식육점에서 좀 저렴하게 고기를 왕창 사놓은 다음 먹고 싶을 때 요만큼씩 양념을 넣어서 지글지글 볶아 먹으면 맛있다. 저렴한 고기는 비계가 많이 붙어 있다. 살이 찌네 어쩌네 해도 돼지고기에 비계가 붙어 있으면 아주 맛있다. 나는 특별히 좋아하는 음식도 없고, 못 먹는 음식 빼고는 가리는 것도 없어서 재미없는 인간일지도 모른다. 그래서 기를 쓰고 소문난 식당 앞에서 줄을 서는 행위도 없고 매운 음식 빼고는 앞에 있는 음식을 군말 없이 그저 먹는 편이다.


학창 시절부터 군시절에도 어머니에게 이런 음식이 먹고 싶으니 해달라고 한 적도 없다. 아마 없을 것이다. 내 기억으로는 없다. 고기는 맛있지만 특별히 찾아서 먹거나 먹으러 다니지도 않는다. 딱히 싫어하지도 않기 때문에 있으면 먹게 된다. 대학교 때 같이 어울려 다니던 몇몇이 고기를 먹으러 가면 전부 고기를 잘 굽지 못해서 태워먹기 일쑤였다. 그러거나 말거나 상관없었다. 술을 마시다 보면 이게 탄 건지 뭔지도 몰랐다.


지금 사진으로 보이는 이런 돼지불고기는 군대에서 왕왕해먹었다. 고참이 되었을 때 운전병이 나갈 때 양념 하나를 부탁해서 돼지고기가 담긴 비닐에 양념을 부어서 마구 주물럭주물럭 한 다음에 주말이 오면 저수지에 갔다. 부대 뒤에 저수지가 있어서 일요일에 가끔씩 그곳으로 가서 고기를 구워 먹었다. 내가 졸다구였을 때에는 그 준비를 하느라 고생이었는데 고참이 되어서도 여전히 나는 내가 준비를 다 했다.


양념이 전혀 맵지 않고 번개탄으로 굽는 직화여서 연기도 많이 났지만 그것대로 아주 맛있었다. 우리는 훈련이 없어서 내무생활이 너무 힘들고 빡시다. 그래서 군기도 심하고 구타도 있었지만 고기를 구워 먹을 때에는 계급도 없이 다들 친했다. 따지고 보면 다 고만고만한 나이에 서로 기대지 않으면 2년 동안 지내기 힘들었을 것이라는 고기를 구워 먹는 아이들은 알고 있었을지도 모른다.


집에서는 직화로 구워 먹을 수 없지만 어째 어째 굽다 보면 그때 그 맛이 좀 난다. 맛있다는 말이다. 비계가 쫀득쫀득한 젤리 같다. 배추에 올려 아삭아삭 같이 먹으면 고기를 많이 먹어도 몸에 덜 미안하고 그렇다. 이렇게 비계가 붙은 고기를 먹는 나라가 많지 않다고 한다.


삼겹살을 구워 먹을 때 살코기만 있으면 그것도 탐탁지 않다. 비계와 살코기의 비율이 적절하게 섞여야 맛있다. 이렇게 비계가 붙은 삼겹살을 먹게 된 지가 그렇게 오래되지 않았다. 돼지를 열심히 키워 맛있는 부위는 일본에 수출을 했다. 돼지농장을 하게 되면 그 주변이 엄청 더러워졌다. 예전에는 하수처리 시설이 잘 되어 있지 않아서 시커멓고 오물이 흘러넘치기 때문에 주위는 쉽게 파괴가 되었다. 그렇게 파괴된 토양을 원래대로 돌리는 일은 만만찮은 일이었다. 일본은 섬나라라 도요토미 히데요시 때부터 나라가 더러워진다고 돼지를 못 키우게 했다. 시간이 흘러 70년대 맛있는 돼지 부위는 일본으로 수출했다. 일본에서는 맛있는 앞다리 부위로 돈가스를 만들어 먹었다.  


