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가 뜨거워 공기를 씹으면 바사삭해야 하지만 엄청난 습도 때문에 눅눅하게 씹혔다. 태어나서 이렇게 습기가 많고 습도가 가득한 날은 처음인 것 같다. 눈으로 이 엄청난 습기가 보이고 숨을 쉴 때마다 입 안으로도 들어오는 것이 느껴질 정도였다. 조금만 달려도 평소 더운 날보다 더 힘들었다. 굉장하다고 생각이 들었다. 거의 매일 조깅을 하러 나오지만 이런 날은 처음이었다. 이런 날 열심히 달리면 땀이 정강이에서도 퐁퐁 솟아나고 눈 빼고는 전부 땀이 나는 경이로운 경험을 하게 된다. 땀을 닦아도 닦아도 눈 안으로 자꾸 흘러 들어가서 잠시 서서 쉬었다. 이렇게 습도가 강하고 엄청나게 더운 날인데도 많은 사람들이 운동을 즐기고 있었다. 즐기지 않는다면 할 수 없는 날이었다.


예전 어릴 때 여름에는 이렇게 지옥 같은, 습하고 무거운 굽굽함이 없었던 것 같은데 그저 나의 착각이려나. 중학교 여름 방학에 친구 집 옥상에 자주 놀라갔다. 중학생이 되기 전에는 놀다가 저녁이 되면 집으로 들어왔지만 중학교 2학년 정도가 되었을 때에는 방학에 친구의 집 옥상에서 놀다가 거기에 텐트를 치고 잠을 자기도 했다. 옥상에 누우면 등이 따뜻했다. 그리고 고등학교 여름방학 때에는 옥상에서 밤을 지새울 때 술을 마셨다. 한 놈이 더 늘어서 각자 집에서 참치 통조림이나 라면을 들고 와서 밤새도록 이야기를 하며 술을 마시다가 새벽이 되어서 지쳐 잠들었다. 몇 시간 잠들지 않았는데 텐트 안이 너무 뜨거우면 자동적으로 일어났다.


밤새 마신 술이 덜 깨서 헤롱거리다가 옥상으로 올라가는 계단에서 보면 앞 집이 보이는데 욕실의 창문으로 그 집 미대 다니는 누나가 목욕을 하고 있어서 우리는 침투조처럼 바짝 엎드렸다. 그런데 옥상 바닥이 너무 뜨거워서 으앗 하는 소리를 한 놈이 내고 그만 누나에게 들켜서 후다닥 도망갔다. 그 녀석 때문에 제대로 보지도 못했는데 생각해 보면 누나는 별로 개의치 않았다. 창문이 컸는데 활짝 열어 놓고 목욕을 했고 우리와 눈이 마주쳤는데 그저 뭐 어때 같은 얼굴이었다. 그리고 계속 비누칠을 했다. 여름이었다. 그런 여름이었다.


매미소리가 어디에서 들리는지 모르겠지만 맴맴맴 요란했고 하늘은 푸를 대로 파랬다. 땡볕에서 놀다가 더우면 아이스크림 하나를 물고 그늘에 앉아 있으면 그런대로 괜찮았다. 바람이라도 불라 치면 고맙게도 시원했다. 지겨울 법도 한데 친구의 집에서 라면을 끓여서 먹고 또 끓여 먹었다. 다시 중학교 여름방학으로 와서, 친구의 집 옥상에는 집에서 버리다시피 한 의자들을 옥상에 올려다 놨다. 눈비바람에 의자는 칠이 벗겨지고 낡았지만 앉아 있기에는 충분했다.


옥상 의자에 앉아서 밤하늘을 보며 이야기를 하며 놀았다. 방학이었다. 여름방학. 친구와는 다니는 학교가 달랐다. 초등학교는 같이 다녔는데 중학교로 가면서 학교가 달라졌다. 친구는 중학생이 되고 나서 덩치가 부쩍 커졌다. 무엇보다 이성에 대해서 심각할 정도로 관심이 많았다. 중학교 때 나에게 공책을 보여주었는데 거기에는 몇 페이지에 걸쳐 수학공식이나 물리법칙이 아니라 좋아하는 여자애의 이름이 빼곡했다. 그저 이름만 처음부터 몇 페이지에 걸쳐 가득했다. 이렇다 저렇다 할 여지 같은 것도 없고 사상이나 생각, 고뇌도 없이 그저 이. 름. 만 가득했다. 그 여자애는 같은 동네에 살고 있고 우리 집과 친구의 집 중간에 있는 집에 살고 있어서 동네에서 자주 같이 놀곤 했는데 녀석이 이성에 눈을 뜨고 느닷없이 러밍아웃을 하는 바람에 같이 있게 되면 예전처럼 왁자지껄하며 떠들썩하게 놀지 않게 되었다.


