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루키는 여러 에세이에서 언급했지만 피츠 제럴드를 좋아한다. 대중은 헤밍웨이를 더 좋아할지도 모르지만 하루키는 헤밍웨이 보다는 피츠 제럴드를 더 좋아한다. 인간적으로도 그렇고 글도 그렇다고 생각된다. 노인과 바다에서도 말했지만 헤밍웨이는 인간은 파괴될 수 있지만 패배하지는 않는다고 했다. 패배하여 총구를 머리에 대고 방아쇠를 당신 헤밍웨이 보다 말년에 처절하고 나락으로 떨어졌을지라도 다락방에서 끝끝내 글을 쓰다가 숨을 거둔 피츠 제럴드의 편에 하루키는 섰다.라고 생각이 든다.


피츠제럴드와 헤밍웨이가 절친이라는 건 우리가 다 알고 있다. 영화 미드나잇 인 파리를 보면 헤밍웨이는 파티에 미쳐있는 젤다와 그녀에게 빠져있는 피츠제럴드를 찾아가서 너를 망치는 것은 저 여자야,라고 하는 장면도 다 나온다. 이 영화 속에는 거투르트를 비롯해서 살바도르 달리, 콜 포터, 마크 트웨인, 조세핀 베이커, 피카소와 모딜리아니, 마티스도 등장한다. 시대가 뒤죽박죽이지만 우디알렌은 한 시대에 전부 집합시켰다. 몹시 재미있다.


하루키가 좋아해 마지않는 위대한 개츠비는 ‘다시 젤다에게’로 포문을 연다. 20년대 피츠제럴드는 미국이 가장 사랑하는 글쟁이였다. 출판사들은 그의 글을 내고 싶어 안달복달했다. 피츠제럴드는 그런 미국인들의 기대를 충족시켰다. 생긴 것도 잘 생겼다. 영화 속에서 톰 히들스턴이 피츠제럴드를 연기했다.  


육군소위로 장교복을 입고 있는 피츠제럴드는 누구나 반할 만큼 멋있었다. 그러나 1차 대전이 끝나고 군복을 벗어버리자 한낱 볼품없는 청년의 모습이었다. 광고 회사를 다니며 소설가 꿈을 키웠다. 프린스턴 대학을 성적 하락으로 중퇴하고 광고 문구를 만들면서 소설을 썼다. 하지만 그의 글은 출판사에서 언제나 퇴짜를 맞았다. 그런 생활 속에 일생에 한 번 사랑에 빠질만한 여자가 나타났으니 그녀가 바로 조지아 주와 앨리배마 주에서 가장 미인이었던 젤다 세이였다.


젤다는 발랄했고 기가 세고 승부욕이 강했다. 무엇보다 예뻤다. 젤다도 피츠제럴드를 사랑했지만 가난한 남자와 사는 것은 그녀가 원하는 삶이 아니었다. 그녀는 명문가 집안의 딸로 부족함 없이 자랐고 원하는 것은 가질 수 있는 여자였다. 그런 젤다는 가난한 삶을 사느니 죽는 게 낫다고 생각했다.


위대한 개츠비의 데이지는 젤다의 모습을 그대로 빼닮았다. 피츠제럴드가 젤다를 안을 수 있는 방법은 오직 글밖에 없었다. 그녀를 손에 넣기 위해서는 세상이 놀랄만한 글을 써야 했다. 젤다는 피츠제럴드와 약혼을 파기하고, 그는 점점 압박감에 시달렸다. 자신이 자신에게 바늘로 짜르를 압박감이었다.


고통 끝에 펴낸 자신의 첫 소설 ’this side of paradise’ 덕분에 젤다가 출판 일주일 후에 자신의 품으로 돌아온다. 그리고 위대한 소설 ‘위대한 개츠비’를 펴낸다. 당시 피츠 제럴드는 ‘위대한 개츠비’의 제목이 원래 ‘개츠비’였는데 ‘위대한’을 삽입하는 것을 못마땅하게 생각했다. 그러나 젤다와 출판사의 권유로 ‘위대한’을 넣을 수밖에 없었다.


