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루키의 글 쓰는 스타일을 대부분 다 아실 텐데요. 2013년 동아일보를 보면 임경선 칼럼니스트가 하루키에 대해 쓴 칼럼이 재미있습니다. 저는 사실 임경선 작가의 도서를 한 권도 읽어 본 적이 없습니다. 여하튼 임경선 작가는 고 2였던 87년, 일본에서 하루키의 [그 유명하고 전설의] 빨강 초록 커버의 노르웨이 숲을 만나고 빠져들었다고 하는데요.


칼럼에서 하루키에게 글쓰기란 고상한 문학적 취향이나 자유분방한 풍류라기보다 차라리 노동과 수행에 가까웠다. 탈권위주의적인 태도는 그의 문장에서도 확인된다.라고 했습니다. 이제 이 정도는 우리 모두가 다 알고 있는 사실입니다.


하루키는 직업으로서의 소설가에서도 자신의 이런 글 쓰는 생활방식에 대해서 이야기를 했습니다.


레이먼드 카버의 에세이에서 카버는 ‘시간이 있었으면 좀 더 잘 썼을 텐데 – 나는 소설 쓰는 친구가 그런 말을 하는 것을 듣고 깜짝 놀랐다. 지금도 그 일을 떠올리면 아연해진다. (중략) 만일 그가 써낸 이야기가 힘이 닿는 한 최선을 다한 것이 아니었다면 대체 무엇 때문에 소설 따위를 쓰는가. 결국 우리가 무덤까지 가져갈 것은 최선을 다했다는 만족감, 힘껏 일했다는 노동의 증거, 그것뿐이다. 나는 그 친구를 향해 말하고 싶었다. 제발 부탁이다, 지금 당장 다른 일을 찾아봐라,라고. 똑같이 먹고살기 위해 돈을 번다고 해도 세상에는 좀 더 간단하고 아마 좀 더 정직한 일거리가 있을 것이다. 그게 아니라면, 너의 능력과 재능을 최대한 쏟아부어 글을 써라. 그리고 변명이나 자기 정당화는 안 돼. 불평하지 마. 핑계 대지 말라고' 레이먼드 카버 - 글쓰기에 대하여


또, 하루키는 자신과 비슷한 방식의 작가도 예를 들었지요.


이를테면 엔서니 트롤럽이라는 작가가 있습니다. 19세기 영국 작가로, 수많은 장편소설을 발표해 당시에 큰 인기를 끌었습니다. 그는 런던 우체국 직원으로 근무하면서 어디까지나 취미로서 소설을 썼지만 이윽고 작가로 성공을 거둬 일대를 풍미하는 유행 작가가 됐습니다. 그래도 그는 우체국 일을 끝까지 그만두지 않았습니다.


날마다 출근하기 전에 새벽같이 일어나 책상 앞에서 자신이 정한 양의 원고를 부지런히 썼습니다. 그런 다음에 우체국에 갔습니다. 유능한 공무원이었는지 관리직으로 상당히 높은 자리까지 출세했습니다. 런던 거리 곳곳에 빨간 우체통이 설치된 것은 그의 업적이라고 알려져 있습니다(그때까지는 우체통이라는 게 없었다는군요). 우체국 일을 좋아해서 집필 활동이 아무리 바빠져도 그 일을 그만두고 전업 작가가 될 생각 따위는 하지 않았다고 합니다. 아마 꽤 특이한 분이었던 모양이에요.


그는 1882년에 67세로 세상을 떠났지만, 유고로 남겨진 자서진이 사후에 간행되면서 그야말로 로망이라고는 찾아볼 수 없는 그의 규칙적인 일상생활이 처음 세상에 공표되었습니다. 그때까지 사람들은 트롤럽이 어떤 인물인지 알지 못했었는데 실상이 드러나자 평론가도 독자도 너무 놀라고 낙담 실망해서 그때를 경계로 영국에서는 작가 트롤럽의 인기와 평가가 완전히 땅에 떨어졌다고 합니다.


