택시운전사의 여러 장면 중 이 한 장면이 나에게는 결정적인 한 장면이었다. 비극의 정점, 비극의 절정을 나타내는 장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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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는 초반 송강호, 극중 김만섭의 쾌활하고 명랑한 모습을 보여주는데 그 모습이 80년 5월의 서울의 모습이기도 하다. 딸의 운동화를 사기 위해 친구인 주인집 아들에게 딸이 기죽지 않게 하기 위해 광주로 들어가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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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는 광주의 모습을 보여주는 것부터 영화의 표정이 확 바뀐다. 광주 시내로 들어가는 장면에서 숨을 쉬기가 어렵다. 처참한 거리와 고요한 분위기와 쓸쓸하고 씁쓸한 모습 때문에 송강호는 이해할 수 없다는 표정으로 거리를 둘러볼 때, 그런 송강호의 모습을 바라보는 관객은 울컥 치밀어 오르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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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강호는 혼자서 광주를 나와 순천으로 간다. 순천. 너무나 평화롭고 밝고 활기 가득한 순천. 순천인 것이다. 광주 바로 옆. 순천은 광주에서 넘어지면 코 닿을 거리에 있지만 순천의 일상은 즐겁고 밝게 흘러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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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강호는 국수를 먹으며, 허기를 채우다가 비극이 떠오르며 국숫집 아주머니가 먹으라고 준 주먹밥을 씹어 먹을 때, 받아들일 수 없었던 현실이 머리에 떠오른다

기독병원에서의 인간 멸종, 피를 쏟는 젊은이들, 잔인한 계엄군과 무력한 일반인들. 송강호는 고뇌하다 현실 속으로 들어가기로 한다. 그곳으로. 인간 사냥이 이루어지는 곳으로. 바로 통제가 있는 곳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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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제. 