그 뒤로는 모두가 다 아는 이야기, 돈으로 담뱃불을 붙여 담배를 피울 정도로 두 사람은 미국 상류사회의 셀럽이 되고 매일 파티를 하고 그의 단편소설은 엄청난 돈으로 팔려나간다. 그러나 미국의 사조가 바뀌면서 점점 나락으로 떨어진다. 방탕하고 호화로운 생활은 십 년 만에 비극을 맞이한다. 젤다도 사람들의 비난대상이 되고, 알코올 중독에 우울증과 정신병에.


1940년에 피츠제럴드가 죽고 정신병원을 오가던 젤다는 병원의 화재로 인해 비참하게 죽음을 맞이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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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전에 집에서 나오는데 아파트 단지 내 어린이 놀이터에 한 여자아이가 신나게 그네를 타고 있고 벤치에는 엄마로 보이는 여성이 앉아서 그네를 타는 딸아이를 바라보고 있었다. 아이는 정말 신나게 그네를 탔다. 엄마를 등지고, 엄마가 자신을 바라본다는 걸 알고 있어서 인지 한껏 힘을 주어 그네를 탔다. 이만큼 높이까지 올라갔다. 나는 그 모습을 보면서 옆을 지나쳐 걸었다.


여성은 나의 모습을 보더니 약간 우물쭈물하는 표정을 지었다. 나는 그 여성의 모습을 캐치하고 똑바로 앞을 바라보고 빠른 걸음으로 그곳을 지나쳤다. 여성과 아이는 외국인으로 난민이다. 몇 해 전에 내가 사는 동네에 난민 100여 명이 들어왔다. 그 당시 다른 지역에서는 반대에 부딪히고 말도 많았는데 내가 사는 동네의 사람들은 어? 그래? 그렇다면 같이 살지 뭐. 같은 반응들이었다. 모두가 이렇게 받아들이지는 않았겠지만 반대에 대한 일들을 내가 모르는 것을 보면 큰 불만 없이 그들을 생활반경 속으로 받아들였다.


아이의 엄마는 아파트 주민에게 혹시나 피해가 가지나 않을까 싶어서 나의 눈치를 본 모양이었다. 아파트 단지 내 놀이터에는 아이들이 늘 재미있게 놀고 있고, 난민 어린이들도 왕왕 같이 어울려 논다. 역시 아파트에 사는 주민들이 그것에 대해 이렇다 저렇다 하지 않는다. 아이들이 놀이터에서 시끄럽게 떠들고 노는 건 당연한 거 아니야? 같은 반응이다.


어쩔 수 없어,라는 말을 어른이 되면 들어야 하는 수많은 일들이 있다. 어른이 되기 전에 아이들이 하고 싶은 것이 있을 때 마음껏 하게 해 주자 같은 분위기가 공원 주위에 맴돌았다. 그런 기운 만으로도 괜스레 가슴이 뿌듯해진다.


난민 아이들은 정말 인형처럼 예쁘다. 엄마들은 대체로 히잡을 두르고 있지만 여자 아이들은 맑고 예쁜 얼굴과 머리를 다 드러내고 있다. 아이는 이역만리 떨어진 나라의 한 도시의 동네에서 엄마가 지켜본다는 안도감을 한껏 지니고 열심히 그네를 탔다. 아이의 알아들을 수 없는 말에서 행복감이 묻어났다. 엄마는 그런 아이를 흐뭇하게 바라보았다. 햇살은 바삭바삭하고 그늘 밑에서는 시원했다. 일주일 전과 너무 다른 날이다. 9월인 것이다. 김명수 시인의 ‘키 큰 떡갈나무 물참나무 아래 지날 때’가 떠오른다.


물참나무 떡갈나무 아래 지날 때

여기 이 산언덕에 햇살도 따사롭게 내려요

가을입니다 9월이네요

도토리를 안았던 도토리깍정이를 주워보았어요

빈 깍쟁이가 포근했어요

무엇이 그 속에 담겨 있나요

나는 9월의 아이가 되고 싶었지요.


김명수 - 키 큰 떡갈나무 물참나무 아래 지날 때, 중에서


아파트 놀이터를 벗어나니 아파트 단지와 저수지 사이의 작은 텃밭에서 나이 든 어르신이 쪼그려 앉아서 밭일을 하고 있다. 잡초를 제거하고, 상추 같은 싱그러움이 묻어나는 밭농사에 열을 올리고 있다. 잘하면 오늘 저녁 맛있는 된장찌개에 어울리는 상추가 밥 상에 오를지도 모른다. 어르신의 가족은 대접받는 기분으로 저녁 식사를 맛있게 할 것이다. 나도 오늘 저녁은 맛있게 먹자. 서울에 살고 있는 작은 이모의 이런저런 일들을 도와줬는데 택배를 보내주었다. 불고기를 보냈으니 맛있게 먹으라는 것이다. 그래 오늘 저녁은 불고기를 구워 먹자.  


