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른도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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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영화를 보기 전 우리는 그간 엄태구에 대한 영화 적 이미지가 있거나, 생성되어 버렸거나, 바라는 이미지 상이 있다. 엄태구는 어느 영화에나 잠깐씩 등장해서 강한 인상을 주고 갔다. 도드라진 광대뼈에 지지 않을 것 같은 인상, 기계음 같은 낮은 목소리. 수많은 영화에 나왔지만 조연으로 차이나타운에서, 또 단역으로 베테랑에서도 나와서 각인시키고 들어갔다. 무엇보다 택시운전사에서는 가장 긴장이 흘렀던 1분, 그 1분을 엄태구가 장식했다. 그러다 보니 관객은 엄태구에게 바라는 이미지가 굳어져 버렸다. 그랬는데, 그런데 이 영화에서 엄태구는 완벽하게 변태했다. 그간의 엄태구의 영화 속 얼굴에서 벗어난 얼굴을 볼 수 있는 영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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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른도감 이 영화는 두 살 때 엄마가 집을 나가고 아빠와 단둘이 살고 있는 중학생 1학년인 경언은 아빠의 장례식 날 느닷없이 나타난 삼촌이라 불리는 재민과 함께 살게 되면서 겪는 이야기를 그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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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이 어른도감인 이유는, 삼촌인 엄태구, 극중 재민은 어른으로는 어설프고 이제 중학교 1학년인 이재인, 극중 경언은 애로는 어설픈, 아직 어리지만 이미 경언은 어른이 되어 버렸고, 어른이 되었지만 아직 아이처럼 바보 같고 사람들에게 당하기만 하는 재민은 서로 맞지 않지만 그 접점을 찾아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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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지의 보험을 꿀꺽해버린 재민은 경언에게 그 보험금을 돌려주기 위해 어설픈 사기를 치려고 한다. 영화 속에서 벌어지는 사기극은 2% 모자라고, 삼촌으로서도 2% 모자라고, 경언 역시 아이로서 2% 모자라고, 그렇다고 어른으로도 2% 아니 많이 모자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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돈 많은 약국 아줌마의 돈을 뜯어내려 삼촌과 조카의 사이를 속이고 아빠와 딸의 행색을 하고, 경언은 재민에게 이런 일은 옳지 않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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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건 그렇게 나쁜 일이 아니야.라고 말하는 삼촌.
누군가에게 시간을 들인다는 건 다시는 돌려받지 못할 삶의 일부를 주는 거야. 목적이 뭐든 간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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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민과 경언의 공통점은 둘 다 고아라는 점, 그리고 둘 다 경언의 아버지에게서 컸다는 점이다. 나이차가 많이 나는 형에게 엄하게 자란 재민과 아빠의 사랑을 받은 경언은 알 수 없는 연대를 지니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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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의 얼굴을 모르는 경언이 재민에게 엄마가 나를 처음 봤을 때 어땠어?라고 물었을 때 재민은 너 엄마가 너를 처음 받아서 안고 봤을 때 이런 표정이었어,라며 생명에 대한 감사한 마음과 그 기쁨에 대해서 눈물을 흘린다. 그 모습에 경언도 눈물을 흘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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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잘 모르지만 나의 애를 처음 봤을 때 모든 엄마가 그런 마음이지 않았을까, 그걸 엄태구가 연기를 해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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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를 보지 않은 사람은 엄태구가 이끌어 간다고 생각하겠지만 영화를 끌어가는 건 이미 어른이 되어 버린 경언이 죽 끌고 간다. 경언의 옆에서 자칫 샛길로 빠지지 않게 에스코트하는 역할을 삼촌인 엄태구가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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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태구는 시종일관 아직 청소년에서 벗어나지 못한 티가 난다. 첫 번째 캡처에서, 경언에게 너 머리 나쁘지?
아니요, 저 머리 좋은데요. 저 149거든요.
뭐? 키가?라고 하며 키득키득하는 장면 같은 것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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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영화를 보기 전에는 철원기행을 봤는데 더 이상 현실적일 수 없을 정도로 현실적인 영화라서 내가 생활하는 이 현실이 영화 속 철원기행보다 더 영화적이었다. 철원기행은 리뷰를 할 수 없었다. 철원기행은 너무하다 싶을 정도로 그저 현실이었고 지극히 현실이었고 너무 현실이어서 영화가 이래도 되나 싶을 정도로 흘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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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뒤에 본 영화가 어른도감이라 그런지 뭐랄까 따뜻했다. 두 사람이 밤에 산에 올라 도시가 불이 꺼지고 난 후 하늘을 봤을 때 반짝이는 별을 보는 장면이라든가, 위에서 말한 엄마의 기억이 없는 경언에게 엄마의 기억을 옮기는 장면은 정말 따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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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기행각은 들통이 나고 갈등을 빚는다. 그리고 재민과 경언은 갈등이 커져 재민이 집을 나가고 마는데. 이 두 사람은 어떻게 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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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미 어른이 되어 버린 경언은 아직 아이로 머무르고 있는, 모습만 어른인 삼촌 재민을 만나 다시 아이가 되고, 재민은 어른스러운 경언을 만나 조금씩 어른이 되어 가는 영화 어른도감. 버디무비라 할 수 있는 어른도감 같은 성장영화가 듬뿍듬뿍 나왔으면-순전히 개인적인 바람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