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기를 최초로 사진에 담은 사진작가 다이안 아버스. 그녀의 사진을 한 마디로 말하면 ‘불편한’ 사진이다. 칼을 삼키는 알비노 여인, 240센티미터의 거인, 서로 다른 표정의 일란성 쌍둥이. 두 팔이 없는 여인. 온몸이 털로 뒤덮인 남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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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67년 미국 뉴욕 근대미술관에서 열린 ‘뉴다큐멘트’ 전에 전시된 그녀의 사진을 보는 관객들의 얼굴은 불쾌한 모습과 불콰하게 변하는 얼굴을 엿볼 수 있었다. 왜 저런 불편한 사진을 찍는 거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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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불과 5년 후 베니스 비엔날레에 이 ‘불편한’ 사진들은 미국 사진작가의 작품으로는 최초로 초청받았고 같은 해 뉴욕현대미술관에서 열린 작가의 사후 회고전에는 25만 명의 관객이 몰려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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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이안 아버스.

그녀는 무척 부유한 모파상의 집안에서 태어났다. 하지만 그녀의 배경을 뒤로하고 그녀의 일상은 무척 충격적이었다. 부모가 반대하는 결혼을 18세에 해버리고 이혼, 수면제 과다복용, 이후 사회의 어두운 부분만 쫓아다니며 담은 사진들 그리고 우울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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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이안은 자신의 부유한 집안 내력이 사회와의 소통을 가로막고 있다고 느꼈다. 마치 다자이 오사무처럼. 그녀는 18살에 가난한 사진가 남편은 앨런 아버스를 만나면서 갈증이 해소되고 소통의 도구로 카메라를 손에 쥐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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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57년 남편과 이별한 다이안은 거리로 카메라를 들고 나왔으며 자신의 스승에게서 ‘자신만의 사진을 식별하라’라는 조언을 받고 가슴에 큰 충격파를 안은 후 그녀는 금지된 것, 사람들이 불편해하는 것을 찍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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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체주의자, 장애인, 정신지체인 등. 그녀는 처음으로 타인과 자신 사이에 협력과 공감을 이끌어낸다는 매력을 느꼈다. 고독이라든가 회유라든가 하는 감정의 뒤틀린 부분이 순서를 정하고 질서를 찾아가는 기분을 발견해 냈을 때 그녀의 모습을 투사해보면 조금은 벅차오르는 감정을 느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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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이안은 점점 비정상적이고 극단적인 피사체를 담기 시작한다. 사람들은 그녀를 ‘wizard of odds’라고 불렀다. 결국 다이안은 자신의 사진이 이상하기(odds) 때문에 주목받는다는 현실과 타협하지 못하고 48살에 손목에 칼을 그어 자신만의 옥죄에서 풀려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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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들의 편견과는 달리 그녀의 사진 속 주인공들은 모두 밝은 모습이거나 사회의 편견을 전혀 의식하지 않고 당당하게 피사체가 되어 준다. 그건 분명히 다이안이 있는 그대로의 그들 모습을 담고자 한 그녀만의 세계가 그들의 마음을 움직였기에 가능했을 것이다

