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에서 오뎅을 삶아 먹을 때 감자를 넣어도 맛있다. 감자가 입 안에서 포슬포슬 녹아 없어지는 느낌도 좋고, 오뎅탕의 달달한 국물을 빨아들인 맛을 감자가 가지고 있어서 좋다. 겨울에 가끔씩 해 먹던 오뎅탕을 먹다 보니 며칠 전 지역 축제에서 오뎅을 만원에 파는데 오천 원어치는 팔지 않는다는 기사가 떠올랐다.


그 유튜브가 유익병(유이뿅) 채널인데 한국에 공부하러 왔다가 한국에 눌러앉은? 한국에서 유튜브 채널을 운영하는 일본인인데(다 알고 있으려나). 유익병은 어지간한 한국인보다 한국의 방방곡곡 다 돌아다녀본 일본인일 것이다.


요즘은 유익병 채널을 보지 않지만 한때는 재미있게 봤다. 유튜브를 가장 잘 활용하는 사람 축에 유익병도 속할 것이다. 전국의 시골이나 작은 도시 구석구석 다니니까 유튜브를 켜고 라이브로 다니다 보면 채팅하는 사람 중에 현지인이 있어서 느닷없이 만나서 길 안내를 받기도 하고, 민박을 하다가 주인 할머니에게 밥도 얻어먹고, 일본 아가씨 혼자 한국 여행한다고 고생이라며 시골에서 어르신들의 귀여움을 온통 받기도 했다.


하와이인가 베트남인가 갔을 때에도 사기당하지 않게 현지에 사는 한국 구독자가 나와서 길 안내부터 식당, 숙소까지 전부 안내를 해 주고 다음 날에도 나와서 안내를 해주기도 했다. 혼자 캠핑을 할 때에는 다음 날 비가 와서 씻지 못하고 그 전날 해 놓은 화장이 다 지워져 같은 사람이 맞아? 할 정도가 된 몰골로 라면을 끓여 먹는 모습으로 사람들에게 재미를 줬다. 또 덕자(다 알죠?)와 합방을 했을 때에는 도대체 둘이서 하는 외계어 같은 한국말 때문에 큰 웃음을 주었다. 꾸준하게 한국을 다니며 유튜브에 영상을 올리더니 이번에 뉴스에서 지역축제 오뎅 사태를 맞이하게 되었다.


지역축제가 잘 되어 있는 일본은 지역마다 특색 있는 먹거리가 있지만 우리나라는 다니면 여기나 거기나 저기나 축제에서 파는 음식물이 다 거기서 거기다. 왜 그럴까 도대체. 축제에 가면 파전에 닭꼬치, 오뎅, 삶은 돼지고기 등 거의 비슷하다. 개선이 되지 않는다.


보통 지역축제가 열리고 먹거리가 들어서면 먹거리 코너를 지자체에서 관리를 못하고 업체에 위임한다. 그래서 자릿세가 있다. 보통 2, 3일에 백만 원에서 백오십만 원 정도 한다고 한다. 이삼일에 자릿세 본전과 이익을 뽑아야 하니 비싸게 팔아먹을 수밖에 없다. 지역 축제를 살리고 하는 의무나 마음 같은 건 없다. 그래서 축제 특성상 축제마다 다니며 먹거리를 파는 외부상인들이 많다. 그들에게 지역에 대한 애착이 없기 때문에 자릿세를 뽑아서 또 다른 축제에 가서 장사를 한다. 올해는 코로나도 끝나고 해서 일 년 동안 전국의 축제가 삼일에 한 번 꼴로 열린다고 한다.


지역축제는 정권에 따라 달라진다. 지자체는 중앙정부만큼 돈이 없기 때문에 지원을 덜 받게 되면 축제를 열어 활성화가 되면 그 돈으로 충당을 한다. 진보가 정권을 잡게 되면 지역 축제를 줄이고 지원금을 뿌리는 방법으로 지자체를 돌리고, 보수가 정권을 잡으면 지원금은 줄이고 축제를 많이 개최한다.


지역축제가 많이 열리면 풍성해지는 반면에 공무원들이 투입이 되어야 하는데 그만큼 인력이 없다. 공무원들이 축제의 먹거리를 관리해야 하지만 턱없이 일손이 부족하다. 그리하여 축제가 늘어나면 인력을 동원하는 비용이 든다. 기존의 공무원 인력만으로 축제를 전부 관리하다는 또 말단 공무원의 과로사가 뉴스에 날 것이다. 하지만 제한된 공무원으로 관리를 전부 하지 못하니 외주를 줄 수밖에 없다. 브로커가 끼게 되면 당연하지만 중간 마진이 올라간다. 그렇게 되면 외부상인들이 돌아다니며 먹거리 질은 떨어트리고 가격을 올려 지역 축제를 살리는 것과는 멀어지는 일이 반복된다.


내가 있는 바닷가에서도 주말마다 축제를 한다. 도시 인구가 150만 명이니까 도시 곳곳에서 축제가 열리는데 규모가 크다. 가수들도 많이 오고 불꽃놀이도 크게 쏘아 올리고, 맥주를 하루동안 그냥 준다. 영화제가 열리기도 하고, 67년도부터 공업축제가 시작했기에 역사가 깊어서 다운타운에는 매일 밤 먹거리 골목이 열리는데 이곳은 나름대로 관리가 들어가고 있다.


