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톱으로 하늘을 할퀴었다. 휙 휙.


손톱이 어느새 자라 있다. 손톱을 깎은 지 얼마 되지 않은 것 같은데 보니 손톱이 또 자라 있었다. 손톱이 자라는 걸 보니 조카가 문득 떠올랐다. 조카는 어린이였는데 어느 날 보니 훌쩍 커버렸다. 손톱은 정말 아이들과 비슷하다. 어느 순간 보면 이만큼 자라 있다.


강변을 따라 조깅을 하다 보면 이맘때쯤이면 사람만큼 자란 풀들을 깎는다. 강둑과 강변의 풀들을 정리하고 나면 깎은 자리에서 나는 풀냄새가 아주 좋다. 녹차가루에서 나는 진한 냄새가 난다. 작년에도 강변의 풀을 깎아내고 풀냄새가 좋다는 이야기를 했는데 찾아보니 작년도 6월 16일에 그 글을 썼다. 아무튼 딱 이맘때에 강 주변을 이발한다.


냄새가 아주 좋다. 비가 한 번 오고 나면 손톱처럼 어느 순간 풀들은 불쑥 자라나 있을 것이다. 손톱깎이로 싹둑 손톱을 깎듯 강변의 풀들도 한 번 깎고 나면 아주 시야각이 좋다. 하지만 그렇게 풀들을 전부 깎아 버리고 나면 늘 생각이 드는 건 고양이들은?이다. 고양이들이 풀 속에서 생활을 하는 모양인데 어느 순간 서식자가 사라져 버린 것이다. 그러나 강변에 나오는 사람들이 십시일반으로 고양이들의 먹이를 챙겨주고 있다.


요즘 유튜브에서는 인어공주에 대한 이야기, 리뷰가 끊어지지 않고 있다. 그런데 인어공주가 일본 개봉 후 아시아에서는 누구도 예상못 한 흐름이 흐르고 있다. 동북아 패권을 다투는 한중일은 그간 정치적으로 사이가 좋지 못했다. 그런데 인어공주로 우리 하나 되어 단결된 흐름을 볼 수 있다. 한국의 인어공주 댓글도 쌈박하고 웃음이 터지는 댓글이 많았는데 일본도 비슷했다. 이런 댓글들이 있었다.


팀 버튼인가 싶을 정도로 어둡고 이상한 연출을 하고 있다.

말하는 물고기와 갑각류가 꿈틀거리고, 인어로 분장한 무언가가 노래하며 춤추는 지옥도.

정치적 올바름만 신경 쓰는 뇌로 좋은 영화를 만들 수 없다.


디즈니를 미국 다음으로 좋아하는 나라가 일본이 아닌가. 일본은 디즈니에 진심이다. 근간에 사이가 벌어질 대로 벌어진 한중일이지만 이렇게나 한마음으로 만들어준 롭 마샬 감독의 큰 그림을 그동안 우리는 보지 못했다.


롭 마샬 감독이 바네사로 제시카 알렉산더를 캐스팅했을 때 그의 빅피처를 봐야 했다. 롭 마샬 감독은 한국인들이 에리얼 역에 할리 베일리가 어울리지 않는다는 말을 흑인이라 어울리지 않는다고 인터뷰를 했지만 그건 감독의 큰 그림에 의한 마음에도 없는 소리일지도 모른다. 롭 마샬은 언더 더 씨를 박력 터지는 에리얼에게도 부르게 함으로 감독이 할리 베일리를 비롯한 유색인종을 돌려 까기 해버린 것이 아닐까. 아니 언더 더 씨를 왜 에리얼도 같이 부를까? 아무리 생각해도 이상하다.


인어공주는 홍보마케팅 비용까지 해서 총 5천억이 들었다. 손익분기점이 7억 달러. 알라딘이 10.5억 달러, 라이온킹이 16.6억 달러를 벌어들였기에 무난하게 인어공주도 7억 달러를 가뿐하게 넘길 것이었으나 한국과 중국으로 인해 제동이 걸렸다. 그런데 거기에 일본까지. 인어공주는 6월 6일 기준으로 3억 3천8백만 달러를 벌어들였다. 북미에서 58%, 그 외 나머지 나라에서 42%를 벌었다. 다른 나라에는 똥망이라는 말이다. 이제 디즈니에 진심인 일본의 흥행에 일말의 기대를 하고 있지만 어려워 보인다. 이대로라면 7억 달러에 못 미치는 6억 달러 전후로 수천억 달러에서 2억 달러 정도의 손해를 본다.


롭 마샬의 큰 그림이 여기에 있는 것이다. 미국은 수면 위에서 흑인을 비판하지 못한다. 흑인을 노예로 부려먹은 역사가 있기에 미국은 매스미디어에서 흑인에 대한 이야기를 함부로 할 수 없는 분위기가 강하다. 디즈니는 꿈과 희망을 파는 곳이 아니라 언젠가부터 적자에 허덕이더니 꿈을 포기하고 장사꾼 마인드로 온통 피시주의로 쳐발쳐발하는 것에 가장 열받은 사람이 롭 마샬일지도 모른다. 롭 마샬은 캐리비안 해적 낯선 조류에서 동심을 파괴해 버린 진짜 괴물의 인어를 연출한 이력도 있다.


미녀와 야수의 실사에서 찻잔과 주전자, 촛대에 팔다리가 달려 있고 눈코입으로 말을 한다고 해서 전혀 이질감이 없고 이상하지도 않았지만, 인어공주를 보면 왜;; 왜 물고기가 말을 하지? 같은 생각이 들어 버린다.


