휴게소는 한국 공포영화다. 한국 오컬트 공포영화라고 불러야 할 것 같다. 상업영화를 표방하고 있지만 B급 공포물의 느낌이 강한데 망작이었던 속닥속닥보다 훨씬 낫다. 정말 그 영화보다는 저 위에 있는 공포물이다. 그리고 장산범보다 더 무섭다. 그래, 더 무섭다

.

 

이 영화는 전달하려는 바가 분명하다. 온갖 악이 영화에 등장하지만 그 악보다 더 한 악이 인간이라는 말이다. 친구를 물건 취급하는 학생들의 따돌림, 원조교제, 성범죄, 살인을 하고 대출을 받아서 못 갚으면 장기를 빼가려는 등. 인간의 이런 사악함이 악을 깨운다는 것이다. 인간으로서 인간에게 도저히 할 수 없는 저런 짓을 하는 것은 인간 속에 있는 악이 근원이며 결국 그것이 밖으로 나온다는 것이 영화가 말하고자 한다. 하지만 그 전달이 몹시도 달린다

.

 

영화 속에서 우리가 알만한 배우는 재희가 전부다. 대체로 유명하지 않는 배우들이 출연을 했다. 재미있는 건 먹방스타 양수빈이 사람을 죽이고 악마가 빙의된 살인마 3으로 나온다. 배우들은 공포물답게 호러 연기를 최선을 다해서 했다

휴게소에서 벌어지는 일인데 여기 휴게소에서는 인육으로 만든 돈가스를 판다. 주인공들이 이 휴게소에 휘말리면서 악이 세상 밖으로 나오고 악을 불러낸 주인공들 역시 모두가 사악한 과거가 있다는 것인데

.

 

영화 속에는 그간 봐왔던 악마의 모습은 죄다 나온다. 팔다리 꺾이는 사다코 같은 관절꺾기 귀신, 좀비, 엑소시스트, 살인마 1,2,3 등장, 헬레이저, 심지어는 루시퍼도 나온다. 그리고 이 모든 악마는 불교의 종소리가 들리며 루시퍼는 날개가 타며 사그러든다. 굉장한 영화다

.

 

이 영화에 나오는 주인공들은 거의 대부분 욕을 한다. 근데 욕이 생활밀착형으로 들리는 욕이다. 마녀에서 김다미나 최우식이 하는 욕은 욕처럼 들리지도 않는다. 이 영화에서 여자고 남자고 젊은 여자고 늙은 여자고 간에 전부 욕을 하는데 욕으로 하루를 보내는 사람들을 배우로 썼나 싶을 정도로 욕을 찰지게 한다

.

 

그런데 이 영화가 그간 나왔던 다른 공포영화와 확연하게 다른 점은 악마도 욕을 한다. 당황했지만 그것도 잠시 악마라고 욕을 못 하리란 법은 없지 않은가. 악마도 야이 씨X 새끼야 너 같은 $^%^&새$%가 이런 #$^&%^&&$@@ 막 이런 욕을 한다. 박수쳤다. 그러니까 인간이 얼마나 밉고 싫었으면 악마도 인간에게 욕을 한다. 나중에 가면 악마가 씨방 새야, 같은 욕한다. 심은하의 M같은 목소리로

.

 

이 영화는 잔인한 장면이 많다. 막 자르고 혀를 뽑고 끊고 심지어 오래전 일본의 고어물 녀락을 떠올리는 기름에 얼굴을 튀기는 장면도 나온다. 그래서 두어 번 놀라고 두어 번 당황하다가 두어 번 웃게 된다. 감독의 의도였는지 모르겠지만 최고의 악인 루시퍼의 모습은 왜 저따위일까. 그 모습이 웃음을 짓게 만든다

.

