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아하는 초난강, 쿠사나기 츠요시가 주인공으로 나온 데서 보게 된 영화다. 초난강이 주인공이지만 주인공은 따로 있는 영화였다. 아무 생각 없이 보는데 나도 모르게 눈물이 주르륵 흘러서 놀란 영화였다.


어린 시절 글짓기를 잘해서 선생님의 칭찬을 먹고 아이들의 박수를 받으며 지내는 히사는 불혹에 만년 대필 작가로 헤어진 아내와 딸을 가끔 만나며 의미 없이 지낸다. 대필 제의가 들어왔는데 편집자에게 소설을 쓰고 싶다고 하지만 돈이 되지 않는다며 대필해 주면 곧바로 5만 부가 팔려 나가 돈을 번다고 빨리 작업하자고 한다.


가끔 딸을 만나 데이트를 하고 헤어지면 홀로 집으로 들어가 소설을 쓰려고 하지만 시작도 못한다. 화면에는 커서만 깜빡일 뿐이다. 그러다 고등어 통조림(사바켄 – 일본 원제는 사바캔이다)을 보며 어린 시절을 떠올린다.


영화는 마치 몇십 년 만에 먼지가 가득한 일기장을 펼치는 향수를 느끼게 한다. 그 속에는 나와 비밀을 나누었던 친구와 일상이 담겨있다. 특별한 것도 없고 그저 껌 하나로 낄낄 거리며 지냈던 시절. 키득거리며 그걸 읽는데 눈물이 갑자기 흐르는 것 같은 영화다.


초난강이 하는, 어른이 된 히사의 대사 “내게는 고등어 통조림을 보면 떠오르는 아이가 있다”로 시작해서 1986년 그 여름으로 간다. 너무나 새파랗게 멍이 든 하늘과, 실루엣이 아름다운 여름의 푸르른 바다, 부메랑 섬, 탄탄 바위 그리고 그 모든 풍경을 공유했던 타케.


타케는 친구도 없이 늘 혼자서 책상에 물고기 그림이나 그리는 아이였다. 옷도 단 두 벌로 여름을 그렇게 보낸다. 타케는 아이들의 놀림감이었다. 그러다 한 녀석이 타케에게 너네 집에 피아노 놓으면 바닥이 무너지는 거 아니냐며 놀린다. 타케는 그렇지 않다면서 아이들을 데리고 집으로 간다. 아이들은 너무 먼 곳에 있는 타케의 집으로 가면서 지친다.


타케의 집에 도착했을 때, 집은 다 쓰러져가는 모습처럼 보여서 아이들은 일렬로 서서 웃으며 타케를 놀린다. 그때 타케의 여동생이 집으로 오지만 오빠와 함께 같이 놀림을 받는다. 웃으며 놀리는 그 아이들 속에 히사도 있었다.


히사는 가기 싫은 엄마의 두부 심부름 때문에 슈퍼에 갔다가 백 엔을 줍는다. 그 큰돈을 주워서 경찰서에 돌려줘야 하나. 철없는 아빠에게 물으니 아빠는 경찰서에 안 갖다 줘도 된다고 한다. 그렇게 히사는 저금통에 백 엔을 넣는다.


여름방학이 시작되었다. 여름방학의 행복과 불행을 좌지우지하는 건 성적표다. 펼치는 순간 망했다고 생각하는 히사. 집에 와서 악마보다 더 무서운 엄마에게 혼난다. 그러나 철부지 아빠는 국어는 잘했다고 하다가 둘 다 엄마에게 혼난다.


어느 날 친하지 않았던 타케가 히사의 집으로 놀러 왔다. 히사는 이상하게 생각하지만 타케는 부메랑 섬에 돌고래가 나타났다고 한다. 히사는 좋아하는 돌고래를 상상한다. 타케는 돌고래를 보면 탈 수 있을지도 모른다. 그러면 너는 그 경험으로 글짓기를 해서 선생님에게 또 칭찬을 들을 수 있다며 같이 가자고 꼬신다. 하지만 히사는 내키지 않는다. 그때 타케가 그 주운 돈 백 엔 경찰서에 돌려주지 않으면 도둑으로 신고할지도 모른다고 한다. 히사는 말을 더듬으며 겨 겨 경찰서에 가 가 갖다 줘줬어.