그러나 바닷가 쪽으로 오면 품바가 열리고 파전을 팔고 하는 그런 늘 같은 먹거리가 생긴다. 그곳이 한 번 열리는 여름 내내 그곳에서 먹거리 장사를 하고 여름 내내 밤마다 축제가 열린다. 하지만 여기 사람들은 그곳에 앉아서 먹지 않는다. 사람들이 바닷가에 바글바글한데도 그곳에서 먹거리를 먹지 않는다. 비싸고 질도 좋지 않고 맛도 썩 없기 때문이다. 바로 옆에 치킨전문점, 샌드위치, 백다방 같은 곳이 많이 있다. 그러나 이런 곳에서도 오뎅을 만원에 팔지는 않는다. 오천 원어치는 팔지 않는다니 이 무슨 해괴모니냐.


오뎅탕은 날이 쌀쌀해지면 생각이 나는 음식이다. 나는 어릴 때 아버지와 목욕을 하고 나오면 늘 오뎅을 하나씩 먹곤 했다. 요즘은 아니지만 얼마 전까지만 해도 조깅을 하고 돌아오는 길에 점찍어 놓은 포장마차에서 오뎅을 두 개씩 사 먹었다. 그렇게 매일 오뎅을 사 먹다 보면 주인하고 친해져서 오뎅탕 안에 들어있는 무를 먹을 수 있는 자격도 주어진다. 오뎅탕에 빠진 무가 정말 맛있다.


그렇게 몇 해를 조깅을 하고 돌아오는 길에 들러서 오뎅을 사 먹었던 포장마차는 주인 할머니의 나이가 너무 들어서 그만 사라지고 말았다. 그 할마니 포장마차가 그 자리에서 몇십 년은 했는데 이제 휑하니 사라지고 난 후로는 나도 오뎅을 사 먹지 않게 되었다.


그 집이 내가 딱 좋아하는 오뎅의 맛이다. 국물이 짭조름하니 새우나 게, 땡초 같은 것들은 전혀 들어가지 않고 예전의 오뎅국물 같은 그 맛. 정말 보온병에 담아와서 국수를 말아서 후루룩 먹고 싶을 정도였는데, 한 번은 그렇게 국물을 받아와서 국수를 삶아서 먹었다. 꿀맛. 오뎅은 두부 같은 음식이다. 다른 음식에 비해 저렴하고 간편하게 먹을 수 있는. 그래서 먹고 나면 기분 좋아지는 그런 음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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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건모는 3집이 제일 좋다. 찬란하고 화려한 꽃처럼 김건모 3집은 정말 최고였다. 모든 노래가 이토록, 전부 대 히트였다. 첫 시작의 ‘아름다운 이별’부터 ‘드라마’를 지나 ‘잘못된 남만’을 거쳐 ‘겨울이 오면’까지.


그런데 김건모 3집을 아무리 찾아도 없다. 이상하다, 꼭 그렇다. 늘 넣어두는 곳에 같이 우르르 넣어 뒀는데 찾아도 없다. 발이 달린 것도 아닌데 꼭 사라지는 물품이 있다. 한때 그렇게 나에게서 사라지는 물품이 립글로스였다.


요즘은 일 년 열두 달 사시사철 쳐발쳐발하고 다니지만 예전에는 겨울에만 입술이 메말라서 그때만 바르고 다녔다. 보통 두 개 정도를 구입해서 하나는 집에, 하나는 일하는 곳에 두고 열심히 발랐는데 어느 날 보면 꼭 사라지고 만다.


마치 립글로스 공장에서 반 정도 사용하면 알아서 없어지는 장치를 심어 놓은 게 아닐까 할 정도로 매년 그렇게 립글로스는 사용을 다 하기도 전에 사라지고 말았다. 그런 립글로스가 요즘은 바닥이 보일 때까지 사용을 한다. 대신 이렇게 가만 두었던 김건모 3집 앨범이 사라지고 만다. 하루키의 오래된 버전의 책들이 다 있는데 사라진 것들이 있다. 정말 짜증이 나는 것이다.


어떤 이에게는 우산이 그럴지도 모르고, 또 다른 어떤 사람에게는 양말이 그럴지도 모른다. 팬티가 그런 사람이 있고, 휴대폰이 그런 물품에 속하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생각해 보니 휴대폰이 그렇다면 참 난감하다. 휴대폰이 도망가 버리면, 아아 생각만으로도 아찔하다.


휴대전화기도 물품이라 없어져도 이상할리 없지만 없어지면 정말 주인은 정지 상태가 되어 버린다. 모든 걸 휴대폰에 넣어두기 때문에 없어지면 큰일이 나는 것이다. 일시정지가 된다. 우리는 휴대폰을 맹신하고 있다. 잃어버리기 전까지는 나는 절대 잃어버릴 리 없다고 생각까지 하고 있다.


아직 나는 한 번도 휴대폰을 잃어버린 적이 없지만 내일이라도 도망갈지 모른다. 물품이니까. 발이 달린 것도 아닌 것들이 도망을 간다. 휴대폰은 비번을 풀 때 초기처럼 숫자를 눌러 푸는 게 지문이나 눈동자인식으로 푸는 것보다 낫지 않을까. 개인의 정보가 깡그리 담겨 있는 이상 요즘처럼 무서운 세상에 누군가에게 잡혀가서 기절을 당했을 때 휴대폰을 풀 때 나쁜 놈들이 지문이나 눈꺼풀을 억지로 까뒤집어서 폰의 비번을 풀 수 있지만, 숫자로비번을 풀어야만 한다면 쉽게 풀지 못한다. 주인인 내가 깨어나야만 한다. 그래서 직접 누르거나 알려주지 않으면 폰을 절대 풀 수 없다.


