와와의 학교 가는 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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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소수민족이 살고 있는 원난성의 외진 고산지대의 협곡의 한곳에 살고 있는 꼬마 와와, 그리고 누나인 나샹. 와와의 집에서 학교로 갈 수 있는 방법은 오직 협곡을 건널 수 있는 외줄 짚라인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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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나가 학교에 가면 강아지 밍밍과 함께 누나만을 기다리는 와와. 나샹이 학교에서 오면 와와는 그저 좋아서 둘이서 같이 재미있게 시간을 보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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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교의 이야기를 해주는 누나의 말을 듣고 학교를 가고 싶은 와와. 하지만 엄마는 어린 와와가 줄에 매달려 학교 가는 것이 위험해서 절대 못 가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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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학교의 아이들과 학교를 한 번도 가지 않았지만 누나보다 더 산수를 잘하는 와와는 엄마 몰래 줄을 타고 학교에 간다. 그리고 거기서 새로운 세상을 경험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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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문으로 수업을 듣던 와와는 집에서 누나에게 누나보다 더 시를 잘 외우고 똑똑함이 그대로 탄로 나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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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는 와와와 나샹의 둘도 없는 남매애를 고산지대의 광활함을 배경으로 보여준다. 누나를 애틋하게 생각하는 와와, 그리고 와와의 그런 마음을 아는 나샹은 어리지만 마음이 깊은 아이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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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날 도시에서 교생으로 부임해온 선생님의 눈에 들어온 건 추운 지대에도 아이들은 슬리퍼만 신고 있다. 아이들은 발이 시려 발가락을 오므리지만 배울 수 있다는 그 하나를 위해 추위도 이겨낸다. 카메라는 선생님의 부츠와 아이들의 발을 동시에 보여준다. 그리고 아이들을 학교로 갈 수 있게 하는 짚라인의 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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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수민족의 이 가난한 아이들은 목숨을 담보로 학교로 가는 것을 마다하지 않는다. 학교에 갈 수 있다면, 학교에서 수업을 들을 수 있다면 발가락이 동상에 걸리는 것도, 줄에 목숨을 의지해 협곡을 건너는 것도 감수하는 아이들. 아이들은 그렇지만 수업을 받을 때에는 그 누구보다 즐겁고 행복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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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생님은 운동장에서 아이들의 발을 일일이 잰다. 아이들의 장화를 후원받기 위해서. 이 장면부터 영화는 보는 이들의 마음을 계속 뭉클하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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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생님은 신발이 없는, 아직 학교 학생이 아니라 슬리퍼만 신고 다니는 와와에게도 갖다 주라며 운동화를 나샹에게 사준다. 나샹은 고맙다고 하며 와와의 운동화를 가방에 넣어 강을 건너 오다가 그만 운동화가 가방에서 빠지고, 그걸 잡으려 하다가 나샹은 줄을 놓치고 협곡에 휘말리고 만다. 누나만 기다리던 와와는 그 후로 말을 잃어버리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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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는 아이들의 밝은 모습 덕분에 반짝반짝한데 참 슬프다. 영화는 실화라서 더 슬픈 것 같다. 학교에 가고 싶어서 목숨을 걸고 강을 즐겁게 건너는 아이들과 가난에서 벗어나기 위해 교육을 시키려는 부모들의 노력을 헛되게 하는 거대한 자연. 그 속에서 남매인 나샹과 와와는 애틋함을 알아가고 그 마음을 아는 현명한 교생 선생님과 마을의 어른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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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에 협곡에는 다리가 놓인다. 이제 걸어서 학교에 갈 수 있게 된 와와. 바람개비를 좋아했던 누나는 이제 바람이 되었고, 와와는 다리의 중간에서 바람개비를 날린다. 와와에게 다리는 강 위의 길이다. 이제 누나 대신 열심히 학교에서 두보의 시를 외우고 수학을 잘 하기를 .

