러브 앤 머시, 이 영화는 소리가 죽음으로 몰고 가고 소리로서 다시 살아가는, 살기 위해서 죽어 가는 남자, 브라이언 윌슨의 이야기, 세계가 놀라버렸던 앨범 '팻 사운드'의 이야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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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국에서 아메리칸 인베이전을 성공한 1세대 영국 밴드는 믹 재거의 롤링스톤즈였다. 롤링 스톤즈 잡지까지 등장해서 지금까지 음악 잡지로는 명실 상부하며, 믹 재거는 비슷한 외모로 아직까지 건재하니 롤링 스톤즈는 실로 외계 그룹이 아닌가 싶다. 다음 2세대가 컬처클럽이었다. 보이 조지가 있던, 조지 보인가, 암튼 컬처클럽의 성공은 록밴드가 아니어도 된다는 의미를 가지게 만들었다. 아니지 비틀스가 2세대, 컬처클럽이 3세대. 아무튼 영국 밴드의 음악적 미국 침공이 여러 차례 있었지만 성공시킨 영국 밴드는 몇 없었다. 자칭 비틀스의 환생이라던 오아시스 역시 실패를 맛봤지만 비틀스는 해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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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0년대 비틀스는 영국을 벗어나 거대한 아메리칸 인베이전을 감행하고 미국의 음악세계를 영국의 보이밴드가 평정을 해버린다. 비틀스가 가는 곳이면 소녀팬 수 천 명이 몰려다녔고 티브이 쇼 프로그램에 나오면 사람들이 길거리를 지나다니지 않고 티브이 앞으로 몰려들었다. 예전 한국의 모래시계가 할 때 거리가 한산했던 것처럼. 미국에 나타난 비틀스는 그야말로 기분 좋은 경악이었다. 하지만 미국의 한편에서 비틀스도 넘보지 못하는 그룹이 있었으니 바로 브라이언 월슨의 비치 보이스였다. 비치보이스가 있는 한 미국에서도, 그 중 제일 크나큰 캘리포니아를 침범할 수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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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시 미국의 60년대는 음악적으로 가장 아름다운 시기였고 캘리포니아로 자본이 흘러 들어가던 시기였다. 당시의 캘리포니아는 막강한 자본력으로 어느 도시보다 화려했고 심지어는 당시 국가경쟁력이 떨어지는 한 국가보다도 자본이 많았다. 강렬한 태양이 늘 솟아오르고 비치가 있고 파라솔과 비키니와 스포츠카가 만연했던 캘리포니아. 여자를 노래하고 해변을 노래하고 바람과 자연을 노래하던 비치 보이스의 인기는 어마어마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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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에서 비치보이스의 노래하면 코코모를 떠올리지만 미국은 당연하게도 서핀 USA다. 아쉽지만 코코모에는 브라이언 윌슨은 빠졌을 때다. 비치 보이스의 '아이 겟 어라운드'라는 노래를 한 번 듣고 오자. 자 들어봤다. 이거 정말 신날 수밖에 없다. 러브 앤 머시 영화 초반에도 노래가 나오지만 모든 것을 잊어버리게 만드는 신나는 노래다. 뜨거운 태양과 비치, 파라솔이라는 관념은 당시의 어려운 미국의 도시나 어려운 경제 사정의 대부분의 나라들은 꿈도 꾸지 못하는 풍경이었다. 그 최고의 경지에 올라있는 그룹이 비치보이스였다. 이대로만, 이런 노래들을 부르면 자본은 굴러 들어오고 인기는 유지가 되는 시기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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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다른 멤버에 비해 브라이언 윌슨은 언제까지 태양과 바다와 여자를 노래할 수 없었다. 그는 비틀스의 러버소울 앨범을 듣고 충격을 받는다. 늘 환청처럼 들리는 소리는 자신을 죽음 직전까지 몰고 간다. 눈을 감으면 보이는 이상한 세상에서 들리는 소리들이 매일, 어느 시점에서, 어떤 시간에 자신에게 들려온다. 리스닝과 히얼이 있다면 듣고 싶어서 들으려 하는 소리와 듣고 싶지 않음에도 들려오는 소리는 소음을 넘은 그 무엇이 있다. 알 수 없는 소리들, 부르짖는 소리, 깨지는 소리, 부서지는 소리, 타오르는 소리는 브라이언 윌슨을 끝으로, 끝으로 몰고 간다. 그리고 그 소리를 앨범에 담으려고 했다. 브라이언 윌슨은 멤버들에게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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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라이언 윌슨: 비틀스의 러버 소울(노르웨이 숲이 여기에 있다) 앨범 들어봤어?