타케의 으름장에 히사는 여행에 동참하게 된다. 히사에게는 자전거가 있었다. 둘이 같이 타고 새벽에 섬으로 가는 거야. 새벽 5시에 부모님 몰래 일어나서 나가려는데 철부지 아빠가 나와서 둘을 보더니 뒷자리 안장을 제대로 만들어준다. 그대로 뒤에 타고 갔으면 엉덩이 다 으스러진다며. 아빠는 어디로 가는지 모르지만 엄마 깨기 전에 얼른 다녀오라며 용돈까지 준다.


그렇게 둘은 섬으로 둘만의 여행을 간다. 가다가 자전거도 망가지고 지치고 힘들다. 그러다가 동네 양아치들을 만나서 히사가 당하려는데 똥 누고 돌아온 타케는 양아치들에게 달려든다. 양아치 형들은 타케를 때리고 발로 밟는다. 타케는 맞으면서 히사에게 빨리 도망가라고 한다. 그때 동네의 제일 일인자 형이 나타나서 그 양아치들을 때린다.


그렇게 타케와 히사는 그곳을 벗어난다. 고장 난 자전거를 끌고. 부메랑 섬으로 간다. 지쳐 잠시 바닥에 누워서 히사는 타케에게 고맙다고 한다. 그리고 묻는다. 왜 나에게 같이 가자고 했냐고 묻는다. 나에게 자전거가 있어서 그랬냐고 묻는다. 그러자 타케가 너는 웃지 않았으니까. 뭐? 너는 우리 집보고 웃지 않았잖아.라고 한다. 이상하지만 별것도 아닌데 여기서부터 눈물이 흐른다. 밝고 맑은 영화인데 기이했다.


그렇게 시작된 둘만의 1986년 여름방학의 이야기는 보는 내내 향수를 일으켰다. 바다에 떠 밀려온 한국의 오성사이다. 목숨을 구해준 누나. 귤을 서리하러 가면 늘 나타나서 잡으려는 고약한 과수원 할배, 고등어로 초밥을 만들어 주었던 아버지 그리고 모든 것을 다 알고 있고 네 명의 동생들을 돌보며 씩씩하게 지내는, 나와 너무 다르지만 언제나 나의 편일 것 같은 타케.


이 모든 것들이 마치 나의 어린 시절을 보냈던 그 동네의 친구, 어른들, 동네 바보 형, 친구 집 앞에서 친구야 놀자!라고 큰 소리로 부르면 집 안에서 그래!라고 친구가 말하고, 시끄럽다고 소리치던 삼촌 같은 향수를 불러일으킨다.


양아치들에게 구해준 동네 형이 자신의 모자를 타케에게 씌워줄 때에는 의도인지 꼭 원피스의 상디와 루피를 보는 것 같았다. 이젠 돌아갈 수 없는 가난했던 어린 시절, 비밀을 공유하며 땀을 흘리며 같이 시간을 보냈던 친구와 함께 순간이 있었다. 그러다 타케에게 어떤 사건이 일어나면서 히사와 헤어지게 된다. 친구와 영영 헤어지게 된 히사는 처음으로 아빠에게 안겨 엉엉 운다. 헤어질 때 귤 농장의 악마 할배가 타케에게 귤을 줄 때, 기차에서 귤을 까먹을 때에도 뭉클했다.


이 영화는 너무 아무것도 아닌 노스탤지어를 섬세하게 다루어서 너무 특별하게 만들어서 감동이 되는 그런 영화였다. 좋은 영화를 보면 지금 이 따라다니는 잔상을 좀 오래 주욱 끌고 가고 싶다.



https://youtu.be/pkUeT12nAO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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쥘 베른의 소설은 딱 내 수준에 맞다. 지금의 수준이 어릴 때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았는데 그때 읽었던 쥘 베른의 소설이나 지금 읽는 쥘 베른의 소설이나 별반 다름없이 흥미롭고 재미있다.


쥘 베른은 바다 밑이나 지구의 중간으로 막 들어간다. 그러다 보면 지구 속 또 다른 세상, 또 다른 존재들이 나타난다. 재미있다. 지구 속을 과학적, 지구과학적으로는 지표와 멘틀과 핵 같은 거, 거친 땅과 땅과 땅 또 땅으로 이루어져 있겠지만 쥘 베른의 소설 속으로 들어가는 순간 지구의 중앙으로 가면 또 다른 세계가 펼쳐진다.


미국의 할리우드 공포영화가 8, 90년대 스티븐 킹의 소설을 원작으로 둔 것처럼 바닷속 SF영화는 쥘 베른의 해저 2만 리 소설을 원작으로 하거나 소설 속에 등장하는 수많은 캐릭터와 잠수정을 갖다 썼다. 쥘 베른은 1800년대 초기의 사람인데 정말 상상력 그 하나로 지구의 속과 겉, 하늘, 바다를 전부 표현했다.


