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혜향인가 그거다. 죄다 맛있어


요즘은 귤도 다 맛있어. 좀 시그랍고 그래줘


찬바람이 불면 이불을 덮고 따뜻한 아랫목에 배 깔고 엎드려 귤 까먹으며 만화책 '마스터 키튼'을 읽고 있으면 세상 행복했다. 마스터 키튼은 현직 보험조사원이지만 전직 영국육군특수부대 SAA출신이라 키튼에게 들어온 사건 조사를 하는 방법은 그야말로 멋지고 또 멋졌다.


우와 하면서 마스터 키튼을 읽으며 귤이 주는 그런 분위기와 맛과 멋이 있었다. 리어카에서 한 봉지 가득 귤을 담아와서 방에 풀어놓고 그대로 까먹으며 만화책에 빠져드는 그 늪 같은 시간이 주는 즐거움이 있었다. 그러다가 어떤 귤은 씨그랍고 세그라워서 한 번 침이 죽 나와서 만화책에 떨어지기도 했다. 그렇게 흐르는 침은 빨아 당겨도 무게 때문인지 결국 만화책에 얼룩을 만들고 만다.

 

귤은 막 까먹을 때는 모르지만 먹고 나서 일어나면 배가 불러 터질 것만 같다. 가끔씩 친구들과 귤배 채우곤 했다. 미친놈들. 그런 귤의 자리를 요즘은 오렌지나 천혜향이 차지했다. 예전의 씨그랍고 쎄그럽던 귤이 있던 것과는 달리 요즘의 오렌지나 귤은 너무나 달고 다 맛있다. 정말 설탕과 꿀에 푹 담갔다가 꺼내 놓은 것처럼 전부 달고 맛있다. 그래서인지 귤배 채우기가 요즘은 겁이 난다.


누가 그랬던가. 독과 꿀은 같은 것이라고. 누가 그랬더라? 분명 책은 아니고 어딘가 영화에서 본 것 같은데. 영화 속 어떤 캐릭터가 말한 것 같은데. 기억 속 끈을 잡고 당겨본다. 뚜뚜뚜 매트릭스의 그 세로로 떨어지는 문자기호처럼 기억이 우후죽순 떨어지더니 아 그래! 라며 누가 말했는지 떠올랐으면 좋겠다. 생각이 날듯 말 듯 한 게 사람을 오금저리게 한다. 이럴 때에 보통 아무리 생각해도 생각나지 않는 경우가 많다. 나의 경우는 그렇다. 그리고 시간이 지나 그냥 잊게 된다. 인간이란 참. 흥.


귤 하면 생각나는 소녀가 있다. 5학년 때 같이 귤을 까먹으며 같이 만화책을 보던 여자애가 있었다. 우리가 친했던 건 둘 다 맞이라는 거였다. 그 애는 오빠나 언니가 없었고, 나는 형이나 누나가 없었다. 초등학교 때부터 나는 라디오를 끼고 살았고 더불어 팝을 줄창 듣는 그런 존재감 없는 아이였다. 나는 클럽활동을 했는데 담당 선생님이 팝을 많이 들어서 수업이 마쳐도 클럽활동하는 반에 남아서 선생님이 들려주는 팝을 듣고 이야기를 했는데 그 애도 같이 클럽활동을 했다.


그 애는 반은 달랐지만 같은 동네였다. 같이 학교에 가고 같이 하교해서 동네까지 같이 왔다. 얼굴은 기억이 안 난다. 예뻤으면 좋겠다. 5학년이 예뻐봐야,라고 하겠지만 5학년이니까 예뻤으면 좋겠다. 둘이 친해지고 첫겨울이 왔다. 5학년 겨울방학이었다. 우리는 그 애의 집에서 귤을 까먹으며 나란히 엎드려 만화책을 봤다. 그러다가 그 애의 엄마가 나갔다 올테니 동생 데리고 집 잘 보고 있으라고 했다.


우리는 네,라고 대답을 하고 같이 엎드려 있다가 그 애가 우리 곡석 할까?라고 해서 그 애의 남동생을 데리고 우리는 소꿉놀이를 했다.