멤버: 그거 존 레넌의 바람 핀 이야기잖아.
브라이언 윌슨: 나에게 좋은 생각이 있어, 니들까리 일본에 공연을 갔다 와, 내가 정말 멋진 음악을 만들어 놓을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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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하여 영화는 브라이언 윌슨이 ‘팻 사운드’의 앨범을 만드는 과정을 보여준다. 우리가 그토록 좋아했던 앨범이 이렇게 탄생했다는 역사적인 순간을 영화를 통해서 볼 수 있었다. 그건 브라이언 윌슨을 좋아하는 사람에게는 경이로운 일이었다. 젊은 시절의 브라이언을 연기한 폴 다노는 당시 소리 때문에 약과 술에 살이 찐 브라이언을 연기하기 위해 몸에 살을 찌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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팻 사운드의 앨범 표지를 보면 비치 보이스의 멤버들이 동물들에게 먹이를 주는 모습이 있는데 브라이언은 팻 사운드에 녹음실에 데리고 온 개들의 짖는 소리들까지, 그리고 녹음에서 농담을 하는 이야기 소리까지 앨범에 담았다. 그 당시에는 그러한 실험적인 음반이 좋은 소리를 들을 리 없었다. 설령 같은 멤버라고 할지라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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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는 시간이 지난 후의 브라이언의 모습도 보여준다. 그 연기는 존 쿠삭이 한다. 처음에는 폴 다노와 존 쿠삭? 뭐야?라고 생각했지만 영화를 보다 보면 그 둘이 정말 하나라고 느낄 정도로 브라이언 윌슨을 표현해낸다. 영화는 다른 음악영화처럼 공연 장면이나 그들의 거대한 인기에 중점을 두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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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신적인 지주였고 자본의 표상이었던 아버지에게 도움을 받지만 또 어린 시절 자신을 무자비한 폭력으로 굴복시킨 사람도 아버지였다. 브라이언 윌슨은 정신적인 충격으로 침대 위에서 나오지 않고 2년 동안 생활을 하기도 했다. 그걸 브라이언의 침대의 몰락이라고 한다. 그 고뇌와 감당할 수 없는 소리의 공격에서 벗어나는 계기가 있는데, 그를 일으켜 세운 여자 멜린다가 그 계기였다.  무자비한 폭력이 아버지라면 멜린다는 무자비한 사랑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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펫 사운드가 세상에 나오고 가장 놀란 사람은 비틀스의 존  레넌이었다. 이후 존 레논은 악동의 모습에서 점점 메시아의 모습으로 바뀌어 간다. 비치 보이스에 팻 사운드가 있다면 비틀스에는 화이트 앨범이 있다. 그중에서 ‘레볼루션 넘버 나인’도 잡음과 소리로만 만든 음악이다. 전위적인 소리로 녹음을 한 이 곡은 개인적으로, 아마도 존 레넌이 팻 사운드보다는 윤이상의 곡을 듣고 만들지 않았을까, 그런 생각이 든다. 순전히 개인적인 생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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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떻든 비치 보이스와 비틀스의 이런 보이지 않는 음악적 경쟁이 지금 우리가 앉아서 듣고 있는 명반을 만들어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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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럼 우리나라에는 이런 음악을 했던 사람이 없었냐? 있었다. 불과 몇 해 전까지만 해도 음악 작업에 몰두했었다. 그는 음악으로 할 수 있는 모든 종류의 음악을 앨범으로 만들어 내놓았다. 가사는 니체를 떠올리게 하는 철학적 내용에 재즈, 블루스, 해비메틀, 록, 발라드, 그런지, 클래시컬한 부분까지 한 사람이 했다고는 할 수 없을 정도의 음악을 하고 간 사람이 있었다. 그 사람이 신해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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러브 앤 머시, 제목처럼 이 영화는 사랑과 자비를 말하고 있다. ‘사랑과 자비를 너와 네 친구들에게 바칠게’라는 가사가 있다. 사랑과 자비 그리고 위로가 죽어가는 것들을 일으켜 세운다. 소리로서 죽어가고 소리로서 살아가는, 그래서 살기 위해서 죽어가는 브라이언 윌슨의 팻 사운드 영화 러브 앤 머시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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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번에 잠깐 리뷰를 했지만 물괴를 보면 전투 장면이 한 장면 나오는데, 보통 영화 속에 나오는 액션은 합을 맞춰야 한다. 우리가 보는 영화에 애드리브는 사실 거의 없다. 영화는 대체로 굉장히 과학적이고 수학적으로 정확하게 움직여야 보는 이들이 자연스럽게 느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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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괴에 나오는 이 정도의 액션은 아마도 영화배우들이 합을 몇 십 회, 아니 몇 백 회의 합을 맞춰야만 이 정도의 액션이 나온다. 게다가 김인권은 액션 장면에서 상대방을 잡고 공중으로 돌기도 하고 칼을 휘두르는 액션 역시 수많은 연습을 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김명민 역시 액션에 노력을 기울였다. 여타 엑스트라들도 합을 맞추기 위해서 주연들과 합을 맞추는 노력을 기울였다는 것을 알 수 있는 장면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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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런. 데.