통제는 같은 공기를 마시는데 마음껏 숨을 쉬는 사람과 숨을 쉴 수 없는 사람들을 갈라 놓는다. 송강호의 표정에서 머릿속에 떠오른 광주시내에서 벌어지는 인간 사냥의 모습. 그건 아포칼립스, 카타스트로프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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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영화가 정말 무서운 건 순천에서처럼 사람들이 아무렇지 않게 즐겁게 일상을 보내는 장면 때문이다. 80년 5월은 일반인들에게는 즐거운 일상이다. 그 순간 광주는 처절하고 피를 쏟고 인간이 인간을 사냥하고 있었다는 것을 역설적으로 보여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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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한 장면을 통해 우리는 송강호가 왜 대단한 배우인지 무리 없이 받아들이게 된다. 결론을 내리자면 통제가 있던 그 당시의 일들이 지금도 버젓이 여봐란 듯이 일어나고 있다. 그때 광주는 원래 지옥이 아니라 사람들이 즐겁게 일상을 보내는 곳이었다. 근래에 드러난 사실은 계엄군은 여성들을 유린했고 무차별적으로 인간 사냥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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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도 즐겁게 일상을 보내는 이 평온한 시기에, 뉴스에 나온 팀킴의 사태들. 눈과 귀를 막고 그동안 선수들에게 부당한 대우를 한 일. 연일 속도로 뜬 양진호의 사태. 통제가 이루어지면 그 속에서 통제를 받는 사람들은 숨을 쉴 수 없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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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또 뉴스에 뜬, 당신 아이가 일주일 동안 유치원 복도에 서 있는 것 같더라. 유치원 회비 정산이 좀 이상한 거 같다고 한 마디 한 것이 아이에게로 리벤지가 되는 현실. 이건 좀 이상한데요? 이거 부당한데요? 같은 말은 아이를 위해서는 절대 해서는 안 되는 현실. 유치원을 세 번이나 옮겼지만 이미 아이의 마음은 상처로 가득 차 버렸고. 그러게 왜? 같은 경멸 섞인 무언의 눈빛. 통제 속에서는 통제에서 벗어나는 발언이나 행동은 금기되는 현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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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감 토론 같은 자리에서 당연하다는 듯 자신 있게 마이크를 들고, 국가의 돈으로 명품 좀 사면 안 됩니까.라는 발언들. 이런 무서운 일들이 일어나지만 대부분 즐겁게 일상을 보내는 이곳은 사실 많이 무서운 곳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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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월 초에 스타벅스에 갔더니 캐럴이 나오고 있었다. 그래, 생각해보면 스타벅스는 일찍 크리스마스를 맞이했다. 나는 크리스마스 때가 되면 기억나는 어린 시절의 일이 있어서 매년 그 글을 조금씩 수정해서 적어보곤 한다. 매년 비슷하면서 다른 글을 적는 꼴이다. 지금까지 지내오면서 괜찮은 크리스마스의 기억이 몇 번 있다. 같은 곳을 바라보며 간소하지만 선물 같은 것을 주고받고 끝없이 이야기를 했던 기억이나 큰 별이 지고 그 자리에 작은별이 들어와 트리에 불을 밝혔던 기억이 자리 잡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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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리스마스는 묘해서 26일이 되면, 하루만 지나쳐 버리면 그 이전까지 떠들썩하며 와아아아 밀려왔던 성탄절의 기분이 그대로 사라지고 만다. 옆 나라 일본도 휴일이 아니고 북한도 휴일이 아닌데 우리나라만 그날 휴일이라 어디든 복잡하고 사람이 미어터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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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이라면 어디든 한산하고 문을 닫아 버려서 집에만 있어야 할 테지만 한국으로 들어와 버린 크리스마스는 베스처럼 자신만의 영역을 넓히고 확고하게 만들었다. 하지만 어쩐 일인지 언젠가부터 크리스마스 분위기가 썩 나지 않게 되었다. 매년 크리스마스가 크리스마스가 아닌 것 같은 분위기는 반드시 어른이 되어서 그런 것만은 아닌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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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어른인 이유가 가장 많은 이유를 차지한다. 의식 속에 자리 잡은 크리스마스가 의식 밖의 크리스마스와 괴리가 크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이미 다 만들어진 트리와 세련되고 위험한 전구와 분위기 좋은 곳의 예약 실패의 두려움과 불필요한 선물의 교환 속에 정작 메리크리스마스 라고는 한 번도 입 밖으로 꺼내지 못하는 크리스마스가 의식의 벽에 표층적으로 자리를 잡기 시작하여 심층으로 점점 밀려 들어와 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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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리스마스에 카페에 사람이 없는 것도 이상하지만 사람이 미어터지는 건 싫어져 버린, 내 하기는 싫고 남 주기는 더 싫은 마음으로 크리스마스를 바라보게 되었다. 그저 너 하고만 있으면 구질구질한 곳이라도 괜찮아,라고 할 수 없는 깊은 곳으로 들어와 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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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나저나 나는 언제부터 산타클로스를 믿지 않았을까. 몇 살 때부터일까. 아주 어릴 때 까마득한 기억으로 아직 잠도 안 들었는데 아버지가 머리맡에 선물을 놓는 걸 봤는데. 나는 주위에 변화하되 변함없는 사람이 되라고 잘도 말하는데 나는 실은 변화도 변함도 없는 고여 있는 물 같은 기분이 든다. 아무튼 크리스마스는 그래. 낫지 않는 괜찮은 상처 같은 기분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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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화영’ 이 영화는 아주 불편하다. 이 영화에 나오는 엄청난 폭력에 눈을 돌리고 싶고 귀를 막고 싶다. 하지만 그러면 안 되는 영화다. 이 영화는 학생이라는 단어보다 청소년이라는 단어가 굳이 말하자면 억지로 맞는 것 같다. 그렇지만 학생들은 봐서는 안 되는 영화, 볼 수 없는 영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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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화영 이 영화를 보면 자연스럽게 김영하의 단편소설 ‘비상구’가 따라온다. 자기들만의 언어를 내뱉고 자기들만의 질서를 만들어 작은방에서 솜뭉치처럼 뭉쳐서 생존해 가는 아이들. 어른들이 봐도 모른척하는 세계의 아이들. 이전 영화로는 봉태규의 데뷔작 ‘눈물’이 있었다. 당시 봉태규는 정말 양아치를 데려다 몰래 촬영을 했나 싶을 정도였다. 바로 박화영의 박화영이 그렇다

.

