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페에서 커피를 마시는데 멜론과 배가 올라온 이유는. 이 로컬 카페의 입구 맞은편에는 이렇게 아주 작은 해변이 있다. 정말 사진으로 보이는 딱 요만큼의 해변으로 여름에는 마을 사람들만 알고 있는 성지 같은 곳이다. 해변에서 올라오면 카페를 비롯해서 식당가와 술집이 죽 붙어 있는데 지난번에 죠의 가족이 기거하는 곳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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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페에서 아이스커피를 마셨는데, 어제는 인디안 서머 같은 날이어서 이 바닷가의 모두가, 전부 겉옷을 입지 않고 다녔다. 카페에 오기 전에 지난번의 그 막창 집에서 막창을 먹었는데 반팔을 입지 않았으면 땀이 날 정도로 겨울 속의 이른 여름 같은 날이었다. 막창도 맛있지만 어쩐지 딸려 나오거나 다른 것에 손이 더 가는 나는 싸구려 입맛이다. 짜파게티라든가 시원한 콩나물국이 나오는데 거기에 공깃밥을 말아서 먹었다. 그래서 정작 막창은 일행이 다 주워 먹어야해서 투덜거림을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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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주를 한 병쯤 마셨는데도 너무나 멀쩡하여 길에서 음주측정을 하는 경찰에게 나도 한 번 불어봐도 되냐고 하니까 불어 보라는 것이다. 후, 하고 불었는데 아무 이상이 없네요,라고 하는 것이다. 맙소사. 저 소주를 한 병 마셨는데요?라고 하니 경찰관이 일순 당황했다. 옆에 일행도 믿기지 않는다는 어색한 표정. 결론은 음주측정기의 밧데리가 거의 다 되어서 그런 것이니 소주 한 병을 마셨으면 절대 운전을 하지 말라는 말을 듣고 카페로 들어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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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 며칠은 정말 인스타그램이나 오프라인이나 프레디 머큐리의 이야기와 퀸의 음악이 대단히 강세라는 것을 알 수 있다. 일행이 보헤미안 랩소디를 두 번이나 보고 그것에 대해서 질문을 엄청 했다. 쓸데없는 것들에 대해서는 또 대답을 잘 하니까 주절주절 이야기를 널어 놓다가 11시가 되어서 이제 집으로 가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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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사장님이 멜론을 들고 오셔서 테이블에 놓더니 이야기하는데 죄송한데 저도 좀 들어도 되겠냐고 했다. 저도 이번 보헤미안 랩소디를 세 번이나 봤어요. 사장님은 40대 후반 정도로 보였고 손님이 다 빠져나가고 우리만 있기를 기다린 모양이었다. 캐럴을 끊고 퀸의 음악을 틀더니, 그러려고 한 것은 아니지만 이야기를 듣게 되었다, 정말 재미있는데 좀 더 듣고 싶다는 거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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술기운도 오르고 11시도 되었고 무엇보다 많이 걸어서 피곤한데, 멜론을 다 먹을 동안만 이야기를 또 주절주절했다. 퀸의 바이시클 뮤직비디오를 보면요, 여자들이 전부 발가벗고 나옵니다. 주절주절. 오오. 이야기를 하다 보면, 음악이라는 게 주변으로 계속 퍼져가기 마련이다. 보브 딜런까지 갔다가 오아시스까지 가버렸다. 자정이 다 되었는데 사장님 아내분이 배를 깎아서 또 내 왔다. 뭐 그랬던 거였다. 그나저나 나는 소주를 한 병이나 마셨는데 음주측정기에 왜 이상이 없게 나왔을까. 콩나물국에 밥을 말아서 였을까. 짜파게티 때문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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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은 다니다 보면 옷 가게에서도 캐럴이 반, 퀸의 노래가 반 정도 흘러나오는 것 같다. 어제의 로컬 카페 주인은 퀸의 음악을 상당히 좋아했다. 그 이야기를 하면서 정말 행복에 빠져 있다는 게 얼굴에 드러났다. 로컬 카페는 몹시 작았고 테이블도 4개가 고작이었다. 하지만 그 주인에게서 위기의식 같은 건 느껴지지 않았다. 카페에 있으면 음악을 종일 들을 수 있거든요. 그렇게 말을 하는데 그것이 마치 자신의 행복의 척도 중 가장 높은 것처럼 들렸다. 