촬영감독이 이 모든 노력을 완전히 죽여 버렸다. 핸드 기법으로 고정하지 않고 손으로 들고 마구잡이로, 그러니까 클로버필드처럼 카메라를 잡고 배우들이 고생한 것은 전혀 고려하지 않고 아하하하 하며 내 갈 길만 갈 거야, 하며 촬영을 해버렸다. 그래서 영화는 망했다

배우들이 노력한 것을 카메라에 잘 담아내는 것 역시 영화의 중요한 요소인데 물괴 이 영화는 그것을 무시함으로써 영화를 살릴 수 있는 결정적인 순간을 놓쳐버렸다. 그저 지나가다가 사라지는 엑스트라에 비해 이 장면에 나온 엑스트라는 굉장한 노력과 연습을 했는데 얼굴은 고사하고 몸동작 역시 카메라가 씨바 그냥 막 흔들었다. 욕해서 미안. 답답한 장면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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곧 개봉하는 보헤미안 랩소디 때문에 러브엔 머시를 리뷰했는데 물괴에 관한 이 부분은 이야기하고 싶었다. 물괴와 비슷한 창궐이 개봉을 했기에 물괴보다 나은지, 더 괜찮은지 기대를 해보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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와와의 학교 가는 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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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소수민족이 살고 있는 원난성의 외진 고산지대의 협곡의 한곳에 살고 있는 꼬마 와와, 그리고 누나인 나샹. 와와의 집에서 학교로 갈 수 있는 방법은 오직 협곡을 건널 수 있는 외줄 짚라인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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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나가 학교에 가면 강아지 밍밍과 함께 누나만을 기다리는 와와. 나샹이 학교에서 오면 와와는 그저 좋아서 둘이서 같이 재미있게 시간을 보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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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교의 이야기를 해주는 누나의 말을 듣고 학교를 가고 싶은 와와. 하지만 엄마는 어린 와와가 줄에 매달려 학교 가는 것이 위험해서 절대 못 가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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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학교의 아이들과 학교를 한 번도 가지 않았지만 누나보다 더 산수를 잘하는 와와는 엄마 몰래 줄을 타고 학교에 간다. 그리고 거기서 새로운 세상을 경험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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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문으로 수업을 듣던 와와는 집에서 누나에게 누나보다 더 시를 잘 외우고 똑똑함이 그대로 탄로 나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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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는 와와와 나샹의 둘도 없는 남매애를 고산지대의 광활함을 배경으로 보여준다. 누나를 애틋하게 생각하는 와와, 그리고 와와의 그런 마음을 아는 나샹은 어리지만 마음이 깊은 아이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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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날 도시에서 교생으로 부임해온 선생님의 눈에 들어온 건 추운 지대에도 아이들은 슬리퍼만 신고 있다. 아이들은 발이 시려 발가락을 오므리지만 배울 수 있다는 그 하나를 위해 추위도 이겨낸다. 카메라는 선생님의 부츠와 아이들의 발을 동시에 보여준다. 그리고 아이들을 학교로 갈 수 있게 하는 짚라인의 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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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수민족의 이 가난한 아이들은 목숨을 담보로 학교로 가는 것을 마다하지 않는다. 학교에 갈 수 있다면, 학교에서 수업을 들을 수 있다면 발가락이 동상에 걸리는 것도, 줄에 목숨을 의지해 협곡을 건너는 것도 감수하는 아이들. 