 

한국 영환데 왜 자막이 있냐고? 악마가 갑자기 욕을 하다가 엑소시스트 같은 말을 내뱉는다. 그, 그 김윤식과 강동원의 영화 ‘검은 사제들’에서처럼 박소담이 하는 식의 알 수 없는 말을 하는데 잘 들어보면 영어 같기도 하고

.

 

저예산으로 만든 호러 영화치고는 한국에서 선전했다고 본다. 보다가 웃음이 나오기도 하고 무섭기도 하지만 영화는 몰입을 끝까지 몰고 가는 노력을 했다. 상업영화로 관객을 무시하는 태도의 영화보다는 훨씬 좋다. 영화는 극장 상영은 없다. 안타깝다

---------------------------------------------------------------

라는 리뷰에 제작사에서 댓글을 달아 주셨네요

 


댓글(0) 먼댓글(0) 좋아요(4)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우리가 영화를 보는 이유는 무엇일까. 그건 힘든 현실에서 조금은 벗어날 수 있는 동기부여가 된다. 영화를 빌려 하늘을 날기도 하고, 바다를, 땅속을 다니기도 하며 때로는 개미만큼 작아지기도 하고 집채만큼 커 지기도 한다. 과거로의 여행을 갈 수도 있으며 심지어 사람의 몸속으로 들어가기도 한다. 이 멋진 체험을 할 수 있기에 우리는 당연하지만 영화를 기를 쓰며 보러 간다. 현실에서는 느낄 수 없는 경이로움의 공포와 감동과 전율을 2시간 동안 느끼기 때문이다. 그리고 또 하나, 극장으로 누군가와 함께 가서 줄을 서 팝콘을 사고 나란히 앉아서 한곳을 바라볼 수 있다는 것이다. 좋은 사람과 함께 좋은 영화를 보는 것만큼 좋은 일은 그다지 널려 있지 않다. 그런 점에서 영화는 좀 더 사람과 사람을 이어주는 괜찮은 매개 중에서는 으뜸이라 생각한다
.

맘마미아에서 도나의 추억을 봤고 이번에는 스타워즈의 한 솔로의 추억이다. 스타워즈는 워낙 오래되었기에 그 세계관에 대해서 접근할 수 있는 여지를 마련하는 동안 스타워즈 보다 더 흥미로운 것들이 한국에는 많아져 버렸다. 나 역시 스타워즈는, 스타워즈 시리즈는 워낙 어릴 때 나온 영화이기에 접근하려는 그 뭔가를 찾지 못하고 점점 커 가고 있었다. 스타워즈나 토이스토리는 미국인들에게는 그야말로 우리나라의 라면과 같은 관념이지만 한국인에게는, 그리고 어렸던 나에게는 본조비나 에어로 스미스 같지 않았다
.

어릴 때에도 설이나 추석이나, 간혹 국가 지정 어떤 날에는 스타워즈가 티브이에서 했지만 석가탄신일에 하는 서유기만큼 집중하며 본 기억은 없다. 그러던 중 스타워즈에 꽂히게 된 계기가 있었다
.

나는 가출을 싫어한다. 중학교 때 친구들이 야심 차게 가출을 결심하고 동맹하기를 바랐을 때 나는 그대로 집으로 왔다. 가출을 하면 뭐랄까, 생활의 포기를 받아들여야 하는데 그것이 힘들다는 걸 나는 알고 있었다. 나는 어린놈의 자식 주제에 나 자신에 대해서 꽤 알고 있었다. 나는 어떤 부분에 있어서는 애어른 같아서 양말을 이틀 이상 신는다든가, 팬티를 계속 입어야 하는 것은 나의 문화권 안에는 없었다. 가출을 하면 양말은 물론이고 팬티를 갈아입을 수 없다. 친구 집에 하루만 놀러 가서 잠을 자더라도 인간이 이지경일 정도로 더럽고 추하고 망가져 있는데 가출은 싫었다
.