5학년이면 소꿉놀이, 방언의 고유명사 곡석을 할 나이는 아니었지만 그런 분위기가 되었다.

그 애의 남동생은 우리의 자식이 되었고 까먹은 귤껍질을 가지고 밥과 반찬으로 만들어 그릇에 담아서 배역 놀이를 했다.

나에게 아바 앨범이 있어서 그걸 틀어 놓고 배역 놀이를 하자고 했는데 엄마, 아빠는 티브이를 본다며 음악 듣기는 포기하고 티브이를 틀었다.


배역 놀이에 심취해 있다가 이젠 불 끄고 전부 자자.

그래서 우리는 나란히 이불을 덮고 누웠다.

내일도 회사에서 늦게 들어와요?

그때 대부분의 아버지들은 회사를 다니고 있었다. 노동자였기에 야간에 야근이 잦았다.

응, 내일도 늦게 끝나.

내일 일 마치고 술 마시지 말고 집으로 와요.

우리는 그런 배역 놀이를 하며 키득키득거렸다.

천장을 보고 누웠다가 우리는 서로 얼굴을 마주했다.

부부는 잠들 때 손잡는 거야.

그 애는 그러면서 나의 손을 잡았다.

따뜻하고 작은 손이 나의 손을 꼭 잡았다.

5학년이었지만 마치 결혼을 한 것 같았다.

결혼을 하면 이렇게 따뜻한 손을 잡고 매일 잠들 수 있구나.

결혼이란 이렇게 좋은 거구나.

하지만 우리의 결혼 생활은 얼마 가지 않았다.


겨울방학에 내내 붙어 다니는 그 애는 6학년이 되어서 전학을 갔다. 요즘처럼 스마트폰도 없었다. 막연하게나마 헤어지기 싫은 마음과 연락할 수 없는 불안함을 동시에 가지고 있었다. 오늘 우리 앞 집의 2학년 영채는 대구에 있는 친구와 아이패드로 화상대화를 하며 나에게 친구를 소개해 주었다.

누구야? 대구에서 친구가 물었다.

우리 옆집 삼촌이야, 내 사진으루 인형 만들어 준 삼촌.

안녕하세요. 꺄르르르르.


오늘은 영채와 귤을 까먹었다. 요즘 귤은 다 맛있다. 귤만 가득 실어서 파는 리어카도 요즘은 거의 없어졌다. 이러나저러나 귤을 실컷 까먹을 수 있는 겨울이라면 조금은 행복하고 약간은 낭만적이다. 나에게는.


귤은 먹을 때 하나씩 까먹는 재미가 있는데 젠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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티브이에 겨울연가가 하기에 얼떨결에 몇 화를 보게 되었다. 커피 프린스 1호점과 몇 년 차이가 나지 않는데 겨울연가는 뭔가 촌스럽다. 대사도, 연기도 어색하다. 오히려 80년대나 그 이전의 드라마나 영화가 어색하지 않고 세련된 것 같다.


겨울연가에서 주인공들이 갈등을 빚고 난 후 대부분 내가 미안해, 내가 미안하다며 자기 비하가 심하다. 나는 겨울연가를 실시간으로 보지 못했고 본 적이 없어도 워낙 유명세를 탄 드라마이기에 대충 내용은 알지만 주인공들이 사랑의 열병을 앓고 있는데 그 대상자가 자기 옆의 애인이 아닌 다른 이성에게 향하고 있어서 전부 끙끙댄다.


겨울연가가 방영되고 10년인가 지나서 남이섬에 갔는데 준상이와 유진이의 러브러브 로맨스 촬영 장소가 아직 있었고, 사람들이 프린트된 준상이와 유진이 앞에서 사진을 찍고 있었다. 아마 그들 대부분이 일본인들 같았는데 드라마가 얼마나 유명세를 탔으면 10년이 지나도 촬영 장소를 찾는 사람이 있었다. 가을동화의 촬영지였던 한 폐교도 오랫동안 방문객들로 북적북적했다. 오래도 우려먹었다.