CNN에서도 한국은 에리얼이 흑인이라 싫어한다는 식으로 뉴스를 보도했지만 한국  사람 누구도 흑인이라서 인어공주가 싫은 게 아니라 에리얼에 어울리지 않아서 별로라는 거다. 블랙팬서 1의 채드윅 보스만에 대해서 싫어한다고 말한 한국인이 누가 있을까. 엑스맨의 스톰 역의 할리 베리에 대해서 한국인 누가 어울리지 않는다고 했지? 아무도 그러지 않았다.


미국은 디즈니의 정치적 올바름을 좋아하는 것이고 우리는 디즈니를 좋아하는 것, 오직 그 차이뿐이다. 때 낀 수족관 닦는 기분이라는 박평식의 한 줄 평이 맴도는, 한중일 한마음 하나 되어, 로 묶어준 여러모로 참 의미가 찰진 영화 인어공주였다.



아기공룡 둘리에서 마이콜이 등장한다.

하루도 조용한 날이 없는 고길동 씨의 집 앞에 마이콜이 나타났다. 가수를 꿈꾸는 마이콜. 둘리와 도우너에게 노래 지적을 받은 후 마이콜은 핵폭탄과 유도탄들이라는 트리오를 만들어 ‘라면과 구공탄’으로 방송 장악을 하려 한다.


인어공주의 롭 마샬은 한국 너희들이 문제야, 인어공주는 재미있게 봐야 하는데 그렇지 못하다면 너희들에게 문제가 있는 거라고,라며 영화가 마치 사람들을 가르치려고 하는 태도를 보이고 있다.


현재 일본 디즈니에서는 인어공주 관람 시 번쩍하는 빛 때문에 광과민성 발작을 일으킬 수 있다는 경고문을 게재했다. 1997년 12월 16일 일본에서 포켓몬스터를 시청하던 어린이 700여 명이 발작하는 사건이 발생했다. 폴리곤 쇼크, 전뇌 전사 폴리곤 사건 또는 폴리곤 플래시 등의 명칭으로 불렸다. 대부분의 어른들은 괜찮았지만 시청하던 어린이들에게 문제가 일어났다.


포켓몬스터 38화를 시청하던 어린이들(시청 가정 2690만 가구 약 345만 명의 4세에서 12세 사이의) - 추정했는데 이를 시청하던 어린이들 중 700명이 발작을 일으키고 구토 증세를 보이거나 어지럼증을 호소하는 쇼크 증상을 보여 병원으로 이송되었다. 파악한 환자는 750여 명 그중 135명이 입원을 했다.


원인은 에피소드 전체적으로 나왔던 빠른 점멸 이펙트와 중반부의 피카츄의 전기 공격에 의한 대폭발 장면에서 빛의 화면 점멸이 연속으로 나오는 장면에 의한 안구 광과민성 발작이었다. 시청하는 어린이들 중 일부가 방을 소등하고 화면 가까이에서 시청을 한 것도 큰 작용으로 본다고 했다.


미국은 다양성은 인정하라고 하면서도 어린이들의 이런 발작 증상에 대해서는 세세하지 못했다.


한국은 흑인을 차별한다고 하는데 그랬다면 마이콜은 태어나지 말았어야지. 마이콜을 싫어하는 한국인이 있을까. 게다가 라면을 좋아하는, 그것도 구공탄에 끓인 라면을 좋아하는 마이콜을 말이야. 애초에 우리는 무시무시한 공룡인 둘리를 좋아한다. 게다가 고길동 씨도 좋아하고, 또치도 도우너도 좋아한다. 차별 없이 다 좋아한다. 우리는 얘네들의 차이만 인정하지 차별은 하지 않는다.


미국아 너희가 알아야 할 건, 겟 아웃이 전 세계에서 한국이 두 번째로 흥행한 나라라는 걸. 그것도 사람들이 펀딩을 해서 극장 상영을 하게 해서 겟 아웃이 상영관에서 볼 수 있었다. 그 덕에 200만이라는 엄청난 사람들이 겟 아웃을 봤다. 조던 필은 ‘어스’ 영화 상영회에서 “겟 아웃은 미국에서 낳고 한국에서 키웠습니다, 감사합니다”라고 했다. 한국에서 흑인을 차별해서 인어공주가 흥행이 실패한 것이라면 겟 아웃에 대해서 롭 마샬 감독은 설득력 있는 해답을 내놓아야 할 것이다. 그 CNN 앵커도 말이다.


게다가 지금 한국에서 가장 핫 한 인물 중에 조나단과 파트리샤가 있다. 혜미리예채파에서 리샤의 라라라라 라라라 라라라라라라라 라라라라라 정말 혓바닥이 신나 버려서 그랬어. 




흔한 풍경 몇 장

민족대이동


새의 노래


해가 하루 일과를 끝내는 길


산책하는 가족의 행복모습


붉은 낯빛을 띠는 하늘아


해도 해도 끝은 보이지 않고 피곤은 덮쳐오고, 봄은 오겠지요




댓글(0) 먼댓글(0) 좋아요(9)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감독의 전작(해수의 아이)이 너무 철학적이고 과학적이고 해양학적에 초현실적이라 망설였다가 니쿠코짱의 캐릭터를 보고 보게 된 니쿠코짱 이야기. 애니메이션인데 눈물이 와르르 흘러서 놀랐다.

