날이 춥고 꽁치 통조림이 있다면 꽁치찌개를 끓여 먹자. 김치가 없어서 처음에는 초조했으나 2분 정도 고민하다가 꽁치만으로 찌개를 끓이기로 했다. 끓이다 보니 기시감이 드는 게 예전에도 추운 날 이렇게 꽁치만으로 찌개를 끓여 먹었던 기억이 있다. 그때가 2017년쯤이었다. 몹시 추웠다.


2017년 12월 17일 기록을 보면 그해 들어 가장 추운 날이었다. 뉴스에서는 모스크바보다, 삿포르보다 훨씬 추운 날이라고 보도를 했다. 조깅을 하는데 단 한 명도 없다고 기록이 되어 있다. 이번 혹독한 한파에도 조깅 코스에 몇몇은 나와서 조깅을 했으니 액면으로 2017년의 한파가 이번 한파보다 더 추웠다. 나는 그때 레깅스를 두 장이나 입었고 모자도 두 개나 쓰고 달렸었다.


그날 미친놈처럼 홀로 조깅 코스를 달리고 있는데 저기 반대편에서 자전거를 탄 사람이 오고 있었다. 저런 미친놈을 봤나, 이런 날씨에,라고 생각을 했다. 자전거가 스쳐갈 때 헬멧과 마스크로 꽁꽁 가린 얼굴이 힐긋 나를 향했다. 저런 미친놈을 봤나, 얼굴을 다 드러내놓고 바람을 맞으며,라고 생각하는 것 같았다. 그러고 보니 얼굴이 아팠다. 아니 살갗이 아프다고 느꼈다. 한 번도 가보지 못한 얼어붙은 바이칼 호수의 밑바닥 같은 공기가 얼굴을 아프게 할퀴었다. 정말 얼굴이 10세 아이에게 여러 번 뺨을 후려 맞는 것 같았다. 무엇보다 눈이 시리고 아팠다.


반환점을 돌아오는데 네온의 불빛도 다르고 사람들은 등을 한껏 구부리고 바닥을 보며 어딘가로 빠르게 걸었고 술집이나 치킨 집에도 사람들이 없었다. 직장인으로 보이는 세 명의 남자들이 이런 날씨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일찍부터 마신 술 탓에 전부 횡설수설이었다. 한 명은 거리에 그대로 토하고 두 명은 웃으며 그 모습을 지켜보고 있었다. 그렇게 세계의 겨울은 변함없이 반복을 하고 있었다. 변함없는 것들은 늘 변하지 않는다.


그렇게 엄청나게 추운 날 조깅을 하고 집에 와서 꽁치통조림만으로 찌개를 끓여 먹었다. 대충 물 넣고 통조림 따서 꽁치도 넣고 고춧가루 넣고 간 마늘 넣고 폴폴 끓이고 마지막에 파를 좀 썰어서 올리면 꽁치 통조림 끝이다. 무가 있었다면 좋았을 텐데 하는 생각도 3초 정도 했다. 나의 장점이라면 가진 것에서 만족할 줄 안다는 것이다.  꽁치만 넣고 끓인 꽁치찌개는 말 그대로 꽁치의 맛만 나는 진정 꽁치찌개다. 뜨거울 때 후후 불어서 국밥처럼 빨리 먹어치워야 한다. 남기면 안 된다. 식으면 꽁치 본연의 비린 맛이 확 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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홈랜드 시즌 1

이 드라마는 미국만이 가능한 이야기가 아닐까 싶다. 이라크 전쟁에 나간 미군 브로디가 8년 만에 포로로 있다가 풀려나고, 돌아온 브로디를 미국은 영웅으로 떠받는다. 하지만 국가 정보국 소속 캐리는 브로디가 대통령을 노리는 암살범으로 되돌아왔다고 생각하며 브로디를 감시하면서 벌어지는 이야기를 담고 있다.

한 마디로 존나 재미있다. 주인공 캐리로 나오는 클레어 데인저는 돌아이 미친년 연기를 너무 잘해서 보다 보면 몰입이 되어서 세상 울화통은 다 나오려 한다. 확신을 위해 물불 가리지 않는 캐리는 브로디의 정보를 캐기 위해 브로디에게 접근하여 밤을 같이 보낼 만큼 돌아이다.

