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랜만에 쓰는 편지입니다. 앞 선 편지 이후에 틈이 있었습니다. 찬란한 계절에 속수무책으로 빠져들어 자연에 동화되어 버렸습니다. 뜨거운 태양과 찰랑거리는 물결에 반사되는 빛의 실루엣에 그만 나 자신을 놓아 버린 것 같습니다. 이제 다시 계절이 옷을 갈아입으려 해서 아차 당신에게 편지를 오랫동안 쓰지 않았다는 걸 알았습니다. 오랜만에 쓰는 편지라고 해서 미안하다고 말하지는 않겠습니다. 당신은 그 예전의 온화한 미소로 나의 편지를 꼼꼼하게 읽겠지요.


얼마 전에 위대한 개츠비를 다시 한번 읽었습니다. 읽었던 소설을 자꾸 읽는다는 것이  무엇을 말하는 것일까요. 다시 읽는 소설은 처음 읽었을 때와는 다른 느낌입니다. 잘 설명은 못하겠지만 더 좋다,라는 것보다 여러 가지 생각을 가지게 합니다. 당신은 위대한 개츠비의 이야기를 무척이나 좋아했지요. 당신은 위대한 개츠비에 대해서 이야기를 하면 한 시간이고 두 시간이고 즐겁게 이야기를 했습니다.


개츠비는 그런데 정말 위대한 걸까요.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개츠비는 데이지가 오지 않을 거라는 걸 압니다. 마지막 장면은 마치 어셔가의 몰락의 시작 같은 분위기입니다. 정말 쓸쓸하고 삭막하고. 그러면서도 수영장에서 데이지를 기다립니다. 그리고 개츠비는 죽음을 받아들입니다. 위대한 개츠비는 위대했을까. 내내 그런 생각에 사로 잡혔습니다. 위대한 개츠비의 제목을 피츠제럴드는 원래 개츠비로 하기로 마음먹었습니다. 그러나 출판사와 젤다의 권유로 위대한 개츠비로 했습니다. 피츠제럴드는 위대한 개츠비가 마음에 들지 않았습니다. 당신도 알고 있는 사실입니다. 피츠제럴드는 그저 개츠비로 하고 싶었습니다. 개츠비는 위대할까. 어쩌면 개츠비가 위대한 개츠비가 된 것에는 데이지 때문이 아닐지도 모릅니다. 데이지를 위해 5년 동안 블랙사업 같은 것으로 엄청난 부를 축척한 것 때문에 위대한 개츠비가 된 것이 아닙니다. 피츠제럴드가 위대한 개츠비로 하기로 한 것에는 개츠비가 죽음을 받아들였기 때문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가끔 죽음을 생각합니다. 아니 죽음 그 이후를 생각합니다. 죽고 나면 아무것도 없는 무의 상태, 어쩌면 그 무의 상태를 느끼지도 못하는, 그야말로 Zilch상태가 되어 허공에 먼지처럼 흩어져 버립니다. 살아 있을 때 이런 공허와 상태를 받아들이는 건 쉽지 않습니다. 우리는 그런 상태로 돌입하려고 긴 시간 애를 쓰며 살아가는지도 모릅니다. 죽는다는 것, 받아들이면 괜찮아 질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나는 아직 그 죽음이라는 것을 받아들이는 연습을 해보지 못하고 있습니다. 언젠가는 죽을 것이고 주위의 죽음을 많이 봤지만 죽음이 나에게 닥쳤을 때 분명 거대한 두려움에 떨 것입니다. 죽는다는 걸 생각하면 아무렇게나 살면 뭐 어때 같은 마음이 듭니다.


세상에 죽고 싶은 사람이 있을까요. 죽고 싶어서 죽는 사람은 없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죽음을 선택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살아있되 이미 자신을 놓아버린 상태가 된 사람들 말입니다. 더 이상 죽음이 두렵지 않을 정도로 끝까지 내몰린 상태 말입니다. 벼랑 끝에 와서 살아야겠다는 의지보다는 떨어져 죽음으로 가는 포기를 택하는 것입니다.


어떻게 사람의 뇌가 죽음을 두렵지 않게 변하는 것일까요. 인간의 본능은 죽음을 멀리합니다. 인간은 모두가 죽지만 나 자신은 그 죽음에서 배제합니다. 그런데 외부의 인해 뇌에서 어떠한 물질이 흘러나와 죽음을 더 이상 두려워하지 않게 만들고 결국 죽음을 받아들이는 사람이 있습니다.


