냉장고에서 꺼낸 시원한 오이냉국을 한 모금 마신다. 오이를 한 입 씹어 먹는다. 상쾌하고 식초의 좋은 맛이 입 안으로 와르르 들어온다. 우걱우걱 씹을수록 오이가 아삭함을 온몸으로 퍼트려 준다. 비가 내리는 무더운 여름밤에 시원한 오이냉국만 한 음식도 없다.


한여름 밤의 꿈이라는 곡이 있는데 그 노래 속 주인공이 되어 바다를 보며 맥주를 한 잔 마시고 시원한 오이냉국의 오이를 아삭아삭 씹어 먹는다. 모든 게 예전 그대 로고 달라질 이유 없는데, 오이냉국도 어릴 때 먹던 그 맛인데 그대만 곁에 없다는 게 너무나 슬프다.


한여름 밤의 꿈처럼 오이냉국이라는 곡도 만들면 여름에 너무나 좋을 것 같다. 아삭아삭 씹히는 상쾌한 소리가 여름밤에 울려 퍼지면 바닷가에 사는 사람들에게는 계절송이 되어 여름밤이 되면 그대를 그리워하며 오이냉국을 꿀꺽 먹는다. 여기서 말하는 그대는 연인이라기보다 어머니다.


어머니가 어릴 때 여름이면 시원하게 송송 오이를 잘라 담가주던 오이냉국은 여름이면 늘 그대로인데, 같은 생각을 하면서 권성연이 1990년 강변가요제에서 대상을 받은 한여름 밤의 꿈을 듣고 있으면 이야기가 눈앞에 선하게 펼쳐진다.


영상을 찾아서 보면 그날, 권성연이 나와서 노래를 부르는 그날이 자신의 생일이라고 한다. 간주 중에는 자막으로 권성연에 대해서 설명을 하는데, 고려대 불문과에 국민학교 때 MBC어린이노래자랑 우수상 수상, 취미는 낮잠, 별명은 쥐방울이라고 한다.


자막도, 화면도, 가수도, 사회자인 이수만과 이미연은 비현실적이라 정말 꿈같다. 오직 권성연이 부르는 노래만이 시대에 머무르는 꿈같지 않다. 노래를 끝내고 들어가려는 권성연을 이수만이 붙잡아서 이런저런 말을 막 시키고 요들송을 시킨다. 그런데 권성연이 요들송을 부르는데 와, 정말 잘한다.


권성연은 자신의 자작곡인 한여름 밤의 꿈으로 강변가요제에서 대상을 수상했다. 재즈가수가 되고 싶어 했던 권성연은 당일에 너무 신경을 쓴 나머지 배탈이 나서 정신이 거의 없을 지경이었다고. 그런데도 노래를 부르고 남아서 요들송도 멋들어지게 불렀다. 권성연은 이후에 영심이 주제곡 ‘해봐’도 부르고 피구왕 통키의 주제가도 부른다.


권성연의 한여름 밤의 꿈을 듣고 누군가가 여름에 이 노래 한곡만으로 여름 내내 버텨낼 수 있다고. 한 번 끝까지 노래를 들어보면 노래가 얼마나 좋은지 알 수 있다.


매년 여름이 시작할 때 오이냉국에 관한 글을 적는 것 같다. 재작년에도, 작년에도 오이냉국에 대해서 열심히 적고, 또 열심히 먹었다. 나는 보통 이렇게 오이냉국으로 해서 오이를 일 년에 한 네 박스 정도를 먹는다. 라면박스 정도의 크기가 아니라 책이 택배로 오는 정도의 박스다. 여름이 되면 찾아서 먹게 되는 채소와 과일이 있다.


수박은 잘 먹지 않지만 오이는 여름이 되면 찾아서 먹게 된다. 그리소 복숭아와 자두를 먹게 된다. 물방울이 겉면에 흐르는 시원한 자두를 먹고 있으면 여름이구나 하는 생각이 든다. 오이는 그냥 생으로는 잘 먹게 되지 않지만 오이냉국으로 해 놓으면 하루에 한 그릇씩 뚝딱 먹게 된다.


오이냉국으로 만든 오이는 아삭아삭 씹어 먹는 맛이 좋아서 자꾸 먹게 된다. 맥주와 먹기에도 좋다. 이렇게 시원하게 국을 만들어 먹기 좋은 건 콩나물국도 그렇다. 콩나물만으로 만든 슴슴한 국도 뜨거운 것보다 냉장고에 넣어뒀다가 꺼내 마시는 시원한 콩나물국이 좋다. 시원한 콩나물국은 겨울에도 좋다. 뜨거울 때는 잘 못 느끼는 간간한 맛도 시원하면 느낄 수 있다.


여름에 나를 찾아온 오이냉국.

오이냉국만 있다면 이 여름 내내 나는 견뎌낼 수 있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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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격적인 여름을 맞이하면서 동반되는 연중행사 같은 것이 공포프로그램이 티브이를 통해 나온다는 것이다. 공포영화가 케이블 영화 채널을 통해 나오고, 심야 괴담회 역시 여름 특집으로 단단하게 중무장해서 나올 것이다. 여름에는 무서운 이야기가 제갹이야,라고 하는 것처럼 티브이는 예전부터 여름이 되면 무서운 이야기를 만들어서 내보내고 있다.


