찬물에 샤워를 했다가 온몸이 쪼그라드는 느낌이 드는 걸 보니 이제 끝까지 붙들고 있던 여름이 서서히 물러가는 것 같아서 이상한 기분이다. 나의 내부의 한 부분이 텅 비어 버리는 느낌이 든다. 쨍쨍하고 짱짱한 열기 가득한 여름이 가을에게 자리를 내어 주는 시기에는 늘 이런 기분이 든다. 마치 오랫동안 옆에서 함께 일어났던 강아지가 죽어버린 것 같은 느낌이다. 한 여름에는 그렇게 시원하지도 않았던 찬물이 지금은 몹시 차가워서 욕이 나올 뻔했다.


라면을 하나 끓여 먹자. 계란도 하나 넣어서 잘 풀고 휘휘 저어서 맵지 않게 후루룩 먹자. 아무리 기억을 떠올려 봐도 처음 라면을 혼자 끓여 먹었던 기억이 나지 않는다. 분명 초등학생이었을 텐데, 초등학생 때 먹는 라면은 정말 맛있었을 텐데, 도대체 처음은 언제 일까. 집에서 끓여 먹었을 것이다. 처음은 아니지만 라면에 대한 기억이 있다. 내가 저학년일 때, 동생이 배가 고프다고 했다. 오빠 라면 먹고 싶어. 엄마는 시장에 장을 보러 나가셨고 나는 동생을 돌보고 있었는데 동생이 배가 고프다며 라면이 먹고 싶다고 했다.


호기롭게 냄비에 물을 붓고 난로 위에 올려서 라면을 끓였다. 그런데 물이 팔팔 끓지 않고 조금 뜨거운? 정도가 될 뿐이었다. 아무리 오래 걸려도 물이 팔팔 끓지 않았다. 동생은 배가 고파서 얼굴이 엉망이었다. 나는 그렇게 뜨겁지 않은 물에 면을 집어넣고 스프를 넣었다. 팔팔 끓어야 하는데 면이 조금 뜨거운 물에서 불기만 했다. 그때 어린 나이였지만 좌절했다. 동생이 이렇게나 배가 고프다고 하는데 나는 그런 동생을 위해 라면 하나 제대로 끓여주지 못했다.


이 세상이 망하고 동생과 둘이 남았을 때 나는 동생을 지켜주지 못한다는 생각까지 하면서 나 자신에게 너무 화가 났다. 짜증이 났고 분노가 났다. 면은 불어서 이상한 라면이 되었다. 그러나 어렸던 동생은 뜨겁지 않아서 좋다며 맛있게 먹었다. 그게 사실 별 것도 아닌데 동생이 맛있게 먹는 모습을 보니 마음이 이상하기만 했다.


엄마가 한참 후에 시장에서 오셨고 나는 억울한 마음을 담아 그 이야기를 했다. 내가 난로의 불조절을 잘하지 못해서 물이 팔팔 끓지 않았다. 나는 그때의 기억을 지금까지 생생하게 가지고 있다. 분명 그 이전에 라면을 끓여 먹었을 텐데, 그렇기에 동생에게 라면을 끓여 준다고 라면을 끓였을 텐데 처음의 기억이 없다. 그래서 내가 처음으로 라면을 끓여 먹은 기억은 불조절을 잘못하여 썩 뜨겁지 않은 물에 불리다시피 끓여 먹었던 라면이 자리 잡고 있다.

 

라면에 관한 이야기는 해도 해도 끝이 없고 라면은 언제나 맛있다. 친구들과 함께 먹는 라면이 어른들과 함께 먹는 소고기보다 더 맛있다. 라면 속에는 맛뿐만 아니라 같이 먹는 사람과의 유대를 더 돈독하게 만드는 특별한 무엇인가가 있다. 어딘가 캠핑을 갈 때 이것저것, 찌개재료나 탕의 재료를 가지고 가더라도 라면은 꼭 챙긴다.