인간은 참 제각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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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악이란 인간에게 과연 뭘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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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별이 되어 버린 데이빗 보위와 조지 마이클이 서로 장난을 치는 장면도 볼 수 있었고 보노의 젊은 시절의 모습도, 모튼 하켓의 조각 같은 얼굴도, 풜 뭬쾈퉤뉘로 발음해야 하는 폴 매카트니는 지금보다 젊지만 조금은 촌스러운 모습도 볼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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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지 마이클은 크리스마스이브에 죽었는데 조지 마이클이 이반이라는 것이 신문에 났을 때가 공중 화장실에서 으응, 그런 장면이 포착되면서 이반이라는 것이 세계에 알려졌는데 세계의 사람들은 놀랐겠지만 조지 마이클은 오히려 이후가 마음이 더 편했을지도 모른다. 이전에는 이반인 것을 숨겨야 했기에 스트레스가 얼마나 심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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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직 85년도에는 목소리가 청량하다. 청량하기만 하다는 느낌이다. 하지만 이반이고 나서는, 아니 이반이라는 것을 알리고 나서는 목소리가 무깊이가 되었던 것 같다. 아주 깊고 그 울림이 심해 같았다. 조지 마이클은 웸 시절 잘생긴 엔드류 리즐리에게 인기를 거의 다 빼앗겼는데 개인적으로 엔드류 리즐리가 조지 마이클 보다 잘 생겼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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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지 마이클의 좋은 노래들이 많지만 조지 마이클 하면 역시 ‘페이스’ 아닌가. 깃을 세운 가죽 재킷에 찢어진 청바지에 특유의 선그라스를 쓰고 기타를 들고 페이스를 부르는 조지 마이클. 백 잇 모오션 할 때 그 멋진 목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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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노는 이후 눈의 문제로 실내를 제외한 공연, 야외무대에서 공연을 할 때 늘 선글라스를 끼고 공연을 했다. 이제 유투는 돈으로 움직이는 그룹이 아니게 되었다. 유투의 보노를 움직이게 하려면 명분이 돈보다 앞서야 한다. 기근이나 전쟁의 문제로 고민이 많은 나라에 유투는 늘 공연을 하러 갔기에 아직 한국 공연이 한 번도 없었던 유투를 한국에서 공연하게 하려면 점점 가까워지는 남북통일dmf 명분으로 불러야 하지 싶다. 이제 보노도 나이가 많이 들었단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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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릭 클랩튼은 예전에 한국 공연을 왔을 때 시간이 남아서 압구정동 로데오 거리의 한 계단에 앉아 있었는데 그 누구도 알아보지 못해서 아주 편했다는 소리를 한 적이 있었다. 어디를 가나 인간들이 진을 치고 사람을 몰고 다니는 에릭 클랩튼인데 한국에서는 길거리를 마음 놓고 활보할 수 있으니 자주 오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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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네시스의 더러머였던 필 콜린스도 라이브 에이드 라인업이었다. 필 콜린스의 딸이 릴리 콜린스로 여러 영화의 주연을 꿰차고 있다. 우리나라 옥자에도 나왔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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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직까지 살아있는 폴 매카트니는 일전에 한국에 처음으로 와서 공연을 했었다. 일본에는 5번인가 공연을 했지만 한국 공연은 처음이었다. 어제 라이브 에이드에 나왔던 슈퍼스타들 중 많은 사람들이 그대로 별이 되었다. 

