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 15회까지 봤다. 1회 남았다. 2004년부터 뚜벅뚜벅 15회까지 왔다. 연진아 존나, 재밌어. 사라 욕하는 거 들었지. 자는 사람도 벌떡벌떡 일으키게 할 만큼 찰지고 쫙쫙 달라붙는 게.

내내 아름답던 벽도 없이 드디어 폐허에 섰네 박연진,

황량할끄야, 캄캄할끄야, 웰컴해 연진아.

나 아직 1화 남았다. 스포로 나를 채찍질하지 마라. 주위에서 나에게 마지막 회 말하고 싶어서 죽으려고 하는 몇몇 벌레들아 입 다물어.

근데 글로리에 나오는 주인공들 몸들은 왜 그렇게 다 좋은 거야. 이 녀석들 운동하는 모습이 1도 안 나오는데 하루 종일 운동하는 짐종국이나 윤성빈만큼은 아니지만 너무 몸이 좋다.

전재준도 몸 멋지고, 그저 깡 말랐을것만 같은 손명호는 뭔데, 풍만하게만 보였던 최혜정은 또 뭐고. 하도영은 건설회사 대푠데 권투 하는 거 봤지. 물병 내미는 문동은 안아주는 주여정은 달콤 달콤하고.

학폭이 일어났을 때 피해자는 상처받고 폭력이라 하는데 가해자는 즐거움이라 한다. 니체가 신은 죽었다,라고 했는데 왜 그런 말을 했을까. 인간에게는 원래 좋다 와 싫다의 개념만 있었다. 애초에 옳고 그름이 없었다. 내가 좋으면 좋은 것, 싫으면 싫은 것이었다. 내가 좋아하는 것이 타인에 옳은 것인가 그른 것인가 하는 의식 자체가 없었다.

그런데 노예제도가 생기면서 노예의 입장에서는 좋다 싫다가 아니라 주인이 하는 행동이나 말, 의식이 옳고 그름으로 보였다. 니체는 이런 관념이 왜 생겨났을까 의문을 가졌다. 그랬더니 이 모든 것들이 기독교가 생겨나서 옳고 그름이 인간이 판단하게 된 거라고 생각했다. 인간은 옳고 그름을 나눠서는 안 되는 것이다. 왜냐하면 내가 옳은 것이 너에게는 그른 것이 될 수 있으니까.

이 옳고 그름이 기독교 때문에, 하느님이라는 매개를 통해 옳고 그름을 임의로 나누는 것이다. 당하는 쪽은 그른 것이라 여기지만 행하는 쪽은 옳은 것이라 여긴다. 주인은 노예들이 더럽다고 하지만 노예는 소박하다 여겼다. 그래서 니체는 신이 죽으면 이 모든 것이 원점으로 돌아간다고 여겼다.

인간이 인간을 옳고 그르다고 판단해서는 안 되기 때문에. 아무튼 나 아직 1회 남았다. 그나저나 학폭 복수극 감독도 학폭에 연루되어 있다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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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브라이언 아담스의 목소리를 너무나 좋아한다. 이런 허스키한 목소리는 다른 허스키한 목소리에 비해 빨아들이는 능력이 엄청나다.라고 나는 생각한다. 브라이언 아담스는 학창 시절 내내 꼭 가방에 들어 있었다. 그리고 기묘하지만 요즘도 일주일에 몇 번은 듣고 있다. 특히 내가 좋아하는 앨범은 6집이다.


중학생 때 음악 감상실에 쪼르르 달려가서 브라이언 아담스의 노래를 신청해서 뮤직비디오로 보는 건 정말 즐거운 일이었다. 디제이도 신이 나서 브라이언 아담스에 대해서 TMI를 늘어놓았다. 그때 들었던 얘기들은 아직도 잊히지 않고 있다.


일단 유명한 곡 중에 써머 오브 69를 들어보자 https://youtu.be/NgpcwYooLO0


브라이언 아담스에 대한 이야기를 여기에 주절주절 적고 싶지만 늘 그렇듯이 브라이언 아담스에 대해서 알고 싶으면 역시 유튜브 복고맨을 보는 게 제일 낫다, 는 게 나의 생각이다. 내가 하는 이야기는 장난 같은 이야기밖에 없어서 복고맨을 보는 게 훨씬 낫다. 인간적으로도 앨범이나 노래도로 성장과정을 재미있게 풀어놨다.