일본은 한국과 대만에서 돼지고기를 수입해서 먹었는데 70년대에 그만 대만에서 돼지파동이 일어났다. 그래서 일본에서 수입하는 엄청난 양의 돼지고기를 한국에서 더 가져갔다. 그러다 보니 돼지사육은 더 늘어났고 맛있는 부위를 팔고 남은 상당한 부위가 삼겹살이었다. 먹어야 했다. 버릴 수는 없었다. 할 수 없이 국내에서, 국민들이 전부 소화를 해야 했다. 70년대 노동자들이 많아지고 주 6일제에 강원도 탄광촌으로도 노동자들이 몰렸다. 삼겹살을 구워 먹으면 기관지의 먼지가 내려간다, 삼겹살은 가격도 싸고 맛도 좋다.


이런 분위기에 사람들은 6일 열심히 일을 하고 일요일에 강이나 산으로 가서 삼겹살을 구워 먹기 시작했다. 이게 어쩌면 한국인의 욜로의 시초일지도 모른다. 아직까지 캠핑을 가서는 고기를 구워 먹기 때문이다. 먼지와 고기는 체내로 흘러 들어가는 길이 다름에도 우리는 일요일에 삼겹살을 구워 먹으며 일주일 동안 쌓인 먼지와 피로, 괴로움을 잊으려 했다.


이렇게 칼바람이 부는 날 모든 인공적인 소리를 끄고 창가에 귀를 대고 들어 보면 내 아버지, 어머니들이 괴로움을 잊으려 하는 소리가 바람을 타고 들리는 듯하다. 토요일 저녁이면 아버지가 퇴근하면서 사들고 오는 삼겹살을 양념에 비벼 지글지글 구워 먹던 추억이 그립기만 한 요즘. 냠냠냠 돼지불고기는 맛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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깻잎에 밥을 싸 먹는 행위는 자연으로 한 걸음 걸어가 그 안에서 자연의 맛을 보는 느낌이다. 여러 밥도둑 중 깻잎 만 한 것도 없다. 여름에 땀 흘리고 들어와 깻잎에 밥을 싸 먹으면 그렇게 맛있을 수가 없다. 내게 대부분의 음식의 추억이 겨울에 집중되어 있는데 깻잎은 겨울을 벗어났다.


깻잎 꼭지를 손에 쥐었다고 씻지 않고 있으면 손가락 끝에서 꼬릿꼬릿한 냄새가 난다. 얼른 씻어 버리면 없어질 꼬릿 한 냄샌데 계속 맡고 있던 어린 시절이 떠오른다. 그래서 어쩌면 깻잎 논쟁이 여기서 시작되었을지도 모른다. 깻잎은 늘 여러 장 붙어있고, 젓가락으로 떼려면 한 손으로 꼭지를 잡으면 그만인데 씻기 전까지 물티슈로 닦아도 그 기묘한 냄새가 손끝에 도사리고 있다.


그리하여 근래에는 깻잎 하면 뭐 니 뭐 니 해도 깻잎 논쟁이다. 이게 얼마나 사람들의 관심을 끌어냈는지 네이버 국어사전에도 나와 있다. 깻잎 논쟁을 별 거 아니게 생각하는 사람도 있겠지만 사실 실제로 상황에 닥치면 아주 애매하다.


과연 나는 어디에 속하는 인간일까, 하고 생각하면 동전의 앞뒤처럼 딱 잘라 나는 이거야!라고 말 할 수만은 없다. 그 상황과 상대방의 관계와, 그리고 그 관계가 얼마나 깊으냐 덜 깊으냐 옅은지에 따라 또 태도가 달라진다.


