가는 모든 내역, 소속사 연예인들이 활동해서 벌어들인 모든 수입의 내역을 공개하면 투명하게 된다.


대부분 동물은 배가 부르면 먹이를 먹지 않는다. 사자도 배가 부르면 앞에 토끼가 있다 해도 잡아먹지 않는다. 동물은 배가 고프면 먹이를 찾아서 사냥을 하지만 인간은 배가 고프지 않아도 하루 세 끼를 먹는다. 그리고 그 중간중간 간식도 먹는다. 여기서 욕심이 과해지면 아귀가 된다.


아귀의 배를 가르면 그 안에 작은 물고기가 가득 들어 있는 경우가 있다. 아귀는 뱃속에 소화가 안 된 작은 물고기가 가득 있어도 계속 먹이를 잡아먹는다. 배가 차도 계속 물고기를 잡아먹는다. 탐욕 때문이다. 탐욕이 너무 강하면 배를 채우다 채우다 결국 터지고 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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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밖에는 찬바람이 부는 소리가 맹렬하다. 베란다의 창문이 흔들거릴 정도로 겨울의 차가움이 느껴지는 소리다. 어릴 때 살던 집에서는 외풍이 심해서 겨울이 오면 아버지가 창문에 전부 바람을 막는 문풍지 작업을 했다.


 아버지는 맥가이버였다. 소중하게 생각하는 연장을 가지고 일요일에 겨울을 대비한다. 그 모습을 우리는 바라보며 신났다. 신날 일도 아닌데 그저 신났다.


 일요일이었고 일요일에는 아버지가 집에 있었고 깜순이 집에도 겨울을 대비하는 비닐을 덮고 담요로 이불을 바꾸었다.


 아버지는 하루 종일 집안 곳곳, 구석구석 정비가 끝나면 이제 겨울이 와도 춥지 않을 거야.라고 했다. 야호! 그 말에 우리는 또 신났다. 우리만 신난 줄 알았는데 마당의 현관문 옆의 깜순이도 집이 겨울의 단장을 마쳐서인지 신나서 꼬리를 한껏 흔들며 마당을 열심히 뛰어다녔다.


본격적인 겨울이 오면 이불을 등에 덮고 앉아서 귤을 까먹고 찹쌀 도넛을 먹으며 루더 밴드로스의 노래를 들었다. 중학생이 되어 음악 감상실에 들락거리며 루더 밴드로스의 노래를 많이 신청해서 들었다.


겨울 겨울 느낌이 가득한 루더 밴드로스의 목소리. 루더 밴드로스의 유명한 노래로는 ‘dance with my father’이다. 아버지라는 단어를 떠올리면 산 같았던 등이 어느 날 그렇게 보이지 않게 되었을 때 느껴지는 알 수 없는 기분이 들었다.


지난 앨범 속 사진에서의 아버지는 동생을 어깨에 올리거나 한 팔로 꼭 안고 있었다. 동생은 아버지의 발등에 발을 올려 같이 춤을 추는 걸 좋아했다. 아빠의 냄새를 한껏 맡을 거야. 어린 동생이 그런 생각을 하지는 않았지만 마치 놓치기 싫은 듯한 표정으로 아버지를 올려다보며 신나는 모습이다.


아버지와 춤을 출 수 있다면, 모든 아버지가 춤을 추는 그날은 아마 세상은 행복한 날이 된다.


불한당을 만나더라도 루더 밴드로스의 노래를 들려주면 같이 앉아서 듣게 되지 않을까 싶은 노래다. 겨울에는 루더 밴드로스의 캐럴을 듣는다.


하얗게 표백된 색을 띤 마당을 본다. 귤을 까먹고 찹쌀 도넛을 먹으며, 그리고 따뜻한 우유를 마시며 이불을 등에 덮고 마당을 본다. 마당의 여기저기에 겨울이 내려앉았다. 차갑게 변한 마당은 나에게 나오라 손짓을 하지만 나는 루더 밴드로스의 노래를 들으며 따뜻한 이불을 덮고 앉아 있다.


여기와 거기는 문 하나를 두고 갈라진 세계. 아버지의 좋은 솜씨 덕분에 겨울의 칼바람이 집 안으로, 이쪽 세계로 들어오지 않는다. 완벽한 겨울이다. 우리는 완전한 겨울은 아니지만 완벽한 겨울을 보냈다. 찹쌀도넛을 오물오물 씹어 먹으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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