좃니? 그게 뭐야? 좋니라고. 좋니야? 아니, 존 리,라고. 나의 이름이야. 외국 이름. 좃니가 아니고, 좋니도 아니고. 존 리.라고. 그런 이야기를 들으며 큭큭 거렸다.


반나절을 라디오를 켜 놓고 있는데, 라디오가 아날로그 라디오라 프로그램 중에 몇 개의 프로그램은 지방 방송이 나온다. 지방 방송은 특색이 있다. 그런데 특색은 둘째치고 언젠가부터 어? 뭐야? 하게 되는 건 사연이 오면 디제이가 전부 괜찮다, 노력해 보자, 성공, 책임, 포기하지 마라, 비전, 같은 말을 많이 한다.


일본 영화 중에 ‘스마트폰을 떨어트렸을 뿐인데 2’가 있다. 1편은 키타카와 케이코의 주연으로 현재 한국에서 리메이크되어서 천우희 주연으로 나왔다. 그 2편이 있는데 보면 속이 터진다. 괜찮다, 사과하자, 엄마에게 학대받고 자란 주인공에게 여자 친구가 이제 엄마를 용서하자, 그러면 안 된다, 같은 대사로 계속 답답하기만 하다. 1편에는 키타카와 케이코가 주인공이기라도 했지 이건 뭐.


더 글로리에서 동은이 복수를 한다고 했을 때 간호선생님처럼 꼭 복수하라고 말하는 사람이 지금은 필요하다. 2시의 데이트에서 안영미는 사연을 보낸 사람과 밀고 당기기를 한다. 뭐 좋은 말만 하지 않는다. 그런데 지방 라디오 디제이는 계속 희망고문만 하는 맨트를 한다. 안 그래도 지방특색이 짙어서 그게 장단점이지만 왜 요즘에 90년대 방송을 하는지 모르겠다. 그래서 그런지 몇 년째 유튜브 실시간 라디오 방송을 시청하는 사람은 15명이 넘지 않는다.


라디오 전체를 통틀어 불만은 자본주의에 너무 물이 들었다는 것이다. 사연을 무료로 받는 어플이나 유튜브 댓글보다는 짧은 문자 50원, 긴 문자 100원 하는 유료 문자로 유도를 많이 한다는 것이다. 어떤 코너에서는 유료 문자만 받는다. 사람들에게 50원, 100원씩 받는 돈이 어마어마할 텐데 도대체 이렇게 매일, 매시간 엄청나게 받은 문자비용은 어디로 흘러가는 것일까. 이런 부분에 가장 부정적이었던 배캠의 배철수 형님도 아마 자본주의에 진 모양이다. 그래도 짧은 문자만 보내라, 100원짜리는 보낼 필요가 없다고 하는 아마도 유일한 디제이가 아닐까 싶다.


옛날에 절대적으로 좋은 것들이 근래에 들어서 그렇지 않은 것으로 바뀌기도 한다. 라디오는 조건 없이 좋아했는데 내가 느끼기에 편파적으로 가수의 노래를 자주 틀어준다던가, 특히 그 가수의 노래가 앞의 라디오에서도 나오고, 뒤에서도 나온다면 라디오도 호러블 하게 느껴진다. 가요만 틀어준다고 해도 얼마나 많은 가요가 있는데 밀어주는 가수의 노래가 일주일 동안 여러 번 나온다는 건 아무래도 라디오가 미워 보인다.



그래, ‘팬아저’에 대해서 이야기해 보자. 20대 커플. 라디오에 ‘팬아저’가 나왔다. 남자 친구가 그게 뭐지? 그러자 여자 친구가 그것도 몰라? 차은우는 팬아저.라고 여자 친구가 말했다. 남자 친구가 뭐야? 그게? 응, 차은우는 팬은 아니지만 저장. 너 차은우 팬은 아니야? 응, 차은우는 뭔가 사람 같지 않아. 너무 잘 생겨서 별로야. 그렇지만 사진은 저장하고 싶어. 헐.



어제 곽상도 아들의 50억 원이 무죄라고 나왔는데 역시 법은 서민들, 가난한 자, 국민들보다는 지위가 높은 사람, 돈이 많은 사람, 그래서 실력 있는 변호사를 둔 자들을 위한 제도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50억 무죄, 이걸 받아들일 사람이 몇 이나 있을까. 월급이 280만 원 정도라는데 퇴직금으로 50억을 받으려면 뭐야? 계산도 되지 않는다. 몇 년을 일을 해야 할까. 아픈 것 때문에 그렇다는데 이석증이다. 이석증 걸리면 생활이 불편하지. 하지만 보통 2주 정도 치료를 받으면 낫는다. 이게 나라다. 권나라 보고 싶네. 나의 아저씨에서 그 맹하던 권나라가 행복했으면.


