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라카미 라디오 54화에서 하루키가 소개한 곡이다.

40년 정도 전에 센다가야 이발소에서 머리를 자르고 있을 때 이 연주를 듣고 ‘아, 이거 제대로 재즈구나’라고 감탄했던 기억이 있습니다. 그 이후로 이 레코드를 찾으려고 했는데 좀처럼 찾을 수 없었습니다. 그런데 얼마 전 중고 가게에서 CD로 된 음반을 발견하고 350엔에 사 왔습니다.


퍼시 페이스 오케스트라로 유명하지만, 그런 고정된 악단이 있었던 것은 아니고, 녹음 때마다 그때그때 스튜디오 뮤지션을 모아서 만들었던 유동 유닛버전입니다. 그래서 이름 있는 웨스트 코스트 재즈 뮤지션이 꽤 들어가 있는 경우가 있습니다. 그런 사람들이 분명 즉흥적으로 놀이처럼 연주한 것이겠지요. 어쨌든, 40년 만의 해후하고 할까. 그리웠습니다.


라며 하루키는 퍼시 페이스 버전의 아오이 산미야쿠를 튼다. 퍼시 페이스는 1900년대 초에 태어나서 70년대에 죽었다. 그의 곡은 너무나, 정말 너무 유명해서 누구나 한 번, 아니 두세 번은 들어본 음악이다. 우리나라에도 정말 많이 사용되었는데 티브이 프로그램의 시그널 음악에 주로 사용되었다. 일단 한 번 들어보면 아, 이 음악이야? 하게 된다.


퍼시 페이스의 모든 곡들이 지금 이 가을에 듣기 몹시 좋다. 음악이 눈으로 보는 것처럼 정말 아름답다. 퍼시 페이스가 이렇게 일본풍의 음악을 오래전에 연주한 것을 보면 일본의 문화는 정말 여러 나라로 뻗어 나간 것 같다. 아주 오래전 호쿠사이의 파도를 본 드뷔시가 라메르를 작곡까지 한 것을 보면. 드뷔시는 살아생전 바다를 한 번도 보지 못했는데 그 그림 하나를 보고 파도가 치고, 무엇보다 연주 중간중간 일본풍의 느낌이 난다는 게 너무나 신기할 뿐이다.


우리나라도 해방 후 우리나라에 공연을 하러 온 넷킹 콜이 아리랑을 불러서 자신의 음반에 싣고, 또 재즈의 신 루이 암스트롱이 공연을 하러 한국에 왔다가 눈에 띄는 천재를 발견하고 데리고 미국으로 가서 가수의 꿈을 실현시켜 준다. 그 아이(라고 해서 죄송)가 윤복희였다.



PERCY FAITH - Aoi Sanmiyaku (Blue Ridge Mountai 青い山脈 https://youtu.be/Ii1IxjCe_qQ?si=uCMAZ0a-4DuummaN


퍼시 페이스 오케스트라의 수많은, 정말 수많은 곡들 중 가장 많이 들어봤을 이 음악, 너무나 멋진 음악 A Summer Place https://youtu.be/0Up1bK88PDo?si=DIEzJf3tBtk1tUp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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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내 체육복 패션으로 지내다가 가을이 오면, 딱 이 계절에 체육복을 벗어던지는데 이제 볼이 시릴 정도로 차가운 바람이 부는 겨울이 되었다. 다시 체육복 패션으로 돌아갈 시간이다. 차가운 날이지만 강변을 달리는 것에는 하루키의 말대로 정경의 매력이 있다. 바람이 한 차례 휘잉 몰아치면 책장을 넘기듯 강의 물결이 그에 응답을 하는 모습을 보여준다. 봄, 여름, 가을의 강에서는 도저히 볼 수 없는 풍경이다. 그 흐름에 떠 있는, 숨죽여 잠을 자던 오리들도 오선지의 음표처럼 물결친다. 그 흐름을 눈으로, 감촉으로 느끼고 있으면 실감이라는 것에 다가서는 기분이 든다. 이런 기분을 느끼려면 차가운 겨울이라도 밖으로 나와 조깅을 해야 한다.