니쿠코짱은 만나는 남자에게 속아서 빚더미까지 떠안게 되어서 살던 곳을 버리고 이사를 가지만 자신의 어린 딸 키쿠코를 데리고 씩씩하고 아무 고민 없이 살아간다.

남자에게 혹 해서 넘어가고, 그럴 때마다 이사를 다니고, 돈은 없어서 허드렛일만 하지만 니쿠코짱에게는 딸 키쿠코와 누워 잘 수 있는 곳과 맛있는 음식을 먹을 수 있다면 헤헤 실실 좋기만 하다. 그런 엄마와 얼굴부터 성격까지 전혀 닮지 않은 키쿠코는 엄마가 부끄럽다.

온 마을 사람들과 다 친하게 지내고 기분 나쁜 일에도 헤헤 실실. 아무 일 없이 지나가는 보통날이 최고라는 엄마 니쿠코짱이 도무지 마음에 들지 않는 키쿠코. 그녀는 반에서 무표정의 얼굴에 앞머리로 눈을 가리고 다니는 니노미야와 대화를 하게 된다. 키쿠코 앞에서만 얼굴을 이상하게 변형하는 틱장애 같은 걸 보이는 니노미야. 왜 인지 모를 막연한 불안감이 들 때 니노미야처럼 얼굴을 찡그리고 일그러트리면 기분이 나아진다. 아이같은 엄마 니쿠코짱 대신 이제 십 대 학생인 키쿠코는 어른이 되어 버린 것이다.

사춘기. 반에서 친구들도 분파로 나뉘려고 하고 뒤에서 누군가를 헐뜯는데 혈안이 된 모습을 보며 치를 떠는 키쿠코는 자신도 별반 다를 바 없는 사람이라는 걸 알게 된다. 그러다가 배탈이 났는데 몸이 말을 듣지 않았다. 아아 이러면 안 되는데. 주인아저씨가 어렵게 마련해 준 이 바다 위의 작은 배가 우리 집인데 내가 아프면 여기서 나가야 하는데, 어어? 왜 이러지. 아 너무 아프다.

급성 맹장염으로 쓰러진 키쿠코는 병원에서 수술을 하고 눈을 뜨니 니쿠코짱이 벌벌 떨며 괜찮냐고 울면서 묻는다. 그러면서 전혀 닮지 않았던 니쿠코짱과 키쿠코는 엄마와 딸이 아니라는 것이 밝혀진다. 니쿠코짱의 헤헤 실실 속에는 어떻게든 키쿠코를 예쁘게 잘 키워야겠다는 오직 그 하나의 결심이 있었다.

니쿠코짱이 주인공이지만 키쿠코의 시선으로 이야기는 전행된다. 만화인데 대단히 감동적인 이유를 생각해 보면 니쿠코짱의 목소리를 연기한 오타케 시노부 때문일지도 모르겠다.

우리나라의 검은 집의 원작에서 정말 이 여자는 정신이 나가버린 사이코패스가 아닌가 할 정도의 연기를 보여줬다. 오타케 시노부는 애니메이션을 많이 했다. 니쿠코짱의 오버스러우면서 정말 만화 같은 캐릭터인데 그 속에서 묘하지만 키쿠코를 지키려는 엄마를 표현했다.

반드시 가족이 아니라도 괜찮다. 밥을 같이 먹을 수 있는 식구가 된다는 건 행복한 일이니까.

낳아준 사랑은 못됐지만 길러준 사랑은 나쁘지 않았던 기분 좋은 영화 ‘항구의 니쿠코짱’이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3)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본조비의 앨범 중에서 제일 좋아하는 앨범이다. 그래서 엘피, 시디로도 다 가지고 있었다. 늘 그렇듯이 시디는 찾아도 없고, 엘피(나에게 엘피가 한 100장 정도 있었다, 군에 갈 때 보관을 잘해달라고 친한 누나에게 맡겼는데 제대하면서 연락이 끊겼다, 다른 앨범은 카세트테이프로 가지고 있는데 데미스 루소스 앨범은 정말 아깝다는 생각이 든다)도 없고, 카세트테이프로 앨범이 남아 있다.


뉴저지 앨범은 대학교에서, 군대에서도 친한 사람들 생일이면 이 앨범을 구입해서 포장해서 선물로 사주었다. 그때 다양하지 않은 다양한 반응들이 있었다. 여자애들은 어? 어,,, 그,, 그래 고마워, 또 앨범이네. 같은 반응이었다. 남자친구들이라고 좋은 반응은 아니었다. 저 새끼 또 앨범을 주네, 같은 반응이었다. 그래서 내 주위는 본조비를 좋아하던 좋아하지 않던 본조비라는 밴드를 다 알고 있었다.


코로나가 덮치기 전 내가 조깅하는 강에서는 카누 세계대회가 개최되었다. 요즘도 슬슬 준비를 하는 모양이다, 아무튼 그래서 여러 나라 선수들과 여러 나라 사람들이 강변으로 몰렸다. 저녁에는 매일 축제 비슷했다. 곳곳에서 노래를 부르고 먹거리가 있고. 코로나 이후 사라졌지만 강변에는 포장마차촌이 있었다. 그곳에서 술을 마시던 외국인들이 많았다. 우리도 한 테이블에서 술을 마시다가 본조비 뉴저지 앨범을 틀었는데 그들 역시 본조비의 팬이었다.