나 같은 사람은 그런 얘기를 들으면 ‘와아, 대단하다. 진짜로 훌륭한 사람이네’라고 순수하게 감탄하고 트롤럽 씨를 존경해 마지않았을 텐데 그 당시 사람들은 전혀 그렇지 않았습니다. “뭐야, 우리가 지금까지 이런 따분한 작가의 소설을 읽었어?” 하고 진심으로 화를 낸 모양입니다. 어쩌면 19세기의 영국 보통 사람들은 작가에 대해 - 혹은 자기의 삶의 방식에 대해 - 반세속적인 이상상을 원했었는지도 모릅니다.


나도 이런 ‘범속한 생활’을 하다가 혹시 트롤럽 씨와 똑같은 일을 당하는 거 아니야? 그런 생각을 하면 저절로 움찔움찔합니다. 하긴 트롤럽 씨는 20세기에 들어서면서 재평가를 받았으니까 그건 잘됐다고 하면 잘된 일이지만.


그러고 보니 프란츠 카프카도 프라하의 보험국에서 공무원으로 재직하며 틈틈이 꼬박꼬박 소설을 썼습니다. 그도 꽤 유능하고 성실한 공무원이었는지 직장 동료들이 상당히 높은 평가 해줬습니다. 카프카가 결근하면 보험국 일이 돌아가지 않을 정도였다고 합니다. 트롤럽 씨와 마찬가지로 본업도 빈틈없이 잘하고 부업인 소설도 진지하게 써낸 사람입니다(단지 본업이 있었다는 게 그의 많은 소설이 미완성으로 끝난 데 대한 이유가 되는 듯한 느낌은 들지만). 하지만 카프카의 경우는 트롤럽 씨와는 다르게 그런 반듯한 생활 태도가 오히려 훌륭한 장점으로 평가되는 면이 있습니다. 어디서 그런 차이가 생겼는지, 좀 신기하지요. 사람들의 훼예포폄이란 참 알 수 없는 것입니다.


라고 하루키는 말했죠.



https://www.donga.com/news/Culture/article/all/20130723/5660791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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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깅을 하고 돌아오는 길에 약국에서 박카스 두 박스를 사들고 왔다. 박카스는 두 박스짜리는 패키지로 판다. 들고 가기 편하게 만들어놨다. 하지만 무겁다는 걸 명심해야 한다. 한 사백미터 정도를 들고 왔다. 그랬더니 어떤 놈이 왜 무겁게 멀리서 들고 오냐면서 요즘은 편의점에도 박카스며 약도 다 판다고 했다.


이 바보가 하나는 알고 둘은 모르는 군. 편의점이나 슈퍼에서 파는 박카스는 박카스  에프다. 약국에서 파는 것만 박카스 디다. 그 바보가 그게 그거지라고 하는데 그게 왜 그게 그거냐. 박카스 디랑 박카스 에프랑 엄연히 다르다. 둘을 찾아보면 아마 의약외품 뭐 이런 문구가 다르다.


가장 다른 점은 편의점의 박카스 에프에는 타우린이 1도 없다. 보통 제약회사에 돈을 벌어다 주는 건 약이 아니다. 약 개발에 어마무시한 돈이 들어가기 때문에 약 팔아서는 어지간한 제약회사를 든든하게 배부르게 할 수 없다. 그럼 뭐냐? 바로 제약회사에서 만들어내는 음료가 효자들이다.


박카스를 비롯해서 오로나민 씨, 비타 500 같은 음료가 효자들이다. 박카스가 얼마나 오래됐는지 알면 놀랄걸. 내가 어릴 때에도 어른들은 박카스 한 박스를 선물로 주거니 받거니 했다. 박카스에는 보통 각설탕 10개 정도의 설탕이 들어가 있다. 그래서 마시면 당이 충전되면서 약간 기분이 괜찮다.


아주 옛날, 60년대에는 설탕이 귀해서 여름에 설탕물을 타주면 그게 최고였다. 성석제의 소설 투명인간을 읽어보면 그런 부분이 아주 잘 나온다. 선생님이 가정방문을 했을 때 설탕물을 대접했다. 소설 속에는 월남전에 참전한 한국군들이 고엽제가 살충이나 멸균에 좋다고 머리에 부어서 털고 얼굴을 씻고 하는 장면이 생생하게 나온다. 굉장히 좋은 소설이었다.


