젤다와 자신의 남편, 피츠제럴드가 위대한 개츠비로 성공을 거두자 두 사람은 명실 상부한 뉴욕의 셀러브리티 커플로 알려진다. 톡톡 튀고 독립심이 강하고 예술과 문화를 사랑하고 무엇보다 예쁘고 아름다운 그녀를 당시의 미디어와 사람들은 추앙했고 사랑했다
.

그녀는 자신의 그런 삶을 더욱 사랑했고 옆에는 당대 최고의 소설가가 늘 지켜봐 주었다. 도취될 수밖에 없었다. 거울을 들여다보면 아름다운 여자가 늘 웃고 있었다. 부족함이 없었다. 자신의 모습에 스스로가 빠져 들었고 연일 열리는 파티에 참석하여 술과 문학과 재즈를 즐겼다. 주위에는 돈이 흘러넘쳤고 옆에는 명성이 있는 자신의 남편이 있었다
.

영원할 것만 같았다.
자신의 아름다움이.
이 모든 생활이
.

파티가 지속되고 개츠비 이후에 개츠비만 한 글이 안 나오는 것에 안타까움을 느낀 피츠제럴드의 절친이었던 어니스트 헤밍웨이가 파리의 한 파티가 열리는 곳으로 피츠제럴드를 찾아간다. 사람들에게 둘러싸여 술잔을 한 손에 쥐고 상류층의 복장을 하고 포마드로 단정하게 머리를 넘긴 피츠제럴드를 찾은 헤밍웨이는 그가 있는 곳으로 갔다
.

헤밍웨이: 이봐 자네. 요즘 괜찮은가? 이건 너무 심하지 않은가?
피츠제럴드: 이보게 친구, 잘 보게. 이것이 삶이라네. 더 이상 무엇이 있겠는가? 자 한잔하고 가게나
.

아마도 이런 대화가 오고 갔을 것이다. 이런 장면은 영화 미드나잇 인 파리를 봐도 잘 나온다. 피츠제럴드는 헤밍웨이가 왔음에도 예전 같지 않았다. 변해있었던 것이다. 헤밍웨이는 후에 그가 이렇게 망가진 것은 그의 옆에 있는 젤다 때문이라고 했다. 그녀가 그를 망치고 있는 것이다
.

그렇지만 피츠제럴드는 그녀를 사랑했고 그녀가 원하는 것은 모든 들어주고 싶었다. 피츠제럴드와 젤다는 돈을 물 쓰듯 썼다. 술을 마시면 언제나 만취였고 호텔의 분수에 뛰어 들었고 신문의 일 면을 장식했다. 연일 열리는 파티와 파티 사이에 천재적으로 써 내려간 단편은 거액으로 출판사에 팔려 나갔다. 피츠 제럴드의 이 모든 행동과 삶은 오로지 젤다를 위한 것이었다
.

우리는 젤다와 개츠비 속의 데이지를 욕하지만 젤다는 피츠제럴드의 한없는 사랑을 받았다. 그의 눈과 촉은 젤다를 향해 있었고 그녀가 움직이면 그의 촉도 같이 따라 움직였다. 그녀가 먹고 싶은 것이 있으면 세 시간이 걸리는 곳도 마다하지 않았을 것이며 그녀가 바라는 옷이 있다면 어떻게든 구해서 선물했을 것이다. 투정을 부리면 받아줬을 것이고 눈물을 흘리면 안아줬고 매일 밤마다 그녀의 귀에 사랑을 속삭였을 것이다
.

젤다의 사진을 보면 헤어스타일이 독특했고 의상도 화려했다. 당시에 가장 핫한 인물임을 나타낸다. 요즘도 하기 힘든 머릿결의 웨이브라든가 스타일은 당시 최고였고 피츠제럴드의 열렬한 응원을 받고 있었다. 부족함 없이 돈을 쓸 수 있었다. 여자라면 누구나 원하고 바라는 삶일지도 모른다
.