더 어린 시절의 여름방학에는 집 앞에 해수욕장이 있으니 늘 새까맣게 되어가며 놀았다. 태양빛을 매일 한껏 받아서 그런지 어지간히 덥지 않으면 그렇게 더위도 잘 타지 않았다. 매일이 찬란한 여름의 하루였다. 백사장은 곱고 너무 하얗고 부드러웠다. 뜨거운 모래가 발가락 사이로 파고드는 느낌이 좋아서 자주 해변을 걸었다. 그리고 바다에 풍덩 뛰어들었다. 너무 오래 바다에 있으면 입술이 몸이 추워서 파래질 때가 있다. 그러면 나와서 모래를 파고들었다. 모래가 힘 있게 나를 감싸 안아주는 느낌이 나쁘지 않았다.


이렇게 덥다고 소리쳐도 여름은 물에 불은 실오라기처럼 빠져나가고 있다. 어제는 부쩍 어둠이 빨리 하늘을 덮었고 바람도 달라졌다. 서서히 가을이 밀려오고 있다. 풍경이 달라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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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식을 좋아해서 그런지 음식다큐를 자주 보는 편이다. 음식다큐는 지방 방송국에서 제작하는 다큐가 의외로 아주 재미있다. 특히 국밥에 관한 다큐는 어느 방송사나 다 재미있다. 한국인은 국밥을 퍼 먹을 때 가장 맛있게 먹는 것 같다.


국밥을 다루는 다큐의 특징이 있다. 이 특징은 대체로 어떤 국밥다큐든지 다 비슷한데 오래된 국밥집이 나오고 국밥에 집요할 만큼 오차도 허락지 않는 나이 많은 사장님이 새벽부터 국밥 준비를 하는 모습이다. 그렇게 준비를 하고 있는 사이 거래하던 고깃집에서 고기를 가지고 온다.


그러면 이런 말을 대부분 한다. 만약 그날 고기가 별로 좋지 않으면 바로 퇴짜를 맞고 다시 좋은 고기로 가져온다거나 하는 말을 한다. 그렇게 퇴짜를 맞고 좋은 고기가 들어와서 손님들에게 나간다는 말이다.

이 말은 퇴짜를 맞은 썩 좋지 못한 고기는 다른 국밥집에 납품이 되어 똑같이 손님들에게 나갈 텐데 그렇다면 좀 좋지 못한 고기를 받아서 파는 국밥집은 가격을 좀 깎아주나? 그것도 아닐 것이다.


다른 다큐영상에서는 가끔 이런 장면을 본다. 매일 잡아서 그날그날 공수해서 고기를 끓인다 => 같은 말들. 애초에 바로 잡아서 그날 국밥집에 납품하는 고긴데 좀 상태가 안 좋다는 말 자체가 어울리지 않는다. 이런 말 자체가 아예 필요 없는 말이다. 왜냐하면 신선한 고기이기 때문에 그날 새벽에 받아서 사용하는 고기는 그냥 국밥에 적합하다고 보면 된다.


썩 좋지 않은 고기라는 말은 말 그대로 몇 날며칠 있던 고기를 가져다줬을 경우다. 결국 퇴짜를 맞은 그 좋지 않은 고기는 다른 국밥집에서 또 다른 손님들의 입으로 들어간다. 만약 썩 좋지 않은 고기를 먹는 손님이 그 사실을 안다면 어떻든 기분이 좋지는 않을 것이다.


애초에 그날그날 납품하는 고기는 동등하게 전부 좋아야 정상인데 그렇지 않은 사정이 있는 모양이다. 작은 의미로 식재료가 별로 좋지 않은 것을 괜찮아, 이 정도면 돼, 하며 조리를 해서 사람들에게 내놓는 것도 사기라면 사기일 수 있다. 도덕적 사기.