 

무공해 아이들, 끝도 없을 그 깊이에 그대로 빨려 들어가는 애잔한 영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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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른도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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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영화를 보기 전 우리는 그간 엄태구에 대한 영화 적 이미지가 있거나, 생성되어 버렸거나, 바라는 이미지 상이 있다. 엄태구는 어느 영화에나 잠깐씩 등장해서 강한 인상을 주고 갔다. 도드라진 광대뼈에 지지 않을 것 같은 인상, 기계음 같은 낮은 목소리. 수많은 영화에 나왔지만 조연으로 차이나타운에서, 또 단역으로 베테랑에서도 나와서 각인시키고 들어갔다. 무엇보다 택시운전사에서는 가장 긴장이 흘렀던 1분, 그 1분을 엄태구가 장식했다. 그러다 보니 관객은 엄태구에게 바라는 이미지가 굳어져 버렸다. 그랬는데, 그런데 이 영화에서 엄태구는 완벽하게 변태했다.  그간의 엄태구의 영화 속 얼굴에서 벗어난 얼굴을 볼 수 있는 영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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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른도감 이 영화는 두 살 때 엄마가 집을 나가고 아빠와 단둘이 살고 있는 중학생 1학년인 경언은 아빠의 장례식 날 느닷없이 나타난 삼촌이라 불리는 재민과 함께 살게 되면서 겪는 이야기를 그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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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이 어른도감인 이유는, 삼촌인 엄태구, 극중 재민은 어른으로는 어설프고 이제 중학교 1학년인 이재인, 극중 경언은 애로는 어설픈, 아직 어리지만 이미 경언은 어른이 되어 버렸고, 어른이 되었지만 아직 아이처럼 바보 같고 사람들에게 당하기만 하는 재민은 서로 맞지 않지만 그 접점을 찾아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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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지의 보험을 꿀꺽해버린 재민은 경언에게 그 보험금을 돌려주기 위해 어설픈 사기를 치려고 한다. 영화 속에서 벌어지는 사기극은 2% 모자라고, 삼촌으로서도 2% 모자라고, 경언 역시 아이로서 2% 모자라고, 그렇다고 어른으로도 2% 아니 많이 모자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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돈 많은 약국 아줌마의 돈을 뜯어내려 삼촌과 조카의 사이를 속이고 아빠와 딸의 행색을 하고, 경언은 재민에게 이런 일은 옳지 않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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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건 그렇게 나쁜 일이 아니야.라고 말하는 삼촌.

누군가에게 시간을 들인다는 건 다시는 돌려받지 못할 삶의 일부를 주는 거야. 목적이 뭐든 간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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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민과 경언의 공통점은 둘 다 고아라는 점, 그리고 둘 다 경언의 아버지에게서 컸다는 점이다. 나이차가 많이 나는 형에게 엄하게 자란 재민과 아빠의 사랑을 받은 경언은 알 수 없는 연대를 지니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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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의 얼굴을 모르는 경언이 재민에게 엄마가 나를 처음 봤을 때 어땠어?라고 물었을 때 재민은 너 엄마가 너를 처음 받아서 안고 봤을 때 이런 표정이었어,라며 생명에 대한 감사한 마음과 그 기쁨에 대해서 눈물을 흘린다. 그 모습에 경언도 눈물을 흘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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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잘 모르지만 나의 애를 처음 봤을 때 모든 엄마가 그런 마음이지 않았을까, 그걸 엄태구가 연기를 해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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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를 보지 않은 사람은 엄태구가 이끌어 간다고 생각하겠지만 영화를 끌어가는 건 이미 어른이 되어 버린 경언이 죽 끌고 간다. 경언의 옆에서 자칫 샛길로 빠지지 않게 에스코트하는 역할을 삼촌인 엄태구가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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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태구는 시종일관 아직 청소년에서 벗어나지 못한 티가 난다. 첫 번째 캡처에서, 경언에게 너 머리 나쁘지? 

아니요, 저 머리 좋은데요. 저 149거든요.

