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에 소름 돋는다고 적어놨지만 정말 소름 돋는지는 모르겠다. 나도 사람들 한 번 끌어 보려고 소름 돋는다고 적어봤다. 헤헤.


백석의 시 ‘통영’에서도 유월이 되면 달과 지구가 가까워져 바닷물이 밤에 화악 빠져나가는 장면을 조개가 울을 저녁으로 너무나 아름답게 표현을 했다. 백석의 시를 읽으면 한 줄인데 그 안에 담긴 여러 의미나 환경을 찾아보고 생각하느라 시간이 꽤 오래 걸리는 경우가 있다. 백석은 시인으로 알려졌지만, 러시아어도 잘하고, 영어 선생님이었을 만큼 영어, 그리고 일본어는 물론 신문사에서 기자로 일을 했으니 박학다식인 사람이었다. 그런데 그의 시 속에는 백석의 박학다식보다 인간이 가진 오감, 특히 미각에 대해서 너무나 눈앞에 아른 거릴 정도로 시를 써놔서 그의 지식이 드러나지 않는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시를 읽으면 뭐 재철에 나오는 식재료가 사람의 마음을 따뜻하게 한다거나, 그래서 의미를 유추해 볼 수 있다.


김영하 소설가의 단편소설 중에 기묘한 소설 ‘피뢰침’이 있는데 그 속에는 낙뢰와 적란운 같은 자연 현상에 대해서도 잘 나온다. 번개라든가 천둥이라던가, 한 번은 검색해서 보거나 내셔널지오그래픽 채널에 들어가서 태풍이나 번개에 관해서 유심히 보게 된다. 그러면 김영하의 소설을 읽으며 오 하며 감탄하게 된다.  김영하의 장편 소설 '검은 꽃'을 읽은 지 꽤 오래전인데 아직까지 그 배밑에서 몇 달 동안 갇혀 항해를 하면서 구토와 배설과 식사해결 같은 처절함이 선하다. 대단한 글이라고 생각한다. 김영하는 정말 햇빛도 들어오지 않는 배에 갇혀 경험을 통해서 그런 글을 썼나 싶을 정도였다. 그러니까 아주 과학적이었다.


앞전에 소개한 아베 코보의 소설을 영화화 한 ‘모래의 여자’ 속에도 이런 장면이 나온다. 쥰페이가 모래 속에서 탈출하기 위해 모래 구덩이 속에 나무통을 넣어두고 까마귀를 잡으려고 얼마 뒤 뚜껑을 열어 보니 그 안에 마실 수 있는 물이 가득 들어 있는 장면이 나온다.


가끔 해안가를 거닐면 해수욕장의 백사장 말고, 좀 분위기가 다른 백사장으로(사람들이 많이 오지 않는) 가면 모래 구덩이 안에 맑은 물이 고여 있는 모습을 볼 수 있다. 그 물은 바닷물과 달리 그냥 맑은 맹물이다. 그래서 마실 수 있다. 그렇게 되는 이유는 모래가 물을 생성시키고 산소를 만든다. 자세한 작용을 설명을 하기는 힘들지만 모래 알갱이 사이에는 구멍이 있는데 그런 작용을 한다. 그런데 사람들이 해안가에 아파트 단지나 인공 구조물을 엄청 만드는 바람에 해안가에 있던 모래가 사라지고 있다. 이는 대체로 몹시 심각한 상황인데 개발이라는 명목하에 모든 것이 묵살되고 있다.


미국도 벌써 몇십 년 전에 이런 심각한 문제를 인지하여 해안의 인공구조물 때문에 모래가 빠져나가지 않게 많은 연구를 하고 있다. 그러나 우리나라는 해안가에 살고 있는 사람만, 그것도 몇 명 정도만 그 심각함을 알고 있지 대부분의 사람들은 아무도 신경 쓰지 않는다.


내가 사는 곳도 바닷가이기 때문에 그런 점을 좀 알고 있다. 동해만 해도 해수욕장이 굉장히 많다. 그런데 그 모든 해수욕장이 정부의 지원을 받는 것은 아닌 것으로 안다. 어떤 기준인지는 모르지만 지자체나 정부의 지원을 받는 해수욕장이 있는데, 6월이 되면 해수욕장이 개장을 위해 단장을 하는데 가장 큰 변화는 곱고 새로운 모래가 트럭으로 실려 와서 깔린다는 것이다.


집 앞의 해수욕장도 매 년 유월이 되면 대대적인 단장에 들어간다. 백사장을 갈아엎고 그 위에 고운 모래를 다시 깐다. 그리고 주위의 소나무와 야자수를 다듬는다.


문제는 동해의 해안도로를 따라 있는 해안가의 모래들이 자꾸 줄어들어 간다는 것이다. 해안도로를 타고 도로를 짓고, 인공 구조물을 짓고, 대규모 아파트 단지를 지어서 바다에서 오는 바람이 구조물에 부딪혀 밑으로 내려가서 모래를 파고 깎아서 바다로 가버린다. 그래서 모래를 다시 까는데 굉장히 많은 자본을 투자한다. 그런데 모래를 까는 건 일 년에 한 번 까는데 그 모래들이 사라지는 속도는 3, 4개월이면 다시 사라진다. 미국은 위에서 말했지만 해안의 모래를 살리고 지키는데 사활을 걸고 있다.