일본 채널에서도 오밤중에 공포 이야기를 방송한다. 기묘한 이야기라든가, 정말로 있었던 무서운 이야기 등 이런 프로그램은 20년 이상씩 된 프로그램으로 장수 프로그램이다. 10주년, 20주년 기념 방송을 하기도 하는데 그때에는 일본 내에서도 잘 나가는 배우들이 등장하기도 한다.

한이 서린 우리네 이야기에 비해 일본의 서민 공포는 민담이나 설화를 바탕으로 만들어진 이야기가 많다. 그래서 복수라는 개념보다 귀신이나 오니가 개뜬금 없이 나타나서 인간을 괴롭히거나 죽이거나 저쪽 세계로 데리고 간다. 일본은 우리나라에 비해서 귀신의 종류도 많고 믿고 있는 신이나, 모시는 신도 엄청나게 많다. 그래서 기독교가 강세인 한국에 비해 일본에서는 기독교가 큰 힘을 발휘하지 못한다. 한국의 사이비 종교를 내세우는 영화나 드라마를 보면 이단 기독교의 모습이 많지만, 일본의 드라마나 영화에서 기독교가 나오는 비중은 거의 없다.


우리나라 성은 김, 박, 이, 최 등 300여 가지의 성이 있지만 일본은 10만 개가 넘는다고 한다. 그래서 미국인처럼 성을 불러도 자신을 부르는지 안다. 우리나라처럼 도심지에서 김 씨! 하고 부르면 한 스무 명이 돌아보는 것과는 다르다. 귀신이나 신도 우리나라보다 종류도 다양하고 수도 월등하게 많아서 그런지 여전히 오래된 공포 이야기를 드라마로 제작해서 내보내고 있다.


한을 주로 다루며 강력한 무기, 구미호를 내세운 전설의 고향도 장수 프로그램이었는데 좀비라든가, 뱀파이어, 사이코패스에게 자리를 내주며 씁쓸하게 은퇴를 해버렸다. 전설의 고향 시리즈도 감독과 제작사를 잘 만났다면 아직도 여름에 한반도를 강타하고 지금은 넷플릭스 같은 오티티 플랫폼을 타고 확장될 수 있었을 텐데 하는 생각이 든다.


그래도 현재 악귀, 마당이 있는 집 같은 시리즈가 공포를 주기에 모자람이 없다. 여기서 말하는 공포와 무서움에는 미미한 차이가 있는 것 같다. 악귀는 김태리와 오정세가 열연하고 있는데 말 그대로 악귀가 씐 사람들의 이야기다. 귀신 이야기라는 것. 그 안에는 아이를 제물로 바친다거나 하는 아픈 이야기도 있다. 마당이 있는 집은 서스펜스다. 느리게 이야기가 흘러가지만 그 느림의 미학이 주는 공포가 또 꽤 두렵다. 인간의 마음을 불안하게 하는 공포를 준다.


우리나라 공포영화도 계보가 죽 있었다. 그중에 한국 공포영화사에 남길 만한 영화가 ‘스승의 은혜’였다. 복수하는 이야긴데 우리나라 최초로 신체훼손의 이야기로 이루어져 있다. 자칫 처음이 재미없을 수 있는데 스승의 은혜는 아주 고어적이면서 공포적이었다. 미국은 오래전부터, 1974년에 일어난 텍사스 전기톱 살인사건을 열심히 영화로 계속 만들어내고 있다. 13일의 금요일의 제이슨은 시리즈로 나오고 있는데, 미래의 우주선까지 가기도 했다. 거기서도 아주 그냥 인간들을 작살낸다. 호스텔도, 쏘우 시리즈까지 열심히 신체훼손 공포영화가 나오고 있다.

신체훼손 하면 으 하는 사람도 있겠지만 공포영화도 다양해야 하는데 그 이유라고 하자면 현실에서 이런 일들이 아무렇지 않게 일어나고 있기 때문이다. 뉴스나 기사로 사람들에게 전달하는 건 한계가 있다. 뉴스로 어떻게 세세하게 내보낼 것이며, 짧은 기사로도 그런 엄청난 일을 내보낼 수 없다. 요즘은 유튜브가 있어서 실제로 일어난 신체훼손 사건을 다루는 채널이 많이 있다.


홍콩에서는 아주 예쁜 모델 애비 최가 28살의 나이에 남편에서 살해당했다. 그런데 온몸을 전부 토막을 내서 일부 신체는 냄비에서 탕으로 끓였다고 한 것으로 경찰은 전했다. 이 사건이 올해 2월에 일어난 사건이다.

애비 최는 아주 예쁜 얼굴로 프랑스 파리에서 열린 엘리사브 봄 2023 여름 오트쿠튀르 쇼에 출연하기도 했다. 글로벌 패션계의 주목을 받은 모델이었는데 딸을 만나러 갔다가 남편에게 살해당해서 온몸이 토막이 나버렸다.

이 사건은 올해 초 인터넷을 엄청나게 달구었다. 그 잔인함과 극악무도함에 대해서 사람들은 말했지만 사실 쉽게 알려지지 않는다. 하지만 영화가 된다면 또 얘기는 달라진다. 물론 영화제작 과정에서는 적잖은 타협과 잡음이 들어가겠지만 지금까지 잘 만든 영화들은 잘 만들어왔다.