할리우드에서 세상 미친년 연기를 잘 하는 건 마고 로비다. 청순과 미친 그 간격을 아주 잘 왔다 갔다 한다. 우리나라에서 마고 로비만큼 미친년 연기를 잘 하는 건 전종서다. 전종서의 미친년 연기는 마고 로비를 뛰어 넘을 수 있다.

홈랜드에서 캐리의 미친 돌아이 연기는 위의 마고 로비와 전종서와는 결이 다른 미친년 연기다. 날 때부터 그렇게 태어난 듯한 마고 로비와 전종서와는 달리 캐리는 조울증 때문에 확 미침이 나타나는데 엄청 몰입된다. 얼굴이 마치 남자의 얼굴 같아 보일 정도로 이상하게 변한다.

8년 만에 풀려나 집으로 돌아온 브로디 역시 일상으로 돌아가는 것이 어렵다. 아내는 8년 만에 만난 남편이 반갑고 좋아서 야시시 속옷을 입고 다가가지만 아내를 앞에 두고 아내의 얼굴을 보며 혼자서 해결하는 브로디를 보며 아내는 기분이 이상하다. 집 안에 사슴이 들어왔다고 사람들을 불러 파티를 하는 와중에 총으로 사슴을 죽여 버리기도 한다. 브로디는 조금씩 이상한 행동을 보이는데 10대 딸이 그걸 감지한다.

브로디가 이렇게 이상한 행동을 보이는 건 8년 동안 이라크에 포로로 잡혀 있을 때 자신의 손으로 같이 붙잡힌 동료를 때려죽여야 했다. 그렇게 하지 않으면 자신이 죽기 때문이다. 캐리는 브로디가 뭔가를 숨기고 있다고 계속 여기고 있지만 전혀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 8년 만에 멀쩡하게 풀어줄 리가 없다고 캐리는 생각한다.

그러는 와중에 브로디가 포로로 잡혔을 때 때려죽인 동료가 살아서 돌아와서 미국의 부통령을 노리고, 캐리는 조울증 약을 먹지 않아 더 미친년이 되어가고. 점점 수렁으로 빠지는데. 어떻게 될까. 질퍽한 장면도 꽤나 나오고 시즌 8까지 있는, 아주 재미있는 미드 ‘홈랜드 시즌 1’이었다.









홈랜드 시즌 2

브로디는 알카에다 사령관의 아이를 봐주었다. 8년 중 몇 년을 그의 10살짜리 아들 아이샤에게 영어를 가르치고 같이 축구도 하며 그림도 그렸다. 아이샤는 점점 브로드에게 마음을 열고 아버지보다 다 친하게 된다. 그러면서 브로디는 이슬람으로 개종을 하고 알라신을 믿게 된다. 그런데 어느 날 미국의 부통령이 허락한 드론 미사일 공격에 아이샤와 함께 12명의 아이들까지 모두 죽고 만다.

브로디는 조국인 미국에 적개심을 가지게 된다. 그리하여 알카에다의 계획하에 테러를 일으키려 하고, 누구도 모르게 부통령을 자살특공대처럼 해치울 수 있었는데 폭탄 조끼가 터지지 않았다. 이후 브로디는 이런저런 풍파를 겪고 정계에 진출을 하여 하원 의원이 된다.

캐리는 자신도 자신이 미쳤다고 믿을 만큼 국가 정보부 사람들에게 쫓겨나서 현실과 비현실을 오가는 생활을 하는 중에 베이루트 작전에 느닷없이 투입이 되어 생사를 오가는 작전의 건수를 올린다. 그때 캐리는 자신도 알 수 없는 짜릿함과 일에 대한 집착이 어느 정도인지 다시 깨닫는다.

그리고 캐리를 비롯한 미국 측이 브로디의 영상을 입수하게 된다. 자살 테러를 한 후 미국인들이 보라고 촬영한 영상이었다. 하지만 조끼의 폭탄이 터지지 않고 브로디 역시 죽지 않았다. 영상 속에서 브로디는 부통령과 미국은 거짓과 위선인 자들이라 내가 한 행동이 옳은 것이다.라고 촬영해 놓은 영상을 캐리와 정보부는 보게 된다. 캐리는 자신이 미치지 않았다는 걸 알고 기뻐한다.