이 논쟁의 범위를 확장시키면 남사친 여사친이 가능한가, 로 접근한다. 말 그대로 친구 사이지만 애인과 또는 남편과 싸웠을 때 남자 친구를 만나서 술을 마시며 속상한 일을 토로하는 것이 가능할까. 나는 어릴 때부터 알고 지내는 여자사람 친구가 있는데 애인과 만나지 못할 때 연락이 오면 예전처럼 그렇게 허물없이 만나는 게 가능할까.와 같은 범위로 좁혀진다. 내가 사랑하는 이가 이렇게 하면 머리는 이해하는데 마음은 받아들이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미드 오자크를 보면 주인공의 아내의 애인이 죽었는데 그의 아들이 찾아왔을 때 주인공이 아내가 들어오기 전까지 그 아들과 이야기를 하다가 아내가 집에 오면 집을 비워주며 이야기를 나누라 한다. 세상에는 이런 복잡하고 애매하고 이상한 관계와 상황들이 인간과 인간 사이에 가득하다.


이런 논쟁이나 이야기는 자유의 상징인 나라 미국에서 더 유난 떨지도 모른다. 그저 쿨하게 보이지만 이미 30년도 훨씬 전에 헤리가 셀리를 만나면서 이 같은 뉘앙스를 잘 보여주었다. 여사친이나 남사친이 깻잎을 젓가락으로 등신처럼 잘 못 뜯을 때는 야, 한 손으로 꼭지를 잡고 젓가락으로 뜯어.라고 큰 소리로 말하고 싶지만...


깻잎은 우리나라 밖에 먹지 않는다고 한다. 한국인만 점령할 수 있는 음식이 있어서 재미있다. 번데기 같은 경우 아는 외국인에게 나는 먹어보라고 놀리는데 기겁하거나 얼굴이 도화지를 구겨 놓은 표정을 짓지만 번데기도 저기 늪지대가 많은 나라에 가면 살아있는 채로 먹기도 하니.


대만에는 취두부가 있고, 일본에는 와사비, 중국에는 뭐가 있을까. 아무튼 각 나라마다 자기네 문화의 특색 있는 음식이 있는데 지금은 다 같이 먹는다. 취두부는 냄새가 고약해서 그렇지 막상 먹으면 괜찮다. 아마 우리 홍어가 씹었을 때 엄청난 타격을 더 줄지도 모른다. 홍어는 시적으로 온몸으로 오줌을 싼다고 하는데 그래서 그런지 어디를 먹어도 암모니아의 그 킁 한 맛이 난다.


그러나 취두부도 대만에서 강도가 다 다르게 편의점에서도 팔리는 것처럼 홍어도 시장에 가면 센 거, 덜 센 거, 약한 거 이렇게 판다. 홍어는 뜨거운 국이나 라면에 넣으면 킁 한 맛이 묘하게 길게 여운이 남는다.


미국이나 유럽에서는 깻잎도 하나의 허브로 받아들인다고 하는데 아시아 쪽에서는 깻잎을 전부 먹을 것 같지만 우리나라만 먹는다고 한다. 근래에 일본에서 깻잎의 맛에 반한 사람들이 먹기 시작했다는 소리가 들린다. 깻잎은 통조림도 맛이 있어서 인기가 많다.

깻잎의 문제라면 이렇게 밥과 함께 먹으면 밥을 너무 먹게 된다고 한다. 먹을수록 더 배가 고파지는 희한한 음식이 깻잎이다. 고기를 구우면 역시 깻잎에 싸서 먹으면 맛있다.

깻잎을 먹을 수 있는 식탁이라면 그 시간만큼은 역시 행복하다. 깻잎은 마냥 어른의 음식이 아니다. 엄마가 깻잎을 하나씩 발라서 아이의 숟가락 밥 위에 올려주면 아이는 맛있게 그걸 먹는다. 깻잎도 집집마다 양념의 맛이 다르지만 아이들도 다른 어른의 음식에 비해 맛있게 먹는다.

깻잎을 다 먹고 나면 그릇 밑에 깔린 양념장에 또 밥을 비벼 먹을 수 있으니 야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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먼발치에서 보던 크리스마스가 어느덧 발치까지 왔다. 크리스마스 영화는 역시 캐빈의 좌충우돌 생존기 지. 캐빈은 그날 이후 나의 마음에 공구리를 쳐버렸다.

캐빈은 성인이 되어서 2018년인가 ‘나 홀로 집에’를 패러디 해서 구글 광고를 찍었다. 패러디를 너무 잘 해서 사람들의 호평을 얻었다.