여하튼, 그런데 약국의 박카스 디에는 타우린이 듬뿍(까지는 아니겠지만) 들어있지만 편의점 빅카스 에프에는 1도 없다. 그냥 설탕물을 돈 주고 사 마신다고 생각하면 된다. 그런 게 몇 가지가 있다. 타이레놀도 약국과 편의점은 좀 다른데, 성분이 다른 건 아니고 편의점 타이레놀이 두 알 인가 더 적게 들어있고 더 비싸다는 사실이다.


박카스를 그냥 마시면 개인적으로는 너무 달기 때문에 텀블러 같은 큰 컵에 얼음과 물을 넣고 사이다를 조금 부어 마시면 끝내준다. 빅카스는 어디에 섞여도 맛있다. 소주에, 맥주에 섞여도 맛있다. 빅카스의 미쿡 버전이 레드불 같은 음료일 텐데, 레드불은 아직 한 번도 안 먹어봤지만 레드불도 카페인이 많아서 어디에 섞으면 맛있을 것이다.


박카스는 택배 아저씨들에게 한 병씩 드리기 괜찮다. 뚜껑을 직접 따니 의심 살 필요도 없고 제일 좋다. 박카스 하면 광고가 유명하다. 박카스 광고로 스타의 반열에 오른 배우들도 많다. 2022년 박카스 광고는 제9회 박카스 29초 영화제 청소년부 대상을 차지한 구본비 감독의 ‘[엄마예요?]와 [누나예요!] 사이, 박카스가 필요한 순간’이다. 기억이 날 것이다.

마지막 장면을 잘 보면 민철이가 누나에게 내미는 박카스는 박카스 에프다. 병도 박카스 디보다 좀 더 길쭉하고 에프라고 쓰여있다. 편의점에서 구입했기 때문이다. 박카스 광고 재미있는데 후속 편은 아직 안 나오는 것 같다. 요즘 광고 중에 아주 좋은 광고는 한화 광고다. 아무튼 콜라, 사이다, 환타 보다 박카스가 더 낫다는 생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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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풍오장원 2023-08-03 14:0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박카스 d 애호가입니다. 고시공부할때 많이 먹었고 지금도 50병씩 쟁여두고 출근하며 마시지요 ㅎㅎ

교관 2023-08-04 11:58   좋아요 0 | URL
오 박카스 마니아셨군요 ㅎㅎ

잉크냄새 2023-08-04 09:4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음,,, 앞으로 박카스는 약국에서

교관 2023-08-04 11:58   좋아요 0 | URL
편의점 박카스는 새벽에 사 먹을 수 있는 장점이 있죠 ㅎㅎ
 


벨벳 언더그라운드의 단순한 리듬은 그대의 영혼에 좋다. 단순하고 단순하게 흐르는 리듬이 때로는 격렬하게 마음을 뒤 흔들기도 한다. 단순한 반복, 반복이 인간을 천상에 도달하게 한다. 천상에 당도했던 자들이 음악을 연주하며 지상으로 하강하기도 한다. 그런 음악이 세상에 존재한다.


시인 박정대는 자신의 시에서 벨벳 언더그라운드의 음악을 찬양했다. 산울림처럼 단순한 음이 지속적으로 반복된다. 뛰어난 기교가 있는 것도 아니며 현란한 솜씨를 뽐내는 것도 아니다. 그럼에도 벨벳 언더그라운드의 음악을 듣고 있으면 깊은 늪으로 빠져 들어가는 착각에 빠진다. 그 늪은 순수한 영혼 수십만 개가 뭉쳐 있는 늪이다.


담배연기를 빨아들이고 나면 세포는 격렬한 몸부림을 친다. 폐는 쥐어짜는 고통을 호소하고 혈관은 머리가 띵할 정도로 수축한다. 하지만 곧 후하며 연기를 내뱉고 나면 찰나로 세계가 바뀐다. 세상이 연기로 가득 차며 그 중심이 내가 있고 나는 연기 속을 걷는 주인공이 된다. 그날이 바로 퍼펙트 데이다.


바나나로 만든 마이크를 들고 니코가 노래를 한다. 니코의 음색에서는 니코킨 냄새가 난다. 나는 니코보다 루 리드의 목소리가 좋다. 그의 목소리는 순박한 물질이다. 그 물질은 지구 밖에서 온 물질 같다. 그 물질이 나를 이끈다.