 

박화영의 생존방식은 스스로 익히게 되고 그 방법은 왜곡된 방식이다. 박화영을 가장 잘 나타내는 대사 ‘니들은 나 없으면 어쩔 뻔 봤냐’라는 말은 박화영의 외로움을 다른 말로 드러내는 대사인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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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화영의 외로움은 자신의 엄마로부터 나타난 것으로 외로움을 잊기 위해, 외로움을 이기기 위해 지옥 같은 정글에서 자신만의 방식으로 발버둥을 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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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는 우리 없을 때 뭐 하냐는 은미정의 말에 그냥 아무것도 하지 않고 기다린다고 한다. 박화영의 외로움은 인간의 가장 밑바닥의 것, 가장 근원적인 것이다. 박화영은 세상의 엄마처럼 무분별한 사랑을 주고 희생을 자처해서 폭력을 ‘당해야’하는 곳에는 망설임 없이 달려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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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작 아이들에게 화는 내지 못하고 비웃음 뒤에서 마저 그 아이들에게 의존을 하는 박화영은 슬픔이다. 박화영은 그 어떤 사람들보다 무서운 욕을 하고 폭력적인 언어를 내뱉지만 그 말을 할 때마다 박화영이 슬퍼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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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멍한 눈빛으로 표정 없이 치킨을 먹을 때, 그것이 유일하게 자신이 혼자 누릴 수 있는 것임을 알았을 때 박화영의 치킨을 먹는 이 장면은 더없이 슬프게만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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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영화를 보면서 왜! 아무도! 그 누구도 박화영을 끌어안아주지 못했나! 선생, 엄마, 경찰 들은 왜 어째서 박화영을 내치기만 했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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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화영은 비정상적이다. 너무나 부자연스럽고 이해되지 않는 행동, 생각, 사고를 하는데 영화가 박화영을 이렇게 대하는 태도가 온당하게 다가온다. 그것은 박화영은 그렇게밖에 될 수 없었기 때문이다. 박화영은 아직 학생, 아이이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상식에서 너무나 동떨어진 박화영이 온당하게 받아들여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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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화영은 출소 후에도 엄마로서 살아간다. 그리고 데리고 있는 아이들이 또다시 박화영을 깔보고 비난하며 비웃음치고 상처를 줄 것이라는 것을 우리는 알게 된다. 그 순간 박화영은 더없이 슬프고 안타깝게 느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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니들은 나 없으면 어쩔 뻔 봤냐, 상처로 똘똘 뭉친 아이. 하지만 상처가 났을 때 그것이 상처인지도 모르고 다시 상처를 받는 아이. 그래서 상처를 또 다른 상처로 덮는 아이 박화영의 이야기, 영화 박화영이다 

 

 

#영화#박화영#한국영화

#이말도안되게살아가는세계가#우리가살아가는세계에같이껴있다는것

#니들은나없으면어쩔뻔봤냐

#김가희는상도타고살도빼고그랬다한다

 

 

 