퇴직금 50억 받는 사람이 있는데 나는 고작 라면에 위로를 받는다. 어째서 나는 라면 같은 것에서 위로를 받는 것일까. 왜 이렇게 하찮은 것에서 위로를 받을까. 나의 사랑 안성탕면 한 묶음 가격이 올랐다. 천삼백얼마에서 천오백 원이 넘었다. 나는 고작 몇 백 원에 짜증이 나고 열받는다. 특히 50억 무죄 뉴스를 보고 난 후라 나 자신이 너무 초라하게 느껴진다.


초라하지 않으려고 오늘은 라면에 김치도 넣어서 같이 끓였다. 계란도 바로 깨트려 넣지 않고 스크램블을 만들어서 넣었다. 초라해지지 말자. 라면을 한 젓가락 먹었다. 아 정말 맛있다. 하지만 초라하다는 생각은 머물러서 떠나지 않는다.


나 예전에 2011년에 일본에 대지진이 일어났을 때 십만 원을 기부했다. 이번에 튀르키예 사태에 기부하고 싶어도 돈이 없다. 이번 코로나 사태를 겪으면서 15년 동안 해외아동 기부를 하던 것도 끊어야 했다. 15년 동안 초반에 기부했던 아이는 훌쩍 커버려서 자신이 알아서 생활을 할 수 있는 나이가 되었고 다음 아이에게 넘어갔는데 중단해야 했다. 전화를 해서 사정을 이야기하고 중단을 하는데 나의 전화번호를 말하는데 전화번호가 맞지 않았는데 예전 011로 되어 있었다.


아무튼 초라한 인생이 되었다. 나를 위로해 주는 건 초라하게 보이는 라면이다. 얼른 한 그릇 후딱 먹고 글을 쓰자. 글을 쓰는 동안에는 아무것도 생각하지 않을 수 있다. 그 중독의 세계로 얼른 들어가자.



댓글(2) 먼댓글(0) 좋아요(9)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stella.K 2023-02-10 18:2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오늘 글 재밌네요. 많이 웃었습니다. ㅎㅎ
요즘 2시의 데이트 안영미가 하나요?
전 김기덕 아저씨 밖에 몰라서요. 김기덕 아저씨 요즘 뭐하나 모르겠네요.
몇년 전만에도 방송 활동했던 것 같은데...
팬아저가 그런 뜻이었군요.
그러게요. 오십 원 백 원 별거 아닌 거 같은데도 이상하게 신경 쓰이더라구요.

교관 2023-02-11 12:15   좋아요 0 | URL
네 요즘 두데는 안영미랑 뮤지가 같이 하고 있어요 ㅎㅎ

음악보다는 청취자들과 소통 위주? 그런 방송이 되었습니다
 





어제는 확실하게 겨울의 밤이 아니었다. 조깅을 하는데 봄의 기운을 느낀 날이었다. 겨울의 그 혹독함이 밤인데도 나타나지 않았다. 그래서 달리다 보면 등에서 땀이 나는 그런 날이었다. 땀이 식어도 축축하지 않은, 그래서 춥지 않은 밤이었다.


날이 풀리면 가족 단위로 강변에 운동을 하러 나오는 경우가 있다. 방학이라 그런지 퇴근한 아빠를 따라 나온 초등생 아들도 보였다. 집에서 밥 먹고 난 후 폰으로 게임이나 하는 것이 좋을 나인데 다른 아이들에 비해 통통한 몸매 때문에 아빠를 따라나섰다. 아빠 역시 배가 많이 나와서 두 사람은 운동을 하러 나온 모양이었다.


강변을 따라 조깅을 하다가 몸을 푸는 곳에서 다리를 풀고 있었다. 턱걸이를 하는 곳에 아주머니가 섰다. 아주머니였다. 50대? 초반? 40대 후반? 그렇게 보였는데 겉옷을 벗어서 걸어두더니 턱걸이를 정확한 자세로 10개를 완벽하게 하더니 다리를 올려 거꾸로 매달렸다. 그리고 그 자세로 윗몸일으키기를 했다. 대단했다.