복고맨의 브라이언 아담스 이야기 https://youtu.be/bOdihKHM0xM


브라이언 아담스의 앨범을 듣고 있으면 예전의 추억이 많이 생각난다. 학창 시절에 무엇 때문인지 모르겠지만 친구들과 함께 부산에 있는 동물원에 간 적이 있었다. 동물원이 목적이 아니라 아마 친구의 국가자격증 시험 때문에 갔던 걸로 기억하고 있다. 그때 엄마가 도시락을 싸주었다. 김치볶음밥으로 김밥을 만들어서 가득 넣어줬다.


친구 두 명과 나와 이렇게 갔는데 친구 둘은 붙어 앉아서 가는 동안 내내 이야기를 했고 나는 버스에서, 전철에서 브라이언 아담스를 들으며 갔다. 우리는 부산에서 친구의 볼일을 끝내고 헤헤 호호 재미있게 보냈다. 그러다가 동물원에는 오후 5시가 넘어서 들어갔다. 그때가 아마 5월인가 그랬는데 좀 돌아다니다 보니 저녁이 되었고 동물들이 슬슬 우리 안으로 들어가고 있었다.


나는 코끼리가 무척이나 보고 싶었는데 코끼리 우리를 찾아갔더니 코끼리가 우리 안의 집으로 들어가고 있었다. 코끼리의 엉덩이만 봤다. 그게 우리가 본 동물원의 동물의 모습 전부였다. 동물들이 집으로 다 들어가고 나서 우리는 공원의 벤치에 앉아서 엄마가 싸준 김치볶음밥으로 만든 김밥을 먹었다. 더운 날이라 그런지 김밥이 약간 시었다. 그래도 우리는 맛있게 도시락을 먹었다.


그때 들고 간 카세트 플레이어에서 이어폰을 빼고 스피커로 브라이언 아담스의 노래를 틀었다. 저 6집을. 그래서 파블로프의 개처럼 6집의 노래를 들으면 그때 그 동물원과 5월의 햇살, 저녁의 노을이나 냄새 같은 것들이 떠오른다. 이상하지만 무슨 이야기를 했는지 그건 전혀 기억이 나지 않는다.


6집의 모든 곡이 좋지만 오늘의 선곡은 그중에 Do I Have To Say The Words? https://youtu.be/otgnuwR6w8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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잉크냄새 2023-03-12 11:4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Everything I do 는 요즘도 로빈훗과 함께 종종 나오더군요.

교관 2023-03-13 12:31   좋아요 0 | URL
좋은 노래란 그런 것 ㅎㅎ

stella.K 2023-03-12 18:5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브라이언 아담스 저도 왕년에 꽤 좋아했죠.
뭔가 거친듯 하면서도 반항하는 소년같은 느낌이 있어서. ㅋ
근데 배경에 보이는 카셋트라디오 추억 돋네요.
저도 오래 전 저 비슷한 게 있었거든요.
요즘엔 살 수 없겠죠? 무슨 경매로면 모를까…

교관 2023-03-13 12:31   좋아요 0 | URL
며칠전에 한국공연 했는데요 ㅎㅎ 예전같았으면 물불 안가리고 갔을텐데 ㅋㅋ 너무 귀찮아졌네요
 

거짓말로 시작해서 결말이 알 수 없게 끝나는 일상 이야기다


거짓말을 처음에 하는 걸 듣고서는 충격이 컸다. 어떻게 저런 거짓말을 아무렇지 않게 온 사람들이 보는 곳에서 할 수 있다니. 사람들은 비판보다 비난을 퍼부었다. 많은 사람들이 알고 있는 유명한 사람이 거짓말을 하면 그런 수모를 겪는다. 어쩌면 그걸 수모라고 해서는 안 될지도 모른다. 왜냐하면 거짓말이니까.