한때 장어 무한리필 가게에서 이런 식으로 장사를 했었다. 지금도 그러는지는 모르겠지만. 장어는 기름이 많아서 오래되면 산패한다. 무한리필 집이니까 마음껏 먹을 수 있는데 장어에 많은 양념이 많이 발라져서 구우면 이 산패한 맛을 느끼지 못한다. 그래서 자꾸 먹게 된다. 결국 산패한 장어가 몸속으로 들어가 탈이 나게 된다.


그래서 장어 집은 수족관이 있는 곳을 가라고 했고 횟집은 수족관이 없는 횟집에 가라고 했다. 횟집 앞에는 대부분 수족관이 있다. 그리고 그 안에 싱싱한 고기들이 있다. 그리고 자. 연. 산. 같은 글자도 보인다. 자연산은 마음껏 바다를 돌아다니다가 잡혔기에 갇힌 곳에서 세 시간 정도 지나면 스트레스를 받아서 똥을 싸고 그걸 다시 먹는다. 그래서 거품이 일고 물이 뿌옇다. 고기 상태가 그렇게 좋을 리 없다. 고기가 무슨 균에 걸려있는지도 모른다. 그런데 수족관은 물이 깨끗하게 보여야 하니까 거품을 없애는 소포제를 넣는다. 이런 수족관에서 꺼낸 고기가 싱싱한 자연산일까.


사람들은 활어회를 선호하지만 맛있는 회는 숙성회다. 수족관이 없고 냉장고에 그날 횟감을 잘 숙성시켜 놓았다가 손님들에게 내놓는 회가 훨씬 맛있다. 모든 횟집이 비양심적으로, 다 그렇다는 건 아니지만 여름에 물고기를 비롯해서 해산물을 회로 먹을 때는 조심해야 한다.


그래서 라면이 좋다는 거다. 라면은 동등하다. 부자라고 해서 더 비싼 신라면을 먹고 못 사는 사람이라고 해서 아주 가격이 저렴한 신라면을 먹지는 않는다. 들어가는 재료가 똑같고 싱싱하다 안 싱싱하다 따져들 필요가 없다. 그저 많이 먹으면 건강에 안 좋다고 하니 가끔 끓여 먹으면 된다. 회나 장어도 매일 먹을 수는 없다.


게다가 모든 물가가 전부 고공행진하지만 라면만큼은 50원 내려갔으니 이보다 아니 좋을 수 없다. 라면을 오랜만에 끓여 먹었다. 김치를 넣고 끓여서 그런지 너무 맛있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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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말인데도 주말 같지 않은 건 나이 탓일까. 아니면 평일 주말 경계 없이 하는 일의 스타일 때문일까. 이미 오래전에 주말에도 주말 같은 기분이 들지 않았다. 어릴 때 주말은 그야말로 주말이었다. 아버지가 일찍 퇴근하고 오시는 걸 기다리는 시간도 즐거웠고, 주말에는 평일보다 좀 더 맛있는 음식으로 저녁을 먹었다. 요컨대 새로 구입한 전기프라이팬으로 고기를 구워서 마당의 평상에서 밥을 먹었다. 그러면 옆 집에서도 고기냄새에 이끌려 나와서 다 같이 앉아서 먹기도 했다. 주말이라 다 같이 평상에 앉아서 고기를 구워 밥을 먹으며 어른들은 술잔도 기울였다.


마당에서 밥을 먹으면 마당의 주인이었던 깜순이도 신이 나서 마당을 여기저기 분주하게 뛰어다녔다. 밤이 깊어지면 옆 집 아주머니가 해주는 귀신 이야기에 몸 둘 바를 모르기도 했다. 웍! 하는 소리에 우리는 꺄악 하는 소리를 내고 벌벌 떨었다. 주말이라 가능한 일이었다. 평상의 양 끝으로 모기향을 피웠다. 모기향이 타들어가는 냄새는 이상하지만 좋았다. 모기향 하나가 다 꺼져갈 때면 관아, 모기향, 하면 내가 알아서 하나를 더 불 붙였다.


분명 방학이라 평일 주말 개념이 없을 텐데도 주말에는 주말 만의 분위기가 집 안에 가득 있었다. 밤공기도 주말이라 달라 보였다. 주말에는 주말에만 하는 티브이 프로그램을 보는 재미도 있었다. 여름이니까 주말 저녁에는 특집 공포물이 나왔다. 더울 텐데도 이불을 코밑까지 끌어당겨 티브이 화면 가득 펼쳐지는 귀신들의 세계에 빠져들었다. 일요일 오후 2시가 지나면서 슬슬 주말이 지나간다는 생각에 남은 일요일 오후를 더 열심히 놀았다.