2008년에 나온 '잃어버린 세계를 찾아서'도 쥘 베른의 지구 속 여행을 각색해서 만들었다고 생각된다. 줄거리가 딱 내 수준에 맞는 이야기다. 형의 아들과 함께 오래된 책자를 들고 아이슬란드로 가서 한나를 만나 책의 비밀을 풀기 위해 모험의 세계, 즉 지구 중심으로 가게 되고 수많은 위기를 피해 형이 있었던 공간을 발견하면서 모험이 시작된다.  

당시 현실과 너무 동떨어져 있다는 혹평을 받기도 했는데, 지구 속을 탐험하는 SF 판타지 영화가 현실과 비슷하면 더 이상한 것 아닌가. 게다가 쥘 베른의 소설을 토대로 하고 있어서 상상력을 발휘해서 보면 아주 재미있게 볼 수 있다.  https://youtu.be/iJkspWwwZLM


이 영화의 주인공은 미이라 1, 2로 세계적인 배우로 떠버린 브렌든 프레이저다. 190이 넘는 키에 시원시원한 이목구비로 할리우드 영화계에 등장해서 인기가 좋았다. 무엇보다 태도, 사람들을 대하는 태도가 좋았다. 그래서 영화 판에 등장한 지 1년 만에 코믹 액션 영화 원시 틴에이저의 주연을 하게 된다.


그때 나이 서른 살인데 사랑하는 여자를 만나 결혼을 한다. 그녀는 조지 오브 정글이라는 영화에 같이 출연한 배우로 한 살 연상이었다. 그리고 브랜든 프레이저를 세계적인 배우로 오르게 만든 미이라를 찍게 된다. 대성공이었다. 엄청난 인기였다.


영화 미이라는 판타지 영화치고는 어느 것 하나 빠지지 않는 재미를 주었다. 007의 그녀 레이첼 와이즈의 미모도 찬란했고 모험과 공포, 그리고 미지의 존재가 전부 잘 어울렸다.


그렇게 승승장구만 할 것 같았던 브렌든에게는 벼락 맞는 소리를 듣게 된다. 첫 아이를 얻었는데 아들이 자폐증이라는 것이다. 병원에서 자폐 판정을 받는다. 그런데 아내마저 엄청난 위자료를 요구하며 이혼을 통보한다. 그 돈이 매달 1억씩 줘야 했다.


브랜든은 미아라를 촬영하면서 몸이 성한 곳이 없었다. 그간 영화를 촬영하며 액션을 하다가 다치고 골절되는 일들이 다반사였다. 갈비뼈가 부러지기도 했다. 그런데도 감독이 시키면 시키는 대로 다했다. 한 영화에서는 8번이나 내동댕이쳐져야 컷 소리를 들을 수 있었다. 그 결과 몸과 마음에 제동이 걸렸다. 우울증은 더욱 깊어졌고 전처는 자신을 사기꾼이라 몰아세웠다.


각종부상으로 수술과 재활로 7년을, 2000년대 초 권력과 부를 가진 제작자에게 성추행을 당했고, 매달 1억씩 10년을 양육비로 주면서 견뎌온 브랜든은 더 이상 의욕이라고는 1도 남아있지 않았다.


받아주는 영화사는 더 이상 없고 집 안에서 나오지 않는 그의 몸은 미이라를 찍을 때의 멋진 사람이 더 이상 아니었다. 몸은 점점 비대해졌고 머리카락은 거의 다 빠져나갔다. 자포자기로 아무것도 할 수 없었던 브랜든에게 손을 내민 사람이 블랙스완의 감독이었다. 아로노프스키 감독은 맞는 배우가 없다고 해서 시나리오를 완성하고 10년이 넘게 방치해 두고 있었는데 그 주인공에게 어울리는 배우가 바로 브랜든이었다.


이 시나리오는 말이야 삶의 모든 것을 잃어버리고 의욕이라는 곤 전혀 없는 한 남자의 이야기야. 한 번 해볼래?  