아무튼 김건모 3집은 여러 날 찾아봤지만 나오지 않았다. 김건모는 요즘 어떻게 지내고 있을까. 세상에서 가장 쓸데없는 걱정이 연예인 걱정이라는데 쓸데없는 걱정을 해본다. 악독한 놈들에게 걸려들어 결국 나락으로 떨어지고 말았다. 아무런 혐의가 없다고 밝혀졌지만 밝혀지는 동안 김건모는 추락할 대로 추락을 했다. 그 과정에 공연을 하기도 했지만 거기서 노래도 거의 성의 없이 부르고, 무대에 그대로 드러눕기도 하고, 노래도 못 불러 팬들의 빈축을 샀다.


바로 악독한 그 놈들이 바라던 바였다. 연예인들을 구워삶을 줄 아는 놈들에게 걸린 것이다. 연예인들은 회사라는 막강한 벽에서 나오게 되면 한없이 허물어지는 나약하기 짝이 없는 모래성 같다. 현재까지 김건모의 마지막 모습이 공연에서 성의 없이 팬들을 대하는 모습이었다. 미우새에서도 김건모는 손을 너무 떠는 등 눈치를 보는 것 같은, 그래서 자존감이 떨어지는 모습이 보이기도 했다. 손을 그렇게 심하게 떠는 건 아무래도 술 때문이라고 사람들은 말했다. 피곤해서 손을 떠는 것과 술 때문에 손을 떠는 건 다르다.


김건모는 노래도 잘하고, 피아노도 잘 치고, 무엇보다 높은 자존감으로 사람들에게 웃음을 주었다. 그런데 언젠가부터 티브이에 비치는 모습에서 낯빛이 어두워지고 말 수도 적어지는 것 같았다. 방송은 편집이라는 게 있다. 사실 일박이일 같은 경우 이삼일 같이 지내면서 대게 지루하게 흘러간다. 실상은 옆에서 보기에 썩 재미있지 않다.


현실에서 친구들과 캠핑을 가면 잘 알 수 있다. 캠핑을 즐기는 우리야 재미있을지 몰라도 옆에서 보기에는 지루하게 흘러갈 뿐이다. 하지만 일박이일의 새끼피디들이 붙어서 편집을 몇 날며칠에 걸려 한다. 재미있는 부분을 추려내서 이어 붙이고 음향을 넣고 자막을 달아서 보는 이들이 재미있게 볼 수 있게 만든다. 그러려면 카메라가 많아야 한다. 전체샷, 개인샷 따로, 좌우 따로. 카메라가 많지 않으면 재미있는 영상을 편집하기 힘들다. 제작비가 많으면 카메라가 많다.


축구경기를 생각하면 된다. 월드컵 경기는 다른 나라끼리 경기를 하는 것도 아주 재미있다. 골대 바로 옆에서 공이 날아오는 장면, 선수들의 역동적인 장면도 드론촬영, 망원촬영, 좌에서 우로 따라가면서 촬영을 한다. 카메라가 많기 때문에 티브이로 보는 사람들도 굉장히 역동적으로 볼 수 있다. 그런데 한국의 프로축구 경기를 중계로 보면 역동성이 떨어진다. 카메라가 몇 대 없기 때문이다. 치열한 축구 경기가 마치 정적인 경기처럼 느껴져 재미가 떨어지는 것이다. 늘 한 면에서 촬영하는 모습만 비추어주니 프로축구 경기가 고등학생들의 경기처럼 보였다. 하지만 시간을 거쳐 한국의 프로축구 중계도 예전에 비해서 많이 나아졌다.


하지만 영국 프리미어 리그의 경기만큼 카메라가 담아내야 한다. 영국 프로 리그에 돈을 얼마나 많이 뿌리는지 잘 알 수 있다. 월드컵 경기 저리 가라 할 정도로 많은 카메라가 경기를 담고 있어서 재미가 있다. 마찬가지로 편집을 거치면 풀 죽은 김건모도 어지간하면 살릴 수 있다. 재미있게 보이게 할 수 있다. 하지만 그렇게 하지 못했다는 건 김건모에게 너무나 큰 시련이 닥쳤다는 것이다.


김건모도 1집에서는 큰 인기를 얻지 못했다. 그러다가 2집의 ‘핑계’가 뜨면서 걷잡을 수 없는 초대형 가수가 되었다. 김건모도 한국 가요계에서 하나의 장르가 되었다. 잘 생긴 것도 아니야, 얼굴도 까매, 키가 큰 것도 아니야, 그렇다고 몸매가 좋은 것도 아니었다. 처음에는 충격이었다. 뭐야? 이 까만 사람은?


스트라빈스키의 ‘봄의 제전’에 대해서도 비슷했다. 1913년에 파리에서 이 곡이 처음 연주되었을 때, 그 지나친 참신성을 청중이 미처 따라가지 못해 연주회장에는 고함이 터져 나오고 엄청난 혼란에 빠졌다고 한다. 기존의 틀을 깨뜨리는 그 음악에 다들 깜짝 놀랐던 것이다. 하지만 연주 횟수가 거듭되면서 혼란은 서서히 가라앉고 이제는 콘서트의 인기 곡목이 되었다고 한다.


