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코파이가 맛있을까 오예스가 맛있을까. 뭐 둘 다 맛있다고 할지 모르겠지만 어떻든 요즘은 잘 먹지 않다가 오랜만에 먹었다. 오예스는 단 맛이 초코파이보다 덜 하네. 초코파이는 오리온 초코파이지만 롯데 초코파이도 있었다. 롯데 초코파이는 오리온 초코파이보다 맛이 좀 떨어져서 일부러 사 먹는 사람이 없다. 그래서 주로 군대 같은 곳에 납품한다. 롯데 초코파이의 그 알 수 없는 특유의 맛을 좋아하는 사람도 있다.


초코파이 하면 떠오르는 군대 고참 새끼가 하나 있다. 신병 때 밥 먹고 오면 몰래 불러 내서 초코파이 한 박스를 다 먹게 했던 아주 고약한 놈이었다. 밥을 먹었는데 초코파이가 들어갈 리가 없다. 군기가 바짝 들어서 대여섯 개는 먹게 되지만 바로 오바이트다. 그렇게 괴로워하는 모습을 보며 흡족해했던 고참새끼였다.


집에서 첫 면회를 왔을 때 음식을 잔뜩 해왔는데 초코파이도 몇 상자나 보였다. 나는 바로 들고 가라고 했다. 초코파이는 여기도 흘러넘치고 차마 한 박스씩 억지로 먹인다는 말을 하지 못해서 부모님은 의아해하며 다시 들고 갔다. 그 고참 새끼는 외박 나가는 날의 새벽 근무를 하고 있는데 초코파이 한 박스를 들고 와서 다 먹게 했다. 아주 악질이었다.


후에 말년 휴가 때 그 고참을 찾아서 인천으로 갔다. 뭐 만나서 해코지를 하려는 건 아니고 그냥 잘 사나 보려고 했는데 연락을 받지 않았다. 그 고참 새끼만큼은 아니지만 악명 높았던 고참들을 찾아갔는데 다른 고참들은 만나서 술을 한잔씩 하며 재미있게 보냈다. 연락이 되면 초코파이나 몇 박스 주려고 했는데.


그런데 그렇게 악질적인 놈들은 왜 그럴까. 사람들이 좋아할 리 없을 텐데 사람들 틈에 섞여 어떻게 잘 지낼 수 있을까. 요즘도 주위 사람들 중에 나쁜 인간들이 참 많다. 고참 새끼만큼은 아니지만 악독한 사람들 천지다. 사람들 등쳐먹고, 쳐다보면 덤벼들고, 안 좋은 재료로 비싸게 팔려하고, 이간질은 물론이고 차는 명찬데 주인은 쓰레기 같은 인간들이 참 많다. 그 고참 새끼는 잘 살아가고 있으려나.


주위를 둘러보면 기분이 태도가 되고, 악독하고 악질적인 인간은 대체로 잘 살아가는 것 같다. 사람들에게 피해를 줄지언정 자신은 피해를 상대적으로 덜 받기 때문에 아마 그 고참 새끼도 잘 살아가고 있을 것이다. 과학적 근거는 없지만 이런 사람들은 자신도 모르게 나르시시즘이 강할지도 모른다. 자기애가 왜곡되어서 자신의 기분이 태도가 되는 것이 막힌다면 불행하다고 느낄지도 모른다. 이런 사람들의 특징은 자신보다 더 힘이 있고 권력이 강하고 부를 가진 사람 앞에서는 개처럼 엎드린다.


다른 사람들이 초코파이를 잘 먹지 않는 이유와 다르게 나는 초코파이를 보면 오바이트할 때 역류하는 그 초코의 맛과 초코파이 사이에 낀 마시멜로의 맛이 떠올라서 잘 먹지 않았다. 으 였다. 추억의 절반은 맛이라고 초코파이는 그렇게 악독한 간식이었다.


그러나 신병 시절이 지나고 한창 개고생 할 막내 시절에는 늘 배가 고파서 그런지 새벽 근무가 끝나고 화장실에서 몰래 먹는 초코파이는 또 맛있었다. 가장 애매한 근무가 02시부터 04시까지 근무다. 취침시작 하고 나서 바로 잠이라도 들면 괜찮지만 인간이라는 게 그렇게 바로 잠들 수가 없다. 아무튼 새벽 4시는 군대도, 종합병원도, 주택단지도 다 고요한 시간이다. 모두가 잠들어 있는 시간. 그 시간에 들어와 초코파이 하나를 먹었다. 독한 고참에게 들키지만 않는다면 괜찮다. 누구나 배가 고프니까.