부족한 것 없는 집안에서 철없이 자란 여자를 대부분의 사람들은 욕하지만 죽을 때까지 철없이 살아갈 수 있다면 그것대로 꽤 멋지고 괜찮은 삶일 것이다
.

모든 사람들이 많은 돈을 거머쥐며 부족함 없이 살기를 원하며 자식에게는 좀 더 나은, 보다 좋은 환경을 제공해 주고 싶어 한다. 그런 면에서 본다면 현실적인 젤다와 데이지에게 과연 손가락 짓을 할 수 있을까
.

젤다와 피츠제럴드의 방탕하고 호화로운 생활은 십 년 만에 비극을 맞이한다. 미국은 29년에 대공황을 맞이하게 된다. 피츠제럴드의 소설도 파국을 맞이하며 끝을 맺게 된다. 대신 미국의 문학적인 영웅을 맞이하게 되는데 그가 바로 ‘어니스트 헤밍웨이’였다
.
.
뒷 이야기는 다음 이 시간에 


댓글(0) 먼댓글(0) 좋아요(8)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서울의 휴일’이라는 이 영화는 1956년도 영화다. 영화가 시작하고 내레이션이 나온다. 내레이션과 배우가 말을 주고받는 영화 작법으로 시작하여, 서울의 거리가 왜 이렇게 한산할까, 이상야릇한 노릇이군, 어허 이건 무슨 일일까.라며 내레이션이 나오다가 아, 그러고 보니 오늘이 서울의 휴일이라면서 영화는 포문을 연다

50년대의 영화는 60년대의 영화와는 또 달라서 목소리 톤이 거의 이북 사투리에 가깝다. 개인적으로 오래된 한국 영화를 여러 편 본 편이라 지난 배우들의 얼굴을 꽤 알고 있지만 50년대 영화 속 배우들의 모습은 생소하다

이 영화의 줄거리는 신문사 사회부 기자와 뷔너스 산부인과 의사인 부부, 노능걸(기자는 휴일이 따로 없다)과 양미희가 서로 바빠서 둘 만의 시간을 갖지 못하다가 모처럼 둘 만이 시간이 되는 서울의 휴일에 같이 보내려다가 남편 노능걸이 전화 한 통을 받고 부인인 양미희에게 한 시간만 기다리라며 나가서 후암동 살인 사건에 휘말려 쫓기면서 부인에게 돌아오는 시간을 못 지키고 양미희는 친구들의 말과 신문사에 전화를 해도 오늘 안 나왔다는 말을 듣고 남편은 바람을 핀다고 의심을 하고, 남편은 취재를 갔다가 살인범과 격투 끝에 검거하고, 다른 곳에서 살인범의 아내가 출산을 하는 것을 도와준 양미희는 그곳에서 남편을 만나고 남편을 이해 하게 된다. 이 영화는 오전 8시부터 오후 8시까지의 서울의 신 세대, 신 여성과 신 남성인 부부의 이야기다

이 영화에는 서스펜스, 미스터리, 휴먼, 가족애, 불륜, 정신질환, 배신, 리벤지 모든 것을 영화 속에서 녹아내려고 했고 그리고 잘 했다. 영화는 무엇보다 세련됐다

이 영화 ‘서울의 휴일’은 ‘로마의 휴일’의 스타일을 잘 따라 하고 있다. 주인공으로 나오는 신여성의 모습인 양미희의 헤어스타일은 오드리 헵번을 따라 했고 입고 있는 세련된 양장 스타일 역시 그렇다

영화 속에서는 대화 역시 신시대에 맞게끔 영어를 섞어가며 하고 대사는 소설처럼 화려한 문체를 구사한다. 희한한 운명의 희롱이로군 짓밟힌 인생과 생명의 탄생. 같은 대사가 이 영화 속에는 널려 있다. 그리고 영화 시작 초반 두 사람의 대화는 이렇다

우리 둘만의 시간을 가져본 적 있어요?

그러니까 이렇게 엔조이 하고 있는 거잖소.

석 달 만에 우리 둘만의 시간인데 당신은 너무 에고이스트에요.

요즘의 여성들은 애정의 진리를 통 모르는군.