우리나라는 공포영화를 너무 잘 만들려는 경향이 짙다. 여고생들의 아픔으로 시작한 여고괴담이 큰 인기를 얻다 보니 너무 잘 만드려고 하다가 전부 실패를 맛봤다. 몇 년 동안 나온 한국 공포영화는 무서운 공포보다는 어이없고 실없어서 공포였다. 가장 최근의 옥수역 귀신 같은 영화는 다시는, 절대 나오지 말았음 한다. 보면서 이렇게 개킹받은 영화는 근래에 처음이었다.


여름에 쏟아지는 공포영화나 드라마 시리즈는 무섭다기보다 공포에 가깝다. 무섭다는 개념은 공포보다 조금 더 높은 곳에 있는 감정 같다. 그래서 일본의 공포 영화, 전설의 고향이나 도시괴담을 주제로 만들어내는 공포 영화는 무섭다기보다 징그럽거나 놀라는 공포에 가깝다. 느닷없이 튀어나오는 점프 스퀘어나 흉물의 얼굴을 가진 귀신이나 괴물은 징그럽다.


이런 공포는 인간이 인간을 가지고 살해하거나 신체훼손을 가하는 무서움에 비해 좀 덜하다. 홍콩의 애비 최 사건이나 우리나라 진돗개교 사건(멍멍 짖는 진돗개를 믿는 신도가 자신의 3살짜리 딸이 개에게 소리를 질러 교주와 함께 자신의 아이를 죽여서 파묻은 사건이 2016년도에 있었다) 같은 이야기는 무섭다. 실제로 내 주위의 누군가가 하루아침에 조울증이 도저 어떻게 변할지 아무도 모르는 일이다. 지금까지 사건을 당한 사람들 역시 자신의 주변인들이 자신에게 그렇게 해를 가하리라고는 전혀 느끼지 못했다. 이런 공포는 순수한 무서움이다. 정말 무서움.



이쯤에서 유튜브로 볼 수 있는 단편 공포영화 한 편을 소개해 본다. 코믹호러다. 핀리는 처키와 에나벨 그 어디쯤 위치하는 공포 인형이다. 주인공들이 사는 집에 오게 된 핀리는 사악한 선배 인형들처럼 주인공들을 하나씩 잡아 죽이려고 한다.


혼자 있게 된 여자 주인공에게 칼을 들고 캬캬캬 달려드는데 여주 주인공이 긴 다리로 핀리를 걷어차 버린다. 당황한 핀리, 아 이게 아닌데. 핀리는 또 다른 여주인공이 욕조에서 목욕을 할 때 전기토스트기를 물에 집어넣어 감전사시키려고 욕조에 빠트리는 순간 꺄아 줄이 짧아 코드가 빠져 버린 것.


그 뒤로 핀리는 비닐로 얼굴을 감싸서 죽이려고 해도 입을 막지 않아서 실패, 음식에 쥐약을 넣으려다 실패, 화살을 설치해도 실패. 핀리는 우울하기만 하다. 주인공들은 핀리를 놀리고 이제 그만 인간 사회에 적응하라고 한다.


생각대로 되지 않는 핀리는 자신의 할 일이 없어져 다락으로 올라가 자신을 봉인한다. 그런데 그날 밤 강도들이 침입해서 주인공들을 죽창 낸다. 봉인되었던 핀리가 일어나 강도들을 잔인하게 죽인다. 주인공들에게는 씨도 먹히지 않았던 방법이 전부 통하는 것이다.


신이 난 핀리는 극악무도하게 강도들을 무참히 죽인다. 덕분에 평화를 찾은 주인공들이 핀리를 가족으로 받아주고 크리스마스 파티를 한다. 핀리를 위해 선물도 주고, 핀리도 기뻐한다. 핀리는 심부름도 하고 주인공들과 친하게 지낸다.


주인공들은 파티를 즐기며 음료를 나눠 먹는데 맛이 좀 이상하다. 모두가 핀리에게 맛이 어떠냐고 묻는데 핀리는 마시지 않으며 끝난다.


유튜브 단편 영화로 아주 삼빡하고 잘 만들었다. 아무튼 이렇게 숨은 영화들을 찾아서 보면 능력자들이 많음에 놀람. 핀리 얼굴 보고 놀람. 퀄리티 보고 또 놀람.


https://www.youtube.com/watch?v=A0641hHG1IQ

J. Zachary Thurma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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잉크냄새 2023-07-19 22:26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공포영화를 꽤 보는 편인데, 일본이나 태국 공포는 보지 않게 되더군요. 미국식 공포는 한 번 보고 나면 끝인데 일본이나 태국은 뭐랄까요. 기분이 찜찜하고 더럽다(?)고 할까요. 어쩌면 그게 진짜 공포일지도 모르겠네요.