사인 박정대는 이어서 루 리드에 대해서 시로 이야기를 했다. 벨벳 언더그라운드의 노래를 듣고 있으면 팩토리의 전경이 한눈에 보이는 착각이 든다. 앤디 워 홀의 팝 아트도 숨을 쉬고 에디 세즈윅의 방탕하고 외로운 자유가 연주 중간중군 나온다. 어울리지 않을 것 같은 그들을 루 리드의 목소리가 차분하게 보듬어 준다. 어쩌면 기적과도 같은 일이 아닐까.


시인 박정대의 시 제목처럼 그들은 진정 타락 천사이었거나 전직 천사였다. 순수한 물질로 똘똘 뭉친 그들의 늪과 같은 음악은 누군가를 닮았다. 눈으로 본모습은 변하기도 하고 잊히기도 하는데 손은 생생하게 그 누군가를 기억하고 있다. 도자기 같은 가녀린 목과 언저리 부분을 나의 손은 기억하고 있다. 그대의 목은 초현실 세계, 나는 그렇게 그대의 세계에 스며든다. 바로 퍼펙트 데이다.


루 리드의 퍼펙트 데이 https://youtu.be/9wxI4KK9ZY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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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풍오장원 2023-08-02 19:3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VU 음악은 들을때마다 영감을 줍니다..

교관 2023-08-03 12:56   좋아요 0 | URL
정말 그렇습니다 너무 좋아요 ㅎㅎ
 

나는 라면을 먹으며 질질 짜거나, 울컥하거나, 눈물을 흘려본 적은 없다. 라면을 먹다가 눈물이 나오는 경우는 매운 고추를 먹었거나, 매운 김치를 먹었거나, 라면이 맵거나 해서 눈물이 찔끔 나온 것이 아니라면 라면에 울컥한 사연 따위는 없다.


사람들은 맛있는 라면은 누가 끓여주는 라면이라는데 나는 그것도 별로다. 내가 끓여 먹는 게 나는 가장 맛있다. 학창 시절에 친구집에 놀러 가면 누나가 늘 라면을 끓여 줬는데 파를 엄청 많이 넣어서 끓여 줬던 기억이 난다. 그래서 라면을 건져 먹으면 라면과 파가 일대 일 비율로 씹혔던 기억이 있다.


나에게 라면이란 학창 시절에는 불편한 어른들과 고기를 구워 먹는 것보다 친구들과 라면을 끓여 먹는 게 가장 맛있었고, 지금의 라면이란 라면은 전부 너무 맛있어서 자주 먹으면 안 된다는 것이다. 라면만 하루 세끼 먹고 살아갈 수 있을 정도로 라면은 종류를 막론하고 전부 맛있어졌다. 그러나 매일 라면을 먹으면 안 된다. 사실 매일 라면만 먹어도 괜찮다. 집에서 해 먹는 갖은양념을 부어서 만든 찌개보다 라면이 훨씬 낫다. 그러나 라면은 국물을 마지막으로 끝을 내야 하기 때문에 면만 호로록 먹기에는 아직 유혹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영화 속에서도 라면은 캐릭터들의 허기진 배를 채워주는 고마운 음식이다. 검색을 해보면 영화 속 라면 먹방만 모아놓은 영상이 있어서 보고 있으면 정말 맛있게 보인다. 그러나 영화 속에서 라면이 슬픈 음식으로 나오는 경우도 많다.

봄날은 간다에 나오는 라면은 너무나 슬픈 음식이다. 상우와 은수의 첫 날밤의 팡파르는 라면과 함께 시작되었다. 소주와 몹시 어울리는 라면은 금방 식어 버리지만 또 금방 끓어오른다. 그 뜨거운 사랑을 상우는 은수와 한다. 화분의 꽃이 더디게 피듯 상우의 시간은 차근차근 흘러가지만 은수의 시간은 라면처럼 너무나 금방 끓어오른다. 후루룩 입으로 빨려 올라오는 라면은 어느 순간 바닥을 보이는 냄비의 허무를 나타낸다. “라면이나 끓여” 은수의 말에 이제 고작 라면이나 끓이는 놈이 된 상우.