군대에서 생일자가 있으면 케이크를 따로 준비하지 않고 오예스나 초코파이를 쌓아서 그 위에 요플레를 뿌리고 초를 꼽아서 생일을 축하했다. 이번 마스크걸에도 김모미의 딸 김미모가 김경자 할머니의 생축을 위해 초코파이로 케이크를 만들어서 축하를 했다. 마스크걸에서 염혜란의 연기는 정말 대단했다. 염혜란은 문동은의 조력자에서나, 지금 경이로운 소문에서도 뛰어났지만 이번 마스크걸에서의 김경자는 마스크걸의 모든 이야기를 관통하는 사람으로 이야기를 끌어가는 구조이자 중심축이었다. 의지 하나만 있는 사람을 무섭게도 잘 그렸다. 의지만 있는 사람을 좀비에 비교하기도 한다. 오직 그 하나를 위해 잠도 자지 않고 다가가는 존재. 바로 김경자였다.


군에서 초코파이가 떨어질 일은 없었는데 한 번 초코파이 대신 오예스가 들어온 적이 있었다. 작은 변화에도 큰 물결을 일으키는 곳이 군대이니 만큼 아이들이 오예스의 맛에 빠졌었다. 먹는 것으로 고통을 주는 일만큼 악독한 것이 또 있을까. 굶기는 것도, 너무 많이 먹여 다 토하게 하는 것도 사람이 할 짓이 못 된다. 비록 안 좋은 추억이 있지만 오예스와 초코파이는 만능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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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루키 음악 – 캘리포니아 걸스


이번 소개할 하루키 음악은 하루키가 무라카미 라디오 27회에서 소설 속 음악을 선곡해서 들려주었다. 소설 속 음악 특집에 수많은 사람들의 신청곡이 쏟아졌다. 하루키도 신이 나서 음악을 골라골라 선곡했을 것이다. 가능한 한 여러분 들에게 보답하고 싶습니다,라며 자신도 기대를 한다고 멘트를 시작했다.


그 첫 번째 음악으로 [바람의 노래를 들어라]에 소개된 곡 비치 보이스의 [캘리포니아 걸스]다. 이 곡을 설명하면서 신청곡을 받은 사연을 들려주었는데 “대학생이었던 저는 이 책을 읽은 직후 센다가야의 피터 캣에 아르바이트 면접을 보러 갔었습니다. 하루키 씨가 카운터에 앉아 있다가 담당자가 올 때까지 여기서 기다려 달라고 했습니다. 채용은 되었습니다만, 하루키 씨는 다른 분에게 양도했기 때문에, 잠시 아르바이트를 하고 그만두어 버렸습니다. 신청곡은 캘리포니아 걸즈”


하루키: 벌써 40년 전의 이야기네요. 그렇군요 채용이 되셨군요. 당시 우리 가게에서 아르바이트하던 사람 중에 꽤 멋진 여성이 많았습니다.


먼저 저의 첫 번째 소설 [바람의 노래를 들어라]부터 가겠습니다. 이 책을 낸 것은 1979년의 일입니다. 어쨌든 태어나서 처음 쓴 소설인데, 그게 군조 신인상을 받아서 바로 책이 되고 꽤 팔려서 그냥 저도 잘 모르는 사이에 훌쩍 소설가가 되어 버렸습니다. 지금 생각하면 무서운 이야기입니다. 당시 저는 센다가야에서 재즈 가게를 운영하고 있었는데, 장기 회관 근처였는데 가끔 점심에 장기 회관에 가서 ‘왕장 도시락’이라는 것을 먹었습니다. 밥이 왕장의 말 모양입니다. 그런 이상한 것들을 잘 기억하고 있습니다. 최근에는 후지이 소타(일본 장기 챔피언) 군 덕분에 tv뉴스 같은데 자주 장기 화관이 등장합니다만, 꽤 그립네요.


California Girls https://youtu.be/cdNRiZ0kwR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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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루키는 무라카미 라디오 27회에서 세계의 끝과 하드보일드 원더랜드에 나오는 음악을 두 곡이나 선곡했다. 두 명의 청취차의 사연을 소개했다. 가나가와 현에 사는 40대 여성은 고등학교 도서관에서 발견하고 처음 읽은 하루키의 소설이 [세계의 끝과 하드보일드 원더랜드]입니다. 말 그대로 마음을 뚫어 버렸어요. 그 후로 계속 하루키 소설의 팬이 되었다고 했다. 대니 보이를 꼭 듣고 싶다고 했다.


20대 여성 카오루는 소설 속에 나오는 빙 크로스비의 대니 보이를 듣고 싶습니다. 제 인생에서 하루키 씨의 작품은 매우 중요한 부분을 차지하고 있어요. 감사합니다. 몇 년이나 지났지만 대니 보이를 흥얼거려요.