교관 2023-07-20 12:11   좋아요 0 | URL
공포를 느끼는 포인트가 사람마다 다 다르니까 여러 장르의 공포영화가 나오는 것 같습니다 ㅎㅎ
 

크림은 하루키 단편 소설집 ‘일인칭 단수’에 수록된 단편 소설이다. 2020년 9월쯤인가, 이미 한국에 하루키의 ‘일인칭 단수’가 나왔어야 하는데 내 생각에 너무 늦어지는 것 같았다. 일본에서 출간이 되고 1년 정도가 지나면 한국에도 하루키의 소설이 출판이 되는데 오래 걸리는 기분이 들었다. 너무하잖아? 이러다간 신간이 아니라 재출판물 같은 기분이었다.


신간의 반대말은 무엇일까. 헌간? 지금도 생각 중이다.


하루키의 ‘일인칭 단수’에 실린 신간은 한 편을 제외하고 2019년에 뉴요커에 전부 실렸다. 하루키는 언젠가부터 뉴요커와 밀접한 관계가 되었고 인터뷰를 종종 가지며 자신의 개인적인 이야기와 신간, 지나간 소설에 대한 이야기를 풀어놓는다. 뉴요커는 젊디 젊은 하루키 적 시절에 이미 알아본 거지. 아 이 사람은 세계적인 소설가가 되겠구나, 뭐 이런 미래를 보고 꾸준하게 하루키와 접촉을 해왔다.

하루키가 근래에는 일본 내에서 도쿄 FM 라디오 디제이도 하고(무라카미 라디오), 일본의 여러 잡지와 인터뷰도 진행하면서 자신의 소설이 영화가 된 이야기도 뱉어내고 있다. 드라이버 마이카, 버닝 같은 영화를 언급하면서 이창동 감독이나 하마구치 류스케 감독에 대한 이야기도 했다.


이전의 하루키를 보면 일본문단에서 하루키를 너무 적대시하니, 일본문단! 흥!하며 늘 외국에 체류하면서 소설을 쓰고, 일본 내에서 인터뷰는 거의 하지 않은 것에 비하면 하루키도 인자하고 마음씨 좋은 할아버지 같은 모습이 된 것 같다. 개인적으로는 작가뿐 아니라 배우도 화가도 너무 인자하고 마음씨 좋은 것보다 깐깐하고 욕도 하고 침도 뱉고 하는 게 좋은데 나이가 들면 대체로 뭔가 나는 자연이구나, 같은 모습이 되는 것 같다.


아니면 톰 크루즈처럼 다른 나라에 비해 한국을 유달리 좋아하는 것처럼 보인다던가. 사실 11번이나 내한을 했다는 건 그냥 스케줄만으로만 그렇게 할 수가 없다. 이번 미션 임파서블을 촬영 중에 영국에서 톰 크루즈는 자신의 BMW 차령을 도난 당해 그 안에 있던 개인 소유물과 돈이 없어진 것에 분노했다. 그래서 더 많은 수행원들을 대동해서 이동을 했다. 화가 난 거지.


그런데 이번 한국, 아니 늘 한국에 올 때에는 단출한 수행원을 대동해서 서울의 밤거리를 저렇게 헤헤 다니고 있다. 과격한 팬들이 달려들 법도 해서 경호원이 톰 크루즈에게 빨리 들어가자,라고 하니까 톰이, 이봐 괜찮아, 여긴 괜찮다고. 하는 장면이 이번에 포착되었다.

사인만 두 시간 했다지


톰 크루즈가 그도 그럴 것이 엄청난 제작비가 들어간 미이라가 전 세계적으로 개봉을 했을 때 모든 나라에서 폭망 했는데 한국에서만 370만이 관람하며 흥행을 이루었다. 백만이 넘을 수 없는 영화였는데 한국관객들이 톰 크루즈를 보고 달려든 것이다.


그렇지만 톰 크루즈는 개인 생활이 철저하게 벽으로 가려져 있다. 잘 나가는 배우 한 명 정도는 그래도 좋을 것 같다. 오래전 우리나라 최은희나 신성일처럼 약간 거리를 두고 멋있는 모습을 보이는. 최은희 하니까 디마지오와 결혼한 먼로가 일본으로 신혼여행 중에 혼자 잠시 한국으로 와서 한국전에 참전한 미군을 위해 공연을 하는데 그때 최은희가 동행을 했다. 최은희는 영화 속에서 늘 이국적이었는데 한복을 입은 최은희는 단아하고 먼로는 금발의 미녀였다.

정말 사진만 남는구나


아, 그래서 하루키의 단편 소설집에 실릴 단편 소설이 한 편을 제외하고 뉴요커에 실렸는데 그중에 ‘크림’을 번역해서 책자로 몇 권 만들어봤다. 판매목적으로 만들면 안 된다. 그저 취미로 책자를 만들어 보는 것이다. 디자인도 나름대로 하고 영차영차 해서 몇 번 수정 작업을 거쳐 책자로 만들었다.


몇 권 만들어서 하루키를 좋아하는 사람들에게 나눠줬다. 이렇게 만들어 본 건 후에 제대로 된 한국 출판물이 나왔을 때 비교해서 보면 얼마나 다를까 하는 그런 기대가 있었다.

먼저 번역을 하고


뉴요커지의 크림을 번역해 본 책자


좌: 한국 출판물,  우: 번역본 책자


그때를 생각하면 재미있는 일은 번역을 하면서 무라카미 라디오도 동시에 듣고 있었는데 하루키가 그 당시에 장편 소설 하나 정도는 쓸 수 있겠다고 하는 것이다. 아마 당시의 무라카미 라디오를 듣던 사람들은 –일본인이건 다른 나라 독자들이건, 일큐팔사만큼 길고 긴 이야기를 써 주길 바라겠지만 그렇게 되지는 않을 거라는 걸 알고 있었다.