고등학교 3학년인가 졸업을 앞두고 서울에 있었다. 나는 고등학생 시절에도 서울에 왕왕 갔었다. 그건 삼성동에 있는 백남준 비디오 아트를 보기 위해서 일 년에 여름, 겨울 두 번은 상경을 했다. 왜 그런지 백남준의 예술 세계는 나에게 손짓을 했기에 나는 비디오 아트를 보기 위해 매년 어린놈 주제에 기차를 타고, 버스를 타고 서울로 향했다. 그리고 전시회장에서 큐레이터에게 질문을 너무 해서 따로 불려가서 주의를 들은 적도 있었다
.

졸업을 앞두고 서울의 고모 댁에 인사를 드리고 짐을 풀고 또 외가의 사촌 누나 집에 인사를 드리고 그대로 나와서 백남준의 비디오 아트 전을 보고 바로 고모 댁으로 들어가는 것이 수순이었는데 나는 그대로 발길을 돌려 구로 공단 쪽으로 갔다. 그때가 고3의 12월 31일이었는데 나는 어디에도 연락을 하지 않은 채 구로공단의 한 골목으로 들어가 허름한 여인숙에 몸을 넣었다
.

그러니까 가출을 한 셈이다. 그것도 내가 있는 바닷가에서 400킬로미터나 떨어져 있는 곳으로 가서 친척들에게도 연락을 하지 않은 채 12월 31일 밤을 혼자 보낸 샘이다. 여인숙은 방에 이불이 곱게 몇 겹으로 개 있었고 방에 난 창문은 앉아서 여는 아주 낮은 곳에 위치한 여닫이 창문이었다. 창문을 여니 밖의 차가운 공기가 밀려 들어왔다. 작은 창으로 보이는 밤 하늘의 별이 반짝이는데 이 세계에 혼자라는 생각이 들었다
.

그때 당시에는 몹시 외로웠고 어디에도 내가 있어야 할 곳은 없다는 느낌이 들었고 내가 하고자 하는 것은 누구도 반기지 않는 것이었다. 쟤는 말을 하지 않는 것이 고요하고 조용한 성격인가 봐. 하지만 조용한 성격이란 없다. 사람 앞에서 말을 하지 않는 것은 상대방이 말을 들어주지 않기에 보통 말을 하지 않는 것이다. 말 수가 적은 아이도 마음에 맞는 친구와 함께 있으면 말을 많이 한다. 말을 하지 않는 성격이란 없다. 그러니 내가 말을 하지 않을 때는 상대방이 나의 말을 대체로 무시했기에 그러한 것이다. 당시에는 어린 마음에 이런 단순한 마음이 복잡하게 다가왔을 모양이었다
.

나는 사진부였기에 고등학생 놈 주제에 술도 많이 마셨지만 그날만큼은 방 안에 있는 주전자의 보리 차를 마시며 작은 창으로 난 밤하늘의 별들을 하염없이 바라보며 해가 바뀌는 자정까지 있었다. 세상은 나와는 무관하게 흘러간다는 것과 나를 걱정하는 사람에게 헤를 끼치면 안 된다는 생각이 들 무렵 나는 그대로 몸을 말고 잠이 들었다
.

다음 날 사촌누나가 일하는 곳을 찾아가서 혼나고 사무실에서 짜장면을 얻어먹고 고모 댁에 가서 인사를 하고 나와서 둘째 외삼촌 댁이 있는 시흥으로 갔다. 나는 그때야 알았지만 내가 마지막 날이라고 생각했던 12월 31일은 12월 30일이었다. 둘째 외삼촌은 뇌가 망가져 집에서 누워서 지낸지 오래되었고, 작은 슈퍼를 하던 외숙모가 나를 위해서 어려운 살림에 파티를 열어 주었다. 나는 더 쭈글어 들었고, 평소 친하지 않았던, 일 년에 한 번 볼까 말까 한 사촌들과 함께 했다. 그리고 그날 밤 사촌들과 다 같이 한 방에 한 이불을 덮고 잠을 자게 되었는데 31일 밤에 모두가 이불을 덮고 반쯤 누워서 티브이를 봤는데 때마침 스타워즈가 했다
.