살아있는 생명체는 모두가 죽습니다. 죽고 난 후에는 아름다운 육체 따위는 없습니다. 박제는 박제대로 이상한 형태입니다. 육체는 심장이 멈추는 순간부터 부패하기 시작합니다. 썩어 갈 뿐입니다. 끔찍한 일이지만 죽고 나면 그런 것 따위는 아무래도 상관하지 않습니다. 살아있는 것들 뿐만 아니라 생명이 없는 물품도 시간이 지나면 형태가 망가지고 사라집니다. 죽음이란 모든 것에 해당된다고 생각합니다.


죽지 않는 건 계절입니다. 그 계절을 움직이는 건 시간입니다. 시간은 계절을 순환시키며 반복케 합니다. 계절은 한 번 죽지만 일 년 뒤에 다시 태어납니다. 그 순환을 인간의 힘으로 막을 수는 없습니다. 인간은 자신이 죽는다는 것을 애써 외면하며 지냅니다. 죽음은 삶의 대극이 아니라 삶의 일부분입니다. 당신과 제가 좋아했던 문구입니다. 요즘 좋아하는 노래가 있습니다. 서니의 런이라는 노래입니다. 우리가 찾았던 인생의 페이지 오늘은 어떻습니다. 또 편지하겠습니다.



Sunnie - Run https://youtu.be/mNkcq8zQjC0?si=qyBu-K2bVJO2Msl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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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있었던 일이다. 2살쯤 되어 보이는 남자아이를 부부가 돌보다가 서로 미루는 모습을 보았다. 2살짜리 남자아이는 굉장한 에너자이저였다. 엄청난 행동력과 멈출 줄 모르는 호기심 본능이 엄마를 힘들게 했다. 엄마 혼자 아이를 돌볼 수 없고, 아빠 혼자서도 무리였다. 부부가 같이 아이를 돌봐야 하는데 부부는 힘이 들어서 자꾸 화장실이다, 편의점이다, 한 명이 한 명에게 아이를 맡기고 자꾸 그 자리를 피하려고 했다. 부부는 그런 육아 때문에 그동안 마찰이 있었던 것처럼 아슬아슬했다. 요즘은 육아가 참 힘들다. 무엇보다 기분이 태도가 되는 일이 많아진 요즘에는 더 그런 것 같다. 아이에게 그래서는 안 되지만 그러는 부모들이 늘어났다.


티브이 광고 중에 정관장 광고를 보니 90년대 초반 영상이 나오며 젊은 부부가 어린아이들을 데리고 노는 장면이 나온다. 주 6일 일을 하면서도 일요일에는 우리들을 데리고 놀아주고 어디를 데리고 다녔던 우리 부모님. 같은 이야기를 광고는 하고 있다. 생각해 보면 지금보다 덜 힘들지는 않았을 것이다.


여름 방학 때 에어컨도 없지, 날은 더운 여름날에 심심하고 더위에 허덕이고 있을 때 밤에 잠이 들었다가 일어나니 바닷가에서 눈을 뜬 경우도 있었다. 아버지는 잠든 우리를 안고, 업고. 차도 없어서 택시에 잠든 우리를 태우고 바캉스 물품을 챙겨 음식까지 싸들고 새벽에 바닷가로 온 것이다. 도대체 부모님은 어디서 그런 초능력이 나왔을까.


우리 집은 내가 어릴 때 상당히 가난했다. 어렴풋한 기억에 단칸방에 네 가족이 살았다. 아버지는 학창 시절에 공부는 등한시하고 놀러 다니고 사고나 치는 문제학생 축에 속했다. 이미 그때 팔뚝에 문신도 새기고 타학교 아이들과 싸우느라 유치장에 들락날락거렸다. 그러다가 어머니를 만나고 사랑을 하고 외할머니에게 가서 엎드려 빌다시피 해서 결혼을 했다. 결혼을 하면 정신을 차리겠습니다!


그러나 결혼을 해서도 쉽게 자리를 잡지 못했다. 남자들에게 인기가 좋아서 아버지 주위에는 늘 후배나 선배 같은 사람들이 많았다. 월급도 그날 다 써버리고 어머니의 속을 많이 상하게 했다. 결혼을 해서도 유치장의 신세를 여러 번 졌다. 그럴 때마다 아버지 누나들, 고모들이 빼내 주었다.


그러다가 내가 태어났고 아버지가 어느 날 술에 취해서 집으로 들어와서 보니 갑자기 현실에 부딪혀 겁이 났던 것이다. 이렇게 살아서는 전혀 미래가 없다고 느끼고 주위 사람들을 버리고 나와 어머니를 데리고 지금 이 도시로 와서 중공업에 취직을 해서 죽어라 일을 했다. 당시는 열심히 일하면 그만큼 노동의 대가를 얻는 시대였다. 회사와 집이 버스로 한 시간 반 정도 떨어진 거리라 아버지는 매일 새벽에 일어나서 직접 아침을 챙겨 드시고 출근했다. 그동안 어머니에게 미안했던지 새벽에 어머니는 계속 주무시게 하고 아버지는 늘 라면을 하나씩 끓여 드시고 출근을 했다.