뭐? 키가?라고 하며 키득키득하는 장면 같은 것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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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영화를 보기 전에는 철원기행을 봤는데 더 이상 현실적일 수 없을 정도로 현실적인 영화라서 내가 생활하는 이 현실이 영화 속 철원기행보다 더 영화적이었다. 철원기행은 리뷰를 할 수 없었다. 철원기행은 너무하다 싶을 정도로 그저 현실이었고 지극히 현실이었고 너무 현실이어서 영화가 이래도 되나 싶을 정도로 흘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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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뒤에 본 영화가 어른도감이라 그런지 뭐랄까 따뜻했다. 두 사람이 밤에 산에 올라 도시가 불이 꺼지고 난 후 하늘을 봤을 때 반짝이는 별을 보는 장면이라든가, 위에서 말한 엄마의 기억이 없는 경언에게 엄마의 기억을 옮기는 장면은 정말 따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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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기행각은 들통이 나고 갈등을 빚는다. 그리고 재민과 경언은 갈등이 커져 재민이 집을 나가고 마는데. 이 두 사람은 어떻게 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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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미 어른이 되어 버린 경언은 아직 아이로 머무르고 있는, 모습만 어른인 삼촌 재민을 만나 다시 아이가 되고, 재민은 어른스러운 경언을 만나 조금씩 어른이 되어 가는 영화 어른도감. 버디무비라 할 수 있는 어른도감 같은 성장영화가 듬뿍듬뿍 나왔으면-순전히 개인적인 바람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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먹거리를 막걸리로 봤다. 조깅을 하고 오는데 저 앞에서 자전거를 타고 오는 누군가가 나를 보며 거수경례를 하기에 나도 모르게 맞받아서 경례를 하면서 누구지 하며 다가가니 자전거 남자는 그저 눈을 비비는 거였다. 아아 뭔가 불안한 징조. 그래서일까 지금까지 그럴 일이 없었는데 아이폰 밧데리가 40분 만에 1%가 되어 버리고 아이패드는 이만큼 충전을 하면 90%가 넘어야 하지만 41%밖에 차지 않았다[차지했지만 차지 않았다, 차지는 차지 못했다 ㅋㅋ 그냥 혼자 만의 유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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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을인가 싶더니 겨울바람이 불어왔다. 사람들이 겨울 패딩을 입고 나왔다. 두 시간 전에 이 거리를 달린 거 같은데 벌써 하루가 지나가 버렸다. 비가 오더니 또 금세 그치고 낮에는 그렇게 덥더니 밤에는 겨울이 와 버리는, 변덕이 죽 끓듯 하는 신데렐라 언니 같다. 그런데 신데렐라 언니의 이름은 뭘까. 분명 그녀들도 모지리에 나쁘지만 이름은 있을 텐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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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름이 지난 바닷가의 오후는 늘 그렇듯 뿌옇고 코가 간질 간절하며 밝은, 수필 같은 모습을 하고 있다. 너무나 평온해서 ‘너는 여기에 없었다’의 호아킨 피닉스를 떨어트려 놓아서 평온을 깨트리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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때이른 눈이 설악의 꼭대기를 설원으로 장식해서 그런지 그럴 때가 아닌데 벌써 바스락거리는 낙엽이 말라서 한구석에 있었다. 밟으면 바삭바삭하는 메마른 경쾌한 소리가 그곳에 사람을 머무르게 한다. 가끔 소리가 사람을 머무르게 하는 경우가 있다. 길거리에 레코드 가게가 소멸하지 않았을 때 좋아하는 노래가 나오면 머물렀고, 여름에 조깅을 하다 매미가 우는소리가 유난히 크게 들리면 그 자리에 서서 머물렀다. 따지고 보니 그 외에, 소리가 사람을 머물게 하는 경우는 잘 없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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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란색의 향연. 