예전에 제주도에 3일 정도 갔다 온 적이 있었는데 펜션에 머물렀는데 밖에서 음식을 먹는 것을 제외하고는 펜션에서는 라면만 끓여 먹었다. 주로 펜션에서 보냈다. 어딘가 구경을 다니지 않았다. 일행도 전혀 싫어하지 않고 마음이 잘 맞았다. 고기를 굽는다던가, 뭔가를 조리해 먹는 다던가, 전부 귀찮다. 라면이 최고다. 배고플 때 라면만큼 맛있는 것도 없다. 우리는 그랬다.  


3일 동안 어디 돌아다니지 않고 숙소에 머물면서 일행과 책이나 읽고 선텐이나 하고 배고프면 라면 끓여 먹고 잠 오면 덱체어에서 잠들고. 라면이 지겨울 때면 숙소 근처 식당에서 밥 먹고. 일행과 그런 점에서 마음이 잘 맞았다. 둘 다 돌아다니는 것도 별로고, 가지고 갔던 소설이나 읽고 또 읽으며 맥주나 마셨다. 그때 혹시나 해서 차도 렌트를 했지만 거의 몰지 않았다.  


모텔에서 라면을 먹는 맛도 좋다. 어딘가를 가서 숙소를 모텔로 잡아도 뜨거운 물이 나오는 생수기기가 있어서 컵라면을 먹을 수 있다. 모텔은 아무리 잘 꾸며도 모텔만의 냄새가 있다. 모텔만이 가지는, 모텔의 기운이 깃든 냄새가 있다. 붙박이형 대형 티브이, 햇빛완전차단의 커튼, 깨끗하고 갓 세탁한 듯 보이는 하얀 시트와 이불, 그러나 어쩐지 찜찜한. 작은 테이블과 의자, 일회용 세면도구와 모텔이라 알 수 있는 인터폰과 국밥집 전화번호 따위들.


그런 모텔만의 냄새가 있지만 티브이를 보면서 먹는 컵라면은 정말 맛있다. 잠시 모텔만의 냄새를 잊게 만든다. 몇 종류의 컵라면을 먹어봤지만 모텔에서 이상하지만 왕뚜껑이 제일 맛있었다. 왕뚜껑을 먹을 때에는 악착같이 단무지를 같이 사 와서 먹어서 그런지, 왜 다른 날에 다른 컵라면으로 먹을 때에는 단무지를 같이 먹지 않아서 그런지 왕뚜껑이 맛있다. 단무지도 왕뚜껑에 제일 잘 어울리는 것 같다.


왕뚜껑을 가장 많이 먹었을 때가 군대 있을 때다. 피엑스 병을 하면서 더 많이 먹었던 것 같다. 거기서는 단무지 따위는 없었다. 그저 라면을 후루룩 먹을 뿐이다. 그러나 참기름과 고추장을 조금 풀어서 먹으면 아주 맛있다. 정말 끝내주는 맛이다. 끓여 먹는 라면보다 더 맛있었다. 면회 오는 아이들에게 그렇게 왕뚜껑을 해주니까 다들 맛있어했다.


뽀글이도 많이 해 먹었다. 이번 신병 2에서 비빔면 뽀글이 뜨거운 물에 해줬다가 강찬석 상병이 표정이 변했다. 그때 분위기 살벌했다. 그런데 우리는 비빔면 뽀글이는 늘 뜨겁게 해 먹었다. 비빔면 뽀글이 뜨겁게 해서 케첩을 뿌려 먹으면 맛있는 스파게티의 맛과 똑같다. 요즘도 나는 비빔면을 뜨겁게 해서 먹는다. 신병 시즌 2는 시즌 1에 비해서 재미는 떨어졌다. 그러나 인간대 인간으로 감정에 대해서 감동적인 부분은 더 좋아졌다. 최일구가 이병 시절 구 막사였는데 막내 시절에 많이 두드려 맞는 장면이 나왔다.


