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 비포 유, 영화도 있고 책도 있는데 저는 아직 영화는 보지 못했어요. 그리고 앞으로 가까운 미래까지는 안 보려고 해요. 책 읽어보지 않으셨다면 한 번 읽어 보세요. 마치 마음 속에 아직 아이로 남아있으려고 하는 부분이 강하게 느껴집니다. 


미 비포유를 읽으며 며칠 동안 매일 자정이 넘으면 내가 주인공 루가 되어서 윌을 만나는 기분이 들었어요.


말미에 루가 스쿠버다이빙을 바다에서 하면서 원색에 곱절은 더 다양한 아득한 풍경을 보듯, 미지의 생물들이 햇빛을 받아 은은히 빛나는 먼 곳의 형체들을 보듯 미 비 포유를 들여다보았습니다.


이렇게 아름답고 겁이 날 만큼 슬프게 글을 적은 작가도 멋지지만, 이 글을 읽기 쉽게 번역한 김선형 번역가에게 박수를 치고 싶어요.

어쩌면 작가와 번역가는 머리를 맞대고 작정하고, 우리 한 번 사람들 가슴 속에 있는 눈물을 한 번 다 뽑아내보자, 요즘 사람들은 책을 읽으며 예전처럼 눈물을 쏟아내지 않는 거 같아, 어때? 좋아 그럼 해보자. 라는 식으로 아주 마음먹고 책을 출판해 버린 것 같습니다.

특히 한국적인 단어를 많이 집어넣어서 번역을 했습니다. 그래서 어쩌면 한국 사람들이 루의 감정에 더 다가가서 읽지 않았나 하는 생각이 듭니다.

 

기괴한 외모에 아니꼬움을 그대로 입 밖으로 뱉어내며 루의 성질과 인내의 한계와 자존심을 건드리는 윌에게서 어느 날 루는 세상과 몇 걸음 떨어져 살아가는 공허한 표정을 읽어냅니다.


우리는 글을 읽으며 덤벙대고 감정에 충실하고 모든 일들이 비밀 없이 마을 사람들 입에 오르내리는 것을 싫어하면서도 모든 것을 트리나와 함께 공유하는 루에 이입됩니다.


트리나와 '방' 때문에 다툼을 벌이지만 결국 루는 동생 트리나의 어깨에 기대고 어깨를 내밀어 줄 수 있는 단 한사람이 트리나라는 것을 알고 있어요.

트리나는 '병신'이라는 말을 달고 사는 어린 토마스를 낳았을 때 이미 어른이 되었습니다.

꼭 깔때기를 통해서 세상을 보는 기분이야. (트리나가) 새로 태어난 생명을 바라보며 말했습니다. 온 세상이 쪼그라들어서 나와 저 아이만 남은 것 같아. 라고 말한 트리나는 동생이지만, 루가 어려움을 토해낼 수 있는 어른으로의 동생이 이미 되었어요.

 

루는 네이선(사지마비인 윌을 돌봐주는)과 함께 윌을 데리고 경마장을 갔다가 식겁을 하는데요.

장애인을 배려하지 않는 이 땅이 너무나 미웠고 마치 외계인을 쳐다보듯 하는 사람들의 경멸 섞인 눈빛에 분노마저 느낍니다.

왜? 그게 루의 모습이니까.

우리는 서서히 루의 감정에 이입이 되기 시작해요.

진흙에 빠진 윌의 휠체어를 들어 올리다가 온통 진흙투성이가 되어 버리고 결국 술이 취한(루에게 저질 추파를 던지는) 일행에게 가서 거짓말을 술술 하며 휠체어를 건져내 자동차까지 운반하게 하며, 절차 때문에 윌이 들어가지 못하는 레스토랑의 입구에서 대역죄인 같은 머리와 몰골로 직원에게 분노하며 소리를 지르는 모습에서 우리는 점점 루가 되어 갑니다.

처음은 윌에게서 벗어나 집으로 빨리 가고 싶었지만 서서히 윌에게서 떨어지기 싫어하는 자신을 발견하고 우리는 그런 루의 모습에 응원을 하게 됩니다.