아이들은 그렇지만 수업을 받을 때에는 그 누구보다 즐겁고 행복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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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생님은 운동장에서 아이들의 발을 일일이 잰다. 아이들의 장화를 후원받기 위해서. 이 장면부터 영화는 보는 이들의 마음을 계속 뭉클하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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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생님은 신발이 없는, 아직 학교 학생이 아니라 슬리퍼만 신고 다니는 와와에게도 갖다 주라며 운동화를 나샹에게 사준다. 나샹은 고맙다고 하며 와와의 운동화를 가방에 넣어 강을 건너 오다가 그만 운동화가 가방에서 빠지고, 그걸 잡으려 하다가 나샹은 줄을 놓치고 협곡에 휘말리고 만다. 누나만 기다리던 와와는 그 후로 말을 잃어버리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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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는 아이들의 밝은 모습 덕분에 반짝반짝한데 참 슬프다. 영화는 실화라서 더 슬픈 것 같다. 학교에 가고 싶어서 목숨을 걸고 강을 즐겁게 건너는 아이들과 가난에서 벗어나기 위해 교육을 시키려는 부모들의 노력을 헛되게 하는 거대한 자연. 그 속에서 남매인 나샹과 와와는 애틋함을 알아가고 그 마음을 아는 현명한 교생 선생님과 마을의 어른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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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에 협곡에는 다리가 놓인다. 이제 걸어서 학교에 갈 수 있게 된 와와. 바람개비를 좋아했던 누나는 이제 바람이 되었고, 와와는 다리의 중간에서 바람개비를 날린다. 와와에게 다리는 강 위의 길이다. 이제 누나 대신 열심히 학교에서 두보의 시를 외우고 수학을 잘 하기를 .

 

무공해 아이들, 끝도 없을 그 깊이에 그대로 빨려 들어가는 애잔한 영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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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른도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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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영화를 보기 전 우리는 그간 엄태구에 대한 영화 적 이미지가 있거나, 생성되어 버렸거나, 바라는 이미지 상이 있다. 엄태구는 어느 영화에나 잠깐씩 등장해서 강한 인상을 주고 갔다. 도드라진 광대뼈에 지지 않을 것 같은 인상, 기계음 같은 낮은 목소리. 수많은 영화에 나왔지만 조연으로 차이나타운에서, 또 단역으로 베테랑에서도 나와서 각인시키고 들어갔다. 무엇보다 택시운전사에서는 가장 긴장이 흘렀던 1분, 그 1분을 엄태구가 장식했다. 그러다 보니 관객은 엄태구에게 바라는 이미지가 굳어져 버렸다. 그랬는데, 그런데 이 영화에서 엄태구는 완벽하게 변태했다.  그간의 엄태구의 영화 속 얼굴에서 벗어난 얼굴을 볼 수 있는 영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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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른도감 이 영화는 두 살 때 엄마가 집을 나가고 아빠와 단둘이 살고 있는 중학생 1학년인 경언은 아빠의 장례식 날 느닷없이 나타난 삼촌이라 불리는 재민과 함께 살게 되면서 겪는 이야기를 그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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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이 어른도감인 이유는, 삼촌인 엄태구, 극중 재민은 어른으로는 어설프고 이제 중학교 1학년인 이재인, 극중 경언은 애로는 어설픈, 아직 어리지만 이미 경언은 어른이 되어 버렸고, 어른이 되었지만 아직 아이처럼 바보 같고 사람들에게 당하기만 하는 재민은 서로 맞지 않지만 그 접점을 찾아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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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지의 보험을 꿀꺽해버린 재민은 경언에게 그 보험금을 돌려주기 위해 어설픈 사기를 치려고 한다. 영화 속에서 벌어지는 사기극은 2% 모자라고, 삼촌으로서도 2% 모자라고, 경언 역시 아이로서 2% 모자라고, 그렇다고 어른으로도 2% 아니 많이 모자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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돈 많은 약국 아줌마의 돈을 뜯어내려 삼촌과 조카의 사이를 속이고 아빠와 딸의 행색을 하고, 경언은 재민에게 이런 일은 옳지 않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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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건 그렇게 나쁜 일이 아니야.라고 말하는 삼촌.