요즘 아이들은 어떨까. 주말이 주말 같지 않을까 아니면 내가 어렸을 때처럼 주말 만의 기분을 만끽할까. 주말이 주말 같지 않은 요즘 예나 지금이나 변함없는 건 요즘에도 일요일 오후 2시가 지나면 이상하지만 허 한 기분이 든다. 주말에도 주말 같은 기분이 들지 않았던 때는 여행이나 서울에 놀러 갔을 때였다. 예전에는 일 년에 두 번씩 서울에 갔다. 백남준 아트 센터에 가기 위해 나는 상경을 하여 며칠씩 머물다 오곤 했다. 그럴 때 주말이 껴도 주말 같지는 않았다. 집에서 보내는 주말과 다르게 여기저기 돌아다녔다.


대학교 때는 신림동에 있는 대학교에 다니는 친구가 신림동 순대타운에서 알바를 하고 있어서 낮동안 돌아다니다가 저녁에 친구 알바하는 곳에서 일을 도와줬다. 일 마치고 사장님에게 얻은 순대와 고기로 친구와 새벽까지 술을 마셨다. 친구는 해병대 입대를 앞두고 아르바이트를 하고 있었다. 친구는 낮에는 신림동 분식집에서 알바를 하고 저녁에는 순대타운에서 알바를 했다. 새벽까지 무슨 이야기를 했는지 몰라도 오랜만에 만나서인지 신나게 이야기를 했다.


우리는 잠이 와서 혜화동에 있는 서울대학병원 로비에서 잠을 잤다. 잠에서 일어나 보니 친구는 없고 나는 환자 가족인 양 어물쩍 병원에서 세수를 하고 부천에 있는 작은 이모댁으로 가서 샤워를 하고 부족한 잠을 잤다. 이모는 나에게 작은 딸냄 방에서 자라고 했다. 당시 이모의 아파트는 60평인가 어리어리해서 방도 더 있는데 작은 딸냄 방에서 자라는 것이다. 이모에게는 딸만 둘인데 침대가 너무 깨끗해서 마구 어지럽히며 잠들기 미안하네라고 생각하는 순간 그대로 뻗어서 잠들었다.


또 하루는 친구와 밤새 술을 마시고 첫 지하철을 타고 1호선을 타고 끝까지 가면서 잠을 잤다. 어느 날은 지옥철을 보여준다며 이른 오전에, 가장 바글바글한 시기에 친구는 나를 지하철에 태웠다. 사람을 구경하는 것은 언제나 재미있다. 하하 죽는 줄 알았다. 사람에게 끼여서 밀려 지하철에 올라탔다. 친구는 적응이 되었는지 그 속에서 잘도 버티고 서서 한 손으로 문고본 책을 읽었다. 서 서울에는 역시 능력자들이 많구나. 아라한 장풍대작전이 그저 나온 영화가 아닌게벼.


주말이어도 주말인지도 모르게 돌아다녔다. 어떤 해에는 과천에 갔다. 주말이었다. 주말에만 경마장이 열리기 때문이다. 경마장은 대단했다. 입구부터 출제 예상 문제집을 팔고 그날 달리는 말도 미리 구경할 수 있었다. 본다고 나는 알 수 없었지만 사람들은 모여들어 말들의 상태를 살폈다. 돈을 거는 방식이 세 가진가, 그렇게 있었다. 단승식, 복승식 또 뭐 있는데, 아무튼 가장 기본 액수로 걸고 경기장 안으로 들어갔는데 우와 콘서트장은 저리 가라였다. 어마어마한 인구가 빼곡하게 자리를 메우고 있었다. 경마가 시작되고 말들이 골인 지점으로 들어올 때는 사람들의 어우우 하는 소리가 우뢰처럼 들렸다. 사람구경은 역시 재미있다.


그날 경마장을 나와서 미술관과 동물원을 구경했다. 춘희의 그 오오오오오 맛있어 하는 영화, 미술관 옆 동물원을 재미있게 봐서 동물원과 미술관을 다 갔다. 그때가 오월의 나른한 오후였는데 동물원의 동물들이 죄다 낮잠을 자느라 제대로 보지도 못했다. 역동적인 모습을 딱 본 게 하마였다. 하마는 낮잠을 자지 않고 돌아다니고 있었는데 우리 쪽으로 엉덩이를 돌리더니 똥을 엄청나게 싸질렀다. 하마는 똥을 싸지르면서 꼬리를 모터 달아 놓은 것처럼 흔들어 재꼈다. 무엇보다, 무엇보다 똥색이 녹색이었다. 초 역동적이었다.


