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는 집으로 오자마자 라면을 하나 끓여 먹었다. 추운데 오래 있었더니 머리까지 띵 하면서 마치 기계인간이 된 것처럼 몸이 한 번 분해되었다가 누군가가 볼트를 몇 개 빼먹고 다시 조립해 놓은 것 같았다. 땅이 얼어서 너무나 딱딱했고 잘 얼지 않은 개울까지 꽁꽁 얼어버렸다.


이런 날 위로가 되어주는 건 다름 아닌 라면이다. 신김치를 넣고, 떡국 떡도 넣고 치즈까지 올려 보글보글 끓였다. 그리고 달려들어 호로로록 먹었다. 아 위로 흘러들어 가는 이 짭조름함이란. 비싼 음식보다 라면이 몸을 따뜻하게 데워주었다.


나는 라면을 혼자 언제 처음 끓여 먹었을까? 하고 생각해 보면 분명 초등학생 때였던 것 같은데 기억이 없다. 분명 고학년이 아닌 3학년이나 4학년 그 언저리에 끓여 먹었을 텐데 기억이 없다. 주로 기억 속에는 컵라면을 먹었던 기억만 있다. 컵라면은 맛있게 자주 먹었거든.


5학년 때 겨울방학이 되기 전에 점심시간에 컵라면을 먹을라치면 꼭 담임이 와서 한 젓가락씩 먹었다. 꼭 그랬다. 아줌마 선생님으로 우리들은 밉상 선생님이라 불렀다. 자기 아들내미는 끔찍이도 여기면서 반 아이들에게는 애정을 잘 쏟지 않는, 마음에 들지 않으면 바로 대놓고 티를 내는 그런 담임이었다.


우리는 학급위원을 성적순으로 뽑았는데 어쩌다가 5학년에 내가 학급위원이 되었다. 나는 공부를 참 못했는데, 그래서 그런지 4학년 때 담임이 나를 집에 보내지 않고 나머지 공부를 시켰다. 나머지 공부를 하면 창피했다. 나 공부를 못한다! 하고 알리는 거였으니까. 과외처럼 담임이 교실에 딱 앉아서 성적이 바닥을 치는 아이들 몇몇을 일일이 처음부터 다시 가르쳤다. 거기에 내가 속해 있었다.


지금 생각해 보면 4학년 담임은 대단한 열정이었다. 딱히 집에 일찍 가고 싶은 생각은 없었지만 공부는 정말 죽으라 하기 싫었다. 그러나 4학년 담임은 무서운 얼굴을 하고 나머지 공부를 시켰다. 그 담임 샘 이름도 아직 기억이 난다. 성선숙 담임 샘. 말도 무섭게 하고 잘 웃지도 않았다.


그러나 나머지 공부가 끝나면 무표정으로 무뚝뚝하게 우리에게 컵라면을 사주고 뜨거운 물도 일일이 부어주었다. 그리고 수고했다며 맛있게 먹고 가라고 했다. 나를 비롯해 나머지 공부하는 아이들은 컵라면을 호로록 맛있게 먹고 집으로 갔다. 그 짓을 반년 가까이 하니 4학년을 벗어날 때 즘에는 성적이 상위권이 되었다. 나도 놀랐고 담임도 놀랐다.


그리하여 5학년에 이름표 밑에 학급위원이 새겨진 이름표를 하나 더 달게 되었다. 4학년 때 나의 성적을 잘 알고 있던 친구들의 방황하는 눈동자를 나는 봤다. 하지만 학급위원이 되면 아이들에게 싫은 소리를 해야 한다는 걸 학급위원이 되기 전에는 몰랐다. 또 권력을 거머쥐면 과자다 뭐다 해서 친하지 않은 아이들이 찾아오는 것도 몰랐고 무엇보다 담임에게 뭔가를 보고해야 하다는 것이 별로였다.


말이 좋아 보고지, 그저 꼰지르는 것이다. 그래서 2학기 때에는 학급위원을 하지 않는다고 담임에게 말했다. 그때 담임의 빈정거림을 들었다. 어린이였는데도, 어린이의 시각으로 보는 5학년 때 담임은 별난 사람이었다. 4학년 담임은 무뚝뚝하고 무표정에 무서웠지만 어떻게든 공부를 시키려 했고 나를 비롯한 나머지 공부하는 아이들에게 컵라면도 사주었다. 그것도 매 번.