누군가와 마주하고 먹으면 더없이 행복한 라면이지만 혼자 먹으면 더 맛있기에 라면은 슬픈 음식이다. 사랑하는 이가 다른 곳을 바라보고 있을 때 끓이는 라면은 슬프다. 결국 상우는 은수에게 “내가 라면으로 보이냐고!” 소리를 지른다. 라면은 그렇게 슬프다. 라면이 끓어오르면 비로소 외로움과 마주하게 된다. 스프를 넣고 팔팔 끓일수록 자극은 극에 달한다. 라면은 그대로 내버려 둘 수 없어서 젓가락으로 자꾸 휘젓게 된다.

https://youtu.be/vf6TWmxJZxY


몸부림을 바라는 라면은 외로워서 슬픈 음식이다. 라면의 많아진 종류만큼 슬픔도 전부 제각각이다. 오늘도 우리는 라면을 마주하며 슬픔을 젓가락질한다. 영화 속에서 라면이 그렇게도 슬프게 나온다. 표면적으로 슬프게 라면이 보이는 건 선생 김봉두에서다. 선생 김봉두에서 불쌍한 녀석 소석은 라면이 그렇게 좋다.

김봉두가 김치 없는 라면이 맛없어서 먹지 않을 때 소석은 그 맛없다는 라면을 맛있게 허겁지겁 먹는다. 이 장면은 잘 보면 라면을 먹는 것처럼 보이지 실제로 먹지는 않는다. 황비홍 1편을 너무나 재미있게 봤지만 지금 보면 이연걸의 대역의 티가 너무나 심하게 나는 것과 비슷할지도 모른다. 소석은 비가 쏟아지는 날에 김봉두에게 바칠 삼을 캐다가 들어와서 부뚜막에서 쭈그리고 앉아 라면을 끓여 먹는다. 라면은 소석의 삶을 파고든 곰팡이와 같다. 한 번 꽃을 피우면 걷잡을 수 없다. 라면은 슬픈 음식이다. https://youtu.be/yKDQz_v1VDQ


천하의 나쁜 노무 새끼 필제는 화를 내도 웃기고, 짜증을 내면 더 웃기고, 웃기면 대책 없이 웃겼다. 세상 무서울 것 없고 껄렁해 보이는 그 역시 그럴수록 더 슬프다. 그런 필제가 좋아하는 건 왕뚜껑 라면. 필제가 기가 찬 동네에 왔지만 기똥찬 동네라는 것을 알게 되고 거기서 어떻게 해야 인간이 인간답게 살아가는지 알게 된다.


그 중심에 슬픈 라면이 있었다. 라면은 필제의 슬픔을 같이 했다. 하지만 필제에게 라면이 없었다면 해내지 못했을지도 모른다. 절망의 끝에서 날개를 달고 날아가면 희망이 보인다는 것을 이 영화가 보여줬는데, 실제의 임창정은 도대체 무슨 짓을 한 것일까. https://youtu.be/1FuzcwV3AN4


한 청년이 라면을 끓여 밥상 위에 올려놓다 밥상 다리가 힘이 없어 기울면서 라면이 전부 방바닥에 쏟아졌다.

그저 멍하게 바라봐야만 했다.

그저 멍하게.


5시에는 일어나야 한다.

아침밥은 고사하고 씻고 옷을 입고 마을버스를 타고 대로변까지 나가서 다시 416 버스를 타야 한다. 늘 그 버스를 그 시각에 타지만 언제나 사람들로 터져 나간다. 양보라든가 친정을 찾다가는 버스를 타지 못한다. 버스를 놓치면 그다음을 상상하기도 두렵다. 버스 문에 매달리는 한이 있어도 어떻게든 올라타야 지하철을 탈 수 있다. 비라도 오는 날이면 버스 속은 사람들이 뿜어내는 숨 냄새와 비 비린내로 먹은 것도 없는데 구토가 인다.


하지만 이건 시작에 불과하다. 지옥철에 오르는 순간 전혀 다른 세계가 되어 버린다. 보이는 건 사람들의 등과 길고 짧은 머리카락이 달린 머리통뿐이다. 고개를 꺾어 천장을 바라보며 오늘도 무사히 회사에 도착하기를 빈다. 이렇게 난리를 피워야 회사에 제대로 출근할 수 있다. 소변이 마려워도 참아야 하고 앞사람의 머리에서 냄새가 나도 참아야 한다.