겨울연가에 나오는 주인공들 중에서는 배용준이 제일 자연스럽게 연기를 한다. 나머지는, 요즘 연기자의 연기를 보다가(요컨대 글로리의 송혜교, 조연들의 미친 연기나 카지노의 민식이 형의 실제 같은 생활 쌍욕 퍼레이드) 겨울연가의 부자연스러운 주인공들의 연기를 보니 대학생들 졸업 작품을 보는 느낌이다.


겨울연가에서도 주인공들이 아닌 배우들은 생활연기를 잘한다. 권해효는 예나 지금이나 똑같이 생활에 밀착된 연기를 한다. 권해효는 홍상수 감독의 영화에 나오는 순간 진짜 저 등신 같은 인간, 저 지질하고 쩨쩨한 인간일지도 모를 정도의 연기를 한다. 권해효는 죽 전주영화제 집행위원이었는데 이번에 정준호가 위원장이 되면서 사퇴를 해버렸다. 방은진도 집행위원이었는데 나 안 할래 하며 내던졌다.


정준호는 독립영화, 예술영화와는 거리가 멀어도 너어어어무 먼데 전주시장이 떡 허니 그 자리에 정준호를 앉혔다고 한다. 상업영화에 나온 배우지만 집행위원장으로 어쩌고 저쩌고 하면서. 그래서 영화인들이 봉기를 들었다. 아무튼 이상하게 흘러가는 곳은 늘 여기저기에 있기 마련이다.


겨울연가에서 주인공들이 갈등을 빚으면서 낯빛이 어두워지며 대립을 하는 장면이 많이 나온다. 에게게 최지우 얼굴은 너무 작아서 곧 소멸할 것만 같다. 마음은 딴 데 있는데 상혁이랑 같이 있으니 계속 땅혁아 왜 그래,를 외친다. 상혁이 역으로 나오는 박용하는 참 선하게 잘 생겼다. 죽은 박용하는 안타깝다. 뭔가를 이겨내고 계속 연기를 했으면 지금 찬란한 케이무비와 케이드라마에서 종횡무진 활약을 펼칠 텐데.


박용하가 죽었을 때 오열을 했던 친구가 있었는데 소지섭이었다. 파릇파릇할 때 박용하와 토크 프로그램 같은 곳에 나와서 하나뿐인 친구라고 했다. 그런 친구가 죽고 난 후 소지섭은 오열하며 사진을 들고 장례를 치렀다. 소지섭은 51k라는 영화 배급사 대표로 있다. 51k에서 수입한 영화들은 메이저는 아니지만 아주 볼만하고 재미있는 영화들이 많다. 미드소마, 쁘띠 마망, 다가오는 것들 등 주로 예술 영화를 배급하는데 돈이 안 되지만 영화를 좋아하는 소지섭의 생각을 알 수 있는 부분이다. 근래에 틸다 스윈튼 주연의 휴먼 보이스를 수입했는데, 아주 짤막한 단편영화로 보면 흥미롭다. http://51k.com/ <=소간지 회사


겨울연가 한 회당 나오는 음악과 노래는 몇 곡일까. 끊임없이 삽입곡들이 나온다. 감독이 누구더라 봄여름겨울가을을 배경으로 드라마 한 편씩 만든 감독. 우리나라 좋은 곳을 샅샅이 뒤져 영상에 담아서 호평을 얻었다. 봄의 왈츠 때는 일본으로 가서 멋진 장면을 영상에 담기도 했다. 우연과 운명으로 사랑이 이어지는 스토리가 대부분이라 로맨스 만화만화적이라 요즘과는 거리가 좀 먼 것 같다.


윤석호 감독은 청춘물의 대가였다. 손지창, 이정재, 김민종이 만화에서 갖 튀어나온 것 같은 모습으로 3형제를 연기한 '느낌'이 시발점이었다. 얼굴도 몸도 성격도 다 다른 3형제가 인형 같은 동생 우희진을 둘러싸고 벌어지는 청춘물이다. 주인공들의 친구들로 까만 콩 이본과 류시원, 이지은이 나왔다.