지구에서 없어진 저들을 다시 세상으로 불러낸 공연이 2012년 런던 올림픽의 폐막식이었다. 개막식에서 폴 매카트니가 우리나라 돈으로 10원을 받고 헤이 쥬드를 불렀다. 전 세계 1억 명이 그 노래를 실시간으로 따라 불렀다고 한다. 폐막식에서 아직 살아있었던 조지 마이클이 노래를 부르고 흩어졌던 스파이스 걸스를 불러 모았고 죽었던 프레디 머큐리를 홀리그램으로 살려냈다. 정말 감동적인 장면이었다. 그리고 마지막에는 존 레넌을 살려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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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국은 정말 음악이나 미술 같은 예술에 무엇인가 아낌없이 투자를 하고 때려 붓는 것 같다. 우리는 그래, 우리는 예술이 사람들을 이어가는 가장 중요한 무엇이라고 생각해,라고 하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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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이브 에이드에서 에디오피아를 돕기 위해 만든 노래 ‘두 데이 노우 잇츠 크리스마스’는 의도도 멋지지만 미국의 ‘위 아 더 월드’에 대적하기 위한 노래이기도 하다. 노래가 사람들의 마음을 움직이고 전쟁과 기근에 죽어가는 사람들을 돕는다는 것을 여실히 보여준 노래가 위 아더 월드였는데, 그 노래는 정말 위대한 노래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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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국 출신들이(라고 하기는 뭣 하지만 노르웨이, 웨일스, 아일랜드가 있기에-보노라든가, 모튼 하켓이라든가) 자존심을 걸고 만든 노래 두 데이 노우 잇츠 크리스마스는 어제 본 것처럼 세상을 놀라게 했다. 크리스마스가 되면 빙 크로스비만큼 전 세계에 많이 흘러나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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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 프로그램의 음악감독은 남태정 피디가 했다. 남태정 피디는 마봉춘 라디오의 음악감독으로 전설 같은 사람인데 요즘은 어디서 뭐 하는지 몰랐는데 어제 남태정 피디의 이름이 휙 지나가서 반가웠다. 배철수 음악캠프에서 08년도까지 음악감독을 했었다. 남태정이 한 라디오- 이문세, 이적 같은 방송을 들어본 사람이라면 잘 알겠지만 선곡이 좋다. 좋다는 말은 청취자들을 고려하고 배려한다는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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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 멋진 무대 잘 보았다. 노래는 그렇게 여기를 건드리는 것 같다.
p.s 밴드에이드를 보고 유에스 포 아프리카만들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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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기를 최초로 사진에 담은 사진작가 다이안 아버스. 그녀의 사진을 한 마디로 말하면 ‘불편한’ 사진이다. 칼을 삼키는 알비노 여인, 240센티미터의 거인, 서로 다른 표정의 일란성 쌍둥이. 두 팔이 없는 여인. 온몸이 털로 뒤덮인 남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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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67년 미국 뉴욕 근대미술관에서 열린 ‘뉴다큐멘트’ 전에 전시된 그녀의 사진을 보는 관객들의 얼굴은 불쾌한 모습과 불콰하게 변하는 얼굴을 엿볼 수 있었다. 왜 저런 불편한 사진을 찍는 거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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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불과 5년 후 베니스 비엔날레에 이 ‘불편한’ 사진들은 미국 사진작가의 작품으로는 최초로 초청받았고 같은 해 뉴욕현대미술관에서 열린 작가의 사후 회고전에는 25만 명의 관객이 몰려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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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이안 아버스.