신기했던 건 낮잠 자는 표범 우리 밖에 고양이가 배를 보이며 누워서 낮잠을 자고 있었다. 개미핥기 가까이서 본 게 동물원을 돌아다녀서 본 게 다였다. 나와서 점심을 사 먹고 미술관에서 반나절을 보냈다. 미술품이든, 사진이든, 조각품이든 보고 있으면 시간 가는지 모른다. 백남준 아트도 그렇다. 뭐 알지도 못하는데 나는 백남준의 세계에 깊게 빠졌었다. 주말에 서울에 올라갈 수 없으니 방학에 몰아서 가곤 했고, 대학교 졸업 후 몇 년 동안 그런 일들이 계속 지속되었다.


그러다가 칼로 두부를 싹둑 자르듯 뚝 끊어졌다. 그래서 그런지 주말이라는 기분도, 주말이 되었지만 칼로 잘려 나가 버린 것 같다. 라디오를 들으니 어떤 집에서는 주말마다 아빠가 아이들을 데리고 주말 캠핑을 간다고 했다. 그러면 아이들은 주말을 몹시도 기다리지 않을까. 아이 때에는 집 거실에 텐트를 쳐놔도 마치 우리만의 아지트에 온 것 같아서 재미있는데 캠핑을 가면 얼마나 재미있을까. 주말이 주말 같지 않게 느껴지는 건 날씨 탓이다. 날씨 때문이야. 날씨가 그래서 그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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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자동차 기름값이 거의 1800원대가 되었다. 5월에 ‘이유가 있는 게 아니라 화가 나니까 화를 낸다고’라는 글에서, 넷플 시리즈 ‘성난 사람들 비프’를 이야기하면서 8월 이후에 기름 값이 올라 더 분노를 배설하는 사람들이 늘어날 것이라고 예고했었다. 나 같은 하찮은 인간도 이렇게 앞일이 보이는데 전문가들의 눈에는 얼마나 답답한 미래가 보일까. https://brunch.co.kr/@drillmasteer/3726#comments


라면 값 50원 내려가고 모든 것이 다 올랐다. 그러다 보니 무인 밀키트 파는 곳이나 무인 아이스크림 점에서 도둑질을 하는 사람들이 늘어나고 있다. 우리는 외국과는 달리 카페에서 노트북과 휴대전화를 테이블에 올려놓고 화장실에 다녀와도 아무렇지 않은 그런 나라다. 그런데 길거리에 있는 이삿짐도 그냥 들고 가 버리는 사람들이 늘어난 나라가 되었다.


어제는 식당주인을 성폭행하려다 죽여 버린 60대에게 징역 30년이 선고됐다고 한다. 법은 어째서 일반인들의 도덕적 관점과 전혀 달리 판결이 되는 걸까. 우리나라는 대 범죄자들이 형을 살고 있는 청송 교도소라고 있지만 외국처럼 들어가면 벌벌 떠는 그런 교도소는 아직 없다. 구치소는 어떤 재소자에게는 오히려 위험에서 멀어져 있고 밥도 잘 나오고 편하게 지낼 수 있는 곳이기도 하다. 내가 구치소에서 근무를 2년 해봐서 좀 안다.


지난번에 이야기한 ‘이유가 있는 게 아니라 화가 나니까 화를 낸다고’에서 말한 것처럼 현대인은 분노가 조금씩 쌓여 간다. 자신이 알게 모르게 조금씩, 야금야금 쌓여 가다가 곪는다. 곪을 대로 곪고 곯아 있다가 이상한 곳에서 터져 버린다.


분노는 주로 가까이 있는, 자주 만나는 사람들에게 쌓여 간다. 무시를 당한다거나, 따돌린다거나, 나의 부모를 욕한다거나, 나의 결점을 가지고 재미있어한다거나. 점점 분노가 쌓여간다. 그러다가 참지 못하고 터져 버리는데 분노하는 사람에게 터지는 게 아니라 아무 상관없는 불특정 다수에게 분노를 표출한다.