잘 생기지 않은 얼굴은 귀여운 얼굴이 되었고, 얼굴이 까만 건 건강하게 보인다고 했으며, 키가 큰 것도 아닌 건 친근했고, 몸매가 좋지 않은 것도 일반인들이 다가가기 쉬웠다. 사람들은 너도나도 김건모 패션에 열을 올렸다. 서태지와 아이들의 티피코시를 김건모가 모델을 하면서 그의 인기는 더 많이 올랐다.


김건모가 예전에 티브이에서 몸매 좋은 거 그거 다 나이 들면 쓸모없다, 나처럼 매끈한 이런 몸매가 유지되는 게 나이 들어 좋다고 했는데 그 말이 어느 정도 수긍이 가기도 하고. 2집 앨범은 사랑으로 시작해서 사랑으로 끝난다. 2집의 첫 시작 곡도 너무나 좋다.


혼자만의 사랑으로 시작하는 이 앨범은 숨은 보석 같은 앨범이 아닐까,라고 흔한 소리 한 번 해본다. 핑계를 부를 때 옆에서 꿀렁꿀렁 같이 춤을 추던 까무잡잡한 댄서는 김송.


혼자만의 사랑 https://youtu.be/B34o8wTSfow


핑계 영어버전으로 부르는 김건모 https://youtu.be/1nBSABl3Ub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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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성 하나가 불만을 품고 궤도에서 이탈해 버렸다. 이 답답한 궤도는 싫어! 가고 싶은 곳으로 갈 거야,라며 방향을 틀어 마음껏 날아가고 있다. 하늘에 존재를 각인하고 사라져 간 저 별을 보며 나도 그러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답답하다. 도대체 이 방에서 언제쯤 나갈 수 있을까. 눈앞에는 홀로그램으로 나의 생체인식에 대한 정보가 떴다. 어디든 갈 수 있다고 하더니 아직도 이 방에 머물러 있어야 한다. 생체정보에는 모든 게 정상이지만 적응 부분에서 아직이라고 미약하게 정보가 표기되었다]


사람이 죽고 나면 정신은 살아있을 때처럼 살려 둘 수 있는 시대가 되었다. 그러나 적응이 힘들어서 오히려 죽고 싶어 하는 사람들이 많았다. 육체가 없어서 어딘가로 이동을 하지 못하니 정신만 살아있어서 컴퓨터 속에서 생존을 이어간다. 하지만 마치 방에 갇혀 있는 것 같은 기분만 든다. 전뇌의 기술이 아직 상용화되지 않아서 안드로이드의 뇌에 정신을 입력할 수 있지만 대기자 수가 너무 많아서 기다려야 하는 과정에서 적응을 하지 못하고 사람들은 괴로워했다. 문제는 죽고 싶다고 해서 죽을 수 없다는 것이다. 이미 육체는 죽고 정신만 백업을 해 놓은 상태라 컴퓨터 시스템 속에서 한 없이 대기를 해야 한다. 1차 적응이 완료되면 살아 있을 때처럼 휴대전화를 사용하여 사람들과 소통이 가능했다. 휴대전화라고 하지만 그렇게 착각을 하는 것이다. 그저 정보 안에서 휴대전화라고 느끼고 그것을 사용한다고 착각을 하는 것이다. 휴대전화로 연락하고 메시지를 주고받으며 대기를 할 수 있다.


어쩐지 곧 이런 미래가 올 것 같은 이상한 기분이 들었다. 며칠 전의 애플의 공습을 보니 오래전 아이폰이 등장했을 때처럼 미래에 대한 생각이 새롭게 들었다. 영화에서는 이런 모습을 자주 볼 수 있지만 영화의 과학적 시간과 현실의 과학적 시간은 차이가 많이 난다.


1980년대 초에 개봉한 블레이드 러너 속, 세계는 2019년이 배경이다. 백 투 더 퓨처의 미래는 2015년이었고, 미래소년 코난의 배경은 2008로 한참 전에 지났다. 블레이드 러너 속 데커드가 지구에 몰래 들어온 래플리컨트(요즘 말로 에이아이, 안드로이드)를 잡는 이야기다. 그 속에서 날아다니는 자동차는 현실에서는 아직 한참 먼 이야기다.


리들리 스콧은 블레이드 러너의 장면 장면에 은유를 심어 놨다. 영화의 모든 컷이 하나의 ‘상징’이었다. 그래서 블레이드 러너에 대해서 현재에 이야기를 하면 모두가 할 말이 많다. 하루 종일 이야기를 해도 모자랄 것이다. 영화 속 인간은 하층계층부터 차별을 하고 서로 죽이고 생명을 앗아가지만 래플리컨트들은 동료가 인간에게 당해 죽으면 괴로워하고 분노했다. 인조인간 주제에 마음이라는 것이 없지만 인간보다 더 인간적이었다.


블레이드 러너는 이후 나오는 디스토피아를 표방하는 미래를 배경으로 하는 영화에 지대한 영향을 줬다. 아키라, 공각기동대, 토탈리콜, 저지 드레드 등. 대부분의 어두운 미래를 말하는 영화는 핵전쟁으로 암울한 지구를 말한다. 현재 세계는 핵전쟁은 아니지만 암울하긴 하다. 좀 있으면 빙하가 다 녹는 대지, 여러 나라의 전쟁으로 인해 수입해야 할 저렴한 식재료를 수입하지 못해 물가는 치솟을 대로 치솟지.