루는 윌의 직선적이고 딱딱한 말투와 농담에 비슷하게 받아치면서 어떻든 이야기를 자주 하게 됩니다.

 

주어진 시간 6개월. 윌의 마음을 돌려 놓기 위한 빠듯한 시간.

어느 날은 윌의 고통이 하늘의 별처럼 점철 되었습니다.

윌의 턱에 노끈 같은 근육이 나타났다 사라지는 모습을 보았고, 고통으로 잠 못 이룬 숱한 밤을 말해주는 자줏빛 그늘을 윌의 얼굴에서 보았고 소리 없는 통증을 증언하는 미간의 주름을 보았어요.

 

그리고 루는 윌의 맨살에서 나는 따뜻하고 달콤한 향기를 맡습니다.

오직 윌에게서만 나는 독특한 그 무엇, 차분하면서도 값비싼 향기. 

 

윌과 함께 난생처음으로 세상의 잘난 사람들이 가는 연주회를 가게 됩니다.

루는 자신과 동떨어지게만 생각했던 연주회에서 들리는 음악의 여운이 감동을 넘어선다는 것을 느꼈고 돌아와서도 그게 희미해질까 아쉬웠습니다.

윌은 루에게 잠시 옆에 있어달라고 해요.

그저…….빨간 드레스를 입은 여자를 데리고 콘서트에 다녀온 남자로 있고 싶다면서.

그리고 온갖 방법을 이용해 윌의 컴퓨터에 윌이 이메일을 쓸 수 있게 했는데 윌에게서 이메일이 들어옵니다.

 

친애하는 클라크.

이건 내가 구제불능으로 이기적인 머저리가 아니라는 걸 보여주기 위해서 쓰는 거요. 그리고 당신의 노고를 높이 평가는 바요. 고마워요. 윌. 

 

루는 자신도 알 수 없는 감정이 올라오는 느껴요.

그리고 루는 윌과 함께 여러 가지를 나누고 대화를 하고 노래를 부르고 웃습니다.

드디어 루는 휠체어를 타고 있는 윌과 함께 친구의 결혼식에서 춤을 추게 됩니다.

그 장면은 눈에 선하게 그려지며 입가가 올라가요.

아름다운 장면이었거든요.

 

아침에 눈을 뜰 때마다 죽고 싶다고 생각하던 윌이 루에게, 가끔은 말이에요, 클라크. 이 세상에서 나로 하여금 아침에 눈을 뜨고 싶다는 생각이 들게 만드는 건 오로지 당신밖에 없다는 거. 

 

루는 자신의 세상과 동떨어진 호텔에서 하룻밤 묵고 나오면서 닥치는 대로 챙겨온 공짜 샴푸, 컨디셔너, 미니 바느질 키트와 샤워 캡 등등이 끝도 없이 나오는 장면에서 루는 정말 사랑스러운 모습입니다.

단지 본인이 너무 모르고 있었어요.

 

루는 자신의 역량을 넘긴 일들을 해가면서 윌과의 여행을 준비했고 결국 목적지로 갑니다.

거기 정말 우리가 와 있었다. 내가 해냈다. 라는 대사에서 나까지 뿌듯했습니다.

윌이 행복하기를 바란다면 자신이 먼저 행복해져야 한다는 착한 아가씨 루.

윌의 피부 깊은 곳까지 스며들어간 태양의 냄새를 맡았던 루.

마지막 루와 윌은 어떻게 될까. 

 

책을 읽으며 두 사람의 감정에 이입되기도 했지만 장애인에 대해서 특히 사지마비환자에 대해서 깊게 들여다볼 수 있었어요.

선진국이라고 하는 영국과 프랑스역시 휠체어는 아직 대중의 관심과는 거리가 멀었으며 무엇보다 스위스에 있는 디그니타스병원(합법적으로 죽기를 도와주는-근래에 우리나라에도 생존연명을 하지 않아도 된다고 하죠)에 대해서 알아 볼 수 있었고 60개국의 나라에 5500명의 회원이 있다는 것도 알게 되었습니다.