누군가에게 시간을 들인다는 건 다시는 돌려받지 못할 삶의 일부를 주는 거야. 목적이 뭐든 간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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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민과 경언의 공통점은 둘 다 고아라는 점, 그리고 둘 다 경언의 아버지에게서 컸다는 점이다. 나이차가 많이 나는 형에게 엄하게 자란 재민과 아빠의 사랑을 받은 경언은 알 수 없는 연대를 지니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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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의 얼굴을 모르는 경언이 재민에게 엄마가 나를 처음 봤을 때 어땠어?라고 물었을 때 재민은 너 엄마가 너를 처음 받아서 안고 봤을 때 이런 표정이었어,라며 생명에 대한 감사한 마음과 그 기쁨에 대해서 눈물을 흘린다. 그 모습에 경언도 눈물을 흘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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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잘 모르지만 나의 애를 처음 봤을 때 모든 엄마가 그런 마음이지 않았을까, 그걸 엄태구가 연기를 해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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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를 보지 않은 사람은 엄태구가 이끌어 간다고 생각하겠지만 영화를 끌어가는 건 이미 어른이 되어 버린 경언이 죽 끌고 간다. 경언의 옆에서 자칫 샛길로 빠지지 않게 에스코트하는 역할을 삼촌인 엄태구가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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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태구는 시종일관 아직 청소년에서 벗어나지 못한 티가 난다. 첫 번째 캡처에서, 경언에게 너 머리 나쁘지? 

아니요, 저 머리 좋은데요. 저 149거든요.

뭐? 키가?라고 하며 키득키득하는 장면 같은 것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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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영화를 보기 전에는 철원기행을 봤는데 더 이상 현실적일 수 없을 정도로 현실적인 영화라서 내가 생활하는 이 현실이 영화 속 철원기행보다 더 영화적이었다. 철원기행은 리뷰를 할 수 없었다. 철원기행은 너무하다 싶을 정도로 그저 현실이었고 지극히 현실이었고 너무 현실이어서 영화가 이래도 되나 싶을 정도로 흘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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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뒤에 본 영화가 어른도감이라 그런지 뭐랄까 따뜻했다. 두 사람이 밤에 산에 올라 도시가 불이 꺼지고 난 후 하늘을 봤을 때 반짝이는 별을 보는 장면이라든가, 위에서 말한 엄마의 기억이 없는 경언에게 엄마의 기억을 옮기는 장면은 정말 따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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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기행각은 들통이 나고 갈등을 빚는다. 그리고 재민과 경언은 갈등이 커져 재민이 집을 나가고 마는데. 이 두 사람은 어떻게 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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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미 어른이 되어 버린 경언은 아직 아이로 머무르고 있는, 모습만 어른인 삼촌 재민을 만나 다시 아이가 되고, 재민은 어른스러운 경언을 만나 조금씩 어른이 되어 가는 영화 어른도감. 