이런 문제를 잘 담은 다큐멘터리가 있다. 이 방송을 본 게 벌써 10년 전인데 지금은 해안가의 모래가 어떻게 되었을까.


‘모래의 여자 속’에 등장하는 모래 안의 맑은 물은 몹시 과학적이다. 모래의 기능을 아주 잘 알고 있다. 모래는 물을 저장하는 능력이 있다. 바닷가에 모래 구덩이가 있고 그 속에 맑은 물이 생성되면 계속 물이 솟아난다. 아주 물이 좋다. 그리고 생명체를 살게 한다.


바닷가에 있는 모래 구덩이 속 맑은 물에는 민물에서만 살 수 있는 생명체들도 살아간다. 모래가 바닷물이 들어오는 것을 막고 맑은 물에 산소를 끊임없이 제공하는 역할을 한다. 그런 백사장이 망가진 모습이 10년 전 다큐멘터리에 가득했는데 지금은 어떻게 되었을까.


다큐를 보면 1960년대 우리나라 백사장을 모습을 보여주는데 딱 ‘모래의 여자’ 속에 나오는 백사장 같은 모습이다. 그런데 해안을 따라 도로가 들어서고 인공 구조물이 들어서고 아파트 단지가 들어선 언젠가부터 해안이 망가지기 시작했다. 이런 걸 보면 인간이 인간을 망가뜨리는 존재 3위에 당당하게 이름이 올라오는 것도 크게 이상한 일도 아니다.라고 이 글을 2주 전에 적어놨는데, 지금은 인간이 인간을 죽이는 존재 2위라고 한다. 하하.


백사장이 사라지는 해수욕장, 해변의 위기 [환경스페셜-살아 숨 쉬는 땅, 모래] https://youtu.be/t3KN40VXEU0


댓글(0) 먼댓글(0) 좋아요(5)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영화 ‘도시로 간 처녀’는 81년 작품으로 김수용 감독이 연출을 맡았다. 김수용 감독은 우리나라 문예 영화의 거장이라 불렸다. 이 영화의 각본을 김승옥이 썼다. ‘도시로 간 처녀’ 이전에 김승옥과 김수용 감독이 만나서 작품을 만들었던 건 64년에 대한민국을 들썩이게 만들었던 소설 ‘무진기행’을 영화로 만든 ‘안개’였다.


영화 ‘안개’가 소설만큼 재미있는 건 김승옥이 직접 각본을 썼기 때문이다. 이때 재미있는 일화가 김수용 감독이 김승옥에게 제발 쉽게 써달라고 요청했다고.

김승옥이 한국문단에 등장하자 그야말로 일대 파란을 일으킨다. 그 이전까지 대한민국의 대중 소설은 무협소설과 민담 설화에 가까운 소설이었는데 김승옥이 문단에 등장하자마자 모국어의 폭발이 이루어진 것이다. 그야말로 피츠제럴드 같은 직유와 은유, 그리고 구조가 너무나 완벽하게 이루어진 문장이 사람들의 염통을 후려쳤던 것이다.


김승옥이 등장했을 때의 일화 중 하나는, 지금 한국의 대문호 격인 소설가 김훈, 김훈의 아버지 김광주 소설가도 우리나라 거의 1대 문인이었다. 김훈이 꼬꼬마 16살 때의 일이다. 어느 날 아버지 김광주의 방에 아버지 후배들, 즉 문인들이 모여서 심각한 얼굴들을 한 채 이야기 중이었다. 이야기 즉슨 읽어봤냐? 괴물이 등단을 했어! 였다. 김승옥의 무진기행을 말하는 것이다. 그러면서 김훈에게 막걸리를 받아오게 해서 김광주와 문인들이 마시면서 이제 우리의 시대는 막을 내렸다. 같은 이야기를 밤새 했다고 한다.


김훈은 한국일보 문화부 기자였다. 당시 최고의 소설이 황석영의 장길산이었다. 장길산은 한국일보에 74년부터 84년까지 매일 연재된 소설이었다. 그런데 어느 날 황석영이 매일 소설을 연재한다는 압박감에 시달리다 도망을 쳤다. 도망을 쳐도 어느 지역에서 그날그날 쓴 소설을 우편으로 동봉해서 신문사에 보냈는데 그날은 연락이 되지 않는 것이다. 신문사는 발칵 뒤집어졌다. 사람들이 연재가 끊어져 난리가 났다. 그래서 도망간 황석영을 잡으러 간 사람이 담당 편집기자인 김훈이었다.


아무튼 김승옥의 무진기행이 세상에 나온 이후 한국 문단은 변화를 맞이하게 되었다. 특히 상상의 도시, 무진의 명산물 안개를 여귀가 뿜어낸 입김 같다고 표현을 했는데 그 이후 지금까지 안개를 이만큼 표현한 소설 속 미문이 없다. 소설 속의 여귀는 영화 ‘안개’ 속에서 마녀로 대신 나온다.