이지은은 김해경 선생, 이상의 이야기를 영화한 '금홍아 금홍아'에 금홍이로 출연했다. 금홍은 이상의 기괴함을 상쇄시켜 주는 어떤 뮤즈 같은 존재였다. 오래된 영화지만 지금 봐도 재미있다. 이상의 시와 글은 어렵지만 이상의 이야기는 영화든, 글이든 재미있고 흥미롭다. 이지은은 계속 잘 나가는 배우로 지낼 줄 알았지만 21년 3월에 홀로 자택에서 숨진 채 발견됐다.  


시인 이상에 관한 흥미 있는 기사 http://www.theviews.co.kr/news/articleView.html?idxno=396  


윤석호 감독은 그러다가 소식이 뜸 하더니 작년인가? 일본 배우들을 데리고 일본에서 영화 한 편을 만들었다. 마음에 부는 바람이라고 스토리는 좀 빈약하지만 영상미는 아주 좋다. 첫사랑, 재회, 일본 최고의 풍경이 있는 홋카이도 만으로도 시선을 잡아끈다.  

겨울연가 8회인가? 질투에 눈이 먼 상혁이가 유진이를 납치하듯 데리고 호텔(이라 부르지만 방은 모텔 같은)에 집어던지고 오늘은 우리 둘만 생각해! 라며 이대근 흉내를 내며 강압적인 모습을 보이는 이 와중에 민형(준땅이, 배용준)에게 온 전화를 상혁이가 받아서 빡친다. 유진에게 화를 내다가 결국 침대에 눕혀 겁탈하려는데 유진이가 상혁의 손아귀에서 벗어나 호텔을 빠져나온다. 달려 나오는 유진이는 호리호리 곧 쓰러질 것 같은 몸과 엉엉 울어 망가진 얼굴을 한 채 민형에게 가버린다. 아아 이 사랑을 향한 마음은 꼭 누군가를 애절하게 만든다.


유진이의 뒷모습을 보며 그제야 아차 싶은 상혁이는 머리를 쥐어뜯으며 또 내가 미안해! 를 허공에 대고 외친다. 내가 잘 못 했 다! 도대체 이 드라마에서 안 미안한 사람은 누구야. 죄다 미안하다고만 하는 거야.


미안해, 내가 잘못했어.

뭘 잘못했는데? 뭐가 미안한데?

내가 그냥 다 미안해!

오빤 그게 문제야, 뭐가 미안한 건데!

이런 남녀의 무한굴레가 떠오른다. 겨울연가에서 주인공들은 초반 잘 지내다가 갈등 이후 돌아가면서 미안해, 미안해, 내가 미안해, 내가 잘못했어. 한 회당 미안하다 소리가 많을까 삽입곡이 많을까.


오래된 드라마를 보면 많은 것이 지금과 다르다. 의상, 메이크업, 자동차 등. 변하지 않는 것들로 보이는 건 건물은 한 이십 년 정도 지나도 지금과 큰 차이가 없지만-영화를 봐도 그렇다. 게 중에서는 휴대전화가 가장 먼저 눈에 들어온다. 아예 휴대전화가 없는 시기면 더 나은데 스마트폰 이전의 투지폰이 나오는 장면은 어쩐지 기묘하다. 겨울연가에서 유진은 이러지도, 저러지도 여기에도 저기에도 마음을 똑띠 정하지 못하고 바람에 흩날리는 나뭇잎처럼 왔다 갔다 하며 우유부단하게 자신의 입장을 제대로 정하지 못한다. 그래서 보다 못한 민형이(준상이)가 매너 있는 목소리로 행동 똑바로 하라고 한다.