그렇게 해서 브랜든은 죽음을 앞둔 인간을, 인간에 대한 인간의 구원과 사랑을 다룬 영화 더 웨일을 찍게 된다. 더 웨일에서 270킬로그램이나 나가는 브랜든이 소리를 지르고 딸과 삶을 대하는 연기에 빠져 들 수밖에 없었던 건 그의 삶을 그대로 연기를 했기 때문이었다. 아마 그 장면을 보며 많은 사람들이 눈물을 흘렸을 것이다. 그리고 영화 시상식에서 그의 수상소감을 들으며 또 한 번 눈물을 흘렸을 것이다.


중학생 때인가, 아무튼 그때 즈음 쥘 베른의 소설을 옆구리에 끼고 읽으며 우와우와 했다. 이게 막 눈앞에 미지의 세계, 지구 속 또 다른 세계가 화악 펼쳐졌다. 유치하게 보일지도 모르지만 잃어버린 세계는 재미있다. 브랜든 프레이저의 모습을 보는 것도 꽤 좋다.


브랜든이 수상식에서 말했다. 캄캄한 어둠 속에 있다고 느끼신다면 이 말을 기억하세요. 여러분도 저처럼 다시 도전하세요. 빛을 향해 가세요. 분명 좋은 일이 생길 겁니다.

https://youtu.be/wRz-UrBoI2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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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은 하루키가 강연을 마친 뒤 청중의 질문에 답을 하고 있는 모습이다. 일본어 교수이자 수지 뉴하우스 소장인 이브 짐머만과 스페인어 부교수 하기모토 코이지가 하루키와 함께 무대에 올랐다.

질문은 생략하고 하루키의 답변만 내 마음대로 의역으로 옮겨본다.

하루키:

거리와 그 불확실한 벽은 이달 초 일본에서 출판되었고 내년 중에 미국에서도 출간될 것으로 예상됩니다. 주인공은 두 세계 사이를 왔다 갔다 합니다. 하나의 세계는 높은 벽으로 둘러싸여 있고, 출구는 없습니다.

벽 안에서 사람들은 평화로운 삶을 보냅니다. 아무도 욕망 같은 건 품고 있지 않아요. 그래서 고통도 겪지 않습니다. 누구를 향해 비난도 하지 않죠.

또 다른 세상은 당신과 내가 사는 세상으로 고통과 욕망과 모순을 겪는 곳입니다. 주인공은 자신을 위해 하나의 세계를 선택해야 합니다. 그렇게 정해져 있으니까요.

이런 상황에서 거리와 그 불확실한 벽의 주인공은 높은 벽으로 둘러싸인 세계를 매력적으로 느낄까요? 이를 알기 위해서는 소설을 읽어야 합니다. 휘발성으로 소비되는 미디어 시대에 소설이 얼마나 많은 효과를 낼 수 있는지 저는 모릅니다.

분명 소설과 같은 예술의 형태는 순간적으로 생성되거나 소비될 수 없다는 단점을 가지고 있습니다. 시간을 들여야 독자들에게 전해지는 것이니까요.

저는 이 소설의 가장 강력한 미덕은 쓰고 읽는데 시간이 걸린다는 것이라 믿습니다. 이 세상에는 시간이 필요할 때만 창조될 수 있고 시간이 필요할 때만 감사할 수 있는 그런 것들이 있습니다. 그런 이유로 시간을 들여 쓰고 읽는 소설은 절대적으로 필수적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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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릴 때 여름방학을 생각해 보면 아침에 눈을 뜨면 시원했고 상쾌하게 일어났다. 당연하지만 에어컨은 없었다. 그리고 선풍기를 켜 놓고 잠이 들면 입이 돌아간다는 소문이 있어서 시간을 한 시간 정도로 맞춰 놓고 잠이 들었다. 그러나 더위 때문에 잠에서 깨거나 아침에 일어났을 때 잠을 제대로 못 자서 불쾌하게 일어난 기억이 없다.


홑이불까지 덮고 잠들었다가 아침이 되면 마당에서 들리는 새소리에 눈을 뜨고 일어났다. 무엇보다 습도가 지금과 같지 않아서 더위도 맑은 더움이 가득했다고 생각이 든다. 그늘에서는 시원했고 햇빛이 비치는 곳에서는 더웠다. 밖에서 신나게 놀면 코끝이 타서 벗겨지기도 했다.


요즘도 아침에 눈을 뜨면 아파트 단지 내 매미소리와 새소리가 들리는데 상쾌하지는 않다. 왜 그럴까. 기후변화 때문일까. 어른이 되면서 몸이 점점 노화가 되어서 그럴까. 잠이 들어도 깊게 잠들지 못하는 게 문제라면 문제다. 잠은 길이의 문제가 아니라 깊이의 문제다. 고로 짧은 시간을 잠들어도 깊게 잠들었다가 일어나면 상쾌한데 전혀 잠에서 깨어나도 상쾌하지가 않다.