그때 장편소설 한 편쯤, 하던 게 지금은 일본에서는 새로운 장편소설이 출판되어 있다. 4월에 일본에서 출판이 되었으니 한국에도 곧 나올 것이다. 이미 여러 블로그에서는 장편소설을 읽고 번역해서 올리는 사람도 있다.


나 얼마 전에 일큐팔사 세 권을 다시 읽었는데 이로써 일큐팔사를 여섯 번인가? 읽어버렸다. 하지만 머리가 나빠서 그런지 대략적인 줄거리는 알지만 좀 세세한 것들은 잘 기억이 벌써 안 난다. 해변의 카프카도, 일각수의 꿈도 거의 열 번 정도 읽었는데 기억은 나의 편이 아니다.


그래서 크림을 번역해서 책자로 만들어서 들고 있다가 나중에 ‘일인칭 단수’가 출간되었을 때 날름 구입해서 비교를 해보았는데 너무나 허무하게 비슷해서 맥이 풀렸다. 이게 뭐랄까 하루키의 소설을 많이 읽고 또 읽고 – 나 같은 재미없는 인간은 새로운 무엇을 보고 듣고 느끼기보다 읽었던 소설을 또 읽고 자꾸 읽는다, 계속 읽다 보니 하루키 소설의 분위기를 알게 되었나? 싶은 생각이 들었다.


이 단편 소설집은 사소설 형식으로 주인공이 하루키다. 그래서 소설 '일인칭 단수'에서 아내의 식성에 대해서 말하는 문장은 에세이 '하루키 일상의 여백'에 나오는 문장을 그대로 옮겨다 놓았다고 할 정도로 똑같은 부분도 많다. 이것도 재미있는 부분이라 나중에 한 번 이야기를 하자.


나에게 크림 책자가 한 권이 남아 있어서 가끔 앉아서 읽곤 했는데, 오늘 다시 읽어보려고 찾아보니 또 없어졌다. 거참 기묘한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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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력한 태풍이 오지 않는 이상 매일 비슷한 시간이 되면 강변을 한 시간 반 정도 달린다. 그날도 비소식이 있었지만 약간 내릴 거라는 소식을 보고 강변으로 나갔다.


레인시즌이라 흐렸지만 보통의 흐린 날과 다를 바 없는 날이었다. 구름이 많고, 7시 정도에는 아직 여름 해가 떠 있어야 하는데 해가 없는, 그런 날이었다. 사람들도 강변으로 나와서 산책을 하고 자전거를 타고, 조깅을 했다.


그러고 강변을 달리는데 10분 만에 하늘이 거뭇하게 변했다. 확 어두워졌다. 방안의 스위치를 내려 버린 것처럼 온 세상이 어두워졌다. 이런 어둠은 밤이 되어 자연스럽게 내리는 어둠이 아니라 정전이 된 것처럼 느닷없는 어둠이었다. 평소에 볼 수 없는 어둠, 이런 갑작스러운 어둠은 무서움을 준다.

그러더니 쿠쿵하는 천둥소리가 몇 번 크게 들리더니 천지개벽하는 소리로 바뀌어서 여러 번 천둥소리가 들렸다. 그리고 기다렸다는 듯, 하늘에 거대한 구멍이 뚫려 비가 억수같이 쏟아졌다. 정말 순식간이었다.


천둥소리가 초단위로 들리고 하늘이 번쩍번쩍 거리는 게 정말 다른 세상에 온 것 같았다. 강변으로 나온 어머님들도 너무나 놀라서 내가 들어와 있는, 몸을 푸는 곳으로 들어왔다. 우산을 쓰는 것도 의미가 없고, 비를 피하려 몸을 푸는 곳으로 들어와도 아무런 소용이 없었다.


비가 사선으로 쏟아졌고 비바람이 뺨을 후려갈겼다. 무엇보다 1분에 몇 번이라도 들리는 천둥소리와 번개가 너무 무섭게 했다. 이렇게 거대한 도시 속에 있어도 마치 고립이 된 것 같은데 산속에 있다가 이런 꼴을 당하면 아마 심장이 펌프질을 엄청나게 할 것이다.

무섭다고 생각하는 순간 비가, 정말 비가 세숫대야로 퍼붓는 것처럼 쏟아졌다. 그렇게 퍼붓는 비가 30분 정도 지속되었다. 30분이라고 하지만 그 30분은 정말 공포였다. 비를 피하던 한 아주머니가 너무 무서워서 집으로 가야 한다며 천둥번개가 치고 비가 이렇게 쏟아지는데 가버리고 말았다.


이렇게 쏟아지는 비는 그렇게 오래 내리지 않는다.라고 나는 생각했다. 그래서 나는 꾹 참고 비를 피하며 기다렸다. 두 명의 아주머니와 한 명의 아저씨가 있었는데 전부 거세게 쏟아지는 비 때문에 무서워서 가버리고 말았다. 혼자 있으니 정말 고립된 것처럼 무서웠다. 보통 조깅을 할 때 휴대폰으로 음악을 스피커로 틀어 놓고 주머니에 넣어서 달리는데 빗소리와 천둥소리 때문에 노랫소리가 거의 들리지 않았다.