이러다가 오늘 플랜이 다 틀어지고 말 거예요.

그렇게 빈정만 대시면 전 동무들하고 놀러 갈 테니까 그렇게 아세효

친구들을 동무들이라 칭하는 것도, 말끝이 올라가는 이북 사투리에 요, 가 효,처럼 들린다. 

무엇보다 이 영화는 당시에 누릴 수 없는 사람들의 동경이 되는 생활과 배경, 그리고 건물과 술을 영상 속에 가득 집어넣었다. 당시에는 아주 세련되게 만든 영화다

양미희 뒤로 보이는 건물은 우리나라 최초의 호텔인 반도 호텔이다. 계단이 밖으로 나와 있는 것이 보인다. 집 안 내부의 모습도 지금 우리집 보다 좋다. 거실과 침실도 크고 벽지도 세련됐다. 분명 로마의 휴일이나 그레이스 캘리가 나오는 영화의 배경을 답습했다. 당시에는 엄청난 돈을 들여 영화 속 세트를 만들었던 것이다. 창문의 커튼과 책장의 모습도 세련됐다. 다른 장면을 보면 책장 속의 책은 아주 오래된 것이다

신문을 보면 한글보다는 한문이 많은 것을 알 수 있다. 50년대에는 한글보다 한문으로 글을 읽는 것이 어쩌면 더 수월했을 것이다

이 영화 이전에는 시도하지 않았던 키스 장면도 있다. 두 사람의 대화는 소설책을 읽는 듯 흘러가다가 두 사람은 포개져서 키스를 한다. 아마 극장 밖에 이런 장면을 볼 수 없기에 사람들은, 즉 서울에 있는 사람들은(지방에는 극장도 없었을뿐더러 있다 해도 상영이 되지 않았을 것이다) 기를 쓰고 보러 가지 않았을까

산부인과의 모습도 세련됐다. 의사 가운을 입은 주인공 양미희의 모습이다

후암동 살인사건의 제보를 받는 모습이다. 전화기의 모습을 보면 세트에 맞추기 위해 소품을 구하려 고생을 한 듯 보인다. 외국에서 들여왔거나 그랬을 것이다. 뒤의 페치카의 모습도 좋다

서울의 당시 시내 모습도 볼 수 있는데 당시 사람들은 구경도 해보지 못할 최초의 자동차가 이 영화 속에는 오드리 헵번의 로마의 휴일만큼이나 많이 나온다

 

 

이 장면은 꽤 쇼킹한 장면이었다. 양미희의 회상 부분인데 한강에서 보트를 타는 장면을 회상하는 장면인데 이렇게 영상으로 옮겨놨다. 수영복의 모습 역시 당시 미국의 할리우드 영화 속의 배우들이 입던 세련된 수영복을 떠올리게 한다. 이런 수영복이 있다는 것조차 당시 사람들은 몰랐을 테니까

60년대의 로맨스 빠빠나 서울의 지붕 밑 같은, 이 영화보다 더 후에 만들어진 영화 속에도 막걸리를 마시는 장면이 대부분인데 이 영화에서는 맥주를 마시는 장면이 나온다. 맥주도 아마 최초로 등장하지 않았나 싶다. 크라운 맥주로 여성은 맥주를 마실 때 새끼손가락을 든다

당시에는 없었을, 빨대로 주스를 마시는 모습도 나온다. 이 한 장면으로 이 영화가 미술적으로 얼마나 세련되었는지 잘 보여준다. 테이블 보의 문형부터, 뒤로 보이는 건물과 신여성들도 보이는 옷들 역시 한껏 세련됐다. 이 장면에 두 명의 신 여성이 등장하는데 대화는 남편들을 까는 내용인데 바람을 피우는 남자를 난봉쟁이라 일컫는다

남편의 회사 동료들과 어울리는 장면이다. 남편의 동료들도 남편이 바람을 피우고 있는 것으로 알고 양미희를 데리고 기분을 풀어 주려고 맥주를 마시러 간다. 이런 장면은 요즘은 흔한 장면이나 봉건 제도가 강했던 50년대에서는 틀을 깨는 장면이다. 여자 혼자 남자 셋과 어울려 술을 마신다는 건 사실 요즘도 안 된다고 하는 사람들이 많을 것이다