그 모습을 입을 벌리고 보던 초등학생이, 초 3 정도 되어 보이는 아들 녀석이 아빠에게 큰 소리로 아빠는 저거 할 수 있어?라고 물었다. 옆에서 알 수 없는 운동을 하던 아빠는 조용하게 아니 못 해.라고 했다. 아들이 철봉에 거꾸로 매달려 윗몸일으키기를 하는 아주머니를 한참 보더니 느닷없이 아버지! 아버지는 스무 살에는 저렇게 할 수 있었죠?라고 높임말을 했다.


갑자기 아빠가 아닌 아버지라며 높임말을 하는 아들 녀석 때문에 나는 웃음이 나왔지만 웃을 수 없었다. 뭔가 아들 녀석은 진지했다. 근본 없는 높임말에 아빠가 당황을 해서 인지 스무 살에도 아빠는 턱걸이는 못했다고 아들에게 말했다. 그러자 아들이 헐 진짜요? 아 왜요?


날이 풀려 하필 운동하러 나온 사람들이 많을 때 아들 녀석은 눈치라고는 1도 없이 큰 소리로 실망을 해버렸다. 나는 그 모습을 보면서 그 자리를 빠져나왔지만 이후 아들내미의 아버지 문책은 계속되었을까. 그 모습을 보니 한창 대중목욕탕에 다닐 때가 생각났다. 그때에도 한 초등학생이 아버지와 목욕탕에 들어왔다.


초등학생 때에는 아빠와 목욕탕에 가는 게 무엇보다 재미있고 좋다. 마음껏 떠들어도 아버지라는 든든한 방패막이 있어서 안심을 하며 떠들 수 있다. 아버지는 그런 존재니까. 좀 벗어난 얘긴데 라디오에서 맛있는 거 하면 일단 아이들을 먼저 먹이는 이야기가 나왔다. 그러다가 유통기한 지난 건 다 아빠 거라고 했다. 아빠는 맛없고 유통기한이 지난 거 먹어도 괜찮아. 아빤 그런 존재야. 아버지는 그렇게 든든하다. 비록 몰래 화장실에서 설사를 하더라도.


목욕탕에서 목욕을 하는데 초등생이 아버지와 목욕을 하다가 옆에 등에 용문신이 어마어마하게 있는 깍두기 형님으로 보이는 남자가 목욕을 하는데 눈치 없던 아이가 아빠에게 목욕탕이 울리도록 아빠 저 아저씨는 왜 등에 용 그림으로 황칠했어? 머리 감던 아빠는 도대체 무슨 죄야. 방황하던 그 초등학생 아버지의 눈빛을 나는 기억한다.


눈치가 없는 건 어른이 되어서 바뀐다거나 하지 않는 것 같다. 예쁘고 잘생긴 연예인이라면 허당이라고 해서 웃음으로 승화가 되지만 현실에서 허당은 가장 가까이 있는 사람들을 힘들게 한다. 그래서 눈치가 없는 사람에게 아무리 주의를 줘도 그게 쉽게 고쳐지지 않는다. 어떤 시인은 허당인 자신을 알기에 다니던 회사를 관두고 글을 써서 훨훨 날아다니고 있다. 주위를 힘들게 할 바에는 혼자서 일을 하는 게 낫다 싶은 것이다.


눈치가 없는 사람은 오너가 되어도 힘이 든 것 같다. 대리는 눈치가 없지만 회사에서 사무실 직원들과 단톡방에서 활동도 많이 하며 직원들과 친하다. 그러나 정작 자신은 모른다. 다른 직원들이 따로 단톡방을 만들어서 대리만 빼고 대화를 하는 것을. 그런 거 일일이 따지면서 어떻게 생활을 하나 라고 할지도 모르지만 깻잎을 젓가락으로 떼주면 되니 안 되니 하는 세상이다. 어제는 남자친구가 팬아저가 뭔지 모른다고 여자 친구에게 한 소리는 듣는 장면도 목격했다. 그런 세상이야.