아버지는 내가 일어나면 먹으라고 꼭 밥그릇에 라면을 들어 놓고 출근을 했다. 아침에 눈을 뜨면 라면은 국물이 하나도 없고 퉁퉁 불어서 식은 라면이 한 그릇 놓여 있었다. 처음에는 저걸 어떻게 먹나 했다. 젓가락으로 뜨면 다 불고 붙어버린 라면이 그대로 젓가락에 붙어 올라왔다. 그러나 한두 번 먹다 보니 식어빠지고 불어 터진 푸딩화 된 떡 진 라면이 멋있었다. 참 기묘한 일이다.


동생이 태어나고 아버지는 담배도 끊었다. 회사에서 나 오늘부터 담배를 끊을 테야,라고 선언했고 직장동료들은 에이, 무슨 그런 거짓말을.라고 했지만 아버지는 그날로 바로 담배를 끊어버렸다. 그리고 돌아가실 때까지 담배를 입에도 대지 않았다. 회사 동료들은 아버지를 독한 사람이라고 해서 독 없는 독사라고 불렀다. 회사 야유회 때 아버지의 동료들이 나에게 그런 말을 했다. 아버지는 동생이 태어난 이후 더 열심히 일을 했다. 그렇게 해서 방이 두 개에 거실이 딸린 집으로 이사를 했다. 아버지와 어머니의 기뻐하는 모습을 잊을 수가 없다.


아버지는 가난했지만 우리들 사진을 찍어서 출력하는 걸 좋아했다. 그러다 보니 카메라가 3대 있었다. 6일 동안 새벽에 나가 저녁에 퇴근을 하고 집으로 와서 녹초가 되었어도 일요일이 되면 우리를 데리고 극장이다, 동물원이다, 놀이공원으로 데리고 가서 사진을 찍어 주었다. 다른 집에 비해 사진 앨범이 많았다. 앨범 속에는 어린 시절의 나와 동생의 모습이 많이 있다. 그때 함께 사진 속 아버지의 표정은 밝기만 하다. 분명 삶을 살아내느라 그렇게 밝지만은 않았을 텐데.


5학 때인가 겨울에 온 가족이 연탄가스에 중독이 되었다. 아버지와 어머니도 연탄가스 때문에 정신이 없었을 텐데 아버지는 동생을 업고 병원으로 달려갔다. 119를 부르면 될 텐데 아버지는 급한 마음에 10분 정도 거리에 병원이 있어서 그곳으로 달려갔다. 온 가족이 병실에 누워 치료를 받았다. 시간이 좀 지나 아버지는 그때의 일을 재미있게 떠올리곤 했다. 아버지는 살아생전 우리 앞에서 눈물 한 방울 보이지 않으셨다. 어른이 되고 보니 아버지도 얼마나 울고 싶었을까. 그 엄청난 무게, 압박감에 울어도 괜찮을 법도 한데 절대 그러지 않았다.


아버지는 일요일이 되면 우리와 함께 시간을 보냈다. 같이 놀아주고 그 놀이를 즐겼다. 여기 서 봐, 그래 거기 서 봐. 카메라 보고. 그렇게 아버지는 우리의 모습을 사진으로 담아 주었다. 사진은 시간을 잡아두는 마법을 펼친다. 집에 있는 앨범은 잘 펼쳐 보지 않게 된다. 그래도 헙, 하며 마음을 먹고 오래된 앨범을 펼치면 그 시절로 다시 돌아가는 기분이 든다. 그 시절 속 부모님은 초능력을 지니고 있었다. 나는 아버지처럼 멋지게 살아갈 용기가 없어서 나의 모습이 비겁해 보이는 요즘이다.

아빠를 따라 나온 바다

세상은 바다와 같단다

가도 가도 끝이 보이지 않는 바다


자신의 힘으로 자신이 있을 곳을 찾는다는 것

어려우면서 꽤 멋진 일인 거 같아

어딘가에 있는 나의 행복을 바라는 일은

또 다른 누군가의 불행을 바라는 일과 마주하고 있는 일일지도 몰라

혼자서 세상에 발을 내밀기 전까지는 아빠가 곁에 있어 줄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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잉크냄새 2023-09-12 15:4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사진 찍는 일이 알게 모르게 그렇게 전해져 내려온 거군요.