김승옥의 문장 속 세계관을 나타내는 언어는 지금도 유효하다. [햇볕의 신선한 밝음과 살갗에 탄력을 주는 정도의 공기의 저온 그리고 해풍에 섞여 있는 정도의 소금기, 이 세 가지만 합성해서 수면제를 만들어 낼 수 있다면 그것은 이 지상에 있는 모든 약방의 진열장 안에 있는 어떠한 약보다도 가장 상쾌한 약이 될 것이고 그리고 나는 이 세계에서 가장 돈 잘 버는 제약 회사의 전무님이 될 것이다. 왜냐하면 사람들은 누구나 조용히 잠들고 싶어 하고 조용히 잠든다는 것은 상쾌한 일이기 때문이다 – 무진기행]


소설 속 ‘조’가 영화에는 조한수로 나온다. 두 사람은 세무서장이 된 조의 집으로 가서 사건의 중심에 있는 인숙, 하인숙을 만나게 된다. 영화에서 하인숙을 연기한 배우는 윤정희다. 아주 어린 모습의 윤정희는 그 당시로는 보기 드문 예쁜 얼굴의 배우다.


이 무진기행은 세 번 영화가 되었다. 67년에 한 번, 76년, 87년에도 만들어졌다. 윤정희는 두 번 하인숙으로 열연했다.


안개가 재미있는 이유 중 또 하는 배우들의 열연이다. 이제 고인이 된 신성일과 윤정희가 주인공으로 나오며 소설 속의 문체를 영화적 문채로 절묘하게 녹아냈다. 김승옥의 각본과 김수용 감독의 연출이 빛을 발했기 때문이다.


그런 김승옥과 김수용이 다시 한번 영화를 만든 것이 ‘도시로 간 처녀’였다. 이 영화는 재미있기도 하지만 사회고발 영화의 시초였다. 이 영화는 그 당시 버스 안내양의 부당함을 말하고 있다. 돈을 삥땅 하는 일 때문에 알몸수색을 하는 문제가 당시에 있었는데 김승옥은 시내버스를 타고 다니며 버스 안내양들을 취재하여 실화를 바탕으로 영화가 만들어졌다.

영화에서 부당한 대우와 모욕감 때문에 유지인이 투신하는 장면이 나오는데 당시에는 난리가 났다. 김수용 이전의 영화에서는 누가 봐도 마네킹이 절벽 같은 높은 곳에서 떨어지는 연출을 했는데, 김수용은 실제로 유지인이 투신하는 것처럼 보이게 연출을 한 것이다.


이 영화는 33일 밖에 상영하지 못했다. 실제 일어나는 사회고발 영화이기에 기득권이 조치를 취했다. 그리고 영화는 몇 번이나 삭제를 하고 또 당해서 나오게 되었지만 군사정권 시대라 마음껏 상영할 수 없었다. 우리 사회의 단면을 가장 잘 드러낸 영화였다.


그럼에도 재미있는 장면들이 곳곳에 배치되어 있다. 바보들의 행진의 히로인 영자의 이영옥의 모습과 금보라의 풋풋한 모습도 볼 수 있다. 그런데 재미있는(다른 의미의 재미다) 건 이 영화가 상영되고 지금까지 시간이 몇십 년이 흘렀는데 조직이나, 단체, 회사에서 불이익을 당하는 일은 여전하고 그들을 지금 이 더운 태양 아래서 농성을 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불가사의할 정도로 이상한 일이다.


그렇게 핍박당하고 죽음을 각오하는 사람들은 언제나 순수함을 지키려 하고 진실과 현실 사이에서 갈등을 겪는다는 것 역시 예나 지금이나 이상하다면 이상한 일이다.


이 영화에서 마지막 유지인, 극 중 문희는 투신을 하지만 살아난다. 희망을 주며 끝이 나지만 해피엔딩이 말할 수는 없다. 김수용 감독은 2005년 씨네 21과의 인터뷰에서 “영화에 무슨 사회성이냐, 폭로 항변 메시지는 접어두고 좋은 세상 만날 때까지 사랑하고 정사하고 눈물 짜는 영화나 찍자”라고 했다.


김승옥 소설가가 광주민주화항쟁의 충격으로 절필을 선언했을 때 이어령 박사가 붙잡아서 호텔에 던져 놓고 장편 소설을 계속 쓰게 했는데 그 소설이 ‘서울의 달빛’이었다. 그런데 김승옥은 끝끝내 소설을 다 쓰지 못하고 절필을 하고 만다.


그래서 ‘서울의 달빛 0장’으로 단편 소설이 되었다. 만약 장편으로 이어졌다면 1장, 2장 주욱 이어졌을 것이다. 김승옥의 단편 소설들은 읽고 또 읽었지만 너무 재미있다. 김승옥의 소설 속에는 위트와 유머가 살아있다. 이후 김승옥의 몸에 풍이 와서 건강에 문제가 생겼다. 2014년인가 순천에서는 무진기행 50주년 행사를 하기도 했다. 김승옥 소설가도 41년 생이시니까,,,


김승옥의 무진기행이 얼마나 무진, 즉 순천의 자랑이었냐 하면 응사, 응답하라 1994에서 순천의 해태와 여수의 학생이 술집에서 서로 더 대단한 도시라고 싸운다. 비행장이 있니 없니, 백화점이 있니 없니. 그러다가 밀리게 된 해태가 그런다. 김승옥! 무진기행! 우린 무진기행이 있는디. 정말 멋진 대사였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4)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나 같은 맵찔이가 먹기에는 너무나 매콤한 오징어볶음. 그러나 고춧가루가 좋으면 매워도 자꾸 먹게 된다. 여름에는 공포영화의 계절이고 무서운 영화를 볼 때에는 이렇게 매콤한 오징어 볶음이 어울린다고 억지로 우겨본다. 시원한 맥주와 함께 재미있게 무서운 영화를 보는 것이다.