브로디는 점점 조여오는 생활 속에서 아내에게 거짓말을 위한 거짓말, 거짓을 무마하기 위해 거짓을 계속 퍼트려야 한다. 온통 거짓말에 의한 거짓말을 할 수밖에 없는 생활을 하다가 결국 붙잡혀서 모든 걸 잃게 되는 순간, 캐리는 브로디에게 알카에다 사령관을 잡는 걸 도와달라고 한다. 그러면 자살테러 사실도 숨기고, 가족들도 살릴 수 있고 의원도 계속할 수 있다고 한다.

브로디는 결국 수락을 한다. 브로디는 이쪽의 감시도 받고 저쪽의 감시도 받는다. 이쪽 편으로 알고 있는 저쪽을 속이며 저쪽 편인 거처럼 이쪽에게 보여야 한다. 엄청난 괴리와 고민과 스트레스로 하루하루를 보낸다.

이 시리즈는 첩보 시리즈인데 영화처럼 막 갈기고 육탄전을 벌이지는 않는다. 하지만 몇 배는 재미있다. 시리즈 1보다 2가 훨씬 조마조마하며 몰입감이 최고다. 브로디는 아내가 자신의 친구와 뒹구는 걸 알지만 모른 척한다. 아내는 브로디가 모른척한다는 걸 알고 있지만 역시 모른척한다. 아내 역시 브로디가 캐리와 뒹군다는 걸 알지만 모른척하고 브로디도 아내가 모른 척 한다는 걸 모른 척한다.

그러는 사이에 이 드라마에도 다른 미드처럼 10대 아이들이 사고를 친다. 브로디의 딸과 부통령의 아들이 차 사고를 내고 뺑소니를 치면서 이야기는 더 급박하게 돌아간다. 브로디는 사방에서 자신을 포로로 또는 미끼 내지는 중간 계책으로 여기는 집단과 사람들 때문에 미치지 않는 게 이상할 정도의 연기를 한다.

이 시리즈는 아무 잘못 없는 민간인과 아이들을 죽음으로 내모는 것에는 미국, 알카에다 같은 경계가 없음을 말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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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돈나를 좋아한다.

마돈나의 노래를 좋아한다.

마돈나의 생존방식, 즉 자기 관리를 좋아한다.


마돈나는 정말 고생고생 개고생을 하다가 가수가 되었다. 늘 신디 로퍼와 비교가 되었다. 86년인가 87년인가 유럽의 슈퍼스타들이 모여 만든 밴드 에이드에서 세계의 기아와 전쟁을 멈추게 하려고 ‘두 데이 노우 잇츠 크리스마스’를 만들었다. 이에 대적하기 위해 미국은 퀸시 존스를 선두로 해서 미국의 슈퍼스타들이 뭉쳐서 ‘위 아더 월드’를 만들었다. 노래가 총과 칼보다 더 위에 있다는 것을 여실이 보여주었다. '위 아 더 월드' 그 속에 마돈나가 아닌 신디 로퍼가 있었다.


마돈나는 자기 관리의 끝판왕이라 불리며 58년 생으로는 절대 보이지 않는 모습으로 늘 그 모습을 유지했다. 마돈나의 가십을 이야기하려고 했지만 내가 주절주절 하는 것보다 유튜브 복고맨이 마돈나의 이야기를 5편에 걸쳐 영상을 올렸다. 그래서 아무래도 마돈나의 이야기는 그 영상을 보는 게 훨씬 마돈나를 이해하는데? 받아들이는데 좋을 거라 본다.

https://youtu.be/3aoM0E3H5Gk 5부작으로 있으니 마돈나를 알고 싶으면 추천.

아니, 도대체 이 정도로 마돈나를 이야기를 하려면 머리부터 발끝까지 얼마나 파야 하는 거야.


마돈나와 함께 전 세계에 음악을 알렸던 신디 로퍼, 티파니, 데비 깁슨은 요즘은 거의 활동이 없지만 마돈나는 끝이 없이 가십을 만들어 내고 노래를 부르고 무대를 휩쓸고 있다. 학창 시절에 음악감상실에서 본 마돈나의 ‘보그’ 뮤직비디오는 입을 벌리고 봐야만 했다. https://youtu.be/GuJQSAiODqI

스크라이크 포즈!라고 말하는 마돈나는 마치 마를린 먼로의 환생, 또는 먼로를 뛰어넘는 퍼포먼스를 보여주는 세상에서 가장 멋진 모습이었다. 싱글로만 600만 장을 팔았다. 보그지가 언제 나왔는지 모르겠지만 노래 속에는 보그를 거쳐간 수많은 셀럽들을 마돈나가 말한다.