넷플릭스의 영화 데이빗 핀처 감독의 ‘더 킬러’를 보는데 옆에서 매일 똑같은 루틴으로 재미없게 살아가는 삶이 나와 비슷하다는 말을 들었다. 영화 속 킬러의 삶은 너무나 평면적이다. 입체적으로 생각을 할 겨를이 없다. 매일 같은 시간에 일어나서 같은 시간 동안 운동을 하고 같은 시간만큼의 음식을 먹는다. 음식도 지방이 붙을 기미가 없는 음식으로, 그것도 배가 부르지 않을 정도로, 허기를 달래줄 만큼 먹을 뿐이다. 햄버거를 먹을 때에도 밀가루 빵을 빼고 안의 내용물만 소스 없이 먹는다. 매일 같은 시간에 어제와 다름없는 일을 하고, 비슷한 시간에 비슷한 곳의 사진을 담아서 스토리에 올리고, 비슷한 시간에 비슷한 시간 동안 조깅을 한다. 날씨가 추우나 더우나 비가 오나 – 적게 오나 많이 오나 비슷한 거리를 달리는 따분한 삶이 영화 킬러의 평소 모습과 닮았다는 것이다. 규칙을 정해 놓은 건 아니지만 대부분 그렇게 비슷한 시간에 비슷한 일이나 비슷한 음식을 먹으며 살지 않을까.

매일 오전에 커피를 투고하러 로컬카페에 가면 늘 사장님이(아주 젊은 여자 사장님이다. 어머니와 함께 카페를 운영한다) 몇 년 동안 오전 7시부터 늘 비슷한 모습으로 전혀 변하지 않는 얼굴과 체형을 유지하며 커피를 내려준다. 커피를 투고하러 가는 사이에 서른한 가지의 아이스크림 가게의 사장님은 늘 비슷한 모습으로 비슷한 시간에 가게 안을 정리한다. 대부분 그러지 않나 싶은데 나는 좀 특별히 더 재미가 없는 생활을 할지도 모르는 일이다. 아무튼 어찌 되었든 간에 매일 비슷한 분량의 글을 쓰고, 비슷한 양의 책을 읽는다. 이 부분에서 재미를 느낄 수 있는데 비슷한 모습이지만 쓰는 글의 이야기가 어제보다 오늘 더 진행되었고, 책의 주인공들도 어제보더 오늘 더 움직이기 시작했다. 변화가 있다는 말이다. 재미를 찾을 수 있다. 재미가 없지 않다. 일상 속에서 재미를 찾지 못하고 일탈에서만 재미를 찾으면 계속 헤매다 지치지 않을까 싶은데, 뭐 나만의 생각일지 모르지만.


매일 지나치는 강변이지만 시간이 지남에 따라 알아채지 못하는 변화가 있고 그 속에는 계절이라는 설명하기 애매한 옷이 강과 풀과 바람과 그 사이에 생존하는 고양이들의 모습을 조금씩 다르게 만든다. 컴퓨터 회로의 동작처럼 자연은 때가 되면 전등의 불빛을 갈아치우고 자연 속에 하나의 존속으로 존재되고 있다는 것을 실감하게 된다. 달리다 보면 등이 후끈거리며 추위에 적응해 가는 몸을 느낄 수 있다. 신기한 일이다.


전기장판이 따뜻하게 데워졌을 때 쏙 들어가서 어린 시절 성탄절 분위기를 생각하며 잠드는 게 좋다. 옛날 크리스마스 영상을 보면 재미있다. 촌스러운 옷차림에 촌스러운 헤어스타일에 촌스러운 화면이지만 사람들은 전부 행복해 보였다. 서민 경기도 지금만큼 나쁘지 않아서 모두 크리스마스 선물을 사기 위해 백화점에 몰려들어 북적북적. 누구가 기침을 하며 감기에 걸렸지만 지금처럼 위험하지는 않아서 마스크를 쓴 모습도 없다. 모두 말간 얼굴을 활짝 드러내고 차가운 겨울을 따뜻하게 보내고 있다. 무엇보다 어느 곳이나. 어떤 길거리나 골목 구석구석 캐럴이 풍부하게 흘러나왔다. 길보드의 리어카에는 계절을 느낄 수 있는 음악이 잔뜩 깔려 있었고 카세트테이프를 사는 사람도 꽤 보였다. 리어카에도 트리를 장식하고 크리스마스 분위기를 즐겼다.


11월도 어느덧 중순으로 향해 가고 있다. 찬 바람이 불고 기온이 뚝 떨어졌다. 날씨에 시큰둥하던 10대들도 어깨를 움츠리며 느닷없이 추워진 날씨에 욕을 하며 춥다를 연발했다. 11월이 되면 봤던 겨울 영화를 찾아서 보며 크리스마스가 올 때까지 캐럴을 잔뜩 듣는다. 캐럴은 아주 기기묘묘한 음악이라 매년 이맘때 들으면 신나고 온화한데 12월 26만 되면 캐럴은 물에 데쳐진 시금치처럼 축 처져 듣기 싫어진다. 참 이상한 음악이 캐럴이다. 컴퓨터로 되살려낸 빙 크로스비 아저씨와 마이클 부블래 씨의 화이트 크리스마스를 들어보자. 너무 좋다. https://youtu.be/FMyBJAZFiqI?si=jnvfIXuoO4_ImRPd