삶의 끝에 대해서 매일 생각하며 살아가는 이들이 지니는 괴리감과 고통에 대해서 잘 서술해 놓아서 더 마음이 덤덤했습니다.

 

눈을 감고 있는 윌을 바라보는 루의 장면에서는 올리비아의 노래 winter sleep이 너무 어울렸어요. 파리하게 잠들어 있는 윌을 촉촉한 눈으로 바라보는 루의 얼굴에 윈터 슬립이 내려 앉습니다. 한 번 들어 보세요.

며칠동안 자정이 되면 완전히 아이로 돌아가 있었어요. 영화는 아직 못 봤지만 영화도 보시고 책으로 먼저 읽어 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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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깅을 하는데 달리는 코스에 사람들이 부쩍 줄었다. 그 많던 사람들이 에고고 하며 추위에 나올 엄두를 못 내는 것 같다. 아직 시월인데. 작년 이맘때와 다른 점은 작년에 늘 보이던 길고양이 양추 녀석의 졸고 있는 모습을 볼 수 없다는 것이고, 비슷한 점은 추워진 정경의 매력을 느낀다는 것이다. 차가운 바람이 휘잉 몰아치면 책장을 넘기듯 강변의 물결이 숨을 쉬고 그 위에 떠 있는 오리들이 오선지의 음표처럼 물결치는 모습은 작년 이맘때와 흡사하다. 역시 그 흐름을 눈으로, 촉감으로 느끼고 있으면 실감이라는 것에 부쩍 다가선다

.

 

조깅을 하고 맥주를 사들고 야심하게 안주해서 먹으려고 도시락을 싸왔다. 멍게만큼 좋아하는 게 고추 된장무침인데(참 저렴한 입맛이다, 나는 남들이 사랑하는 고기는 잘 먹지 않는 것 같다) 고추 된장무침이 맛있으려면 된장이 맛있으면 된다. 된장은 불영계곡에 있는 외가에서 공수해온 것인데 이제 먹던 게 떨어지면 끝이다. 고추는 썩 맛이 없어도 된다

.

 

고독한 미식가의 고로가 된다. 치즈를 이렇게 잘라서 같이 먹으면 위장에 불을 지르는 고추의 힘을 치즈가 오냐오냐하며 덮어준다. 걸어온 길이 다른 두 가지의 맛이 음,,, 조화를 이룬다. 이자나이까. 어울리지 않을 것 같지만 오물오물 씹고 있으면 괜찮지 않은가. 히히호호 고추의 이 매운맛과 마음을 평정시키는 된장의 맛이 치즈의 감각으로 느껴지는 이 활력. 이때 맥주를 한 모금. 오오 히레히레호호

.

 

나의 직감을 넘어서는 상상을 초월하는 맛이, 말하지 않으면 알 수 없는 미묘한 맛이, 멍게에 뒤지지 않는 맛이 나를 미지의 세계로 이끄는구나. 이때 계란 프라이를 한 입. 이것이 오늘의 MVP구나. 우호. 이 정도면 괜찮지 않은가.이야 맛있게 먹어 버렸다-고로가 되었던 시간

.

 

겨울은 아름다운 계절이다. 모든 것을 차갑게 만들고 시리게 하는 마력이 있다. 세상의 모든 것이 몸을 웅크리고 추위를 피해 몸을 말고 있는 모습은 겨울이 아닌 계절에는 볼 수 없기에 겨울에는 더 따뜻한 모습을 볼 수 있는 아름다운 계절이다. 곧 겨울이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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릴리슈슈의 모든 것

.

 

아름답게만 보이는 오키나와. 푸른 산호와 활짝 핀 꽃들과 거대한 수풀과 멋진 모양의 나무들이 장관을 이룬 오키나와. 하지만 그건 사람의 입장에서 보는 오키나와일 뿐이다

.