사람들은 분노를 참지 않게 되었다. 화가 나면 한 번 참을 법도 한데 그대로 화를 내뱉는다. 어느 날 여중생이 아버지를 살해하는 일이 일어났다. 아버지는 공부는 하지 않고 방에만 틀어박혀 게임만 하는 중학생인 딸을 경멸했다. 딸은 학교에서 몸무게가 많이 나간다는 이유로 따돌림당하고 폭행까지 당했다. 그 사진을 찍혀서 아이들에게 내내 놀림을 받았다. 그럴 바에는 학교에 가지 않는 편이 낫다. 하지만 집에 아버지만 들어오면 학교에서 아이들이 괴롭히는 것보다 더 심한 말을 한다. 미쳐버릴 것만 같다. 다 죽여버리고 싶다. 다 죽여버리고 나도 죽어버리면 그만이다. 이런 세상에서 이렇게 살아서 뭐 하냐.



곡비


이 영화 곡비 본 사람이 있을까. 대만 좀비 공포 영화로 수위가 상당하다. 좀비라고 하기에는 뭣 한 것이, 바이러스에 감염되고 나서 좀비처럼 사람을 물어뜯지만 말도 하고 정신도 제대로 박혀있다.


앨빈 바이러스라고 하는 바이러스는 뇌의 변연계를 변이 시킨다. 고로 인간이 교육과 훈련으로 잠재우고 있던 본능이 억제가 되지 않아서 분노가 들끓게 되고 폭력과 성적 욕구를 참지 못하게 된다.


여자친구와 함께 살고 있는 주인공은 집에서 보이는 다른 집 옥상에 멍하게 서 있는 노인을 보게 된다. 노인을 불러서 돌아보는데 상태가 심각해 보였다.


여자친구를 오토바이로 지하철까지 태워주고 늘 들리는 식당에서 밥을 먹는데 아까 그 노인이 들어왔다. 그러더니 갑자기 음식을 튀기는 뜨거운 기름을 종업원 얼굴에 붓더니 녹아내리는 얼굴을 뜯어서 노인이 먹었다.


그때부터 점점 바이러스를 퍼져나갔다. 앨빈 바이러스는 인간이 가지는 극도의 분노를 드러낸다. 그저 폭력성과 성적 욕망으로 물들어가는 자신을 알게 되기에 입은 웃고 있지만 눈에서는 눈물이 흐른다. 눈물이 말라갈 때 눈동자가 검게 변하면서 바이러스에 점령당한다.


분노에 찬 감염자는 아무런 이유도 없이 지하철에서 옆에 있는 사람의 옆구리를 웃으면서 쑤신다. 다른 감염자는 물어뜯고 또 다른 감염자는 그저 성적 욕망을 풀려고 한다.


이 과정에서 장기가 쏟아져 내리는 등 물어뜯어 씹고 즐기고 맛보는 적나라한 모습들이 나타난다. 우산으로 눈을 쑤시고 또 그 눈에 욕망을 풀기도 한다.


인간에게 분노가 조금이라도 있다면 이 바이러스는 침투한다. 짐은 캣을 지하철에 바래다주고 이 사달이 난 세상에서 캣을 찾으러 가려고 하다가 짐도 바이러스에 걸린다. 마지막 철장을 사이에 두고 짐은 캣을 사랑한다고 말하는데 바이러스에 물든 짐의 사랑은 캣의 가죽을 벗겨 먹어 버리고 싶은 게 짐의 사랑인 것이다.


요즘 분노를 참지 못하는 사람들이 부쩍 늘었다. 그저 분노를 표출하고 싶은 것이다. 여자고 남자고, 늙은 사람이고 대상도 모호하다. 그저 칼을 휘두르는 것이다. 칼을 휘두르는데 몽둥이로 범인을 때려잡지도 못한다. 정당방위도 형성이 안 된다.


그래서 이 영화 끝에 가서 어떻게 될까. 감독은 캐나다 사람인데 대만에 오래 거주하다 보니 이런 이야기를 영화로 만들었다고 한다. 감독상부터 여러 영화제에서 상을 받은 만큼 꽤나 여러모로 생각하게 만드는 영화 ‘곡비’였다.  https://youtu.be/t4vSwRinxIs


이 영화를 보면 지금 분노를 참지 못하고 표출하는 사람들의 모습처럼 보인다. 이런 분노가 한 번 이뤄지면, 그 분노를 표출한 사람에게 칼에 찔려 죽음에 이르렀어도 이 분노가 미디어를 타고 퍼지게 되면 모방범죄가 나타나게 마련이다.