겨울영화하면, 크리스마스 영화하면 누구나 자신만의 영화가 여러 편 있을 것이다. 올해 첫 스타트를 끊을 영화는 크리스마스이브에 펼쳐지는 처절한 대환장 파티의 피칠갑 영화 ‘다이하드’ 1편이다. 나는 이 영화를 몇 편이나 봤을까. 존 맥클레인이 하이얀 러닝셔츠 바람으로 하얀 눈이 내리는 크리스마스이브에 피에 떡칠이 된 채로 맨발로 나카토미 빌딩에서 테러범들을 때려잡는 영화. 브루스 윌리스는 무명에서 블루문특급으로 얼굴을 알린 뒤 다이하드로 스타의 반열에 오른다. 무대포 골 때리는 형사 존 맥클레인에게 전 세계인들이 반해 버렸다. 크리스마스는 영화처럼 이렇게 보내야지.

크리스마스가 세계적인 축제고 떠들썩한 분위기지만 사실 대부분 무료하고 심심하게 보낸다. 그런 이브의 밤에 존 맥클레인을 잘못 건드린 테러범들의 대환장파티는 크리스마스 선물이 아니고 무엇이겠나. 무엇보다 현재 브루스 윌리스는 치매가 머리를 공격을 강하게 해서 상태가 심각해졌다는 소식이 있어서 팔팔할 때의 브루스 윌리스의 모습을 보는 것은 재미와 함께 알 수 없는 감정을 지니게 만든다.


차가운 겨울이라 붉은 불빛이 어울린다. 그래서 나도 붉은 텀메이로우(토마토)를 우걱우걱 씹어 먹는다. 겨울을 제외하면 주로 방우리텀메이로우를 먹는데 겨울에는 크고 굵은 토마토를 먹는다. 요즘은, 아니 언젠가부터 방울토마토도 너무 달다. 방울토마토를 사러 가면 당도최고의 방울토마토 같은 글을 본다. 거의 모든 과일이 당도가 높게 재배가 되었는데 이제 채소까지 당도가 높다니. 그러나 아직은 큰 텀메이로우는 예전의 그 토마토 맛이 남아있다. 씹어 먹기 좋다. 붉은색이라 더 마음이 든다. 그러나 일단 씹어 먹으면 이 시릴걸.

이가 시려도 우걱 씹어 먹자


조깅하는 사람들에게 섹시하다고 난리 난 내 다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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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양제 -

내 주위에는 하루에 영양제를 몇 알씩 챙겨 먹는 사람들이 있다. 그에 비하면 나는 오메가 3을 먹을 뿐이고 이것도 얼마 전에 어머니가 어디선가 얻어 와서 먹으라고 해서 먹고 있다. 이 비타민 같은 수많은 영양제. 물론 먹으면 몸에 나쁘지는 않겠지만 좋다고 할 수 있을까. 특히 하루에 몇 알씩 먹는 영양제가 말이다. 과학적인 근거는 없지만 몇 년 동안 영양제를 계속 복용한 주위 사람들 중에는 그동안 아프기도 하고, 근력이 떨어져 근육에 이상이 생기기도 하고, 코로나에 걸려 죽을 뻔하기도 했고, 지금은 독감에 걸려 골골 거리는 사람들이 있다. 나는 오메가 3을 하루에 한 알씩 먹을 뿐인데 아직까지 코로나도 걸리지 않았고 매일 조깅을 한 덕분인지 근력에도 문제가 없다. 비타민 같은 영양제를 맹신하기보다 매일 조금씩 운동을 하고, 절주를 하고, 책을 읽고 소식을 하는 게 몸에 더 낫지 않을까 싶다. 그놈의 영양제를 먹고 있는데 왜 이래? 같은 말 좀 하지 말고. 돈은 돈대로 시간은 시간대로 버리는 일이라고 생각된다. 게다가 인간은 불안요소를 잔뜩 지니고 있어서 먹던 영양제를 먹지 않으면 몸이 큰일 나는 줄 안다.