여름이 되면 오싹하고 무서운 공포물 시리즈가 많이 나온다. 소설 원작의 ‘마당이 있는 집’이나 ‘악귀’가 지난주부터 방영되고 있다. 무섭고 오싹하다. 그럴 때 매콤한 오징어 볶음을 한 번 먹고 맥주를 꿀꺽. 이런 스릴러 공포 시리즈는 극장의 공포영화처럼 점프스퀘어나 고어 적으로 시각적 공포를 주는 게 아니라 냉기가 흐르는 서사가 조여 오는 무서움으로 공포를 준다.


여름을 노린 극장가의 공포는 대체로 미지의 세계나 귀신, 유령이나 괴물이 무서움을 주지만 사실 진짜 무서운 건 사람, 인간이다. 아주 착하고 전혀 그럴 것 같지 않은 사람의 내면 속 추악한 부분을 건드려 꺼내는 것처럼 보는 내내 두근두근하는, 그런 오싹함을 준다.


미드나 영드의 공포 시리즈보다 한국의 공포물이 훨씬 오싹하고 무섭다. 드라마 ‘악귀’를 보기 전까지 미드 공포물 시리즈 ‘힐 하우스의 유령’을 봤다.

잘 만들었지만 너무 지루하고, 잘 만들었지만 너무 별 내용이 없다. 온갖 미국 가정에서 일어날 수 있는 문제, 가정 내 산적해 있는 문제를 전부 유령과 함께 다루려 하다 보니 지루하다. 하지만 잘 만들었다. 그러나 지루하다. 잘 만들었지만 재미는 없다. 아무튼 온통 오해와 이해의 그 중간 어디를 왔다 갔다 하면서 서로 내뱉지 말아야 할 말을 뱉어내고 그러다가 유령 때문에 서로 뭉치고, 유령 때문에 서로 찢어지고. 이야기는 느닷없이 과거와 현재를 오고 가는 장면이 많다. 정말 느닷없이 과거, 먼 과거, 짧은 과거로 갔다가 현재를 보여주는 화면이 많아서 짜증 난다.

세상에는 그런 시리즈가 있다. 잘 만들었다고 느껴지나 재미가 없는 기묘한 이야기가 있는 것이다. 재미있었다면 시즌 2가 나왔을 것이다. 미국 놈들이 어떤 놈들인데 그걸 포기할까. 유령이나 점프 스퀘어 없이 정말 재미있게 무서웠던 시리즈는 ‘베이츠 모텔’ 시리즈였다. 베이츠 모텔은 아는 사람은 알겠지만 히치콕 감독의 ‘싸이코’에 등장한 모텔이며, 주인공 노먼 베이츠는 싸이코의 살인마 이름이다.

노먼 베이츠의 엄마로 나오는 베라 파미가가 이를 물고 제작에 뛰어들어 총괄 제작까지 맡았다. 뼈와 살을 갈아 넣어서 만들었다는 걸 시리즈 내내 느낄 수 있었다. 이 시리즈는 기획 전부터 감독이 싸이코의 프리퀄이라 했고 보는 내내 정말 심장이 졸깃해지며 재미있었다. https://youtu.be/G3LrceBiG9s


62년에 나온 '싸이코'는 20년이 지난 83년에 싸이코 2편이 나왔다. 노먼 베이츠가 20년이 지난 후에 베이츠 모텔에서 일어나는 이야기를 만들었다. 싸이코의 주인공 안소니 퍼킨스가 20년이 지나서도 노만 베이츠 역을 했다.


이 시리즈에서 노먼 베이츠와 친하다가 죽임을 당하는 비중 있는 조연으로 니콜라 펠츠가 나온다. 니콜라 펠츠는 기업사냥꾼으로 유명한 엄청난 재력가 넬슨 펠츠의 딸이다. 아버지와 나이 차이가 어마어마하다. 무엇보다 니콜라 펠츠는 베컴의 첫아들 브루클린 베컴의 아내로도 유명하다. 돈이 너무 많은 재력가 집안의 니콜라 펠츠와 역시 돈이 너무너무너무 많은 시어머니, 스파이스 걸스의 빅토리아 베컴과 결혼식을 두고 고부 갈등을 겪는 일들이 세계의 가십으로 떠오르기도 했다. 엄마와 아내가 싸우거나 말거나 그저 아내가 좋은 반등신 브루클린 베컴.