이건 아무래도 불안하기 때문이라는 생각이 든다. 지금 현재 극장에 쏟아지는 재미있는 영화도 재미가 없게 느껴지는 건 현실세계에서 일어나는 일을 영화가 전혀 못 따라오기 때문이다. 현실에서 일어나는 일들이 전부 불안을 불러일으킨다. 왜 이렇게 무서운 일들이 많이 일어나는 것일까. 분명 예전에도 이 정도로 무서운 일들이 일어났었겠지만 휴대전화가 없어서 그런지 사람들은 잘 모르고 살아갔다. 그러나 지금은 물에 잠겨 죽거나, 교실에서 극단적 선택을 하고 그 선택을 하기까지의 엄청난 고뇌까지 알게 된다. 길거리를 걷다가 칼부림에 목숨을 잃는 일을 실시간으로 접한다.


비가 좀 세게 내리면 불안하고 누군가 휘청거리며 다가와도 불안하다. 어제는 뉴스에 초등학교 교사에게 한 학부모가 교실에서 담임이 너무 밝게 이야기하지 말라는 말도 들었다는 뉴스가 나왔다. 수해 때문에 공장에 물이 가득 차서 기계를 전부 못 쓰게 된 사람이 물을 빼야 하는데 인력이 부족해서 관청에 연락을 하니 바다에 띄우는 기름 제거 막을 보내줬는데 이 비용을 정부에서 보상해 주는 게 아니라 나중에는 이 비용을 개인이 내라고 관청의 관계자가 말했다. 이게 도대체 무슨 일일까. 특별재난지역으로 선포를 하고 인력이 투입이 되어도 다리나 도로를 복구할 뿐이지 개인터전이 망가진 것은 아무런 도움이 안 된다.


한 개인이 여름에 에너지를 다 쏟아내며 실컷 놀던 아이시절을 지나 어른이 되면 매일 관리하고 신경 써야 하는 부분이 생긴다. 베란다 찬장에 빗물이 새니 내일 실리콘을 쳐야 하고, 또 올 태풍에 대비해서 이번에는 새시도 갈아야 한다. 여름이 시작할 때 에어컨 점검을 하지 않으면 그걸 해야 하고, 빌려줬던 돈을 받을 시기가 다가오면 빌려간 사람에게 이야기를 해야 한다. 병원에서 검진 날이 문자로 날아오면 그날은 시간을 비워둬야 하고, 아이가 있다면 여름에 먹는 걸 더욱더 신경 써야 한다. 어쩌다가 아이가 아프기라도 하면 병원에 데리고 가야 하는데 소아과가 많이 없는 요즘은 아이가 아프면 더럭 겁부터 난다. 하나를 넘기면 두 개가 저 앞에서 기다리고 있으니 어른이 되어서 아이처럼 에너지를 다 쏟아내고 푹 잠들 수 없는 여름밤을 보낼 수밖에 없다.


나는 거의 매일 조깅을 해서 인지 일단 누우면 그대로 잠이 든다. 특히 요즘에 조깅을 하면 땀이 땀이 아니라 수돗물처럼 흘러내린다. 조깅을 하고 목이 마를 때 보통 사람들은 시원한 물을 마시지만 나는 대체로 미지근한 물을 마신다. 그렇게 마시는 것에 습관이 들리면 찬물을 벌컥벌컥 마시는 것보다 훨씬 갈증들 걷어준다. 그리고 저녁을 먹을 때 시원한 맥주에 얼음을 동동 띄워서 한 잔 마시면 좋다.


오늘도 저녁에 조깅을 하고 돌아오는 풍경은 고즈넉했다. 아주 평온하고 편안하게 보였다. 나는 조깅을 해서 땀이 뻘뻘 났지만 가만히 서서 고즈넉한 풍경을 잠시 감상했다. 낚시꾼의 모습은 고기보다 세월을 낚는 모습처럼 보였다. 일희일비하지 말자,라고 하는 것처럼 보인다. 평일에 하루종일 낚시를 하려면 아무래도 쉬는 날이거나 일을 하지 않거나 둘 중에 하나일 것이다. 나름대로 개개인의 사연이 있을 것이다. 2, 3년 전의 이맘때 저녁 시간에는 아주 붉은 노을이 하늘을 덮었는데 올해 여름은 습도가 높고 습기가 가득한 우기 속의 나날들이 많았다. 그래서 조깅을 하면 땀이 어마무시하게 흐른다.


