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기는 먹고 싶은데 고기를 굽고 삶고 하는 행위를 너무나 귀찮아하는 내게 가장 좋은 음식은 편육이다. 편육은 식은 게 맛있기 때문에(실은 뜨거운 편육을 먹어 본 적이 없다) 굳이 뜨거울 때 먹어야지 하는 조바심이 없다. 한 달에 편육을 한 세 번 정도 사 먹는 것 같다.


요즘은 편육을 찾는 사람이 꽤 있어서 그런지 슈퍼에 가면 편육이 항상 있고 종류도 제법 된다. 돼지고기 머리 누른 편육이 있고, 매콤한 편육도 있다. 닭발 편육도 있는데 돼지고기 편육보다 좀 비싸다. 편육의 폭 역시 넓어지고 다양해지는 거 같다. 세상은 정말 빠르고 크게 변하는 것들은 멈추지 않고 변한다.


편육은 족발과 다르고 수육과도 다르다. 족발과 수육은 깻잎이나 상추가 있어야 할 것 같지만 편육은 그냥 편육만으로도 충분하다. 아마도 학습 때문일지도 모른다. 편육은 왜 그런지 모르지만 잔치나 장례식 장에서 늘 등장했다. 일단 식어도 먹을 수 있는 편육이 다른 고기를 대체하지 않았나 싶다. 잔치를 하거나 장례식 장에서 많은 사람들의 먹거리를 챙기려면 항상 뜨거운 음식을 제공할 수 없기 때문이다. 국 정도가 있으면 된다.


장례식장에서 족발은 나오지 않는다. 수육은 나오는 경우가 있지만 상추나 깻잎은 장례식장에 나오지 않는다. 상추가 나온다고 한들 장례식장에서 쌈 싸 먹고 있을 수는 없다. 장례식장에서 건배를 권하는 마뜩잖은 인간도 있다. 장례식장은 엄숙하되 떠들썩해야 한다. 양가감정을 동시에 지니는 태도를 보이는 곳이 장례식장이다. 그렇기에 예의라는 걸 갖춰야 한다. 그 예의 속에는 법으로 정해놓지는 않았지만 우리가 눈치껏 알 수 있는 것들이 있다.


편육은 맛도 좋지만 나처럼 귀찮은 인간에게 딱 맞는 음식이다. 나는 편육 외에 아무것도 필요가 없다. 새우젓이나 된장도 뭣도 필요가 없다. 편육은 그렇다. 집에서 가끔 삶아서 수육을 해 먹는데 너무 간이 안 되어 있어서 그건 장이 필요할 때가 있지만 구입한 편육 대부분은 그냥 먹기에 딱 좋은 간이다.


편육을 대할 때는 마치 떨어져 있던 애인을 만나는 것처럼 대해야 한다. 편육을 매일 먹지 않기 때문에 편육을 먹을 때는 오랜만에 만나는 애인처럼 반가워하면서 천천히 그 맛을 음미하면서 먹어야 한다. 급하게 덤비지 말아야 한다.


편육 이 알 수 없고 묘하게 빠져드는 당면의 무가학적 무늬도 아름답지만 입 안에서 난잡한 맛이 없다. 족발이나 수육에 비해 난잡할 것 같은데 세게 치고 들어오지 않는다. 장이나 새우젓도 필요 없이 그저 편육만을 씹고 있으면 그 맛에 매료된다.


씹는 맛이 족발이나 수육보다 낫다고 생각하는 내게 편육 정도는 가격이 올라가지 말았음 한다. 김치를 받았다. 편육을 김치에 올려 맛있게 먹어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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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끄럼 많은 생애를 보냈습니다.로 시작하는 인간실격은 일본은 물론이고 한국에서도 인기였고 인기고 앞으로도 그럴 것이다. 문학적으로 이렇게 많은 사람들이 찾는다는 건 사랑을 받고 있다는 말이다. 대단한 것 같다.


나는 위대한 개츠비의 개츠비 보다는 피츠 제럴드의 일대기가 더 흥미롭고, 호밀밭의 파수꾼의 샐린저의 일생이 홀든 녀석보다 재미있고, 인간실격의 요조보다 다자이 오사무의 일생이 훨씬 흥미로웠다.