포장마차 안에서 술을 마시던 모든 이들이 ‘아일 비 데이 포 유’를 부르며 술잔을 높이 들었다. 바야흐로 꺼져가는 하루의 밤, 강가의 포장마차에서 떼창이 펼쳐진 것이다.


이 앨범에서 개인적으로 가장 멋지고 멋있는, 그래서 촌빨 날리지만 아 이래서 본조비구나, 하는 노래가 바로 리빙 인 신이다. 뮤직비디오가 스토리 형식으로 나오기 때문에 보는 재미가 있다. 본조비는 이후로 이런 스토리의 뮤직비디오와 내용의 노래가 많다.


잘생기기로는 리치 샘보라가 당시에는 좀 더 우위에 있었다. 노래에 욕심이 많았던 리치 샘보라도 본조비가 노래를 부를 때 같이 옆에서 부른다. 뮤직비디오를 보면 그 모습이 잘 나온다. 본조비 좋아하는 사람들이 음감에서 떼창 하는 노래 1순위가 이 노래였다. 이 뮤직비디오가 야시시하고 확실하게 야하게 보이는 건 본조비의 목소리 때문이다. 이 앨범의 모든 곡에 등장하는 단어가 있는데 카우보이다. 이 노래 리빙 인 신에만 카우보이가 등장하지 않고 대부분 모든 노래에 카우보이라는 단어가 나온다. 컴 온, 처럼 다양하게 쓰이는 말이지 싶다.


Bon Jovi - Living In Sin https://youtu.be/VI2-ASiNCac


본조비를 좋아하는 팬들은, 메탈리카를 좋아하는 팬들에게 한 소리 듣는 이유가 말랑말랑한 록을 한다는 것, 그래서 그건 메탈이 아니야,라는 것이다. 본조비는 신시사이저를 풍부하게 사용했다. 그래서 음악이 폭넓게 들린다. 진정한 메탈계에서 건반은 포함시키지 않았다. 그 때문에 본조비를 좋아하면 너는 저리 가, 같은 분위기가 메탈을 좋아하는 사람들에게는 있었다. 그러나 이 노래, 레이 유어 핸즈 온 미는 건반이 함께 해서 이 노래가 얼마나 신나고 멋진 음악인지 알게 해 준다. 광분하는 관중들을 봐. 이때 존 본조비는 정말 지치지 않는 한 마리의 종마 같다. 부드러운데 거칠고 말랑말랑한데 단단하다. 그걸 본조비가 해내고 있었다. 한 마디로 멋있다.


Bon Jovi - Lay Your Hands On Me https://youtu.be/EhjSzibOIH4


베드 메드신도 너무 신나 버려서 올리고 싶지만 넘어가고, 뉴저지 앨범에서 가장 좋아하는 곡 아일 비 데어 포 유를 들어보자. 이 노래가 딱 이 뉴저지 앨범을 표현하고 대표하는 노래이지 싶다. 우리는 이런 록을 해, 이렇게 부드러우면서 강렬하고 호소력 있는 노래를 불러, 그걸 너희들은 알 거야, 내가 부르는 이 노래가 너희들에게 가서 닿을 때 나의 마음이 전달될 거야, 같은 말을 하는 것만 같다.


바닷가 집 앞에 웨일스 출신의 존 아저씨가 하는 퍼브가 생겼었다. 그래서 자주 갔다. 존 아저씨는 브루스 스프링스턴을 아주 좋아했다. 존 아저씨의 퍼브에는 여기 바닷가에 살고 있는 외국인들이 많이 왔다.


존 아저씨는 한국인 아내와 재혼을 했는데 영국에 있는 가족과도 다 같이 친하게 지낸다고 했다. 그런 점은 참 부러웠다. 퍼브에 들락거린 지 몇 개월이 지났을 때 존 아저씨는 셔터를 일찍 내리고 새벽까지 같이 술을 마시기를 바랐다. 대화가 되지 않지만 우리는 이미 브루스 스프링스턴과 본조비로 서로 암약하는 사이가 되었다.


좀 더 친해진 다음에는 주말에는 늘 파티가 열리는데 그곳에서 본조비의 아일 비 데이 포 유를 다 같이 불렀다. 본조비는 누구나 다 좋아했다.


그래서 생각하니 노래는 경계가 없다는 것이다. 요즘을 생각하면 방탄소년단의 노래를 전 세계가 좋아하고 스트레이키즈가 이번에도 빌보드 앨범 1위를 차지했다. 벌써 세 번 째다. 르세라핌의 이프푸의 쇼츠는 전 세계의 춤꾼들이 다 따라 해서 유튜브에 올리고 있다. 노래는 경계를 허무는 부드럽고 강력한 무엇이다.

존 아저씨


새벽까지 술 마실 때


여름의 퍼브 모습


여름에는 모히또지


주말에는 늘 파티


시끄럽게 해서 경찰이 온 적도 있음


내가 찍어서 붙여 놓은 퍼브의 모습


80년대 록의 세계에 한 번 빠져 봐.

Bon Jovi - I'll Be There For You https://youtu.be/mh8MIp2FOhc




댓글(0) 먼댓글(0) 좋아요(3)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68년 일본의 교토.