모두가 두꺼운 한 이불에 발을 집어넣고 귤을 까먹으며 스타워즈에 빠져들었다. 스타워즈의 캐릭터와 몬스터들에 대해서 떠들며 이야기를 했다. 그동안 몰랐는데 같이 보는 영화가 이렇게 재미있다는 것을
.

스타워즈는 그간 여러 시리즈가 나왔고 2000년 이후에 나온 시리즈는 혹평을 듣기도 했다. 스타워즈 시리즈는 만들어지면 스타워즈 시리즈에 속한다는 안도감과 함께 스타워즈 세계관에 흡수되지 못하면 외면받아야 한다는 불안함도 동시에 지녔다. 제다이 루크의 이야기가 있었다면 레아의 연인 한 솔로의 이야기도 사람들은 그간 궁금했다
.

물론 한국은 그 인기가 외국만큼 대단하진 않지만 스타워즈의 마니아들은 늘 한 솔로의 이야기를 기다렸다. 레아 공주를 만나기 전 어떤 연인을 만났는지, 밀레니엄 팔콘 호는 어떻게 구했는지, 추바카-츄이는 어떤 식으로 만났는지. 궁금하고 또 궁금했다. 그리고 그 바람들로 스타워즈 한 솔로가 나왔다
.

젊은 시절의 한 솔로의 배짱과 연인으로 나온 에밀리아 클라크와 랜도의 젊은 모습과 한결같은 모습의 츄바카까지. 무엇보다 밀레니엄 팔콘의 우주 속 빛을 통과하는 모습까지
.

하지만 한 솔로의 젊은 시절의 에피소드는 조금 평면적이고 평탄에 가까웠고 초반 주인공들이 하는 대사는 도무지 무슨 말을 하는지 알아들을 수 없다. 코시악? 같은 별천지 말들을 서로 내뱉어서 스타워즈 골수팬이 아니라면 딴생각에 접어들기 십상이다
.

한 솔로 스타워즈 스토리를 이끌어 가는 이야기의 중심 축은 키라와 우디 헤럴슨의 베킷이다. 그 이야기에 한 솔로는 거드는 역할로 보인다. 그건 한 솔로의 목표가 영화 시작 삼분의 일 정도가 지난 후부터 사라졌기 때문이다. 영화 후반에 감독이 교체되고 한 솔로 역의 엘든의 연기력 논란 등을 거치면서 정작 보여줘야 할 한 솔로의 이야기는 제대로 보여주지 못한 것 같다
.

액션은 처음부터 끝까지 눈을 뗄 수 없다. 하지만 한 솔로의 팬들은 어쩌면 한 솔로의 액션보다는 한 솔로는 어떤 인물인가, 한 솔로는 어떤 철학을 지녀야 했고, 어떤 성장과정을 보내서 헤리슨 포드의 한 솔로가 되었는지를 보고 싶었을 것이다
.

2편을 예고해버렸고, 한 솔로는 스타워즈 시리즈에 병합되어 괴롭지만 싫은 소리도 들을지도 모른다. 그래도 스타워즈는 전 세계인들에게 사랑을 받고 있으니 분발해서 열심히 나와주기를 바란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3)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도망치고 싶은 오늘 같은 현실, 눈을 감아 버리고 싶은 생활 속에서 무니의 대책 없는 천진난만함이 너무나 아파서 보는 사람의 비극도 마음속의 비커를 슬슬 채우게 된다


.




밝고 맑은 무니의 천진난만한 예쁜 아름다움이 후반으로 갈수록 두려운 것으로 다가온다. 너무나 낯설고 외롭게 느껴져서 달려가서 무니를 꼭 안아주고 싶을 뿐이다


.