나를 가장 공포스럽게 하는 건 번개였다. 이렇게 어두운데 온 세상을 환하게 밝히는 번개가 천둥소리를 동반해서 분당 여러 번 빠지직거렸다. 천둥소리는 작년에도 들었고, 매년 들었다. 태풍이 오면 천둥소리는 따라온다. 그러나 이렇게 플래시가 뛰어다닌 것처럼 지속적으로 빠지직하는 번개는 이 도시에 살면서 처음 봤다.

그렇게 30분 정도 거세게 쏟아지던 빗줄기가 가늘어졌다. 다리도 다 젖고 얼굴도 축축하고, 그럼에도 비가 쏟아지는 가운데에서도 팔 굽혀 펴기를 좀 하고 스쾃 같은 것들을 했더니 땀도 엄청났다. 비가 올 때 치던 번개는 세상을 그저 번쩍 하며 밝게만 했는데 비가 그치고 저 먼 하늘에서 빠지직하며 내려오는 번개는 상상 그 이상이었다.

번개가 빠지직 저 멀리서 나타나더니 순식간에 옆의 구름으로 가더니 거기서 터져버렸다. 그러다가 몇 분 후에 또다시 거짓말처럼 등장해서 빠지직 굉음과 나타나더니 천지창조를 보는 것처럼 하늘에 흔히 볼 수 없는 컬러로 나타났다.

이 같은 자줏빛을 띠는 빛은 크툴루 신화를 탄생시킨 러브 크래프트의 소설 속에서나 나오는 빛의 색채가 아닌가. 니콜라스 케이지와 조엘리 리차드슨이 나온 영화 ‘컬러 아웃 오브 스페이스’를 보면 이런 색채의 빛이 등장한다.


러브 크래프트의 소설 ‘우주에서 온 색채’를 바탕으로 만들어진 영화다. 미국의 대학교 문학에 관련된 학과에서는 러브 크래프트의 세계관에 관련된 단편 쓰기도 있다고 한다. 재미있을 것 같다. 아무튼 색채에서 괴기하고 괴랄함을 느끼게 하는 공포를 러브크래프트가 표현했는데, 당시 망가져서 회생불능의 니콜라스 케이지가 선택한 영화치고는 괜찮았다.

특히 영화 속에 등장하는 우주에서 온 색채, 지구에서는 도저히 보지 못하고 볼 수도 없는 기묘한 색채의 빛, 그 자주색을 띤 빛이 바로 저런 번개에서 내뿜은 색채의 빛이었다. 나는 정말 불안해서 무서웠지만 폰을 들고 번개가 치기를 기다렸다가 셔터를 마구마구 눌렀다. 그러다 보니 흔들리고 말았다. 이럴 때 정말 좋은 폰이었다면, 최신 폰이었다면 제대로 잡아냈을 텐데-하는 생각이 든다.

그러나 정작 황홀하면서 무섭고 불안했던 건 저 멀리서 마지막일듯한 번개가 대폭발 하는 번개였다. 바닥으로 떨어져서 빠직하는 순간 자줏빛이 폭발을 했다.  이 정도 번개는 내가 요즘 올리고 있는 번개를 다섯 번이나 맞는 주인공도 그대로 골로 가버릴 것만 같다. 덜덜덜.

번개와 비도 그친 이 시간쯤이 저녁 8시 정도 된 시간이다. 8시는 밤이다. 밤인데 낮처럼 빛으로 불 밝히는 게 정상은 아닌 것 같았다.


아직 어둡지 않아야 할 시간에 느닷없이 어두워지고 어두운 밤이어야 할 시간에 낮처럼 빛이 대폭발을 일으키고. 지금까지 살면서 전혀 보지 못했던 광경을 보게 되니 앞으로 기대보다는 불안이 더 크다. 덜덜덜.


한 시간 정도 자연은 온갖 무서움을 대동해서 인간들에게 맛보기를 보여준 것 같았다. 그리고 언제 그랬냐는 듯 평소처럼 돌아갔다. 그래서 자연은 무섭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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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보라 해리를 한국에서 가장 잘 설명하려면 김아중의 마리아를 부른 원곡 가수라고 하는 게 빠르다. 데보라 해리는 블론디의 보컬이었고 전 세계를 뒤흔들었던 인물이었다. 일단 하트 오브 글라스를 들어 볼까. 들어보면 아 이 노래! 하게 된다. https://youtu.be/WGU_4-5RaxU


블론디의 데보라 해리의 이야기를 제대로 알고 싶으면 전문 음악인들의 영상을 보는 게 좋습니다.


데보라 해리가 노래를 부르면 섹시했다. 그녀의 섹시함은 입술에서 나오는 것 같았고, 그녀의 입술은 세계에서 가장 강렬한 섹시함을 뿜어냈다. 지난번 나탈리 임부를리아의 이야기를 할 때에도 말했지만 데보라 해리의 섹시한 입술은 후에 여러 후배들이 오마주를 한 것 같았다. 현존 가장 섹시하다는 노 다웃의 그웬 스테파니가 그렇고, 커트 코베인의 아내였고 홀의 리더 보컬이었던 코트니 콕스가 그랬다.