그레타 가르보, 먼로, 디마지오, 말론 브란도, 지미 딘, 그레이스 켈리, 진 켈리, 리타 헤이워드 등 보그지의 표지를 장식했던 수많은 스타들을 사랑한다고 마돈나는 노래를 불렀다. 이 뮤직비디오는 지금은 너무나 엄청난 감독이 된 데이빗 핀처가 만들었다. 그래서 보그 뮤직비디오는 마치 영화를 보는 것 같다. 데이빗 핀처는 마돈나의 어떤 부분을 부각하면 그녀의 매력을 발산하는지 아는 사람 같다.


마돈나가 출연한 영화 딕트레이시에서도 노래를 부르는 부분이 나오는데, 영화 속 장면인데 마치 뮤직비디오를 보는 것처럼 아주 좋다. 마돈나의 아름다운 모습을 여실히 볼 수 있는데 여기에 걸맞은 단어가 뇌쇄적인 아름다움이 아닐까 싶다. https://youtu.be/ckd3vBA4U84


보그는 자전거 페달을 밟듯 처음에는 무난하게 출발하다가 후반부로 갈수록 절정에 이르는 노래다. 마돈나가 본격적으로 춤을 추며 노래를 부르다가 보그지를 장식한 수많은 셀럽을 마돈나가 읊조린다. 그리고 다음, 보그 보그 라며 장면들이 전환되면서 마치 보그 잡지를 보는 듯한 착각을 일으키고 보는 이들에게 엄청난 도파민을 뿜어내게 만들면서 끝난다.


마돈나는 이런 분위기, 이런 모습을 근래에까지 유지를 하다가 올해, 이번 그래미 어워드에 무대에 오른 모습을 보고 어쩐지 양가감정이 들었다. 이 알 수 없는 감정이 어디에서 오는 것인지 나는 알지 못한다. 어릴 때부터 좋아하고 그녀의 음악이면 무조건 좋아했던 그 마음이, 굳건할 것만 같은 마돈나 역시 무너지기 싫어서 생을 붙잡고 발악을 하는 것 같아서 동질감을 느끼는 동시에 나는 너희들과는 달라,라는 선을 그어 놓는 것만 같아서 슬프기도 했다.


보그는 1990년 엠티비 라이브 공연 버전도 아주 유명하다 https://youtu.be/lTaXtWWR16A


맨 위 사진 속의 앨범은 마돈나의 '레이 유 라잇'의 앨범이다. 이 속에 들어있는 노래 중에 Frozen에 빠져 있을 때가 있었다. 엄청 들었다. 마돈나는 앨범을 내면 그 속의 노래 하나에 꼭 빠지게 하는 마법을 부리는 것 같다. 프로젠의 뮤직비디오를 보면 마돈나의 그로테스크하고 아방가르드 한 퇴폐미의 전위예술을 보는 것 같다. 한 마디로 멋지다는 것이다. 노래 가사 중에 사랑은 새와 같아,라는 부분의 노래를 부를 때 뮤직비디오에서는 땅에 떨어지면서 마돈나가 까마귀들로 변한다.


마돈나는 철저하게 타인의 곡을 받아서 노래를 부르는 철학을 고수하고 있다. 거기에 자신의 퍼포먼스와 스타일을 입히는 형식을 추구한다. 그래서 한때 아티스트 적인 기질로 음악을 하는 크리스티나 아길레라보다는 자신의 철학과 비슷한 브리트니에게 딥 키스를 퍼부었다. 마돈나의 노래에 대한 열정은 소문이 났지만 ‘헝업’의 도입 부분에 아바의 노래가 쓰이는데, 아바는 자신들의 노래를 타 가수가 쓰는 걸 싫어하기로 유명했기에 아바의 노래가 다른 가수에게 쓰이는 일이 그동안 없었다.