굉장히 세련된 장면으로, 야외의 테라스에서 맥주를, 남녀가 마주 보며 맥주 잔을 부딪힌다. 역시 뒤로 반도호텔의 모습이 보인다

맥주를 마시기 전 남편의 친구들과 골프를 친다. 내기 골프에서 양미희가 져서 맥주를 마시러 가는 것이다. 사실 골프보다는 크로케에 가깝다. 공을 좁은 곳에서 이리저리 굴려 홀에 집어넣는다

캡처한 장면 되로 보이는 지붕에 서울시청의 모습이다. 그러니까 이 영화는 집어넣을 수 있는 한국의, 서울의 세련된 배경은 다 넣었다

이 장면에서 아주 멋진 대사가 나온다. 남편 친구들은 양미희에게 왜 술잔을 부딪히는지 아냐고 묻는다. 그러면서 대사가 나온다. 

말할 수도 없이 우리의 미각을 만족시키는 것은 두 말할 나위도 없습니다만은 이 황금색 액체는 우리의 시각도 만족시키고 이렇게 시원한 것이 제법 촉각도 만족시키죠. 야릇한 향기는 후각도 만족시킵니다만은 다만 한 가지 모자라는 청각은 요렇게 해서 사람의 오감을 만족시키는 거랍니다. 

이 이상 맥주 잔의 부딪힘을 잘 설명할 수 있는 말이 있을까

이 영화는 당시 사람들에게는 저 높은 동경의 대상이라 재미도 있지만 기록성을 지니는 아주 귀한 영화가 아닐까. 사람들은 로마의 휴일은 기억하지만 이렇게 좋은 한국 영화는 전혀 모르니까. 참고로 컬러로 된 복원 판도 있다고 한다

 


댓글(2) 먼댓글(0) 좋아요(7)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곰곰생각하는발 2018-11-15 14:1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50년대, 60년대, 70년대 한국 영화를 볼 때마다 느끼는 것은 배우뿐만 아니라 서울 도시 풍경을 보여줄 때의 군중 모두 날씬하다는 것을 느끼게 됩니다. 그때는 모두다 탄수화물 위주의 식사였을 텐데 말이죠. 요즘은 탄수화물의 비만의 주범이라고 하던데... 옛날 한국 영화 보면 틀린 답일수도 있다는 생각이 듭니디ㅏ..

교관 2018-11-16 13:34   좋아요 0 | URL
요즘 탄수화물에는 이것저것 여러가지가 많이 들어 있나 봅니다. 저 시대에는 좋은 콜레스테롤 나쁜 콜레스테롤 같은 것도 따지지 않았을 것 같아요.
 

 

