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텔에서 조식을 먹을 때 스탠더드는 베이컨에 계란 프라이 서니 사이드 업으로 먹는 것이다. 맛도 좋고, 맛이 좋고, 음 그냥 맛있다. 호텔에서 잠을 자면 조식 먹는 맛이 있다. 특별히 그 전날 대단한 일을 치르고 너무 피곤하여 폭력적인 잠에 휘둘리지 않는 이상, 아니 그렇다고 해도 호텔에서 다음 날을 맞이하면 조식을 먹어야 한다. 요즘은 호텔식 모텔에서도 맛있는 조식을 제공한다.


이미 십 년 훨씬 전에도 대구의 한 모텔은 조식이 맛있기로 유명해서 아침에 커플들이 식당에서 부스스하게 앉아서 조식을 맛있게 야금야금 먹는다고 했다. 조식을 먹다가 서로 눈이 마주치면 머쓱해지기도 했다고 한다.


집에서도 가끔 프라이에 베이컨을 구워 먹는데, 베이컨이 있으면 좋겠지만 베이컨은 잘 구비해두지 않는다. 베이컨대신 두부를 대신해도 좋다. 두부도 종류가 많다. 뜨거울 때는 맛있는데 식으면 맛이 떨어지는 두부가 있다. 그런 두부는 피하게 된다. 그런 두부를 어떻게 아느냐 하면 자주 먹다 보면 알게 된다. 맛있게 구운 두부와 계란 프라이가 베이컨과 계란 프라이의 조합보다 맛도 좋고 훨씬 나을 때가 있다.


어린 시절에 전통시장에서 들기름에 지글지글 구운 두부는 정말 맛있었다. 나는 그때 어렸지만 그걸 알 수 있었다. 맛있는 두부를 먹을 수 있는 삶, 그건 정말 축복받은 인생이다. 지금은 대부분 공장두부를 먹고 있지만.  공장두부도 나는 좋다. 공장두부도 공장에서 나오는 즉시 받아서 먹으면 아주 맛이 좋다고 한다. 언젠가 그렇게 먹어 볼 수 있을까.


엄마는 종종 계란프라이에 두부를 한 접시에 같이 주었다. 그러면 별반 다를 게 없는 식탁도 특별해 보였다. 어린 시절에는 그 한 접시가 티브이에서 보던 미드 속 식탁 같았다. 어떤 날은 콩자반도 같이 곁들였다. 특히 밥 대신 햄버거 빵이 대신하는 날이면 더더욱 식탁이 있어 보였다. 어릴 때 가끔 동생이랑 사이다를 와인 잔 같은 잔에 받아서 마셨던 적이 있었다. 그러면 그 시간이 특별해졌다. 금방 마셔버릴 사이다도 꽤나 공을 들여서 마셨다.


특별함은 언제나 평범함에서 나온다. 실력은 실수에서 나오고, 나는 울 엄마에게서 ㅋㅋㅋ 나왔고.


귀한 음식도 흘러넘치면 맛도 그렇고, 오히려 많아서 덜 찾아 먹게 된다. 바나나가 그렇다. 바나나, 얼마나 맛있는 과일인가. 내 어릴 때 바나나가 귀해서 자주 먹을 수도 없었다. 병원에서 주사 맞고 엉엉 울고 있으면 바나나 하나 얻어먹을 수 있었다. 열대과일이라 비싸고 맛도 귤이나 자두와 달라서 한 번 먹을 때에는 너무 기분이 좋았다. 바나나 하나에 행복했던 어린 날이었다. 어른이 되면 돈 많이 벌어 이 맛있는 바나나 실컷 사 먹어야지. 어른이 된 지금 바나나는 이제 원숭이도 잘 먹지 않는다. 너무 많고 아주 많기 때문이다. 게다가 열대과일 대부분이 당도가 너무 높아서 과일이 건강에 최고야,라는 말이 무색하게 되었다.


특별했던 바나나는 시간이 흘러 너무 평범하게 변했다. 그런 존재가 있다. 스파게티가 그렇다. 스파게티가 예전에는 고급음식에 속해서 가격이 아주 비쌌다. 구라파에서는 서민음식인 스파게티나 파스타가 한국에서 귀한 대접을 받았다. 스파게티를 파는 식당의 분위기 때문이었다. 카페 같은 곳에서 음악이 나오고 테이블과 조명이 예쁜 곳에서 포크로 돌돌 말아먹으니 커플이나 여자들이 친구끼리 가게 되면서 가격이 비싸도 카페의 분위기가 좋으면 지갑 열기를 마다하지 않았다.