하루키는 빙 크로스비의 대니 보이를 아무리 찾아도 찾을 수 없어서 마할리아 잭슨의 소울 가득한 대니 보이를 대신 틀어준다. 물론 레코드판으로.


대니 보이는 주인공이 그림자도 없고 마음도 없는 벽 너머의 세계에서 음을 찾아서 흥얼거리는데 그 음이 대니 보이의 음이었다. 주인공은 마음이 없는 벽에 둘러싸인 마을에서 눈의 빛도 잃은 채 꿈 읽기만 계속하다 대니 보이의 음을 계속 쳤다. 선율과 코드는 자연스럽게 손가락 끝에서 흘러나왔다. 멜로디가 마음에 스며들고 몸 구석구석에서 굳게 굳은 힘이 빠져나가는 것을 느꼈다. 그리고 주인공은 알게 되었다. 오랜만에, 실로 오랜만에 노래를 들으니 몸이 얼마나 이를 간절하게 원하고 있었는지를.


그리고 하루키는 일각수의 꿈에 나오는 노래를 한 곡 더 튼다. 보브 딜런의 [A Hard Rain’s A-Gonna Fall]


도쿄에 사는 50대 여성의 사연이 이어진다. 일각수의 꿈에 나오는 보브 딜런의 [A Hard Rain’s A-Gonna Fall]을 신청합니다. 음악에 흥미가 생겨서 여러 음악을 듣기 시작한 것과 하루키 씨의 소설을 읽기 시작한 것이 비슷했고, 음악의 영향으로 소설을 읽었는지, 소설의 영향으로 음악을 들었는지 모르겠지만 시너지 효과겠지요. 비치 보이스는 별로 듣지 못했지만 보브 딜런에게는 푹 빠져버렸습니다.


하루키: 네, 저는 이 '세계의 끝과 하드보일드 원더랜드'를 치바현의 나라시노 집에서 쓰기 시작해서 가나가와현의 후지사와로 넘어와서 적었습니다. 이 소설은 어려워서 무척 힘들었습니다. 결말을 몇 번이나 다시 썼습니다. 그런데 이 작품이, 내가 쓴 소설 중에서 가장 좋아한다는 사람이 적지 않게 계신 것 같습니다.


나에게도 이 소설이 세 가지 버전으로 있다. 제목이 일각수의 꿈으로 번역된 버전도 있다. 나 역시 이 소설이 너무 좋아서 그런지 하루키의 소설 중에서 가장 많이 다시 읽었다. 대략 10번은 읽은 것 같다. 이상하지만 매년 겨울이 다가오면 꺼내서 읽게 되었다. 벽 너머의 세계-마음을 잃고 그림자를 읽고 영원히 살아가는 세계 이외도 현실 세계에서 등장하는 야미쿠로, 지하통로, 괴짜박사, 통통한 손녀, 기호사들과 계산사들. 정말 흥미로운 이야기다. 안 그러려고 하지만 읽고 있으면 라디오헤드의 노래를 듣는 기분이 들고, 라디오 헤드의 노래를 듣고 있으면 이 소설을 읽는 기분이 든다. 대니 보이를 들어보자. 주인공이 그녀를 향한 마음이 열리는 그 장면을 떠올리며.


Bing Crosby- Danny Boy (1945)

https://youtu.be/Q2QtBYR7NJs?si=YJPKfvcHT4XLgI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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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루키 에세이 – 러브호텔의 이름


하루키의 이 이야기는 정말 재미있다. 러브호텔의 이름에 관한 내용인데, 러브호텔에 장어덮밥을 먹거나 모임을 갖거나 단편소설을 완성하려는 목적으로 러브호텔에 들어가는 사람은 그리 없을 것이다. 따라서 러브호텔의 이름에서는 왕왕 ‘그러니까 일단 대충 이름만 붙이자구. 이름이 붙어 있기만 하면 되잖아’라는 식의 자포자기적 이름이 대부분이다.


하루키는 러브호텔의 이름에 관한 것에 몹시 관심을 보이며 진지하게 임하고 있어서 더 재미있는 에세이다. 우리나라 모텔 이름은? 하며 한 번 찾아본 적이 있었는데 정말 재미있었다.


제주도의 한 곳에 ‘특 급, 한 마 음’이라는 이름의 모텔이 있다. 밤에 되면 글자에 네온 불이 들어오는데 ‘특’ 자에 불이 들어오지 않아 밤에는 ‘급 한 마 음’으로 보이는 모텔이었다. 대구 기차역 주변에 친절이 영어로 ‘baby one more time’라는 이름의 모텔도 있었다.