수업을 마치고 나오는 한복을 입은 경자(사와지리 에리카)에게 김치 냄새가 난다며 시비를 거는 일본 남자고등학생이 나타난다. 경자와 친구는 그 자리를 피하려고 했지만 남자들은 계속 시비를 걸며 조센징이라 경자를 괴롭히다가 경자의 옷깃에 장난을 친다. 친구가 그 자리를 빠져나가 소식을 조선 고등학교에 전한다. 조선 고등학생들이 일제히 나타나서 경자를 괴롭힌 놈을 찾는다. 일본 남자고등학생들은 이 조총련계 조선고등학생들을 무척이나 두려워한다. 그때 누군가 나타나 경자를 괴롭힌 놈에게 달려가서 박치기로 때려눕힌다. 바로 조선고등학교에서 일진을 먹고 있는 안성이었다.

안성은 이 쪽발이새끼들이라며 아이들에게 일본 고등학생들이 탄 버스를 밀어서 쓰러트리자고 한다.


학생들은 울분에 못 이겨 안 그래도 일본에게 핍박받는 생활인데 잘 됐다 싶어서 전부 버스에 붙어서 버스를 밀어서 넘어트려 버린다. 그 속에 있던 또 다른 주인공 고스케는 식겁한다.

이 사건은 신문에 크게 나고 선생님에게 조총련계 조선인들은 역사의 피해자라는 생각을 가지고 있어서 타국에서 디아스포라 문화를 강하게 지니고 있다는 것을 듣게 된다. 그리고 그들은 강한 사람들이라고 고스케는 생각한다. 고스케는 포크 록 음악을 하고 싶은 그저 그런 청소년이었다. 그런데 선생님이 고스케에게 조선고등학교에 가서 패싸움보다는 친선 축구시합을 하자고 제안을 권한다. 고스케는 무서움을 안고 벌벌 떨면서 학교로 찾아간다. 무서운 안성에 일진들이 고스케와 친구를 윽박지른다.

고스케는 무서운 그 학교에서 플루트를 부는 경자를 보고 반하게 된다. 경자가 조선인 학생들과 함께 연주하는 그 곡은 ‘임진강’이라는 아주 아름다운 곡이었다. 고스케는 경자를 만나기 위해 한국어 공부를 하기 시작한다.

고스케는 임진강이라는 곡을 연주하기 위해 기타 판매점에 들렀다가 그곳에서 음악을 하는 사키자카(오다기리 조) 형에게 임진강이라는 노래에 대해서 듣게 된다. 노래는 남북이 임진강을 두고 갈려져서 같이 흘러 흘러 다시 합쳐졌으면 좋겠다는 내용이라는 슬픈 사연을 가지고 있다는 말을 듣게 된다.


고스케는 용기를 내어 경자에게 전화를 걸어 좋아하는 밴드 ‘더 포크 크루세더스’의 공연을 같이 보러 가자고 한다. 하지만 경자는 퇴짜를 놓는다. 대신 그날 공원에서 작은 공연을 하는데 보러 오라고 한다. 고스케는 얼굴이 밝아지며 가겠다고 약속을 한다.


임진강이라는 음악으로 고스케는 경자와 조금씩 가까워지고 포크록을 하고 싶었던 고스케는 경자와 함께 조선의 아픈 역사를 알아가면서 공원에서 임진강을 함께 연주하게 된다. 그때 두 사람의 공연을 지켜보던 라디오 피디가 고스케에게 명함을 주며 라디오에 출연하기를 바란다.


주인공 안성은 일본을 벗어나 고향으로 가서 축구선수가 되려고 한다. 안성과 사귀던 모모코는 안성이 자신의 전부라 믿는다. 안성은 늘 일본에 반항적이고 일본의 야쿠자들과 패싸움을 하고 다니는 모습에 늘 불안하다. 모모코는 자신이 안성의 아이를 갖게 되었다는 걸 알지만 안성에게 그 사실을 알리지 못한다.


강자(마키 요코)는 조선고등학교에 몇 년 늦게 들어간 누나뻘로 안성이 북한으로 가버리면 이제 교토에서 힘을 부릴 수 없다는 걸 알고 간호사가 되어서 병원에서 일을 한다. 거기서 모모코를 돌봐주면서 안성의 아이를 갖게 되었다는 걸 알게 된다.


그러던 중 안성이 일본의 야쿠자 학생들과 싸우게 된다. 일본 학생들은 오이김치 냄새가 난다며 달려들고 안성은 쪽발이 새끼들아 하며 달려든다. 일본 학생들은 너희 나라는 갈라졌다고 시비를 건다. 조국은 분단되었지만 일본에서만은 조선은 통일이 되었다고 느끼는 안성. 부산에서 온 김일이라는 청년도 안성과 조선고 학생들과 함께 일본 야쿠자들과 싸운다.


안성의 왼팔, 재덕이가 일본의 학생들에게 홀로 찾아갔다가 집단으로 구타를 당하고 도망치다 트럭에 숨지게 된다. 재덕이 숨을 거두면서 재일교포들은 전환기를 맞이한다. 장례식 장은 울음바다가 되고 안성은 장례식장을 찾아와서 일을 도우는 고스케에게 한국 이름을 지어주고 형제로 받아들인다.

그러나 장례식장에 있던 어른들은 그런 고스케를 탐탁지 않게 생각한다. 그중 한 어르신(사사노 타카시)에게 일본인(고스케)은 장례식장에서 나가라는 말을 듣는다. 어르신은 일본인에게 당한 설움을 울면서 토해낸다.