니콜 키드먼의 다이안 연기는 아주 좋다. 다이안 아버스가 금기에게 어떻게 다가가게 되었는지 ‘’까지’ 영화는 잘 그려내고 있다. 금기를 담으려면 금기가 되어야 한다. 나체주의자를 찍으려면 나체가 되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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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D 애니메이션 에비니저 스크루지의 이야기 크리스마스 캐롤은 저메키스의 2004년 폴라 익스프레스 이후 베어울프를 거쳐 만들어진 영화다. 영화를 보면 정말 실사처럼 만들었다. 십 년 전임에도 불구하고 요즘 생떼를 쓰며 만들어진 상업영화보다 훨씬 잘 만들었고 또 좋다. 영화를 보다 보면 만화를 왜 실사처럼 만들까,라는 의문도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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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 모양이나 머리카락이나 손짓이나 옷자락의 휘날림 같은 것들이 인위적이라는 생각이 들지 않는다. 기술력의 발전을 확인하기 위함이 아니라면 만화를 이렇게까지 실사와 거의 흡사하게 만들어야 하나,라는 생각이 잠깐 들었다. 에비니저의 조카인 프레드가 나올 땐 그 눈빛이나 얼굴의 비틀림이나 특유의 목소리가 가지고 있는 부드러움이 누가 봐도 콜린 퍼스의 젊은 시절이잖아! 하게 된다

이 영화가 나오기 전 스크루지의 이야기는 어릴 때 책으로 읽고 많은 버전의 영화를 스쳐봤지만 그저 흘러가는 시간 대하듯 했는데 이 영화가 나온 후부터는 역시 적극적으로 보게 되었다. 어떤 해에는 여름에 볼 때도 있다. 여름에 겨울 영화를 보는 건 차가운 열대어처럼 묘한 기분을 준다. 규칙이나 법칙으로 정해진 것도 아닌데 마땅히 그러한 것에서 좀 어긋나는 기분이 묘함을 증가시킨다. 요컨대 그램린을 여름에 선풍기를 틀어 놓고 본다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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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루지는 늘 혼자다. 옆에 사랑하는 벨, 가족이 있었지만 모두 떠나갔다. 인간은 혼자서 무엇을 해야 할 때가 사실은 많은 것 같다. 책도 혼자 읽어야 하고 잠도 혼자 들어야 하고 글도 혼자 써야 한다. 밥도 혼자 먹는다. 같이 밥을 먹는다는 건 행위에 속하는 것이고 누군가 대신 밥을 먹어 줄 수는 없다. 어쩌면 결국 밥도 혼자 먹는 것에 속할 수 있다. 그러니 크리스마스이브에 옆에 누군가 같이 있다면 꼭 안아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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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전에 나는 아버지 병간호 때문에 크리스마스이브를 2년 동안 병실에서 보낸 적이 있다. 대학병원 바로 옆이 호텔이라 병실에 난 창으로 보면 호텔의 반짝이는 트리의 불빛과 사람들의 즐거운 모습을 볼 수 있었다. 첫해에는 작은 창으로 그 모습을 보면서 내 년에는 나도 저렇게, 하고 생각했는데 다음 해에도 병실에서 같은 모습을 보면서는 언젠가는 나도,라고 생각을 해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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병실이라고 쓸쓸한 것만은 아니다. 병실에 오래 있다 보면 병실 사람들과도 이런저런 교류를 하게 되고 간이침대에서 자고 일어난 가족들은 서로에게 민낯을 보여준다. 사람이 살면서 형제, 부모 또는 군대 전우들 그리고 부부 사이를 제외하고는 타인에게 민낯을 제공하는 일은 극히 드물지만 병실에서는 여어(나를 보며), 편하게 좀 잤나, 같은 말을 듣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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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쩌다보니 병실 사람들의 사진을 담아 그것으로 크리스마스카드를 만들어 돌리기도 했고, 아이가 있는 간호사들은 아이의 사진을 편집해서 주기도 했다. 그러니까 병실에서 병이 낫지 않아서 사라지는 것을 제외하고는 그것대로 나쁘지 않은 생활이었다. 그때에도 레지던트 3년 차 중에 사진에 빠져있던 늘 피곤해 보이던 의사가 있었는데 그 사람과 병실의 환자들과 가족들의 사진으로 병원의 전시실에 전시를 해보자는 기획을 짜고 있었다. 하지만 아버지가 중환실에 들어가면서 그럴 수 없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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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때 크리스마스이브의 밤에 창으로 보는 세계는 아름답고 평화로웠다. 전쟁터 같은 병실에도 밤이 드리우면 모두가 고요해지고 잠에 빠진다. 에너자이저 아이들도 밤이면 봉지처럼 푹 꼬꾸라져 잠이 들듯이. 밤이 사라진다면 끔찍하지만 밤만 지속된다면 그것대로 해볼 만할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아마도 뭔가 하나를 보며 멍하게 시간을 죽이는 건 그 이후 더 심해진 것 같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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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카가 아버지 대신 들어서고 크리스마스이브 때면 온 집 안에 전구를 달고 불을 밝히고 맛있는 음식을 먹고 조카에게 선물을 주면 무릎에 와서 앉을 때 이 별거 아닌 일이 너무나 별거처럼 느껴져서 헛웃음이 나오기도 했다. 아무것도 아닌 생활이, 평온하게 흘러가는 생활이 아아 행복하다고 느껴야 하는 건 정말 절망 끝에 다다라야 하는 것일까. 