가스라이팅 -

옆에서 전청조한테 남현희가 가스라이팅 당한 거 맞느냐고 물어보는데, 가스라이팅이라는 단어가 어쩌다가 이렇게 사용되었는지 모르겠다. 가스라이팅은 감금 내지는 한 집안에서 폭행을 지속적으로 당하면서 그 폭력의 힘에 눌려 밖에 나가서도 누군가에게 자신의 처지를 말하지 못할 정도로 무서워하는 게 가스라이팅에 가깝다. 데이트 폭력처럼, 그렇게 폭행을 당해도 경찰을 찾아가지 못하는 이유가 가스라이팅을 당했기 때문이다. 얼마 전에 남자친구가 동거를 하자고 해서 부모님에게 어렵게 허락을 받고 동거를 한 20대 초반 여성은 돌변한 남자친구에게 폭행을 당하고, 밥도 먹지 못하게 하고, 폭언에 욕설을 들으며 가스라이팅을 당한 사연이 소개가 되었다. 유튜브에서도 떠들썩하게 사건의 영상이 떠돌아다녔는데 충격이었다. 머리는 다 깎이고 남자친구에게 맞는 것을 당연하게 받아들였다. 남자친구의 부모님은 우리 집 애가 그럴 애가 아니라며 아들의 편을 들었고 경찰서에서도 남자친구는 거울에 비치는 자신의 얼굴에 집작층을 보였다. 여자친구는 경찰서에 들러 경찰이 당일 있었던 일을 묻고 대답하는데 그날을 기억하는 게 너무 무서워 경찰서 밖으로 나와서 길바닥에 그대로 기절을 했다. 그때 옆에 여성의 어머니가 있어서 그나마 다행이었다. 남현희 같은 경우는 가스라이팅이라는 단어가 어울리지 않는다. 당했다는 말보다 당하도록 유도했다고 하거나, 자신이 당하는 것을 자신이 방관했다고 할 수 있을 것 같다. 이것도 어울리는 말은 아니지만 여하튼 가스라이팅이라는 단어를 여기에 붙여서는 안 된다.




서점-

사람들은 책을 많이 읽는 사람은 서점에 가는 걸 좋아한다고 생각한다. 나도 매일 조금씩 책을 읽고 있어서 그런지 옆에서 서점은 어느 서점에 가냐고 묻는다. 서점은 무슨 얼어 죽을. 책은 인터넷으로 구입하는 거지. 서점에는 가지 않아.라고 하면 예? 하며 놀란다. 책 좋아하면 서점에 가는 거 좋아하는 줄 알았는데? 서점은 좋아하는데, 아니 서점도 나빠하지 않지 서점을 좋아하는 건 아닌 거 같고, 서점에 가는 건 좋아하지 않는다. 서점을 좋아했던 적도 있었고, 서점에 가는 걸 좋아했던 적도 있었다. 서점이라 함은 무릇 내가 다니는 활동반경 내에 있어서 집으로 들어가기 전 쓱 들어가서 쓱 훑어보고, 자주 가니까 주인장과 알게 되어서 쓱 집어 들면 주인장에 쓱 포장해서 쓱 구입해 나오는 곳. 이런 곳이 내가 좋아하는 서점이었다. 동네에 있는 대형마트에 서점이 있었을 때는 참 자주 갔었다. 인간은 어차피 먹어야 하니 그로서리 구입하고 올라와서 서점코너에 앉아서 책을 좀 보기도 했다. 서점코너에는 어린이 책도 있어서 어린이들도 앉아서 책을 열심히 보고 있었다. 항상 그런 분위기가 자주 가는 대형마트의 서점코너에는 있었다. 서점코너 옆에는 물고기와 어항코너가 있어서 열대어를 보는 재미도 쏠쏠했다. 서점에서 이 책 저 책 구경하는 건 재미있는 일 중에 하나다. 그러나 동네에 한두 군데씩 있던 서점이 사라지기 시작하더니 지금은 서점에 가려면 작정하고 가야 한다. 다운타운 가의 거대건물 속 교보문고니 하는 대형서점에는 자동차 없이는 가는 것도 불편하다. 서점 한 번 가려면 #%%^^$@ 말을 말자. 서점이 싫은 건 아니지만 서점에 가는 건 좋아하지 않는다.




단백질 블록-

이 이야기는 생활 속 오류는 아니다. 영화 속의 오류라고 할까. 단백질 블록은 지금은 거의 사람들에게 잊힌 설국열차에 나오는 그 양갱이 식량이다. 뒷 칸 사람들이 앞 칸으로 가는 이야기. 밑에서 위로 올라가는 이야기. 그런 이야기다. 열차 뒷 칸 사람들은 단백질블록을 먹으며 생활을 한다. 매일 먹는 단백질블록. 앞으로 밀고 올라가던 커티스(캡아)와 일행은 단백질블록을 만드는 재료를 보고 기겁을 하고 토악질을 한다.