[고향에서 조용히 농사짓던 사람한테 불쑥 종이 한 장 내밀더니 트럭에 실려갔어. 할머니는 우시고 논바닥에 주저앉아서 피눈물을 흘리셨어. 부산에서 탄 배 위에서 바다에 빠져 죽을까도 생각했어. 온 나라가 텅텅 비도록 끌려왔단 말이다. 너희 일본 젊은 놈들이 뭘 알아. 지금 모르면 앞으로도 절대 모르는 거야, 이 등신들아! 우린 너희하고 달라. 너희가 먹다 남긴 돼지밥 훔쳐 먹다가 야쿠자한테 걸려서 발목이 부러졌어]

고스케는 좋아하는 경자가 이렇게 가까이 있는데 이념이 뭔지, 침략이 뭔지, 사랑하는 사람과 있을 수 없는 것에 화가 난다. 경자는 만약 우리가 결혼을 하게 되면 고스케 너는 조선인 될 수 있냐고 할 때 고스케는 곧바로 대답을 하지 못한다. 모든 것이 전부 이상하다. 왜 삶이 이토록 힘겨울까.


고스케는 가지고 있던 기타도 부숴버린다. 개천에 기타를 던져 버리고 몸뚱이만 라디오로 가니 고스케를 끝까지 피디가 기다려주었다. 피디는 고스케에 그때 공원에서 부른 그 아름다운 곡을 불러라고 한다. 하지만 라디오 국장이 내려와서 호통을 치며 그 곡은 일본에서 금지곡이라 부를 수 없다고 한다. 그때 피디가 국장에게 소리를 지른다. 노래 부를 자유도 없는 나라가 무슨 나라냐며 고스케에게 임진강을 부를 수 있도록 국장을 보내버린다.


고스케가 부르는 임진강이 라디오를 통해 흘러나온다. 경자는 라디오를 통해 고스케의 임진강을 듣고 장례식 장의 어른들에게 라디오로 그 노래를 들려준다. 이 노래 고스케가 부르는 거냐? 경자가 그렇다고 하자 모두가 그 노래를 듣고 눈물을 흘린다.


모모코는 끝내 버스에서 양수가 터져 죽을 고비를 넘기면서 병원에서 강자(마키 요코)를 찾는다. 강자는 이런 몸인데 왜 안성에게 알리지 않느냐고 모모코의 출산을 도운다. 모모코는 북한으로 갈 안성에게 짐이 될 수 없다며 알리지 말라고 한다. 홀로 분만을 하려는 모모코.

그때 안성은 재덕을 죽은 일본 야쿠자들을 찾아가서 패싸움을 한다. 서로가 죽기로 싸운다. 그곳에 강자가 찾아와서 모모코가 곧 아이를 낳으려고 한다고 알린다. 안성은 모든 걸 제쳐두고 모모코가 있는 병원으로 온다. 그리고 힘겹게 낳은 모모코에게 수고했다고 말한다. 옆을 지켜주는 안성을 보며 모모코는 눈물을 흘린다. 일본과 한국 사이에서 아이가 태어났다. 안성은 모모코가 낳은 아기를 안고 오열을 한다.

임진강을 부른 고스케가 라디오에서 나오니 경자가 와 있다. 수없이 연습했던 말 “우리 함께 해요”를 말하는 고스케.

이 영화의 중심이 되는 노래 ‘임진강’은 57년에 만들어진 북한의 노래로 일본 가수 The Folk Crusaders가 일본어로 번안해서 불렀다. 일본 배우 사사노 타카시가 한국의 어르신 중 한 명을 연기하면서 울부짖었던 대사 중에 “부산에서 탄 배 위에서”라는 말이 있다.


당시 일본의 조총련계는 북한 사람들이 아니었다. 한반도에서 강제로 끌려간 사람들은 대부분 부산 사람과 경상도 사람들이었다. 재일교포는 고향이 북한도 아니며 공산주의와도 관련이 없지만 일본 패망 후 한국으로 가려고 해도 돈도 없고 이승만 정부 당시 북한과 접촉했다는 이유로 재일교포를 받아들이지 않았다. 그 이유가 한국전쟁으로 인구를 줄어든 북한은 노동력이 필요해서 일본으로 가서 북한은 지상낙원이라는 말로 재일교포들과 접촉을 했다. 그리하여 북한으로 많은 재일교포가 들어갔고 일본에 남은 가족은 어쩔 수 없이 조총련과 관련이 있을 수밖에 없었다.


고스케와 경자의 임진강 공원공연 https://youtu.be/k6t5l6sg-kk


영화는 이 모든 이야기를 재미있게 잘 풀어냈다. 무엇보다 너무나 예쁘게 나오는 경자의 사와지리 에리카(베츠니로 욕하는 사람들이 많지만 뭐 어때ㅋ)를 비롯해서 나오는 일본 배우들이 전부 재일교포를 잘 연기했다. 사와지리 에리카의 오빠, 삼촌, 어머니라고 말하는 모습이 귀여운 이때의 모습. 마키 요코, 키리나티 켄타, 에구치 노리코, 카세 료 등 지금은 탑이 된 배우들의 초기 모습을 볼 수 있다. 카세 료가 나온다고 하는데 나는 전혀 찾을 수 없었다. 강자로 나온 마키 요코는 20여 년이 흘러  용길이네 곱창집에서 또 한 번 한국인으로 나온다.


여기 또 한 편의 일본 영화가 있다. 일본 영화이자 한국 영화. 용길이네 곱창집이다. 1960년대 일본 오사카의 판자촌에서 사는 한국 가족 용길이네가 곱창집을 하며 일본에 녹아들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이야기다.