스크루지는 어떻든 혼령들과 과거, 현재, 미래를 본 후 달라졌다. 마지막에 조카 프레드의 집에 찾아갔을 때 모두가 스크루지를 반기는 장면은 어쩐지 감격스러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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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치소에 겨울이 오면 모든 것이 달라진다. 무엇보다 사방으로 올라가는 영치품들이 바뀌고 과일이 겨울 과일로 바뀐다. 싱싱하고 맛있는 사과와 귤이 잔뜩 사방으로 오르기 때문에 우리는 사방을 순찰하면서 재소자들에게 귤과 사과를 이만큼 얻어서 내려온다. 하지만 정말 맛있는 것은 소시지다. 크고 굵은 소시지를 가득 받아서 막사로 내려오면, 컵라면에 물 받아 먹는 큰 찜통에 넣어서 삶아 먹는데 술안주로 기가 막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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짬밥이 되면 저녁 점호가 끝난 뒤 피엑스에 난로를 피워 소시지와 소주를 마신다. 마시다 보면 소대장도 오고 교무과에 근무하던 근무자도 냄새를 솔솔 맡고 내려와서 한잔한다. 남은 소시지는 나무젓가락에 끼워 난로 위에서 살살 돌려가면서 궈 먹는데, 그 냄새가 막사 저 밖으로 동초 근무자에게까지 날아간다. 잘 구워진 소시지를 처음 입에 넣어서 씹으면 툭 하며 터지는데 소시지의 육즙이 입안으로 죽 들어오면서 소주를 부르게 한다. 소시지 일 뿐인데 겨울은 그런 맛을 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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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어쩌다 부대 마크를 디자인했는데 그것이 채택되면서 겨울에 크리스마스카드를 만드는 병력으로 차출이 되었다. 잠자는 것 이외에 모든 근무에서 열외 되어서 오로지 카드만 만드는 것이다. 카드를 만들어서 구치소 내 직원들에게 판매를 하여 그 돈으로 회식을 한다. 그러니까 샘플로 몇 개를 만들어서 구치소 직원들 휴게실에 걸어두면 주문이 들어오는데, 같은 크리스마스를 손으로 일일이 몇 백 장씩 만들어야 한다. 거의 초주검에 가깝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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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하다 보면 요령이라는 게 생긴다. 단순한데 예쁘고 크리스마스 분위기가 왕창 나는 카드를 몇 백장 만들 수 있는데, 붉은 카드용지 위에 도안을 한 눈 사람이나 산타를 대고 스프레이나 물감으로 틀 안을 칠해주기만 하면 된다(이게 무슨 똥 같은 설명이지??). 글자는 금색의 사인펜으로 메리 크리스마스라고 꼬부랗게 쓰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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샘플 몇 개를 잘 만들어 놓고 그것을 대고 차출된 쫄다구들은 반복적으로 채색만 하면 된다. 너는 흰색 물감으로 이것만 하고, 너는 글자만 쓰고, 너는 테두리만 그려라.라고 지정해 준다. 나는 이런 것을 재미있어 하는 것 같다. 뭔가 일을 꾸미고 그것을 총괄하고 책임지고 뭐 이런 것들. 그 때문인지 여러 번 일을 꾸며서 사람들을 깜짝 놀라게 했었다. 몇 해 전에는 내가 살고 있는 아파트 관리실 앞에서 아파트의 모습들을 카메라에 담아 액자로 만들어서 게릴라 전시회를 했었다. 그때 어머니들의 어머, 하며 괜찮은 반응이 나왔는데 재미있었다. 부녀회장이 그 사진들을 다 달라고 해서 줬는데 얻다 써버렸는지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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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튼 쫄다구들은 반복된 일, 그것만 하면 되는데 잠을 못 자다 보니 엉망이 되는 경우도 있다. 그러면 나도 화를 낸다. 돈을 받고 하는 것이기에 이렇게 해서는 안 된다. 힘든 것은 내 쪽이다. 샘플을 만들어야 하기 때문이다. 뭔가를 처음 만드는 것은 꽤 난처한 일에 봉착을 하게 되는데, 그 샘플이 채택이 안 될 경우도 있고, 사람들의 반응을 일일이 체크해야 하고, 주문이 적게 들어온 카드와 많이 들어온 카드의 배분을 나눠야 하는 것을 조정해야 하는 것이 퍽 힘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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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작업실 안에서는 음악을 계속 들을 수 있다. 막사의 저녁 점호시간에 칼바람이 불고 아이들의 비명소리가 들려도 이 안에서는 모두가 자유롭다. 엎드려서 잠을 자도 되는 세계, 과자를 막 먹어도 되는 세계, 저녁 점호 총원 몇 명, 열외 4명 같은 보고로 우리는 지옥 같은 세계에서 제외된 것이다. 그것만으로 우리는 기쁘고 좋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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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대하고 그 해 겨울 군고구마를 팔았는데 그때에도 오전에 농산물 시장에서 군고구마를 떼와서 저녁에 장사를 하기 전까지 낮에는 카드를 만들었다. 