내가 딱 그 구 막사 시절이었고 엄청 구타를 당했다. 맞다가 안경까지 부러졌다. 그 정도로 구타가 심했다. 그러나 신병 시즌 2에서처럼 막내 때 힘들다고 울지는 않았다. 울고 자시고 할 정신이 없다. 잠잘 때에도 군기가 들어 있었다. 누가 건드리기만 해도 관등성명을 대면서 발딱 일어났다. 어딘가에 숨거나 힘들다고 눈물을 흘리고 할 뭐 그런 게 없었다. 신병 시즌 2에서는 코믹요소가 많아졌다. 가장 코믹 캐였던 소대장에 마지막에 중대장에게 한 마디 할 때에는 꽤 멋졌다.


영화 속에서도 라면 먹는 장면이 다른 음식보다 월등히 많다. 아니다 국밥이 많은가? 아니다 라면 먹는 장면이 가장 많다. 이병헌의 라면 먹방, 차승원의 라면 먹방, 요즘 나락으로 간 임창정의 라면 먹방은 영화 속 라면 먹방으로 인기기 최고다. 영화 속 다른 먹방보다 훨씬 맛있게 보인다.


현재 맛있는 라면이 아주 많다. 신제품도 속속 나오고 있고, 대형마트에서도 자체 상품으로 천 원 미만의 라면이 등장하는데 사람들의 후기가 꽤 좋다. 새로운 라면이 출시되면 예전처럼 티브이 광고를 하는 것이 아니라 잘 나가는 먹방 유튜버에게 광고를 넣는다. 신제품을 먹방하고 그걸 리뷰를 한다. 어떤 먹방 유튜브는 이건 이래서 별로라고 거짓 없이 말을 하기도 한다.


사실 라면은 대체로 다 맛있다. 그렇지 않을까. 신제품 라면들은 좀 더 맵거나. 좀 더 면이 꼬들하거나, 이런 차이일 뿐이지 맛이 없을 수는 없다. 라면 종류가 많아서 선택의 폭이 넓어져 좋은 것이 아니라 선뜻 새로운 라면에 손이 가지 않는다. 그래서 홍수처럼 쏟아지는 여러 종류의 라면 속에서 나는 늘 먹던 라면만 먹는다. 나는 라면의 세계에서만큼은 확증편향 적인 편이다. 먹던 라면만 먹는다.


그리고 추억의 절반이 맛이라고, 라면도 자꾸 추억 속의 라면 맛을 찾으려고 한다. 그 예전 어릴 때 초등학교에서 그 애와 같이 앉아서 먹었던 컵라면의 맛. 나는 분명히 그 맛을 기억하고 있다.


오늘의 선곡은 머라이어 캐리의 노래다. 90년대 초중반의 머라이어 캐리는 정말 예쁘고 노래가 굉장했다. 우리는 시도 때도 없이 음악 감상실에 달려가서 머라이어 캐리의 노래를 무척 큰 화면으로 신청해서 입을 벌리고 보곤 했다. 엠티비 언플러그드가 강세였다. 팝가수들이 뮤직비디오를 열과 성의를 다해 찍었다.


바야흐로 듣는 음악에서 온몸으로 즐기는 음악으로의 도약이 시작되는 것이었다. 머라이어 캐리의 손동작 하나하나에 우와우와 했다. 헤어스타일과 표정 무엇보다 그 돌고래 같은 목소리가 독보적인 머라이어 캐리였다. 입을 이렇게나 크게 벌리는데도 얼굴이 망가지지 않았다. 특히 이모션을 부를 때 머라이어 캐리는 예쁜 얼굴이 도망가지 않으면서 돌고래의 목소리로 노래를 불렀다. 그저 대단했다.


그렇게 오 밤중에 음악 감상실에서 기어 나온 우리는 늘 가는 다운타운의 분식집으로 갔다. 거기 라면이 기가 막혔다. 라면에 당근이 채 썰여서 들어가고 반찬으로 김치와 단무지가 나왔다. 단무지가 라면에 잘 어울렸단 말이야.


Mariah Carey - Emotions https://youtu.be/h4abd6m71hk?si=E7CDn040d3VvSJG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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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루키의 여행 에세이 사진집이라고 하는 이 책은 하루키 에세이 우천염전의 사진 버전이라고 봐야 할까 싶다. 우천염전 에세이는 여행기라고 하나 먼 북소리와 다르고, 라오스에는~~ 과도 다른, 개고생을 거듭하는데 그 속에서 만난 사람들과 풍경을 하루키만의 유쾌한 직유로 풀어내는 에세이였다.