이렇게 기분 안 좋게 만난 두 사람은 기적처럼 좋아하는 사이가 된다. 두 사람은 예쁜 사랑을 키워가고 반지를 끼워주며 결혼을 약속하고 마이가 그토록 원하는 곳에서 결혼식을 올리게 해 주겠다며 히사시는 바로 예약을 한다. 마이는 너무 행복해서 무섭다고 하고, 그 불안은 현실이 되고 만다. 난소의 종양이 뇌까지 침입하여 몇 년을 식물인간으로 지낸다. 쓰러진 첫날부터 히사시는 마이가 일어나는 그날이 올 때까지 폰으로 매일을 하루하루 기록해나간다. 그리고 예약한 결혼식장도 매년 3월 17일에 올지 모르니 계산을 하고 예약을 해 놓는다. 매일이 지옥 같지만 곁에 있어주기로 약속한 히사시는 정말 그렇게 한다. 그리고 기적적으로 마이가 눈을 뜬다. 하지만 아이의 지능으로 돌아와 있지만 재활을 열심히 한 덕분에 말도 하고 노래도 흥얼거린다. 하지만 히사시를 기억하지 못하는 마이. 마이는 히사시의 기억을 찾으려고 발버둥을 치다가 혼자서 비가 오는 날 휠체어를 타고 히사시의 아파트로 갔다가 넘어져 울고 만다. 마이를 찾아서 자신의 아파트 입구까지 온 히사시. 거기서 이까짓 기억이 뭐라고 히사시는 마이에게 자신의 기억을 하지 못하는 것에 괴로워하지 말라며 곁을 떠난다. 기억에 없는 모르는 남자가 늘 옆에 있었는데 사라지자 마이도 허전함을 느낀다. 엄마와 산책을 하다가 웨딩홀 앞을 지나게 되다가 웨딩플래너를 만나고 히사시의 이야기를 듣게 된다. 마이는 혼자 움직일 수 있게 되어 휠체어를 타고 히사시가 있는 곳으로 간다. 하지만 마이의 입장에서 히사시는 전혀 모르는 남자일 뿐이다. 기억도 없고 아무것도 없는 남자. 그리고 가면서 비밀번호를 몰라서 열지 못하던 자신의 휴대폰을 여는데 히사시에게 526개의 문자메시지가 와 있다. 첫날부터 기록해둔 마이에 대한 히사시의 사랑. 그리고 마이는 히사시가 있는 섬으로 가서 둘이 만나게 된다. 두 사람의 결말은 결혼식을 올리며 행복하게 끝난다

.

 

쉬지 않고 국수 한 그릇을 먹는 정도로 말을 해버렸는데 이 영화는 그런 이야기다. 클리셰에 신파에 이 허무맹랑하고 말도 안 되는 이야기는 일본의 실화다. 몇 년 동안의 기억만 있는 남자와 이 남자에 대한 기억이 전혀 없는 여자. 그런 여자를 보며 그녀 곁을 떠나는 남자. 그런 남자를 다시 찾아온 여자의 이야기

.

 

이 말을 꼭 하고 싶어요. 

계속 기다려줬고 믿어줬고 옆에 있어줬는데 아직도 기억이 안 나요. 

그래도 상관없어요. 

저 히사시 씨를 한 번 더 좋아하게 됐으니까요

.

 

마이의 말에 히사시는 바보 같은 웃음으로 “나는 계속 좋아하고 있어”라고 현재형으로 말을 한다.  히사시는 늘 마이의 편이었다. 이 장면이 좋아서 나도 모르게 몇 번을 봐버렸다. 영화 속 마이가 뇌사상태가 되어 있을 때 실제 환자처럼 얼굴은 엉망이 되어 있다. 그 곁을 매일 지켜주고 말을 걸어주고 하는 히사시는 정말 그녀를 사랑하는 것이다. 사랑은 했다, 가 아니라 사랑한다,의 진행형이니까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2007년 시카고의 역사 책을 쓰려고 하던 아마추어 사진작가 존 말루프는 역사 책을 쓰는데 필요할까 싶어 동네 창고에서 열리는 벼룩시장에서 30만 장이 넘는 사진 필름과 상상을 넘어버린 잡동사니를 구입하게 된다. 몇몇 사진을 인화해서 프로사진가에게 보내보곤 했지만 답이 없어서 그저 쳐박아 두었다가 그 필름을 스캔을 하기로 한다. 스캔을 해서 봤더니 1950년대부터 1970년의 시카고와 뉴욕의 풍경, 그 풍경을 이루고 있는 사람들을 담은 사진이었다
.

존은 일일이 스캔을 뜬 파일을 사진 블로그를 만들어 올리게 된다. 그리고 자고 일어났더니 사람들의 관심은 폭발하기에 이른다. 놀랍다, 굉장하다, 감동적이다, 마음에 쏙 들어요, 감탄밖에 안 나오네요, 놀라운 발견, 고마워요, 대단해요 등 반응이 엄청났던 것이다
.

