젤다는 발랄했고 기가 세고 승부욕이 강했다. 그리고 무엇보다 예뻤다. 젤다도 피츠제럴드를 사랑했지만 가난한 남자와 사는 것은 그녀가 원하는 삶이 아니었다. 그녀는 명문가 집안의 딸로 부족함 없이 자랐고 원하는 것은 가질 수 있는 여자였다. 그런 젤다는 가난한 삶을 사느니 죽는 게 낫다고 생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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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대한 개츠비의 데이지는 젤다의 모습을 그대로 빼닮았다. 피츠제럴드가 그녀를 얻을 수 있는 방법은 오직 글밖에 없었다. 젤다는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여자였다. 그런 그녀를 손에 넣기 위해서 피츠제럴드는 세상이 놀랄만한 글을 써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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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로지 젤다를 얻기 위해 피츠제럴드는 글을 썼다. 그녀는 피츠제럴드를 사랑했지만 별 볼 일 없는 피츠제럴드와 약혼을 파기한다. 그만큼 젤다는 냉정하고 현실에 가까운 여자였다. 피츠제럴드는 마음이 아팠고 그녀가 지신의 곁을 떠나가는 두려움에 무서웠을 것이다. 그래서 죽어라 글을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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압박감에 글을 써야 하는 피츠제럴드의 기분은 어떠했을까. 출판사에서 갈구하는 기분 좋은 압박감도 아니며 대중이 원하는 비바람 같은 압박감도 아니었다. 그것은 오직 자신이 자신에게 바늘로 찌르는 압박감 같은 것이었을 것이다. 세상 사람들은 자기 자신은 싸워서 이겨야 하고 넘어야 하는 존재로 말을 많이 한다. 자아라고 하는 것은 정말 그렇게 이겨야 하고 넘어야 하는 존재일까. 자신은 자신의 에고를 보듬어 주고 사랑해주면 우리가 원하는 곳에 도달하지 못하는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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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통 끝에 펴낸 자신의 첫 소설 ‘this side of paradise’ 덕분에 젤다가 출판 일주일 후에 자신의 품으로 돌아온다. 당시 피츠제럴드는 ‘위대한 개츠비’의 제목이 개츠비였는데  ‘위대한’을 삽입하는 것을 못마땅하게 생각했다. 하지만 젤다와 출판사의 권유로 ‘위대한’을 넣을 수밖에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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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엇 하나 피츠제럴드는 자신의 뜻대로 되는 것이 없다고 느꼈을 것이다. 하지만 젤다가 옆에 있기에 행복하다고 믿고 있었다. 아마도 굳게, 무엇보다 사랑하는 젤다의 얼굴을 매일 바라볼 수 있다는 것에 모든 것을 걸어도 좋다고 생각하지 않았을까. 마치 데이지를 바라보는 개츠비처럼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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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게 펴낸 ‘위대한 개츠비’는 실패에 가까웠다. 팔리지 않았다. 피츠제럴드는 경제적 궁핍 속에 시달려야 했지만 2차 대전을 치르는 과정에서 군인들이 위대한 개츠비를 읽기 시작한 것이다. 그러면서 붐이 일었다. 바로 군인들 자신의 모습이 개츠비에 투사되었기 때문이었다. 1925년에 2만 부에 거친 책은 군인들 덕분에 15만 부가 넘어 팔리게 되었다. 비평가들은 개츠비에 대해서 호평을 쏟아내기 시작했고 50년대의 미국에 있는 고교에서는 필독 독서로 자리를 잡았고 이후 전 세계가 사랑하는 베스트셀러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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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츠제럴드는 이제 부러울 것 없는 생활과 젤다를 완전히 자신의 여자로 만들 수 있었다. 그 점화가 된 글이 바로 위대한 개츠비였다. 피츠제럴드는 젤다가 원하는 파티를 매일 열었고 지폐에 불을 붙여 담배를 피우기도 했다. 젤다가 원하면 그는 다 들어주었다. 매일 파티를 즐기고 술을 마셨다. 