교관 2023-09-13 11:57   좋아요 1 | URL
아가를 담은 엄마의 휴대폰 사진첩에는 전부 그 사진이 그 사진 같은데 엄마의 눈에는 다 달라보이죠 ㅎㅎ 그 수많은 아가의 사진에서 사랑이라는 걸 소거하면 정말 재미없는 사진들인데 엄마는 하나하나 꼼꼼하게 보며 웃더라고요
 

오전에 집에서 나오는데 아파트 단지 내 어린이 놀이터에 한 여자아이가 신나게 그네를 타고 있고 벤치에는 엄마로 보이는 여성이 앉아서 그네를 타는 딸아이를 바라보고 있었다. 아이는 정말 신나게 그네를 탔다. 엄마를 등지고, 엄마가 자신을 바라본다는 걸 알고 있어서 인지 한껏 힘을 주어 그네를 탔다. 이만큼 높이까지 올라갔다. 나는 그 모습을 보면서 옆을 지나쳐 걸었다.


여성은 나의 모습을 보더니 약간 우물쭈물하는 표정을 지었다. 나는 그 여성의 모습을 캐치하고 똑바로 앞을 바라보고 빠른 걸음으로 그곳을 지나쳤다. 여성과 아이는 외국인으로 난민이다. 몇 해 전에 내가 사는 동네에 난민 100여 명이 들어왔다. 그 당시 다른 지역에서는 반대에 부딪히고 말도 많았는데 내가 사는 동네의 사람들은 어? 그래? 그렇다면 같이 살지 뭐. 같은 반응들이었다. 모두가 이렇게 받아들이지는 않았겠지만 반대에 대한 일들을 내가 모르는 것을 보면 큰 불만 없이 그들을 생활반경 속으로 받아들였다.


아이의 엄마는 아파트 주민에게 혹시나 피해가 가지나 않을까 싶어서 나의 눈치를 본 모양이었다. 아파트 단지 내 놀이터에는 아이들이 늘 재미있게 놀고 있고, 난민 어린이들도 왕왕 같이 어울려 논다. 역시 아파트에 사는 주민들이 그것에 대해 이렇다 저렇다 하지 않는다. 아이들이 놀이터에서 시끄럽게 떠들고 노는 건 당연한 거 아니야? 같은 반응이다.


어쩔 수 없어,라는 말을 어른이 되면 들어야 하는 수많은 일들이 있다. 어른이 되기 전에 아이들이 하고 싶은 것이 있을 때 마음껏 하게 해 주자 같은 분위기가 공원 주위에 맴돌았다. 그런 기운 만으로도 괜스레 가슴이 뿌듯해진다.


난민 아이들은 정말 인형처럼 예쁘다. 엄마들은 대체로 히잡을 두르고 있지만 여자 아이들은 맑고 예쁜 얼굴과 머리를 다 드러내고 있다. 아이는 이역만리 떨어진 나라의 한 도시의 동네에서 엄마가 지켜본다는 안도감을 한껏 지니고 열심히 그네를 탔다. 아이의 알아들을 수 없는 말에서 행복감이 묻어났다. 엄마는 그런 아이를 흐뭇하게 바라보았다. 햇살은 바삭바삭하고 그늘 밑에서는 시원했다. 일주일 전과 너무 다른 날이다. 9월인 것이다. 김명수 시인의 ‘키 큰 떡갈나무 물참나무 아래 지날 때’가 떠오른다.


물참나무 떡갈나무 아래 지날 때

여기 이 산언덕에 햇살도 따사롭게 내려요

가을입니다 9월이네요

도토리를 안았던 도토리깍정이를 주워보았어요

빈 깍쟁이가 포근했어요

무엇이 그 속에 담겨 있나요

나는 9월의 아이가 되고 싶었지요.


김명수 - 키 큰 떡갈나무 물참나무 아래 지날 때, 중에서


아파트 놀이터를 벗어나니 아파트 단지와 저수지 사이의 작은 텃밭에서 나이 든 어르신이 쪼그려 앉아서 밭일을 하고 있다. 잡초를 제거하고, 상추 같은 싱그러움이 묻어나는 밭농사에 열을 올리고 있다. 잘하면 오늘 저녁 맛있는 된장찌개에 어울리는 상추가 밥 상에 오를지도 모른다. 어르신의 가족은 대접받는 기분으로 저녁 식사를 맛있게 할 것이다. 나도 오늘 저녁은 맛있게 먹자. 서울에 살고 있는 작은 이모의 이런저런 일들을 도와줬는데 택배를 보내주었다. 불고기를 보냈으니 맛있게 먹으라는 것이다. 그래 오늘 저녁은 불고기를 구워 먹자.  