노란색은 사라진 독일의 코닥 필름으로 담아내면 기가 막힌 노란색을 담아낼 수 있다. 코닥은 노란색의 색감을 노란색으로 담아내는 특허가 있다. 그래서 필름 카메라에 코닥 필름을 넣어서 노란색을 잘 담아내면 정말 멋진 것이다. 은행잎의 노란색이 한가득 펼쳐진 거리는 마치 이 거리를 지나고 나면 그랜드 부다페스트 호텔 같은 곳으로 빠질 것만 같다. 지나면 완전히 다른 세계가 펼쳐져서 모험을 하는 곳. 그곳에서 물고기를 타고 다니다가 배고프면 먹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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찬바람이 불면 시장의 돼지국밥만 한 게 없다. 토렴해주는 곳. 밥알이 탱글탱글하여 겨울 속의 소박한 뜨거운 맛. 역동적이고 시원한데 얼큰한 맛이 뒤에 따라오는. 오물오물거릴 때 소주를 한 잔 마시고 사발을 들고 국물을 마시고. 크으. 등을 구부리고 돼지국밥을 먹는 아버지들의 모습 속에서 쓸쓸함과 따뜻함이 동시에 겹쳐지는 묘한 느낌도 받는다. 돼지국밥은 여자 혼자서 먹지는 않는다. 그래서 그런지 남자의 음식 같은. 옆 테이블에서는 이미 술이 취한 아버님 두 분이서 도스토옙스키의 죄와 벌에 나오는 라스콜리니코프에 대해서 이야기를 하는 것은 새빨간 거짓말이지만 트로트 노래 가사에 대해서 내가 맞니 네가 틀렸니로 언성을 높이고 주인 할머니에게서 이제 고마 집에 가라 마, 같은 소리를 듣고 있다. 할머니의 손에는 국자가 들려있다. 그러면 국밥 집에서는 가장 무서운 사람이 된다. 그런 가을의 하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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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년 전에 실종된 딸, 향이 돌아왔다. 하지만 같이 지낼 수 있는 시간은 오직 하루. 그마저 잠이 들면 더 이상 볼 수 없는 딸. 엄마 전미선은 오랜만에 훌쩍 커버려 집으로 온 딸과 이런저런 수다를 떨다가 잠이 온다는 딸에게 그만 화를 내고 만다. 향은 여행 가는 그날 아침에도 엄마는 나에게 그러더니 왜 그러냐고 딸도 화가 나서 말하고 집을 나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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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 유리만 보면 맞은편에서 손바닥 지문이 보이는 상원은 그 환영 때문에 생활이 불가능하다. 나의 손이 나의 손 같지 않아서 운전대를 잡을 수 없다. 운전대를 잡아야 생활이 가능한데 운전대를 잡을 수 없으니 생활이 바닥으로 떨어질 수밖에 없다. 딸은 그런 아빠에게 아빠의 잘못도 아니니 이제 괜찮다고 하지만. 손바닥 지문 환영은 더 자주 보이고 상원은 고통스러워 욕실에서 자살을 시도하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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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미가 우는 이유는 짝을 찾기 위해서, 외롭기 때문에 우는 거야. 밤에도 우는 이유는 밤낮없이 외롭게 때문에 우는 거야. 그러니 매미처럼 되지 않으려면 항상 옆에 붙어 있어. 석호와 아내는 그렇게 행복한 나날을 보내지만 눈을 떠 보면 냉장고에 가득 붙어 있는 배달음식점 팸플랫 뿐이다. 혼자서 아무리 김치찌개를 만들어도 아내가 끓여줬던 김치찌개의 맛이 나지 않고. 그러다 어느 날 가득 붙어 있던 배달음식 팸플랫을 거둬내니 거기에 아내가 적어준 김치찌개의 레서피가 붙어있고, 석호는 그대로 김치찌개를 해 먹어 보는데. 한 숟가락을 떠먹는 순간 석호는 기억이 썰물처럼 밀려오고. 이 맛에 웃음이 나오는데 곧 울음으로 바뀌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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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영화는 3가지의 이야기를 옴니버스 식으로 만든 영화다. ‘봄이가도’ 이 영화를 보면 대번에 봄에 일어났던 그 기억이 떠오르게 된다. 이 영화는 한국인만이 강하게 감정을 가지는 영화가 아닐까 싶다. 제목처럼 봄은 가버리고 만다. 특히 그날 그때의 봄은 이미 지나가 버렸다. 하지만 그 봄에 그대로 머무른 사람의 가족은 머물지 못하고 또 다른 봄을 맞이하게 된다. 봄이가도 다음 봄을 맞이하는 건 남은 사람의 몫이다. 슬픔도 남은 사람의 몫이며 마음의 고통과 정신적인 고통 역시 남은 사람이 짊어지고 가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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많은 다큐멘터리 영화로 제작되어 있지만 거기서 벗어나 슬픔이 덜 익어서 아직 터지기 직전의 감정을 담아낸 영화로 감독들은 담아냈다. 