인간의 자격을 잃은 남자가 7년 전에 쓰고 싶었다는 소설이 쓰이게 되는데 바로 다자이 오사무의 인간실격이었다. 오사무의 사랑은 파괴였을지도 모른다. 내 것이 있지만 더 아름다운 것을 가져야 한다, 낡은 사상을 끄트머리부터 주저 없이 파괴해 가는 거침없는 영기에 놀라서 파괴 사상을 사랑하고, 그렇게 사랑을 갈취하는 거다.


파괴는 불쌍하고 슬퍼서 아름다운 거야.


몸이 끝없이 추락하여 객혈하는 가운데에서도 인간실격의 탄생에 결정적 도움을 준 여인이 있었다. 결국 두 사람은 함께 자살을 한다. 도미에는 주위의 어떤 날카로운 시선에도 그를 놓칠 수 없어서 오사무를 끌어안고 물속으로 뛰어드는 직전까지 일기를 썼다. 그 일기가 다자이 오사무를 연구하는데 큰 기여를 하고 있다고 한다.


금각사로 유명한 미시마 유키오가 찾아와서 오사무에게 당신의 소설은 죽음을 쓴 연약한 소설일 뿐이오! 라며 오사무의 문학을 폄훼했었다. 그때 오사무는 너도 나를 찾아온 걸 보면 나의 글이 좋아서 온 것이라며 응수했다




우리나라의 문인들에 대한 일화도 있다. 시인 이상과 소설가 김유정에 관한 일화다. 두 사람은 실은 참 어울리지 않는데 구인회 소속으로 잘 어울렸다.


이상 시인은 모던 보이에 투사 같은 면모를, 그에 반해 김유정 소설가는 유약하고 여린 감성을 지녔었다. 두 사람의 공통점은 사랑의 열병을 앓고 있었다.


몹시 가난한 데다 하는 일마다 풀리지 않았다. 허무와 초현실의 이상의 글과, 해학과 풍자로 가득한 김유정의 글로 보아서 두 사람은 글로써도 어울리지 않을 것 같지만 이상은 [희유의 투사, 김유정]을 쓰면서 김유정을 기분 좋게 표현했다.


1936년 가을에 이상이 정릉의 한 암자에서 요양을 하던 김유정을 찾아갔다. 이상은 일본으로 떠나기 전에 김유정을 찾았는데, 아주 말라버린 김유정을 보며 이상이 물었다.


이상: 김 형, 각혈은 여전하십니까?

김유정: 그날이 그날 같습니다

이상: 신념을 빼앗긴 것은 건강이 없어진 것처럼 죽음의 꼬임을 받기 쉽더군요

김유정: 김 형! 김 형!(이상의 본명은 김해경)은 오늘에야 건강을 빼앗기셨습니까? 인제, 겨우 오늘에야 말입니까?

그러자 이상은 잠시 머뭇거리는가 싶더나 김유정에게 제안을 한다.

이상: 김 형! 김 형만 괜찮다면, 저는 오늘 밤으로 치러버릴 작정입니다


오래전부터 생각해 오던 동반자살을 제안했던 것이다. 하지만 김유정은 그 제안을 거절한다. 자신은 내년에도 소설을 쓰겠다는 것이었다. 그리고 이상은 내일 동경으로 떠난다고 하고 김유정은 만나기 어려울 것 같다고 한 것이 두 사람의 마지막 대화였다.


내년에도 소설을 쓰겠다던 김유정은 돈이 없어 잘 먹지도 못한 채 삶을 마감하고 만다. 그해가 1937년 3월 29일. 그리고 이십여 일 후인 4월 17일에 도쿄의 길을 걷던 중 김해경(이상 시인)은 사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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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실주의자들이 가득한 한국에 온 이상주의자 이리스. 이리스는 눈에 보이는 모든 것에 감정을 불어넣는다. 이리스가 만나는 한국인들은 현실에 맞는 생각과 말을 하지만 이리스는 그 모든 것을 감정으로 표현해보라 한다.

현실주의자들이 가득한 한국이지만 곳곳에 윤동주 시가 있고 그 시는 아름다우며 이 아름다운 시를 쓴 시인은 어째서 젊은 나이에 죽을까 안타까워한다.