거짓말은 호러블 한 것이고, 테러블 하다고 우리는 배우며 커왔다. 사람들을 상대로 거짓말을 했을 때 사람들의 충격은 실로 컸다. 그러나 시간이 좀 지나 처음에 한 거짓말보다 더 큰 거짓말을 하게 되면 이전에 충격을 받았던 거짓말에 관한 것은 잊어버리게 된다.


거짓말이라는 건 살아있는 생물과 비슷하다. 시간이 흐르면 먼저 한 거짓말에 망각을 입혀 잊어버리게 된다. 그리고 이내 다른 거짓말에 눈을 돌리고 달려들게 된다. 거짓말은 인간처럼 새끼를 낳아서 번식을 한다. 거짓말은 생존 본능에 활력을 준다. 마치 에너지원을 공급받는 인공지능과 같다. 새끼를 치고 번식을 한 거짓말을 대했을 때 사람들은 이전 보다 수위가 높지 않으면 다행이지, 뭐. 하게 된다.


거짓말이란 권력과 같아서 하면 할수록 힘이 막강하게 붙는다. 거짓말을 잘하기만 해도 사람들과 돈이 따라붙는다. 하루키의 단편소설 ‘침묵’을 보면 이 거짓에 대해서 잘 나온다. 소설 속에는 거짓말 같은 사실을 넌지시 흘린다. 이건 사실이지만 진실은 아니다. 하지만 사람들은 그 거짓 같은 사실만을 들을 뿐 진실을 보려고 하지 않는다. https://brunch.co.kr/@drillmasteer/2939


거짓말이 힘을 얻어 사람들을 모으면 진실은 가려지고 피해자는 결국 도망가거나 삶의 끝으로 떨어지게 된다. 한 방송인은 하던 모든 방송이 거짓말로 인해 전부 못하게 되었다. 단 하나의 프로그램만 그를 믿어주고 끝까지 기다려 주었다. 물론 법도 피해자의 편을 들어주었다. 그러나 거짓말을 통해 지금까지 와버린 시간 속에서 많은 것을 잃고 다치게 되었다. 가해자는 법정구속이 되지 않아서 심리를 받는 그날까지 계속 자신의 채널을 통해서 입을 털고 있다. 거짓말은 재미있고 자극적이기 때문에 그 말을 들으려 하는 사람들은 진실을 들으려 하는 사람들보다 훨씬 많다. 거짓말이란 그런 것이다.


집에서 자정을 지나 티브이를 틀었더니 전원일기가 하고 있었다. 301회였다. 80년대의 분위기가 물씬 났다. 제목은 ‘우리 마음의 영원한 고향, 서울행’이었다. 금동이가 아직 어린이였을 적 영상이었다. 양촌리에서 돈을 벌고자 서울로 간 노마 아부지가 아내가 먹고살기 힘들어 도망가고 막노동을 하는데 서울에 올라온 일용과 용식(유인촌)이 너무 힘들게 사는 노마 아부지를 데리고 양촌리로 가려고 하고, 성질이 더럽고 욕쟁이 노마 아부지는 술만 마시면 엉망진창 인간으로 변해서 자신을 그만 놔두라고 한다.

301회에는 서울에 간 용식과 일용이를 친구가 버스를 개조한 국숫집에 데리고 가서 국수를 먹는데, 정말 맛있게 먹는다. 먹는 영상이 길게도 나온다. 거의 5, 6분 정도 된다. 그동안 일용과 용식이가 국수를 얼마나 맛있게 후루룩 먹는지 오밤중에 보니 침이 꼴깍 넘어갔다. 막노동을 하는 곳은 서울이지만 양촌리보다 더 외진 곳으로 노마 아부지는 어린 노마를 집주인아줌마에게 맡기고 노동을 하지만 돈은 전혀 벌리지 않고, 노마는 감기가 걸려고 감기약 한 번 사 먹이지 못하고 자신의 삶이 이렇게 무너질 줄은 몰랐다.