마돈나는 비행기를 타고 날아가서 아바를 만나 당신들의 노래를 샘플링하고 싶다고 말했고 대선배, 대그룹 아바는 마돈나의 열정에 오케이를 한다. 그러고 보면 지구상의 슈퍼그룹이나 해외 팝스타들이 한국에서 공연을 거의 다 했지만 마돈나는 아직 한국 공연을 한 적이 없는 것 같다. 에미넴도 욕하면서 한국에 왔다가 공연을 하면서 하트하트 애미넴이 되어 돌아갔는데.

 

싸이가 강남스타일로 유명세를 탈 때 마돈나와 함께 그 노래를 연습했다. 그때 연습을 하다 지쳐서 둘 다 스테이지에 누워서 쉬고 있을 때 마돈나가 싸이에게, 본 공연을 할 때에는 내 몸의 어떤 부위든 터치하고 싶은 대로 해라,라고 했다.


프로젠 https://youtu.be/XS088Opj9o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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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각기동대 1이 쿠사나기 소령의 이야기라면 2는 소령의 파트너였던 버트의 이야기다. 이 장면은 공각기동대 2편에 속하는 이노센스 편이다. 사진은 영화 속에서 펼친 책의 모습이다. 한글이라 나는 캡처를 해서 또 다 읽어봤다. 얽어보니 여긴 누구? 나는 어디? 같은 내용이다. 1편의 주인공 쿠사나기가 실종이 되었는데 그 기억만 가지고 있는 파트너였던 버트 버전의 이야기다.


1편에서 쿠사나기는 아마도 시스템 안으로 들어가 버렸을 것이다. 영화 ‘루시’를 보면 그렇게 된다. 오시미 마모루는 인간은 컴퓨터로 모든 걸 전부 할 수 있다. 가상공간으로 만남도 가지고 심지어 육체적 쾌락도 느낄 수 있다. 더 먼 미래로 가면 마우스로 조작만 하면 인간이 활동하면서 하는 모든 일들을 할 수 있다. 심지어는 음식도 먹을 수 있지 않을까. 그러다가 사람의 형태가 점점 진화하여 굳이 육체라는 건 필요 없어지는 날이 올지도 모른다. 인간의 정신만 있으면 된다. 그래서 인간은 하나의 점처럼 변하여 시스템 안으로 들어가서 1초 만에 미국으로 갈 수 있고 여자나 남자를 만날 수 있고 그 안에서 섹스를 즐길 수 있다. 그 중간 과정에 있는 단계가 인형사, 즉 휴머노이드의 육체를 가지거나 나 아닌 인간의 몸에 올라탈 수 있는 것이다. 그 과정을 거친 쿠사나기 소령은 마지막에 실종이 되었다고 하지만 시스템 안으로 들어가 버린 것이다. 시스템 속 정보의 바닷속을 마음껏 다니고 있을 것이다.


아무튼 쿠사나기의 기억만 가지고 있는 파트너였던 버트가 이번 편에서 주인공이다. 이 영화 이노센스 편에서는 화려한 문구가 대거 등장한다. 전부 철학가 내지는 문학가들이 할 법한 대사들을 내뱉는데 그걸 읽는 재미도 있다. 2004년에 나온 영화로 1편이 나오고 거의 10년 만에 나왔다.


공각기동대에는 미래에 대한 많은 모습이 나온다. 컴퓨터에 관련된 미래의 형태가 많이 나온다. 무엇보다 공각기동대는 이후 디스토피아적 미래에 관한 영화들에 지대한 영향을 끼쳤다. 매트릭스부터 여러 영화에 까지.


그런데 공각기동대 속 미래의 모습에서 휴대전화는 지금의 스마트폰의 형태가 아니다. 그러니까 아이폰이 나오기 이전 많은 영화들 속에서 미래의 휴대전화 형태가 나왔지만 지금의 스마트폰의 형태를 만들어내지 못했다. 보통 현실의 상상력이 영화 속 상상력을 못 따라가는데 이 스마트폰 하나만큼은 현실의 상상력이 영화적 상상력을 이겨버린 것이다. 그러니 스티브 잡스의 앞을 내다보는 생각, 시각은 크고 넓고 깊다. 하지만 잡스의 인간적인 면은 좁고 얕고 불안하기만 했다.


이 공각기동대는 요즘의 웨스트 월드를 보면 다시 생각이 난다. 인간은 왜 인간을 닮은 인조인간, 휴머노이드, 안드로이드를 만드려고만 할까. 왜 인간과 더 똑같은 인조인간을 무서워하면서도 인간과 똑 닮은 그런 휴머노이드를 만들려고 지금도 노력을 할까.