우천염전을 비롯해서 여기 사진집의 사진은 하루키를 따라나선 에이조 군이 맡았다. 그 이전의 여행기에서 사진은 주로 아내인 요코 씨가 맡았다. 하루키 뉘앙스로 에이조 군보다 요코 씨의 사진이 좀 더 프로 같다. 그러나 하루키는 좀 덜 프로 같은 에이조 군의 사진을 좋아한다. 요코 씨도 사진작가이니 요코 씨의 사진은 즉 돈을 받고 팔아 버려도 될 법하다.


소설 댄스 댄스 댄스에서 유키의 엄마로 세계적인 사진작가가 나온다. 소설가인 남편 마키무라 히라쿠와는 떨어져 외팔이 남자와 함께 생활하는 사진작가는 사진에 몸과 영혼을 팔아버린 사람이다. 유키의 엄마이자 사진작가로 나오는 캐릭터는 하루키가 아내인 요코 씨를 염두에 두고 그려내지 않았을까 그런 생각을 했었다.


태엽 감는 새 이후 노몬한 전투가 있었던 곳으로 해서 여러 험난하고 위험한 곳을 여행하느라 아내보다는 에이조 군이 따라나서게 되었다. 에이조 군의 사진을 보면 하루키의 말대로 소박함에서 묻어나는 일상의 노력들이 보인다.


우천염전을 읽다 보면 마치 소설을 읽고 있다는 착각이 들 정도로 글이 좋다. 하루키의 헤실헤실 키득키득 류의 에세이와는 조금 결이 다르다. 군데군데 소설적 암시적인 문장이 가득하다.


[그것은 어쩌면 ‘바다’라고 불러서는 안 될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문득 이것은 어쩌면 일종의 의식이 아닐까 하는 생각까지 들었다. 정신이 아득해질 것 같은 시간과 희생을 거쳐 철저하게 양식화된, 미의 핵심으로 돌진한 나머지 본래의 의미마저 잃어버린 의식, 그런 의식을 떠올리게 한다]


이 같은 문장이 우천염전에는 가득하고, 2편 격인 사진집으로 여행기를 보여주고 있다. 사진은 전부 에이조 군이 담았는데 위에서 말한 것처럼 소박하고 투박하다. 그래서 흙의 점성을 그대로 느낄 수 있는 질감의 사진이라 그 속의 인간들의 생생한 모습도 엿볼 수 있다.


개인적으로 사진 속에 사람이 들어있는 사진이 좋다. 멋진 풍경을 담은 사진은 감탄이 있지만 감동은 좀 드물다. 그러나 그 사진 속에 사람이 있으면 스토리가 피어난다. 이야기가 있는 사진이 사람을 담은 사진이다. 물론 팔리지 않고 돈은 덜 되겠지만.


브레드 피트의 흐르는 강물처럼 이 생각나는 이 사진을 보면 알래스카를 사랑한 사진작가 호시노 미치오가 떠오른다. 어린 나이에 알래스카의 아름다움에 매혹되어 숭고한 자연의 모습을 담아낸 사진작가. 호시노 미치오의 사진 에세이는 무척이나 좋다. 사실 사진으로만 본다면 하루키의 여행법 보다 몇 배는 더 좋다. 대자연의 경외를 고스란히 에세이에 쏟아부었다. 거대한 그리즐리가 야영하는 텐트 안으로 입을 벌리고 들어오는 모습을 마지막으로 담아내며 죽어 버린 호시노 미치오의 사진을 보는 것 같다.


하루키의 에세이에서 부족한 면을 에이조 군이 담은 사진과 함께 인간의 발자취 내지는 흔적을 찾아가면서 만나는 사람들의 이야기가 있는 사진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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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랜만에 쓰는 편지입니다. 앞 선 편지 이후에 틈이 있었습니다. 찬란한 계절에 속수무책으로 빠져들어 자연에 동화되어 버렸습니다. 뜨거운 태양과 찰랑거리는 물결에 반사되는 빛의 실루엣에 그만 나 자신을 놓아 버린 것 같습니다. 이제 다시 계절이 옷을 갈아입으려 해서 아차 당신에게 편지를 오랫동안 쓰지 않았다는 걸 알았습니다. 오랜만에 쓰는 편지라고 해서 미안하다고 말하지는 않겠습니다. 당신은 그 예전의 온화한 미소로 나의 편지를 꼼꼼하게 읽겠지요.