오전에 커피를 투고하려 다운타운을 걸으니 사람들의 발걸음이 일주일 전에 비해서 명랑해졌다. 해가 쨍쨍하여 덥기는 덥지만 이 정도는 해 볼만 해. 같은 표정들이다. 얼굴에서 명랑함이 뚝뚝 떨어진다. 서른한 가지 아이스크림을 파는 전문점 사장님의 얼굴에도, 막 가게 문을 열고 유리창을 닦는 보세 옷 가게 점원의 얼굴에도, 토요일이라 오전부터 놀기로 작정한 학생들의 얼굴에도 명랑함이 묻어났다.


9월이다. 여전히 따가운 햇살아래에 있으면 까맣게 타들어가지만 바람이 이래도 돼? 할 정도로 시원하다. 조깅을 하는 저녁은 그야말로 시원한 날이다. 춥지도 덥지도 않은 아주 좋다. 평소에 비해 조깅 코스로 많은 사람들이 몰려나왔다. 어제는 찬물에 샤워를 하다가 놀라고 말았다. 오늘도 찬물에 샤워를 하려면 땀을 흘려야 한다. 열심히 조깅을 했다. 집으로 들어와서 택배로 온 불고기를 구웠다. 양념이 되어 있다. 생각해 보니 불고기를 밖에서 사 먹어본 적이 거의 없는 것 같다. 주로 집에서 해 먹었지 밖에서는 사 먹지 않았다. 짬뽕 같은 음식은 오로지 밖에서만 먹었는데 불고기는 주로 집에서만 먹었다.


불고기는 가족 같은 느낌의 음식이다. 친구들끼리 술을 마실 때 삼겹살에 소주 한잔 하러 가지만 불고기를 먹으러 가지는 않는다. 대학교 때에도 친구들과 많이 술을 마시러 다녔지만 - 짜장면, 쫄면, 돼지국밥, 치킨, 삼겹살에 술은 마셨지만 불고기를 애써 먹으러 가지는 않았다. 불고기는 커피로 따지면 카페오레 같은 느낌이다. 너무 맛있지만 잘 먹지 않게 된다. 잘 차려입는 도련님 같아서 어울리기는 하지만 매일 같이 놀 수는 없다. 그래서 가족이 몹시 기분 좋은 날이거나 집에 친척이 놀러 오면 불고기를 해 먹게 된다.


불고기에 대한 추억을 떠올리면 어린 시절에 서울의 작은 이모 댁에 놀러를 갔을 때다. 작인 이모 댁에도 딸이 두 명 있다. 나에게는 사촌동생들이다. 나의 여동생과 나이가 같다. 꼬꼬마 때 바닷가의 우리 집에 놀러 오면 헤어질 때는 눈물 없이 볼 수 없는 꼴사나운 광경을 볼 수 있다. 여동생과 사촌 동생은 떨어지면 큰일 나는 것처럼 울고 불고 난리도 아니다. 역시 꼬꼬마 때의 일이다. 작은 이모 댁에 우리 가족이 놀러 가면 이모부는 우리 가족을 데리고 방갈로가 있는 고급 불고기 집으로 데리고 갔다. 여름에 물놀이를 하고 방갈로에 앉아서 불고기를 굽는 냄새가 밤하늘을 덮을 때 불빛을 보고 날아든 큰 나방의 날갯짓이 떠오른다. 불고기는 맛있었겠지. 그러나 나방의 날갯짓만 기억이 생생하다.


작은 이모에게 받은 택배를 뜯어보고 문제라면 일주일 내내 먹어도 남을 만큼 많은 양의 고기를 보냈다는 것이다. 나의 문제점은 족발, 김밥, 치킨, 국밥처럼 바로 먹을 수 있는 음식을 선호한다는데 있다. 테이블에서 구워 먹고, 부대찌개처럼 다시 끓여 먹고, 발라 먹고 하는 것을 썩 좋아하지 않는다. 어떻든 맛있게 고기를 구워서 먹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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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라니스 모리셋은 파혼 후에 엄청나게 살이 쪘다. 전혀 그렇지 않을 것 같은 사람이 살이 굉장히 불어나니 팬들이 이만저만 걱정이 아니다. 우리나라에도 악뮤의 수현이 근래 살이 너무 쪄서 사람들이 걱정을 하기도 했다. 수현은 라방에서 내가 살이 찌는 건 너희들(팬들)이 자꾸 살이 쪄도 귀엽다, 예쁘다 하니까 그런 거잖아,라며 귀엽게 말을 해버렸다. 일반인들도 그렇지만 스타들이 그렇게 되면 본인들이 스트레스가 많을 것이다.