존은 사진들을 뉴욕 미술관에 보내지만 퇴짜를 맞고, 자신이 사진 전시회를 직접 하기로 결심한다. 그리고 일일이 사진을 인화하고 다듬고 액자를 구성하기에 이른다. 몸이 열 개라도 모자랄 판이었다. 존이 봤을 때 비비안 마이어의 사진들은 잘 나온 사진보다 정말 좋은 사진이었다. 그래서 시카고 문화센터에 전시를 신청하게 되고 그 결과는 역대 최다 관람객이 보이면서 정보라고는 오직 이름뿐이었던 ‘비비안 마이어를 찾아서’가 시작된다
.

비비안 마이어? 비비안 마이어!! 비비안 마이어~~~ 비비안 마이어... 모든 매체는 거리의 사진가 비비안 마이어에 주목하기 시작하고 존은 비비안 마이어의 발자취를 따라간다
.

비비안 마이어의 사진들을 보면 주로 인간을 담았다. 수필은 강과 바람 바다만으로도 가능하지만 소설은 사람이 있어야 한다. 사진도 마찬가지다 아름다운 자연을 담은 사진은 보는 이들의 똑같은 감탄을 자아내지만 사람을 담은 사진에는 각각 다른 감동이 있기 때문이다. 비비안 마이어의 사진은 로베르 두아노의 익살스러움도 있고, 샐리 만의 빛도, 다이안 어버스의 금기를 담은 사진도 있고, 앙리 카르티에 브레숑의 찰나도 사진 속에 있었다
.

메리 엘렌 마크가 사진에 대해서 이야기하는 모습을 볼 수 있어서 개인적으로 좋았다. 그녀가 비비안의 사진에 대해서 놀라면서 인간을 이해하고 있는 사진을 담아냈다고 한다. 초상권이나 저작권 개념이 없었던 시대였지만 비비안의 사진이 사람들의 마음을 움직였던 건 사람들을 담기 위해 요즘처럼 망원렌즈 같은 장비를 사용하지 않고 그 사람을 찍기 위해, 촬영하기 위해, 그 사람을 담기 위해 그 사람 곁으로 다가갔다는 것이다. 피사체에 가까이 다가가지 않으면 비비안 마이어의 사진 같은 사진은 담아낼 수 없다. 비비안 마이어의 행적을 보면 전혀 그럴 사람이 아니지만 사진은 그녀를 ‘관계’에 대해서 다가가게 했다는 것이다
.

우리가 화장실에서 흔히 찍는 셀카의 개념도 제일 먼저 도입한 사람이 비비안 마이어였을지도 모른다. 그 이전의 사진가들은 전혀 거울에 리플렉션 되는 자신의 모습을 찍어보다는 개념이 없었다. 95년도에 일본의 히로믹스가 포트폴리오를 만들면서 일본열도와 전 세계 사진 바다에 센세이션을 일으켰지만 그때 히로믹스가 자신과 자신의 친구들을 코니카 빅미니로 셀카를 찍었지만 비비안 마이어가 훨씬 이전에 이미 시도를 했다. 하지만 비비안 마이어는 아마추어 무명이라 그녀의 사진은 그 누구도 알아주지 않았다
.

영화는 비비안과 관계를 맺은 사람들을 매개로 서서히 비비안 마이어를 찾아서 간다. 이 다큐의 특징이라면 다큐멘터리의 확정적인 개념에서 살짝 벗어나 비비안의, 비비안이라는 사람의 미스터리를 비비안의 물건을 가지고 하나씩 풀어가는 방식을 취하고 있다는 점이다
.

이 영화가 말하는 것은 무엇일까. 하고 생각해보면 이 영화는 비비안 마이어를 통해, 그녀를 찾아가는 여정을 통해 ‘순열주의’ 또는 ‘집단주의’ 또는 ‘엘리트주의’를 파괴하고 있다는 점이다. 그 당시에는 무명, 아마추어가 인정을 받고 사람들에게 자신의 창조물을 보여주기 위해서는 엘리트주의 속에 속해야 하는데 그것은 현실과 너무 동떨어져 있었다. 그렇다면 지금은 어떠할까. 지금도 크게 바뀌진 않은 것 같다.
.