애완용 로봇이나 가이노이드는 공리주의나 실용주의와는 관계없는 존재지. 왜 그들의 모습이 인간의 모습이며 인체 이상형을 모방해서 만들어지게 됐을까. 인간은 왜 닮은꼴을 만들고 싶어 하는 걸까.


애들은 늘 인간이란 규범을 벗어나 살아가지. 확립된 자아와 자유의지로 행동하는 게 인간의 정의라면 말이지. 인간의 전단계로서 카오스 속에 살아가는 애들은 대체 뭘까? 내면은 인간과 다른데 모습은 인간이야. 여자애가 소꿉놀이 할 때 쓰는 인형은 실제 아기의 대체물이 아니야. 여자애는 육아 연습을 하는 게 아니라고. 어쩌면 인형놀이가 실제 육아와 비슷할지도 몰라. 즉 육아는, 인조인간을 만들려는 오랜 꿈을 가장 쉽고도 빠르게 실현시켜 주는 방법인거지.


인간과 기계, 생물계와 무생물계를 구별하지 않았던 데카르트는 다섯 살 때 죽은 딸과 꼭 닮은 인형을 프란신느라 이름 짓고 엄청 사랑했지. 이런 얘기도 있단 거야.


공각기동대 2는 2004년도 작으로 굉장한 영상미에 전투씬 역시 멋진 영화였다. 암울한 미래를 이만큼 잘 나타내는 영화도 없을 터. 결은 좀 다르지만 근래에 읽었던 김영하의 소설 ‘작별인사’에서의 대사들도 떠오른다.


공각기동대에는 미래의 전자기기들이 엄청나게 나온다. 이미 공각기동대 1에서 홀로그램부터 기계적 설정이 들어있는 전화기까지, 그 당시에 미래를 이렇게 세세하고 조밀하게 표현했다는 건 놀라운 일이다. 이렇게 살아있는 인간이 뇌의 지적능력만 가지고 배설을 하지 않는, 인간과 닮은 안드로이드의 몸속으로 들어간다면.


하지만 위에서도 말했지만 공각기동대부터 수많은 미래 영화 속에 나오는 휴대전화기가 아이폰 형태를 띠고 있을 거라는 생각을 하지 못했다. 영화적 상상이 보통 현실을 훌쩍 뛰어넘는데 우리가 들고 다니는 이 스마트폰은 영화적 상상을 넘어 버렸다.


현실은 영화를 따라가지 못하지만 영화도 현실을 예견하지 못한 부분이 있다. 이제 GhatGPT가 핫 한 요즘, 그리고 앞으로 빠르게 증식할 거라는 걸 알고 있는 요즘, 한 사람의 짧은 문장의 목소리만 듣고 길게 똑같이 에이아이가 말을 하는 요즘 - 그리하여 정치가나 유명인들이 실제로 하지 않은 말들을 가짜가 진짜처럼 말을 해버리는 가까운 미래가 올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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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래는 이 세상에서 가장 짧은 시간에 감동을 주는 기묘한 관념? 은유? 여하튼 그렇다. 우리는 다 알고 있는 관념이지만 막상 그게 뭔데?라고 물으면 딱히 대답을 하지 못하는 것들이 존재한다.


시간이 그렇다. 시간이 뭔지는 사람이면 누구나 다 안다. 하지만 시간이 뭐야?라고 물으면 바로 대답이 나오지 않는다. 빛도 그렇다. 빛을 모르는 사람은 없다. 빛이 없으면 인간은 살지 못한다. 그러나 빛이 뭐야?라고 묻는다면 바로 대답을 하지는 못한다. 과학자들은 과학적으로 바로 대답을 할지도 모르지만.


노래 역시 그렇다.

노래가 뭐지?

노래는 말이야 시에 음을 붙인 거야. 그래서 가장 빨리 감격하게 되고 감동을 줘.


노래라고 해서 다 좋은 건 아니다. 안 좋은 노래도 있다. 또 순전히 개개인의 내면에 작용하기 때문에 순전히 개인적이어서 내가 좋아하는 노래가 다른 사람이 좋아할 수는 없다. 노래는 참 이상하게도 오래전에 나온 노래라고 해서 싫증이 나거나 요즘과 맞지 않아서 듣기 싫어! 하지도 않는다.