그렇게 하지 않으면 젤다가 떠나갈 것이기 때문에 두려웠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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뒷 이야기는 다음 이 시간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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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대한 개츠비가 영화로 나오고 다행인지 이곳 어촌에도 상영관에 걸려 꽤 오래 걸려 있었다. 비포 미드나잇이 3일 만에 개봉했다가 사라지는 이 어촌의 도시에 있는 극장가에서는 이례적인 일이었다. 내가 개츠비를 보러 간 날이 2013년 4월 마지막 날이었는데 밤 10시에 보러 간 것에 비해서 상영관의 좌석이 전부 꽉 들어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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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영관에 사람의 머리가 다 들어차서 영화는 봤던 건 몇 년 만에 처음이었다. 그건 내가 늘 마지막 상영을 보러 간 이유가 많겠지만. 중반부를 넘어서 나가는 사람들도 있었지만 사람들이 많이 기다렸던 영화라고 생각했다. 한 달 동안 상영관에서 꾸준히 상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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많은 사람들이 영화를 보고 난 후 ‘위대한 개츠비’에 대해서 자신만의 감상평을 내놨다. 대립하기도 하고 설전을 벌이기도 하고 각종 영화 관련 프로그램에서도 ‘위대한 개츠비’의 감독과 배우들에 대해서 호평과 혹평을 뱉어내고 있었다. 어찌 되었던 그만큼 많은 사람들이 ‘위대한 개츠비’에 대해서 관심이 많아서 나타는 현상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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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이야기는 위대한 개츠비에 대한 이야기는 접어두고, 스콧 피츠제럴드에 대한 이야기다. 피츠제럴드는 위대한 개츠비를 통해 자신의 모습을 반으로 나누었다고 생각했다. 반은 데이지를 얻기 위해 모든 것을 포기해 버린, 오직 의지만을 지는 개츠비의 모습과 나머지 반은 그 모습을 바라보는 닉의 모습으로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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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대한 개츠비는 누구나 읽어 봤을 것이고, 그 미려한 직유가 가득한 문체 속 데이지를 위해 자신의 미래를 포기해 버린 개츠비에 대해서 안타까워했을 것이다. 하루키는 자신의 글을 통해 ‘위대한 개츠비’를 세 번 이상 읽은 사람과는 친구가 되어도 좋다고 했는데 나는 세 번 이상 읽지 않아서 그런지 친구로는 별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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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대한 개츠비를 읽어보면 제일 첫 장에 ‘다시 젤다에게’로 포문을 연다. 1920년대에 피츠제럴드는 미국이 가장 사랑하는 글쟁이였다. 출판사들은 그의 글을 내고 싶어 안달했고, 피츠제럴드는 그런 미국 사람들의 기대를 충족시켜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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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츠제럴드의 사진을 보면 알겠지만 무척 잘생겼다. 육군 소위로 장교복을 입고 있는 피츠제럴드의 외모는 누구나 반할 만큼 멋있었다. 영화 속 개츠비가 데이지를 처음 만났을 때처럼 말이다. 하지만 1차 대전이 끝나고 군복을 벗어버리자 피츠제럴드는 한낱 볼품없는 청년의 모습과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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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고 회사에 다니면서 소설가의 꿈을 키웠다. 그는 프린스턴 대학을 성적 하락으로 중퇴를 하고 광고 문구를 만들면서 꾸준하게 소설을 썼다. 하지만 그의 글은 출판사에서 언제나 퇴짜를 맞았다. 그런 생활을 하던 그의 눈앞에 일생에 한번 사랑에 빠질만한 여자가 나타났으니, 그 여자가 바로 조지아 주와 앨라배마 주에서 가장 미인인 ‘젤다 세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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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랜만에 공포영화 다운, 공포영화 같은 공포영화를 봤다. 아르헨티나 영화로 영화 시작 초반부터 끝날 때까지 긴장감을 죽 끌고 간다. 