하지만, 작금에서는 비비안 마이어의 사진을 높이 평가하는 사진가들이 있다는 것이다. 예전과 다르게 말이다. 영화에도 나오지만 피카소 역시 냉대 받았던 시절이 있었다. 자신의 재능은 자신 혼자서는 무리다. 그것을 발견하고 키워주고 유지시켜주는 무엇인가가 반드시 있어야 그것이 가능하다. 어쩌면 우리 모두 그것을 위해서 아침에 눈을 떠 밤에 눈을 감기 전까지 꽤 열심히 보내고 있는지도 모른다
.

비비안 마이어의 사진전이 몇 해 전에 서울에서 있었다. 요즘은 아무 때나 인터넷으로 유명 사진가들의 사진을 볼 수 있다. 나는 늘 이것을 굉장한 일이라고 생각한다. 고등학교 사진부였을 때만 해도 사진 전시회를 보려면 그곳까지 가야 했고, 돈을 구해야 했고, 학생이라 문전박대 당하기도 했고, 늦어서 문이 닫혀 돌아와야 했다. 그런 경험을 가진 나로서는 지금처럼 클릭만으로도 이렇게 멋진 사진들을 귤을 까먹으며 볼 수 있다는 것에 늘 놀라고 있다. 그러니 지금 내 주위에서 내가 아무렇지 않게 누리고 있는 것들은 꽤나 기적에 가깝다고 생각하면 뭔가 좀 더 세상이 달라 보이지 않을까 싶다
.

비비안 마이어를 찾아서는 다큐 같지 않은 다큐였다. 흥미진진함이 영화 전반에 있기 때문에 한 번 밖에 없는 일생을 우리는 어떻게 대해야 하는가에 대한 태도도 생각하게 한다. 영화를 보면서 비비안 마이어도 찾고 자신도 찾아가길 바라는. 세상의 모든 곳에서 등을 구부리고 고독하게 창조하는 모든 이들에게 바치는 영화일지도 모른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4)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제리, 거절에 익숙해져야 한다! 

그리고 또 다른 걸 쓰고 또 거절을 당하고 그다음 또 다른 거, 거절, 또 다른 거, 안타깝게도,라는 거절의 편지. 샐린저는 출판을 하고 싶지만 출판사에 끊임없이 거절을 당하고 교수(캐빈 스페이시)는 왜 글이 쓰고 싶냐고 묻는다. 제리는 화가 나는 일이 많은데 글을 쓰면 그것이 풀린다고 한다. 그리고 교수는 그걸 글에 녹아내라고 한다. 그리고 가장 중요한 것을 이야기한다

.

 

평생 출판을 못 할 수도 있다. 영원히 출판을 하지 못하게 되더라도, 자신에게 물어봐, 아무것도 보상받지 못할지라도 평생을 글 쓰는 데에 바칠 수 있느냐,

아니다 싶으면 밖으로 나가서 먹고 살 딴 방법을 찾아봐야 한다. 왜냐면 진정한 작가가 아니니까

.

 

샐린저는 전쟁에 차출되어 나가게 되어서도 홀든을 생각했다. ‘솔직히 말하자면 홀든 덕분에 힘든 시기를 이겨내고 있었다, 글 쓸 때 가장 좋은 점 중에 하나가 그거다, 마음은 계속 이야기를 써 나간다는 점이다, 손에 펜이 들렸던 총이 들렸던 창작은 결코 멈추지 않는다’ 샐린저는 장편을 쓰기 위해 막사에서도 훈련을 받으면서도 홀든을 썼다

.

 

샐린저는 전투에 참전하게 되고 거기서 포탄으로 전우의 다리가 떨어져 나가는 끔찍한 장면을 목격한다. 제리 제발 날 죽여줘, 샐린저는 그 악몽 같은 시간을 홀든을 생각하며 보낸다.

‘계속 쓰기 위해 별짓을 다했다. 정말이다. 펜도 타자기도 없었지만 상관없었다. 홀든 이야기를 계속 해나갔다.비록  혼잣말이라도’

추위에 양말을 챙겨주던 친구는 동사하고 샐린저는 점점 홀든과 자신의 경계가 모호해지기 시작한다

.