자존심이 너무 강해서 친구들이 양촌리로 돌아가자고 해도, 고향에 간들 살 집과 뭘 해야 하는지, 너무나 막막하기만 하다. 친구의 괴로움을 보다가 더 괴로운 용식이가 새벽에 집에 전화를 걸어 아부지를 깨운다. 양촌리 회장인 최불암이 자다가 일어나서 그 괴로운 둘째 아들의 이야기를 듣는다. 그리고 데리고 내려오라고 한다. 그 사이에 용식과 일용은 2대 1로 노마 아부지와 난닝구 바람으로 결투를 펼치고, 울고 짜고 사는 게 왜 이렇게 힘드냐고 소리를 지르고,,,


전원일기 속 301회의 주인공들의 나이는 아마 20대일 것이다. 귀동에게 안겨 있는 노마도 2살인가? 정도밖에 안 되어 보이고. 80년대가 그렇게 힘들었으면 지금 2천 년대가 넘어가는 지금은 훨씬 삶이 나아지고 살기가 편안가 하면 그렇지도 않다. 그.렇.지.도. 않은 게 아니라 절대 그렇지 않다. 이건 김미경 강사가 한 말인데, 돈을 벌었는데 안 모아지지, 시댁, 친정 들어가는 돈은 많지. 40대가 되면 애들이 중고등학생이 되는데 이때부터 숨겨진 진실이 드러나게 된다. 30대에 결혼해서 애 낳고 정신이 하나도 없다가 40대가 되면 조급한 것이다. 대부분 가장이 49살에는, 50살이 되기 전에는 반드시 뭔가를 이루어 놓아야 한다고 생각을 한다. 하지만 그렇게 안 되니까 무너지는 사람은 지지대 없이 무너지는 것이다.


김미경 강사가 보니 40대 남자들이 너무너무 딱한 것이다. 멋 모르고 결혼을 해서 돈은 본인이 다 버는데 애들이 그 돈은 다 쓰지, 애들이 그렇다고 돈을 쓰면서 아빠, 감사합니다! 하면 좋은데 애들은 중학생만 되면 아빠를 집안에서 제일 싫어한다. 아빠는 점점 애들과 멀어지기만 한다. 학교 다녀온 애들에게 시험 잘 봤냐 하면, 예으 같은 대답 같지도 않은 대답을 하는 둥 마는 둥 하지, 그냥 방에 쓱 들어가 버린다. 어떤 아빠는 거실에 앉아 있으면 방에서 나 나가니 밖에 나가는 동안 아빠는 방 안으로 들어가 있으라고 문자를 보내기도 한다.


남편들은 서럽다. 집안에서는 친한 게 권력이다. 안 친하면 권력이 전혀 없다. 엄마가 아이들과 친하면 집안에서 제일 권력자다. 일드, 츠츠미 신이치 주연의 ‘슈퍼 샐러리맨 사에나이씨’를 보면 아주 잘 나온다. 코믹한 드라마지만 남편은 집안에서 빨래, 식사준비, 설거지까지 해야 하고 아내와 아이들의 목욕물까지 받아놔야 한다.

남편은 집 안에서 권력이 하나도 없어서 소파에 쓰러졌다가 자기 침대에 쓰러졌다가 어딜 가도 내 것이 아닌 것만 같다. 용돈 30만 원 가지고 살다 보면 아이들에게 전부 투자한다. 학원비, 용돈,,, 남편은 자신에게 투자를 하지 못한다. 그래서 남자 40대가 직장에서 가장 많이 하는 말이 “내가 언제까지 이걸 할 수 있을까?”라고 한다. 근데 이 불안이 혼자만의 불안인 것이다. 혼자서 떠안고만 있다. 누군가에게, 아무에게도 털어놓지 못한다. 자기계발을 위해서 자기에게 아무 투자를 하지 못하는 게 지금 현재, 2000년대를 넘어선 요즘 많은 40대 남편들이 떠안고 있는 고민이다.


투자하지 않은 사람은 투자하지 않는 대가를 치르게 되는데 남편들은 그 사실을 아주 잘 알고 있다. 그렇기에 50대가 오는 게 두려운 것이다. 고독사하거나 죽는 남편들 중에 50대보다 40대가 지금은 더 많다고 한다. 남편들은 불안하고 초조하게 50대를 맞이한다. 하지만 김미경 강사는 말한다. 40대에 다 이루려고 할 필요가 전혀 없다. 그리고 그렇게 이루는 사람도 거의 없다. 지금 자신의 모습을 거울에 비추어 보면 예전에 비해 조금 낡고, 조금 못쓰게 되었을지라도 그 자리에서 인생의 반은 이루었다고 한다. 그리고 나머지 반은 50대부터 또 이루면 된다.