5학년 담임은 생글생글 웃는 얼굴에 말도 살갑게 했지만 마음에 들지 않는 아이들에게는 빈정거렸고 반 아이들에게 딱히 애정을 갖고 있는 것처럼 보이지는 않았다. 하지만 또 학급위원 애들에게는 애정을 쏟았다. 그리고 교무실에서 학급위원들에게 아이들에 대한 잘못, 같은 일들을 보고 받았다. 나는 학급위원을 그만둔다고 하자 내가 마음에 들지 않았던 모양이었다.


여름방학에 탐구생활 숙제로 나는 다리만 한 아주 큰 공룡을 만들어 갔다. 목재로 뼈대를 만들고(이건 아버지가 도와주었다) 찰흙으로 살을 붙여 조각칼로 피부질감을 표현하고 물감으로 채색하여 갔더니 지 아들내미 숙제도 이렇게 해달라고 해서 4학년 때와 다르게 수업 후에 남아서 그 짓을 몇 날 며칠 또 했다.


무엇보다 점심시간에 컵라면을 먹으면 꼭 한 젓가락씩 가져갔다. 나에게는 장난감이 많았는데 지 아들내미 준다며 가지고 놀지 않는 장난감을 달라고 우리 엄마에게 말해서 많이도 들고 갔고, 아버지는 담임의 부탁으로 교실의 커튼을 전부 갈아주기도 했다.


나는 5학년 때 클럽활동을 했는데 클럽활동 담당 선생님은 아주 젊었고 우리에게 팝을 많이 들려주었고 클럽활동 교실에서 담당 선생님이 버너에 라면도 끓여 주었다. 이렇게 올망졸망 모여 앉아서 라면을 먹으면 참 맛있다. 나는 클럽활동 반에서 맛있게 라면을 먹었다. 겨울이었고 교실 안은 따뜻했고 옆에는 좋아하는 사람들만 있었다. 창문을 투과한 빛을 받아서 안온감이 들었고, 라면을 뺐어 먹지 않는 담임이 없어서 좋았고, 팝을 들려주던 클럽 담당 선생님이 좋았고, 라면을 호로록 불어 먹던 그 애가 있어서 좋았다.


클럽활동을 같이 하던 그 애와의 추억 https://brunch.co.kr/@drillmasteer/3382


3일 전에는 조금 일찍 조깅을 하러 나왔다가 너무 추워서 강변을 달리기를 포기하고 다른 곳을 걷다시피 하면서 돌아다녔다. 그러다가 오래된 초등학교 앞까지 갔는데 오래된 문방구가 학교 정문 앞에 있고 거기 입구에, 그 추운 밖에서 그냥 바닥에 앉아서 컵라면을 먹고 있는 한 초딩을 보았다. 이 초딩은 마치 자기 방처럼 철퍼덕 퍼질러 앉아서 컵라면을 먹고 있는데 추운 것과는 참 거리가 멀어 보였다.


그때 집에서 전화가 왔는지 바지 주머니 안에 있는 폰을 꺼내는데 몸이 뚱뚱해서 앉아있던 몸을 비틀어야 했다. 그리고 엄마에게 알았어! 알겠다고! 하나만 먹는다니까!라고 하는 걸 보니 이미 엄마는 아들이 방과 후에 문방구에서 컵라면을 먹는다는 걸 알고 있던 모양이다.


그 초딩이 완컵하니 문을 열고 주인아저씨가 나와서 늘 하는 것처럼 재빠르게 초딩이 먹은 컵라면을 치우고 바닥을 청소했다. 또 늘 그렇다는 듯 그 초딩은 또 다른 컵라면에 물을 부어 밖으로 나와서 옷이 더러워지든 말든 바닥에 퍼질러 앉아서 다시 컵라면을 먹었다. 내가 기억하는 라면의 추억과는 너무나 먼 초딩의 컵라면 먹방이더라.


라면 가격도 유행에 힘입어 또 오르겠지. 나처럼 라면 좋아하는 사람에게 라면 가격 인상은 참 슬픈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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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으로 들어가기 전 우편함을 확인하지 않는 사람은 거의 없을 거야 연진아.라고 나도 유행에 한 번 동참.