얼마 전에는 유튜브인지 틱톡인지, 라이브로 기름을 한 통을 다 부어서 고작 닭 세 조각을 튀겨서 사람들에게, 그래 너 잘 산다, 같은 반응을 들었다. 그러거나 말거나 브루클린 베컴은 사람들이 왜 그러지? 같은 반응이다. 요리하는 걸 좋아해서 요리프로그램에 나왔는데 브루클린 베컴이 아주 간단한 요리를 하는데 방송 스텝과 전문 요리사들, 그리고 보조 출연자들이 많이 나와서 방송 관계자가 유전무죄 무전유죄 같은 말을 했지만, 역시 브루클린 베컴은 그게 뭔지, 무슨 말인지 똥인지 된장인지 이해를 하지 못했다.


아무튼 베이츠 모텔은 시리즈는 진정 재미있고 무서웠다. 무서운 장면이 없이 무서움을 주는, 그 어떤 존재보다 인간이 인간에게 가장 무섭다는 걸 보여주었다. 시리즈 몇 인지는 모르겠지만 히치콕의 싸이코에서 가장 유명한 욕실 장면의 오마주도 나온다.


우리나라도 코로나 시기에 드라마 ‘마우스’가 했는데, 싸이코패스가 형사에게 보여주려고 사람들을 죽여 전리품으로 만들어 놓으며 나를 잡아봐 하는 이야긴데 무섭고 재미있었다.


https://youtu.be/i_K9U3gE9os 승기야 힘내자!


여름에는 공포영화를 보는 재미가 있다. 예전 어릴 때에는 전설의 고향이 최고로 무서웠다. 뭐 여러 이야기가 있지만 구미호가 제일이었다. 이 구미호가 요즘은 한국을 넘어 미드 공포 시리즈에도 나온다. 러브크래프트 컨트리에 구미호가 나온다.

시리즈 중 한 회는 온전히 50년대 대구를 배경으로 인간이 되고픈 구미호의 이야기가 그려진다. 무섭다기보다 제이미 정이 홀딱 벗고 나오기 때문에 섹시하다는 생각이 먼저 든다. 구미호로 변할 때 그간 우리가 알고 있는 많은 구미호 버전을 봤지만 러브크래프트 컨트리 속 구미호로 변하는 장면은 좀 뭐랄까, 이상해. 그 꼬리 같은 것이 콧구멍에서도 나오니까 순간 웃음이.


무엇보다 1시간 내내 한국말을 하는데 정말 너무 어색하고 듣기 싫어 죽는 줄 알았다. 50년대, 그것도 경상도 대구에서 혀가 막 굴러가는 한국어를 하니까. 제목에 걸맞게 굉장한 괴물들이 나오는데 역시 재미가 없다. 예고편에 속은 인간은 나 혼자로 족하다. 시리즈 내내 너무나, 고구마 몇 개를 한 번에 먹은 것처럼 답답하고 지루하다. 게다가 시리즈 내내 그놈의 pc주의가 가득하다.

https://youtu.be/eb8sKpJMRSY


러브크래프트 컨트리라는 소설이 드라마로 만들어졌는데, 러브 크래프트는 미국 공포물의 대가가 되었다. 미지에 대한 공포, 인간이 범접할 수 없는 빛과 색채에 대한 공포를 만들어냈다. 크툴루 신화의 창시자로 불리며 러브크래프트의 소설은 대부분 영화가 되었으며 대부분 으~~ 하는 얼굴을 만들게 했고 징그럽고 무서웠다. 샘 닐 아저씨가 나왔던 이벤트 호라이즌은 당시 너무나 충격적인 장면 때문에 미국 내에서도 검열로 인해 몇 장면은 삭제하고 나서 극장 상영을 했다고 한다. 나는 그 삭제된 부분까지 다 봤는데 90년대에 나온 영화지만 지금 봐도 너무 오싹하다. 그나저나 샘 닐 아저씨 혈액암 판정받았다는데 잘 회복하고 있는지 모르겠네.


러브 크래프트는 대놓고 인종차별을 했다고 알려졌다. 그래서 그런지 ‘러브크래프트 컨트리’ 이야기는 흑인인종차별에 대한 이야기에 괴물이 나오는 이야기를 섞어 놨다. 흑인 차별이 무지무지하게 심한 50년대의 미국을 보여주었다. 어느 지역에서는 흑인이 들어와서는 안 되며 들어온 흑인은 사냥을 할 수 있다. 그리고 동성끼리의 붕가붕가 장면을 너무 적나라하게 표현을 해놔서 좀 그렇다.


여름에 보기 무서운 영화는 일본의 ‘기묘한 이야기’ 초기 버전이었다. 눈 속에서 한 명씩 돌아가면서 불침범을 서는데 나중에 한 명이 더 있다는 걸 알게 되고. 무서웠다. https://youtu.be/uIvh6pxBg_E 기묘한 이야기 - 설산. 이게 공포의 레전드다.


옛날부터 겨울 산장의 무서운 이야기는 많았다. 요컨대 폭설 때문에 산장에 친구들과 갇혔는데 창밖에서 친구들이 나오라고 하는데 산장 안에도 친구들이 있고. 산장 밖의 유령이 나를 밖으로 불러내 죽이려고 해서 산장 안에서 친구들과 안고 있는데, 창밖의 한 친구가 피를 머리에서 흘리며 계속 나오라고 무섭게 손짓하고. 그 친구만 산장 안에 없어서 나갔더니 산장 밖의 사람들이 진짜 사람이고, 같은 그런 이야기.