그렇지만 고즈넉하다. 이렇게 서서 천천히 흐르는 강물을 바라보고 있으면 불안에서 조금 멀어질 수 있다. 길냥이 녀석도 강을 바라보다가 내가 사진을 찍으려고 하니까 고개를 돌려 뭐야? 니? 같은 표정으로 바라보았다.


혹시 저 길고양이도 힘들어서 강에 뛰어들려고 그러나? 같은 생각이 잠시 들었다. 자살에 관한 책자를 많이 출간한 인문학자 마르탱 모네스티에의 ‘자살백과’의 402페이지에는 고양이의 자살에 과한 이야기가 있다.


프랑스 바닷가의 어부 집에서 공생을 하던 암고양이의 자살에 대한 이야기다. 다리를 저는 암고양이는 자신의 처지를 비관하고 주인을 따라 바다에 고기를 잡으러 같이 배에 올랐는데 고양이가 물에 뛰어들었다. 물에 빠져 죽는 걸 주인이 건져서 수건으로 물을 닦아내고 볕이 드는 옆에서 털을 말리게 두었더니 다시 빠져 죽었다는 이야기다.


칼부림으로 20대 청년을 죽은 그 사람은 모두가 행복한데 자신만 불행한 것 같아서 범행을 저질렀다고 했다. 행복하게 매일을 보내는 사람이 몇이나 있을까. 대체로 행복하지 않게 보내다가 한 번씩 행복을 맛본다, 맛보는 그 행복은 아주 짧고 순식간에 지나간다. 그 행복했던 기억으로 언제인지 모를 다가올 행복을 위해 연소시키며 살아간다.


매일 행복하다가 한 번 불행한 게 나은 삶일까, 늘 불행하다가 한 번 행복한 게 괜찮은 삶일까. 매일매일 돈이 넘쳐난다고 해도 매일매일 행복할 수 없다. 우리보다 행복을 많이 느끼는 아이들 역시 스트레스를 받고 그 순간은 짜증을 낸다.


일행이 옆에서 인스타그램 속 타인의 멋진 사진들을 보며 부러워한다. 인스타그램의 멋진 사진만 보지 말고 이 고즈넉한 풍경을 한 번씩 보며 행복보다는 덜 불행한 것에 집중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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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시우행 2023-07-26 17:38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즐기는 인생, 보기에도 흐뭇하네요.

교관 2023-07-27 11:57   좋아요 0 | URL
감사합니다 ㅎㅎ
 

미드 '팸 앤 토미'의 예고편에 미트로프의 '아 두 잇 애니씽 포 러브'가 나온다. 미트로프는 거구의 록스타로 미식축구 출신이다. 오늘은 미트로프 이야기를 하자는 건 아니고, 미트로프의 노래는 정말 너무나 좋다. 90년대를 장식했던 수많은 록밴드 중 한 명이다. 영화에는 직접 나오지 않았지만 인기 있었던 두 영화에서 미트로프가 언급된다. 두 영화 전부 영국 영화다.


예고편 https://youtu.be/sJgH4y3raWc


하나는 '노팅힐'이고, 하나는 '러브 액츄얼리'다. 노팅힐에서는 애나 스콧과 함께 침대에서 같이 보낸 윌리엄 태커의 대화에서 미트로프가 등장한다. 미국에서 가장 이상한 밴드라면서 미트로프를 언급한다. 그리고 러브 액추얼리에서는 리암 니슨의 다니엘이 아들인 토마스 생스터가 분한 샘에게 미국의 미트로프도 이상하지만 음악을 하잖아 같은 대사를 한다.


그런 것을 보면 미트로프는 음악의 본고장인 영국에서도 무척이나 갈망하는 밴드가 아닐까 싶다. 미트로프의 노래가 팸 앤 토미의 예고편에 주욱 흐른다. 이 노래의 뮤직비디오도 한 편의 영화 같다. 미트로프가 직접 등장하며 스토리 형식이다. 미녀와 야수를 오마주해서 사랑에 관한 노래를 록스타일로 부른다.