블레이드 러너는 하나의 상징, 장르가 되었다. 이번 애플의 헤드셋을 보며 애플 역시 또 한 번의 상징을 만들어내서 장르가 되려고 하는 느낌이 들었다. 예전에 스티븐 스필버그가 쥬라기 공원을 만들어 냈을 때 현대 자동차에서 자동차 백만 대 팔아치운 것보다 더 많은 이윤을 남겼다. 문화의 힘이라는 게 엄청나다.


애플워치가 처음에 나왔을 때 하루만 차고 나면 충전해야지, 누가 차!라고 했지만 지금은 스위스에서 나오는 그 모든 엄청난 시계의 판매량을 뛰어넘었다. 보통 휴대전화로 카톡을 하고 유튜브를 보고, 인스타그램에 올릴 사진을 고르고 보정하느라 하루를 꼬박 보내지만 아이폰이 등장 함으로 가장 큰 변화는 책상에 앉아서만 하는 업무를 오피스에서 벗어나서 할 수 있게 되어 버렸다. 하나의 장르가 되었다는 것이다.


이번에 나온 헤드셋을 보니 500만 원에 육박하지만 아이폰이 처음 등장했을 때의 그 기이한 느낌을 받기에 충분했다. 스티브 잡스가 아이폰과 맥북 에어를 들고 나와서 무대에서 설명을 했을 때 나는 무슨 말을 하는지 하나도 못 알아들으면서 새벽에 기다렸다가 유튜브로 그 장면을 보았다. 주머니에서 폰을 꺼낼 때에도 짜릿했지만 노란 서류 봉투에서 맥북에어를 꺼낼 때 정말 짜릿했다.


스티브잡스는 애플사의 자랑 매킨토시를 만들었다. 매킨토시는 미국의 사과 중에서 맛이 좀 떨어지는 사과다. 그래서 잼으로 만들어 먹고, 뭐 그런 사과를 매킨토시라고 한다. 스펠링이 Mclntosh다. 이 매킨토시에 스티브잡스가 약간 마법을 부려서 Macintosh로 만들었다. 이 맥이라는 게 초반에는 마니아들만 사용을 했는데 지금은 저변이 넓어졌다.


잡스의 이런 마법이 들어간 것이 픽사다. 픽사라는 단어도 잡스가 만들었는데 픽셀과 아트를 조합해서 pixar를 만들었다. 다 아는 얘기지만 잡스가 픽사를 처음으로 설립했다. 픽사를 설립하고 무모하게도 하나의 애니메이션에 10년을 매달렸다. 이 하나의 애니메이션을 만드는데 데리고 온 사람이 바로 존 라세티였다. 존 라세티는 70년대부터 스타워즈의 루카스 필름에서 그래픽을 담당하는 부서에서 애니메이터로 일을 하고 있었다.


그러면서 쓰리디를 담당하면서 디즈니사에 파견 근무식으로 왔다 갔다 하면서 그래픽과 애니메이션에 대해서 열공하고 있었다. 86년에 잡스가 애플사에서 쫓겨나서 존 라세티를 데리고 와서 10년 동안 애니메이터들과 매달린 애니메이션에 바로 ‘토이 스토리’였다. 잡스는 토이 스토리를 선보이기 전 단편 애니메이션 ‘룩소주니어’를 만들었다. 그래, 바로 픽사 영화가 시작할 때 등장하는 꼬마전등 녀석, 그게 룩소 주니어였다. 평단의 평판이 괜찮았다.


잡스는 우디와 버즈가 만들어가는 토이 스토리 하나에 10년이라는 시간을 투자했다. 지치는 애니메이터들에게, 당신들이 창조해 내는 우디와 버즈는 비록 생명이 없는 장난감이지만 영혼을 불어넣을 수 있다. 세상의 아이들이 우디와 버즈를 좋아하게 될 것이며 언젠가 우리의 이 허황된 노력을 모두가 알아주는 날이 올 것이다. 잡스는 게다가 10년 동안 애니메이터들에게 월급을 꼬박꼬박 주었다고 한다.


그렇게 해서 95년에 토이스토리가 세상 밖으로 나오게 되었다. 미국의 평단에서는 미야자키 하야오의 지브리 사와 비교해 가며 망할 것이라 했지만 사람들은 우디와 버즈를 보기 위해 아이들의 손을 잡고 극장으로 몰려들었다. 말 그대로 열광했다. 쓰리디 애니메이션이라는 하나의 장르가 탄생되는 순간이었다.


픽사는 디즈니 사에 넘어갔고, 이번 인어공주를 계기로 디즈니를 살렸던 픽사의 직원들을 포함해 7천 명이 해고가 되었다고 한다. 잡스가 죽고 나서 토이 스토리 3에서 어른이 되어 떠나는 앤디를 향해 우디가 So long, Partner라고 하는 말은 픽사가 스티브 잡스에게 하는 말이기도 하다. 그 대사를 할 때 눈물이 났다.


지금 문득 든 생각인데, 공황장애 때문에 석방이 된 박희영 구청장이 다음 날 새벽에 바로 출근을 했네. 아프다더니 좀 쉬지. 새벽에 출근한 이유도 유가족이 찾아와서 몰래 출근하느라 새벽에 한 거라는데.


2022년 12월 05일 자 주간경향 박희영 구청장에 관한 기사를 보니 어떻게 박희영 구청장은 공천되었을까. 전문성과 거리가 먼 행보에 권영세 장관 영향력이 컸다고 하는 기사가 있다. 공천과정에서 논란이 많았다고 한다.