 설국열차의 후반부. 커티스는 열차의 초기시절에 대해서 남궁민수에게 털어놓는다. 그때 어린 아기의 인육을 먹었던 끔찍한 상황을 애절하게 이야기한다. 두 번 다시는 떠올리기 싫은 듯. 김훈의 남한산성을 읽어보면 전쟁 중 처절한 모습으로 배가 너무 곯아서 먹을 흙도 없어서 동네의 어린아이를 잡아먹고 나머지를 버리는 장면이 묘사되어 있다. 사람이 인육을 먹는다는 건 이미 인간의 본성을 넘어버린 일이다. 도덕이니 윤리니, 그런 관념을 뛰어넘어 버렸다. 허기로 인해 철저하게 육식동물이 되어 버린 것이다. 상황이 사람을 더 이상 사람답지 않게 만들어 버렸다. 전쟁을 겪는 나라의 사람들이 그렇다. 인육을 씹어 먹을 상황이 되었다는 것은 데드 포인트까지 치달았다는 말이다.


살기 위해 인육을 씹어 먹어야 하는 자신을 더 이상 받아들이지 못하며 짐승이 되어 버린다. 그런 사람들이 단백질블록의 재료인 벌레를 보고 기겁을 하며 토악질을 하는 것은 와닿지 않는다. 물론 벌레의 종류와 어마어마한 개체수가 사람을 놀라게 할 수는 있지만 이미 인육을 먹어버린 데드포인트까지 넘어섰다는 점에서 볼 때는 좀 그래. 그래서 바퀴벌레 떼를 보고 기겁을 하는 것은 영화를 보는 이들의 몫으로 돌려야 한다.



평범하게 사는 게 제일 행복해요 -

그게 제일 어렵다고, 평범한 거, 평범하게 사는 게 그게 가장 어려운 일이라고. 도대체 평범이라는 범위가 어디에서 어디까지를 말하는 것일까. 내가 왜 이런 말을 하느냐 하면 나는 구치소에서 2년 동안 근무를 했다. 그 안에는 정말 주위에서 볼 수 없는 별에 별 인간들을 다 만나봤다. 향정신성의약품을 취급하는 사범부터, 살인을 저지른 사람, 사기를 친 사람, 강도, 강간미수에 절도까지. 그 재소자(범죄자)들 중에서도 자신은 사방(감방)에서 제일 평범하다고 말하는 사람들이 있다. 평범하는 건 그 기준이 어디이며 누구일까. 구치소 재소자들, 그들에게(전부를 말할 수는 없다. 조폭 같은 경우는 우리의 삶과 너무 다르기 때문에) 평범함이란 내가 보기에 너무나 특별하고 일탈적이다. 화목한 가족을 이루는 게 소박한 목표야,라고 말하는 것과 비슷하다. 어째서 가정이 화목한 게 소박한 목표일까. 그건 가족 구성원이 죽을힘을 다해 노력해야 겨우 도달할 수 있는 최상의 위치다. 가족이 화목한 채로 몇 년, 더 나아가 십 년 이상 유지하는 게, 그게 생각처럼 되지 않는다. 너무나 어려운 일다. 결국 행복이란 엄청난 노력이 들고 어렵게 힘들게 행복에 도달해도 행복을 만끽하는 시간은 찰나로 끝나 버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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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이디 고디바 1898


1800년대 이런 고급망토를 두른 말을 탈 수 있는 신분은 그리 많지 않았다. 그녀는 고디바 백작 부인이었다. 그녀는 당시 농민 착취에 맛을 들인 남편 레오프릭 3세에게 농민의 신음에 귀 기울여 달라고 부탁했고, 농민의 세금을 깎아달라고 간청했다. 그러나 남편은 콧방귀 하나 끼지 않았다. 고디바는 그렇게 해 준다면 무엇이든 하겠다고 했다. 남편은 그제야 그러면 알몸으로 말을 타고 영지를 한 바퀴 돌라고 했다.


고개 숙인 그녀의 얼굴과 머리카락으로 가린 가슴, 그녀는 천천히 말을 타고 마을의 모든 곳을 천천히 돌았다. 그녀의 사연을 전해 들은 마을 사람들은 집 안으로 들어가 문을 잠그고 창문을 닫았다. 그녀의 말은 천천히 마을의 상점가를 또각또각 돌았다. 딱 한 사람, 마을의 재단사가 고디바를 훔쳐봤지만 눈이 멀고 말았다. 고디바에 감동한 레오프릭 3세는 농민들의 세금을 크게 깎아 주었다. 초콜릿 고디바의 영감이 바로 이 아름다운 백작 부인에게서 얻은 것이리라.


존 콜리어의 ‘육지의 아이’ 역시 너무나 아름다운 여성, 여성의 모습을 한 세이렌의 모습이 있다.