이리스는 젊은 한국남자와 동거를 하고 있는데 불어를 가르치고 받은 돈으로 남자 친구에게 월세를 내는데 보태라고 준다. 그 돈 역시 감정을 불어넣어 이상적으로 만든다. 이리스와 남자 친구는 두 사람의 나이차이는 아무렇지 않다.

그때 남자의 어머니가 불쑥 집으로 오고 현실과 이상이 마주하게 된다. 현실주의자는 현실을 말하고 이상주의자 역시 현실을 말하지만 대립이 생기고 그 대립의 틈은 벌어지기만 할 뿐 쉽게 가까워지지 않는다.

와인보다 막걸리를 좋아하는 이리스. 피리를 불지만 이게 무슨 노래인지 전혀 알 수 없게 부는 이리스. 이리스는 한국에서 무엇을 보고 느끼는 걸까.

요즘도 홍상수 영화에 대사는 각본이 없는 걸까. 현실에서 정말 피하고 싶은 순간과 상황을 대사로 대화를 한다. 아슬아슬한 분위기를 긴장감이 드는 대사로 잘도 표현했다.

홍상수의 젊은 뮤즈가 김민희였는데 이제 김승윤으로 넘어가는 추세 속에 있는 것 같다. 기주봉이 시인으로 나왔던 우리의 하루에서도, 물안에서도 김승윤이 주연으로 나온다.

찬실이는 복도 많지에도 단역으로 나오는데 그 영화는 홍상수 사단에서 오래도록 조감독을 하다가 홍상수에게 까이고 독립해서 지원받아서 이 영화를 만들어서 영화 안에서도 그 이야기가 고스란히 들어있다.

조윤희 역시 언젠가부터 홍상수 사단으로 홍상수의 영화에 나오고 있다. 권해효의 부인이기도 해서 권해효와 둘이서 같이 홍상수 영화에 동반출연하는 것도 재미있다.

무엇보다 주인공 이리스 역의 이자벨 위페르는 벌써 두 번이나 홍상수 영화에 출연이다. 마담 사이코에서 정말 무시무시한 연기를 보여주더니 홍상수 영화에서 뭔가 한국 아줌마의 느낌이 폴폴 난다. 나사가 하나 빠진 듯한 연기를 처연하게 하는데 보는 재미가 있다.

우리 삶은 너무나 빡빡하고 힘들지만 이리스 같은 시선이 필요할지도 모르겠다. 그래서 현실과 동떨어진 sns, 인스타그램, 스레드에 사람들이 몰려드는 것일지도 모른다. 이리스는 눈에 들어오는 모든 사물과 사람들을 낯설지 않게 보는데 그녀를 보는 우리는 낯설게 본다. 뭐 그렇다고요.

예고편도 욘나 홍상수답다. 그 옛날 짐 자무시의 천국보다 낯선을 봤을 때의 느낌이었던 ‘여행자의 필요’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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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련은 왜 한꺼번에 오는 걸까. 시련이라는 발음도 마음에 들지 않아. 실연처럼 들리기도 해. 우리의 삶이라는 게 새벽의 수영장의 물처럼 고요하지만 한 번 흔들리면 다시 고요해지기가 힘든 것 같아.


한 번은 키보드와 마우스가 동시에 고장이 났어. 고작 키보드와 마우스 일 뿐인데 하루가 망가지는 거야. 그 ‘고작’이라는 게 인간의 삶을 망가트리는 것 같아. 지난번에 카카오 톡이 몇 시간 안 됐을 뿐인데 우리 삶이 어땠어?


시련이 한꺼번에 온 것 중에 타격이 가장 컸던 때는 아버지가 쓰러져 병원생활을 할 때였지. 병실의 간이침대에서 잠을 자고 일어나면 몽둥이로 여기저기 두드려 맞은 것 같았어.


그저 빨리 이 생활에서 벗어나기만 바랄 뿐이었는데 2년이나 지속되었지. 그때 실연도 같이 왔어. 시련과 실연은 그렇게 나에게 매질을 하더라.


시련이 가고 나면 평화가 찾아오는 거 같아. 그러나 평화로운 시간은 무척이나 짧지. 평화라는 허울 주위에는 시련의 시간이 에워싸고 있어. 김소연 시인도 평화는 태풍의 눈과 같다고 했지.