서스펜스나 미스터리물이 아니라 호러물이다. 이종이 나오는 영화로 근래에 드물게 이종의 등장이 상당히 무섭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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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리가 나서 욕실에 가보니 이유 없이 아내가 욕실의 벽에 얼굴을 박아서 뭉그러지는 장면이나 무덤에서 이유 없이 돌아온 아이가 누구도 눈치채지 못하게 조금씩 움직이는 장면이나 무엇보다 집 안의 틈을 통해 이종의 존재가 인간의 삶으로 틈입을 하는데 이종은 신선하다. 얼굴과 다리가(몸통이 꺾였는지) 같이 보인다거나 하는 장면이 점프 스케어로 등장하여 보는 이들의 무서움을 두 배로 올려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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긴장을 놓지 않고 죽 끌고 가는 가운데 점프 스케어가 군데군데 적절하게 등장한다. 섬뜩하면서 우이씨 하게 된다. 이런 초자연적인 일들이 일어나면서 전문가들이 등장을 한다. 이 전문가들은 이 존재가 왜 공격적인지 어째서 틈으로 오는지, 물을 이용해서 인간의 세상에 온다든지, 어떤 것을 무서워하는지 오래전부터 일어나는 현상의 주체인, 이 이종의 존재를 알고 있고 연구를 해오고 있지만 틈에서 이종의 손이 쑥 나와 목을 꺾어 버리고 벽으로 잡아당겨 그대로 죽여 버린다. 그러니까 까불면 다 죽는 것이다. 그리고 죽은 사람은 기이한 모습으로 전부 변하게 된다. 요컨대 사다코 같은 모습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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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영화는 포스터가 심상치 않다. 보통 이렇게 포스터를 잘 만들어 놓으면 내용은 예고편을 따라가지 못하는 경우가 많고 예고편은 포스터를 따라가지 못하는 경우가 많은데 그렇지 않다. 포스터도 무섭고 영화도 무섭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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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이한 현상과 해괴한 모습과 두려운 주변과 공격적인 무서움의 이종. 이렇게 무서운 공포영화를 보면서 영화 속 일어나는 기괴한 일들과 이상한 모습의 이종에 ‘인간’을 대입해도 딱 맞아떨어진다. 영화 속 무서운 일들이 사실 현실에서 인간이 인간에게 하는 짓과 크게 다르지 않다. 그래서 한국의 폭력이 등장하는 영화는 다른 어떤 외국의 영화보다 더 무섭고 더 폭력적이고 더 파괴적이며 더 눈을 돌리게 된다. 한국 영화는 지나친 폭력 영화가 많다. 그것이 언어폭력이든 실제 폭력이든


이 영화의 감독은 그저 무서운 영화가 아니라 스토리에 중점을 둔 공포영화를 만들려고 했다는데 그 노력이 드러나는 영화였다

 

 

감독과 꼬마시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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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떻게 헤어질까’ 이 영화는 고양이를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고양이를 사랑하는 사람이라면, 고양이와 떨어질 수 없는 사람이라면 좋을 영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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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영화, 영화가 꽉 쥐고 있는 부드러운 디지털 필름의 색감도 그렇고, 반전 없이 흐르는 판타지 이야기며 주위 조연들의 유머(남자 셋 여자 셋의 홍경인 같은 유머)가 조금만 오버하면 이 영화는 일본 영화라고 해도 될 법하다. 그래서 감독을 찾아보니 2010년에 한일문화교류기금상(네이버에는 일한문화교류기금상이라고 표기되어있는 걸 보니 아마 일본에서 주최한 것 같다)을 수상했다. 그래서 그런지 아닌지 모르겠지만 이 영화 ‘어떻게 헤어질까’는 일본 영화인데 박규리가 나오고 한국대사로 모든 것이 흐르는 느낌이다. 일본에는 고양이를 전면에 내세운 영화가 많지만 한국 영화 중에서 이렇게 고양이가 극을 끌어가는 이야기는 개인적으로는 처음 본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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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사를 하는 남나비(남자 주인공 이름)는 짐 푸는 걸 도와주는 도우미 아줌마가 업체에서 보낸 사람이 아니라는 걸 업체에서 온 전화를 받고 알게 된다. 누구세요? 아줌마는?라며 영화는 시작한다. 