그러니까 예전에는 미지의 존재, 귀신, 유령이 무서운 이야기의 주체였는데 요즘은 인간이다. 인간이 제일 무섭다. 사람은 겉으로는 알 수 없다. 겉으로는 사람들에게 친절하지만 집 안에서 아이에게 상한 음식을 먹이고 쇠사슬로 묶어 놓아서 애가 죽고 나서야 겉과 속이 다르다는 걸 알 수 있을 정도다. 사람이 뇌의 한 부분이 이상해거나 흘러나오지 말아야 할 서번트 물질이 많이 나온다거나. 또는 싸패의 뇌를 이식받았다거나 하면 인간은 정말 무서워질지도 모른다.


인간이 인간에게 있어 가장 무서운 존재다. 우리는 그 사실을 잘 알고 있으면서도 잘 잊어버린다.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의 ‘아무도 모른다’는 그래서 내가 가장 무섭다고 생각하는 영화다. 실제 일본 내에서 발생한 일을 영화로 만들었다. 아이들을 방치하고 도망간 엄마 때문에 아이들이 점점 어떻게 변하는지. 옷도, 생리작용도.


전기도 수도도 끊어지고 집에서 아이들만 배고픔을 견디며 지내다 결국 막내 유키가 숨을 거두는 장면은 너무나 끔찍하고 안타까운데 너무 아름답게 그려져서 정말 슬펐다. 이 영화는 일본의 단면을 너무 적나라하게 보여줬다고 해서 고레에다는 아베 정부에게 찍혀 불이익을 받기도 했다.  https://youtu.be/6ZYPlnmhMTU

'나의 아저씨' 마지막 회를 보면 기훈이가 동훈에게, 이 영화 ‘아무도 모른다’에 대한 이야기를 한다. 5분 보다가 꺼버렸다고. 가정의 가장 오빠가 12살인데 동생들을 위해 다니면서 구걸하는 모습이 너무 불쌍해서 못 보겠더라고. 내가 티브이 속으로 들어가서 애들을 꺼내오고 싶다고.


기훈이가 기훈이 스타일로 이야기를 할 때 동훈은 동훈 스타일로 덤덤하게 듣는다. 그리고 기훈이가 말한다. 다음 날 다시 봤는데 보기 잘했다고, 아이들은 똑똑하게 잘 살아간다고, 아이들은 우리가 생각하는 것만큼 약하지 않다고. 아이들은 다 자가 치유능력을 가지고 있더라고. 기훈이는 자신의 형과 이지안을 위해서 자신의 스타일로 그렇게 위로해 준다.

가장 역할을 해야 했던 12살의 야기라 유야는 배우로 훌쩍 커서 올해, 2023년에 인육을 먹는 마을에 부임한 경찰이 되어 사건을 파헤치는 무시무시한 이야기 ‘간니발’의 주인공이 되었다.

외진 산골 마을, 쿠게 마을이라 불리는 이 마을을 지키는 파출소에 근무하는 순경은 한 명. 이전 순경의 갑작스러운 실종으로 새로 부임한 아가와 순경은 아내와 실어증을 앓고 있는 어린 딸 마시로와 함께 생활하게 된다. ​


마을은 너무나 작고 주민들은 서로 집집마다 그릇이 몇 개인지 다 알 정도로 친밀하다. 아가와는 부임 첫날부터 호의적인 마을 사람들에게 환영을 받는다. 한창 좋은 분위기가 무르익어 가는 가운데 고토 가문의 사람들이 와서 산속에서 곰에게 당한 시체를 발견했으니 와 달라고 한다.

시체가 있는 장소로 온 아가와는 얼굴의 반이 없어지고 한쪽 팔이 옆에 분리되어 있는 노파의 시체를 본다. 고토 가문의 사람들은 곰에게 당했다고 하지만 시체를 살핀 아가와는 곰에게 물린 자국이라고 하기에는 터무니없다고 한다. 이건 어쩌면?

그러면서 이야기는 점점 수렁으로 치닫는다. 수백 년 이어온 고토 가문은 식인을 한다는 소문이 있고, 이전 순경은 그 증거를 찾아서 수사를 하다가 당했다고 아가와는 생각한다. 그리고 호적 없이 태어난 아기들이 유독 이 마을에서 사산되었다는 것을 알게 된다.

아가와는 마음속에 억누르지 못하는 분노가 있다. 만약 태어난 아기를 어딘가에 잡아 두고 식인을 한다면 이 사람들을 절대 용서할 수 없다. 아가와의 이 들끓는 분노는 형사 시절 범죄자들을 잡을 때 거침없이 튀어나왔다. 악은 더 큰 악으로 대해야 한다. 자신의 어린 딸에게 접근하는 어린이 성추행범을 잡아서 반쯤 죽을 때까지 폭행을 하는 아빠를 싫어하는 어린 딸 마시로. 그런 마시로가 보호하려는 사람이 바로 성폭행범이다.