90년대는 그야말로 엠티비 또는 뮤직비디오의 세상이었다. 독보적이라면 에어로 스미스의 '겟 어 그립'의 노래들이 전부 뮤직비디오로 이야기가 이어지게 만들어서 정말 앨범의 수록곡을 뮤직 비디로 다 보면 영화를 보는 것 같았다. 특히 뮤직비디오 주인공으로 당시 가장 핫 걸이었던 알라시아 실버스톤과 반지의 제왕에서 요정 아르웬 역으로 나온 리브 타일러가 주연이었다.


 https://youtu.be/NMNgbISmF4I 에어로 스미스 뮤비 속 알라시아 실버스톤과 리브 타일러


리브 타일러는 이때가 대중에게 처음으로 드러나는 계기가 되었다. 에어로 스미스의 보컬 스티브 타일러의 딸로, 록스타가 아빠인 줄도 모르고 따로 떨어져서 살다가 티브이에 나오는 저 입 큰 록스타가 나와 많이 닮은 거 같은데? 그래서 찾아가서 뭐 이런저런 일을 거쳐 그래 내 딸아! 그렇게 해서 에어로 스미스의 뮤직비디오에 알라시아 실버스톤과 함께 출연하면서 지금의 배우가 되었다.


80년대 말 지구에서 제일 인기가 많고 지구인이 아니라 외계인이라 할 정도의 밴드가 머틀리 크루였다. 머틀리 크루의 드러머 토미 리와 파멜라 앤더슨의 섹스 스캔들이 나서 세계를 들썩이게 한 일이 있었다. 그 이야기를 시리즈로 만든 이야기가 '팸 앤 토미'다.

파멜라와 토미


엄청난 수위의 이야기가 꿈과 희망의 디즈니 플러스에서 서비스가 되었다. 이 이야기는 토미가 헤더와 헤어지고 파멜라를 만난 지 100시간 만에 반해서 결혼을 하고 요트 위에서 신혼여행을 즐기면서 두 사람만의 엄청난 섹스 비디오를 찍어서 금고에 넣어두는데 그게 도둑을 맞는데 온라인으로 배급되면서 전 세계적으로 난리가 난다.

영화와 실제


토미가 파멜라를 만나기 전 7년 간 결혼을 했던 헤더 로클리어는 톰 크루저와도 염문이 있었고 토미 리와 헤어지고 본조비의 기타리스트 리치 샘보라의 연인이 되기도 했다. 헤더 로클리어에게 반한 토미가 헤더와 만나게 되면서 개판으로 생활하던 악동에서 좀 벗어나게 된다. 헤더와 결혼을 하면서 토미는 셀럽의 반열에 오르게 되면서 언론의 주목을 받기 때문이다. 그러나 결혼한 지 7년 만에 이혼을 한다.

후에 파멜라를 만나면서 불꽃이 타오른다. 이 시리즈는 여기서부터 시작을 한다. 토미가 파멜라와 만나는 장면부터 보여준다. 주인공으로 릴리 제임스와 세바스탄 스탠이 파멜라와 토미를 연기하는데 처음에 릴리 제임스? 파멜라 같은 독보적인 섹시스타를 어떻게?라고 생각했는데 와아 릴리 제임스의 얼굴이 전혀 없다. 손짓, 말투, 몸짓, 몸매, 가슴 모든 게 그냥 파멜라 앤더슨이다.

이 시리즈는 절대 성인이 된 아들딸이라도 같이 봐서는 안 되며, 애인끼리도 같이 보면 안 될 것이고, 부부끼리도 같이 안 보는 게 좋을 거고 혼자 보거나 친구와 보는 게 낫다. 엄청난 수위다. 수위 조절의 실패가 이 시리즈다. 이런 고강도 수위의 시리즈가 아무튼 꿈과 희망의 디즈니에서 룰루랄라 송출했다.


토미 리는 지구에서 가장 악동인 머틀리 크루의 드러머이고, 파멜라 앤더슨은 베이워치로 섹시 심벌이었다. 머틀리 크루의 이야기는 영화 ‘더 더트’를 보면 된다. 얼마나 악동이며 정신줄을 놓고 록스타가 되었는지. 나는 학창 시절에 머틀리 크루를 퀸이나 엘튼 존보다 많이 들었기 때문에 영화 보헤미안 랩소디나 앨튼 존의 영화 로캣 맨보다 더 더트가 제일 재미있었다.

팸 앤 토미 2화에서 토미가 여자들에게 개미가 일렬로 가는데 약을 뿌려 코로 빨아들이는 걸 이야기하는 장면이 나오는데, 이는 머틀리 크루보다 더 사고뭉치 오지 오스본을 말한다. 이 일화 역시 너무 유명해서 영화 더 더트에 그대로 나온다. 내일이 없는 것처럼 사는 록스타들의 삶을 적나라하게 보여줬다. 태어난 김에 록이나 하지 뭐, 이런 분위기다.