그 아줌마는 옆집에 살고 있는 미모의 냥 집사 이정(남규리)의 고양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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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나비는 고양이의 영혼, 고양이 속에 들어가 있는 사람과 대화를 할 수 있다. 옆집에 살고 있는 ‘이정’은 얌마(고양이 이름)를 두고 취재를 가야 하는데 보채는 바람에 남나비에게 고양이를 부탁한다며 두 사람은 가까워지고 동거를 하게 된 두 사람은 일 년이 지난 다음 얌마가 암에 걸리고 헤어지는 방법에 대해서, 헤어지는 것에 대해서 받아들이게 되는 이야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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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영화는 애묘인, 집에서 나를 반기고 나를 위로해 주는 고양이뿐인 사람들이라면 상상했을 법한 이야기를 하고 있다. 고양이를 보며 말을 걸고 고양이의 눈빛을 보며 말해봐, 말 좀 해봐, 가 영화로 탄생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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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속 주인공, 이정과 나비는 고양이의 감정에 대해서 잘 알고 있고 고양이나 강아지나 사람이나 다 똑같은 생명체라는 걸 받아들인 사람들이다. 고양이를 통해 얻는 즐거움과 행복감, 그 설렘과 그리고 헤어짐에 오는 슬픔, 고양이를 통해서 받은 감동까지 표현을 한다

결국 영화는 나의 모든 것을 나눈 내가 가장 사랑하는 사람, 또는 고양이와 언젠가는 헤어지는데, 어떻게 헤어지는 것이 가장 잘 헤어지는 방법인지에 대해서 고민을 한다. 얌마 속에 들어있던 아줌마는 이정의 어머니였고 결국 우리는 누군가와 만나고 또 어떤 식으로든 헤어지게 된다는 걸 말하고 싶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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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정의 오류도 있다. 남나비의 본명이 따로 있는데 남나비로 이름이 불리게 된 이유가 나온다. 어린 시절의 고양이와 인연이 있었지만 그 어린 고양이와의 아픔 때문에 길고양이나 집고양이와 말을 하게 되었고 고양이 속의 사람들의 영혼을 볼 수 있게 되었는데, 그렇다면 처음 장면이 이해가 안 된다. 처음 아줌마 고양이 영혼을 봤을 때 고양이인지 알아보지 못했다는 건 뭔가 좀 이상하다. 영화는 밋밋하게 흐른다. 그래도 고양이를 전면에 세운 영화라는 점에서 고양이와 인간의 교류를 담아내려고 했다. 영화 속에 등장하는 모든 인물이 고양이를 대하는 태도가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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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가 끝나면 영화 속 등장한 고양이들도 당당히 이름이 엔딩크레디트에 올라간다. 기억, 감정, 감각에 대해서 따뜻하게 진행되는 영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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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진호 사건은 분노로 몸에 힘들이 들어가는데 제주도서 익사로 죽음으로 간 세 살 여아의 소식은 몸에 힘이 죽 빠져나간다. 나는 아이들을 썩 좋아하지 않지만 이유 없이 아이들이 죽음으로 가는 건 뭔가 이상하고 아주 이상하다. 3살이면 한창 재롱  부리고 엄마 아빠 다리에 붙어서 떨어지지 않을 나인데. 그 재롱을 보느라 하루가 어떻게 가는지 모를 텐데. 폐와 흉부에 물이 가득 차서 숨을 못 쉬고 파도에 휩쓸려 다니다 허망하게 죽어버린 걸 생각하면 딱하고 불쌍하고 몸에 있던 힘이 죽 빠져나간다. 그 순간 얼마나 무서웠을까. 얼마나 고통스러웠을까. 엄마하고 제주도 비행기 타고 간다고 엄청 좋아했을 텐데. 엄마를 얼마나 찾았을까. 그런 생각에 슬퍼서 흘리는 눈물도 아이에게 미안하네. 한 번 피어보지도 못하고 지금처럼 차가운 바다에 던져져서 그대로 죽어버린 건 참으로 딱하고 슬프다. 그 전날에도 바닷가에서 담요를 몸이 두르고 엄마와 있으면서 얼마나 좋았을까. 천국이 있다면 천국으로 갔으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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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닷물이너무차가운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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