스파게티보다 짜장면이 훨씬 맛있었는데 가격이 저렴했고 곱빼기도 그렇게 비싸지 않았다. 다운타운에 나가야만 있는 스파게티 전문점에 반해 중국집은 동네마다 다 있었다. 음악대신 티브이 소리가 들리고 예쁜 조명과 예쁜 테이블 대신 짜장의 냄새가 홀 안에 가득한 편안한 분위기가 있었다. 운동회를 하거나 소풍 다녀온 날에 짜장면을 먹기도 했다. 가끔 먹는 짜장면은 마음을 다 빼앗길 정도로 맛있었다. 하지만 작금의 시대, 스파게티와 짜장면은 가격도 비슷해졌다. 평준화가 된 것이다. 오히려 짜장면이 더 비싼 곳이 많다. 파스타의 일반화와 짜장면의 고급화가 공존하는 시대다.


스파게티도 짜장면도 옛날에 비해 지금은 많이 변했다. 형태도 가격도 그 외의 것들도.


예전에 거들떠도 보지 않던 것들이 지금은 왕대접을 받는 것도 있다. 그 대표적으로 하나를 꼽자면 피규어다. 한낱 어린이 장난감으로 치부되던 것들이 지금은 돈 없는 어른들은 접근도 할 수 없는 고가의 취미가 되었다. 게다가 코로나 시기, 모두가 수입이 막혔을 때 피규어 유튜브는 승승장구했다. 마블의 피규어만 모으는 사람, 드레곤볼만 모으는 사람, 오래된 프리미어가 붙은 국산 조립식 피규어만 모으는 사람, 여성 캐릭터만, 동물캐릭터만, 스타워즈만, 잡다한 모든 피규어를 모으는 사람까지. 피규어의 세계는 지금 넓고 깊어졌다. 한 마디로 엄청나졌다.


많은 것이 바뀌었다. 모든 것이 손만 뻗으면 잡을 수 있고, 먹을 수 있는 시대가 되었지만 바나나 하나에 행복하고 기뻐할 수는 없게 되었다. 행복의 총량을 채우는 것이 예전의 작은 것에서 오는 행복이 아니라 덜 불행한 것들이 이어지는 것에서 행복을 대신하고 있는 요즘이다. 그렇기에 계란프라이에 두부정도면 괜찮은 것이다. 이 정도를 먹을 수 있는 것이 행복은 아니라 할지라도 덜 불행하기 때문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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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기서는 벚꽃을 구경했습니까. 그곳의 벚꽃은 며칠이나 만개해 있습니까. 이번 벚꽃은 다른 해에 비해 일찍 꽃을 피웠습니다. 일찍 개화하고 만개해 버린 탓에 벚꽃이 이제는 여기 바닷가에는 거의 다 떨어져 버렸습니다.


벚꽃이 아름다운 이유는 아주 잠깐 피었다가 져버리기 때문입니다. 벚꽃이 떨어지는 속도는 비가 내리는 속도에 비례합니다. 그래서 벚꽃이 떨어지면 꽃비가 됩니다. 비는 사람을 적시지만 꽃비는 마음을 적십니다. 비는 인간을 축축하게 적시지만 꽃비는 마음을 촉촉하게 합니다.


벚꽃이 피었다가 무화되는 속도만큼 기묘한 감정에 휩싸였다가 벗어나곤 합니다. 잔인한 계절 4월이 되었습니다. 그곳은 내내 따뜻하지요? 4월은 거짓말로 시작을 할 수 있습니다. 거짓말 같은 일이 벌어졌던 1일은 그렇게나 좋아했던 장국영이 죽은 날입니다. 높은 곳에서 벚꽃처럼 떨어졌습니다. 바람에 날리듯 하늘로 가버렸습니다.


