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이라지만 십 년은 넘었다)은 대중목욕탕을 가지 않지만 어릴 때 명절이 다가오면 아버지와 함께 동네에 있은 목욕탕에 갔다. 아주 어릴 때에는 뜨거운 탕에 들어가는 게 죽기보다 싫었는데 아버지는 시원하다며 사기를 쳤다. 우리는 어릴 때부터 알게 모르게 사기를 당하며 지내왔다. 먹기 싫은 쓴 약을 먹으면 장난감 사준다거나.

목욕탕에 가면 재미있는 모습이 많다. 어떤 아저씨는 샴푸와 빗으로 머리보다는 사타구니의 털을 씻고 빗는데 많은 시간을 투자했다. 어렸던 내가 그 모습을 뚫어져라 쳐다보니까 아저씨가 몸을 옆으로 살짝 돌렸다.

한증막실 앞에는 혈압이 높으면 들어가지 말라는 문구가 붙어있다. 생각해 보면 혈관이 확장하면 혈압에 안 좋기보다 그 반대일 텐데. 오히려 냉탕에 갑자기 들어가는 게 안 좋을 수 있다. 한증막도 오래 있으면 누구든 안 좋겠지만.

어떤 아저씨는 한증막 안에서 영화처럼 괜히 누구도 알아주지 않는데 자존심을 내세워 저 사람보다 오래 앉아 있으려고 한다.

그러다가 도저히 안 되겠다 싶어 일어나면 들릴락 말락 한 온갖 허풍 같은 소리를 내며 묘한 기지개를 켜고 나간다. 누구도 알아주지 않는다. 하지만 모두에게 이겼다는 느낌으로 한증막을 나간다.

목욕탕 한 편에는 잠을 잘 수 있는 공간이 있다. 거기에는 덱 체어 같은 긴 소파 같은 의자가 일렬로 죽 있는데 어떤 아저씨는 하나만 걸치고 잠을 자는데 그 하나가 양말이다. 아저씨를 두드려 깨워 왜 하필 양말이냐고 묻고 싶다.

목욕하고 나오면 몸을 말리라고 거대 선풍기가 돌아간다. 드라이기는 물론 머리를 말려야 하지만 한 아저씨는 기마자세로 사타구니를 열심히 드라이로 말리고 있다. 철사 같은 뭔가가 한 가닥 날아와서 내 앞에 떨어졌다.

요즘은 어떤 모습인지 모르겠다. 아마 크게 다르지 않을지도 모른다. 코로나 이후 대중목욕탕도 많이 없어졌다. 아버지는 등은 어린 나에게 맡겼다. 가는 팔로 낑낑거리며 아버지의 등을 밀면 아버지는 또 사기를 쳤다.

아 시원하다며, 내가 밀어주는 등이 회사 동료가 밀어주는 것보다 더 시원하다고 했다. 그 말에 힘을 얻어 10살 인생에서 낼 수 있는 온 힘으로 아버지의 등을 밀었다. 이제 아버지도 없고, 아버지와 함께 갔던 목욕탕도 없어졌다.

이런 생각을 하니 공기가 부자연스러울 정도로 괴괴하다. 하지만 추억을 점검하듯이 조심스럽게 꺼내서 손 위에 올려놓으니 마음이 홀가분했다. 나는 조금씩 단단해져가고 있었다. 그렇게 믿고 싶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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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그림은 ‘헤드 앤 바틀(1975)’라는 작품이다. 필립 거스턴은 세계에서 가장 유명한 추상화가들과 어깨를 나란히 해서 추상을 하다가 구상으로 돌아섰다.

그 때문인지 미술계에서 박해받았지만, 그 덕분에 대중에게는 환호받지 않았나 생각이 든다.

남자가 쏟긴 술병을 뚫어져라 쳐다보는 그림에서 남자는 집 안에 혼자였음이 분명하다. 그 외로움을 달래기 위해 고독을 삼키기 위해 술을 마시고 집으로 와서 마지막 남은 한 병의 술을 땄다.

하지만 그만 술병은 넘어져 술이 쏟아지고 남자는 그 모습을 혼이 나간 듯 바라보기만 할 뿐이다.

코나 입 같은 건 필요가 없다. 오로지 술을 향한 욕망과 안타까움을 술병을 향한 시선으로 일관할 뿐이다.