우편함에 반가운 우편물이 있을 거라는 기대는 이제 누구도 하지 않을 것이다. 반가운 소식은 대체로 이메일로 받거나 휴대전화 메시지나 카톡으로 받을 뿐 편지 형식으로 받는 사람은 이제 거의 없다. 나는 매년 크리스마스 카드를 만들어 우편으로 보내기에 아마 나 같은 아날로그 적인 인간 정도를 제외하면 아무도 없지 싶다.


우편함에 때가 되면 와서 꽂히는 우편물은 반가운 소식과는 거리가 멀다. 주로 세금납부라는 지로 용지이기 때문이다. 게다가 세금이 올해 들어 전부 올라서 가스비, 전기세가 작년보다 많이 나오게 되었다. 요즘 같은 한파에 난방을 안 할 수도 없고 그렇다고 마음껏 켜고 지낼 수도 없는, 이상한 세계에 와 있다. 추장관은 서민들을 위해, 우리들을 위해, 서민인 나를 위해 세금을 100% 올리지 않고 70%만 올렸다는데, 하하하.


우편함에 꽂히는 반갑지 않은 세금 용지마저도 대부분의 사람들은 이메일이나 휴대전화로 확인한다. 늦은 밤 집으로 올라가는 아파트 입구에서 우편함을 확인하는데 우편함만으로도 저 집에는 누가 살고 있을까 하며 궁금해지는 경우가 있다.


1106호는 무슨 일일까. 어째서 우편물이 우편함에서 빠져나가지 않고 저리도 가득 채워져 있을까. 엘리베이터가 내려와서 내가 타기를 바라지만 타지 않고 한참을 서서 저 우편함을 쳐다보았다. 세금 영수증을 지로 용지로 받는 사람이라면 나이가 많은 사람일 확률이 높다. 그들은 빠르게 변해가는 세상에 적응하지 못했다. 휴대폰으로, 메일로 날아오는 편리함은 그들에게는 거부감으로 변했다. 그들은 살갑게 얼굴을 부비고 싶지만 이젠 그 방법을 잊어버렸을지도 모를 사람들이다. 손으로 들고 눈으로 눈으로 보는 세금확인이 제일 좋은 방법이다.


매 달 세금납부 우편물이 집으로 오는 날짜는 거의 정확하다. 1106호 사람은 내려가서 운동 겸 빼왔을 것이다. 그러나 어느 날 모두에게 다가오는 무심한 그것이 하늘에서 자신에게도 찾아왔는지도 모른다. 그런 생각에 사로 잡히면 우편물 가득한 우편함을 한참 서서 본다.


주차장에는 핸들을 돌려 바퀴가 비틀어져 주차된 차가 그 모습 그대로 거의 1년 동안 미동 없이 주차되어 있다. 몇 달 동안은 주인이 어디 여행이라도 갔나? 같은 생각이었지만 지금은 이제 이 자동차의 주인은 아마 없어졌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사로잡힌다. 자동차라는 것은 생명이 없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이 생명이 붙어있는 생명체처럼 대하는 물품이다. 애정을 가진다, 자신의 자동차에는. 그러나 자동차를 주차장에 핸들을 돌려 바퀴를 약간 틀어 놓고 어딘가 도망가지는 않았을 것이다.


자동차는 오늘도 주인을 기다리지만 주인은 어제와 마찬가지로 나타나지 않았다. 내일도 나타나지 않을 것이다. 저 우편함의 우편물도 언젠가는 없어지겠지. 그러나 누가 가져갈까. 도시라는 건 촘촘한 전기회로 같아서 아주 복잡하고 지능적으로 연결이 되어 있을 것 같지만 그 회로를 타고 다니는 길은 개개인 각각이기 때문에 서로 만나거나 부딪칠 일이 없다. 달동네나 시골 같았으면 두 달만 우편물이 우편함에 꽂혀 있으면 동네 사람들이 이 집에 뭔 일 있나? 하며 안부를 물었을 것이다.