팝가수들 역시 마찬가지다. 팝스타들은 몸 관리를 아주 잘할 것 같은데 살이라는 걸 무시하면 안 된다. 캘리 클락슨, 라나 델 레이도 살이 엄청나게 불어났다. 라나 델 레이는 인형 같은 외모를 가지고 노래 역시 자신의 바라는 방향으로 끌고 가며 인기를 가지고 있었다. 그러다가 위대한 개츠비의 주제곡을 부르면서 세계적인 스타가 되었다. 그랬는데 어느 날 보니 엄청나게 살이 불어났다.


미국이라는 나라는 우리나라와 달리 파파라치가 스타들의 일상을 파고들기 때문에 그들의 일거수일투족은 다 드러난다. 최근의 가장 핫 한 파파라치 컷은 시도 때도 없이 사건사고에서 떠날 날이 없는 칸예의 모습이다. 보트에서 엉덩이가 반쯤 드러나는 바지에 한 손은 아내 비앙카의 뒷머리를 잡고 있는 사진이다. 그러니까 보트가 있는 곳은 공공연한 장소인데 거기서 그 짓을 해버린 것이다. 미국은 우리나라 보다 더 짓궂어서 이 사실을 바로 전 부인인 킴 카다시안에게 질문을 하고 킴 카다시안은 절망적으로 당황스럽다고 했다. 킴 카다시안의 아이들의 아빠가 칸예이기 때문에. 여하튼 저짝은 참 재미있는 곳이다.


아델이나 매간 트레이너는 애초에 통통한 몸으로 등장하여 노래로 사람들을 홀렸다. 그녀들은 시간이 지나 날씬해지는 반면에 알라니스 모리셋이나 라나 델 레이는 그 반대다. 틱톡으로 전 세계를 씹어 삼켰던 짐승녀라고 불리던 케샤 역시 뚱뚱해지는 것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케샤가 몰락하게 된 건 이번 피프티피프티와 비슷한 이유다.


그래도 몸은 비록 거대해졌으나 노래만은 여전히 다들 잘 부른다. 근래의 영상을 찾아보면 그녀들은 작은 무대일지라도 올라가서 열심히 노래를 부르고 있다. 한때 전 세계 젊은이들의 워너비였던 미샤 버튼 이야기도 하려다가 배우라서 넘어가자. 전부 추억이어라.


알라니스 모리셋은 심적 고통을 이겨내고 열심히 다이어트를 해서 요즘은 조금 날씬해졌다. 이번 2023 후지 록페에 올라 한 시간 동안 공연한 알라니스를 보니 감개가 그저 무량할 뿐이다. 그러니까 그 예전의 아이로닉을 부를 때의 그 목소리를 여전히 지니고 있는 것이다. 넓은 공연장을 끊임없이 움직이고 공간을 활용하며 팬들에게 눈빛을 보내고 노래를 들려주려고 노력을 한다. 하모니카도 불고 노래를 부르며 무대를 다니려면 체력이 뒷받침이 되어야 하는데 아무튼 멋지다.


알라니스 모리셋이 나왔을 때 미국이 들썩했다. 그 이전의 록은 80년대 나왔던 헤비메탈, 팝메탈, 슬래시메탈 등 쇠가 갈리고 미칠 듯이 내지르고 무대를 압도하는 록이 강세였다. 머틀리 크루 같은 그룹이 공연장을 다니며 쓸어 버렸다. 그랬는데 그런지(Grunge) 메탈을 몰고 너바나가 나오고, 알라니스 모리셋이 등장한 것이다.


피츠제럴드의 사조에서 헤밍웨이의 사조로 넘어가듯이 록의 흐름도 변화를 가진다. 알라니스 모리셋은 카랑카랑한 목소리로 신비롭지만 컨트리 풍(미국은 컨트리 뮤직이 강세다. 우리나라 트로트와 비슷하다. 엄청난 인기다) 같은 팝메탈 같은 음악을 했다. 내가 듣기에는 그랬다. 자세한 건 전문가들의 리뷰를 보시길 바란다.


학창 시절 라디오를 달고 살았는데 라디오에 알라니스 모리셋의 노래가 자주 나왔다. 그렇게 음악감상실에 쪼르르 달려가서 신청을 했다. 큰 화면으로 보는 알라니스 모리셋의 뮤직비디오와 노래는, 와 정말 좋았다. 우리는 보자마자 뭐야, 여자 스티브 타일러야? 1집의 단연 최고는 아이로닉이지만 좋은 노래들이 많다.