역시 사월은 잔인합니다. 우울하군요. 다른 얘길 하겠습니다. 애들은 다 착합니다. 그러나 애들이 왜 다 착해야만 하는 걸까요. 좀 못됐다고 해도 어른들만큼 못됐지는 않습니다. 다시 말을 하겠습니다. 애들이라고 해서 못되면 안 되는 것일까요. 아이들은 전부 착할 필요가 없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어른들은 아이들에게 착해야 한다고 말을 합니다. 어떤 어른이라도 다 그렇게 말을 합니다. 어른들은 화가 나는 일이 있다면 그걸 입 밖으로 꺼내거나 행동을 해서 풀기도 하지만 아이들은 착한 콤플렉스 때문에 그렇게 하지도 못합니다. 아이들이라고 해서 왜 스트레스가 없을까요. 하고 싶은 건 많은데 전부 못하게 하니 스트레스가 어른들보다 더 심하면 심하지 않을까요.


늘 착하기를 강요받는 아이들은 이 세상에서 가장 불행한 아이들일지도 모릅니다. 칭찬을 받기 위해 행동을 하는 아이를 봤습니다. 잘 보이기 위해 엄마의 칭찬을 듣기 위해 마치 기계처럼 움직이는 아이를요. 어떻게 생각하세요? 당신의 생각이 너무 듣고 싶군요. 이 세상의 교도소에 갇힌 범죄자들도 어린이였을 적에는 너무나 귀엽고 작은 아이였겠죠.


벚꽃은 아이를 닮았습니다. 금방 사라지니까요. 아이도 아이로 남아있는 시간이 그리 길지 않습니다. 너무나 금방 커버립니다. 벚꽃은 생명의 미학보다 죽음의 미학에 가깝습니다. 벚꽃이 피어나는 모습은 볼 수 없지만 벚꽃이 죽어가는 모습을 우리는 볼 수 있으니까요. 죽음의 순간을 볼 수 있다는 건 축복과도 같은 일입니다.


빨리 떨어져서 아름다운 계절입니다. 더불어 잔인한 계절입니다. 또 편지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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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녁에 조깅을 하고 돌아오는 코스가 몇 개가 있다. 그중에 한 코스로 오다 보면 셀프세차장을 지나쳐 온다. 그곳은 강변 둑으로 달려오기 때문에 세차장이 둑보다 밑에 있어서 그 안에 잘 보인다. 날이 조금만 추우면 세차하는 차는 한 대도 없다. 휑한 세차장에 노래만 크게 들린다. 겨울에는 손이 시려 셀프세차를 하지 않는다. 그러다가 날이 조금만 풀리거나 따뜻해지면 거짓말처럼 우르르 세차를 한다.


어제 지나오면서 아주 기묘한 장면을 보게 되었다. 봄이니까 이제 세차인들의 계절이 다가온 것이다. 열심히 비누거품질을 하고 씻어내고 갈고닦는다. 들어오는 입구에 물세차하는 곳이 있고 거기서 비누거품으로 닦고 물세차를 하고 나면 이동을 해서 손세차를 하는 게 보통이다.


사진으로 보면 저기 저 글자 밑의 검은 차가 들어오는 곳이 입구다. 정면으로 보이는 곳이 물세차를 하는 곳이고, 안쪽으로 들어오면 이렇게 손세차를 하는 공간이다. 그런데 너무 기묘한 광경을 보게 되었는데, 저기 검은 승용차가 세차를 하러 들어와서 대기를 타고 있는 모습이다. 대부분 물세차를 하고 그다음 손세차를 하니까 물세차하는 곳에 차들이 가득 있으니까 대기를 하는데, 물세차하는 곳을 잘 보면 거품세차나 물세차가 끝났는데도 나오지 않고 그냥 거기서 손세차를 하고 있다.


저기 보이는 차들이 다 그렇게 세차를 하고 있다. 여기에 이렇게 손세차하는 공간이 많은데도 그냥 물세차하는 곳에서 걸레로 손세차를 하고 있었다. 그러면 대기하는 검은 차가 나오라고 해도 될 법한데 그냥 계속 기다리고 있다. 그런 차들이 밖으로 죽 줄이 서있다. 이거 너무 기묘하잖아. 이렇게 세차를 하는 사람들의 심리는 무엇일까.


나오라면 하면 나올 텐데도 나오라고 하지 않는 사람이나, 물세차를 하고 나서도 나오지 않는 사람들이나, 그냥 내버려 두는 주인도 내 눈에는 너무나 기묘하게만 보였다. 보통 물세차를 하고 손세차하는(저기 하연 쏘렌토처럼) 곳으로 와서 세차를 하는 게 정상적인데 어째서 이런 기묘한 광경이 펼쳐질까.