관심이 간섭이 된 지금은 촘촘한 도시 속에서 고독하고 외롭게 보내는 사람들이 더 많아졌다. 강변 공원에 사람들은 분명히 많이 있으나 그들은 서로에게 간섭하기를 꺼려한다. 어제는 조깅을 하다가 중간에서 몸을 풀고 있으니 줄을 놓쳐 강아지가 나에게 꼬리를 세차게 흔들며 와서 안기고 얼굴을 핥았다. 주인은 연신 미안하다고 했지만 나는 강아지를 너무 반갑게 맞이했다. 강아지는 어디 축축한 곳에 뒹굴었던지 온몸과 발바닥에 진흙이 묻어서 주인은 아주 난처해했지만 나는 상관없었다. 세상 맑은 눈으로 혀를 내밀고 나에게 와서 안기고 꼬리를 흔드는데 저리 가,라고 할 수는 없었다.


그럼에도 1106호에 간섭을 하고 싶은 오늘, 오늘은 우편물이 사라졌기를 바라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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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tella.K 2023-01-26 14:3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글쎄요. 좀 으시시하긴 하네요.
일정 기간 미동도 없으면 시에서 영장 발부하고 들어가지 않나요?
요즘엔 고독사나 행불도 많은 시대라.
나중에 좀 알려주세요.

교관 2023-02-06 12:06   좋아요 0 | URL
ㅎㅎ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존재한다는 걸 느낄 때는 니체의 글을 볼 때보다 미스터 빅의 오래된 노래를 들을 때가 나는 존재한다고 느낀다. 틴에이저, 십 대에 덕질의 문을 열게 한 밴드 중 한 밴드이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친구도 몇 없었지만 시끄러운 헤비메탈을 듣고 난 뒤부터는 더욱더 친구들이 없었다. 그래도 취미가 비슷한 인간들은 어디에나 꼭 있기 마련이라 먼지 같은 애들과 메탈밴드들의 소식을 주고받으며 이야기를 하며 보냈던 추억 때문인지 오래된 노래를 들으면 오래된 책을 읽을 때보다 존재라는 것에 좀 더 밀착되는 것 같다. 그래서 노래는 사라지지 않는구나, 없어질 수 없구나 같은 쓸데없는 생각을 한다.


사실 스웨이드, 엑스제팬의 히데, 라디오헤드나 곤센로즈, 메가데스, 본조비, 메탈리카가 나의 의식 한 구석에 뿌리를 내리고 단단하게 자리를 차지하고 있어서 여타 포이즌, 뎀 양키즈, 파이어 하우스나 미스터 빅이 의식의 자리에 들어오기는 어려웠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미스터 빅의 말랑한 곡들이 아닌 가차가 폭주하는 듯한 노래들은 내내 듣고 싶어서 앨범을 마구마구 돌려서 들었다. 요컨대 데디 부라더 러버 리럴 보이 같은 곡은 잔상처럼 내내 따라다녔다.


무엇보다 케이트 블란쳇을 떠올리게 하는 소녀소년한 얼굴의 애릭 마틴이 내지를 때 나오는 그 허어스이키한 보이스는 넘나 매력적이었다. 게다가 드릴 공수 연주를 선보였다. 우리끼리는 꽤나 회자되는 이야기였다.


이 음악이라는 게 너무나 기묘해서 술을 마시고(술 안 마신 지 너무 오래되었지만) 미스터 빅의 음악을 듣고 있으면 몸이 붕 떠서 엑설런트 어드벤처처럼 과거로 기가 막히게 도달해서 미스터 빅의 음악을 들으며 몸이 부서져라 폴더폰처럼 반으로 접었다 폈다 하고 있는 주옥같은 상황이 펼쳐진다.


기묘한 일이지만 미스터 빅은 여자애들에게도 인기가 많았다. 잘생긴 존 본조비보다 더 존잘인 포이즌보다 미스터 빅이 인기가 좋았다. 당연하게도 애릭 마틴의 얼굴과 서타일 때문이었다. 물론 모든 여자들에게 인기가 있었다는 건 아니겠지만 말이다.


이런 스타일이 요즘에 다시 유행하는 거 같다. 뉴진스가 일단 온통 그 붐에 불을 붙였다. 일전에 본 겨울연가의 준땅이가 민형이 되었을 때 그 청바지를 요즘 여기저기서 입고 다니데.