 

산호는 자기가 살기 위해 촉수를 뻗어 옆의 산호를 죽인다. 잘 알겠지만 트러플 역시 주위를 다 죽여가며 양분을 빨아들인다. 오키나와의 어떤 나무는 다른 나무를 휘감아 죽이고 그 자리에 자신이 살아간다. 식물의 잎이 화려할수록, 컬러가 알록달록할수록 그들은 극한으로 몰려 자기방어의 최후 수단인 형형색색으로 표현한다. 꽃이 예뻐 보이는 건 인간의 눈에나 그렇지 그 속에 살고 있는 것들은 실은 지옥인 것이다

.

. “우리에겐 낙원처럼 보여도 자연 속 생물들에겐 지옥일지도 몰라, 자연이란 그런 거지, 삶과 죽음이 공존하는 곳”

.

.

 

평범하게 보이는 일상이지만 그 속에서 지옥 같은 매일을 보내는 아이들의 이야기, 하루를 견디기 위해 하루를 죽을 수밖에 없는 아이들의 이야기다. 빛과 같은 하나의 희망은 오직 릴리슈슈의 음악뿐이다

릴리슈슈의 모든 것, 이 영화는 잔인함에 입각한 잔인하고도 잔인한, 더없이 잔인한 영화다

단짝이었던 친구를 아이들이 보는 앞에서 자위행위를 시키는 잔인함. 같은 여자아이의 발가벗긴 사진을 미끼로 원조교제를 시키는 잔인함. 원조교제를 하면서 어른의 지갑을 훔치는 잔인함. 하늘을 날고 싶어 그대로 자살을 해버리는 잔인함. 자식을 버리는 잔인함. 같은 반 친구를 강간하는 잔인함. 자신의 머리를 밀어버리는 잔인함. 오키나와에서 교통사고를 내고도 잘못을 돌리는 잔인함. 살아가는 이유인 릴리슈슈의 음악 앞에서 친구를 찌르는 잔인함. 영화는 처음부터 끝까지 잔인함으로 덮여있다. 그 잔인함이 무척 견고하고 단단하여 영화를 보다 보면 그 잔인함이 인간 만이 낼 수 있는 것이라 무섭고 서늘하기만 하다

잔인함이란 인간만이 낼 수 있고, 그 잔인함은 호기심에서 발현했을 수 있다. 호기심이 고양이를 죽이는 법이니까

.

이 영화는 근래 우리나라 영화 ‘박화영’처럼 아이들이 나오는 아이들 영화인데 아이들이 볼 수 없는 영화다. 영화 속 아이들은 절망과 희망을 손바닥과 손등처럼 같이 지니고 다닌다. 잡힐 것 같으면서도 잡히지 않는 희망의 희미한 줄기의 릴리슈슈의 노래들

.

 

존재, 호흡. 우주는 창조된 것이 아니라 처음부터 그 자리에서 존재해 있었다는 것

.

 

가수가 되고 싶다, 그림을 그리고 싶다, 소설을 적고 싶다,라고 하면 평범한 삶을 택해라, 평범하게 살아라, 그게 너에게 도움이 된다, 너를 위해서 하는 말이다. 그런데 평범하게 사는 건 쉬운가. 평범하게 살면 지옥에서 벗어날까. 평범하다는 건 어떤 것일까

.

 

공무원이 되고, 대기업에 들어가서 진급하면서 결혼해서 아들딸 낳고 그렇게 살아가는 것? 그 속도 실은 지옥일 텐데. 뉴스를 장식하는 사건 사고의 대부분은 평범하게 보였던 사람들에게 일어난 일인데. 평범이라는 것이 깨져 버리면 이어 붙이는 건 어렵다. 어려운 게 아니라 불가능하다. 평범하게 살아가는 사람들은 아마도 죽을힘을 다해 그 평범함을 지키려고 안간힘을 쓰고 있는 것이다

.

 

평범이라는 방어막을 앞세워 어른이 뭔데 아이들의 꿈을 다 막으려 할까. 치유를 받고 소통을 할 수 있는 방법이 돈과 굴종시키는 것과 무사유여야만 한다는 생각. 평범하게 사는 것, 안전한 직장을 얻는 것, 무난한 인간관계를 가지는 것을 강요한다면 그것이 지옥이다

.