나오라고 하면 기분을 건드리는 행위라서 발끈해서 싸움이 일어나서일까? 아니면 여기 세차장만 그런 거겠지? 다른 곳에서는 이러지는 않을 거야. 아마도 시비가 붙어서 세차장을 이용하는 고객들도, 사장도 전부 이 동네 사람들이니까 그냥저냥 넘어가는 것일지도 모른다.


문득 어제 소아과 의사들이 더 이상 소아과 병원을 운영할 수 없다며 이제 그만하렵니다,라고 기자회견하는 모습이 떠올랐다. 치료하기 싫어 우는 아이를 치료하려고 팔을 잡았는데 엄마가 호통을 치고 악담을 늘어놓고 심지어 인터넷에 소아과의 악플을 달아놓는 일들이 너무 많이 일어난다고 했다. 무엇보다 30년 동안 진료비가 동결이라 모두가 이제 우리 그만 포기하렵니다,라고 기자회견을 했다.


지금 아이들은 너무나 안타까운 국면을 맞이할지도 모른다. 꿀벌이 사라지고 있고, 벚꽃이 지금 다 떨어졌다. 이상기후의 현상을 몸소 체험하는 시기가 지금 아이들일지도 모른다. 무엇보다 아파서 소아과를 가려고 해도 앞으로 거의 찾기가 하늘의 별따기처럼 되어 버릴 것이다. 무엇보다 전부 자기중심적이라 마음에 들지 않으면 그냥 시비를 걸고 싸움으로 번질 가능성도 많아졌다. 세차장의 저 모습을 보니 그런 생각들이 떠올랐다. 나 같으면 물세차하는 곳에서 걸레를 들고 오랜 시간 동안 손세차를 한다는 건 아무리 생각해도 있을 수 없는 일이다. 사람들이 전부 나 같지는 않다고 하지만 이렇게, 저렇게 생각을 해도 기묘한 건 기묘하다. 너무 이상하다.


어제는 성월동화를 오랜만에 또 봤다. 이토록 말도 안 되는, 만화 같고 동화처럼 산만하지만 아름다운 영화였다. 물론 장국영이 있어서이다. 장국영은 1인 2역을 했다. 사랑하는 이를 잃어서 열병을 앓는 토키와 타카코도 너무나 예쁘다. 근래에 미용실 남자 헤어디자이너에게 집착을 보이는 무시한 중년의 모습과는 아주 다른 파릇파릇 예쁜 얼굴 토키와 타카코가 장국영을 향해 무한 애정을 발사한다. 그저 뮤직비디오처럼 보였던 성월동화나 보자. 많은 생각이 교차할 땐 그게 최고야.


https://youtu.be/nqvczAynFr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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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게 재미있을 일이가, 이게 이렇게나 재미있어도 된단 말이가. 근래의 마블 영화들, 디씨 영화들이 따라올 수 없을 정도로 잘 만들고 재미있다.

초반에는 만달로리안만큼은 아니지만 뭐 어때, 하는 마음이었는데 5화부터 흑화 하더니 점점 달아오르는 불덩이처럼 마지막 회차까지 재미가 떨어질 줄 모르고 솟아오른다.

보바 펫은 스타워즈 시리즈에서 한 솔로에게 한 방 먹고 사막 밑으로 떨어져 주둥이 이빨이빨 괴물에게 먹혔다. 자바 더 헛이라고, 배가 축 늘어진 찰흙 물에 불려 창문에 집어던져 흘러내리는 듯한 얼굴을 한 쌍둥이를 지키다가 사막 밑으로 떨어져 생사를 알 수 없다가, 현생으로 40년이 흐른 지금 디즈니의 자본과 존 파브로의 극본과 로드리게즈의 연출력이 만나 다시 태어났다.

보바 펫이 초반에는 샌드족에 잡혀서 노예로 있다가 그들을 도와주며 그들에게 인정받기까지의 과거 여정이 나오는데 이 이야기가 무척 좋다. 마치 회사에 취업하여 보잘것없던 내가 하나하나 일을 배워 경쟁업체를 물리치는 뭐 그런 짜릿함이 있다. 보바 펫은 그래서 어쩌고저쩌고 수장이 되었는데 널리 인간을 복되게 하고 싶은데 시민은 시민대로 대들고, 반대 세력은 반대 세력대로 대든다. 만만치가 않어.