오전에 커피를 투고하려 다운타운을 걸으니 사람들의 발걸음이 일주일 전에 비해서 명랑해졌다. 해가 쨍쨍하여 덥기는 덥지만 이 정도는 해 볼만 해. 같은 표정들이다. 얼굴에서 명랑함이 뚝뚝 떨어진다. 서른한 가지 아이스크림을 파는 전문점 사장님의 얼굴에도, 막 가게 문을 열고 유리창을 닦는 보세 옷 가게 점원의 얼굴에도, 토요일이라 오전부터 놀기로 작정한 학생들의 얼굴에도 명랑함이 묻어났다.


9월이다. 여전히 따가운 햇살아래에 있으면 까맣게 타들어가지만 바람이 이래도 돼? 할 정도로 시원하다. 조깅을 하는 저녁은 그야말로 시원한 날이다. 춥지도 덥지도 않은 아주 좋다. 평소에 비해 조깅 코스로 많은 사람들이 몰려나왔다. 어제는 찬물에 샤워를 하다가 놀라고 말았다. 오늘도 찬물에 샤워를 하려면 땀을 흘려야 한다. 열심히 조깅을 했다. 집으로 들어와서 택배로 온 불고기를 구웠다. 양념이 되어 있다. 생각해 보니 불고기를 밖에서 사 먹어본 적이 거의 없는 것 같다. 주로 집에서 해 먹었지 밖에서는 사 먹지 않았다. 짬뽕 같은 음식은 오로지 밖에서만 먹었는데 불고기는 주로 집에서만 먹었다.


불고기는 가족 같은 느낌의 음식이다. 친구들끼리 술을 마실 때 삼겹살에 소주 한잔 하러 가지만 불고기를 먹으러 가지는 않는다. 대학교 때에도 친구들과 많이 술을 마시러 다녔지만 - 짜장면, 쫄면, 돼지국밥, 치킨, 삼겹살에 술은 마셨지만 불고기를 애써 먹으러 가지는 않았다. 불고기는 커피로 따지면 카페오레 같은 느낌이다. 너무 맛있지만 잘 먹지 않게 된다. 잘 차려입는 도련님 같아서 어울리기는 하지만 매일 같이 놀 수는 없다. 그래서 가족이 몹시 기분 좋은 날이거나 집에 친척이 놀러 오면 불고기를 해 먹게 된다.


불고기에 대한 추억을 떠올리면 어린 시절에 서울의 작은 이모 댁에 놀러를 갔을 때다. 작인 이모 댁에도 딸이 두 명 있다. 나에게는 사촌동생들이다. 나의 여동생과 나이가 같다. 꼬꼬마 때 바닷가의 우리 집에 놀러 오면 헤어질 때는 눈물 없이 볼 수 없는 꼴사나운 광경을 볼 수 있다. 여동생과 사촌 동생은 떨어지면 큰일 나는 것처럼 울고 불고 난리도 아니다. 역시 꼬꼬마 때의 일이다. 작은 이모 댁에 우리 가족이 놀러 가면 이모부는 우리 가족을 데리고 방갈로가 있는 고급 불고기 집으로 데리고 갔다. 여름에 물놀이를 하고 방갈로에 앉아서 불고기를 굽는 냄새가 밤하늘을 덮을 때 불빛을 보고 날아든 큰 나방의 날갯짓이 떠오른다. 불고기는 맛있었겠지. 그러나 나방의 날갯짓만 기억이 생생하다.


작은 이모에게 받은 택배를 뜯어보고 문제라면 일주일 내내 먹어도 남을 만큼 많은 양의 고기를 보냈다는 것이다. 나의 문제점은 족발, 김밥, 치킨, 국밥처럼 바로 먹을 수 있는 음식을 선호한다는데 있다. 테이블에서 구워 먹고, 부대찌개처럼 다시 끓여 먹고, 발라 먹고 하는 것을 썩 좋아하지 않는다. 어떻든 맛있게 고기를 구워서 먹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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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9월 7일) 하루키의 신작이 도착했다. 인스타그램을 보니 사람들이 일괄적으로 9월 7일에 대부분 받아서 포스팅을 했다.