이렇게 모든 걸 참아가며 서울에서 생활한 지도 벌써 7년째다.

하지만 변한 건 아무것도 없다.

나에게 편지를 쓰며, 힘없이 서 있던 나를 안아주며 나의 길을 두려움 없이 상경했지만 현실은 나의 발끝을 벼랑 끝으로 몰고 가기만 한다.

눈을 감으면 보이는 것이 미래인 현재에 오직 희망 하나만 믿고 달려왔다.

하지만 희망이라는 것이 세상에서 배신을 잘한다는 것을 알아버린 순간 이 세계에서 홀로 되어 버렸다.

언제부턴가 세상은 점점 빨리 변해가기만 하는데 나만 같은 곳에 머물러 있다.

레이먼드 카버의 ‘별것 아닌 것 같지만, 도움이 되는’에서 아들을 잃어버린 하워드와 앤이 된 느낌이다.


마음의 심한 공백이 생기면 마왕의 노래를 들었다.

고흐의 불꽃같은 삶도,

니체의 상처 입은 분노도 스스로의 현실에 더 이상 도움 될 것이 없다고 마왕이 말했다.

전망 좋은 직장과 가족 안에서의 안정과

은행구좌의 잔고 액수가 모든 가치 척도인가

돈, 큰 집, 빠른 차, 여자, 명성, 사회적 지휘

그런 것들에 과연 우리의 행복이 있을까, 라며 늘 나의 등을 토닥여 주었는데.

마왕도 가 버리고 남은 것이 없다.


이젠 지친다.

라면이 쏟아졌다.

밥상 위에서 흐르는 라면 국물이 바닥으로 퍼지는 꼴이

마치 머리가 터져 뇌하수체가 흐르는 모습처럼 보인다.


오늘의 선곡은 신해철의 나에게 쓰는 편지

https://youtu.be/HRlwPwqC-Y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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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풍오장원 2023-08-01 16:0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라면 참 좋아하는데, 파김치 사서 끓여먹어야겠습니다.

교관 2023-08-02 11:21   좋아요 0 | URL
파김치 조합 정말 맛있죠 ㅎㅎ
 

장마가 지나가고 난 후의 도시는 그야말로 뜨거운 습도로 가득한 찜통이다. 대기에 가스층이 이렇게 두텁고 짙게 껴 있는 날들을 본 적은 이번이 처음인 것 같다. 조깅을 하려고 강변으로 나가면 습 하면서 무겁고 질척이는 습도가 입 안으로 훅 들어오는 느낌이다.


오늘은 절대 외출을 삼가라는 오후 2시에 조깅을 했다. 너무나 바싹한 햇빛에 모든 것이 말라비틀어질 것 같았다. 움직이면 땀이 났고, 달리니까 땀이 줄줄줄 흘렀다. 그럼에도 산스장에는 멋지게 기구를 드는 어르신들이 있었다. 운동의 맛있음을 아는 사람들이다. 고통의 참맛을 안다. 아무튼 해가 가장 이글거릴 때 두 시간 정도 조깅 겸 걷고 몸을 풀었다. 달리는데 사람들이 저런 미친놈을 봤나 같은 표정으로 나를 훑었다.

그래서 별로냐 한다면 그렇지 않다. 조깅하기에 너무나 좋기 때문이다. 달리자마자 땀이 나기 시작하는데 평소에 흘릴 수 없는 땀이 줄줄 흐르는 경험이 나쁘지 않아서 괜찮다. 폭염이 오는 여름에 늘 하는 말이지만 이렇게 더운 날에 조깅을 하고 나면 저녁에 부는 덥덥한 바람이 시원하게 느껴진다. 아니 시원하다.


에어컨 바람 앞에 있다가 밖으로 나오면 너무나 덥덥하고 답답한 자연의 바람이겠지만 땀을 듬뿍 흘리고 맞이하는 자연바람은 시원하다. 거기에 바닷가에 살고 있으니 바닷가에 부는 바람이 그렇게 덥지 않다. 올해도 어김없이 몇십 년만의 더위라는 말이 나왔다. 맞는 말이기는 하나 매년 여름에 그런 말은 늘 나왔다.