나 홀로 집에를 보면 재미있게 촬영한 장면들이 아주 많다. 캐빈이 홀로 남겨져 지낼 때 바보 도둑들이 봉고를 몰고 붕 가서 캐빈의 코앞에서 멈추는 장면이 있다. 다 기억하겠지? 그 장면은 실제로 촬영하면 너무 위험하니까 캐빈의 코앞에서 차가 후진을 하고 카메라를 거꾸로 돌렸다. 그래서 후진을 할 때 캐빈의 목도리가 차에 딸려 가는데 그게 본 영상을 보면 드러난다. 그러니까 봉고가 캐빈의 코앞까지 올때 캐빈의 목도리도 약간 앞에서 캐빈의 몸으로 붙는다.

원래 나 홀로 집에 가 불발 될 뻔 했는데 아실까. 원래는 워너 브라더스사가 제작을 맡았는데 제작비가 초과하니까 이런 애들 보는 영화에 더 이상 투자를 할 수 없으니 엎어라,라고 했는데 이런 사태를 예감했던지 각본과 제작을 맡았던 존 휴즈가 몇 주 전에 아무도 몰래 폭스사 간부에게 각본을 전했는데 폭스사에서 이건 대박이 날 것 같아!라며 제작을 끝까지 하게 되었다.

캐빈이 홀로 집에서 난장판을 만들며 신나게 노는 장면에서 썰매를 타고 계단을 내려오는 장면이 있는데 이번에 볼 때 잘 보면 스턴트맨의 얼굴이 잘 보일 것이다. 캐빈의 스턴트를 맡은 배우 레리 니콜라스는 30살인데 키가 캐빈만큼 작아서 캐빈이 밧줄을 타고 썰매를 타는 모든 대역을 했다. 캐빈 2는 물론 여러 영화에서 활약했다.

사실 캐빈에서 가장 재미있고 중요한 인물은 바보 도둑들이다. 그중에서 조 패시의 연기가 압권이었는데 조 패시는 캐빈 이전에 마틴 스콜세지의 영화에서 욕설이 난무하는 역할을 주로 했다. 입만 벌리면 두세 마디마다 “씨발라먹을”을 집어넣어서 대사를 쳤는데, 그래서 캐빈에서 코믹 연기를 하는 게 너무 어려운 거였다. 그래서 영화를 보면 조 패시는 알아들을 수 없고 이상하게 말하는 신조어를 마구 내뱉으며 연기를 했다.

또 키 큰 바보 마브는 맨발로 찔리고 또 찔리고 유리를 밟고 눈밭에서 혹사를 당했는데 눈밭에서는 너무 추워서 고무로 된 발을 끼우고 연기를 했다. 그래서 이번에 다시 보면 눈밭에서 맨발이 좀 어색한 게 보일 것이다.

대가족 중에 가장 막내 풀러, 안경 쓴 귀여운 꼬마 애는 실제로 맥컬리 컬킨의 동생이다. 키에란 컬킨으로 아직도 배우로 연기를 착실히 하고 있다. 영화에서 풀러가 큰 아빠가 의자에서 일어나면서 의자에 얼굴이 딱 끼이는데 이 장면도 위험하니까 의자를 고무로 만들어서 촬영했다고 한다.

그 외에도 재미있는 영상과 이스트 에그가 숨어 있다. 더 많은 이야기를 알고 싶으면 유튜브에 여러 영상들이 있지만 그 중에 영사관 채널이 제일 좋음. 나 홀로 집에 1, 2. 이번 크리스마스에도 많은 사람들의 친구가 되어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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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고를 보다 보면 그런 광고들이 있다. 보는 이들을 불편하게 하는 광고가 아닌 정말 쏙 빠져서 보게 되는 광고들이 있다. 이런 광고에는 잘 나가는 배우나 과장된 몸짓이나 언어가 없다.


광고를 크게 나뉜다면 이미지 컷 위주의 광고와 스토리 컷 위주의 광로도 나뉘는 것 같은데, 뮤직비디오와 비슷할지도 모른다. 뮤직비디오 역시 가수의 이미지 위주로 된 영상이나 영화 같은 스토리 위주로 나누어진다.