하루키 팬들, 일명 하루키스트들은 이제 어쩌면 마지막이 될지 모르는 하루키의 장편 소설 출간에 몹시 흥분한 상태들이었다. 나도 하루키를 좋아하지만 사실 굉장한 감격과 엄청난 찬양에 가까운 마음을 가지고 있지는 않다. 아니, 이 정도로 좋아할 일이야? 같은 포스팅이 많아서 좀 놀랐다.


어제는 받자마자 읽으려고 펼치니 졸음이 쏟아지고, 잠을 깨고 다시 책을 펼치니 다시 잠이 쏟아져서 읽기를 포기했다. 예전부터 바쁠 때 그 시간에 틈입하여 책을 읽고, 엘리베이터를 기다리며 좀 읽고, 주차장까지 걸어가면서 좀 읽고, 기다리면서 책을 읽던 습관 때문인지 멀쩡하게 자리 잡고 앉아서 읽으려니 잠이 쏟아지는 것인지 모르겠지만 잠이 나의 사소한 행복을 방해했다.


여하튼 하루키는 팬들을 위해, 또 자신을 위해(작가의 후기) 원래 중편 소설을 늘려서 장편으로 내놓았다. 사람들이 좋아하는 소설가의 스타일은 많다. 소설가뿐 아니라 예술가들, 애니메이션 작가도 그렇다. 베르세르크 작가 미우라켄타로는 끝내 완성시키지 못하고 사망하고 말았다. 그가 그린 그림들을 보면 만화를 잘 모르는 사람도, 싫어하는 사람도 입이 벌어질 정도로 작화를 매일 하고 있었다는 걸 알 수 있다. 89년부터 연재를 해서 아직 못 끝냈으니 대단한 작품이고 걸작이다.


사람들은 어쩌다 천재 같은 소설을 써내는 소설가보다는 꾸준히 소설과 에세이를 출판하는 것 때문에 하루키를 좋아한다. 그 속을 벌리면 문체라든가 작가 정신이라든가 여러 가지 것들이 있지만 기본은 지치지 않고 꾸준하게 매일 한다는 것을 높이 평가한다.


나도 그 점이 좋다. 10여 전에 나도 소설을 쓰고 싶다고 생각한 이래 하루도 거르지 않고 매일 조금씩 글을 쓰고 있다. 설령 미완성이든 작법이 엉망이든 문체가 이상하든 나에게는 별로 중요하지 않다. 목표를 그냥 매일 조금씩 쓴다,라고 정했다. 그렇게 정했을 때에는 의지만으로 할 수 없기 때문에 친구들과의 약속을 점점 줄여 나갔다. 좋아하는 것을 열심히 하려면 포기해야 하는 것들이 있다는 걸 과감하게 받아들였다. 술자리, 쓸데없는 약속 같은 것들을 하나씩 쳐 나갔다. 그러다 보니 현재는 친구들에게 미움을 쌌는지 죄다 멀어졌다. 하지만 나는 불만이나 후회는 없다. 만약 예전처럼 친구들과 늘 몰려다니며 술 마시고 시답잖은 이야기나 매일 늘어놓았다면 지금도 여전히 그 모습에서 벗어나지 못했을 것이다. 가끔 소식을 듣는 친구들은 회식에 친구들과의 잦은 술자리 때문인지 몸이 너무 불어났다.


나는 친구들과 멀어지는 대신 매일 조금씩 글을 쓸 수 있었고 매일 조깅을 했고 그 덕분인지 문예지에 단편 소설이 실려 2년이나 연재를 할 수 있었고, 종이책도 출간할 수 있었고, 밀리의 서재에서 연락이 와서 전자책으로 단편 소설집도 나올 수 있었다.


오르한 파묵은 좋은 소설가란 똑똑한 것도 아니며 화려한 문장을 가진 것도 아니다, 그저 매일매일 꾸준하게 소설을 쓰는 소설가다.라고 말했다. 헤밍웨이도 매일 글을 적다가 오늘 좀 많이 작업했다 싶으면 내일은 오늘보다 좀 덜 작업을 해서 그 균형을 맞추었다.