영화는 핼리와 무니에게 동정을 하지도 않는다. 신파도 없고, 그렇다고 무니와 핼리에게 슬픔을 강요하지도 않는다. 그렇지만 이 덤덤한 영화의 태도가 더 슬프고 아프다


.




디즈니랜드의 매직킹덤이 있는 올랜도, 무니와 친구들이 천진난만하게 노는 모습에 흐뭇하지만 시간이 조금만 지나면 슬슬 영화 속 배경이 눈에 들어온다. 그 누구도 이 아이들을 보호해주지 않으며 누구도 이 아이들을 쳐다보지 않는다. 이제 이 아이들이 노는 모습만 봐도 눈시울이 점점 이상해지기 시작한다


.




올랜도에는 유난히 강한 햇볕이 내리쬔다. 이 빛은 순수하고 맑은 아이들을 상징할지도 모른다. 하지만 영화가 후반으로 갈수록 이 강한 빛이 마치 아이들을 전부 태워서 없애버릴 것만 같은 무서움으로 느껴진다


.




핼리와 무니가 생이별을 하던 날, 그동안 한 번도 울지 않았던 무니가 처음으로 운다. 서럽게 울기 시작한다. 잊고 싶은데 무니의 우는 모습의 잔상은 눈을 감으면 더 선명하게 나타난다


.




서럽게 울던 무니와 함께 음악이 흐르면서 뛰기 시작한다. 아이들이 뛰어가는 곳은 디즈니랜드. 카메라는 흔들거리며 아이들의 뒤를 따라간다. 놀이터 한 번 가지 못한 비극적인 무니에게 몇 분만 가면 디즈니랜드가 있다는 것이 충격이다


.




플로리다 프로젝트는 대책 없는 비극 속에서 대책 없이 천진난만한 무니의 아름다움에 대책없이 눈물이 흐르는 영화였다


.




무엇보다 비판을 해야 하는 것을 망각한 김혜리 기자도 무니의 대책 없음에 대책 없이 빠져들어간 것 같다. 평론가에게서 10점은 나올 수 없다. 한 줄로 저렇게 평을 했지만 실은 그저 무니의 잔상에서 빠져나오지 못했을 것이다. 그랬을 것이다


.




맞다 이 영화는 비평을 하고 비판을 할 필요가 없다. 우리가 영화에게 신세를 지고 있다는 걸 여실히 보여주고 있다


.


.


#영화#리뷰#영화이야기


#플로리다프로젝트


#대책없는영화


#대책없는무니


#대책없는눈물


#을경험하게될테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3)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무엇보다 릴리 제임스는 방대하고 아름다운 그리스의 섬을 누비는 자유분방하고 섬세한 도나의 즉흥적이며 감성적인 면모를 그대로 표현했다. 선택에 있어서 망설임이 없고 강단 있어 보이지만 마음속 연약한 부분이 많은 도나의 젊은 시절을 릴리 제임스가 연기를 잘 했다. 도나의 호탕한 웃음소리와 슬플 때 눈물이 맺혔던 메릴 스트립의 젊은 시절이잖아! 정말! 하게 되었다. 이 영화를 보면서 추억이란 아름답지만 동시에 아픈 거라는 걸 다시 한 번 알 수 있었다. 릴리 제임스의 어린 도나는 젊었고 예쁘고 가능성이 있는, 머릿속에 청량한 지하수로 가득 찬 여성이었다. 언젠가는 실패와 고통이 닥칠지라도 그것을 두려워하지 않고 즉흥적인 면모로 부딪혀 보면 무엇인가 답이 나온다는 것을 알고 있는 멋진 여자였다. 그럼에도 사랑은 언제나 미지의 세계이며 불안하고 두렵다. 그렇기에 새로운 사랑에는 더 많은 용기와 도전이 필요하다는 것을 알아간다. 

마음에 사랑이 없는데 어떻게 사랑을 노래해?라는 릴리 제임스의 대사에서 도나의 마음을 엿볼 수 있었다

.