5화에서는 만달로리안이 등장하는데 이때부터 진짜 재미다. 보바 펫과 만달로리안이 합세하여 거대세력과 전투를 벌이는 이야기가 마지막까지 이어진다. 만달로리안이 등장해서 헤어진 그로구를 찾아간다. 그로구는 열심히 마스터 루크에게 포스를 배우고 있다.

귀염 터지는 아가아가 지천명 그로구의 행동 하나하나가 보는 이들을 미치게 만든다. 하지만 만달로리안은 그 멀리까지 가서 그로구를 만나지 못하고 보바 펫에게 온다.

이제 본격적인 전투를 하는데 지를 키워준 양 아빠 만달로리안을 만나러 비행선을 끌고 그로구가 온다. 그때 그 둘이 만나는 장면 뭐지? 왜 눈물 나려 하지? 가면 때문에 얼굴 표정이고 뭐고 안 보인다고. 그로구의 표정 역시 눈만 뜨고 있을 뿐인데 이 감격은 도대체 뭐지?

포스를 배운 지천명 귀염 뽀짝 요다인 그로구의 포스 활약 덕분에 만달로리안은 생명을 잃지 않는다. 만달라로리안도 그렇고 보바 펫도 그렇고 스타워즈 영화 속에서 하찮게 지나쳤던 캐릭터들이 여기서는 전부 입체적이 되어 진짜 살아서 자신의 몫을 하는 게 너무 좋다.

그로구는 그래픽이 아니라 인형으로 촬영을 했다고 한다. 이제 만달로라인 시즌 3으로 넘어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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멍게를 요즘 하루 건너 하루 먹고 있다. 멍게를 먹을 때는 초장도 간장도 그 무엇도 곁들이지 않고 오로지 멍게의 맛으로만 먹는다. 워낙 좋아하기도 하지만 멍게를 먹을 수 있을 때 실컷 먹어두자. 요즘 멍게가 뉴스에 자꾸 오르락내리락하기 때문에 언제 어떻게 될지 아무도 모른다. 이제 내가 어릴 때 내 아버지가 나에게 멍게를 까 주던 것처럼 요즘 아이들은 멍게를 먹지 못할지도 모른다.


앞으로의 어린이들은 멍게라는 걸 유튜브나 책에서만 볼 수 있을지도 모른다. 그런 걸 생각하면 아이들이 딱하다는 생각이 들지만, 아이들 입장에서는 지금 서 있는 세계가 재미있고 호기심 가득한 곳이며, 지금 먹는 음식이 제일 맛있는 먹거리 일 테니 모르면 모르는 대로, 그것대로 괜찮지 않을까 싶다.


멍게의 뭉근함? 멍게의 간간함? 멍게의 물컹함은 어떤 음식도 가져보지 못한 맛을 입안으로 퍼지게 만든다. 멍게가 노란색인 것도 마음에 든다. 만약 멍게가 녹색이나 연두색 또는 자주색이라면 이렇게까지 먹게 되지 않을지도 모른다. 왜 그러냐고 묻는다면 카레가 노란색이 아니라 자주색이면 먹겠냐고?라고 대답하겠다.


멍게를 좋아하지만 한 번 먹을 때 너무 많은 양은 별로다. 사진에 보이는 정도의 양만 한 번 먹을 때 먹는다. 야금야금, 꼭꼭 씹어서 멍게의 맛을 최대한 느낀다. 그런 일종의 과정이 좋다.


횟집에 가면 멍게를 한 접시 꼭 시켜 먹는다. 멍게는 인기가 없어서 다른 사람들은 멍게에게 관심을 주지 않는다. 메인 회에 젓가락을 질을 할 뿐이다. 그러나 나는 멍게를 먹는다. 오물오물. 멍게가 가장 맛있을 때는 아무래도 바닷가에 앉아서 멍게를 먹는 맛이 좋다. 간이 횟집 같은 곳. 밑에 바다가 와서 철썩철썩 부딪히는 소리가 들리고 만취라도 하게 되면 곧 떨어져 버릴 것 같은 포구에 붙어 있는 간이횟집의 목욕탕 의자에 앉아서 멍게를 먹는 맛이 있다.


그런 간이 횟집이 양옆으로 일렬로 죽 이어져서 한 번 지나가면 주인 할머니들의 고객유치의 찬란한 거짓말을 들을 수 있다. 만약 내가 못생겼다면 여기를 한 번 지나가기를 바란다. 모든 간이 횟집 할머니들이 예쁘다고 말해준다. 이렇게 예쁜데 여기 와서 회 한 사라 하고 가,라고 한다.