나는 남들보다 특출 나게 잘하는 것이 하나도 없기 때문에 내가 잘할 수 있는 것, 매일매일 꾸준하게 할 수 있는 것을 찾아서 하기 시작했다. 누군가에게 잘 보이기 위해서(이런 습관은 누군가에게 잘 못 보일 수는 있으나 잘 보이기는 힘들다) 하는 건 아니다. 나를 누군가와 비교도 하지 않는다. 오직 한 달 전의 나, 일 년 전의 나와 비교를 한다. 그때보다 지금이 글 쓰는 것이 좀 더 나아졌다면 그걸로 족할 뿐이다.


인간은 매일 해야 하는 것들이 있다. 밥을 매일 먹어야 한다. 잠도 매일 자야 하고 똥오줌도 매일 놔야 한다. 그렇게 생각하면 간단해진다. 지극히 간단한 문제를 우리는 가끔 어렵게 생각하는 경우가 있다. 간단하게 생각하면 간단하게 해결이 된다. 매일 밥을 먹으니 매일 조깅을 하고 매일 조금씩 글을 쓰자. 아주 간단하다. 20년 전에 비해서 요즘은 글을 쓰는 게 더 수월해졌다. 예전에는 불빛과 책상이 있어야만 했다. 그러나 현재는 그런 것들이 전혀 필요 없다. 머리에 뭔가가 떠오르면 그대로 폰이나 태블릿에 메모를 하면 그만이다.


하루키 이야기가 나왔으니 소식을 하나 알려드립니다.



하루키 소식

하루키의 신작 거리와 그 불확실한 벽의 목각 애장판을 딱 300부만 제작해서 판매한다는 소식이 있었는데 이미 다 팔렸겠지요.


하루키의 장편이 일본에서 애장판을 발매하는 경우는 처음이라고 합니다. 특별 사양의 제작에 따라 시간이 걸려 주문하자마자 바로 받지는 못 할 텐데요.


애장판 사양은 하루키 사인이 들어간 호두나무 케이스에 호일 각인 방식의 저자명이 들어가고 속지도 좋고 아무튼 그렇다네요. 제작 부수는 위에서 말한 것처럼 달랑 300부 한정이구요.


문제는 가격이 10만 엔, 우리 돈으로 100만 원 정도 하는데, 엄청 비싼데 금방 팔려 나갔을 것 같습니다. 어떻든 고급스럽고 몹시 탐나는 물건이에요. 돈을 떠나서 아 손에 가지고 싶다는 마음이 드는 애장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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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라니스 모리셋은 파혼 후에 엄청나게 살이 쪘다. 전혀 그렇지 않을 것 같은 사람이 살이 굉장히 불어나니 팬들이 이만저만 걱정이 아니다. 우리나라에도 악뮤의 수현이 근래 살이 너무 쪄서 사람들이 걱정을 하기도 했다. 수현은 라방에서 내가 살이 찌는 건 너희들(팬들)이 자꾸 살이 쪄도 귀엽다, 예쁘다 하니까 그런 거잖아,라며 귀엽게 말을 해버렸다. 일반인들도 그렇지만 스타들이 그렇게 되면 본인들이 스트레스가 많을 것이다.


팝가수들 역시 마찬가지다. 팝스타들은 몸 관리를 아주 잘할 것 같은데 살이라는 걸 무시하면 안 된다. 캘리 클락슨, 라나 델 레이도 살이 엄청나게 불어났다. 라나 델 레이는 인형 같은 외모를 가지고 노래 역시 자신의 바라는 방향으로 끌고 가며 인기를 가지고 있었다. 그러다가 위대한 개츠비의 주제곡을 부르면서 세계적인 스타가 되었다. 그랬는데 어느 날 보니 엄청나게 살이 불어났다.


미국이라는 나라는 우리나라와 달리 파파라치가 스타들의 일상을 파고들기 때문에 그들의 일거수일투족은 다 드러난다. 최근의 가장 핫 한 파파라치 컷은 시도 때도 없이 사건사고에서 떠날 날이 없는 칸예의 모습이다. 보트에서 엉덩이가 반쯤 드러나는 바지에 한 손은 아내 비앙카의 뒷머리를 잡고 있는 사진이다. 그러니까 보트가 있는 곳은 공공연한 장소인데 거기서 그 짓을 해버린 것이다. 미국은 우리나라 보다 더 짓궂어서 이 사실을 바로 전 부인인 킴 카다시안에게 질문을 하고 킴 카다시안은 절망적으로 당황스럽다고 했다. 킴 카다시안의 아이들의 아빠가 칸예이기 때문에. 여하튼 저짝은 참 재미있는 곳이다.