평화 주위는 온갖 시련들이 우글거리고 있어. 평화의 그 짧은 달콤함은 금방 녹아 없어지고 말아. 시련을 많이 겪어야 한다지만 나는 시련이 싫어. 그렇다고 평화만을 좋다고 생각하는 건 아니야. 평화가 길어지면 나태가 되니까. 영속될 수 없지. 그냥 그렇다는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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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은 섬 연모도에 스쿠버 다이빙을 하려 들어가는 은지. 휴대폰 안테나도 잘 뜨지 않고 약국도 보이지 않는 마을에서 은지는 어촌계 청년들에게 이상함을 감지한다. 연모도 마을에서 권력을 휘두르는 어촌계 용태가 있고 용태 밑으로 어촌 청년들, 여자들 그리고 경찰까지 전부 용태와 연결이 되었다.

용태는 마을 사람들을 손아귀에 꽉 쥐고 빚을 진 마을 사람의 딸을 유린하고 젊은 여자들은 전부 자신의 노리개감이다. 용태는 자신의 말을 듣지 않으면 죽이기까지 한다. 이 모든 일들을 알게 된 은지. 마을의 파출소로 가서 이 사실을 전하지만 용태를 잡기는커녕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는다며 돌려보낸다.

용태는 서울에서 온 은지를 유린하기 위해 청년들을 시켜 잡아오라고 하지만 청년들이 한두 명씩 자꾸 사라진다. 결국 용태가 직접 나서게 되는데. 이 영화는 실화를 바탕으로 하고 있다.

섬마을에 들어온 학교의 여선생님을 모두가 돌아가면서 성폭행하고 그 사실을 묵인한 학교 아이들의 엄마아버지들인 마을 사람들과 경찰들까지. 온 마을이 사실을 숨기고 쉬쉬하며 주동자는 점점 괴물이 되어 계속 성폭행을 한다. 그러다가 말을 듣지 않으면 죽이기까지 한다.

요 며칠 밀양 여고생 성폭행 사건이 다시 수면 위로 떠오르고 있다. 백종원이 작년에 청도의 한 식당에 가서 맛있게 먹었는데 그 식당이 밀양 여고생 성폭행 주범을 직원으로 뒀고 친척집이었던 것. 그리하여 네티즌 수사대들이 하나씩 증거를 수면 위로 올리니 처음에는 부정하던 가해자는 현재 인스타그램도 탈퇴하고 어딘가로 가버렸다.

가해자인 그는 자신의 딸을 끔찍이도 사랑하는 아빠라는 점에서 사람들의 분노가 이만저만이 아니다. 영화 속 용태도 자신의 딸은 그렇게 아끼면서도 학교 선생님, 빚쟁이의 딸, 15년 전에도 은지의 엄마를 성폭행하고 어린 은지까지 성폭행했던 것.

은지는 복수를 위해 섬으로 들어온 것이었다. 영화는 잘 만든 티브이 단막극 같은 느낌이다. 독립영화로 15년 동안 복수의 칼을 갈고 섬으로 들어온 은지가 용태와 한 몸인 마을의 범죄 청년들을 하나씩 처리를 한다. 용태까지 붙잡아서 묶어 놓지만 좀 엉성하니 15년 복수만을 위해 준비했다고 하기에는 너무 허술한 모습도 있다.

이런 일이 벌어졌을 때 가해자의 처벌이 국민적 눈높이와는 형편없이 다르게 이루어져 영화처럼 피해자가 직접 가해자를 찾아서 복수를 하는 일들이 진짜로 일어나지 않을까. 부산 돌려차기 사건 같은 경우도 피해자는 신상이 다 노출을 시켜 놓고 가해자는 늘 모자이크처리를 한다. 가해자는 교도소를 나가면 피해자를 가만 두지 않겠다 하고 결국 생활이 망가진 피해자가 직접 나서서 얼굴을 공개하고 용기를 냈다.

가해자는 아무렇지 않게 잘 살아가는데 피해자는 삶이 무너져서 살아가는 현실도 영화에서처럼 시원하게 복수할 수 있었으면. 이번 김희애와 설경구 나오는 돌풍에서 대통령이 어느 날 지 쫄다구들에게 죽는다면서.

아무튼 가해자를 박살 내는 복수극 ‘은지: 돌이킬 수 없는 그녀’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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