 

발버둥을 쳐도 벗어날 수 없는 아이들. 하루키의 어둠의 저편에도 이런 대사가 나온다. ‘너는 도망칠 수 없다’ 그건 소설 속에서뿐만 아니라 모든 이에게 하는 말이기도 하다. 이 세상에서 도망 칠 수 있는 곳은 어디에도 없다

.

 

내면의 소리를 듣는 것.

남들이 보지 않는 것을 보는 것.

매일 조금씩 읽고 음악을 듣는 것

.

 

잔인한 영화는 잔인하게 흘러 잔인하게 끝난다. 잔인한 음악만을 남겨둔 채 스스로에게 잔인하기만 했던 아이들의 무표정한 얼굴이 잔상에 남는 영화. 릴리슈슈의 모든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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러브 앤 머시, 이 영화는 소리가 죽음으로 몰고 가고 소리로서 다시 살아가는, 살기 위해서 죽어 가는 남자, 브라이언 윌슨의 이야기, 세계가 놀라버렸던 앨범 '팻 사운드'의 이야기다
.

영국에서 아메리칸 인베이전을 성공한 1세대 영국 밴드는 믹 재거의 롤링스톤즈였다. 롤링 스톤즈 잡지까지 등장해서 지금까지 음악 잡지로는 명실 상부하며, 믹 재거는 비슷한 외모로 아직까지 건재하니 롤링 스톤즈는 실로 외계 그룹이 아닌가 싶다. 다음 2세대가 컬처클럽이었다. 보이 조지가 있던, 조지 보인가, 암튼 컬처클럽의 성공은 록밴드가 아니어도 된다는 의미를 가지게 만들었다. 아니지 비틀스가 2세대, 컬처클럽이 3세대. 아무튼 영국 밴드의 음악적 미국 침공이 여러 차례 있었지만 성공시킨 영국 밴드는 몇 없었다. 자칭 비틀스의 환생이라던 오아시스 역시 실패를 맛봤지만 비틀스는 해낸 것이다
.

60년대 비틀스는 영국을 벗어나 거대한 아메리칸 인베이전을 감행하고 미국의 음악세계를 영국의 보이밴드가 평정을 해버린다. 비틀스가 가는 곳이면 소녀팬 수 천 명이 몰려다녔고 티브이 쇼 프로그램에 나오면 사람들이 길거리를 지나다니지 않고 티브이 앞으로 몰려들었다. 예전 한국의 모래시계가 할 때 거리가 한산했던 것처럼. 미국에 나타난 비틀스는 그야말로 기분 좋은 경악이었다. 하지만 미국의 한편에서 비틀스도 넘보지 못하는 그룹이 있었으니 바로 브라이언 월슨의 비치 보이스였다. 비치보이스가 있는 한 미국에서도, 그 중 제일 크나큰 캘리포니아를 침범할 수 없었다
.

당시 미국의 60년대는 음악적으로 가장 아름다운 시기였고 캘리포니아로 자본이 흘러 들어가던 시기였다. 당시의 캘리포니아는 막강한 자본력으로 어느 도시보다 화려했고 심지어는 당시 국가경쟁력이 떨어지는 한 국가보다도 자본이 많았다. 강렬한 태양이 늘 솟아오르고 비치가 있고 파라솔과 비키니와 스포츠카가 만연했던 캘리포니아. 여자를 노래하고 해변을 노래하고 바람과 자연을 노래하던 비치 보이스의 인기는 어마어마했다
.

우리나라에서 비치보이스의 노래하면 코코모를 떠올리지만 미국은 당연하게도 서핀 USA다. 아쉽지만 코코모에는 브라이언 윌슨은 빠졌을 때다. 비치 보이스의 '아이 겟 어라운드'라는 노래를 한 번 듣고 오자. 자 들어봤다. 이거 정말 신날 수밖에 없다. 러브 앤 머시 영화 초반에도 노래가 나오지만 모든 것을 잊어버리게 만드는 신나는 노래다. 뜨거운 태양과 비치, 파라솔이라는 관념은 당시의 어려운 미국의 도시나 어려운 경제 사정의 대부분의 나라들은 꿈도 꾸지 못하는 풍경이었다. 그 최고의 경지에 올라있는 그룹이 비치보이스였다. 이대로만, 이런 노래들을 부르면 자본은 굴러 들어오고 인기는 유지가 되는 시기였다
.