아델이나 매간 트레이너는 애초에 통통한 몸으로 등장하여 노래로 사람들을 홀렸다. 그녀들은 시간이 지나 날씬해지는 반면에 알라니스 모리셋이나 라나 델 레이는 그 반대다. 틱톡으로 전 세계를 씹어 삼켰던 짐승녀라고 불리던 케샤 역시 뚱뚱해지는 것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케샤가 몰락하게 된 건 이번 피프티피프티와 비슷한 이유다.


그래도 몸은 비록 거대해졌으나 노래만은 여전히 다들 잘 부른다. 근래의 영상을 찾아보면 그녀들은 작은 무대일지라도 올라가서 열심히 노래를 부르고 있다. 한때 전 세계 젊은이들의 워너비였던 미샤 버튼 이야기도 하려다가 배우라서 넘어가자. 전부 추억이어라.


알라니스 모리셋은 심적 고통을 이겨내고 열심히 다이어트를 해서 요즘은 조금 날씬해졌다. 이번 2023 후지 록페에 올라 한 시간 동안 공연한 알라니스를 보니 감개가 그저 무량할 뿐이다. 그러니까 그 예전의 아이로닉을 부를 때의 그 목소리를 여전히 지니고 있는 것이다. 넓은 공연장을 끊임없이 움직이고 공간을 활용하며 팬들에게 눈빛을 보내고 노래를 들려주려고 노력을 한다. 하모니카도 불고 노래를 부르며 무대를 다니려면 체력이 뒷받침이 되어야 하는데 아무튼 멋지다.


알라니스 모리셋이 나왔을 때 미국이 들썩했다. 그 이전의 록은 80년대 나왔던 헤비메탈, 팝메탈, 슬래시메탈 등 쇠가 갈리고 미칠 듯이 내지르고 무대를 압도하는 록이 강세였다. 머틀리 크루 같은 그룹이 공연장을 다니며 쓸어 버렸다. 그랬는데 그런지(Grunge) 메탈을 몰고 너바나가 나오고, 알라니스 모리셋이 등장한 것이다.


피츠제럴드의 사조에서 헤밍웨이의 사조로 넘어가듯이 록의 흐름도 변화를 가진다. 알라니스 모리셋은 카랑카랑한 목소리로 신비롭지만 컨트리 풍(미국은 컨트리 뮤직이 강세다. 우리나라 트로트와 비슷하다. 엄청난 인기다) 같은 팝메탈 같은 음악을 했다. 내가 듣기에는 그랬다. 자세한 건 전문가들의 리뷰를 보시길 바란다.


학창 시절 라디오를 달고 살았는데 라디오에 알라니스 모리셋의 노래가 자주 나왔다. 그렇게 음악감상실에 쪼르르 달려가서 신청을 했다. 큰 화면으로 보는 알라니스 모리셋의 뮤직비디오와 노래는, 와 정말 좋았다. 우리는 보자마자 뭐야, 여자 스티브 타일러야? 1집의 단연 최고는 아이로닉이지만 좋은 노래들이 많다.


우리나라 가수들의 공연을 보다가 해외에서 팝가수들의 공연을 보면 뭔가 이상하지만 꽤 시간차가 나는 것 같다. 무대는 마치 90년대의 향수를 불러일으킨다. 그래서 그것이 별로냐면 오히려 그 반대다. 정말 소중한 건 늘어나지 않고 자꾸 줄어들기만 한다. 그게 인생의 아이러니다. 아이로닉을 들으며 오늘도 멋지게 보내자.


https://youtu.be/Jne9t8sHpUc


Alanis Morissette - Live at Fuji Rock Festival 2023 *FULL SHOW 4K* 2023-07-29

https://youtu.be/v-T1Z6FG69I?si=q6CyMC8BoSmeUUFU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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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카가 아직 아가였을 적, 아장아장 걸어 다닐 때 집에서 예방접종이며 피부과며 다 했다. 동생은 아무래도 엄마가 있는 집에서 딸내미를 케어하는 게 좋다고 생각했는지 조카를 데리고 고향으로 내려와서 몇 달을 그렇게 있었다. 생각해 보면 그리 오래 전도 아닌데 그때에는 동네에 소아과도 꽤 있었는데 지금은 거짓말처럼 하나도 보이지 않는다.