전원일기 301화에서 갈등 끝에 귀동이가, 즉 노마 아부지가 어린 노마를 안고 용식과 일용과 함께 같은 버스를 타고 고향으로 간다. 그리고 버스에서 내렸을 때 고향 친구들 – 응삼이를 비롯한 친구들이 잘 왔다며 반갑게 맞이한다. 노마는 비록 엄마는 없지만 ‘나의 첫 심부름’에 나오는 아이들처럼 양촌리의 마을 어른들이 자신의 아들처럼 돌보며 키워줄 것이다.


그래, 우리 인생에 있어서 한 번은 이렇게 해피엔딩으로 끝내자. 행복하다는 거 좋은 거잖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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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첫 심부름은 일본의 관찰 예능으로 2008년인가, 그때부터 지금까지 해 오고 있는, 보고 있으면 내 마음속에 미미하게 아이로 남아 있으려는 마음을 건드리는 게 느껴진다. 2세에서 5세 정도의 아이에게 생애 첫 심부름을 시키고 잘 하는지 그걸 보는 프로그램이다. 한 편당 짧은 분량은 7분짜리부터 길면 20분 정도 된다.

우리는, 현대인들은 방송과 유튜브 영상으로 너무 자극적인 일들에 노출되어 있고 중독되어 있다. 그리고 점점 더 강한 자극을 원한다. 아, 나 좀 벗어나고 싶은데, 그럴 때 ‘나의 첫 심부름’을 보라.

고작 3세 정도 아이가 심부름을 제대로 하기가 어렵다. 우리나라에도 이런 프로그램이 잠깐 있었는데 우리와 다른 점은 우리나라의 아이들은 이미 방송과 카메라에 적응이 되었고 아빠를 따라 많이 노출이 된 아이들이고, 일본의 아이들은 정말 아무것도 모르는 상태에 심부름을 하게 되는 일이다. 신밧드의 모험인 것이다.

엄마가 아이에게 심부름을 시키며 이제 엄마랑 같이 갈 수 없다는 말에 이미 울기 시작하는 아이부터, 또 엄마 마다 달래주는 방식도 각각 다르다. 이제 너는 3살이야, 애가 아니잖아, 너는 2살이 아니고 3살이야. 그러면 아이가 그걸 받아들이고 눈빛이 달라지기도 한다. 그래! 할 수 있어!

아이들은 실패를 통해 세상을 알아 간다. 아이들은 심부름을 하다가 길거리에 핀 꽃이 있으면 주저앉아서 꽃을 보기도 하고, 온갖 방법으로 똑바로 가기를 본능적으로 피해 간다. 옆길로 샌다. 어떤 아이는 아빠의 심부름으로 물고기를 들고 오다가 다 쏟기도 하고, 자판기에 동전까지는 넣었는데 버튼을 누르지 못해서 20분 정도를 고민만 하고 있다.

눈에 보이는 모든 것에 호기심을 갖고, 보고 느끼고 반응한다. 그리고 즐거워하기도 하고 무서워하기도 하는데 너무나 사랑스럽다. 그래서 매회 기대감과 함께 또 이번 아이는 어떤 기상천외하고 천진난만함으로 우리를 웃고 울릴까 하게 된다.

10분짜리 2화에서는 엄마 심부름하다가 하지 않고 놀다가 전화로 엄마에게 거짓말하다 걸리기도 하고, 11분짜리 3화에서는 심부름으로 양배추와 양파를 가져오는데 밭에서 뽑아오기도 하는 등 정말 대견한 모습도 있다.

이런 아이들의 관찰 예능이 가능한 것은 이웃 어른들이 전부 이 아이들의 역사를 다 알고 있다는 것이다. 태어났을 때부터 커가는 모습을 알기에 심부름을 오면 아니, 이 귀여운 아이가 벌써 이렇게 심부름을 왔나, 하며 이웃 어른들 모두가 아이들을 바라보고 지켜준다.