영화는 내내 조용하고 덤덤하게 흘러간다. 무엇보다 극을 이끌어 가는 주인공들의 연기가 좋다. 아픔이라는 것을 받아들이고 이해하고 노력하는 감정을 처절하지만 담담하게 연기를 해내고 있다. 그래서 보다 보면 먹먹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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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 속에서 사람들은 수많은 아픔을 하나씩 몸에 지니며 살아간다. 그것을 어떻게든, 어떤 방식으로든 감당하는 것은 살아있는 사람이 해야 하는 것이다. 오늘 죽으면 더 이상 내일 죽지 않아도 되니 죽은 사람은 아픔도 알지 못한다. 영화는 희망을 노래하고 있다. 남은 사람은 떠난 사람의 자리를 보며 일상을 살아간다. 그들의 얼굴에 미소가 슬쩍슬쩍 드러붙는 날 모두에게 새로운 봄은 올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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늘 나가는 바닷가의 맞은편에는 바닷마을이 있다. 이제 곧 개발의 붐을 타고 여기 작은 마을도 조만간 모습이 달라질 것이다. 그래서 사진을 듬뿍 찍어 놓기로 했다. 마을의 이름이 있지만 그냥 바닷마을이라 부르기로 했다. 바닷마을의 집들의 특징은 대문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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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을로 슥 올라가는 순간 시간이 30년은 후퇴한 것 같은 동네다. 그물을 손질하고 집으로 온 최 씨 아저씨는 매일 밤 소주를 한 잔씩 하고 모아 둔 빈병들이 꼭 병정들 같고, 겨울이 오기 전 마을의 골목에는 동네 꼬마들이 저녁 먹기 전에 딱지 치기를 하고 구슬을 굴릴 것 같지만 이제 골목에서 아이들이 깔깔거리며 뛰어다니는 모습은 잘 볼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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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도 어슬렁 다니면 휴가 나온 첫째 놈의 군 반바지를 빨아서 널어두고, 둘째 애의 양말도 잘 빨아 널어두고. 개구쟁이 녀석들은 해가 떨어지고 어두워지면 골목에 조용히 나와 골목에 불 켜진 화장실이 보이면 콩알탄을 투척하여 어른들을 놀라게 했고, 바닷가로 달려나가 폭축을 터트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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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을에서 조금만 걸어 나오면 멀리 나가 수확의 결실을 양생하며 피곤을 잊어가고 따뜻한 가을 햇살에 졸음에 겨워 그늘진 곳에서 꾸벅꾸벅 조는 어르신이 있고, 한 곳에서는 오징어를 잘 말려 팔리기를 기다리고, 그 틈을 어떻게 해 볼 요량의 갈매기들이 그 주위를 방황한다. 서열에 밀린 갈매기들은 맞은편 횟집 지붕에 가득 모여 앉아서 꺼져가는 가을의 햇살을 온몸으로 받으며 시간을 죽이며 회의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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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닷마을과 바다에도 어김없이 시간이 지나 저녁이 오고, 하루도 못내 아쉬운지 묵은 시간이 무거워 옷자락을 땅에 질질 끌며 이동하고, 강의 끝과 바다의 시작이 어딘가에서 서로 힘을 겨루듯 새로운 시간과 묵은 시간이 맞부딪히면서 뒹굴며 섞인다. 바다도 해를 놓치기 싫어하고. 밤과 낮, 아침과 새벽은 손등과 손바닥 같은 사이다. 가장 가까이 있으면서 절대 만날 수 없는 사이. 관계에서도 그런 사이가 있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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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닷마을은 그렇게 모락모락 가을의 하루를 보내고 시간을 따라 나도, 우리도 서로가 모르는 새 조금씩 인생을 물로 채워가고 있다. 우리의 인생을 사진처럼 단순히 밝은 부분과 어두운 부분으로 나눌 수는 없다. 그 중간에 그늘이라는 부분도 있고 뿌연 부분도 있고. 그렇게 생각하고 보내는 바닷마을의 하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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