그러다가 상혁이가 준비한 유열의 음악앨범 같은 야외 콘서트를 개최하고 많은 사람들 앞에서 사회자 이자 노래를 부른 유열이 상혁이를 불러내 여기에서 중요한 발표를 한다며 유진이를 무대로 불러내 약혼자라 소개하고 다음 달에 결혼 발표를 해버린다. 처음 듣는 소리에도 유진이는 상혁이 얼굴을 한 번 쳐다볼 뿐이다. 요즘 같았으면 고구마 먹은 캐릭터라며 게시판에 폭격을 맞았을 텐데. 좋아 죽는 무대 위의 상혁이 얼굴을 보며, 소극적인 유진이를 두고 민형이는 그 자리에서 일어나서 밖으로 나가고 만다. 이후 어떻게 될까.

 

우연과 운명, 감성충만 겨울연가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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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니 디지코 KT 광고에 라면 먹는 장면이 나오는데 이렇게나 라면을 맛없게 먹을 수 있나. 라면을 맛없게 먹는 것은 대단한 능력이다. 어떻게 하면 라면을 맛없게 먹을 수 있을까. 티브이 속 여자들이 젓가락으로 깨작깨작 먹어도 맛있게 보이는 게 라면이다. 유튜브의 프로 먹방러들의 먹방 중에서도 라면 먹방이 제일 맛있게 보인다. 인기도 제일 많은 것 같다. 10년 전이나 지금이나 인기 최고 순위에 있는 게 라면 먹방이다.


예전 어릴 때 살던 동네에는 작은 슈퍼가 있었다. 영화에서나 볼법한 오래된 동네 슈퍼. 점빵. 점빵에는 나이가 많은 할머니가 가게를 지켰다. 입구의 문은 여닫이가 아니라 미닫이 문으로 나무틀에 유리가 있는, 고풍과는 거리가 멀지만 나름대로 예술혼이 깃든 미닫이 문을 열면 드르륵 거리는 소리가 나서 몰래 들어올 수도 없다.


할머니는 방인지 카운터인지 구분이 안 되는 작은 공간에 담요를 깔고 모로 누워 있다가 드르륵 소리가 들리면 일어났다. 누워있었기에 할머니의 파마머리가 눌릴 법도 한데 스프링처럼 탱탱하기만 해서 원형의 헤어서타일을 고수했다. 도대체 머리에 무슨 짓을 한 것일까.


점빵에는 작은 테이블이 두 개가 있는데 거기에 동네 어르신들이 매일 두서너 명씩 모여들어 막걸리를 마셨다. 안주가 주로 라면이었다. 할머니는 라면을 하루에 몇 십 개나 끓였다. 배를 채우는 라면보다는 막걸리에 어울리는 안주용으로 라면을 끓였지만 라면은 금방 동나고 만다. 코끝이 발갛게 된 어르신들은 네가 한 젓가락 더 먹었네 마네 하며 마냥 어린이가 되어 막걸리를 사이에 두고 티격태격했다.


할머니는 매일 안성탕면을 여러 개 끓이니까 라면 끓이는데 도가 텄다. 도사가 다 되었다. 곤로에 냄비를 올리고 물이 팔팔 끓으면 라면과 스프를 넣고 젓가락으로 면발을 공기와 마찰을 준 다음 계란을 탁 깨트려서 넣어서 휘휘 저어주었다.


운이 좋아 점빵에 떡국 떡이 있으면 몇 개 들어갔다. 떡국 떡이 들어가면 별거 아니지만 이상하게 맛있다. 최민식 주연의 카지노에서도 이동휘가 라면을 먹자니까 최민식이 떡도 좀 넣어달라고 하는 생활 연기는 너무 좋다. 할머니는 물 양을 기가 막히게 조절했다. 두 개, 세 개를 끓일 때와 하나를 끓일 때의 물양을 눈대중으로 대충 냄비에 붓는데 기가 막히게 조절을 한다.


짭조름함과 밍밍함 그 사이의 간극을 아주 잘 타는 솜씨가 있었다. 안주라지만 젓가락을 대는 순간 끝을 봐야 하는 그런 마법이 숨어 있었다. 어르신들은 막걸리를 한 잔 들이켜고 크 하고 난 후에 젓가락을 재빠르게 움직여 라면을 획득했다. 맛있었겠지. 집에서 따로 밥 달라 하지 않아도 되었다. 막걸리에 배가 차고 라면에 배가 불러오니까.