얼마 전에 위대한 개츠비를 다시 한번 읽었습니다. 읽었던 소설을 자꾸 읽는다는 것이  무엇을 말하는 것일까요. 다시 읽는 소설은 처음 읽었을 때와는 다른 느낌입니다. 잘 설명은 못하겠지만 더 좋다,라는 것보다 여러 가지 생각을 가지게 합니다. 당신은 위대한 개츠비의 이야기를 무척이나 좋아했지요. 당신은 위대한 개츠비에 대해서 이야기를 하면 한 시간이고 두 시간이고 즐겁게 이야기를 했습니다.


개츠비는 그런데 정말 위대한 걸까요.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개츠비는 데이지가 오지 않을 거라는 걸 압니다. 마지막 장면은 마치 어셔가의 몰락의 시작 같은 분위기입니다. 정말 쓸쓸하고 삭막하고. 그러면서도 수영장에서 데이지를 기다립니다. 그리고 개츠비는 죽음을 받아들입니다. 위대한 개츠비는 위대했을까. 내내 그런 생각에 사로 잡혔습니다. 위대한 개츠비의 제목을 피츠제럴드는 원래 개츠비로 하기로 마음먹었습니다. 그러나 출판사와 젤다의 권유로 위대한 개츠비로 했습니다. 피츠제럴드는 위대한 개츠비가 마음에 들지 않았습니다. 당신도 알고 있는 사실입니다. 피츠제럴드는 그저 개츠비로 하고 싶었습니다. 개츠비는 위대할까. 어쩌면 개츠비가 위대한 개츠비가 된 것에는 데이지 때문이 아닐지도 모릅니다. 데이지를 위해 5년 동안 블랙사업 같은 것으로 엄청난 부를 축척한 것 때문에 위대한 개츠비가 된 것이 아닙니다. 피츠제럴드가 위대한 개츠비로 하기로 한 것에는 개츠비가 죽음을 받아들였기 때문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가끔 죽음을 생각합니다. 아니 죽음 그 이후를 생각합니다. 죽고 나면 아무것도 없는 무의 상태, 어쩌면 그 무의 상태를 느끼지도 못하는, 그야말로 Zilch상태가 되어 허공에 먼지처럼 흩어져 버립니다. 살아 있을 때 이런 공허와 상태를 받아들이는 건 쉽지 않습니다. 우리는 그런 상태로 돌입하려고 긴 시간 애를 쓰며 살아가는지도 모릅니다. 죽는다는 것, 받아들이면 괜찮아 질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나는 아직 그 죽음이라는 것을 받아들이는 연습을 해보지 못하고 있습니다. 언젠가는 죽을 것이고 주위의 죽음을 많이 봤지만 죽음이 나에게 닥쳤을 때 분명 거대한 두려움에 떨 것입니다. 죽는다는 걸 생각하면 아무렇게나 살면 뭐 어때 같은 마음이 듭니다.


세상에 죽고 싶은 사람이 있을까요. 죽고 싶어서 죽는 사람은 없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죽음을 선택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살아있되 이미 자신을 놓아버린 상태가 된 사람들 말입니다. 더 이상 죽음이 두렵지 않을 정도로 끝까지 내몰린 상태 말입니다. 벼랑 끝에 와서 살아야겠다는 의지보다는 떨어져 죽음으로 가는 포기를 택하는 것입니다.


어떻게 사람의 뇌가 죽음을 두렵지 않게 변하는 것일까요. 인간의 본능은 죽음을 멀리합니다. 인간은 모두가 죽지만 나 자신은 그 죽음에서 배제합니다. 그런데 외부의 인해 뇌에서 어떠한 물질이 흘러나와 죽음을 더 이상 두려워하지 않게 만들고 결국 죽음을 받아들이는 사람이 있습니다.