세계의 정상을 달리면서 앨범을 다 합쳐 5천만 장이나 팔이치운 머틀리 크루는 90년대 중반으로 접어들면서 서서히 하강하는 분위기를 느낀다. 90년대를 휘어잡는 너바나의 커트 코베인이 등장하고, 알라니스 모리셋 같은 아티스트들이 대거 등장해서 록 사장의 판도를 다 바꿔 버린다. 커트 코베인의 너바나는 등장하자마자 계속 1등을 먹었던 마이클 잭슨을 1위 자리에서 내려오게 만든다. 토미는 조금씩 그런 분위기를 느낀다.


제목이 '팸 앤 토미'로 파멜라가 먼저 나오는 건 파멜라에게 좀 더 집중되어 있는 이야기다. 파멜라는 섹시 심벌이지만 뮤지컬을 좋아하고 순수한 면모가 많다. 어릴 때부터 그렇게 살아왔기에 사람들에게, 남자들에게 잘 넘어가는 경향이 짙었다. 릴리 제임스가 홀딱 벗고 나오는 장면이 많지만 그 굉장한 신체는 그래픽의 도움을 많이 받았다. 그러나 실제 파멜라는 그 당시 그런 몸이어야만 했다.


섹스 영상이 온라인으로 배급된 것 때문에 법정에서 당시 파멜라의 몸은 노출된 채로 수많은 잡지와 영상에 공개했다는 이유로 공공의 재산이라는 어이없는 판결을 받는다. 법의 나라 미국이라지만 90년대 미국 법정도 엉망진창이었다.


당시 야후 같은 첫 검색엔진이 시동 걸 때였는데 팸과 토미의 영상이 인터넷에 무료로 뜬다. 토미보다 파멜라가 더 타격을 받는다. 당연하지만 여자라는 이유였다. 법정에서는 이 같은 무료 유출도 공공성이라는 부분으로 인정을 한다. 어디를 가나 사람들이 파멜라에게 섹스 비디오에 대해서 질문을 하고 쳐다본다. 토미 역시 스트레스를 받지만 술집에서 술에 취해 자랑처럼 늘어놓는 모습이 파멜라와는 달랐다.


파멜라는 여자나 여배우가 아닌 한 인간으로 사람들에게 비치기를 바랐지만 모두가 그녀를 하나의 상품 내지는 포르노 배우 정도로 취급했다. 임신까지 하고 영화 배역은 엘리자베스 헐리, 킴 베이싱어에게 전부 내주고 3류 영화에나 나가야 했고 토미와 변호사는 자신의 마음과 다른 행보를 보인다.


파멜라와 토미의 섹스 영상이 남자들에게는 욕구를 푸는 비디오 정도였다. 그런데 성인배우들, 여자 성인배우들에게 그 영상은 정말 신혼 첫날의 사랑하는 신혼부부의 달콤하고 사랑하는 눈빛의 파멜라의 모습이었던 것이다. 흔한 섹스비디오와는 다르게 두 사람의 사랑이 절정에 이르렀을 때 행복해하는 두 사람의 얼굴을 비디오가 비추고 있었던 것이다.


수위가 높은 장면은 시리즈 중에 딱 한 번 나온다. 이 이야기는 파멜라에 맞춰져 있다. 안타까운 모습의 파멜라, 행복해하는 파멜라, 아이 같은 파멜라, 잠 못 드는 밤의 시애틀에 빠져 있는 파멜라 등 파멜라의 다양한 모습을 보여준다. 그 연기를 릴리 제임스가 기가 막히게 해내고 있다.


이 시리즈는 미국 샐럽들의 가십을 보고 싶어 하는 사람, 록스타 내지는 머틀리 크루를 좋아하는 사람, 파멜라의 이면을 보고 싶은 사람(이 이야기는 다큐로 제작된 올해 나온 ‘파멜라, 러브 스토리’를 보면 인간 파멜라를 알 수 있다), 90년대의 음악을 좋아하는 사람(시리즈 내내 많은 음악이 나온다)에게는 강추. 우리가 수업시간에 몰래 이어폰으로 들었던 수많은 음악이 죄다 나온다. 좋아 죽는다.

이 사진 너무 좋다, 영화 속에는 이 두 사람의 실제 모습이 전혀 없다, 연기가 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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