학원가에서 장사를 했는데 그때 아이들이 군고구마를 사러 오면 군고구마를 하나 더 줬고 여자 손님이 오면 직접 만든 크리스마스카드를 줬다. 그것이 먹혔는지 소문이 소문을 물고 저 끝까지 퍼졌다. 지난번에도 이야기했지만 아파트 단지에는 군고구마를 배달을 했다. 배달을 해주면 집 안에서 뜨거운 군고구마를 먹을 수 있다. 그런 것이 먹혀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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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기수 밑의 쫄다구와 같이 했는데 서점 집 아들래미라 서점 앞에서 장사를 할 수 있었다. 그래서 시간이 날 때 책을 많이 봤는데 책이 잡지책이었다. 그때 잡지책의 세계에 대해서 또 눈을 뜬 것 같다. 소설과 시와는 다른 세계가 잡지책의 세계였고 그 세계에서도 굉장한 읽을거리와 볼 거리가 있었다. 그 후로 이충걸이 편집장으로 있는 지큐와 황경신이 편집장으로 있는 월간 페이퍼, 김혜리 기자가 있던 씨네 21을 열심히 구독해서 보기도 했다. 그들의 글을 매달 본다는 건 정말 멋진 일이 아닐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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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고구마 장사를 할 때 통이 두 개였다. 군고구마계에서 부르주아였다. 만든 카드를 천막 앞에 죽 걸어놓고 학원 강사님이나 약사님이나- 물론 여자들- 서점을 찾는 여자 손님이 군고구마를 사러 오면 어떤 카드를 드릴까요, 해서 이거라고 하면 그 카드에 글을 슥슥 적어서 줬었다. 생각해보면 호감이 있으니 내일 다시 오라느니, 꼭 다시 들러달라느니, 연락처 같은 것을 물어보지는 않았다. 그저 뭔가 시적인 문구와 메리 크리스마스를 썼었다. 바보 같은 걸까. 겨울의 추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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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깅을 하고 오는데 동네가 이렇게나 예쁘게 바뀌었다. 인공조명은 광합성은 없지만 사람들을 즐겁게 한다. 그 가운데 스티비 원더와 안드라 데이의 캐럴이 흘렀다. 아아 이제 완연한 겨울, 크리스마스가 다가온다. 겨울은 춥지만 뜨뜻한 계절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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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티비 원더는 시각장애를 겪고 있다. 사람들은 그가 태어날 때부터 장애를 안고 태어났다고 생각하지만 그렇지 않다. 그는 안타깝게도 출산 예정일보다 6주 일찍 태어났다. 뇌에서 눈으로 가는 혈액이 원활히 공급되지 않아서 그는 인큐베이터 안에 들어가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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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운명의 장난이었는지 당시 인큐베이터 기계의 고장인지 간호사의 실수인지 아기 스티비 원더가 들어가 있던 인큐베이터에 산소가 과다 공급이 된다. 때문에 스티비 원더는 망막의 기능을 잃어버리게 된다. 시력을 잃어버리지 않을 수 있었지만 결국 이렇게 되어 버린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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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그는 시력을 잃은 대신 노래를 얻었다고, 그 덕분에 노래를 부를 수 있었다고 말했다. 그는 열 살 때부터 피아노를 치기 시작했고, 오르간, 베이스, 리코드 등 그가 완벽에 가깝게 연주하는 악기만도 스무 개가 넘는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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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마도 지구에서 하모니카를 가장 잘 부르는 사람이 스티비 원더가 아닐까. 스티비 원더 하면 많은 노래가 있지만 isn't she lovely가 있는데 싱글 버전과 앨범 버전이 있다. 앨범 버전에는 첫 시작에 아기 울음소리가 들린다. 이 노래는 잘 알겠지만 자신의 첫째 딸 '아이샤 모리스'에 대한 자신의 이야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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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노래의 내용은 아이샤 모리스를 볼 수 없어서 사람들에게 물어보는 내용이다. 이봐 내 딸 예뻐? 정말 작고 귀여운 거야? 