댓글(0) 먼댓글(0) 좋아요(8)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마요네즈를 매일 밥을 먹으며 먹었더니 매일 하는 조깅이 마요네즈를 이기지 못했다. 조깅을 하는 시간과 거리는 일정한데 먹는 양과 질이 많아지고 달라지니 살이 붙는다. 마요네즈를 매일 먹기 전으로 돌아가려면 조깅을 평소보다 더 많이 해야 하는데 체력이 달린다. 마요네즈는 어떤 음식에 달라붙어도 그 음식의 맛을 맛있게 만들어 준다. 세상에 정말 이런 식품이 있다는 것에 놀라면서 몇 달을 매일매일 마요네즈의 세상에 빠져 있었다. 그러나 이제는 빠져나와야 할 때가 되었다. 아직 라면에 넣어서 먹어보지는 않았는데 라면에 한 번 넣어 먹고서는 그만둘까.



식빵에 계란 프라이를 올렸다. 그리고 마요를 뿌렸다. 아 정말 맛있다. 몸에 미안해서인지 옆에 마늘장아찌를 두었다. 기묘한 것은 고소한 계란 프라이에 마요가 뿌려지면 느끼할 것만 같은데 고소함이 두 배가 된다. 그래서 정말 맛있다.


동네 빵집에서 옛날 햄버거를 사 왔는데 거기에도 마요를 뿌려 먹으면 음 하는 소리가 절로 나온다.


내가 좋아하는 고추무침에도 마요가 합쳐지면 고추의 맛이 더 맛있다. 그냥 맛있다. 넋을 놓고 먹게 된다. 그러니 너무 배고플 때 먹으면 안 된다.


닭 가슴살을 먹으면 뭐 해. 나는 닭 가슴살도 퍽퍽한 채 먹는 걸 좋아했는데 이 죽일 놈의 마요 때문에. 퍽퍽한 닭 가슴살에도 마요가 들어가는 순간 닭 가슴살이 아닌 닭다리의 맛이 난다고. 할 정도다.


말해 뭐 해. 냉장고 털어 있는 반찬 넣어서 밥을 비빈 다음 마요를 뿌려서 먹는다. 팍팍 비벼서 먹어도 좋지만 마요 부분을 밥과 함께 숟가락으로 떠서 한 입 가득 먹는 그 맛이 좋다.


그 유명한 명란마요다. 명란젓에 마요를 뿌리면 마법의 반찬이 된다. 맛이 없을 수 없다. 입맛 없다는 사람들? 마요를 옆에 두어라. 하지만 명심해야 할 건 옆구리 살도 같이 불어난다는 걸.


닭 가슴살이 많아서 하루는 이렇게 먹고 하루는 저렇게 먹지만 중요 포인트는 역시 마요다. 닭 가슴살에 계란지단을 같이 올려 먹는 용감함과 하루는 치즈를 넣어서 먹는 무모함도 마요와 먹게 되면 잡고 있던 생활의 정신 줄을 놓게 된다.


몇 달을 매일 마요를 밥과 함께 먹다가 정신을 차리고 보면 어? 하게 된다. 마요를 검색하면 다양한 맛의 마요가 있고 사람들 역시 마요의 맛에 빠져서 야호를 부르고 있다. 하지만 나는 이번 마요를 마지막으로 이제 마요를 끊거나 올해는 먹지 않으려 한다. 뭐 잘 안 되면 말고.


댓글(0) 먼댓글(0) 좋아요(4)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오늘은 계절의 경계에 서 있는 것 같은 기분이 드는 날입니다. 이런 날은 꼭 달의 뒤편에 서 있는 기분입니다. 걱정하지 마세요, 이맘때가 되면 늘 드는 감정이니까요. 달의 뒤편은 가본 적이 없지만 상상을 하면 달력의 뒷면처럼 늘 가까이 있지만 펼쳐 보지 않는 세계, 그래서 그 세계가 있다는 걸 알지만 알 수 없는, 그런 기분입니다. 어제까지 주머니에 손을 짚어 넣어 걸어야만 하는 날씨였다가 오늘에 이르렀을 때 그 틈을 벌리고 봄날의 기운이 찾아왔기 때문입니다.


달의 뒤편 같은 겨울의 끝인 것 같은 기분입니다. 그러나 끝이라는 이 세상에 존재하지 않습니다. 끝이 있으면 반드시 시작이 있으니까요. 끝이란 시작을 알리는 시점 같은 것입니다. 나는 궁금하여 뒤편으로 돌아가면 다시 저만치 가버리고 주저하다 보면 어느새 달의 뒤편은 사라져 버리는, 그래서 분명 밤이 도래하면 역시 겨울의 차가운 날이 될 것이라는 생각에 뒤편의 세계가 사라질까 불안합니다. 기시감이 들지만 이런 기시감은 언제나 기묘한 감정을 불러들입니다. 그 속에는 불안이 가득 들어차 있습니다.