그러다 보면 어르신들은 세상 돌아가는 이야기를 하게 되고, 그러다 보면 정부를 욕하고, 그러다 보면 서로 응원하는 정치가나 정당에 대해서 큰 소리를 내고, 그러다 보면 곧장 싸움을 하게 되고, 그러다 보면 점빵 밖으로 나가서 서로 죽일 듯 노려보지만 주먹질을 할 만큼 용기는 없어서 노려만 보고 소리만 지르다가 주위에서 사람들이 말리면 그제야 앉아서 막걸리를 마시며 화해를 한다. 화해의 기념으로 점빵 할머니는 기가 막힌 라면을 끓여 온다. 기 승 전 결이 다 있는, 뭔가의 탄생, 성장, 소멸 과정을 한 번에 볼 수 있는 점빵의 풍경이었다.


그래서 어르신들이 없을 때 할머니 점빵에서 라면을 먹으면 그렇게 맛있었다. 적당히 꼬들꼬들한 면발과 국물에 배인 계란의 맛과 할머니 표 김치가 정말 맛있는 것이다. 위에서 말한 것처럼 짭조름함과 밍밍함 그 중간을 오고 가는 미묘한 맛을 잘 우려냈다. 그냥 맛있었다. 집에서 끓여 먹으면 이런 맛이 나지 않았다. 마치 분식집에서 끓여주는 라면처럼 특별한 맛이 있었다.


조깅을 하다가 그쪽으로 멀리 돌아서 가보니 이야 그 점빵이 아직도 있고 아직도 라면을 끓여주고 있고 아직도 어르신들이 테이블에 앉아서 막걸리를 마시고 있었다. 주위는 온통 엘지와 삼성 전자제품 판매 건물과 하이마트와 홈 플러스가 있는데 그 사이에 아직도 드르륵 미닫이 문으로 된 점빵이 있었다. 문틀이 나무에서 새시로 바뀌었지만. 할머니는 그때도 할머니인 것 같았는데 아직도 할머니였는데, 나의 기억이 뭔가 이상하겠지.


언젠가 거기에 앉아서 라면을 먹고 싶지만.

간식라면은 여전하고, 두루치기에 계란 후라이도 생겼네. 복사도 하는 모양이네.

점빵이름이 기묘하다. 간판에 라면이 당당하게 메뉴로 있다. 가게 저 안 쪽의 문은 나무틀이다. 저 안쪽은 방이자 주방.

주위는 온통 요즘 것들의 건물이지만 그 중간에 점빵은 단단하게 버티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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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로움에서 벗어나기 위해 친구들을 만나서 즐겁게 놀고, 누군가와 이야기를 하고, 여자와 잠을 잔다고 해서 외로움이 사라질까. 어차피 혼자가 되면 다시 외로워진다. 인간은 혼자 외로운 프로그래밍으로 되어 있다. 인간은 그렇다.


모든 인간이 그렇다고 생각하지만 그렇지 않아!라고 여기는 사람들도 있다. 그런 사람 대부분은 주위에 많은 사람들이 있고 그들과 활발한 교류를 하며 보낸다. 하지만 나 외롭지 안 자고 주위 사람들을 늘 만나지만 주위 사람들이 나 때문에 힘들어할지도 모른다. 인간 모두는 자기중심적이어서 타인도 나처럼 같이 어울려 지내면 행복할 것이라 여기지만 실은 그렇지 않은 경우도 있다.


인간은 외롭지 않게 여생을 보내고 싶어 결혼을 하지만 한 침대에 들어도 결국 잠은 혼자서 든다. 인간은 고독한 존재다. 고독에서 벗어날 수 없다. 티브이에서는 고독사에 대해서 다루지만 혼자서 홀로 죽는 것이 가족이 다 있지만 보살핌 없이 홀로 죽는 것보다 낫다.라고 생각한다. 결국 인간은 죽음 앞에서 진실로 고독한 존재가 된다.