그녀는 무척 부유한 모파상의 집안에서 태어났다. 하지만 그녀의 배경을 뒤로하고 그녀의 일상은 무척 충격적이었다. 부모가 반대하는 결혼을 18세에 해버리고 이혼, 수면제 과다복용, 이후 사회의 어두운 부분만 쫓아다니며 담은 사진들 그리고 우울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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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이안은 자신의 부유한 집안 내력이 사회와의 소통을 가로막고 있다고 느꼈다. 마치 다자이 오사무처럼. 그녀는 18살에 가난한 사진가 남편은 앨런 아버스를 만나면서 갈증이 해소되고 소통의 도구로 카메라를 손에 쥐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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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57년 남편과 이별한 다이안은 거리로 카메라를 들고 나왔으며 자신의 스승에게서 ‘자신만의 사진을 식별하라’라는 조언을 받고 가슴에 큰 충격파를 안은 후 그녀는 금지된 것, 사람들이 불편해하는 것을 찍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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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체주의자, 장애인, 정신지체인 등. 그녀는 처음으로 타인과 자신 사이에 협력과 공감을 이끌어낸다는 매력을 느꼈다. 고독이라든가 회유라든가 하는 감정의 뒤틀린 부분이 순서를 정하고 질서를 찾아가는 기분을 발견해 냈을 때 그녀의 모습을 투사해보면 조금은 벅차오르는 감정을 느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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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이안은 점점 비정상적이고 극단적인 피사체를 담기 시작한다. 사람들은 그녀를 ‘wizard of odds’라고 불렀다. 결국 다이안은 자신의 사진이 이상하기(odds) 때문에 주목받는다는 현실과 타협하지 못하고 48살에 손목에 칼을 그어 자신만의 옥죄에서 풀려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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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들의 편견과는 달리 그녀의 사진 속 주인공들은 모두 밝은 모습이거나 사회의 편견을 전혀 의식하지 않고 당당하게 피사체가 되어 준다. 그건 분명히 다이안이 있는 그대로의 그들 모습을 담고자 한 그녀만의 세계가 그들의 마음을 움직였기에 가능했을 것이다

니콜 키드먼의 다이안 연기는 아주 좋다. 다이안 아버스가 금기에게 어떻게 다가가게 되었는지 ‘’까지’ 영화는 잘 그려내고 있다. 금기를 담으려면 금기가 되어야 한다. 나체주의자를 찍으려면 나체가 되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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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D 애니메이션 에비니저 스크루지의 이야기 크리스마스 캐롤은 저메키스의 2004년 폴라 익스프레스 이후 베어울프를 거쳐 만들어진 영화다. 영화를 보면 정말 실사처럼 만들었다. 십 년 전임에도 불구하고 요즘 생떼를 쓰며 만들어진 상업영화보다 훨씬 잘 만들었고 또 좋다. 영화를 보다 보면 만화를 왜 실사처럼 만들까,라는 의문도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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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 모양이나 머리카락이나 손짓이나 옷자락의 휘날림 같은 것들이 인위적이라는 생각이 들지 않는다. 기술력의 발전을 확인하기 위함이 아니라면 만화를 이렇게까지 실사와 거의 흡사하게 만들어야 하나,라는 생각이 잠깐 들었다. 에비니저의 조카인 프레드가 나올 땐 그 눈빛이나 얼굴의 비틀림이나 특유의 목소리가 가지고 있는 부드러움이 누가 봐도 콜린 퍼스의 젊은 시절이잖아! 하게 된다

이 영화가 나오기 전 스크루지의 이야기는 어릴 때 책으로 읽고 많은 버전의 영화를 스쳐봤지만 그저 흘러가는 시간 대하듯 했는데 이 영화가 나온 후부터는 역시 적극적으로 보게 되었다. 어떤 해에는 여름에 볼 때도 있다. 여름에 겨울 영화를 보는 건 차가운 열대어처럼 묘한 기분을 준다. 규칙이나 법칙으로 정해진 것도 아닌데 마땅히 그러한 것에서 좀 어긋나는 기분이 묘함을 증가시킨다. 요컨대 그램린을 여름에 선풍기를 틀어 놓고 본다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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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루지는 늘 혼자다. 옆에 사랑하는 벨, 가족이 있었지만 모두 떠나갔다. 인간은 혼자서 무엇을 해야 할 때가 사실은 많은 것 같다. 책도 혼자 읽어야 하고 잠도 혼자 들어야 하고 글도 혼자 써야 한다. 밥도 혼자 먹는다. 같이 밥을 먹는다는 건 행위에 속하는 것이고 누군가 대신 밥을 먹어 줄 수는 없다. 어쩌면 결국 밥도 혼자 먹는 것에 속할 수 있다. 그러니 크리스마스이브에 옆에 누군가 같이 있다면 꼭 안아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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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전에 나는 아버지 병간호 때문에 크리스마스이브를 2년 동안 병실에서 보낸 적이 있다. 