미스터 빅 같은 밴드를 LA 메탈이라고 하는데 헤비메탈보다 좀 말랑말랑하다고 해서 편애를 받았지만 노래들이 아주 좋다. 노래가 좋지 않은데 LA 메탈이 인기가 많을 수가 있나.


그러니까 미스터 빅 같은 밴드는 강력한 헤비 한 사운드뿐만 아니라 팝 발라드까지 다 어울리는 밴드다. 유튜브를 찾아보면 무대 매너까지 굉장히 좋다네. 추억팔이는 존재를 느낄 수 있어서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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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진동 집에는 친구 허준, 정근양이 거의 매일 놀러 오다시피 하였다. 백석을 포함해 이 세 사람이 늘 붙어 다니는 걸 보고 자야는 이렇게 말했다.


"세 분은 さんばがらす 같아요"


이 말은 세 마리의 까마귀, 즉 '삼우오'를 일본 말로 표현한 것인데, 매우 절친한 친구 삼총사를 가리키는 말이었다. 청진동 집에는 함대훈과 아동문학가 방정환, 영화감독 박기채도 가끔씩 들렀다. 이 무렵 이상은 종로 우미관 뒤편에서 기생 금홍과 살림을 차려 동거를 하고 있었다. 자야는 내 사랑 백석에서 남신주의 유동 박시봉방에 나오는 아내와 같이 갈던 집이 바로 청진동 집이라고 회고했다. 하지만 백석에게 자야는 아내보다 연인에 가까운 사람이었다 - 내 사랑 백석 중에서


당시에 백석은 방응모의 지원을 받아 이강섭, 문동표, 정근양 등과 함께 당시 일본에서 가장 학비가 비싸다는 아오야마가쿠인 영어 사범과에 다닐 수가 있었다. 방응모는 일제강점기 조선일보 사장이었다. 9대 조선일보 사주를 역임했다. 친일 반민족행위자로 알려져 있다. 조선일보와 동아일보가 처음에는 만해에게 독립자금을 대주는 등 반일이었는데 일본의 총기사업에 참여하면서 친일언론사가 되었다고 나는 알고 있는데 확실하지 않으니 궁금한 사람은 찾아보기 바람.


자야가 마지막 순간까지 쓴 에세이 ‘내 사랑 백석’은 소설에 가까운 형식이다. 두 사람의 사랑이 절절하며 애틋하고 몹시 사랑스럽다. 백석은 자야를 사랑할 때 빛나는 시가 나왔던 것 같다. 백석이 좋아한 릴케 역시 그랬다. 릴케도 연인 루(살로메)를 사랑했을 때 가장 찬란한 시가 나왔다. 릴케는 루가 아니면 죽음을 선택할 정도로 루를 사랑했다. 루를 사랑하려면 경쟁 상대가 만만찮았다. 신을 죽여 버린 니체도, 정신분석학의 대가 프로이트까지. 물론 프로이트는 릴케와 헤어진 후 만났지만. 루는 릴케보다 14살 누나였다.


보들레르 역시 흑백혼혈 잔 뒤발을 사랑할 때 ‘악의 꽃’ 중 ‘레테’를 써냈다. 이 시는 사람을 중독시켜 죽음으로 이끈다 하여 프랑스에서 금지시키시도 했다. 보들레르는 벌금형을 선고받고 시 6편을 삭제하게 된다. 보들레르의 시는 현재의 20대 문학도들까지 가장 사랑하는 시로 칭송받고 있다. 단테 역시 베아트리체를 만났을 때, 또는 그녀와 이야기를 하거나 그녀를 떠올릴 때 찬란한 글이 나왔다.


사랑이란 이토록 위대하고 위대하고 정말 위대하여라. 였다. 사랑은 한 단어로 충분한데 한 문장으로 모자라며 한 권의 책으로는 절대 설명할 수 없는 기묘하고 이상한 관념인 것이다. 백석과 자야는 이 기묘하고 이상한 감정의 사랑을 깊고 깊게 했다.