리뷰에 감독님께서 코멘트를 달아 주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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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게 무수히 작은 빗방울의 입자가 저온의 날, 온 세상을 축축하게 하는 어둠이 깔리면 모리타 도지의 ‘우리들의 실패’를 듣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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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주 오래전 이런 비슷한 날에 사진부에서 실컷 두드려 맞고 선배들이 투다리에 우리를 데리고 갔을 때 모리타 도지의 노래가 나오는 것을 들었다. 2년 전에도 바닷가 근처에서 일본인 마사에 상이 하는 꼬치 집 앞에서 이 노래가 흘러나와 들어가서 맥주를 마신 기억이 있다. 그때도 이곳에 글을 한 번 적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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투다리에서 분위기 안 좋은 가운데 들었던 모리타 도지의 ‘우리들의 실패’는 그동안 들었던 가요와는 달랐다. 모리타 도지의 목소리도, 피아노 연주도, 알 수 없는 일본어도 모든 것이 햇볕이 스며들지 않는 그늘 같았고 이상스레 했지만 물이 모래 속에 흡수되듯 빨려 들어 몇 번이나 다시 들려달라고 해서 들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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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 몇 년 동안 자주 듣게 된 건 ‘립반윙클의 신부’에서 마시로와 함께 나나미가 이 노래를 부른 장면 때문이다. 아마 3시간 짜리 감독판을 봐야 그 장면이 나온다. 립반윙클의 신부는 정말 좋은 영화였다. 거기서 나니미는 가면을 쓰고 살아가지 않는다. 나는 싫어하는 음식이지만 이 사람이 좋아해서 억지로 먹지 않는다. 그런 나나미는 타인에게는 불필요하고 답답한 존재일 뿐이지만 원래부터, 날 때부터 그런 나나미를 있는 그대로 마시로는 받아주고 친구로 생각하는 그 이야기는 정말 가슴의 여기를 따뜻하게 해주는 영화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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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가 오고, 립반윙클의 신부가 생각하고, 저온의 차가운 계절이면 모리타 도지의 ‘우리들의 실패’를 듣는다. 누군가의 마음을 차분하게 눌러줄지도 모르는 일이니까

 

 