화요일 배캠에서 철수는 오늘 시간의 맨트다.


어떤 이는 바깥에 나가 사람들을 만나고 오면 생기와 활기가 넘친다. 다른 사람들로부터 기를 받아서 그렇게 된다. 반면 어떤 이는 바깥에 나가 사람들을 만나고 오면 지친 나머지 아무것도 못한다. 다른 사람들에게 기를 빨려서 그렇다고 한다.


내향성이 강한 사람은 자주 사람들을 만나는 걸 기피한다. 친한 친구들 만나서 즐거운 시간을 갔는 것도 횟수 조절에 나선다. 그에게 유익한 것은 친구보다 혼자 시간을 보내는 것. 아무리 허물없고 아무리 좋은 사람이라도 내내 함께 하는 시간은 그에게 부담이 된다. 그에게 만남의 시간은 짧고 진한 것이어야 한다.


나는 혼자 있는 것이 좋다. 나는 고독만큼 같이 지내기에 좋은 벗을 아직 찾아내지 못했다. 헨리 데이비드 소로의 말이다. 그는 방 안에 혼자 있을 때보다 밖에 나가 사람들 사이를 돌아다닐 때 더 외롭다는 사람이었다. 사람이란 근본적으로 외로운 존재여서 혼자 있거나 둘이 있거나 여럿이서 있거나 외롭기는 마찬가지. 그러니까 외로움을 벌려고 사람들을 만나는 건 잘못된 선택이란다. 사람들을 만나 기분전환을 시도해도 근본이 달라지지는 않는다.


철수는 오늘 고독에서 벗어나기보다 오히려 고독을 누리려는 사람들을 위해 시 한 편을 골랐다. 김현승의 고독의 이유.


고독은 정직하다

고독은 신을 만들지 않고

고독은 무한의 누룩으로

부풀지 않는다


고독은 자유다

고독은 군중 속에 갇히지 않고

고독은 군중의 술을 마시지도 않는다


고독은 마침내 목적이다

고독은 고독하지 않은 사람에게도

고독은 목적 밖의 목적이다

고독은 목적 위의 목적이다


세상에는 절대 신까지 등지면서 고독을 선택하는 이들이 있다. 그런 사람들에게는 평범한 사교의 값어치는 너무나 싸다. 그런 사람들에게는 누군가를 너무 자주 만나는 바람에 서로를 위한 새로운 가치를 획득하지 못하는 것이 안타까운 일이다. 그런 사람들에게는 사람과 사람사이 조금의 틈도 두지 않은 채 서로의 길을 막기도 하고 서로에게 걸려 넘어지기도 하는 친교가 심히 부담이 된다.


시인은 시를 통해 고독을 잘 사용하는 방법을 제시하고 있다. 

강변을 매일 달리다 보면 늘 만나는 것이 달과 별이다. 달과 별은 이렇게 추운 계절에도 폭염이 기승을 부리는 여름에도 늘 외롭게 하늘에 떠 있다.


달과 별은 방향과 거리가 조금 달라지는 경우는 있지만 서로는 외롭게 하늘에 떠 있다.


길고양이 녀석도 홀로 외로이 나와서 낚시꾼들을 기다리고 있지만 이 날은 춥기도 춥고 최악의 초미세먼지로 인해 낚시를 하러 나온 사람들이 아무도 없었다. 고양이 녀석 아무리 들어가라고 해도 나무 밑에 웅크리고 앉아 누군가를 애타게 기다리고 있다. 하지만 길고양이 녀석은 안다. 고독은 자유라는 것을.


달이 고독할까 봐 인공조명이 달을 비쳐주지만 달에게 가 닿지 않는다.


고독하고 어두운 하늘에

하얀 밤이 외롭게 내려오면

우리의 대화는 시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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짜글이는 끓이는 나만의 방식이 있는데, 고기는 썩 맛이 좋은 부위가 아니어도 상관없다. 조깅을 하고 돌아오는 길에 식육점 같은 곳에서는 뒷고기도 파는데, 아주 많은 양이 만원으로 이 정도면 한 세 번은 나눠 먹을 수 있는 분량이다.