 

나는 맘마미아 1편을 정말 좋아한다. 맘마미아 1편이 나왔을 때 일행과 일주일에 3번을 보러 갔었다. 세 번 다 마지막 상영, 마지막 줄에 앉아서 봤다. 그래야 노래가 나올 때 떠들며 따라 부를 수 있기 때문이다. 3번째 갔을 때는 맨 뒷줄의 그 앞에 외국인 8명이 앉아 있었다. 아, 이런 오늘은 시끄럽게 떠들며 못 보겠다,라고 생각했는데 영화가 시작되고 도나와 친구들이 노래를 부를 때 그 외국인들도 열심히 노래를 시끄럽게 따라 불러 뮤지컬을 보는 것 같은 착각이 들어서 재미있었던 기억이 있다

.

 

내가 처음 팝송을 들었을 때가 5학년이었는데 그 처음의 노래가 아바의 치키티타였다. 잘 설명할 순 없지만 술을 처음 마셨을 때만큼, 발목이 아름다운 그녀와 새벽 3시에 같이 있었을 때만큼, 좋았던 것 같다. 학교 앞에는 독서실이 있었고 중학생들이 거기서 공부를 했는데, 중학생들이 학교에서 농구를 할때 심부름을 해주면 들고 있던 카세트 플레이어를 들을 수 있게 해 주었다. 열심히 심부름을 해주고 구입한 아바의 카세트 테이프를 넣고 들었다. 아바의 히트곡 모음집이었는데 그 속에는 아바의 알만한 노래들이 다 있었다. 댄싱 퀸, 워털루, 아이 해브 드림, 맘마미아, 허니허니, 위너 텍 잇 올 등. 하지만 점점 커 가면서 강한 음악을 들으면서 아바의 노래는 잘 듣지 않게 되었지만 나에게 팝의 세계를 열어준 노래는 아바였다

.

 

아주 짧지만 맘마미아 2에서도 도나가 빌과 재회를 해서 만나는 장면에 치키티타가 나온다. 역시 멋진 장면이었다. 영화 속에는, 그토록 찬란했던 젊은 어디로 갔나, 같은 가사의 노래도 있지만 도나의 할머니인 셰어가 페르난도를 부를 땐 압도 당했다. 마치 영화 속 테이블에 앉아 있는 한 사람이 된 것 같은 기분이었다. 맘마미아 3편이 제작된다면 바브라 스트라이샌드도 나와서 노래를 불렀으면 좋겠다

.

 

소피가 할머니 앞에서 아이를 안고 있는 장면에서는 1편에서 도나가 소피에게 불러 주었던 노래 slipping through my fingers는 경음악으로 짧게 나온다. 1편에서 마찰이 있었던 소피에게 도나가 불러주던 그 노래는 여러 번 들을 수밖에 없었다. 어렸던 도나가 애기 소피를 어떻게 낳았는지, 그 소중한 애기를 안고 홀로 섬에서 고군분투하며 소피를 키웠던 모습을 생각하면 1편에서의 도나가 소피에게 불러주었던 노래가 가슴으로 차오른다

.

 

단지 아쉬웠던 건 1편에서 아바의 메가 히트곡을 전부 보여줬기에 2편에서는 모두 따라 부를 수 있는 노래가 아니었다는 점이다. 메가 히트곡은 여전히 영화를 가득 채웠고 메릴 스트립의 모습도 잠깐이지만 볼 수 있어서 좋았다. 1편보다 낫다 못하다,보다는 맘마미아를 보면서 신나게 노래를 따라 부르고 누구에게나 있는, 또 누구에게도 있을 추억이란 무엇일까,를 생각하면 좋다고 본다

.

 

추억이란 정말 마음 저 안쪽으로부터 따뜻하게 하지만 마음 저 안쪽에서부터 아프게도 한다. 맘마미아 같은 영화가 작지만 확실한 행복이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5)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시간 되시면 독립영화 [극2] 편 보러오세요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