데보라 해리가 있던 블론디가 어떤 그룹인가. 7, 80년대 지구를 그야말로 들었다 놨다 했던 그룹이었다. 블론디의 노래는 강렬해서 그런지 샤넬 광고에도 많이 사용이 되었다. 샤넬 역시 강렬한 붉은 진홍색을 표현하는데 블론디의 노래가 딱이었다. 2015년 여름에 샤넬 광고가 생각이 나서 검색을 해봐도 찾지를 못하겠다. 수영장에서 붉은 입술의 모델이 풀사이드에 나오면서 블론디의 아토믹이 나온다.


전 세계인이 사랑하는 샤넬. 2017년까지도 티브이에 샤넬 오리지널 광고가 시즌 별로 나왔다. 광고를 보는 재미가 있었다. 사실 샤넬의 창시자 가브리엘 샤넬은 일 중독자였다. 잠자는 시간을 제외하고 오직 디자인을 구상하고 일만 했다.


그녀는 몹시 미스터리한 인물이었다. 괴팍한 궤변가이자 오만함의 상징이고 집에서 무의도식하는 프랑스 여성들을 경멸했다. 가브리엘 샤넬이 가장 싫어하는 것이 크리스마스였고 빈둥거린다는 이유로 프랑스 귀족 여자들을 몹시 싫어했다.


샤넬은 도도하고 부잣집 외동딸처럼 자랐을 것 같지만 그녀는 어린 시절 수녀원에서 자랐다. 샤넬은 어린 시절의 애정결핍과 아픔, 고독을 이겨내기 위해 디자인에 집착을 했고, 남자에게도 집착이 강했다.


샤넬의 옷 중에 검은색과 흰색의 조화가 많았는데 그것은 샤넬이 수녀원에서 보고 자란 수녀 복의 색채가 그녀의 디자인에 강한 인상을 주었기 때문이다. 수녀들을 자신의 고모들이라 생각했고 스스로는 공주라 여겼다. 그녀의 디자인에는 사랑에 대한 갈구와 애착에 대한 심리가 고스란히 녹아있다. 이런 샤넬에 반하는 디자인이 크리스찬 디올이다.


샤넬은 자기애가 무척 강했다. 그렇기에 결국 자기애가 그 힘을 발휘해서 샤넬이라는 명품을 탄생시켰다. 그러나 제품의 이름은 단순하게 지었다. 팔백만 원이 넘어가는 샤넬 2. 55백은 단순히 55년도 2월에 이름이 붙여진 것이라 한다. 그렇지만 가로의 길이가 또 25. 5 센티미터이기도 하다. 샤넬의 2.55백은 180가지의 공정을 거치며 6명의 전문가가 가내수공업으로 10시간 이상 투자를 하여 하나의 백을 만들어낸다.


샤넬의 이야기를 주저리주저리 한 것은 이런 샤넬의 광고에 기가 막히게 데비 해리 - 데보라 해리, 블론디의 노래가 어울리기 때문이다.  https://youtu.be/O_WLw_0DFQQ Blondie - Atomic


https://youtu.be/HFcO3UD4-fM 드디어 찾은 샤넬 광고와 블론디의 아토믹


블론디의 실험적인 음악이 신나기도 하지만 무엇보다 열광의 중심에는 데비 해리라는 보컬이 있었기 때문이다. 블론디의 노래는 음반을 구입해서 들어보지 않았어도 많은 사람들이 대체로 안다. 왜냐하면 어딘가에서 늘 나왔기 때문이다. 머나먼 이국의 조그만 도시의 어느 술집이나 옷가게, 지금은 사라진 레코드 가게의 스피커에서 블론디의 노래는 언제나 흘러나왔다.


블론디의 노래는 영화 속에도 꽤 나왔는다. 영화 ‘졸업’이 사이먼 앤 가펑클의 음악으로 대표된다면, 블론디의 노래는 영화 ‘아메리칸 지골로’를 장식했다. 제목에서 알 수 있듯이 주인공이 상류층의 여성을 유혹해서 돈을 가져가는 그런 내용의 영화다. 단순한 것 같지만 아주 재미있다. 주인공으로 아주 젊은 시절의 리처드 기어가 나온다.


이 영화의 재미있는 이야기는 당시 영화 의상을 누가 할래? 했을 때 아직 사회 초년병 시절의 한 디자이너가 손을 번쩍 들고 제가 한 번 해보겠습니다! 해서 그가 리처드 기어의 영화 의상을 도맡아서 하게 된다. 그 디자이너가 바로 남자들이 환장하는 조르지오 아르마니였다. 이 영화는 당시 일대 파란을 일으키는데, 이 영화 이전에 섹시한 남자는 웃통을 벗은 근육질의 몸이었는데, 아르마니를 걸친 젊디 젊은 리처드 기어는 너무나 섹시했던 것이다. 근엄의 상징인 양복에서 섹시함의 대표가 되는 수트로의 해체가 이루어졌다. 수트를 입고 있는데 섹시함이 흘러넘쳤다. 집 안에서 빵만 구워대던 미국의 여성들이 극장으로 달려들었다.