 

홀든 콜필드는 반 정도 쓰고 못 쓰게 된다. 제대를 한 후 교수를 만나서 이제 쓰지 않기로 했다고 한다. 왜? 지워버리고 싶은 기억들을 되살려서요. 이미 샐린저는 홀든이 소설 속의 주인공이 아니라 이미 현실의 한 사람처럼 되어 버렸던 것이다

.

 

유대인의 학살

나치를 잡는 순간

고문

다리가 잘린 전우

얼어 죽은 친구

무엇보다 실수로 그 지점에 늦게 도착하여 혼자만 살아난 샐린저

.

 

영화는 제리가 호밀밭의 파수꾼, 홀든 콜필드의 이야기가 어떻게 탄생하는지에 대한 비화와 홀든 콜필드의 출간 이후 샐린저가 겪은 변화를 보여준다

.

 

호밀밭의 파수꾼을 좋아하는 사람들은 알겠지만 호밀밭의 파수꾼이라는 제목으로 출간된 나라는 한국 밖에 없다. 이탈이라에서는 한 남자의 인생, 일본은 인생의 위험한 순간들, 노르웨이는 모두들 자신을 위해 그리고 악마는 최후 순간을 취한다, 덴마크는 추방당한 젊은이, 독일이 호밀밭의 남자 등이다. 영화는 단편만 쓰던, 단편만 쓰고 싶어 하던, 단편에서 벗어날 수 없다고 생각했던 샐린저가 홀든 콜필드의 이야기를 쓰게 되는 과정을 잘 보여준다

.

 

사진작가 유진 스미스 역시 샐린저와 같은 전쟁에 참전했으며 유진 스미스도 정신병력이 심했다. 그 심한 정도가 그의 사진에 고스란히 드러난다. 사진 속 암부와 명부가 자신의 생각에서 한치라도 벗어나면 조수들에게 불같이 화를 냈다. 다시 버리고 다시 인화하고 스프레이로 후보정을 하고, 또다시 버리고 다시 인화에 후보정에. 마치 샐린저가 스토리지에 투고하고 거절당하기를 반복하듯이

.

 

유진 스미스는 샐린저와 같은 전쟁에서도 포탄이 날아들어 아군에게 폭격이 되는 장면을 사진으로 담았는데 극적이지 않은 사진이 담길 때면 위험을 무릅쓰고 포탄이 터지는 장면을 연출해서 다시 사진을 찍었다. 한 마디로 미친 것이었다. 정신병원에 갇힌 새린저처럼. 둘 다 비슷한 시기에 태어났지만 제롬 데이비드 샐린저는 2010년에 죽었다

.

 

샐린저의 평전에는 막사에서 포탄이 터지는데도 침상 밑으로 기어 들어가 글을 썼을 정도로 홀든 콜필드에 미쳐있었다고 되어 있는데 영화에서는 다르게 표현된 것이 흥미롭다. 어쩌면 평전은 좀 더 축소되거나 보다 확대되는 경향이 있다. 안도현의 백석평전도 읽어보면 안도현이 얼마나 백석을 사랑하고 좋아하는지가 평전에 고스란히 녹아있다. 마찬가지로 쏟아져 나와 있는 육영수 여사의 여러 평전 중 하나를 읽어보면 마치 소설 같고 육영수는 소설 속의 인물처럼 신화적으로 그려지는 경우가 많다. 평전은 아니지만 하루키에 대해 쓴 김연수의 글 역시 그렇다

.

 

편견이지만 아마 대부분 샐린저의 소설은 호밀밭의 파수꾼만 읽어봤으리라 생각하는데 이 영화를 보고 나면 아마도 나머지 단편들도 읽고 싶지 않을까 생각이 든다 

#영화리뷰#호밀밭의반항아

#목소리가아니라이야기가사람을끌어당긴다

#멋진대사였다

#니콜라스홀튼#녀석#마치홀든같더군

 

 

 


댓글(0) 먼댓글(0) 좋아요(3)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