존 콜리어는 당시 동시대에서 여성을 가장 아름답게 그린 화가였다. 그러나 아름다움 그 뒤에는 사연, 섬뜩함, 관계 같은 관념이 가득 스며있다. 다른 화가들에 비해 너무나 아름다운 그림 속 주인공 여성은 바로 그림밖으로 뛰쳐나올 것만 같지만 어쩐지 서늘하고 섬뜩하다. 존 콜리어에 대한 아주 재미있는 이야기를 쓴 기사가 있다.

https://n.news.naver.com/mnews/ranking/article/016/0002223216?ntype=RANKING&sid=001


기사에서도 나오지만 존 콜리어의 ‘육지의 아이’는 몹시 기기괴괴하다. 세이렌의 뒷모습이 몹시 섬뜩하다. 아이를 부르는 세이렌은 곧 아이를 어떻게 할지 눈에 선하기 때문이다. 세이렌은 아름다운 선율로 선원을 홀려서 뜯어먹는다. 세이렌이 나오는 영화는 너무나 많다. 캐리비안 해적에도 세이렌을 잡았을 때 세이렌은 괴물 같은 얼굴로 변하기도 했다. 여러 세이렌이 나오는 영화가 많지만 2018년에 미드로 ‘세이렌’이 개인적으로는 최고였다.

세이렌의 특징은 노래를 불러 인간을 꼬드긴다. 그런데 그 노래가 기존의 영화에서 보는 것과는 다르다. 마치 돌고래가 음파를 쏘아내듯 공명으로 노래를 사람에게 전달해서 뇌의 어떤 부분을 건드린다. 그래서 그 노래를 듣는 사람은 무기력하고 공상에 젖어있고 잠이 들면 머메이드의 공명이 계속 맴돌며 떠나지 않는다. 그러다 시름시름 앓게 된다. 기묘하지만 시즌1을 보는 동안 그 묘한 음악이 머릿속에서 계속 맴돈다. 세이렌이 부르는 구슬픈 음악은 로드 멕퀸의 '유'의 리듬과 닮았다.


세이렌은 물 밖으로 나오게 되면 탈피를 한다. 변태를 하고 껍질을 버리고 육지로 올라오게 되는데 처음보다 두 번, 세 번 물 밖으로 나올수록 육지에 적응이 더 잘 된다. 보기에는 40킬로그램 밖에 안 되어 보이는데 실제는 80킬로그램이 나가고 심장박동이 굉장히 빠르다.


힘이 엄청나고 민물이나 수돗물에 빠져도 머메이드로 변신을 하지 않는다. 바닷물이어야만 변신을 한다. 그리고 바닷물에 닿아서 세이렌으로 변신할 때 엄청난 고통을 겪는다. 무엇보다 육지화되어 있을 때는 인간처럼 생각을 하지만 머메이드가 되면 포식자의 본능만 가진다. 그래서 머메이드보다 상위 포식자, 즉 상어 같은 절대 포식자를 제외하고는 모든 바닷속 생명체를 공격한다. 그러니까 날 때부터 그들은 그렇게 생겨먹은 것이다.

세이렌은 기존의 미드에서 보여주는 답답함이 덜하다. 시즌1이 물 흐르듯 흘러간다. 미국 영화의 특징인, 기성세대와 젊은 세대가 마주하고, 우리가 어릴 때 그랬지, 너는 내게 모든 걸 털어놓기로 했지, 같은 대화를 세이렌을 사이에 두고, 급박하게 흘러가야 하는 가운데 답답하게 보내지 않는다. 받아들이고 주인공들을 믿어주고 같이 해결하려는 모습들이 잘 나타난다. 무엇보다 바닷속 세이렌의 변신모습과 탈피하는 모습이나 공격성 등이 이전의 머메이드 영화보다 표현의 질감이 대단하다.  