광고 중에 이게 광고라는 것도 잊은 채 재미있게 볼 수 있는 광고가 있다면 박카스 광고다. 처음 박카스 광고가 나온 후 지금까지 지치지 않고 그 결을 잘 유지하면서 만들어 오고 있다.


마음에 쏙 드는 박카스 광고는 제9회 박카스 29포 영화제 청소년부 대상을 차지만 구본비 감독의 ‘[엄마예요?]와 [누나예요!] 사이, 박카스가 필요한 순간’이다.


유치원 생 민철이를 데리러 간 누나는 민철이 선생님에게 인사를 받는다. 안녕하세요, 민철이 어머님.


뾰로통 한 표정으로, 저 민철이 누난데요.


어머, 죄송해요. 대학생이세요?


더 뾰로통한 표정으로, 고등학생이에요.


그리고 민철이를 데리고 나서는 걸음걸이와 옷차림에서 이미 나는 누구? 여긴 어디? 같은 느낌이 확 든다. 그리고 편의점으로 가서는 더 재미있는 일들이 벌어진다.


마지막에 민철이가 누나는 웃지 않으면 늙어 보이니까 (주머니에서 박카스를 꺼내며) 이거 먹고 좀 웃어. 라며 건네준다. 민철이 누나는 옅은 미소를 지으며 광고가 끝이 난다. 누나의 옷차림과 표정이 재미를 더 해준다.


박카스 광고에는 유명인이 등장하지 않으면서 스토리 형식이라 나온 첫회부터 지금까지 꾸준하게 이런 형식을 유지하고 있다. 그래서 박카스 광고는 재미있다. 비슷한 포맷이지만 늘 새로운 이야기로 만들어지고 있다.

https://youtu.be/iZhATM3eSpU <= 박카스광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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옆 나라 일본에도 꾸준하게 비슷한 형식이지만 매번 다른 모습을 보여주는 광고가 있다. 바로 포카리스웨트 광고다. 저 앞 어딘가에 한 번 올렸는데 일본의 포카리스웨트 광고도 매년 한 편씩 제작된다.


일단 한 번 보면 너무나 재미있다. 이 포카리스웨트 광고는 원테이크다. 한 번에 촬영을 한 것이다. 아주 멋지다. 이 1분짜리 영상을 찍는데 6개월의 준비와 7일 동안 촬영을 했다고 한다.


이 광고를 만든 감독은 원테이크로 유명한 감독으로 이 광고 이전의 광고, 2017년에 나온 게임 광고 영상은 더 멋지다. 그 영상은 크리스토퍼 놀란의 ‘인셉션’의 촬영기법으로 촬영을 한 것처럼 보인다. 그러니까 그래픽을 전면 거부하고 모든 것들을 아날로그 식으로 촬영을 했다.


이 포카리스웨트 광고도 전혀 그래픽이 없고 오로지 세트와 원테이크로 촬영을 해버렸다. 엄청난 세트가 등장한다. 주인공 나카지마 세나가 복도를 뛰쳐나가 구불구불한 꽃길의 세트는 파도처럼 표현을 한 장치 세트다.


파도가 밀려오는 표현을 위해 80미터가 넘는 길이의 복도를 고무 재질로 만들어서 구불구불 출렁이는 효과를 냈다고 한다. 그래서 그 위를 주인공이 위태롭지만 뛰어가야 한다. 그 뒤를 촬영기사 두 명이 카메라를 양쪽으로 들고 뛰어가며 촬영을 했다. 그리고 친구를 만나 공중으로 올라가는 장면은 위에서 사람들이 줄을 매달이 잡아당겼다.