나주시청을 지나 영산포 다리를 건너면 '벌꿀장'이라는 이름의 모텔이 있다. 또 예스러운 '드가장'이라는 이름의 모텔도 있다. 이곳 주인은 '에드가 드가'를 좋아해서 방마다 드가의 '머리 빗는 여인' 그림이 하나씩 걸려 있고, 주인장은 미대를 졸업했으나 사정으로 인해 모텔을 운영하게 되어 이름이라도 양가적으로 지어보자 했을지도 모른다.


드가장이 있으면 무진장 여관도 있다. 대구에는 꼬모 모텔이라는 신개념 모텔이 있는데, 카페와 결합되어서 호텔보다 좋은 환경의 모텔이라고 해서 많은 남녀가 찾았다. 방안에 들어가면 나오기 싫을 만큼 재미있게 보낼 수 있다고 하여 친구들끼리 파티를 위해서 많이 찾는 모텔이라고 한다. 이곳의 결합된 카페는 조식이 제공된다고 한다. 아침 일찍 부스스한 커플들이 좀비처럼 걸어 나와 카페에 앉아서 서로 모른 체하며 조식을 먹는 모습을 상상하면 재미있다.


베르사체라는 이름의 모텔도 있는데 소송을 당하기도 했고, 어느 곳에 '준희빈'이라는 이름의 모텔이 있는데 조금 떨어진 곳에 같은 이름의 모텔이 또 있다. 아마 두 모텔의 주인 이름이 준희와 희빈 정도가 아닐까. lu라는 이름의 모텔도 있고, 꽈배기 모텔, 대구 성서에는 MBL라는 이름의 모텔이 있는데 '몸부림'이라는 뜻이라고 한다.


한국의 모텔 이름들을 찾아본 때가 십 년 전이니까 지금은 또 많이 변해있을 것이다. 오늘 소개할 하루키 음악은 무라카미 라디오 46회 1월 29일에 방송된 곡들 중 한 곡이다. 이 날은 신청곡으로 전부 음악을 선곡했다. 그중 한 곡으로 하루키가 라디오 네임으로 지어준 츠케맨 라이더라는 닉네임의 애청자가 신청한 곡 ‘휴이 루이스 앤 더 뉴스’의 ‘포레스트 포 더 트리즈’ 다.


하루키: 제가 좋아하는 밴드 휴이 루이스 앤 더 뉴스의 곡도 신청곡을 많이 받았습니다. 몇 년 전에 거의 오리지널 멤버로 일본에 방문하였는데 저도 노래를 들으러 갔었습니다. 옛날과 전혀 차이가 없어 즐거웠어요. 객석이 가장 고조된 것은 역시 ‘파워 오브 러브’였지만. 외에도 ‘더 하트 오브 락앤롤’등등 여러 노래가 신청곡으로 들어왔지만 ‘포레스트 포 더 트리즈‘로 갑시다. 이 곡, 나도 왠지 잘 기억하고 있습니다.


HUEY LEWIS AND THE NEWS Forest For The Trees

https://youtu.be/18-0Wdmo2V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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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시우행 2023-08-24 14:3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많이 웃게 되네요,ㅎㅎ

교관 2023-08-25 10:52   좋아요 0 | URL
그렇죠? ㅋㅋㅋ
 


해가 뜨거워 공기를 씹으면 바사삭해야 하지만 엄청난 습도 때문에 눅눅하게 씹혔다. 태어나서 이렇게 습기가 많고 습도가 가득한 날은 처음인 것 같다. 눈으로 이 엄청난 습기가 보이고 숨을 쉴 때마다 입 안으로도 들어오는 것이 느껴질 정도였다. 조금만 달려도 평소 더운 날보다 더 힘들었다. 굉장하다고 생각이 들었다. 거의 매일 조깅을 하러 나오지만 이런 날은 처음이었다. 이런 날 열심히 달리면 땀이 정강이에서도 퐁퐁 솟아나고 눈 빼고는 전부 땀이 나는 경이로운 경험을 하게 된다. 땀을 닦아도 닦아도 눈 안으로 자꾸 흘러 들어가서 잠시 서서 쉬었다. 이렇게 습도가 강하고 엄청나게 더운 날인데도 많은 사람들이 운동을 즐기고 있었다. 즐기지 않는다면 할 수 없는 날이었다.