도쿄 같은 대도시가 아닌 시골마을이라 가능하다. 어른들은 아이들의 심부름을 적극적으로 대신해 주지는 않는다. 위에서 자판기에 동전을 넣는 것 까지는 성공하지만 손이 닿지 않아 고민하는 아이에게 이웃 어른이 다가가서 직접 버튼을 누르지 않고 아이가 버튼을 누를 수 있게 도움을 준다. 그렇게 이웃 어른들이 아이의 성장을 지켜봐 준다.

아이는 부모만이 키우는 게 아니라 한 사회가 같이 키운다는 말을 아주 잘 알 수 있는 방송이다. 우리 어른들이 해야 하는 일은 아이들을 따뜻하게 지켜봐 주고 아이들의 성장을 재촉하지 않고 기다려주는 것이다. 그 속에는 아이의 실패가 실력으로 변해가는 모습이 있기 때문이다.

이 프로그램을 보면 아이는 어른들의 스승이다,라는 말을 실감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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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스토예프스키는 가정사가 어두웠다. 아버지가 의사이긴 했는데 약간 사이코 의사였다. 아버지부터 도박 중독이었다. 치료비 받은 돈을 전부 도박으로 날려 버렸다. 가난도 전염이 된다는 것에 집착하는 아버지였다. 가난도 질병이라 유전자를 타고 전염이 된다고 믿고 있었다. 절대로 돈이 없어 보이면 안 된다고 해서 돈이 없음에도 불구하고 옷이나 남들에게 보일 때 비싼 장신구로 치장을 하고 다녔다. 그런 모습을 보고 도스토예프스키가 자랐다. 아버지가 도박을 하는 모습을 보고 자랐으니까 아들인 도스토예프스키도 조금씩 도박을 했다.


도스토예프스키의 자서전에는 아버지가 가족에게 돈을 한 푼도 가져다준 기억이 없다고 했다. 20대 초반 때 노동자 농민 해방 운동을 했다. 해방 운동을 하다가 잡혀간다. 보통 농민 해방 운동을 하다가 잡혀가면 기껏해야 5개월 정도 살다가 나오는 거였는데 이상하게도 도스토옙에게는 사형선고가 떨어진다. 너무나 놀란 도스토옙. 나 죽는 거야?


그래서 시베리아로 끌려가서 실제 사형집행 순간까지 오게 된다. 눈은 안대로 가리고 팔은 뒤로 묶여서 사형수처럼 끌려 온다.

집총 차렷!

여기까지 오게 되었다. 발포하려는 찰나 누군가 달려와서 황제폐하가 사면복권해 주었다,라고 한다. 모두 다 알겠지만 니콜라이 황제가 도스토예프스키를 가지고 논 것이다. 봐라 백성들아 나 니콜라이 황제는 이렇게 너그러운 인물이다스키~


쇼를 한 것이다. 이게 니콜라이 황제 자신에는 쇼였겠지만 도스토예프스키에게는 혼이 탈출하는 엄청난 쇼크인 것이다. 자서선에는 집총 발사 하는 순간, 나에게 5분만 더 있다면 그 1초를 백 년 같이 살 수 있는데.라고 적었다. 니콜라이의 이 쇼에 도스토옙의 뇌가 충격을 강하게 받은 것이다. 이 트라우마를 극복하기 위해 도스토옙은 도박을 하기 시작했다.


그러면서 완전히 도박중독이 되어 버린다. 그런데 돈은 따지 못하고 전부 잃어버리니까 도박할 돈이 없는 것이다. 그래서 도스토옙이 무엇을 했냐면 여러 출판사를 다니며 전부 원고 계약을 해버린다. 원고료를 미리 당겨 받아서 도박을 해버린다.