https://youtu.be/QlZoXG0BJm4?si=u8lR_z1B_OdgBxVi


무적소녀


우리는 그 자경단을 무적소녀라 불렀다. 당연하지만 여성이며 단독으로 움직였고 소녀라는 것을 알고 있다. 무적소녀는 데이트폭력으로 시달리는 여성을 구출하고 폭행을 일삼는 남자의 성기를 떼어 내 남성의 입 속에 틀어 박은 후 사지를 전부 분질러 놓고 밧줄로 묶어 놓고 경찰에 연락을 했다. 무적소녀의 움직임을 본 사람은 없었다. 무적소녀는 어둠을 타고 움직였다. 무법천지가 된 밤길의 골목에서 강도들이 한 사람을 에워싸고 난도질을 하려고 할 때 무적소녀가 어둠을 타고 나타나 강도들의 팔다리를 전부 못 쓰게 만들었다. 마치 불도저가 지나간 것처럼 너덜너덜하게 만들었다. 그래서 영화에서 처럼 강도들이 헉헉 거리며 도망을 가지 못하게 만들었다. 팔다리가 종이처럼 짓눌러져 이동이 전혀 불가능했다. 사람들은 환호했고 범죄자들은 무적소녀를 두려워하면서도 잡으려고 혈안이 되어 있었다. 범죄 집단끼리의 난투국도 멈춘 채 휴전을 선언했다. 그렇게 된 것에는 무적소녀가 개개인의 범죄자 처단을 넘어 조직들에게 경고 메시지를 남겼기 때문이다. 무적소녀에게는 여러 무기가 있지만 아직 무기를 사용하지 않는다. 오로지 맨주먹과 발차기로 범죄자를 응징했다. 어둠 속에서 마치 난 다 알아 하는 것처럼 휙휙 움직여 강도들의 팔다리를 짓눌러 놓았다. 무적소녀가 조직에 선전포고를 한 것은 조직에서 마약관리와 유통을 드러내놓고 하기 때문이다. 성형외과 의사들과 피부과 의사들 그리고 정신과 의사들과 약사들을 포섭해서 합성마약 진통제를 유통시키고 있었다. 합성 약물은 가격이 저렴하여 누구나 쉽게 구입할 수 있었다. 무적소녀가 혼자서 여러 조직을 상대할 수 있었던 것은 무적소녀가 어둠과 육지에 적응한 세이렌이었다는 것이다. 원래는 인간이었던 무적소녀는 12살에 가정폭력에 시달리고 매일 폭행을 당하다가 겨우 빠져나가 바닷가에서 쓰러져 죽음으로 가고 있을 때 세이렌의 능력을 이어받은 것이었다. 무적소녀는 낮에는 평범한 18세 소녀였지만 밤이 도래하면 무적소녀의 모습으로 어둠을 타고 자경단이 되어 범죄를 일삼는 곳으로 가서 그들을 처단한다. 자비라는 것이 없다. 세이렌에게 자비는 쓸모없는 관념이기 때문이다. 무적소녀는 달빛을 받아 노래를 부르면 입술 밖으로 흘러나오는 선율은 범죄자들의 귀로 들어가 뇌의 여러 부분을 건드리고 도파민을 평소보다 몇 배나 쏟아지게 만들었다. 이리 오세요, 내가 안아 줄게요. 그리고 무적소녀는 어둠에 몸을 숨긴 채 사지를 전부 종이처럼 분질러 버린다. 무적소녀는 노래를 자주 부를 수 없다. 노래를 부르고 나면 몸이 갈라지는 것처럼 아프기 때문이다. 그러나 노래를 들은 인간은 그 노래가 생각에서 떠나지 않는다. 그리고 노래를 계속 듣고 싶어 한다. 노래를 원하고, 노래를 듣지 않으면 점점 미쳐간다. 주위 사람들에게 공격적이 되고 조금씩 이성을 잃고 사랑하는 가족에게도 공격을 하게 된다. 결국 사람들이 없는 곳으로 가서 자기 자신을 공격하여 몸을 전부 뜯어 버리며 생명을 잃는다. - 세이렌을 소설화한다면 이렇게 만들고 싶다.


나에게는 스벅 1호점의 텀블러도 있다. 스벅 1호점의 텀블러의 세이렌은 정말 세이렌 같은 모습이다.


아름다운 여성은 위험하다. 존 콜리어의 그림 속 여인들을 보면 드러난다. 아름다운 여성에게 빠지면 속수무책이다. 헤어 나올 수 없다. 빠져나오는 것이 죽기보다 더 힘든 것이다. 여인의 아름다운 성질 속에는 호러블 한 관념이 가득하다. 나의 아내가 너무 아름다우면 불안한 기분이 드는 것과 비슷하다. 제임스 건의 코믹호러 슬리더를 보면 그랜트를 보면 절대 그럴 수 없지만 너무나 예쁜 아내 스타라를 가지고 있다. 결국 엄청나게 징그러운 개불이 되었을 때 그랜트는 자신의 불안했던 마음을 드러낸다. 너무나 아름다운 아내인 스타라를 죽이려 든다. 아름다운 여성은 동전의 양면에 전부 위험성을 가지고 있다.


존 콜리어는 여성만 그린 건 아니다. 저 기사를 따라가면 찰스 다윈이나 아우구스투스 이글필드 같은 사람의 초상화도 그렸다. 아 평생 진화를 연구한 다윈이 이렇게 생겼구나 하게 된다.