자야는 이 에세이를 다 쓰고 난 후 죽음을 맞이했다. 자야는 대원각을 법정에게 조건 없이 건네준다. 무소유를 읽고 감명받은 자야는 법정을 찾아가 대원각 요정의 터 7천 평과 40여 채의 건물을 시주하니 절을 세워달라고 했다. 법정은 거절했으나, 10년이 지난 후 1995년에 와서 결국 자야의 간청을 받아들여 대한불교조계종 송광사의 말사로 등록하여 길상사를 세운다. 이 때문에 또 많은 사람들이 법정을 무소유를 주장하더니 돈을 받아 처먹었다며 욕을 하기도 했다. 대원각은 길상사가 되었고 지금 많은 사람들에게 개방이 되었다. 자야는 권번 출신으로 16살에 진향이라는 이름의 기생이 되었다. 자야는 문학에 남다른 재능을 보였고 대원각의 권번출신들을 전부 공부를 시킨 것으로도 유명하다.


말년에 자야의 백석과의 사랑 이야기를 듣고 백석 전문가들 중에는 그 말이 사실이 아니라고 하는 사람들도 있었다. 백석 연구가 송준은 살아생전 김영한(김자야의 본명) 여사를 인터뷰했는데 백석이 유명해지니 관계를 인위적으로 만들기 위해 그런 것이 아닐까? 하고 추측을 했다. 또 백석 전문가 이자 영남대 교수 이동순은 백색과 김영한의 사랑은 실제가 아니며, 조작되고 윤색된 이야기라고 기고했다.


시를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백석은 누구나 다 알고 있고, 백석과 자야의 이야기도 여기저기서 보고 들어서 알고 있는 사람도 많다. 물론 백석과의 관계는 백 퍼센트 자야의 주장이고 객관적인 근거는 없다. 지금 현재 이 모든 것들을 받아들이는 건 순전히 독자의 몫이다. 우리는 늘 선택의 문턱에서 고민을 한다. 하지만 선택은 해야 하고 거기에 따라오는 결과는 자신의 몫이자 감당해야 한다. 어떻든 소설만큼 재미있는 에세이 ‘내 사랑 백석’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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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치 소설 속 무진에 들어온 기분이었다. 여귀가 뿜어내 놓은 듯한 안개가 가득했다. 나는 안개라 생각하고 싶지만 이는 연무에 가깝지 않을까 싶다. 미세먼지가 연일 많았고, 오전이 아니라 밤이며 온전한 수증기 보다 연기나 먼지 같은 미세한 입자가 가득 한 연무에 가깝다고 생각이 들었다.

게다가 연무가 낀 거리가 딱 1킬로미터 정도밖에 되지 않았다. 거기서 벗어나면 그저 일반적인 밤의 세계였다. 안개라면 좀 더 확장된 거리, 좀 더 이른 오전이나, 먼지가 많지 않을 때 끼지 않을까. 그런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연무보다는 안개라는 말이 훨씬 좋기에 안개라고 부르고 싶다. 강변을 조깅하는데 지금까지 살면서 이렇게 안개가 가득한 광경은 처음이었다. 신기했다. 사진으로는 표현되지 못하지만 평소에 보이는 거리가 전혀 보이지 않았다.

안으로, 안으로 계속 들어가면 꼭 평행하는 다른 세계로 빠져버릴 것만 같은 기분이었다. 거의 매일 이 코스를 일정한 시간 달리지만 앞이 보이지 않을 정도의 안개는 처음이었다. 안갯속을 달린다는 건 구름 위를 걷는 기분과 비슷할지도 모른다. 안갯속에 수증기가 가득 배어 있어서 숨을 쉬면 폐 속으로 안개가 가득가득 들어왔다.


폐는 안개를 마시고 새로운 숨을 내뿜는다. 그건 시간이었다. 나는 시간을 내뿜고 있는 것이다. 빛으로 색이 바래듯 시간으로 기억이 바랜다. 그럴 수밖에 없었노라고. 시간이란 약의 성분은 망각과 포기인지도 몰라. 얼마나 아팠는지 잊어버리고, 흉터는 어쩔 수 없다고 생각하는 것 – 황경신의 말처럼 나의 시간은 이렇게 안개처럼 뿌옇게 바래져 있다.

달리 말하자면 나는 시간과 함께 뿌옇게 되어 가고 있는 것이다. 내 몸이 점점 뿌옇게 변할수록 나는 좀 더 나다워지는 것이다. 뿌옇지만, 흐릿하지만 흥미로운 내가 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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