여기서 잠깐, 우리가 도스토옙의 소설을 읽어보면 알겠지만 문장이 아주 길다. 심지어는 한 문장이 한 페이지를 넘어가는 경우도 있다. 그 이유는 그 당시에는 원고료를 글자수대로 쳐주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빽빽하게, 길게, 미친 듯이 계속 쓴 것이다. 도스토옙은 이걸로도 도박할 비용을 마련하는데 모자라서 속기사를 고용해서 글을 썼다. 그때 안나라는 20대 초반의 속기사를 고용을 한다.


도스토옙이 웅얼웅얼 말을 하면 안나가 엄청난 속도로 받아 적었다. 그렇게 해서 만든 히트작 제목이 ‘갬블러’이었다. 도박꾼이라는 말이지.

안나, 오, 좋아, 더 빨리, 더 빨리 적어라.

그러면서 도스토옙은 이 안나라는 여자와 눈이 맞아서 결혼을 하게 된다. 나이차이가 25살이 났다. 그런데 이 안나가 겜블러를 쓰면서 도스토옙의 도박중독을 알아봤지만 말리지 않았다.


안나! 원고료 들어온 걸 안다! 빨리 돈 내놔! 도박해야 해!


보통의 아내들과는 달리 안나는 모든 돈을 다 내준다. 포커 치라고, 도박하라고. 지금 내가 말린다고 말을 들을 사람도 아니고 3주 치 도박을 하고 돈을 잃으면 또 3주 치의 원고를 쓰면 된다고 안나는 생각 했다. 안나가 가지고 있는 목걸이 귀걸이까지 전부 다 팔아서 도스토옙의 도박비에 쓴다. 안나가 쓴 글에 ‘도박은 지금 내가 하지 말라고 해서 끊을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이건 병이다, 내가 우리 남편 병을 고쳐주겠다’라고 했다. 도스토옙은 안나의 폐물까지 다 날리고 집에 편지를 보낸다.


미안해 여보,

또 날렸어.


이렇게 편지는 시작한다. 하지만 도박을 끊겠다고 하지는 않는다. 그러면 안나는 어떻게 돈을 마련해서 준다. 그렇게 해서 도박 자금을 더 벌기 위해서 쓴 소설이 '죄와 벌'이다. 이 소설에 주인공이 자신의 물건을 전당포에 맡기는 심정이 나오는데 도스토옙 자신의 이야기다.


아무튼 이 짓을 십 년 정도를 한다. 안나가 돈을 마련하고, 남편이 도박비로 날리고, 또 안나가 어떻게든 돈을 마련하고, 돈을 날리고. 이 비극적인 무한굴레를 십 년이나 간다. 그러다가 어느 날 안나가 도박비를 건네주면서 이게 남은 마지막 돈이라고 한다. 이제 더 이상 팔 것이 없다, 이거 팔면 아들과 나는 굶어 죽고 말 거야. 하지만 그 돈까지 도박으로 날려 버린다.


그리고 정말 어린 아들이 두 달 동안 굶는다. 거기에 도스토옙이 충격을 받는다. 그때 처음으로 정신을 차리고 안나에게 무릎을 꿇고 이제 어떻게 하지? 그러자 안나가 우리 세 가족이 다 살려면 재정권은 자신에게 달라고 한다. 그러면 내가 가족을 살리겠다. 그리고 안나가 재정권을 가지고 간 후 처음으로 한 일이 출판사를 차려 버린다. 그리고 처음으로 돈을 벌어서 2층집을 마련한다. 그 집에서 도스토옙이 쓴 마지막 소설이 바로 이 책 ‘카라마조프가의 형제들’이었다. 이 소설을 쓴 후 도스토옙은 한 달 뒤에 죽는다.


남편이 죽을 때 안나는 고작 서른 살이었다. 다른 사랑을 할 수도 있지만 안나는 남편의 명예를 지켜준다며 재혼을 하지 않는다. 그리고 도스토옙의 작품들을 모아서 2층 양옥집에 전부 전시를 한다. 문학전시관을 만든다. 그리고 안나는 죽을 때까지 문학센터를 관리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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잉크냄새 2023-03-09 23:3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카라마조프가의 형제들>은 도박을 끊고 쓴 소설인데도,,,무지하게 길군요.

교관 2023-03-10 11:15   좋아요 0 | URL
사실 저 끝까지 않 읽었어요 ㅋ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