그래서 오늘의 선곡은 로드 맥퀸의 유 https://youtu.be/MamL9CI-gHo?si=ZMpSRT51xiWG-Ukz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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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루키 소설 – 위드 더 비틀스


이 소설은 일인칭단수 소설집에 수록된 단편소설로 사소설 형식이다. 주인공은 하루키이며 하루키가 64년에 만났던 한때 여자 친구였던 사요코와 그녀의 오빠 이야기다.


하루키의 사소설 중에는 진짜인지 가짜인지 기묘한 소설이 있다. 치즈 케이크를 닮은 가난과 같은 소설은 확실하게 사실을 쓴 것 같지만, 시나가와 원숭이가 나오는 두 편(15년 전에 한 번, 일인칭 단수에서 나이가 든 시나가와 원숭이를 만나는 한 편)은 말 그대로 소설이다.


위드 더 비틀스는 기기묘묘하다. 진짜인지 공갈인지 말이다.


65년의 어느 일요일에 사요코와의 약속 때문에 데리러 그녀의 집으로 갔으나 그녀와 다른 가족은 없고 그녀의 오빠가 하루키를 맞이하고 둘만 집 안에서 사요코를 기다리며 어색한 분위기를 보낸다. 그러다가 아쿠타가와의 톱니바퀴를 하루키는 사요코의 오빠 앞에서 낭독을 하게 되고, 아쿠타가와는 35살에 자살을 한 것에 대해서 이야기한다.


그리고 사요코의 오빠를 다시 만난 건 18년이 지난, 서른다섯 살이 된 하루키가 결혼을 하여 아내인 요코 씨와 도쿄에 살고 있을 때 시부야의 길에서 만나게 된다.


사요코의 오빠에게서 사요코의 소식을 듣게 된다. 그녀는 스물여섯 살에 두 아이를 남겨두고 의사에게 처방받은 수면제를 모아뒀다가 한꺼번에 먹고 일어나지 못하게 된다.


그리고 하루키는 사요코에게 상처를 준 것을 떠올린다. 좋아하는 여자가 생겼어, 큰맘 먹고 털어놓았지만 사요코는 상처를 받았다. 그 자리에서 일어났고 그 모습이 마지막 모습이었다.


그리고 하루키는 사요코가 64년에 비틀스의 위드 더 비틀스 앨범을 들고 있던 열여섯의 소녀의 모습을 떠올린다. 사요코는 초반에 나오지만 비틀스 앨범을 들고 있었을 뿐 그녀는 비틀스 음악에는 흥미가 없었다.


그녀가 즐겨 듣던 장르는 만토바니 오케스트라, 퍼시 페이스 오케스트라, 앤디 윌리엄스 같은 계열의 온건한, 중산계급적인 음악을 들었다고 했다.


앤디 윌리암스는 한국인에게는 빙 크로스비만큼 캐럴 곡으로 유명한 가수다. 스탠더드 팝, 이지 리스닝 계열의 음악 창시자 같은 사람이다. 앤디 윌리암스의 차분한 분위기를 이어받은 가수가 마이클 부블래 같은 가수다. 술렁술렁 차분하게 스탠더드 팝을 부르는.


그래서 사요코는 63년에 발매한 비틀스의 2집 앨범 위드 더 비틀스의 노래와는 거리가 있다. 어떤 누군가를 떠올릴 때 실은 그 사람의 가장 소중한 것보다 그저 처음 보거나 마지막에 본 그 사람의 모습을 떠올리는 경우가 있다.


일드 반경 5미터를 보면 우리 주변에 굴러다니는 일상적인 것들에 관한 이야기를 잘 다루었다. 내가 서 있는 곳부터 반경 5미터, 사실 그 속에 모든 세상이 있다. 너무 하찮아서 눈여겨보지 않게 되는 것들이 실은 굉장히 소중한 것이다. 자궁경부암으로 자궁을 들어내는 수술을 앞두고 모든 것이 싫고 짜증 나지만 그러지 않아야 가정이 유지된다는 압박을 견디며 꾹꾹 참고 있는데 남편이 씻어주는 냄비 하나에 뭔가가 터지는 마루야마의 아내.


비틀스 앨범은 사요코에게 전혀 중요하지 않다. 그러나 사요코를 생각하면 비틀스의 앨범이 떠오른다. 소중하지는 않을지 모르나 비틀스의 앨범 같은 하찮은 것들이 반경 5미터 안에 모여서 진정으로 한 인간의 삶을 만들지도 모른다.


Andy Williams - Moon River (Year 1961) https://youtu.be/LK4pmJQ6zgM?si=GqK7oP5AFveoKcGX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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