한 여름이었다. 폭염의 중간에 조카의 피부과 예약이 있었다. 오전 10시 20분이 예약시간이었다. 나는 40분 정도 일찍 주차장에 내려가서 차 안에서 에어컨을 2단으로 틀어놓고 에어컨 주둥이를 조금 위로 올려놓은 다음 그녀들을 기다리고 있었다. 조카의 아빠는 집에 있고 동생과 조카만 내려왔다.


두 사람이 준비하는 동안 폭염이라 여름날의 차 안을 시원하게 하고 기다리고 있었다. 나의 장점이라 함은 기다리는 걸 군말 없이 잘한다는 것이다. 오랫동안 기다린다고 해도 큰 불만은 없다. 노력도 아니고 어느 날 번개를 맞아서 머리가 돌아서 그렇게 된 것도 아니다. 어쩌면 그저 본디 그렇게 생겨먹은 것인지도 모른다.


동생과 조카가 나올 때까지 스티븐 킹의 ‘애완동물 공동묘지’ 하권을 읽고 있으면 지루함 따위는 전혀 없다. 에어컨을 켜고 기다렸던 최초의 시간은 오전 9시 40분이었다.


애완동물 공동묘지 하권이 시작하자마자 주인공 아들인 게이지가 죽는다. 이제 두 살 배기인데. 이야기는 점점 재미있어간다. 이 소설은 영화로 두 번이나 만들어졌다. 83년의 오래전 버전이 있고 얼마 전 2019년에 만들어진 최신 버전이 있다. 나는 전부 다 봤는데 다 재미있게 봤다. 소설도 재미있고, 영화도 원작과 리메이크 전부 재미있게 봤다.


그러니까 그 공동묘지에 시체를 묻으면 안 되는데 묻으면 다시 살아나는 것이다. 하지만 죽기 전의 모습이 아니라 좀 더 테러블 하게 변한 채 살아나는 것이다. 몸에는 썩는 냄새를 풍기며. 그런 내용이다. 공포 대가답게 스티븐 킹은 요리조리 잘 도 돌려가며 썼다.


고개를 드니 택시 승강장도 아닌데 많은 사람들이 아파트 근처에서 택시를 잡아타는 모습이 보였다. 조카만 한 여자아이를 안고 있는 아빠가 보였다. 그는 택시를 잡았다. 택시의 뒷 도어를 열었다. 아이를 안고 택시를 타고 문을 닫는다. 이것이 보통 택시를 타는 사람들의 전말이다. 다른 건 없다. 택시가 오면 택시를 타는 것이 목적이니까. 오른손을 들고 택시를 잡고 타면 되는 것이다. 택시를 타는데 그 중간에 무엇인가 끼어 들 거리는 없다.


그런데, 무심결에 보니 택시의 뒷좌석에 아이를 안고 타는데 택시 뒷문의 윗부분에 아빠의 머리가 닿을 듯 하지만 닿지 않고 거의 빈틈없이 아슬아슬하게 택시 안으로 들어갔다. 또 다른 사람이 택시를 잡고 있다. 30대 초반으로 보이는 여자다. 어째서 30대 초반으로 보이는지 물어본다면 그저 그렇게 보였기 때문이다. 여성은 꽤 높은 힐을 신고 있었고 여름용 시폰 원피스를 입고 있었다. 한 손은 4살 정도 된 아이의 손을 잡고 있었다. 택시를 잡고 아이를 먼저 태우고 택시를 타는데 또 머리가 뒷문 윗부분에 아슬아슬하게 닿을락 말락 하며 택시 안으로 들어갔다.


책 읽기를 포기하고 택시를 잡아타는 사람들을 지켜본 결과 대부분의 어른들이 택시 뒷좌석에 타면서 머리가 닿을 듯하며 들어갔다. 머리를 콩 하며 박는 사람은 없었다. 아이를 안고 있는 사람은 아이를 안은 대로 택시의 문을 열고 뒷좌석에 들어갈 때 머리가 닿을락 말락 하며 탔다. 머리와 뒷문 윗부분의 유격은 거의 나지 않았다. 마치 종이 한 장 정도의 틈이 있는 것처럼 보였다. 사람들은 정밀한 기계처럼 잘도 그 간격을 지키며 머리를 콩 박지 않고 택시를 잘 탔다.