살아있는 생명체는 모두가 죽습니다. 죽고 난 후에는 아름다운 육체 따위는 없습니다. 박제는 박제대로 이상한 형태입니다. 육체는 심장이 멈추는 순간부터 부패하기 시작합니다. 썩어 갈 뿐입니다. 끔찍한 일이지만 죽고 나면 그런 것 따위는 아무래도 상관하지 않습니다. 살아있는 것들 뿐만 아니라 생명이 없는 물품도 시간이 지나면 형태가 망가지고 사라집니다. 죽음이란 모든 것에 해당된다고 생각합니다.


죽지 않는 건 계절입니다. 그 계절을 움직이는 건 시간입니다. 시간은 계절을 순환시키며 반복케 합니다. 계절은 한 번 죽지만 일 년 뒤에 다시 태어납니다. 그 순환을 인간의 힘으로 막을 수는 없습니다. 인간은 자신이 죽는다는 것을 애써 외면하며 지냅니다. 죽음은 삶의 대극이 아니라 삶의 일부분입니다. 당신과 제가 좋아했던 문구입니다. 요즘 좋아하는 노래가 있습니다. 서니의 런이라는 노래입니다. 우리가 찾았던 인생의 페이지 오늘은 어떻습니다. 또 편지하겠습니다.



Sunnie - Run https://youtu.be/mNkcq8zQjC0?si=qyBu-K2bVJO2Msl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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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원이 무엇일까 궁금하지만 이 소설에서 소원은 맥거핀에 지나지 않는다. 소원이 무엇일까에 독자들은 관심을 가지지만 정작 중요한 건 소원이 무엇인가 하는 것 따위가 아니다.


이따금 그 스무 살 생일날 밤에 일어난 일이 모두 다 환상이었던 것처럼 생각되기도 해. 어떤 작용 같은 것이 일어나 실제로는 없었던 일을 그냥 있었다고 믿고 있는 게 아닌가 하는, 하지만 말이지, 그건 틀림없이 실제로 일어났던 일이야.


내 인생에 깜짝 놀랄 행복한 순간을 맞이했어도 시간이 지나면 그 기억은 조금씩 퇴색되어 간다. 그리고 기억은 그 끈을 놓지 않으려 안간힘을 쓰지만 시간은 자꾸 나를 타이르고, 어느 순간 보면 그때 그 일이 있었지 같이 되어 버린다.


아주 특별한 물건도, 특별한 사람도, 특별한 사랑도 일상에 되어 버리면 무섭도록 고요해진다. 스무 살 생일에 어떤 소원을 빌었는가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그 소원으로 인해 다가올 그녀의 미래가 옳은 선택을 하고도 옳지 못한 결론에 도달할 수 있고, 혹은 그 반대로 옳지 못한 선택을 했는데 올바른 결론에 닿을 수도 있다. 어떠한 결론이라도 도달하면 그녀 자신이 받아들여야 한다는 것이다.


인간이란 어떤 것을 원하든, 어디까지 가든, 자신 이외의 존재는 될 수 없는 것이구나,라는 것. 단지 그것뿐이다.


후기를 보면 사소설 형식으로 ‘나‘는 하루키다. 소설 속에도 하루키가 등장한다. 생일은 매년 찾아오지만 스무 살의 생일이란 한 인간에게 딱 한 번 찾아온다. 그녀는 노인에게 소원을 빌면서 스무 살 생일을 평범하게 보내지 못했을지도 모른다. 일종의 마음의 텅 빈 공동이 생겼을지도 모른다.