어느 날 성폭행범이 마시로에 목에 칼을 대고 나는 마시로를 사랑한다, 우리 같이 죽자.라고 하는데 아가와가 권총으로 성폭행범을 사살하게 되고 그때의 충격으로 마시로는 언어를 잃어버린다. 마시로를 위해 산골 마을로 부임한 아가와에 닥친 이상한 마을의 사람들과 식인을 하는 사건을 수사하는 과정에서 굉장한 비밀들이 드러난다.

스릴러 공포 장르인데 무척이나 재미있다. 이렇게 전개될 거야,라고 생각하는 부분들이 생각처럼 이어지지 않는다. 우리나라 영화 이끼와 곡성을 잘 버무려 놓은 듯한 전개와 긴장감이 든다.

감독이 실종을 연출한 가타야마 신조로 봉준호 감독의 연출부에서 영화를 배워간 그 감독이다. 어린 딸 마시로의 연기, 직접적으로 드러나지 않지만 어린이의 얼굴을 파먹는 장면이나 친절하기만 하던 마을 사람들이 점점 아가와 가족을 조여 오는 압박감의 연출을 보는 재미를 더 한다.

매회 사건을 이루는 새로운 인물이 등장한다. 드라이브 마이카 제작진이 탄탄한 스토리에 힘을 더 실어서 간니발은 재미있다. 카니발리즘을 잘 볼 수 있는 시리즈 간니발이었다. https://youtu.be/m5Uyji9i76E


어떻든 인간이 인간에게 가장 무섭고 몹쓸 짓을 한다. 김영하의 소설 ‘비상구'도, 무라카미 류의 '코인로커 베이비'도 아이들을 부모가 버리고 방치하면 어떻게 되는지 보여주는, 그 안을 잘 들여다보면 무서운 이야기를 말하고 있다. 그리고 그 같은 무서운 일들이 사실 주위에서 아무렇지 않게 일어나고 있다. 사람들을 겉으로 봐서는 절대 알 수가 없다. 진정한 공포는 사람이야, 인간이라고. 누가 알아? 밉다고 오징어 볶음에 독약을 탔을지.



댓글(0) 먼댓글(0) 좋아요(4)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나를 있는 그대로 바라봐 준 사람은 오직 너뿐. 너의 심장 소리를 듣기 위해 나는 너의 입술을 훔쳤다. 괴물이란 다른 게 아니라 그저 다른 사람과 다르게 보이는 것이다. 모두가 우리를 괴물이라 해도 여름의 뜨거운 빛을 당당하게 받을 수 있는 사람은 우리라는 걸 나는 알고 있다. 때로는 확실한 진실보다 희미한 가능성이 더 나을지도 몰라. 우리는 괴물이니까 우리 서로 열심히 사랑하자. 사랑이 없는 사람은 많아도 사랑이 많은 괴물은 우리뿐이야. 너를 알게 된 후 나의 피와 뼈와 살이 존재한다는 걸 알았어. 딸기는 빨간데 딸기우유는 하얀색이다. 그래, 우리는 딸기우유를 먹으며 딸기보다 더 맛있다고 생각할지도 모른다. 그 여름의 정점에 부는 바람은 이마에 맺힌 땀을 식혀주기에 충분했다. 그러나 어? 하는 사이 한 계절의 여름은 짧게 지나 저만치 후퇴해 버리고 영원할 것만 같았던 여름의 그 감촉과 냄새는 마음 한 편의 야들야들한 추억이 되었다.

딸기우유, 트레이시 에민, 휴대용 시디 플레이어, 신해철, 웸, 011 애니폰 등이 배경이 되었던 최은영 단편소설 원작 '그 여름'이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4)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장마기간이다. 레인시즌인 것이다. 엇 그제 밤에는 폭우의 소리가 대단했다. 불을 끄고, 라디오 소리도 끄고, 유튜브도 끄고 지축을 울리는 빗소리에 집중을 하니 무섭다는 생각이 들었다. 어렸을 때는 별로 무섭지 않은 것들이 어른이 되어서 무섭게 다가온다. 어린이 때 귀신보다 어른이 더 무서웠는데 이제 그 무서운 어른이 되었지만 세상은 온통 무서운 것들 투성이다.


오늘은 집에 오는데 해안도로가 엄청나게 내리는 비 때문에 3차선 중 2차선이 물에 잠겨 경찰들이 교통정리를 하고 있는데 비가 너무 쏟아지니 불안하고 무서웠다. 공포다. 비가 많이 내리면 언젠가부터 무섭기 시작한다. 빗길에 사고가 났는지 차들이 움직일 생각을 않는다. 거북이 운행으로 가다 보니 자동차 한 대가 구겨진 종이짝처럼 완전히 구겨져 있었다. 분명 운전자는 사망했을 것이다. 자동차의 형태를 알아볼 수 없을 지경이다. 점점 더 무서워졌다.


여동생이 뚝섬 근처 대학교로 가면서 반지하에서 살았다. 한 번 놀러 갔다가 아침에 눈을 떴는데 캄캄해서 이른 아침인 줄 알았는데 오후 1시였다. 비가 오면 겁이 난다고 했다. 특히 비가 하루 이틀 지속되면 언제라도 당장 달려 나갈 준비를 하며 지내야 했다.


