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실이 나온다고 한다

 

그렇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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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르바이트 추억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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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방장 형은 잭 블랙의 얼굴을 닮았다. 덩치도 컸고 키도 커서 첫인상이 주는 느낌은 나이트클럽의 제일  잘 나가는 기도 같은 모습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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항상 하얀 와이셔츠와 검은 정장 바지를 입고 있었고 사람들이 보지 않아도 늘 잘 닦인 구두를 신고 있었다. 따지고 보니 아르바이트였던 나도 늘 정장의 단정한 의상을 입고 일을 했다. 마치 유럽의 노점 카페에서 서빙을 보는 어른들처럼 하얀 와이셔츠에 검은 정장 바지에 나비넥타이. 요즘으로 치면 그것이 스타벅스의 유니폼 같은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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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페는 카페마다 개성이 넘쳤다. 자본이 많은 카페의 주인은 돈을 많이 주고 인테리어 업체에 맡겨서 카페를 했기에 카페마다 가는 층이 다 달랐고 연령층에 따라서도 학교에서 노는 아이들과 그렇지 않은 아이들이 가는 카페가 달랐으며 남자들이 주로 수다를 뜨는 카페 역시 따로 있었다. 남자들이 술도 없이 수다를 더 떨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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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하여 카페는 카페마다 지니는 색이 다 달랐고 음료나 특히 메뉴판이 달랐기에 여자들이 메뉴판이 보기 좋고 예쁘면 어쩐지 그 카페에 더 들어가는 것 같았다

단편소설에도 잠깐 나왔던 블랙박스라는 카페는 창문도 없고 온통 검은 테이블에 검은 벽에 검은 옷을 입은 아르바이트와 뿌연 담배연기에 일본 음악이 항상 깔려 있어서 그곳에는 각 학교에서 제일 잘나가는 아이들만 모여드는 곳이 되었다. 잘 생기고 예쁜 아이들이 주로 그곳에 진을 치고 있었으며 블랙박스에 들어가려면 교복을 입고서는 안 되고 유행에 떨어지는 옷을 입어서도 안 되며 촌스러워도 안 되었다. 나는 안 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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찰리 채플린이 있었고 시티타임이라는 카페도 있었다. 찰리 채플린 카페는 온통 찰리 채플린의 그림과 소품으로 되어 있었고 주로 20대 초반의 대학생들이 진을 쳤고, 시티타임은 회사원들이나 남녀의 회사원들이 만남을 가지는 장소였다. 천장이 굉장히 높고 카페 곳곳에 조그만 인공 호수가 있고 야외에는 잉어나 물고기가 노닐고 일하는 종업원 수가 10명 가까이 되는 카페. 아무튼 카페는 카페 만의 개성이 강력하여 그 개성에 이끌려 사람들은 카페를 찾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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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일일이 테이블에 음료를 서빙해주었다. 주문을 받을 때는 늘 허리를 굽히고, 주문은 재차 확인을 하고, 클레임이 들어오면 항상 죄송하다고 하고 다시 갖다 준다. 주방장 형은 안 그런척하지만 홀에서 일어나는 모든 일을 예의주시하고 있었다. 손님들이 불편해하면 아르바이트하는 누나들이나 나에게 손짓을 하면 우리는 손님에게 간다. 그러면 어김없이 재떨이를 비워달라거나 물을 더 갖다 달라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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잭 블랙을 닮은 형은 나에게 발차기를 배우는 걸 좋아했다. 합기도를 6개월 정도 다니고 있었을 때였는데, 뭔가 호신술을 배우거나 자기발전이 아니라 그저 성룡의 발차기를 따라 해보고 싶었다. 그때는 몸이 아주 가벼웠기에 공중 2회전 돌기라든가 벽 짚고 지랄 옆차기 같은 발차기를 하기 위해서 합기도를 열심히 다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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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님이 없을 때 발차기를 보여주면 잭 블랙의 형은 아주 좋아했다. 잭 블랙의 형은 늘 긴팔에 긴 바지를 입었는데 발차기를 하다 그만 넘어졌을 때 다리로 보이는 뱀꼬리를 나는 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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잭 블랙 형과 나는 오락실에도 같이 가고 따로 술을 마시러 같이 가기도 했다. 다른 사람에게는 어떤지 모르나 나에게는 그저 순박한 마음씨 좋은 형이었다. 잭 블랙을 닮은 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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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번은 서빙을 하는데, 추라이라고 불리는 쟁반에 음료를 올리고 테이블에 가서 한 잔씩 내려놓는다. 커피 주문하신 분? 주스 주문하신 분? 이런 말을 하면서. 주스는 컵이 길고 빨대를 꽂아 준다. 여자 손님 3명이 온 테이블이었는데 서빙을 하다가 손에 든 추라이에서 주스 컵을 내리는데 그만 빨대 끝이 코에 쏙 들어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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쟁반은 가슴 높이까지 들고 있고 주스 잔을 내리다가 그렇게 된 것이다. 나는 정말 놀랐지만 여자 손님들은 수다를 떠느라 그것을 보지 못했다. 하지만 양심에 찔려 그 주스를 그대로 내려놓을 수가 없었다. 빨대만 다시 가져다드릴게요,라고 하는 것도 이상해서 주스를 다시 갖다 준다고 했는데 여자가 그냥 달라는 것이다. 난처해서 꾸물거리고 있는데 구세주처럼 잭 블랙 형이 주방에서 테이블로 와서 해결을 해 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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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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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이야기 잠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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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다면 총몽 원작과 예고편을 통해서 본 알리타는 얼마나 원작을 재현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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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행히 하드디스크에 총몽을 삭제하지 않고 지금까지 가지고 있었다