나 닮진 않았지?(하지만 정말 빼닮았다) 하며 딸을 볼 수 없는 안타까움과 기쁨을 그대로 표현한 곡이다. 보이지 않아서 느낄 수밖에 없는 아빠의 마음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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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튜브의 라이브 공연을 보면 그의 딸인 아이샤 모리스가 늘 따라다니며 백 보컬을 맡고 있다. 그래서 공연에서 이 노래가 나오는 영상을 보면 카메라가 아이샤를 비추는 모습을 종종 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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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티비는 7명인가? 자녀를 두고 있다. 아이샤의 동생들도 나의 노래도 만들어 달라고 할 법 하다. 스티비 원더가 2009년인가 올림픽경기장에서 콘서트를 한 적이 있었다. 그때 앞자리에서 노래를 들었던 그 굉장한 감동은 새빨간 거짓말이고 헤헤. 그때 우리나라에서 콘서트 티켓이 최단 시간에 매진이 되었다. 말 그대로 순삭이었다. 공연장에는 일반인들 반, 우리나라 연예인과 최정상 가수들 반이었다. 김태우가 가장 열광했던 것으로 아는데

스티비의 원래 이름은 스티브 랜드 하드웨이 모리스다. 10살 때 길거리에서 노래를 부르는 스티비를 보고 한 무명가수가 픽업을 해서 당시 기획사에 데리고 가서 그곳의 사장에게 보여줬는데 그 사장이 스티비의 노래를 듣고 이건 불가사의다! 그랬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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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사장의 말을 빌리면, 세계의 7대 불가사의가 있는데 이 아이는 8대 불가사의다. 그래서 불가사의? 궁금하다? 원더? 뭐 이렇게 파생되어 스티비 원더가 된 것이다. 그리고 이즌쉬럽미 노래 시작 전 애기 울음소리는 모리스의 울음소리는 아니라고 한다. 어떻든 그래서 그런지 스티비 원더의 노래는 여기, 가슴을 뜨뜻하게 해 주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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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12-04 21:23   URL
비밀 댓글입니다.

교관 2018-12-05 14:18   좋아요 0 | URL
알아보지 않으면 어때요, 노래를 듣고 여기, 여기 가슴이 따뜻해져오면 그것만으로도 얼마나 멋진 일입니까 ㅎㅎ. 오늘도 좋은 하루 보내세요
 

 

 

폴라 익스프레스는 산타를 믿지 않는 의심쟁이 주인공이 폴라 익스프레스를 타고 모험을 겪은 후 산타를 믿게 되었다는 이야기다. 의심이 많을 때에는 벨 소리가 들리지 않았는데 산타를 믿음으로써 그 소리가 들린다. 나이가 들어 갈수록 주인공의 동생도, 친구들도 더 이상 벨 소리를 듣지 못하지만 주인공은 죽 듣게 된다는 이야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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믿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겠지만 이 영화에서는 정말 중요한 것은 처음에 꺼려졌던 폴라 익스프레스에 탔다는 것이다. 그 모험을 겪지 않고서는 믿음이 생겨날 리가 없기 때문이다. 집 안에서 집 밖으로 나오는 것이 중요하다. 나왔다는 것이, 설령 집 밖에서 아무것도 할 것이 없을지라도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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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몇 살 때부터 산타를 믿지 않게 되었을까. 가물거리는 생각의 끈을 잡고 확 당겨보면 아주 어린 시절이었던 것 같다. 머리맡에 아버지가 산타 신발 같은 것을 놓고 가는 것을 봤다. 어른이 되면 대부분 산타를 믿지 않게 된다. 그것은 해가 동쪽에서 서쪽으로 기우는 것처럼 불변의 진리 같은 것 같다. 하지만 대부분이 그렇다. 대부분이라는 말은 완전하지는 않다는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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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명 주위의 어른이라는 사람들은 산타를 믿지 않는다. 거의 대부분이 산타를 믿고 있지 않다. 하지만 대부분이다. 소위 몇몇 어른들은 아직도 아이처럼 산타를 믿고 있다. 그 사람들이 누굴까. 한 번 생각해 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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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타를 믿는 어른은 분명, 이 세계에 끼어서 살고 있다. 설령 눈에 보이지 않더라도 그런 어른은 반드시 있다. 정작 중요한 것은 눈에 보이지 않게 때문이다. 