사진을 뒤집으면 고흐의 그림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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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띠 신부, 이 영화는 코미디 영화다. 말띠 신부는 66년 1월 1일에 개봉을 했다고 한다. 맨발의 청춘 이후 대한민국의 대스타가 되어 버린 신성일과 엄앵란을 극중 부부로 만들어 주연을 하는데, 황정순의 젊은 시절도 볼 수 있고 남미리, 최지희, 윤일봉의 아주 젊은 모습을 볼 수 있는 것 역시 고전영화를 보는 재미라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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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영화는 당시 봉건주의적인 한국 문화, 문화 중에 전통보다는 악습을 꼬집는 영화라는 생각이 든다. 금기를 깨고 있다. 건드려서는 안 되는 것을 타파해버리는 것 역시 영화의 훌륭한 역할이라고 생각한다. 윤일봉과 신성일은 당시 전업주부로 나온다. 앞치마를 두르고 있는 윤일봉의 모습이 이채롭다. 선 굵은 역의 윤일봉이 앞치마를 두르고 어떻게든 예쁜 부인을 덮치려고 하는데 아내는 임신 중이라 안 된다고 한다. 그에 윤일봉은 남편인데 왜 아내도 못 덮치냐며 삐진다. 그건 엄앵란의 남편인 신성일도 그런다. 또 절개를 지켜야 하는 것을 덕목으로 삼고 있던 한국 여인의 표본이었던 사감 선생인 황정순은 그동안 순결을 지키며 살아온 것이 아까워 결혼과 동시에 남편과 섹스를 마음껏 하고 싶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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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의 대략적인 줄거리는 팔자가 세다는 42년 생의 말띠 동창생들, 엄앵란, 최지희, 남미리, 방성자의 이야기를 코믹하게 그리고 있다. 엄앵란과 남미리는 신성일과 윤일봉과 결혼을 해서 행복하게 지내지만 거짓 임신으로 남편과의 성관계를 거부하고 있는데, 이유는 다음 해가 60년에 한번씩 돌아온다는 백마 띠 해라 행여 팔자가 드센 딸이라도 낳을까 걱정해서이다. 최지희는 남자들 틈에서 남자들을 잘 다루면서 생활을 한다. 이 영화의 이야기가 뒤죽박죽 할 것 같은데 김희갑의 해설로 영화가 진행되기 때문에 개연성이 있게 전개되는 기분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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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속에서 우리나라 최초의 밴드 키보이스가 나온다. 이때부터 한국은 음악이 비약적으로 발전하지 않았나 싶다. 전쟁을 치른 나라들을 보면 미국이나 독일 같은 강대국이 개입을 함으로 해서 그 나라들의 문화가 전쟁국가에 흘러들어 간다. 미팔군에서 공연을 하던 윤복희, 패티 김, 신중현이 나왔고 이후 세시봉이 생기면서 조영남, 송창식, 윤형주 같은 미소년 스타일의 가수가 나타났다. 이때까지는 대체로 외국의 곡을 번안해서 불렀는데 이장희, 한대수 같은 가수가 등장하면서, 김민기 같은 가수가 나타나면서 한글로 된 시에 곡을 입히는 작업들이 늘어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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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띠 신부 속 최지희의 모습은 독보적이다. 사람들과 춤을 추는 장면은 뮤지컬 영화를 보는 것 같다. 이 장면은 수많은 리메이크 장면을 탄생시킨 존 트라볼타의 토요일 밤의 열기를 연상케 한다. 말띠 신부가 66년이고 토요일 밤의 열기가 77년이니까 얼마나 앞선 것인가. 60년대에도 이렇게 뮤지컬 형식의 영화가 있었는데 근래의 한국 영화에서는 찾아볼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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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장 근래의 영화 속 등장인물들이 다 같이 노래를 부르는 장면은 ‘전국노래자랑’에서였다. 전국노래자랑은 꽤 괜찮은 영화였다. 재미도 있었고 영화가 갖추어야 할 덕목도 가지고 있었다고 나는 생각이 들었다. 김인권과 류현경 역시 연기도 좋았고. 류현경은 참 연기를 잘 하는 거 같은데, 뒤늦게 뜨는 배우가 있는데 그렇게 되지 않을까 생각한다. 그 영화가 12년도 영화였으니 인도영화처럼 영화 속에 등장인물들이 노래를 부르며 춤을 추는 장면이 들어가는 한국 영화는 없다고 봐야 한다. 500일의 썸머에서도 그런 장면은 영화 속에 잘 녹아서 괜찮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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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지희는 밀착된 춤추던 복장으로 허장강의 사무실에 들어가는데 사무실에 일하는 사람들도 놀란다. 하지만 최지희는 여봐란듯이 허장강의 방에 들어가 수표를 받아내는데, 이때에도 네일 손질을 하고 스킨톤의 매니큐어를 했다. 마광수 교수가 젊은 시절 이런 영화를 보면서 손톱에 강한 페티시즘을 강하게 느끼지 않았을까. 당시에는 네일 손질하는 곳이 따로 없었을 텐데 주로 집에서 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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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는 악습의 금기를 깨는 장면과 캐릭터가 등장하지만 결국 백마 띠의 드센 딸이 태어날까봐,라고 생각하는 관습에 얽메여 있다. 아홉수라는 관습은 아직까지 내려오고 있고 점집은 없어지지 않고 망하지 않는다는 말처럼, 요즘도 재미든, 생사가 걸린 문제든, 젊은 사람들은 타로를 보러, 어머니들은 점을 보러 간다. 미국이라고 다르지 않다. 아마 우리나라보다 미신을 더 믿을 것이다. 더 이상한 점집이 우리나라보다 더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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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속에는 속옷만 입은 장면이 자주 나오고 성관계 바로 직전까지 가는 코믹한 장면이 많이 나온다. 총알 탄 사나이의 이전 버전이라고 할까. 꽤 야한 장면이 많이 나오는데 코믹하게 넘어가는, 그런 영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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