하지만 올해는 체감상 다른 해들과 좀 다르다. 어쩌면 내가 한 살 한 살 나이가 들어가는 탓일지도 모르지만 기록적인 폭우에 들끓는 도시가 예전과는 사뭇 다른 느낌이다. UN 안토니오 구테흐스 사무총장은 올해 7월 27일 자로 지구 온난화는 끝났다고 공식 발표했다. 그리고 앞으로는 끓는 지구의 시대가 되었다고 했다. 우리나라뿐 아니라 전 세계 각 나라에서 폭우와 폭염으로 사람들이 시달리고 있고 사망하는 수도 늘어가고 있다. 사무총장은 공식적으로 이를 보며 두렵다고 표현했고 이는 단지 시작일 뿐이라고 했다.


매년 여름이 더웠는데, 매일 일상을 기록하다 보니 작년, 재작년 여름에 적어 놓은 글을 보면 그때에도 이 비슷한 이야기를 써놨다. 특히 2021년도 이맘때에도 너무나 더운 폭염에 코로나가 한창이나 늘 마스크를 써야 하기 때문에 더위 조심하라는 재난문자가 자주 왔었다.


그때에도 엄청난 더위가 몰려와서 조심하라고 했지만 나는 매일 조깅을 하기 때문에 강변으로 나가 달렸다. 신나게 달렸다. 한 20분 정도 달렸을 때 내 앞에서 달리던 남성이 느닷없이 쓰러졌다.


남성을 약간 그늘로 옮기고 119를 부르고 주위에 몰려든 사람들에게 괜찮으니 갈길을 가라고 하고(그래봤자 구경한다고) 119가 도착하는 도로와 강변이 좀 떨어져 있어서 도로에 올라가서 119 구조대원들을 데리고 오고. 아무튼 그때 코로나 기간이라 119 구조대원들은 그 무더위에 방역복까지 껴 입어서 아우 정말. 그날 흘렸던 땀이 정말 한 바가지였다. 그때의 일을 자세하게 기록해 놨다.


요즘은 달리고 있으면 달이 따라온다. 그래서 달을 바라보는 날이 많아졌다. 밋밋한 하늘에 달이 떠 있으면 여러 가지 이야기가 생각난다. 달은 루나틱과 인세인 두 가지의 이야기가 있다.


하루키의 일큐팔사에도 나오지만 서양의 달은 사람에게 어떤 영향을 미치는데, 인세인은 천성적으로 머리에 문제가 있는 것으로 전문적인 치료를 받는 게 바람직하고 루나틱은 달에 의해 즉 루나에 의해 일시적으로 정신을 빼앗기는 것이라 오래전 서양에서 루나틱은 달 때문에 일시적으로 미치는 것으로 그 사람의 문제를 달에게 넘기기도 했다.


이번 영국 드라마 블랙미러 시즌6에서 4화 ‘메이지 데이’에 그런 이야기를 잘 그려냈다. 주인공으로 데드풀 2의 재지 비츠가 나온다. 기생거머리 파파라치로 스타들의 일거수일투족을 담아내는 더러운 짓에 넌덜머리를 내고 그만두다가 슈퍼스타인 메이지 데이가 촬영장에 나타나지 않고 그녀를 집요하게 추적하다가 약물에 찌들어 있는 모습을 파파라치들과 카메라에 담는다. 쇠사슬에 묶여 있어서 파파라치들은 특종이라며 사진을 담으면서 점점 메이지 데이 곁으로 간다. 그때 달이 뜨며 메이지 데이가 변한다. 아무튼 그런 이야기를 짧은 영상 속에 잘 담아냈다.

조깅을 하면서 하늘을 올려다보면 달이 떠 있다. 달은 어제의 그 달이다. 그러나 하늘의 구름은 어제의 그 구름이 아니다. 심지어 1분 전의 구름에서도 벗어났다.


달이 떠 있으니 하늘이 밋밋하지 않다. 그래서 달이 뜬 요즘의 하늘은 여러 이야기를 가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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