대학병원 바로 옆이 호텔이라 병실에 난 창으로 보면 호텔의 반짝이는 트리의 불빛과 사람들의 즐거운 모습을 볼 수 있었다. 첫해에는 작은 창으로 그 모습을 보면서 내 년에는 나도 저렇게, 하고 생각했는데 다음 해에도 병실에서 같은 모습을 보면서는 언젠가는 나도,라고 생각을 해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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병실이라고 쓸쓸한 것만은 아니다. 병실에 오래 있다 보면 병실 사람들과도 이런저런 교류를 하게 되고 간이침대에서 자고 일어난 가족들은 서로에게 민낯을 보여준다. 사람이 살면서 형제, 부모 또는 군대 전우들 그리고 부부 사이를 제외하고는 타인에게 민낯을 제공하는 일은 극히 드물지만 병실에서는 여어(나를 보며), 편하게 좀 잤나, 같은 말을 듣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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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쩌다보니 병실 사람들의 사진을 담아 그것으로 크리스마스카드를 만들어 돌리기도 했고, 아이가 있는 간호사들은 아이의 사진을 편집해서 주기도 했다. 그러니까 병실에서 병이 낫지 않아서 사라지는 것을 제외하고는 그것대로 나쁘지 않은 생활이었다. 그때에도 레지던트 3년 차 중에 사진에 빠져있던 늘 피곤해 보이던 의사가 있었는데 그 사람과 병실의 환자들과 가족들의 사진으로 병원의 전시실에 전시를 해보자는 기획을 짜고 있었다. 하지만 아버지가 중환실에 들어가면서 그럴 수 없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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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때 크리스마스이브의 밤에 창으로 보는 세계는 아름답고 평화로웠다. 전쟁터 같은 병실에도 밤이 드리우면 모두가 고요해지고 잠에 빠진다. 에너자이저 아이들도 밤이면 봉지처럼 푹 꼬꾸라져 잠이 들듯이. 밤이 사라진다면 끔찍하지만 밤만 지속된다면 그것대로 해볼 만할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아마도 뭔가 하나를 보며 멍하게 시간을 죽이는 건 그 이후 더 심해진 것 같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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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카가 아버지 대신 들어서고 크리스마스이브 때면 온 집 안에 전구를 달고 불을 밝히고 맛있는 음식을 먹고 조카에게 선물을 주면 무릎에 와서 앉을 때 이 별거 아닌 일이 너무나 별거처럼 느껴져서 헛웃음이 나오기도 했다. 아무것도 아닌 생활이, 평온하게 흘러가는 생활이 아아 행복하다고 느껴야 하는 건 정말 절망 끝에 다다라야 하는 것일까. 스크루지는 어떻든 혼령들과 과거, 현재, 미래를 본 후 달라졌다. 마지막에 조카 프레드의 집에 찾아갔을 때 모두가 스크루지를 반기는 장면은 어쩐지 감격스러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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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치소에 겨울이 오면 모든 것이 달라진다. 무엇보다 사방으로 올라가는 영치품들이 바뀌고 과일이 겨울 과일로 바뀐다. 싱싱하고 맛있는 사과와 귤이 잔뜩 사방으로 오르기 때문에 우리는 사방을 순찰하면서 재소자들에게 귤과 사과를 이만큼 얻어서 내려온다. 하지만 정말 맛있는 것은 소시지다. 크고 굵은 소시지를 가득 받아서 막사로 내려오면, 컵라면에 물 받아 먹는 큰 찜통에 넣어서 삶아 먹는데 술안주로 기가 막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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짬밥이 되면 저녁 점호가 끝난 뒤 피엑스에 난로를 피워 소시지와 소주를 마신다. 마시다 보면 소대장도 오고 교무과에 근무하던 근무자도 냄새를 솔솔 맡고 내려와서 한잔한다. 남은 소시지는 나무젓가락에 끼워 난로 위에서 살살 돌려가면서 궈 먹는데, 그 냄새가 막사 저 밖으로 동초 근무자에게까지 날아간다. 잘 구워진 소시지를 처음 입에 넣어서 씹으면 툭 하며 터지는데 소시지의 육즙이 입안으로 죽 들어오면서 소주를 부르게 한다. 소시지 일 뿐인데 겨울은 그런 맛을 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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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어쩌다 부대 마크를 디자인했는데 그것이 채택되면서 겨울에 크리스마스카드를 만드는 병력으로 차출이 되었다. 잠자는 것 이외에 모든 근무에서 열외 되어서 오로지 카드만 만드는 것이다. 카드를 만들어서 구치소 내 직원들에게 판매를 하여 그 돈으로 회식을 한다. 그러니까 샘플로 몇 개를 만들어서 구치소 직원들 휴게실에 걸어두면 주문이 들어오는데, 같은 크리스마스를 손으로 일일이 몇 백 장씩 만들어야 한다. 