전 세계 많은 나라에 리처드 기어와 아르마니의 섹시함을 퍼트렸지만 수위 때문에 한국은 수입이 불가능했다. 영화 속에서 리처드 기어가 옷장을 열면 아르마니가 옷장에 죽 걸려 있다. 아르마니를 보는 재미도 좋다.

영화 속, 아르마니를 걸친 리처드 기어의 움직임, 손짓, 눈빛 그 나하나하가 전부 섹시했다. 영화 속에는 아르마니 이외에 명품이 잔뜩 나온다. 음향기기, 스피커, 가구 그리고 페리에의 병도 지금과 똑같다. 리처드 기어가 미소를 지으면 그 미소가 마치 상영관을 뚫고 밖으로 튀어나올 것만 같았다. 요즘으로 친다면 여친남친 여행 브이로그를 담은 유튜브 영상과 같을 것이다. 이 영화를 장식했던 음악이 블론디, 데보라 해리의 ‘콜 미’였다. https://youtu.be/i4DI71X6PeM Blondie - Call Me (Original Long Version) (American Gigolo) (1980)


데보라 해리는 잘 설명할 수 없지만 그녀의 섹시함 이면에는 귀여운 면모가 잔뜩 존재한다. 귀여우면서 섹시하기가 상당히 어려운데 그 어려운 길을 아무렇지 않게 걸어간다. 얼굴은 퇴폐미가 흐르는데 무대에서 노래를 부를 때 동작이나 액션은 또 뭐야 그냥 인형이잖아! 하게 된다.


데보라 해리의 헤어, 의상, 화장 이 모든 것이 모두의 동경의 대상이었다. 데보라 해리는 마네킨보다 더 인형 같은 모습으로 그녀를 닮은 인형이 미국에서는 많이 팔렸다는 이야기를 학창 시절에 음감에서 디제이가 말한 것 같은데 뇌피셜이다.


데보라 해리는 74년에 5명의 남성과 함께 그룹을 결성하고 76년에 블론디라는 앨범을 발표하면서 본격적으로 등장하게 된다. 비교적 늦은 나이 서른 정도에 노래를 부른 데보라 해리는 블론디를 정상으로 끌어올린다. 그들의 음악을 뉴 웨이브, 컨템퍼러리 펑크 같은 이름으로 부르는데 이런 말들이 무슨 말인지 나는 모른다. 자세한 것을 알고 싶으면 음악 전문 리뷰어의 영상을 보기바람.


데보라 해리는 강렬하게 보이는 섹시한 인상과는 달리 순애보였다. 같은 멤버 중 기타의 크리스 스타인과 사랑에 빠진다. 두 사람은 얼마나 행복했나. 투어를 다니며 사랑을 속삭이고 크리스는 데보라 해리의 깊은 눈동자를 쳐다보며 헤어 나올 수 없었다. 사랑의 속삭임은 음악의 영감이 되었고 같은 무대에서 같인 곳을 바라보며 노래를 부르고 연주를 했다.


가는 무대마다 전 세계 사람들은 열광했고 환호했다. 멋진 일이었다. 그런데 스타인이 난치병에 걸리고 만다. 공연은 물론이고 음악을 더 이상 하는 것에 제동이 걸리고 만다. 한창때였다. 최고를 달리고 있었다. 아시아의 작은 나라의 사람들에게도 블론디라는 그룹을 알릴 수 있었다. 기타리스트만 교체해서 다시 무대에 오르면 된다.


그러나 데보라 해리는 그 길로 부와 명성을 버리고 사랑하는 사람의 병간호에 들어간다. 그 기간이 무려 15년이었다. 그렇게 80년대 최고를 달리던 블론디가 해체하고 만다. 15년 동안 데보라 해리의 극진한 병간호 덕분인지 크리스의 난치병이 완치가 되었다. 하지만 두 사람은 헤어지고 만다. 그러나 두 사람은 친구가 되기로 한다.


시간이 훌쩍 지나 세기말에 다시 무대에 등장한 데보라 해리는 예전의 모습에서 많이 벗어났다. 많이 늙고 힘도 없어 보였다. 그러나 그녀를 기다렸던 팬들은 그런 것쯤 아무 상관이 없었다. 그저 돌아와서 무대에 오른 데보라 해리에게 열광했다. 99년 그렇게 마리아를 부른다.


 https://youtu.be/OF-EIqerj8o Maria 1999 "NYC" Live Video


사람들은 데보라 해리를 외쳤다. 팬들은 그녀를 아무런 불만 없이 언제가 기다리고 있었다. 아티스트와 팬, 이 알 수 없는 관계는 마치 산모와 뱃속의 아기처럼 설명이 안 된다. 데보라 해리는 이후 지금까지 꾸준하게 노래를 부르고 있다. 지금은 70이 넘은 할머니의 모습이지만 여전히 멋있다. 여전사 같은 모습으로 무대에 오르지만 그 속의 부드러운 면모를 잔뜩 가진 채 노래를 부른다.


미국에서는 데보라 해리의 전기 영화를 만드는 것으로 알고 있는데 이 소식도 벌써 몇 해 전에 들은 것인데 어떻게 될지 모르겠다. 만약 영화가 된다면 데비 해리의 역할을 누가 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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