일본 전시에 나가서 한쪽 팔을 잃어버린 아버지 김상호, 들어가지 말아야 할 곳에 들어가서 다리를 저는 큰 딸 마키 요코, 가족의 일이라면 다 던지고 나서는 엄마 이정은, 지긋지긋하지만 받아들여야 하는 이 생활 속에서 돌파구를 찾는 둘째 딸 이노우에 마오, 그의 철없는 예비 남편  오오이즈미 요, 닐리아를 기가 막히게 부르며 가수를 꿈꾸는 셋째 딸 사쿠라바 나나미, 그리고 조선인이라 학교에서 늘 맞아서 학교 가기 싫은 일본 사립학교 다니는 막내 토키오. 이 모든 등장인물이 한국인으로 나온다.


내가 대사를 듣기에 한국 배우들이 하는 60년대 일본 대사는 잘하는 거 같은데 일본 배우들이 말하는 한국어는 어눌하다. 영화 속에서도 우리는 한국인이지만 한국어를 못한다고 나온다. 그래도 사쿠라미 나나미는 한국어를 꽤 한다.


영화를 보면 알겠지만 일본의 내놓아라 하는 배우들과 한국의 배우들이 한 가족으로 나온다. 보면서 일본 배우들이 좀 대단하다고 생각이 드는 건 일본의 잘 나가는 배우들이 한국인을 연기하는데 그들의 입으로 한국인이라는 걸 잊어서는 안 된다, 일본이지만 한국인으로 살아가야 한다, 김치는 김치다, 다들 한국인들이 우습지? 같은 대사를 한다.


영화를 보면 각본이 얼마나 좋은지 알 수 있다. 재미있는 요소가 곳곳에 있어서 보는 내내 재미있다. 하지만 폐부를 찌르는 대사들이 일본 속 1세대 한국인들이 얼마나 힘겨웠는지 간접적으로 알 수 있다.


‘재일’은 모순덩어리야. 차별과 편견 속에서 일본을 증오하고 한국을 그리면서도 여기를 벗어나지 못하니.

당연하지, 한국 가봤자 먹고살 길이 없잖아. 한국어도 서투른데.

결국 이거야, 돈에 묶여 있는 거지. 한 손에 돈, 한 손에 눈물. 눈물의 ‘재일’ 스토리.

벗어날 수 없으니 그곳에서 악착같이 살아야 한다. 앞길이 보이지 않아도 그놈의 고문 같은 희망을 품으며 내일은 밝으리라.


재미있게 봤다. 각본이 정말 좋다. 정의선 감독은 일본 영화판에서 각본으로 정평이 나 있다. 일본 영화계의 안톤 체호프라 불린다. 비록 60년 대의 이야기지만 80년대, 2000년대의 이야기이기도 하다. 이 영화는 영화 이전 이미 한국과 일본에서 용길이네 곱창집, 야키니쿠 드래곤으로 연극으로 관객들을 만났다.





댓글(2) 먼댓글(0) 좋아요(5)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잉크냄새 2023-06-13 22:5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 영화에서 처음으로 <임진강>을 들었죠. 중국에 사는 동안 북한 음식점을 가면 공연 시간에 임진강을 신청해서 듣곤 했는데, 북한 종업원이 부르는 노래가 정말로 좋았던 기억이 나네요. 종업원 반주에 어설프게 불러도 보았죠. 물론 한국 노래방에는 없는 노래지요.

교관 2023-06-14 11:29   좋아요 0 | URL
좋은 추억을 갖고 계시네요 ㅎㅎ 가사가 좀 다르지만 김연자 버전도 유튜브에는 있더라구요
 

내가 처음으로 들었던 팝이 아바의 치키티타였다. 초딩 때, 나는 국민학교였으니까 국딩 때. 나는 국민학생 때에도 라디오를 많이 들었다. 요즘 초등학생들은 라디오 같은 거 안 듣겠지?라고 생각하겠지만 윤도현이 오후 4시에 라디오를 하는데 일주일에 한 번 어린이들과 전화 통화하는 코너가 있다. 아니 그런데 내가 국민학교 때처럼 요즘 초등학생들 중에 라디오를 듣는 아이들이 아주 많았다. 신기할 일도 아닌데 정말 신기했다.


어릴 때에는 집이 워낙 가난해서 단칸방에서 지냈다가 아버지가 악착같이 돈을 벌어서 형편이 조금씩 풀렸다. 그 풀리는 시기에 나는 국민학교를 다녔다. 아버지는 가난을 자식들에게 줄 수 없다는 그런 신념이 강해서였는지 나에게 소형 라디오를 하나 사 주었다. 내가 그걸 원했거든. 아버지는 내가 사달라고 하는 건 주저 없이 사주는 편이었다.


지금도 피규어를 좋아하지만 어릴 때 장난감을 좋아해서 문구점 앞에 서서 움직이지도 않고 30분을 그렇게 서 있기도 했다고. 그런 나를 생각하니 좀 무섭네. 아버지는 장난감도 많이 사주었다. 장난감이라기보다 프라모델이다. 조립을 하는 것을 나는 정말 좋아했다. 왜냐하면 완성된 장난감은 구입하면 끝이지만 프라모델은 구입해서 조립을 해야 하는데 아버지와 함께 만들었다. 그 시간이 나는 너무 좋았다.