얼마나 일을 열심히 하고 싶었으면 아픈데도 석방되자마자 새벽에 출근을 할까. 근데 공무원들은 일을 열심히 하는 것보다 일을 잘해야 하는 것 아닌가. 사람에게는 욕망이 있다. 욕망이 커지면 자신도 어쩔 수 없는 상태가 된다. 그런데 이 욕망을 뛰어넘는 게 야망이다. 야망에 눈에 뒤집히면 자신의 가족, 자신 주위의 소중한 사람들도 보이지 않는다. 궤도를 벗어나라. 안전한 궤도 속에서 손에 꽉 쥐고 있으려 하지 말고 손을 놓고 그대로 떠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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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랜만에 닭죽을 먹었다. 닭죽은 배가 금방 꺼진다. 집에서 해 먹는 닭죽은 엄마의 냄새가 있다. 닭죽도 너무나 간단한 음식이라 닭 한 마리를 넣고 그냥 끓이면 끝인 음식이다. 그런데 집집마다 어머니들이 해주는 닭죽의 맛이 다 다르다.


집에서 해 먹는 닭백숙에는 마늘을 있는 대로 넣으면 맛있다는 걸 알았다. 어릴 때 먹던 닭죽보다 마늘도 잔뜩 넣고, 방울토마토도 넣어서 끓였는데 이상하지만 집에서 만든 닭죽을 먹으면 엄마의 맛이 있다. 비논리와 비상식에서 벗어나서 먹는 맛인데도 먹다 보면 엄마의 냄새가 나는 것 같네.


나는 집밥, 엄마의 손맛, 같은 말을 썩 좋아하지도 않고, 혼자서 밥을 챙겨 먹게 될 때에는 잘 차려서 먹기보다 그저 있는 것으로 끼니를 때우는 식으로 먹는 게 낫다고 보는 입장이다. 그래서 사람들과 마찰을 겪기도 한다. 마찰을 겪는 것도 내 입장에서는 이해가 가지 않는 것이, 나는 집밥을 좋아하고, 엄마가 해주는 음식을 맹신하는 것을 나무라지 않는다. 그냥 내 개인적으로 별로라고 생각을 하는데, 왜 엄마의 손맛을 부정하냐며 마찰을 겪는다.


집밥을 좋아하는 대부분의 이유는 집과 떨어져 살다 보니 엄마가 해주는 밥이 먹고 싶기 때문이다. 한국을 떠나 타국에서 지내다 보면 한국 음식을 그리워하는 것과 비슷할지도 모른다. 나는 좀 이상해서 그런지 몰라도 김치 없이는 밥을 못 먹겠어, 이제 이 음식은 질린다. 같은 것이 별로 없다. 그냥 그 지역에 가면 거기에 나오는 음식을 그냥저냥 먹는 편이다. 못 먹는 음식이 아닌 다음에는 특별히 맛이 없어서 먹지 못하거나 하는 일이 없다. 지금까지 살면서 엄마에게 이 음식이 먹고 싶으니 좀 해달라고 한 적도 없다. 내 기억은 그렇다. 모친도 그 점을 잘 알고 있다. 그냥 그렇게 생겨먹은 인간인 것이다.


다른 집의 어머니 음식은 내가 모르니 나의 모친에 대해서 이야기를 하면, 나의 모친이 한 음식은 그렇게 맛있지가 않다. 그건 엄마 자신도 너무나 잘 알고 있다. 옆 집의 아주머니들에게도 늘 듣는 이야기다. 그런데 어릴 때부터 맛없는 음식도 맛없네, 마네, 같은 이야기를 나는 하지 않고 그냥 먹는다. 잘 먹는 편이다. 모친은 국, 찌개, 탕 같은 음식을 많이 했었다. 이 국물이 있는 음식을 집에서 없애는데 7년 정도가 걸렸다. 손이 커서 이삼일을 먹어도 없어지지 않을 양의 찌개를 끓인다. 그런데 정작 모친은 먹지 않는다. 음식을 버리는 건 또 하지 않는다. 하하하 그러면 어떻든 내가 다 먹어야 한다.


명절에 차례를 지내고(몇 해 전부터는 차례를 지내지 않고 음식을 하지 않는다) 한 상 깔린 음식을 몇 날 며칠 동안 내가 다 먹어야 한다. 모친은 새로 만든 음식은 드시지만 하루이틀 지나면 거의 드시질 않는다. 빵이나 치즈 같은 건 두 달 정도 유통기한이 지나서 내가 버리려고 하면 그제야 먹으려고 한다. 조카가 어릴 때 일주일정도 모친이 봤는데 애가 일주일 만에 너무 통통해졌다. 애가 좋아한다고 매일 아이스크림에 치킨에. 그래서 나는 집밥, 엄마의 손맛이 별로다.


김범수의 ‘집 밥’이라는 노래가 나왔을 때 나는 웃었다. 그 당시가 집 밥에 대한 예능프로그램, 이야기가 많았다. 시류에 묻혀 나온 노래에 그놈의 바이브레이션에, 가족의 마법에. 나이가 든 엄마에게 이제 집 밥 같은 거 신경 쓰지 말고 라면이나 끓여 먹자,라고 하는 게 더 나은 것 같은데. 밥을 매일 꼬박 세끼를 한다는 게 그게 얼마나 힘든 노동인가. 그럼에도 가족에 묶여, 사랑이라는 이름으로 엄마에게 나 힘드니 밥 해 달라고 한다. 고독한 미식가 씨처럼 그냥 혼자 맛있는 음식점을 찾아서 맛있게 묵으라고.