그렇다면 나는 분노에 어떨까. 이렇게 주절주절 말을 하고 있지만 나는 분노가 없을까. 나 역시 분노에 취약하다. 분노가 확 올라올 때가 있다. 나 같은 인간이라고 해서 분노가 없을 수 없다. 아니 나 같은 인간이기에 늘 분노가 차 있다. 이러다가 나도 언제 어느 순간에 한 번 터질 수도 있다. 나는 누군가와 싸움을 하는 게 너무 힘들어하는 축에 속하는 사람이다. 싸운다고 소리를 지르고 에너지를 낭비하는 게 너무 싫다. 그러다 보니 어지간한 안 좋은 소리를 들어도 그냥 꾹 참고 넘어가는 편이다. 이런 나 같은 인간이 참다 참다 어느 순간 터지게 되면 분노가 폭발할지도 모른다.


개인적으로 매일매일 쌓이는 분노를 배출하는 방법은 매일 조깅을 하고, 이렇게 매일매일 조금씩 글을 쓰는 것이다. 글을 쓰면서 조금씩 쌓인 분노를 배설하듯 배출해버리고 만다. 그러다 보니 매일 쓰는 글의 분량이 많다.


정부는 살기가 편해졌고 마음껏 다니라고 하지만 길거리에 장갑차가 등장하는 시기까지 와 버렸다. 살기가 편해졌는데 사람들의 분노는 더 늘어났고 깊어졌다. 분노해야 할 대상은 분명히 있다. 명백하게 존재한다. 그러나 우리는 분노해야 할 대상에는 분노하지 않는다. 그저 불특정다수에게 나의 분노를 표출할 뿐이다. 그게 무섭다는 것이고, 그 대상이 내가 될까 봐 불안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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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름 방학 때 실컷 놀다가 집으로 들어가야 하는 시간이 되면 아이들은 내일을 다짐하고 콧등에 땀이 송골송골 맺힌 채 뿔뿔이 흩어졌다. 아버지도 퇴근하고 오시고 저녁을 먹기 전에 씻어야 엄마한테 혼나지 않는다. 여름 저녁에는 저녁만의 냄새가 있었다. 타오르던 해가 꺼지는 냄새, 집집마다 저녁을 만드는 냄새, 노을의 냄새, 논다고 흘린 땀 냄새. 그런 냄새들이 섞인 여름 저녁의 냄새가 있었다.


에어컨도 없었는데 어떻게 여름 저녁을 보냈을까. 집으로 들어가면 여름인데도 보글보글 끓은 된장찌개의 냄새를 맡으며 씻고 아버지가 오시면 계란 프라이를 잘라 된장찌개와 함께 맛있게 밥을 먹었다. 고작 선풍기 한 대로 어떻게 지냈을까.


요즘에도 에어컨을 켜지 않고 잠을 자는데 어제는 더워서 푹 잠들지 못했다. 어릴 때 여름방학 때에는 토마토를 섬등섬등 썰어서 설탕을 넣고 얼음을 가득 넣어서 그렇게 자주 먹었다. 요즘도 매일 토마토를 먹고 있지만 방울토마토라서 그때의 그 느낌은 없다. 방학도 길어서 일주일 씩 외가가 있는 시골에서 보내기도 했다. 우리 집이 바닷가 근처라서 사촌동생들이 우리 집으로 와서 여름을 보내기도 했다.


복작복작 무척 더웠을 텐데 사진들을 보면 그렇게 더워 보이지도 않는다. 참 이상한 일이다. 그때의 여름이라고 해서 덥지 않았을 리도 없다. 유튜브로 옛날 영상을 보면 여름은 똑같이 더워서 사람들이 더위에 허덕였다.


조깅을 저녁에 하다 보면 바람이 시원해졌다는 게 느껴졌다. 아직 이런 폭염이 일주일 정도 계속되겠지만 분명 8월에 접어들고 저녁에 조깅을 하다 보면 해가 짧아졌고 바람이 조금 시원해졌다. 무턱대고 숨이 막히는 그런 바람은 아니다. 조깅을 매일 나오다 보면 매일 마주치는 러너들이 있다. 항상 비슷한 시간에 달리고 있으면 맞은편에서 달려오는 러너와 인사를 주고받는다. 파이팅!이나 수고하십니다! 같은 인사를 주고받으며 스쳐 지나간다.