누나나 형이 없었던 나는 어쩌다가 라디오에 빠지게 되었고 거기서 흘러나오는 팝을 듣게 되었다. 거기서 처음 팝을 집중해서 들었던 노래가 아바의 치키티타였다. 치키티타는 예쁜 소녀를 부르는 말이라고 한다.


그리고 아바의 치키타타가 들어있는 카세트테이프를 구입하고 아버지는 나에게 미니 카세트 플레이어를 사주었다. 아바의 앨범을 넣어서 내내 듣고 다녔다. 겨울이었는데 추운 줄도 모르고 헤드셋으로 나오는 노래를 들었던 기억이 있다.


중고등학생으로 가면서 시끄러운 음악에 심취해서 아바는 잘 듣지 않게 되었는데, 시간이 흘러 흘러 2008년에 영화 맘마미아를 보면서 아바의 노래를 찾아들었다. 그때 실시간으로 엔차관람을 3번 했다. 2주 동안 세 번을 봤다. 그 당시에는 극장에서 영화를 전투적으로 봤을 때였다. 그때 만나던 여자친구도 영화를 너무나 좋아해서 여름휴가를 보낼 때 아침부터 새벽까지 영화만 몇 편 보기도 했다. 극장에서 아예 나오지 않았다.


맘마미아를 볼 때 재미있었던 일이 있었다. 1차 관람 후에 우리는 영화 내내 나오는 노래를 따라 부르고 싶어서 가사를 좀 크게 프린트해서 제일 마지막 회를 관람했다. 마지막 상영을 할 때에는 극장에 사람이 거의 없기 때문에 신나게 노래를 따라 부를 수 있었다.


그때 한 줄 건너 앞에 외국인 5명이 왔는데 노래가 나오니 그들도 너무나 신나게 몸을 흔들며 따라 불렀다. 그러다가 뒤를 돌아보더니 우리를 보고 더 신나 했다. 그때 상영관에 우리와 그들, 딱 7명이 전부였다. 그때는 외부음식을 들고 들어가지 못하게 했던지라 우리는 큰 텀블러 안에 소맥을 섞어서 넣고, 팝콘 통에 라면을 뽀사서 넣어서 갔는데 그들과 나눠 먹으며 신나게 영화를 봤다.


봤던 걸 또 보고, 읽었던 걸 또 읽는 건 나의 습성이나 특징 같다. 하루키의 소설 들은 죄다 몇 번씩 읽었다. 이창동 감독의 버닝은 열 번은 넘게 봤고, 덴젤 워싱턴의 더 이퀄라이저 1편은 케이블에 나오면 그냥 또 보게 된다. 갔던 곳을 또 가고 먹던 음식을 계속 먹는다. 질릴 법도 한데 한 번 구입했던 조깅화가 낡으면 그 조깅화를 또 구입한다. 나는 분명 새것을 좋아한다고 생각하는데 생활이나 습관 같은 것을 보면 새것에 대한 갈망이 별로 없는 것 같다.


아마 그래서 음악도 질리지 않고 들었던 음악을 듣고 또 듣고 계속 듣는 것 같다. 아바의 노래를 그렇게 막 집중해서 듣지는 않지만 아바는 유명한 그룹이라 그들의 노래는 대부분 듣게 되었다. 아바는 대 히트를 쳤다.


내가 주워들은 이야기로 아바의 보컬 중에 누군지는 모르겠지만 한 명이(그냥 메인보컬 아그네사라고 하자) 비행기를 타지 못해서 배를 타고 이동을 해서 공연을 해야 했다고. 맞는 이야기인지 모르겠지만 학창 시절이 그런 이야기를 들었다. 음악감상실에서 디제이에게 들은 이야기였다.


아바는 잘 알겠지만 두 쌍의 커플로 이루어진 혼성그룹이다. 아바의 노래들이 너무나 유명해서 오랫동안 아바가 그룹을 유지했을 거라고 생각하겠지만 9년? 10년도 못 되는 시간 동안 활동을 하다가 해체하고 만다. 1982년에 해체를 하는데 커플이 결혼을 하고 다 이혼을 했다.


메인 보컬인 아그네사는 다른 멤버들이 흥에 불타 올랐을 때 심하게 고뇌에 휩싸였다. 왜 이렇게 힘겨운 나날들을 보내며 노래를 불러야 할까, 왜 이다지도 음악에 모든 것을 쏟아부어야 할까, 아이들도 이제 키워야 하지 않을까, 이제 그만해도 되지 않을까, 같은 고뇌에 휩싸이며 슬슬 해체의 분위기가 스멀스멀 기어오르고 있었다. 그 해가 77년이었다.


왜냐하면 빡빡하고 무리한 엄청난 스케줄에 아그네사가 공포에 떨었기 때문이다. 요즘말로 하면 아마 공황장애 같은 것에 시달렸을 것이다. 아바는 시간이 흘러 2013년에 앨범을 발매했다. 그 앨범에 수록된 곡을 들어보면 아그네사의 목소리는 아직 변함없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지구의 역사를 쓴 위대한 아티스트에 아바는 반드시 들어갈 것이다. 아바는 후배 가수들에게 자신들의 곡을 주는 것을 싫어하기로 유명한데 마돈나가 비행기를 타고 찾아와서 허락받은 곡을 넣은 곡이 헝업이었다.


오늘은 아바의 많은 주옥같은 명곡들 중에 처음으로 나의 마음을 빼앗아 버렸던 치키티타를 들어보자. https://youtu.be/p4QqMKe3rwY


댓글(0) 먼댓글(0) 좋아요(3)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