우리나라 가수들의 공연을 보다가 해외에서 팝가수들의 공연을 보면 뭔가 이상하지만 꽤 시간차가 나는 것 같다. 무대는 마치 90년대의 향수를 불러일으킨다. 그래서 그것이 별로냐면 오히려 그 반대다. 정말 소중한 건 늘어나지 않고 자꾸 줄어들기만 한다. 그게 인생의 아이러니다. 아이로닉을 들으며 오늘도 멋지게 보내자.


https://youtu.be/Jne9t8sHpUc


Alanis Morissette - Live at Fuji Rock Festival 2023 *FULL SHOW 4K* 2023-07-29

https://youtu.be/v-T1Z6FG69I?si=q6CyMC8BoSmeUUFU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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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카가 아직 아가였을 적, 아장아장 걸어 다닐 때 집에서 예방접종이며 피부과며 다 했다. 동생은 아무래도 엄마가 있는 집에서 딸내미를 케어하는 게 좋다고 생각했는지 조카를 데리고 고향으로 내려와서 몇 달을 그렇게 있었다. 생각해 보면 그리 오래 전도 아닌데 그때에는 동네에 소아과도 꽤 있었는데 지금은 거짓말처럼 하나도 보이지 않는다.


한 여름이었다. 폭염의 중간에 조카의 피부과 예약이 있었다. 오전 10시 20분이 예약시간이었다. 나는 40분 정도 일찍 주차장에 내려가서 차 안에서 에어컨을 2단으로 틀어놓고 에어컨 주둥이를 조금 위로 올려놓은 다음 그녀들을 기다리고 있었다. 조카의 아빠는 집에 있고 동생과 조카만 내려왔다.


두 사람이 준비하는 동안 폭염이라 여름날의 차 안을 시원하게 하고 기다리고 있었다. 나의 장점이라 함은 기다리는 걸 군말 없이 잘한다는 것이다. 오랫동안 기다린다고 해도 큰 불만은 없다. 노력도 아니고 어느 날 번개를 맞아서 머리가 돌아서 그렇게 된 것도 아니다. 어쩌면 그저 본디 그렇게 생겨먹은 것인지도 모른다.


동생과 조카가 나올 때까지 스티븐 킹의 ‘애완동물 공동묘지’ 하권을 읽고 있으면 지루함 따위는 전혀 없다. 에어컨을 켜고 기다렸던 최초의 시간은 오전 9시 40분이었다.


애완동물 공동묘지 하권이 시작하자마자 주인공 아들인 게이지가 죽는다. 이제 두 살 배기인데. 이야기는 점점 재미있어간다. 이 소설은 영화로 두 번이나 만들어졌다. 83년의 오래전 버전이 있고 얼마 전 2019년에 만들어진 최신 버전이 있다. 나는 전부 다 봤는데 다 재미있게 봤다. 소설도 재미있고, 영화도 원작과 리메이크 전부 재미있게 봤다.


그러니까 그 공동묘지에 시체를 묻으면 안 되는데 묻으면 다시 살아나는 것이다. 하지만 죽기 전의 모습이 아니라 좀 더 테러블 하게 변한 채 살아나는 것이다. 몸에는 썩는 냄새를 풍기며. 그런 내용이다. 공포 대가답게 스티븐 킹은 요리조리 잘 도 돌려가며 썼다.


고개를 드니 택시 승강장도 아닌데 많은 사람들이 아파트 근처에서 택시를 잡아타는 모습이 보였다. 조카만 한 여자아이를 안고 있는 아빠가 보였다. 그는 택시를 잡았다. 택시의 뒷 도어를 열었다. 아이를 안고 택시를 타고 문을 닫는다. 이것이 보통 택시를 타는 사람들의 전말이다. 다른 건 없다. 택시가 오면 택시를 타는 것이 목적이니까. 오른손을 들고 택시를 잡고 타면 되는 것이다. 택시를 타는데 그 중간에 무엇인가 끼어 들 거리는 없다.


그런데, 무심결에 보니 택시의 뒷좌석에 아이를 안고 타는데 택시 뒷문의 윗부분에 아빠의 머리가 닿을 듯 하지만 닿지 않고 거의 빈틈없이 아슬아슬하게 택시 안으로 들어갔다. 또 다른 사람이 택시를 잡고 있다. 30대 초반으로 보이는 여자다. 어째서 30대 초반으로 보이는지 물어본다면 그저 그렇게 보였기 때문이다. 여성은 꽤 높은 힐을 신고 있었고 여름용 시폰 원피스를 입고 있었다. 한 손은 4살 정도 된 아이의 손을 잡고 있었다. 택시를 잡고 아이를 먼저 태우고 택시를 타는데 또 머리가 뒷문 윗부분에 아슬아슬하게 닿을락 말락 하며 택시 안으로 들어갔다.