무슨 일을 하는지, 어디에 사는지, 어디에서 오는지 아무것도 모르고 궁금하지도 않다. 그저 저 사람도 매일 이 시간에 나와서 달리고 있구나,라는 마음으로 서로 지나칠 때 인사를 주고받는다. 겨울의 저녁과는 달리 여름의 저녁에는 하늘과 풍경이 경이롭게 보인다. 그런 모습이 매일 달라진다.

저기는 바다가 있는 곳으로 동해, 동쪽이라 노을은 아닐 텐데 워낙 더워서 일까. 아직 저 붉은빛이 남아서 아름다운 하늘을 만들어내고 있다.

며칠 전에는 서핑보드를 타는 사람을 봤다. 전문 서퍼같았다. 너무나 매끄럽게 저어어어기에서 여기를 지나 저어어어어어기로 그저 슈우우욱 가는 것이다. 물살은 반대인데 거꾸로 강을 거슬러 오르는 연어처럼 어떻게 물살과 역행하며 잘도 가는 것일까. 한참을 바라보았다. 멋있기도 했지만 참 시원해 보였다.


이 부분만 이렇게 금계국, 만수국들이 가득하다. 꽃들은 왜 예쁠까. 꽃은 봄에 대부분 피는데 그래서 조금 예쁘지 않은 꽃들은 봄에 외면받는다. 너무 예쁜 꽃들이 봄에 다 피어버리니까. 그렇기에 어쩌면 제일 예쁠 시기에 외면받아서 슬플지도 모르는 꽃들이 있다. 하지만 봄날만 피하면 이렇게 예쁨을 활짝 드러낼 수 있다. 하찮고 흔한 꽃인데, 그래서 더 예쁜 것 같다. 꽃들을 보고 있으면 인간과 다를 바 없다는 걸 느끼기도 한다. 설증매가 아름다운 이유가 바로 거기에 있다.


마찬가지로 동쪽하늘인데 붉게 물들어 있다. 분명 노을과는 다른 붉은 색감이다. 연분홍 같은 색감. 딱 이 시기에만, 그것도 이 시간에만 볼 수 있는 황홀한 색감이다. 며칠만 볼 수 있기 때문에 볼 수 있을 때 실컷 보기 위해서는 이 시간에 이 자리로 조깅을 해서 나와야 한다.

다음 날에도 비슷한 하늘의 색감이다. 그리고 그 사이에 달이 수줍게 얼굴을 내밀고 있다. 늘 생각한다. 이럴 때 좀 좋은 폰카메라였다면. 그러면 달의 모습을 좀 더 달답게 담을 수 있었을 텐데.

사진에는 저래 보여도 아주 근거리에 떠 있는 장면이다. 저어기 아파트를 지나면 공항이기 때문에 비행기들이 낮게 날아다닌다. 비행기 소리는 때로는 공포다. 특히 전투기 소리는 무섭게 들린다. 그런 소리가 도심지에서 분당 간격으로 들리면 사람들은 두려움에 벌벌 떨 것이다. 소리로 사람을 무섭게 하는 것 중에서는 단연 최고가 아닐까.

역시 동쪽 하늘에 연분홍빛이 발하고 있는 저녁이다. 세상의 시끄러운 사건사고와 동떨어진 평온하고 평화로운 모습이다. 그저 고즈넉하다. 고즈넉이라는 말은 고요하고 아늑하다는 말이다. 잠잠하고 아늑한 곳이 세상에는 분명 존재하고 우리는 그런 곳을 찾아서 여행을 하기도 한다.


조깅을 하는데 앞에서 노부부가 손을 잡고 함께 산책을 하는데 너무 아름다운 모습이었다. 노년에 같이 손을 잡고 산책을 할 수 있는 부부가 몇이나 될까. 모르는 이들이 서로 만나 가족이 되면 쉬울 리가 없다. 내일도 행복하세요.

이날부터(한 이 삼일 된 것 같다) 비슷한 시간이지만 온통 그늘이다. 해가 짧아졌다는 말이다. 어제까지만 해도 이 시간에 아직 해가 비치는 곳이 있었는데 이제 온통 그늘이다. 서서히 여름이 빠져나가고 있다. 매년 그걸 느낀다. 자연은 절대 그럴 리 없는 일은 하지 않는다. 때가 되면 어김없이 물러가고 사라졌다가 다시 나타난다. 그 주기, 그 반복이 무섭도록 정확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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