이마에 두껍게 접힌 주름과 철사처럼 강한 수염이 난 꺼칠꺼칠한 턱은 남자의 지나간 시간을 말해주고 있다.

남자는 붓으로 생활하는 그림쟁이일 테지. 아마 거스턴 자신일 것이다. 늦은 사랑을 잃어버렸거나 생활고에 대한 비관에 술을 찾았을 것이다.

그러나 술병은 넘어져 술이 그대로 탁자에 쏟기고 말았다. 피 같은 술이라는 말처럼 거스턴은 술을 붉은색으로 채색했다.

키리코를 가장 사랑했다는 거스턴의 그림에는 낯선 그리움과 익숙한 고독이 옅은 비애감처럼 스며든다.



거스턴의 그림을 아주 좋아해서 자주 따라 그려본다. 그림 속 주인공의 고독이 낯설지 않아서 그런지 좋다.

이 그림은 ‘커플 인 배드’ 제목인데, 거스턴의 다른 그림에 비해 거의 유일하게 연인을 끌어안고 있다.

붓을 꼭 쥔 손으로 봐서 화가인 주인공은 아마도 자신을 말하지 싶다. 주인공은 그림도 연인도 놓을 수 없어서 다리를 오므리고 붓을 놓지 않고 절대적으로 연인을 끌어안았다.

이불속에서 사랑을 속삭이고 있지 않을까. 당신을 그렸어,라고 달콤하게 말을 했을지도 모른다.

작고 어두운 화가의 방에서 비좁은 침대 위에서 사랑은 무럭무럭 자라난다. 진정한 어둠은 빛이 없는 게 아니라, 빛이 들어오지 않는다는 믿음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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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 년 만에 편지를 쓰는 것 같습니다. 일 년 전에는 쓰레기의 찌꺼기가 몸속 어딘가에 계속 쌓이는 기분이었는데 요즘의 저는 찌꺼기가 몸속에서 썩어가는 것만 같습니다.

이것이라고 확실한 것에도 태도를 제대로 취할 수 없는 지경에 이르렀습니다.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태도라는 것이 중요하다는 것을 알게 된 것 같습니다. 여기까지 이 짧은 편지를 쓰는 동안에도 ‘것’이라는 글자를 꽤 많이 써버렸습니다. 역시 그것은 나의 태도의 문제라고 생각합니다. 태도라는 건 참 중요합니다. 태도에 따라서 그 뒤의 일들이 결정지어지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러기에 태도는 무엇보다 확실하게 취할 때는 취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저는 그동안 수준 낮은 태도로 일관했던 것 같습니다.

몸속의 그것이 썩어가면서 풍기는 악취가 일 년 전에도 나쁘지 않았는데 그것을 계속 맡고 있다 보니 그 냄새가, 그 악취가 나의 것, ‘나’인 것 같은 기분이 듭니다. 어쩌면 이제 저는 좋은 냄새라는 걸 맡을 수 없을지도 모르겠습니다.

그건 잘 설명할 수 없지만 후각의 문제만은 아닌 것 같습니다.

또 이렇게 한 계절이 끝나가려고 합니다. 인간 실격의 한 구절이 생각납니다. ‘그리고 그 이튿날도 같은 일을 되풀이하고 어제와 다를 바 없는 관습을 따르면 된다. 즉, 거칠고 커다란 환락을 피하기만 하면, 자연히 커다란 슬픔도 오지 않는 법이다. 앞길을 가로막는 돌멩이를 두꺼비는 우회하여 지나간다’라는 문장 말입니다. 한창 우울할 때 읽었던 기억이 있는데 지나고 나서 생각해 보면 그때는 오히려 우울함을 드러내서 더없이 우울하지 않았다고 생각합니다. 근래에 비해서 말입니다.

제가 인간 실격을 읽고 느낀 것은 어제와 다를 바 없는 오늘을 보내는 시시한 것들이, 커다란 슬픔과 위대한 기쁨을 누리지 않는 것들이, 결국 마지막까지 살아남는다는 것입니다. 돌멩이를 이기는 두꺼비는 몸에 상처가 커 곧 죽어 없어질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우회한 두꺼비는 살아남습니다.

시시한 것이 되어야 하는데 그게 말처럼, 생각처럼 쉽지 않습니다. 행복하게 죽기보다 불행하게 질질 끌며 살아가는 삶.