책 읽기를 포기하고 택시를 잡아타는 사람들을 지켜본 결과 대부분의 어른들이 택시 뒷좌석에 타면서 머리가 닿을 듯하며 들어갔다. 머리를 콩 하며 박는 사람은 없었다. 아이를 안고 있는 사람은 아이를 안은 대로 택시의 문을 열고 뒷좌석에 들어갈 때 머리가 닿을락 말락 하며 탔다. 머리와 뒷문 윗부분의 유격은 거의 나지 않았다. 마치 종이 한 장 정도의 틈이 있는 것처럼 보였다. 사람들은 정밀한 기계처럼 잘도 그 간격을 지키며 머리를 콩 박지 않고 택시를 잘 탔다.


그러다가 70대 중반의 할머니가 택시를 잡는 모습이 보였다. 나는 내셔널지오그래픽에서 학명도 알 수 없는 심해의 물고기를 비춰주는 화면을 응시하는 눈빛으로 그 모습을 바라보았다.


할머니가 손을 들었다.

택시가 앞에 섰다.

할머니는 머리가 하얗고 파마를 했다.

알록달록한 난해한 색의 남방을 입었다. 표현하기 힘든 색이다.

패션블루라든가, 카마인 레드, 오페라 바이올렛, 퍼머넨트 옐로 딥이 전부 섞인 컬러 같았다.

택시가 멈춰 서고 택시의 뒷도어를 열었다.

그리고 할머니는 뒷좌석에 타면서 머리를 콩 박았다.

하지만 언제나 그렇게 타는 것처럼 아무렇지 않게 택시 안으로 빨려 들어가서는 문을 닫았다.

그 모습은 며칠 전 모친이 차 뒷문으로 타면서 머리를 콩 박고는 아무렇지 않게 타는 모습과 흡사했다.


또 방학을 맞은 손자와 할아버지의 모습도 보였다. 오늘은 모두 택시를 타는 날인 모양이다. 두 사람은 무척이나 더운 길에 서서 택시를 잡고 있었다. 택시가 왔다. 설마 했지만 손자를 먼저 태운 할아버지도 뒷좌석에 타면서 머리를 콩 박았다. 나이가 든다는 이데올로기는 무엇일까. 젊은 시절에 비해 택시 뒷좌석에 탈 때 머리를 콩 박는 것과 연관이 있는 것일까.


시간을 보니 10시 17분이었다. 3분 있으면 예약시간인데 지금이라도 그녀들이 나와야 하는데 나오지 않고 있다. 예약시간도 하나의 약속인데 병원에서는 조카의 진료시간에 맞춰 그녀들을 기다리고 있을 것이다. 18분이 되었다. 하지만 저쪽에서는 그녀들이라고 할 수 있는 그림자도 보이지 않았다.


약속은 깨라고 있는 것이다. 어느 책에서 본 문구가 생각이 났다. 그러나 약속은 약속대로 중요한 구실을 갖고 있다. 약속은 한쪽의 일방적인 언행으로 만들어지는 것이 아니다. 쌍방 합의 하에 이루어지는 것이 약속이다. 약속은 아마 지구상에서 인간만이 할 수 있는 관념이 아닐까. 서로 믿음 같은 것들. 나는 병원입장을 고려하니 조금 초초해졌다. 지금 출발을 해도 예약시간에 맞추어 갈 수는 없다. 19분이 되었다. 1분은 아주 소중한 시간이다.


올림픽에서 잘 알 수 있다. 펜싱 경기에서 그 사실을 더 잘 알 수 있다. 1초 만에 경기가 뒤집어진다. 1초에 자동차가 4대나 만들어진다고 한다. 그런 면에서 본다면 1분은 정말 상당한 시간이다. 어떤 이는 짜장면을 1분 만에 먹는다. 1분 동안 만두달인은 만두를 몇 개나 빚어낸다고 한다. 이런 생각을 하며 1분 만에 그녀들이 오지 않을까 생각했지만 내 생각을 묵사발로 만들었다.


더욱 초조해졌다. 난 초조해지면 괄약근이 느슨해지며 그 사이로 방귀가 시종일과 나오지는 않지만 초조함이란 아주 묘한 감정이다. 밖에는 사람은 바뀌었지만 땀을 뻘뻘 흘리며 택시를 잡는 사람들이 있다. 전국의 택시는 도대체 몇 대나 있는 것일까. 택시에는 왜 이름이 없을까. 이런 쓸데없는 생각이 드는 건 순전히 초조함 때문이다.


그날 점심에는 생선구이 집에서 열심히 생선을 뜯어먹었다. 조카는 냠냠 잘도 먹었다. 현실로 돌아와서 요즘도 거의 매일 생선을 먹고 있지만 조카가 아가아가였을 때처럼 신나게 생선을 먹을 수 있는 마음이 줄어들어 간다. 뭐가 어떻게 돌아가고 있는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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