장마 때문에 비가 너무 내려 강물이 불어나고 그 강물에 모든 것이 쓸려 내려가는 모습을 아이폰 3이 나올 때까지만 해도 나는 카메라를 들고나가서 그런 모습을 사진으로 담았다. 무서운 게 없었다. 태풍이 오면 집 앞이 바닷가이니 방파제에 나가서 파도가 테트라포드에 부딪혀 엄청난 포말을 만들어내는 장면을 카메라 담느라 신났다. 그런데 지금은 비가 많이 내리면 무섭다. 그래서 건물 밖으로 나가려 하지도 않는다.


어릴 때 비가 와서 물웅덩이가 보이면 장화를 신고 일부러 그 안에 들어가서 첨벙첨벙 물놀이를 했는데 시간이 지나면서 점점 그런 놀이를 하지 않게 되었다.


장마기간에, 굽굽하고 몸이 물 먹은 솜처럼 무거울 때 찬물을 몸에 찌끄리고 나면 엄마가 부침개를 해주었다. 기름옷을 입고 노릇하게 잘 구워져 먹으면 너무 맛있었다. 아버지는 집에서는 술을 드시지 않았는데 장마기간의 주말이면 가족이 모여 마당에 떨어지는 비를 보며 전, 부침개를 먹었다. 비가 쏴아 쏟아져도 무섭지 않았다.


부침개는 밥이 아니라 식사에서 멀어진, 그래서 어쩐지 집 안에서 소풍 같은 기분을 갖게 했다. 동생은 왔다 갔다 하며 질문이 많고, 엄마는 덥지만 부침개가 접시에서 떨어질 때 또 부쳐서 내왔다. 에어컨도 없는데 선풍기만으로 잘 도 여름을 지냈다.


아버지는 우리와 함께 티브이 만화도 같이 봤다. 조카가 여름에 집에 놀러 오면 만화를 보는데 동참하려고 해도 아, 조카가 좋아하는 만화에는 적응이 잘 안 되었다. 나는 지금도 주위에서 애니메이션을 많이 봐서 초딩들과 꽤나 교류가 이루어지고 있다.


귀멸의 칼날은 디오라마를 만들어 버릴 정도로 좋아하고, 사이타마의 원펀맨, 이 세계 삼촌부터 고전(이라고 하기에는 좀 그렇지만) 헬싱까지. 아무튼 만화를 엄청 좋아하는 편인데 조카가 좋아하는 만화는 아따맘마까지다.


어떻든 울 아버지도 어른으로 분명 만화를 아이들과 같이 보는 것이 고역이었을 것이다. 그럼에도 아기공룡 둘리는 전부 앉아서 재미있게 봤다. 레인시즌에 먹는 부침개는 맛있을 수밖에 없었다. 무서운 것이 없었기 때문이다. 둘리가 있었기 때문이다. 비가 내려서 마당을 적시고, 가족이 전부 밥상에 붙어 둘리를 보며 호박전을 먹었다. 아버지가 옆에서 있었고 엄마도 젊어 손맛이 좋았다.


며칠 전에 복면가왕에서 오승원의 둘리를 들었다. 그 첫 목소리를 듣자마자 내 어린 시절의 기억이 화악 몰려왔다. 둘리는 이상한 게, 그냥 재미있는 이야기다. 웃기고 명랑만화다. 그런데 보고 있으면 항상 슬프다. 그 슬픔은 그리움에서 나온 것이고 둘리가 엄마와 떨어져 지내면서 엄마를 그리워하는 그 마음을 오승원이 노래로 담아냈기 때문이다.


오승원의 그 한 소절이 미소를 짓게 하면서 마음을 온통 두드렸다. 다시 둘리를 보면 알겠지만 온갖 여러 편에서 둘리가 나오지만 둘리는 엄마가 없다. 엄마를 잃은 둘리의 그 마음이 고스란히 보는 이들에게 전해진다. 복면가왕에서 오승원이 부르는 둘리는 사람을 놀라게 한다. 오승원의 목소리가 그리움인 것이다.


부침개를 만들어 먹었다.

예전만큼의 맛이 나지 않는다.

훨씬 맛있을 텐데 예전만큼 맛있지 않은 건 같이 둘리를 보던 아버지는 없고, 빗소리는 예전보다 무섭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모기향 연기가 올라다가 선풍기 바람에 날려 공중으로 확 퍼졌고, 아버지는 모기들이 집 안으로 들어오지 못하게 방충망을 더욱 견고하게 다듬었다. 비가 내려 나뭇잎들이 마당에 떨어져 쓸려 내려갔다. 아버지는 물구멍이 막힌다며 나가서 나뭇잎들을 거둬냈다. 엄마는 부침개를 옆 집에 나눠주었다. 옆 집에서 시원한 단술을 가져다주었다. 아, 맛있다. 땀을 닦고, 빗물을 털어내고 갓 부친 부침개를 먹으며 작은 화면 속 둘리와 인사를 했다.


동심으로 돌아간 마법 같은 무대� 오승원의 <아기공룡 둘리> https://youtu.be/3q4Ey8BcBT8


댓글(0) 먼댓글(0) 좋아요(3)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