그 시기에 이태원이나 가로수길에 줄을 서서 먹는 음식 트렌드가 생겼다. 그 식당이 ‘집밥’이라는 곳이다. 집밥 식당에서 판매하는 상차림은 가정집에서 먹는 음식을 표방했다. 상추가 있고 콩나물이 있고 멸치조림과 김치 정도에 된장국이 나오는 게 전부다. 이렇게 해서 만오천 원에서 이만 원 정도 했다.


상차림이 다른 음식점에 비해 초라한데 비싸다. 그런데도 줄을 서서 사람들은 자신의 차례를 기다렸다. 식탁의 주인은 반찬이 아니라 밥이라 생각하고 식당 한 편에 도정기를 갖다 놓고 손님이 오면 바로 나락을 도정해서 밥을 해서 내놓았다.


도정을 해서 바로 밥을 해 먹어 보면 그 맛있음이 그대로 소리로 나오게 된다. 그냥 밥만 먹어도 맛있다. 밥이 정말 맛있기 때문에 반찬은 그야말로 옵서버일 뿐이다. 그저 간장만 있어도 맛있다. 쌀이라는 건 나락으로 있을 때 살아있는 상태다. 도정하기 전에 쌀은 한 알 한 알 숨을 쉬고 있다. 대신 도정을 하면서 나락을 까는 순간 죽어버려 변성이 시작된다. 그리고 도정한 지 15일이 지나면 변성이 되어서 밥이 조금 맛이 없다. 일반적인 밥이 된다.


사실 집에서 엄마가 해주는 밥에서 이렇게 맛있는 맛이 나지는 않는다. 하지만 사람들은 집밥에 대한 그리움을 가지고 있다. 그 그리움이라는 것에는 역사적인 어떤 사회상이 깃들어 있는 부분도 있다. 그저 ‘밥 집’이라 불리는 식당은 외식산업의 시초가 되었다. 한국은 전쟁 통에 남편을 잃은 여자들이 생계를 위해 집에서 늘 해 먹던 식단으로 ‘아침밥 됩니다’ ‘가정백반’ 같은 간판을 내걸고 장사를 하기 시작했다. 이렇게 가정식 백반으로 매일 다른 반찬과 밥으로 저녁을 먹을 수 있는 것이 남자의 로망이었다. 신혼인 아내가 앞치마를 두르고 고등어를 굽고 된장찌개를 보글보글 끓이고 나물과 함께 저녁상을 차린다. 퇴근하고 들어오면 “손만 씻고 오세요”라는 말을 듣는 것까지가 남자들의 로망이었던 때가 있었다.  


김훈의 ‘밥벌이의 지겨움’을 보면 [밥벌이도 힘들지만, 벌어놓은 밥을 넘기기도 그에 못지않게 힘들다. 술이 덜 땐 아침에, 골은 깨어지고 속은 뒤집히는데, 다시 거리로 나아가기 위해 김 나는 밥을 마주하고 있으면 밥의 슬픔은 절정을 이룬다. 이것을 넘겨야 다시 이것을 벌 수가 있는데, 속이 쓰려서 이것을 넘길 수가 없다. 이것을 벌기 위하여 이것을 넘길 수가 없도록 몸을 부려야 한다면 나는 왜 이것을 이토록 필사적으로 벌어야 하는가. 그러니 이것을 어찌하면 좋은가. 대책이 없는 것이다]라고 했다.


이제는 집밥, 엄마의 손맛에서 벗어나야지. 어쩌면 보통의 어머니들이 가족의 밥을 하느라 정작 자신이 먹고 싶은 음식을 잊어버렸을 수도 있다. 집밥의 환상에서 벗어나면 가족이 다 편하다. 가끔 가족이 모여 집에서 음식을 먹을 때 라면 끓여 먹어도 아주 즐겁다. 오랜만에 모였다고 거하게 차려서 거하게 먹을 필요가 없다.


요즘은 재철 식재료로 간단하고 저렴하게 해 먹을 수 있는 맛있는 음식들이 많다. 제철 음식이라 가장 영양가도 풍부하고 가격도 저렴하다. 음식을 만드는 시간도 아주 짧고 간단하다. 그런데 맛도 좋다.


마늘을 엄청 넣고 닭죽을 끓였는데 어릴 때 엄마가 해주던 그 냄새가 난다. 닭죽을 먹고 마당에 나가 놀다가 보면 금방 배가 꺼져서 또 호로록 떠먹었던 닭죽. 좀 있으면 또 닭죽을 많이 먹을 날이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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점심시간 학교 등나무 벤치에서 전기기타를 울러 메고 오즈의 마법사에서 도로시가 부른 ‘섬 웨어 오브 더 레인보우’를 연주했던 영태라는 녀석이 있었다. 빼빼 말라서 교복 윗도리를 벗고 앙상한 상체로 Somewhere over the rainbow를 연주하는 모습이 너무 멋있게 보였다.


우리는 온 마음을 다 빼앗겨 영태가 연주하는 곡을 들었다. 등나무는 푸르른 계절에 맞게 초록의 잎을 활짝 피워 냈고 그 안에는 송충이가 있었지만 영태는 연주를 할 때 그런 것 무서워하지 않았다. 그래서 더 멋있었다.


영태는 기타를 너무 잘 쳐서 대학교 밴드에서 기타로 참여하기도 했고 주말에는 학생들이 디제이를 하는 음악 감상실에서 디제이까지 했다. 연주가 끝나면 관객들은 박수를 쳤다.