버디무비라 할 수 있는 어른도감 같은 성장영화가 듬뿍듬뿍 나왔으면-순전히 개인적인 바람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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먹거리를 막걸리로 봤다. 조깅을 하고 오는데 저 앞에서 자전거를 타고 오는 누군가가 나를 보며 거수경례를 하기에 나도 모르게 맞받아서 경례를 하면서 누구지 하며 다가가니 자전거 남자는 그저 눈을 비비는 거였다. 아아 뭔가 불안한 징조. 그래서일까 지금까지 그럴 일이 없었는데 아이폰 밧데리가 40분 만에 1%가 되어 버리고 아이패드는 이만큼 충전을 하면 90%가 넘어야 하지만 41%밖에 차지 않았다[차지했지만 차지 않았다, 차지는 차지 못했다 ㅋㅋ 그냥 혼자 만의 유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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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을인가 싶더니 겨울바람이 불어왔다. 사람들이 겨울 패딩을 입고 나왔다. 두 시간 전에 이 거리를 달린 거 같은데 벌써 하루가 지나가 버렸다. 비가 오더니 또 금세 그치고 낮에는 그렇게 덥더니 밤에는 겨울이 와 버리는, 변덕이 죽 끓듯 하는 신데렐라 언니 같다. 그런데 신데렐라 언니의 이름은 뭘까. 분명 그녀들도 모지리에 나쁘지만 이름은 있을 텐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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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름이 지난 바닷가의 오후는 늘 그렇듯 뿌옇고 코가 간질 간절하며 밝은, 수필 같은 모습을 하고 있다. 너무나 평온해서 ‘너는 여기에 없었다’의 호아킨 피닉스를 떨어트려 놓아서 평온을 깨트리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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때이른 눈이 설악의 꼭대기를 설원으로 장식해서 그런지 그럴 때가 아닌데 벌써 바스락거리는 낙엽이 말라서 한구석에 있었다. 밟으면 바삭바삭하는 메마른 경쾌한 소리가 그곳에 사람을 머무르게 한다. 가끔 소리가 사람을 머무르게 하는 경우가 있다. 길거리에 레코드 가게가 소멸하지 않았을 때 좋아하는 노래가 나오면 머물렀고, 여름에 조깅을 하다 매미가 우는소리가 유난히 크게 들리면 그 자리에 서서 머물렀다. 따지고 보니 그 외에, 소리가 사람을 머물게 하는 경우는 잘 없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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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란색의 향연. 노란색은 사라진 독일의 코닥 필름으로 담아내면 기가 막힌 노란색을 담아낼 수 있다. 코닥은 노란색의 색감을 노란색으로 담아내는 특허가 있다. 그래서 필름 카메라에 코닥 필름을 넣어서 노란색을 잘 담아내면 정말 멋진 것이다. 은행잎의 노란색이 한가득 펼쳐진 거리는 마치 이 거리를 지나고 나면 그랜드 부다페스트 호텔 같은 곳으로 빠질 것만 같다. 지나면 완전히 다른 세계가 펼쳐져서 모험을 하는 곳. 그곳에서 물고기를 타고 다니다가 배고프면 먹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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찬바람이 불면 시장의 돼지국밥만 한 게 없다. 토렴해주는 곳. 밥알이 탱글탱글하여 겨울 속의 소박한 뜨거운 맛. 역동적이고 시원한데 얼큰한 맛이 뒤에 따라오는. 오물오물거릴 때 소주를 한 잔 마시고 사발을 들고 국물을 마시고. 크으. 등을 구부리고 돼지국밥을 먹는 아버지들의 모습 속에서 쓸쓸함과 따뜻함이 동시에 겹쳐지는 묘한 느낌도 받는다. 돼지국밥은 여자 혼자서 먹지는 않는다. 그래서 그런지 남자의 음식 같은. 옆 테이블에서는 이미 술이 취한 아버님 두 분이서 도스토옙스키의 죄와 벌에 나오는 라스콜리니코프에 대해서 이야기를 하는 것은 새빨간 거짓말이지만 트로트 노래 가사에 대해서 내가 맞니 네가 틀렸니로 언성을 높이고 주인 할머니에게서 이제 고마 집에 가라 마, 같은 소리를 듣고 있다. 할머니의 손에는 국자가 들려있다. 그러면 국밥 집에서는 가장 무서운 사람이 된다. 그런 가을의 하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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