글이라는 건, 결국 살아남는가가 중요합니다. 어떻게든, 아득바득 살아남아 있다면 누군가에게 읽히는 것이기에 살아남는 글이 좋은 글이라고 생각합니다. 마찬가지로 인간도 그렇습니다. 좋은 신발, 좋은 차, 좋은 옷도 좋지만 좋은 사람이 좋은 글만큼 좋은 것 같습니다.

오늘 하루도 불확실하지만, 무사히 지나갈 것 같습니다. 저를 괴롭히는 사람은 누구도 아닌 저 자신입니다. 꿈을 꿨는데 꿈이 아니었어.라는 토토로의 대사를 지난번 편지 어딘가에도 썼는데 역시 지금도 잠시 꿈을 꾸고 있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현실이 꿈이고 꿈같은 시간이 현실이라면 참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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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브스턴스로 미친 연기를 보여줬던 데미 무어가 표독스럽고 관능미가 흐르는 사이코 메리더스 존슨으로 나왔다.

95년도 영화니까 데미 무어는 아주 예쁜 데다 운동을 많이 해서 늘씬하다. 영화 속에서도 그렇게 나온다. 당당하면서 남자에게 자기 싫어하고 욕망을 넘어 야망을 위해서는 무슨 짓이든 한다.

95년도인데 가상현실과 가상현실 속으로 들어가서 메리더스의 실체를 알게 되고, 무고죄와 모두를 자기편으로 만들어 버리는 메리더스를 마지막에 한 방 먹이는 톰 샌더스 역의 마이클 더글라스의 연기에 전율까지 찌릿.

디지컴사라는 컴퓨터 기술 회사에서 애플의 스티브 잡스처럼 기술 개발에서 미친 실력을 발휘하는 톰 샌더스의 새로운 직장 상사로 부사장이 오는데 예전의 애인이었던 메리더스가 온 것이다.

메리더스는 톰을 저녁에 불러 일하자고 하고서는 자꾸 몸의 대화를 나누기를 바란다. 그런 메리더스를 피해 도망 나오듯 톰은 나왔지만, 다음 날 톰은 메리더스를 성희롱했다며 소문이 나고. 톰은 오히려 메리더스에게 성희롱당했다고 하지만 회사에서는 아무도 믿지 않는다.

이렇게 두 사람의 법적 대결이 펼쳐지면서 회사의 가상개발과 함께 음모가 드러나면서 마지막에 톰을 파멸시키려는 메리더스의 계획이 모두가 모인 자리에서 밝혀진다.

여성이 남성을 성희롱하는 건 지금도 낯설어서 성희롱당한 남성들은 그냥 당하는 경우가 많고 불이익을 받는 경우도 많다. 오늘 자 대안 뉴스 유튜브에서도 이 건을 토론했는데 일단 상하관계에서는 남성이든 여성이든 상사의 부당한 대우에 함부로 할 수가 없다. 지금도 마찬가지다.

영화를 보면 인형 같은 얼굴을 한 메리더스가 똑 부러지는 말투로 남자가 안 돼, 라고 말하는 건 실은 된다는 뜻이 남긴 부정한다는 말이라는 대사에서 소름이 돋는다. 그렇게 계속 주위에 이야기하면 처음에는 믿지 않던 사람들도 메리더스의 말에 넘어가고 만다.

거짓말이 일상 용어가 되어 있어서 주위에서 오히려 자신이 잘못인가? 할 정도다. 영화 속에서는 그래도 메리더스가 자신이 거짓말을 하는 나쁜 사람이라는 것 같은 느낌이다.

유시민 작가나 김태형 심리학자가 말하는 것처럼 정말 무서운 게 윤도리처럼 자신은 자신이 나쁘다는 걸 모른다는 거다. 자신이 하는 거짓말이, 거짓말은 아니라 진짜라고 믿는 사람들이 무섭다는 말이다.

스토리에도 잠깐씩 올렸지만 천초국파랭이 같은 우파 유튜브는 자신이 올리는 영상이 바람직하지 않고 나쁘다는 걸 안다. 하지만 2분 미만의 좌파를 까고, 가결한 판사의 자녀가 미국의 어디에 산다며 올리는 영상에는 댓글이 몇천 개씩 달리며 슈퍼챗이 어지는 맛에서 벗어나지 못한다.

그러나 영화 속 메리더스는 표정에서 자신이 나쁘다는 걸 아는 분위기다. 자신은 늘 그렇게 생활해 왔고 자신을 거절하는 남자는 다 박살 내야 직성이 풀리는 여자인 것이다.