지금에서 보니 나는 아무것도 없습니다. 텅 빈 인간인 것입니다. 아무것도 없고 아무것도 보이지 않습니다. 이제 와서 이렇게 끝없는 불안이 밀려들지는 몰랐습니다. 인간의 삶이라는 게 어떻게 될지 알 수는 없으나 내내 불안했던 마음이, 지금 불안이 더 커졌다는 걸 느낄 수 있습니다. 불안의 형태와 크기는 더 커지고 불확실합니다. 불안은 점점 모호해지며 구체적으로 늘어난다는 걸 나는 알 수 있습니다.


나의 불안은 어쩌다 불안하지 않을 때 더 증식합니다. 지금은 어느 정도 일상을 유지하지만 눈덩이처럼 커지고 나면 이 불안은 나의 일상을 위협할지도 모릅니다. 그러고 나면 분명 일상은 와그작 망가지겠죠. 매일 라디오를 켜 놓는데 가요가 나오면 가사는 되도록 곱씹어 듣습니다. 가사가 주는 터치가 음이 건드리는 터치보다 나에게는 더 강력합니다. 그래서 가사를 무시하려고 하지만 가사에 집착은 더 심해집니다. 집착을 피하기 위해 다른 나라 노래를 들어야 하는데 라디오는 그렇게 하지는 않군요.


지금 나는 어디에 서 있는 것일까요. 나는 분명 달의 뒤편처럼 알 수 없는 곳에 서 있습니다. 깜깜해서 도저히 일어날 수 없을 때 누구에게 털어놔야 합니까. 아닙니다, 나의 불안을 듣는 사람은 불행해집니다. 그러니 누군가에게 나의 불안 따위를 털어놓을 수는 없습니다. 거울 속에는 불안이 짐짝처럼 붙어 있는 한 남자가 있을 뿐입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8)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나물을 다 먹기 위해 여러 가지 노력이 필요하다


                                    설에 먹고 남은 마지막 나물이다


설에 우리는 음식을 하지 않는다. 원래부터 그런 건 아니고 몇 해 전부터 점점 줄여서 이젠 음식을 아예 하지 않는다. 그러나, 그래서 그런지, 왜 그런지 나물은 산더미처럼 한다. 동생 가족도 나물을 먹지 않고, 나물을 산더미처럼 한 모친도 먹지 않는다. 그래서 그걸 해치워야 하는 사람은 나뿐이다.


너 나물 좋아하잖아.


나물을 좋아하지 않는다. 그냥 있으니까 먹는 것뿐이고, 나는 음식에 있어서 이렇다 저렇다 같은 말을 하지 않을 뿐이다. 못 먹는 거 빼고는 그냥저냥 다 맛있게 먹는다. 못 먹는 음식은 매운 음식이다.


설에 해 놓은 산더미 같은 나물을 이제 끝을 보려는데 정월대보름이다. 또다시 나물과의 전쟁이다. 나도 나물이 싫다. 맛을 떠나 설이 지나고 매일 나물을 먹었는데, 맛있는 음식도, 좋은 음식도 매일 먹다 보면 그게 맛이 있을 수 없다.


내가 이런 얘기를 누군가에게 했더니 그 누군가는 자신의 냉장고에 대해서 이야기해 주었다. 냉장고 안에 먹지 않고 있는 나물이 있고, 그걸 다 먹기를 바라는 그 누군가의 모친께서 매일 연락해서 어서 나물 통을 비워라, 또 가져다줄게.라고 한단다.


티브이 여기저기서 명절이 끝난 후에 나물을 맛있게 먹는 법 같은 영상이 나오는데, 나물을 맛있게 먹는 법 같은 건 없다. 그냥 적당히 해서 먹자. 나물이 먹고 싶다면 가끔 나물 비빔밥을 사 먹거나, 김밥을 사 먹자. 본인은 먹지 않으면서 도대체 누구 먹으라고 나물을 이렇게나 몇 날 며칠을 먹어도 남을 만큼 하는지. 나 지금 되게 신나. 하하하.


오늘은 정월대보름. 나물이 기다리고 있다. 어제까지 설에 남은 나물을 먹어치웠다. 오늘부터 새로운 나물의 무한 굴레 속으로 들어간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7)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