하지만 다른 멤버에 비해 브라이언 윌슨은 언제까지 태양과 바다와 여자를 노래할 수 없었다. 그는 비틀스의 러버소울 앨범을 듣고 충격을 받는다. 늘 환청처럼 들리는 소리는 자신을 죽음 직전까지 몰고 간다. 눈을 감으면 보이는 이상한 세상에서 들리는 소리들이 매일, 어느 시점에서, 어떤 시간에 자신에게 들려온다. 리스닝과 히얼이 있다면 듣고 싶어서 들으려 하는 소리와 듣고 싶지 않음에도 들려오는 소리는 소음을 넘은 그 무엇이 있다. 알 수 없는 소리들, 부르짖는 소리, 깨지는 소리, 부서지는 소리, 타오르는 소리는 브라이언 윌슨을 끝으로, 끝으로 몰고 간다. 그리고 그 소리를 앨범에 담으려고 했다. 브라이언 윌슨은 멤버들에게 말한다
.

브라이언 윌슨: 비틀스의 러버 소울(노르웨이 숲이 여기에 있다) 앨범 들어봤어?
멤버: 그거 존 레넌의 바람 핀 이야기잖아.
브라이언 윌슨: 나에게 좋은 생각이 있어, 니들까리 일본에 공연을 갔다 와, 내가 정말 멋진 음악을 만들어 놓을게
.

그리하여 영화는 브라이언 윌슨이 ‘팻 사운드’의 앨범을 만드는 과정을 보여준다. 우리가 그토록 좋아했던 앨범이 이렇게 탄생했다는 역사적인 순간을 영화를 통해서 볼 수 있었다. 그건 브라이언 윌슨을 좋아하는 사람에게는 경이로운 일이었다. 젊은 시절의 브라이언을 연기한 폴 다노는 당시 소리 때문에 약과 술에 살이 찐 브라이언을 연기하기 위해 몸에 살을 찌웠다
.

팻 사운드의 앨범 표지를 보면 비치 보이스의 멤버들이 동물들에게 먹이를 주는 모습이 있는데 브라이언은 팻 사운드에 녹음실에 데리고 온 개들의 짖는 소리들까지, 그리고 녹음에서 농담을 하는 이야기 소리까지 앨범에 담았다. 그 당시에는 그러한 실험적인 음반이 좋은 소리를 들을 리 없었다. 설령 같은 멤버라고 할지라도
.

영화는 시간이 지난 후의 브라이언의 모습도 보여준다. 그 연기는 존 쿠삭이 한다. 처음에는 폴 다노와 존 쿠삭? 뭐야?라고 생각했지만 영화를 보다 보면 그 둘이 정말 하나라고 느낄 정도로 브라이언 윌슨을 표현해낸다. 영화는 다른 음악영화처럼 공연 장면이나 그들의 거대한 인기에 중점을 두지 않는다
.

정신적인 지주였고 자본의 표상이었던 아버지에게 도움을 받지만 또 어린 시절 자신을 무자비한 폭력으로 굴복시킨 사람도 아버지였다. 브라이언 윌슨은 정신적인 충격으로 침대 위에서 나오지 않고 2년 동안 생활을 하기도 했다. 그걸 브라이언의 침대의 몰락이라고 한다. 그 고뇌와 감당할 수 없는 소리의 공격에서 벗어나는 계기가 있는데, 그를 일으켜 세운 여자 멜린다가 그 계기였다.  무자비한 폭력이 아버지라면 멜린다는 무자비한 사랑이었다
.