그러다가 70대 중반의 할머니가 택시를 잡는 모습이 보였다. 나는 내셔널지오그래픽에서 학명도 알 수 없는 심해의 물고기를 비춰주는 화면을 응시하는 눈빛으로 그 모습을 바라보았다.


할머니가 손을 들었다.

택시가 앞에 섰다.

할머니는 머리가 하얗고 파마를 했다.

알록달록한 난해한 색의 남방을 입었다. 표현하기 힘든 색이다.

패션블루라든가, 카마인 레드, 오페라 바이올렛, 퍼머넨트 옐로 딥이 전부 섞인 컬러 같았다.

택시가 멈춰 서고 택시의 뒷도어를 열었다.

그리고 할머니는 뒷좌석에 타면서 머리를 콩 박았다.

하지만 언제나 그렇게 타는 것처럼 아무렇지 않게 택시 안으로 빨려 들어가서는 문을 닫았다.

그 모습은 며칠 전 모친이 차 뒷문으로 타면서 머리를 콩 박고는 아무렇지 않게 타는 모습과 흡사했다.


또 방학을 맞은 손자와 할아버지의 모습도 보였다. 오늘은 모두 택시를 타는 날인 모양이다. 두 사람은 무척이나 더운 길에 서서 택시를 잡고 있었다. 택시가 왔다. 설마 했지만 손자를 먼저 태운 할아버지도 뒷좌석에 타면서 머리를 콩 박았다. 나이가 든다는 이데올로기는 무엇일까. 젊은 시절에 비해 택시 뒷좌석에 탈 때 머리를 콩 박는 것과 연관이 있는 것일까.


시간을 보니 10시 17분이었다. 3분 있으면 예약시간인데 지금이라도 그녀들이 나와야 하는데 나오지 않고 있다. 예약시간도 하나의 약속인데 병원에서는 조카의 진료시간에 맞춰 그녀들을 기다리고 있을 것이다. 18분이 되었다. 하지만 저쪽에서는 그녀들이라고 할 수 있는 그림자도 보이지 않았다.


약속은 깨라고 있는 것이다. 어느 책에서 본 문구가 생각이 났다. 그러나 약속은 약속대로 중요한 구실을 갖고 있다. 약속은 한쪽의 일방적인 언행으로 만들어지는 것이 아니다. 쌍방 합의 하에 이루어지는 것이 약속이다. 약속은 아마 지구상에서 인간만이 할 수 있는 관념이 아닐까. 서로 믿음 같은 것들. 나는 병원입장을 고려하니 조금 초초해졌다. 지금 출발을 해도 예약시간에 맞추어 갈 수는 없다. 19분이 되었다. 1분은 아주 소중한 시간이다.


올림픽에서 잘 알 수 있다. 펜싱 경기에서 그 사실을 더 잘 알 수 있다. 1초 만에 경기가 뒤집어진다. 1초에 자동차가 4대나 만들어진다고 한다. 그런 면에서 본다면 1분은 정말 상당한 시간이다. 어떤 이는 짜장면을 1분 만에 먹는다. 1분 동안 만두달인은 만두를 몇 개나 빚어낸다고 한다. 이런 생각을 하며 1분 만에 그녀들이 오지 않을까 생각했지만 내 생각을 묵사발로 만들었다.


더욱 초조해졌다. 난 초조해지면 괄약근이 느슨해지며 그 사이로 방귀가 시종일과 나오지는 않지만 초조함이란 아주 묘한 감정이다. 밖에는 사람은 바뀌었지만 땀을 뻘뻘 흘리며 택시를 잡는 사람들이 있다. 전국의 택시는 도대체 몇 대나 있는 것일까. 택시에는 왜 이름이 없을까. 이런 쓸데없는 생각이 드는 건 순전히 초조함 때문이다.


그날 점심에는 생선구이 집에서 열심히 생선을 뜯어먹었다. 조카는 냠냠 잘도 먹었다. 현실로 돌아와서 요즘도 거의 매일 생선을 먹고 있지만 조카가 아가아가였을 때처럼 신나게 생선을 먹을 수 있는 마음이 줄어들어 간다. 뭐가 어떻게 돌아가고 있는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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