보통 몸에 좋은 음식들은 대부분 맛이 없다. 나열하자면 당신이 평소에 별로 좋아하지 않는 음식들입니다. 그러나 그런 음식 중에 멍게만큼은 몸에 나쁘지도 않은데 아주 맛있는 음식이라고 나는 생각한다. 물론 내가 멍게를 좋아해서 그럴지도 모르지만. 아무것도 곁들이지 않고 오로지 멍게의 맛으로만 먹는데 맛있는 건 멍게만 한 것도 없다.


맛있는 건 이상하지만 몸에 좋지 않다. 탕수육, 찌개, 오징어튀김 등등등. 예로 전 세계인의 음료, 지구인이 가장 좋아하는 콜라. 이 청량함, 컵에 따랐을 때 들리는 그 소리, 한 입 마셨을 때 그 맛을 모르는 사람은 없다. 콜라가 몸에 매우 나쁜 음료라는 건 다 안다. 라벨을 보면 콜라에 들어가는 물 빼고는 전부 나쁜 식품첨가물뿐이다. 그 식품첨가물을 물에 녹여서 마른 용액이 콜라다. 그 안에서 제일 좋지 않은 첨가물이 캐러멜 색소라고 한다. 우리가 먹는 음식 여기저기에 이 안 좋은 캐러멜 색소가 많이도 들어간다. 족발에도 흑설탕에도.


캐러멜 색소에는 이미다졸이 있다. 이미다졸은 발암물질이라고 한다. 그런데 이미다졸이 체내에 들어오면 면역력을 약화시키는 일을 열심히 한다. 암세포는 인슐린을 아주 좋아하기 때문에 인슐린이 조금씩 천천히 분비가 되어야 하는데 많이 분비가 되면 암세포가 야호 하면서 달려든다. 하지만 우리는 콜라를 포기할 수 없다. 아니 포기하지 않는다. 우리의 작고 쪼글쪼글한 이 뇌가 이 청량감을 강력하게 원하기 때문이다.

우리 집은 바닷가 근처라서 문 열고 나가면(라는 말은 좀 거짓말이지만) 바다가 있다. 여기에 멍게를 한 접시 사 와서 먹으면 맛이 좋다.


어제는 오전에 바닷가를 찾았다. 바다에 나오면 바닷바람 때문에 그렇게 따뜻하지만은 않다. 서퍼들이 시즌을 준비하느라 바다에 나왔다. 바다가 고요했다. 바다는 이맘때는 늘 고요하다. 하지만 그 속은 알 수가 없다. 마치 여자의 마음 같다.


서핑보드의 색깔도 알록달록하지만 멍게 색감이 눈에 띈다. 이렇게 죽 산책을 하며 30분 정도 걸어가면 포구가 나온다. 그동안은 신경을 쓰지 않아서 그랬는지 모르겠지만 바닷가에 인접한 도로에 야자수가 심어져 있었다. 손에 든 것이 많아서 사진으로 담지는 못했는데 예전부터 있었는지 아니면 얼마 전에 심었는지 모를 야자수가 거리를 따라 행렬로 죽 있었다.


바닷가에 나오면 일단 바다를 보게 된다. 바다를 보면 멍하게 된다. 그런 시간을 바닷가에 나오면 갖게 된다. 나를 비롯해서 인간은 너무 많은 생각과 정보와 선택 속에서 힘들어하며 하루를 보내는 것 같다. 힘들지 않은 하루가 없을 정도다. 그 속에서 시를 읽는다. 시를 읽을 수밖에 없다. 시를 읽지 않으면 그저 하루를 버티다 다음 날을 맞이하게 된다. 뜬금없지만 이런 날은 멍게를 먹자.


멍게, 미나리, 달래의 조합은

초고로운 봄날의 연주다.


달래의 초봄 산 내음이 입 안에 번지고

미나리가 내천의 봄 맑음을 전해주고

멍게의 봄바다가

산과 내천을 두르고

내 입 안으로 들어온다.


지금의 세계가 소멸한다면

봄 내음을 두르고 사라진 나는

행복한 사람이다.


멍게는 관능이며 변하지 않는

자연의 추억을 꽉 쥐고 있어서

봄날의 멍게를 입에 넣으면

현실을 잊게 해 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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