인생은 그 공동을 어떤 식으로 채워나가느냐 하는 문제다. 그걸 채울 수 있는 사람은 오로지 자신. 자신 이외의 존재는 될 수 없다고 하루키는 말하고 있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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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있었던 일이다. 2살쯤 되어 보이는 남자아이를 부부가 돌보다가 서로 미루는 모습을 보았다. 2살짜리 남자아이는 굉장한 에너자이저였다. 엄청난 행동력과 멈출 줄 모르는 호기심 본능이 엄마를 힘들게 했다. 엄마 혼자 아이를 돌볼 수 없고, 아빠 혼자서도 무리였다. 부부가 같이 아이를 돌봐야 하는데 부부는 힘이 들어서 자꾸 화장실이다, 편의점이다, 한 명이 한 명에게 아이를 맡기고 자꾸 그 자리를 피하려고 했다. 부부는 그런 육아 때문에 그동안 마찰이 있었던 것처럼 아슬아슬했다. 요즘은 육아가 참 힘들다. 무엇보다 기분이 태도가 되는 일이 많아진 요즘에는 더 그런 것 같다. 아이에게 그래서는 안 되지만 그러는 부모들이 늘어났다.


티브이 광고 중에 정관장 광고를 보니 90년대 초반 영상이 나오며 젊은 부부가 어린아이들을 데리고 노는 장면이 나온다. 주 6일 일을 하면서도 일요일에는 우리들을 데리고 놀아주고 어디를 데리고 다녔던 우리 부모님. 같은 이야기를 광고는 하고 있다. 생각해 보면 지금보다 덜 힘들지는 않았을 것이다.


여름 방학 때 에어컨도 없지, 날은 더운 여름날에 심심하고 더위에 허덕이고 있을 때 밤에 잠이 들었다가 일어나니 바닷가에서 눈을 뜬 경우도 있었다. 아버지는 잠든 우리를 안고, 업고. 차도 없어서 택시에 잠든 우리를 태우고 바캉스 물품을 챙겨 음식까지 싸들고 새벽에 바닷가로 온 것이다. 도대체 부모님은 어디서 그런 초능력이 나왔을까.


우리 집은 내가 어릴 때 상당히 가난했다. 어렴풋한 기억에 단칸방에 네 가족이 살았다. 아버지는 학창 시절에 공부는 등한시하고 놀러 다니고 사고나 치는 문제학생 축에 속했다. 이미 그때 팔뚝에 문신도 새기고 타학교 아이들과 싸우느라 유치장에 들락날락거렸다. 그러다가 어머니를 만나고 사랑을 하고 외할머니에게 가서 엎드려 빌다시피 해서 결혼을 했다. 결혼을 하면 정신을 차리겠습니다!


그러나 결혼을 해서도 쉽게 자리를 잡지 못했다. 남자들에게 인기가 좋아서 아버지 주위에는 늘 후배나 선배 같은 사람들이 많았다. 월급도 그날 다 써버리고 어머니의 속을 많이 상하게 했다. 결혼을 해서도 유치장의 신세를 여러 번 졌다. 그럴 때마다 아버지 누나들, 고모들이 빼내 주었다.


그러다가 내가 태어났고 아버지가 어느 날 술에 취해서 집으로 들어와서 보니 갑자기 현실에 부딪혀 겁이 났던 것이다. 이렇게 살아서는 전혀 미래가 없다고 느끼고 주위 사람들을 버리고 나와 어머니를 데리고 지금 이 도시로 와서 중공업에 취직을 해서 죽어라 일을 했다. 당시는 열심히 일하면 그만큼 노동의 대가를 얻는 시대였다. 회사와 집이 버스로 한 시간 반 정도 떨어진 거리라 아버지는 매일 새벽에 일어나서 직접 아침을 챙겨 드시고 출근했다. 그동안 어머니에게 미안했던지 새벽에 어머니는 계속 주무시게 하고 아버지는 늘 라면을 하나씩 끓여 드시고 출근을 했다.


아버지는 내가 일어나면 먹으라고 꼭 밥그릇에 라면을 들어 놓고 출근을 했다. 아침에 눈을 뜨면 라면은 국물이 하나도 없고 퉁퉁 불어서 식은 라면이 한 그릇 놓여 있었다. 처음에는 저걸 어떻게 먹나 했다. 젓가락으로 뜨면 다 불고 붙어버린 라면이 그대로 젓가락에 붙어 올라왔다. 그러나 한두 번 먹다 보니 식어빠지고 불어 터진 푸딩화 된 떡 진 라면이 멋있었다. 참 기묘한 일이다.