펫 사운드가 세상에 나오고 가장 놀란 사람은 비틀스의 존  레넌이었다. 이후 존 레논은 악동의 모습에서 점점 메시아의 모습으로 바뀌어 간다. 비치 보이스에 팻 사운드가 있다면 비틀스에는 화이트 앨범이 있다. 그중에서 ‘레볼루션 넘버 나인’도 잡음과 소리로만 만든 음악이다. 전위적인 소리로 녹음을 한 이 곡은 개인적으로, 아마도 존 레넌이 팻 사운드보다는 윤이상의 곡을 듣고 만들지 않았을까, 그런 생각이 든다. 순전히 개인적인 생각이다
.

어떻든 비치 보이스와 비틀스의 이런 보이지 않는 음악적 경쟁이 지금 우리가 앉아서 듣고 있는 명반을 만들어낸 것이다
.

그럼 우리나라에는 이런 음악을 했던 사람이 없었냐? 있었다. 불과 몇 해 전까지만 해도 음악 작업에 몰두했었다. 그는 음악으로 할 수 있는 모든 종류의 음악을 앨범으로 만들어 내놓았다. 가사는 니체를 떠올리게 하는 철학적 내용에 재즈, 블루스, 해비메틀, 록, 발라드, 그런지, 클래시컬한 부분까지 한 사람이 했다고는 할 수 없을 정도의 음악을 하고 간 사람이 있었다. 그 사람이 신해철이다
.

러브 앤 머시, 제목처럼 이 영화는 사랑과 자비를 말하고 있다. ‘사랑과 자비를 너와 네 친구들에게 바칠게’라는 가사가 있다. 사랑과 자비 그리고 위로가 죽어가는 것들을 일으켜 세운다. 소리로서 죽어가고 소리로서 살아가는, 그래서 살기 위해서 죽어가는 브라이언 윌슨의 팻 사운드 영화 러브 앤 머시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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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번에 잠깐 리뷰를 했지만 물괴를 보면 전투 장면이 한 장면 나오는데, 보통 영화 속에 나오는 액션은 합을 맞춰야 한다. 우리가 보는 영화에 애드리브는 사실 거의 없다. 영화는 대체로 굉장히 과학적이고 수학적으로 정확하게 움직여야 보는 이들이 자연스럽게 느껴진다

.

 

물괴에 나오는 이 정도의 액션은 아마도 영화배우들이 합을 몇 십 회, 아니 몇 백 회의 합을 맞춰야만 이 정도의 액션이 나온다. 게다가 김인권은 액션 장면에서 상대방을 잡고 공중으로 돌기도 하고 칼을 휘두르는 액션 역시 수많은 연습을 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김명민 역시 액션에 노력을 기울였다. 여타 엑스트라들도 합을 맞추기 위해서 주연들과 합을 맞추는 노력을 기울였다는 것을 알 수 있는 장면이다

.

 

그. 런. 데.

촬영감독이 이 모든 노력을 완전히 죽여 버렸다. 핸드 기법으로 고정하지 않고 손으로 들고 마구잡이로, 그러니까 클로버필드처럼 카메라를 잡고 배우들이 고생한 것은 전혀 고려하지 않고 아하하하 하며 내 갈 길만 갈 거야, 하며 촬영을 해버렸다. 그래서 영화는 망했다

배우들이 노력한 것을 카메라에 잘 담아내는 것 역시 영화의 중요한 요소인데 물괴 이 영화는 그것을 무시함으로써 영화를 살릴 수 있는 결정적인 순간을 놓쳐버렸다. 그저 지나가다가 사라지는 엑스트라에 비해 이 장면에 나온 엑스트라는 굉장한 노력과 연습을 했는데 얼굴은 고사하고 몸동작 역시 카메라가 씨바 그냥 막 흔들었다. 욕해서 미안. 답답한 장면이었다

.

 

곧 개봉하는 보헤미안 랩소디 때문에 러브엔 머시를 리뷰했는데 물괴에 관한 이 부분은 이야기하고 싶었다. 물괴와 비슷한 창궐이 개봉을 했기에 물괴보다 나은지, 더 괜찮은지 기대를 해보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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