짜글이를 끓일 때에는 고기를 버터에 굽는다. 그리고 거의 끝이다. 그 안에 신김치 내지는 신무채썰이를 넣는다. 신맛이 버터와 만나서 기분 좋은 맛을 낸다. 그리고 냉장고에 있는 뭐 있는 거 없는 거, 오래된 거 다 집어넣으면 된다. 요컨대 냉동실에 꽁꽁 얼어있던 굴 같은 거. 냉동된 굴은 해동시킨 다음에 넣으면 좋지만 상관없다.


뒷고기 같은 질이 좀 떨어지는 고기는 질기기 때문에 오래 자글자글 끓여준다. 굴도 오랫동안 같이 넣어서 끓여주면 천천히 해동됨과 동시에 짜글이화 된다. 사진에 보이는 국물은 물을 따로 붓지 않고 신김치국물이다. 또 냉동실에 딱딱한 떡국 떡이 있다면 넣어도 좋다. 이런 떡 같은 것이나 짜글이와 곁들여 먹는 쌀밥은 정제된 탄수화물이라 살이 찌는 걱정을 한다면 아예 짜글이 세계에 발을 들여놓지 말아야 한다.


버터가 많이 들어가면 맛이 좋다. 나는 유통기한이 2달이 지난 버터를 왕창 넣었다. 아직 살아 있으니 아무 이상이 없는 걸로. 신김치와 신김치국물과 잘 섞여서 미묘하지만 아주 좋은 맛을 낸다. 뭐 다른 양념을 넣을 필요가 없다. 간 마늘이니 간장이나 맛술, 설탕이니 고추장이니 이런 재료를 넣지 않아도 된다. 이미 신김치에 양념이 다 되어 있고 버터가 들어간다. 그리고 다 되어 갈 때쯤에 고춧가루를 좀 쏠쏠 뿌리면 되는데, 나는 그게 베트남 고춧가루라는 걸 몰랐다.


이게, 이 베트남 고춧가루는 서서히 맵기가 올라오는 게 아니라 한 번 훅으로 치고 빠지는 그런 매운맛이었다. 나 같은 맵찔이가 먹기에는 맵지만 매운대로 먹게 된다. 먹고 죽자! 고기는 그렇게 질기지 않고, 잘 저으면 저 안에 굴이 많이 들어있다. 그러니까 짜글이의 맛에 굴의 그 맛, 그게 느껴지면서 버터향이 나면서 신김치의 국물맛이 고기에 가득 배어있다. 바다의 맛과 가축의 맛이 동시에 난단 말이다. 치즈도 하나 넣으면 좋다. 두 개? 좋다, 두 개 넣어도 좋다.


이런 짜글이는 캠핑이나 자취할 때 해주면 사람들에게 인기가 좋다. 배고프고 술 취했는데 다 맛있지. 야외에서 산 바람이 불고 개울의 물소리가 들리고 소주와 맥주가 1대 1 비율로 체내에 흡수되어서 시를 쓰면 백석이 되는 것만 같고, 주먹을 뻗으면 샤잠이 되어 저 하늘로 날아가버릴 것만 같은 기분으로 똘똘 뭉쳐 있다.


모두가 기분 좋은 헤롱헤롱 메롱 상태에서 먹는 짜글이는 맛있을 수밖에 없다. 마지막에 물을 확 붓고 라면을 끓이면 게임 오버다. 캠핑의 꽃은 자연을 감상하기보다 먹고 죽자가 되어야 꽃이 화악 피어난다. 물론 사람들은 짜글이의 맛있음을 잊어버리고 마지막에 먹은 짜글이 국물에 물을 부어 끓인 라면을 최고로 치지만.


요즘처럼 날이 추운 날에 후딱 해 먹기 괜찮다. 근래에는 술을 마시지 않고 있지만 뜨겁고 매운 짜글이에 시원한 맥주 한 잔이면 하루의 피곤을 발로 뻥 차버릴 정도로 날려버리지 않을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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