어때 좋지? 이게 임펠리테리가 연주한 곡이야.


그때 임펠리테리를 처음 들었다. 학창 시절을 돌아보면 꽤나 재미있는 일들이 있었다. 나는 사진부여서 축제를 준비할 때에는 클럽활동 하는 애들끼리 사고도 치고, 축제가 금토일 3일이나 되어서 규모가 컸다. 그래서 여학교 애들과도 교류가 활발하게 이루어졌다. 그러다 보니 이런저런 일들이 많이 터지고 수습하고 울고 불고 정리하고.


아무튼 그 교류 속에 우리의 중심이 되어 준 건 음악, 하루키, 카나리아(치킨집) 뭐 이랬다. 인문계인데 정말 지독하게 공부를 하지 않아서 선생임이 포기 상태에 돌입하기도 했다.


임펠리테리는 본조비처럼 자신의 이름 크리스 임펠리테리를 따서 밴드 이름을 지었다. 바로크메탈의 정수가 바로 임펠리테리다. 바로크메탈이 뭔가라고 하면 그냥 검색해 보기 바람. 예전에는 그렇게 장르로 불리는 밴드가 많았다.


김경호가 벤치마킹을 한 스트라이퍼도 가스펠록의 화신?, 아무튼 가스펠록이라고 불렸다. 그런데 들어보면 아, 하고 납득이 간다. 김경호가 1집을 냈을 때에는 머리도 짧고 사람들에게 각인이 전혀 되지 않았다. 그러다가 스트라이퍼를 보고 김경호가 그렇게 노래를 부르기 시작했다. 스트라이퍼의 무대를 보면 목소리가 김경호와 완전 같다고 할 수 있다. 특히 끝 부분에 야이야 하는 것도 비슷하다. 스트라이퍼나 임펠리테리가 지금은 전부 60대가 되거나 넘었지만 여전히 공연을 하며 무대에서 내지르며 활동을 잘하고 있다.


요즘말로 미친 짓도 반복이 되면 하나의 장르가 된다는 말이 있다. 유튜브에 소주를 병 째 마시는 먹방을 하는 유튜브가 나타났다. 한 번에 두 병 정도를 원샷하고는 안주를 먹는 그런 먹방이었다. 처음에는 사람들이 보지 않을 것 같더니, 그걸 계속하면서 병원에서 검사를 해서 모든 부분이 정상이라고 사람들에게 보여주고 또다시 원샷으로 소주를 깨끗하게 비웠다. 그렇게 쌓인 소주병이 방을 가득 채웠다. 그런데 어느 날부터 그 사람을 찬양하면서 따라 하기 시작한 사람이 생겼다. 이 사람은 원조보다 더 해서, 한 번에 소주를 5병을 마시는 것이다. 사람들의 만류에도 스승님(원조)의 제자라고 자칭 말하면서 그렇게 하나의 장르가 되었다. 왜냐하면 이젠 어떤 여자도 나타나서 제자라 칭하며 소주를 병나발로 원샷을 때리고는 먹방을 하는 것이다. 이런 걸 보면서 미친 짓도 정말 반복이 되면 하나의 장르가 되는구나, 사람들이 추종을 하는구나. 그런 생각이 들었다.


그런 의미랄까, 바로크메탈도 하나의 장르가 되었다. 장르가 된 바로크메탈, 가스펠메탈, 스피드메탈의 특징이라면 기타리스트의 속주연주가 일품이라는 것이다. 그 속에는 가장 위에 잉위 맘스테인이 있었다. 그러나 우열을 전부 가릴 수는 없었다. 왜냐? 자신들이 좋아하는 밴드가 제일 최고라고 했기 때문이다.


바로크 메탈이 잉위 맘스틴(잉베이 맘스틴, 잉베이 맘스테인, 이름도 헷갈리게 불렸다)으로 시작되었는데 무대에서 입는 옷도 바로크시대의 의상처럼 레이스가 달린 무대의상을 입는다든가, 바로크 시대의 작품들을 가져와서 그 선율과 구조를 잘 비틀어서 메탈로 승화시켰다. 그래서 록과 클래식이 버무려진 그런 메탈이었다. 그러니까 바흐와 모차르트가 미친 듯이 기타를 들고 연주하는 것 같은 기분이 드는 것이다. 그래서 신날 수밖에 없다.


가사가 연주를 따라가지 못한다. 연주가 너무 빠른 멜로딕스피드메탈이기 때문이다. 답답할 때 고출력 엠프로 듣기에 좋다. 그리고 제일 위에서 말한 것처럼 오즈의 마법사에서 도로시가 저 먼 하늘을 보며 부른 노래 ‘섬 웨어 오브 더 레인보우’ 역시 좋다. 좋다는 이유는 이 연주를 바로크 풍으로 연주를 하기 때문이다. 음악 전문인이 아니라서 코드가 어떻게 되고 어떤 식으로 바로크 풍인지 설명은 못하겠지만 들어보면 아! 그렇군. 하게 된다.


이 것이 바로크 메탈의 진수다. VICTIM OF THE SYSTEM https://youtu.be/BdVUzRxZHqs


somewhere over the rainbow https://youtu.be/ytvzMr1N1m8


참고로 넥스트의 기타리스트 김세황의 오버 더 레인보우도 같이 비교해서 들어 보시길 https://youtu.be/BLrWU5RHuTQ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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