동생이 태어나고 아버지는 담배도 끊었다. 회사에서 나 오늘부터 담배를 끊을 테야,라고 선언했고 직장동료들은 에이, 무슨 그런 거짓말을.라고 했지만 아버지는 그날로 바로 담배를 끊어버렸다. 그리고 돌아가실 때까지 담배를 입에도 대지 않았다. 회사 동료들은 아버지를 독한 사람이라고 해서 독 없는 독사라고 불렀다. 회사 야유회 때 아버지의 동료들이 나에게 그런 말을 했다. 아버지는 동생이 태어난 이후 더 열심히 일을 했다. 그렇게 해서 방이 두 개에 거실이 딸린 집으로 이사를 했다. 아버지와 어머니의 기뻐하는 모습을 잊을 수가 없다.


아버지는 가난했지만 우리들 사진을 찍어서 출력하는 걸 좋아했다. 그러다 보니 카메라가 3대 있었다. 6일 동안 새벽에 나가 저녁에 퇴근을 하고 집으로 와서 녹초가 되었어도 일요일이 되면 우리를 데리고 극장이다, 동물원이다, 놀이공원으로 데리고 가서 사진을 찍어 주었다. 다른 집에 비해 사진 앨범이 많았다. 앨범 속에는 어린 시절의 나와 동생의 모습이 많이 있다. 그때 함께 사진 속 아버지의 표정은 밝기만 하다. 분명 삶을 살아내느라 그렇게 밝지만은 않았을 텐데.


5학 때인가 겨울에 온 가족이 연탄가스에 중독이 되었다. 아버지와 어머니도 연탄가스 때문에 정신이 없었을 텐데 아버지는 동생을 업고 병원으로 달려갔다. 119를 부르면 될 텐데 아버지는 급한 마음에 10분 정도 거리에 병원이 있어서 그곳으로 달려갔다. 온 가족이 병실에 누워 치료를 받았다. 시간이 좀 지나 아버지는 그때의 일을 재미있게 떠올리곤 했다. 아버지는 살아생전 우리 앞에서 눈물 한 방울 보이지 않으셨다. 어른이 되고 보니 아버지도 얼마나 울고 싶었을까. 그 엄청난 무게, 압박감에 울어도 괜찮을 법도 한데 절대 그러지 않았다.


아버지는 일요일이 되면 우리와 함께 시간을 보냈다. 같이 놀아주고 그 놀이를 즐겼다. 여기 서 봐, 그래 거기 서 봐. 카메라 보고. 그렇게 아버지는 우리의 모습을 사진으로 담아 주었다. 사진은 시간을 잡아두는 마법을 펼친다. 집에 있는 앨범은 잘 펼쳐 보지 않게 된다. 그래도 헙, 하며 마음을 먹고 오래된 앨범을 펼치면 그 시절로 다시 돌아가는 기분이 든다. 그 시절 속 부모님은 초능력을 지니고 있었다. 나는 아버지처럼 멋지게 살아갈 용기가 없어서 나의 모습이 비겁해 보이는 요즘이다.

아빠를 따라 나온 바다

세상은 바다와 같단다

가도 가도 끝이 보이지 않는 바다


자신의 힘으로 자신이 있을 곳을 찾는다는 것

어려우면서 꽤 멋진 일인 거 같아

어딘가에 있는 나의 행복을 바라는 일은

또 다른 누군가의 불행을 바라는 일과 마주하고 있는 일일지도 몰라

혼자서 세상에 발을 내밀기 전까지는 아빠가 곁에 있어 줄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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잉크냄새 2023-09-12 15:4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사진 찍는 일이 알게 모르게 그렇게 전해져 내려온 거군요.

교관 2023-09-13 11:57   좋아요 1 | URL
아가를 담은 엄마의 휴대폰 사진첩에는 전부 그 사진이 그 사진 같은데 엄마의 눈에는 다 달라보이죠 ㅎㅎ 그 수많은 아가의 사진에서 사랑이라는 걸 소거하면 정말 재미없는 사진들인데 엄마는 하나하나 꼼꼼하게 보며 웃더라고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