바람, 꽃, 배경, 건물, 인물과 같이 움직이는 커튼의 휘어짐, 이 모든 게 주인공, 장치, 감독, 스태프들이 합을 맞춘 다음 원테이크로 해버렸다. 큐 하는 순간 광고 속에 등장하는 사람들보다 훨씬 많은 사람들이 화면 밖에서 일사불란하게 바람을 만들고, 꽃을 뿌리고, 커튼을 흔들고 줄을 들어 올리고 카메라를 들고 주인공을 따라 달려간다. 그래야 원 테이크로, 한 번에 촬영으로 끝이 날 수 있다.


무엇보다 포카리 스웨트가 전달하는 바를 광고가 아주 잘 전달한다. 여고생 특유의 발랄함과 상큼함을 주인공인 나카지마 세나가 잘 표현을 했고 그게 포카리스웨트의 이미지와 잘 맞아떨어졌다. 이 짤막한 광고로 전달하는 바가 눈에 쏙 들어온다. 상쾌함이 화면 밖으로 막 터져 나온다. 광고의 미학에 매료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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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척 오랜만에 편지를 씁니다. 밝고 어두운 곳에서 잘 지내는지 궁금하군요. 저는 생각만큼 잘 지내고 있습니다. 사실 매일 불안합니다. 그래서 잘 지내고 있는 것 같습니다. 늘 불안하니까 불안에 어느 정도 적응이 되어 가고 있습니다. 늘 불안한데 어쩌다가 불안하지 않을 때가 있습니다. 그러면 왜 불안하지 않지? 하며 더 불안합니다. 그래서 잘 지내려면 언제나처럼 불안한 게 낫습니다.


실은 저만 그런 줄 알았습니다. 그래서 저의 그런 마음을 인스타 스토리에 올렸던 적이 있습니다. 그랬더니 팔로워 중 몇몇 사람이 나도 그렇다며 메시지가 들어왔습니다. 사실 같은 불안을 안고 있는 사람들이 있어서 위로를 받느냐 한다면 그건 또 아닌 것 같습니다. 불안을 공유한다고 해서 나의 등에 붙어 있는 불안이 일어나서 그쪽으로 뚜벅뚜벅 걸어가지는 않는 것 같습니다. 저는 이기주의자라 저만 불안한 게 낫습니다. 그 이유를 물으신다면 지금부터 한 번 곰곰이 생각해보겠습니다.


어느 날 보니 저는 안약을 넣을 때 늘 왼쪽 눈에 먼저 넣기에 한 번은 오른쪽 눈에 넣으려는데 눈꺼풀이 차가운 느낌이 들었습니다. 습관이란 그런 것이더군요. 그때 창밖으로 바다가 보이는 곳에 있었습니다. 바다가 유난히 검푸르고 철썩이는 것이 꼭 드뷔시의 라 메르를 듣는 것처럼 격정적이었습니다. 그리고 멍하게 가만히 보고 있으니 나에게 손짓을 하는 것입니다.


그 손짓이 꼭 당신의 손길 같았습니다. 저는 그저 조금 슬픈 일들이 눈처럼 쌓여 있을 뿐인데 지쳤다는 생각이 하루의 언저리에 닿아 저의 영혼이 몰락하려고 할 때 당신의 손길을 느꼈습니다. 무릎을 꿇고 어딘가로 끌려가는 것처럼 비참한 삶이라 안약 하나 제대로 넣지 못해 그만 달콤한 손짓을 보곤 합니다.


창피함이나 부끄러움도 잊은 나를 발견했습니다. 그저 조금 슬픈 일일 뿐입니다. 어떤 영화에서 가슴에 주름이 잡힌 여자가 생각이 났습니다. 영상 속 여자의 얼굴은 모릅니다. 여자는 누워있고 유륜이 크게 박힌 가슴이 옆으로 처져 있었습니다. 주름이 자글자글한 가슴의 여자는 가슴에 구멍이 나 검은 피가 고름처럼 흐르는 것도 잊은 해 슬픔 속으로 잠들어 갑니다. 여자의 눈은 필시 슬퍼하고 있었습니다. 고통이라든가 아픔이 아니었습니다. 그 눈을 들키기 싫어 카메라는 여자의 구멍 뚫린 가슴만을 보여줍니다. 그렇게 고름처럼 저는 또 줄줄 비어져나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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