요즘도 맨하탄스를 계속 듣는데 질리지가 않는다. 게다가 이렇게 학창 시절에 구입한 카세트테이프를 아직도 듣고 있는데 늘어지거나 음이 이탈하거나 하는 부분도 없다. 맨하탄스의 앨범을 듣고 있으면 중학생 시절이 떠오른다. 나는 그때 분명 세상을 갈아먹어 버릴 것 같은 시끄러운 해비메틀을 줄곧 들었는데 그 사이에 맨하탄스가 들어왔다.


샤이닝 스타는 무려 66년의 곡이다. 담배 연기 가득한 실내의 푹신한 소파에 앉아서 녹색빛깔의 술을 마시며 들으면 좋을 노래다. 이토록 화음이 좋을 수가 있을까. 중학생 때 자주 들락거렸던 음악감상실의 디제이는 지방 라디오에서 음악 방송을 하고 있어서 음악에 대한 정보가 많았다. 그에게서 듣는 팝스타들의 가십은 나의 흥미를 끌기에 충분했다. 국사나 물리는 아무리 공부를 해도 전혀 기억이 나지 않는데 팝스타들의 이야기는 한 번만 들으면 절대 잊히지 않았다. 아직까지도 기억을 하고 있는 것을 보면 너무나 재미있었다는 말이다.


그러다가 76년에 그 유명하고 유명한 ‘키스 앤 세이 굿바이’를 냈다. 첫 시작을 알리는 묵직한 랩은 맨하탄스의 확고한 스타일을 말해준다. 나는 고등학교 때 카페에서 아르바이트를 했는데 카페의 주인이 늘 가요만 틀었는데 주인이 없을 때 나는 맨하탄스의 키스 앤 세이 굿바이를 틀곤 했다. 그래서 요즘도 이 노래를 들으면 그때의 일들이 떠오른다.


이 노래는 이별의 슬픔을 노래하고 있다. 첫 시작이, 오늘이 내 인생에 가장 슬픈 날이 될 것 같아요. 오늘은 당신에게 조금 안 좋은 소식을 들려주려고 해요. 라며 죽 이어지는데 묵직한 랩으로 시작을 한다.


맨하탄스의 화음은 기가 막힌다. 맨하탄스의 성장과 배경에 대해서 이야기를 하고 싶어 죽겠지만 요즘은 복고맨 같은 음악 전문 유튜브 채널에서 어지간한 팝 스타들에 대해서는 다 이야기를 하고 있어서 나처럼 뇌피셜로 떠드는 건 의미가 없어졌다. 위에서도 말했지만 나는 주로 음악 감상실의 디제이나 라디오에서 들은 이야기를 나의 방식대로 확장시켜 이야기를 했었다. 그러다 보면 펙트 와는 조금 멀어지는 감이 있다.


그 덕분인지 학창 시절에는 주위에 몇몇이 꼭 붙어 있었다. 이런 류의 이야기를 좋아하는 아이들이 있었고 쉬는 시간이나 점심시간에 교실 뒤에서 유행가요에서 벗어난 시끄러운 음악을 들으며 공유하는 아이들은 꼭 있었다.


온통 헤비메탈이 가득한데 맨하탄스가 그 사이에 끼어들더니 라이쳐스 브라더스, 맨하탄 트렌스퍼, 보브 딜런, 제니스 이안 같은 가수들의 노래들을 들었다. 뭔가 하루종일 음악만 듣고 있었던 적도 있었고, 음악만 들어도 좋아,라고 생각했던 시기였다.


지나서 생각해 보면 이렇게 학창 시절에 공부는 뒷전이고 당구장이나 오락실보다 레코드 가게나 음악 감상실을 들락거리며 음악이나 매일 들으며 음악에 대해서 이야기를 했으면 지금은 음악 평론가가 되어 있거나 음악을 하고 있어도 이상하지 않을 텐데 나는 그동안 뭘 했나 싶다. 그런 생각을 하니 좀 우울하네.


어쨌거나 맨하탄스의 노래는 명곡에 속하니까 한 번 들어보자. 좋아 죽는다.


키스 앤 세이 굿바이 https://youtu.be/wtjro7_R3-4 TheManhattansVEVO


샤이닝 스타 https://youtu.be/I_sxBUOR0Kk TheManhattansVEV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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