예전 어릴 때 여름에는 이렇게 지옥 같은, 습하고 무거운 굽굽함이 없었던 것 같은데 그저 나의 착각이려나. 중학교 여름 방학에 친구 집 옥상에 자주 놀라갔다. 중학생이 되기 전에는 놀다가 저녁이 되면 집으로 들어왔지만 중학교 2학년 정도가 되었을 때에는 방학에 친구의 집 옥상에서 놀다가 거기에 텐트를 치고 잠을 자기도 했다. 옥상에 누우면 등이 따뜻했다. 그리고 고등학교 여름방학 때에는 옥상에서 밤을 지새울 때 술을 마셨다. 한 놈이 더 늘어서 각자 집에서 참치 통조림이나 라면을 들고 와서 밤새도록 이야기를 하며 술을 마시다가 새벽이 되어서 지쳐 잠들었다. 몇 시간 잠들지 않았는데 텐트 안이 너무 뜨거우면 자동적으로 일어났다.


밤새 마신 술이 덜 깨서 헤롱거리다가 옥상으로 올라가는 계단에서 보면 앞 집이 보이는데 욕실의 창문으로 그 집 미대 다니는 누나가 목욕을 하고 있어서 우리는 침투조처럼 바짝 엎드렸다. 그런데 옥상 바닥이 너무 뜨거워서 으앗 하는 소리를 한 놈이 내고 그만 누나에게 들켜서 후다닥 도망갔다. 그 녀석 때문에 제대로 보지도 못했는데 생각해 보면 누나는 별로 개의치 않았다. 창문이 컸는데 활짝 열어 놓고 목욕을 했고 우리와 눈이 마주쳤는데 그저 뭐 어때 같은 얼굴이었다. 그리고 계속 비누칠을 했다. 여름이었다. 그런 여름이었다.


매미소리가 어디에서 들리는지 모르겠지만 맴맴맴 요란했고 하늘은 푸를 대로 파랬다. 땡볕에서 놀다가 더우면 아이스크림 하나를 물고 그늘에 앉아 있으면 그런대로 괜찮았다. 바람이라도 불라 치면 고맙게도 시원했다. 지겨울 법도 한데 친구의 집에서 라면을 끓여서 먹고 또 끓여 먹었다. 다시 중학교 여름방학으로 와서, 친구의 집 옥상에는 집에서 버리다시피 한 의자들을 옥상에 올려다 놨다. 눈비바람에 의자는 칠이 벗겨지고 낡았지만 앉아 있기에는 충분했다.


옥상 의자에 앉아서 밤하늘을 보며 이야기를 하며 놀았다. 방학이었다. 여름방학. 친구와는 다니는 학교가 달랐다. 초등학교는 같이 다녔는데 중학교로 가면서 학교가 달라졌다. 친구는 중학생이 되고 나서 덩치가 부쩍 커졌다. 무엇보다 이성에 대해서 심각할 정도로 관심이 많았다. 중학교 때 나에게 공책을 보여주었는데 거기에는 몇 페이지에 걸쳐 수학공식이나 물리법칙이 아니라 좋아하는 여자애의 이름이 빼곡했다. 그저 이름만 처음부터 몇 페이지에 걸쳐 가득했다. 이렇다 저렇다 할 여지 같은 것도 없고 사상이나 생각, 고뇌도 없이 그저 이. 름. 만 가득했다. 그 여자애는 같은 동네에 살고 있고 우리 집과 친구의 집 중간에 있는 집에 살고 있어서 동네에서 자주 같이 놀곤 했는데 녀석이 이성에 눈을 뜨고 느닷없이 러밍아웃을 하는 바람에 같이 있게 되면 예전처럼 왁자지껄하며 떠들썩하게 놀지 않게 되었다.


더 어린 시절의 여름방학에는 집 앞에 해수욕장이 있으니 늘 새까맣게 되어가며 놀았다. 태양빛을 매일 한껏 받아서 그런지 어지간히 덥지 않으면 그렇게 더위도 잘 타지 않았다. 매일이 찬란한 여름의 하루였다. 백사장은 곱고 너무 하얗고 부드러웠다. 뜨거운 모래가 발가락 사이로 파고드는 느낌이 좋아서 자주 해변을 걸었다. 그리고 바다에 풍덩 뛰어들었다. 너무 오래 바다에 있으면 입술이 몸이 추워서 파래질 때가 있다. 그러면 나와서 모래를 파고들었다. 모래가 힘 있게 나를 감싸 안아주는 느낌이 나쁘지 않았다.


이렇게 덥다고 소리쳐도 여름은 물에 불은 실오라기처럼 빠져나가고 있다. 어제는 부쩍 어둠이 빨리 하늘을 덮었고 바람도 달라졌다. 서서히 가을이 밀려오고 있다. 풍경이 달라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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