거의 초주검에 가깝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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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하다 보면 요령이라는 게 생긴다. 단순한데 예쁘고 크리스마스 분위기가 왕창 나는 카드를 몇 백장 만들 수 있는데, 붉은 카드용지 위에 도안을 한 눈 사람이나 산타를 대고 스프레이나 물감으로 틀 안을 칠해주기만 하면 된다(이게 무슨 똥 같은 설명이지??). 글자는 금색의 사인펜으로 메리 크리스마스라고 꼬부랗게 쓰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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샘플 몇 개를 잘 만들어 놓고 그것을 대고 차출된 쫄다구들은 반복적으로 채색만 하면 된다. 너는 흰색 물감으로 이것만 하고, 너는 글자만 쓰고, 너는 테두리만 그려라.라고 지정해 준다. 나는 이런 것을 재미있어 하는 것 같다. 뭔가 일을 꾸미고 그것을 총괄하고 책임지고 뭐 이런 것들. 그 때문인지 여러 번 일을 꾸며서 사람들을 깜짝 놀라게 했었다. 몇 해 전에는 내가 살고 있는 아파트 관리실 앞에서 아파트의 모습들을 카메라에 담아 액자로 만들어서 게릴라 전시회를 했었다. 그때 어머니들의 어머, 하며 괜찮은 반응이 나왔는데 재미있었다. 부녀회장이 그 사진들을 다 달라고 해서 줬는데 얻다 써버렸는지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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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튼 쫄다구들은 반복된 일, 그것만 하면 되는데 잠을 못 자다 보니 엉망이 되는 경우도 있다. 그러면 나도 화를 낸다. 돈을 받고 하는 것이기에 이렇게 해서는 안 된다. 힘든 것은 내 쪽이다. 샘플을 만들어야 하기 때문이다. 뭔가를 처음 만드는 것은 꽤 난처한 일에 봉착을 하게 되는데, 그 샘플이 채택이 안 될 경우도 있고, 사람들의 반응을 일일이 체크해야 하고, 주문이 적게 들어온 카드와 많이 들어온 카드의 배분을 나눠야 하는 것을 조정해야 하는 것이 퍽 힘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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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작업실 안에서는 음악을 계속 들을 수 있다. 막사의 저녁 점호시간에 칼바람이 불고 아이들의 비명소리가 들려도 이 안에서는 모두가 자유롭다. 엎드려서 잠을 자도 되는 세계, 과자를 막 먹어도 되는 세계, 저녁 점호 총원 몇 명, 열외 4명 같은 보고로 우리는 지옥 같은 세계에서 제외된 것이다. 그것만으로 우리는 기쁘고 좋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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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대하고 그 해 겨울 군고구마를 팔았는데 그때에도 오전에 농산물 시장에서 군고구마를 떼와서 저녁에 장사를 하기 전까지 낮에는 카드를 만들었다. 학원가에서 장사를 했는데 그때 아이들이 군고구마를 사러 오면 군고구마를 하나 더 줬고 여자 손님이 오면 직접 만든 크리스마스카드를 줬다. 그것이 먹혔는지 소문이 소문을 물고 저 끝까지 퍼졌다. 지난번에도 이야기했지만 아파트 단지에는 군고구마를 배달을 했다. 배달을 해주면 집 안에서 뜨거운 군고구마를 먹을 수 있다. 그런 것이 먹혀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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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기수 밑의 쫄다구와 같이 했는데 서점 집 아들래미라 서점 앞에서 장사를 할 수 있었다. 그래서 시간이 날 때 책을 많이 봤는데 책이 잡지책이었다. 그때 잡지책의 세계에 대해서 또 눈을 뜬 것 같다. 소설과 시와는 다른 세계가 잡지책의 세계였고 그 세계에서도 굉장한 읽을거리와 볼 거리가 있었다. 그 후로 이충걸이 편집장으로 있는 지큐와 황경신이 편집장으로 있는 월간 페이퍼, 김혜리 기자가 있던 씨네 21을 열심히 구독해서 보기도 했다. 그들의 글을 매달 본다는 건 정말 멋진 일이 아닐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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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고구마 장사를 할 때 통이 두 개였다. 군고구마계에서 부르주아였다. 만든 카드를 천막 앞에 죽 걸어놓고 학원 강사님이나 약사님이나- 물론 여자들- 서점을 찾는 여자 손님이 군고구마를 사러 오면 어떤 카드를 드릴까요, 해서 이거라고 하면 그 카드에 글을 슥슥 적어서 줬었다. 생각해보면 호감이 있으니 내일 다시 오라느니, 꼭 다시 들러달라느니, 연락처 같은 것을 물어보지는 않았다. 그저 뭔가 시적인 문구와 메리 크리스마스를 썼었다. 바보 같은 걸까. 겨울의 추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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