서브스턴스로 나이 든 데미 무어의 미친 연기를 봤다면 폭로는 아주 젊은 데미 무어의 표독한 연기를 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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며칠 동안 날을 포근하게 해 주었던 해가 숨어 버리고 잿빛 하늘이 지속되더니 는개비가 바람에 흩날렸다.


날이 시리고 차가워서 입김을 불면 무진의 안개 같은 연기가 보일 정도다. 명절이라는 분위기가 무색하게 사람들은 권태와 단조로움을 짊어지고 고개를 숙이고 거리를 걸었다.


누군가 그런 풍경에 반항이라도 하듯 고집스럽게 담배 연기를 뿜어 잿빛 공간에 틈새를 만들어내지만 이내 말랑말랑한 젤리처럼 틈새는 메꿔졌다.


라디오에서 이문세와 이소라의 ‘슬픈 사랑의 노래’가 나왔다. 두 사람의 목소리가 오늘의 시린 날에 참 어울린다.


이 노래는 이영훈이 “가장 사랑하는 곡이고 내 생애 다시 작곡하기 힘든 곡”이라고 했다. 86년에 작곡을 시작해서 6년 만에 멜로디를 완성했다.


그리고 그 멜로디에 맞는 가사를 쓰는데 또 4년이나 걸렸다. 노래 한 곡이 탄생하는데 10년이 걸렸다.

https://youtu.be/h9q87Ojz2kI?si=ozH-79a4GDbgg5oh



이문세는 이영훈을 소개할 때 지금은 말을 할 수 없는 둥글둥글한 사람이라고 했다. 난 아직 모르잖아요,라는 곡은 까딱했으면 음반에 실리지 못할 뻔했다고 한다. 원래 음반 작업이 모두 끝난 상태였다고.


이영훈의 스타일은 한 곡, 한 곡 아주 오래 꼼꼼하게 작업하는 스타일인데 ‘난 아직 모르잖아요’ 이 곡은 이영훈답지 않게 30분 만에 완성해 버렸다.


그래서 너무 상업적이지 않나? 빼버릴까? 아니 구색을 갖추기 위해 넣었는데 이 곡이 이문세라는 가수를 알리는 노래가 되었다.

https://youtu.be/eGqtNu1ChXM?si=BAK-p9EqOzPePjAx



아빠 생신 축하드려요. 하늘나라에서 맞는 첫 번째 생일인데 하나님이 잘 챙겨주시고 있나요? 하늘나라에선 첫 번째 생일이네, 너무너무 보고 싶고, 사랑해. 우리 아빠가 우주에서 최고! - 아빠아들 


우주에서 아버지라 제일 좋다는 스무 살 다 큰 아들의 수줍은 고백을 듣지 못한 채 그가 먼 길을 떠난 것은 2008년 2월 14일 새벽.


현재를 살고 있는 우리들 추억 어느 한 부분을 익숙한 멜로디로 채워준 사람, 작곡가 이영훈.


나이차이 많이 나는 형, 놀아주지 않는 누나 때문에 어머니가 할부로 들여놓은 피아노를 친구 삼아 놀던 이영훈은 그렇게 음악 인생이 시작되었다.


대학에서 그림을 전공하고 아르바이트 삼아 연극과 공연 쪽 음악 작업을 하던 중 같은 또래의 무명 가수를 만나게 된다.


그날 이후 20년 넘는 세월을 함께 지내면서 대한민국 최고의 콤비가 되리라고는 상상도 하지 못한 채 무명 가수 이문세에게 자신의 노래를 꺼내주었던 그때 이영훈의 나이 스물다섯 살.


이문세가 불러 유명해진 소녀라는 노래는 이영훈이 고등학교 시절에 초고를 잡아 놓았던 작품이었을 정도로 일찍부터 작곡가로서의 준비가 되어있었다.


덕분에 그가 정성 들여 만들어 입히는 노래마다 이문세의 목소리와 잘 어우러졌고 노래를 듣는 백 명의 사람에게 천 가지의 추억을 선물했다.


시인을 꿈꾸었던 작곡가 이영훈

사랑을 이야기하라

세월의 덧없음을 이야기하라

내가 살아가는 지금이 얼마나 아름다운지

 

https://youtu.be/6xcY-NJGdzg?si=4co6pb4m5KbPWUd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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