그렇다면 산타를 아직 믿고 있는 어른들이 누굴까. 생각해보면 아주 간단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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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건 바로 폴라 익스프레스를 만든 로버트 저메키스 같은 감독이 그런 사람이다. 그렇지 않고서는 아이들이 보는, 또는 어른들 또한 아이로 돌아가게 만드는 마법 같은 이런 영화를 만들 수 없기 때문이다. 따지고 보면 아직 산타를 믿는 어른들은 많다. 아이들이 보는 만화를 만드는 어른들, 아이들이 가지고 노는 장난감을 만드는 어른들, 아이들이 읽는 동화를 쓰는 어른들이 그렇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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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어른들은 아이보다 더 아이 같은 마음을 몸에 지니고 있기에 아이들이 눈물 콧물 쏙 빼가며 볼 수 있는 영화를 만들어내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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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영화에서 주인공의 엄마 목소리는 로버트 저메키스의 아내인 레슬리 저메키스가 했다. 또 리더십이 강한 흑인 여자아이가 나오는데 노나 게이가 목소리를 했다. 노나 게이는 다들 잘 알겠지만 마빈 게이의 딸이다. 노나 게이는 영화배우인데 온전하게 드러난 영화는 없다. 매트릭스 시리즈에 출연을 한 것이 배우 생활의 전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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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잘 알겠지만 마빈 게이의 죽음은 아직도 무성한 소문이 시달리고 있다. 아버지와 어머니의 싸움을 말리는 도중 아버지의 총에 맞아 죽음을 맞이했는데 이 총은 크리스마스 선물로 아버지에게 준 것이다. 마빈 게이 하면 알리와 연결이 된다
.

마빈 게이와 알리는 인종차별에 대적했다. 한 사람은 권투로 또 한 사람은 노래로 흑인차별을 이야기했다. 마빈 게이는 노래가 너무 좋은데 마약 중독에 시달렸고 자살을 시도하기도 하는 등 에릭 클랩튼처럼 굴곡이 이만저만이 아니었다. 그래도 마빈 게이의 노래가 얼마나 좋으면 찰리 푸스와 메간 트리에너가 ‘마빈 게이’를 불렀다. 노래 제목이 그냥 마빈게이다. 마빈 게이처럼 사랑을 하자는 내용이다. 첫 가사에서 중의적인 표현을 썼다. 마치 쳇 베이커는 약하디 약한 사람이다, 같은 말처럼 멋지게 쓴 것 같다
.

그리고 마지막 장면에 에어로 스미스의 스티브 타일러가 나와서 캐럴을 록으로 부른다. 역시 모두가 알겠지만 리브 타일러의 아버지가 스티브 타일러다. 리브 타일러는 청소년이 되기 직전까지 아버지가 누군인지 모르고 자라다가 티브이에 슈퍼밴드 에어로 스미스가 노래를 부르는데 스티브 타일러의 얼굴이, 특히 입이 자신과 너무 닮은 것이다. 그래서 우여곡절 끝에 내가 당신의 딸이야,라며 스티브 타일러를 찾아가 말했고, 스티브 타일러는 받아들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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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간에 이런저런 일들이 있지만 생략한다. 리브 타일러는 에어로 스미스의 영광의 앨범 겟어그립의 뮤직비디오에 처음부터 죽 나오면서 서서히 배우의 길을 걷게 된다. 당시에 제일 잘나가던 알라시아 실버스톤과 같이 뮤직비디오에 등장을 했는데 알라시아 실버스톤은 어쩐지 내리막길을 걸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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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속에 나오는 노라 게이, 스티브 타일러 역시 어른이지만 산타를 믿는 바보 같은 어른일지도 모른다. 전 세계 투어를 돌며 첫눈에 반해서 같이 보낸 여자의 딸이 내가 당신 딸이라며 달려들 때 이것저것 이해관계나 부당한 일을 당한다는 것도 멀리하면서 딸로 받아들이는 것도 그렇고, 노나 게이 역시 주인공 흑연 여자아이로 완전 빙의가 되어서 연기를 하는 것도 그렇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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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른이 되면 모두가 산타를 믿지 않게 되는 것은 아닌 것 같다. 나는 비록 어린놈의 자식 주제에 산타를 멀리했지만 분명 아이 같은 마음을 가득 지니고 있는 어른들이 있다. 어른이 되어서도 산타를 믿는 사람들. 그들이 아이들의 마음을 움직이며 더불어 어른들의 마음도 촉촉하게 해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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