총몽의 장면을 예고편을 보면서 비교해보니 새록새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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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이야기 잠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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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봉을 앞둔 영화에 기대를 크게 하지 않는 편이다. 어느 시점의 이전과 이후로 나뉘는데 그 시점이라는 것은 영화를 위한, 오직 영화만의 시나리오를 가지고 영화를 만들었을 때를 말하는 것이다. 물론 아주, 지극히 개인적인 편견이 그렇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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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점 이후는, 그러니까 이제 영화에서 영화만으로 하고자 하는 이야기가 소멸했다. 그리하여 대부분 원작이 있는 이야기를 실사로 만들고 있기에 이미 나와 있는 원작의 신선함을 이길 수가 없다. 그렇기에 기대를 접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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곧 아쿠아맨이 하지만 아쿠아맨은 기대보다는 이 영화를 기점으로 디시코믹스가 살아나야 반대편에서 굳건한 마블코믹스가 엇? 하면서 긴장을 할 것이다. 그나마 기대의 요소는 공포영화를 수작으로 만들었던 제임스 완이 감독을 맡았다. 그 우울한 분위기를 디시코믹스의 아쿠아맨에서도 잘 녹여 내느냐 하는 것이겠다. 자본을 때려 부었지만 전작들이 대체로 망작이었으니 아쿠아맨은 기대보다는 보는 이들 역시 책임감을 가지는 묘한 영화가 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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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럼에도 개인적으로 기대를 할 수밖에 없는 영화가 알리타이다. 알리타 베틀엔젤이다. 이 영화는 19년 2월에 개봉을 하는데 원작이었던 총몽을 무척이나 좋아한 사람들이라면 당연하게도 기대를 하게 된다. 90년대 아키라, 공각 기동대와 함께 디스토피아 미래 환상특급의 에스에프 물의 걸작이었던 총몽. 총몽의 주인공이 실사화가 되어서 활극을 펼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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총몽은 공각기동대보다 더 한 잔인한 장면과 그로테스크와 아방가르드함으로 마니아들의 폭발적인 인기를 끌었다. 총몽은 제임스 카메론이 이미 2005년에 판권을 샀다. 07년에 영화로 제작하려 했으나 뒤로 연기와 연기를 거듭한 영화였다. 팬들은 이미 늙어가고 10년을 총몽 하나를 기다리기에 정신적으로 쇠퇴해져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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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임스 카메론은 총몽의 감독을 아주 맡고 싶었다. 그래서 판권까지 구입을 했지만 아바타를 만들면서 아바타가 기대 이상으로 너무 크게 흥행을 해버렸다. 그리고 지금까지 제임스 카메론은 아바타 2를 비롯한 아바타 시리즈에 전념을 하고 있는 상황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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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하여 제임스 카메론은 총몽의 제작에 돌입을 하고 감독은, 데쓰 프루프의 제작자이자 플래닛 테러의 감독을 했고 스파이키드 4와 씬 시티 2의 감독을 맡았던 로드리게즈가 감독을 맡았다. 잔인함과 순수함을 동시에 영화에 표현할 줄 아는 감독이기에 총몽의 기대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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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에게 익숙한 제목인 총몽이 아니라 알리타로 개봉을 한다. 알리타 배틀엔젤이기에 아마도 후편이 계속 나올 것 같다. 총몽의 세계관이 광범위하니까 영화 한 편으로는 모자랄 것이다. 총몽은 OVA로 2편짜리 극장판도 있다. 극장판에서 이름은 갈리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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총몽은 기억을 잃은 사이보그 소녀가 고철처리장에서 이도라는 박사에게 구출되면서 수리를 받고 평범하게 지내다가 이도 박사를 헤치려는 사이보그와 전투를 하는데 알리타 자신도 모르는 전투력을 내 보이게 된다. 원래 첨단 무기 자체였던 알리타는 자신을 파괴하려는 자들과, 감정을 나누는 유고- 영화에는 휴고 사이에서 자신을 지켜나가는 내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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웨타 디지털에서 그래픽을 맡았다. 이 회사는 아바타를 비롯해서 아이언맨 3, 어벤져스와 어벤져스 3의 그래픽을 맡았었다. 영화 알리타 속에는 크고 작은 사이보그가 잔뜩 나온다. 그 시각적 화려함에 기대를 해 볼만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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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고편이 이미 공개가 됐고 북미에서는 이미 개봉했다는 이야기도 있지만 아직 정보를 나는 모르고 있다. 한국에서는 월요일에 30분짜리 쇼케이스를 극장에서 하기 때문에 팬들은 이미 쇼케이스를 보기 위해 몰려들기 시작했다. 30분은 결코 짧은 시간이 아니다. 과연 스칼렛 조한슨의 공각기동대 꼴이 나느냐 아니면 아바타처럼 흥행이 되느냐 궁금한 영화 알리타 베틀엔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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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은 교회에서 새벽송을 도는지 모르겠다. 종교가 없는 나는 중학교 때 3년이나 교회에 다닌 적이 있었다. 딱히 신앙심이 있어서 그렇게 3년이나 다닌 건 아니고 고모가 교인이라 끌려갔다가 여름에 시원하고 겨울에 따뜻했기에, 또 교회 지하에는 도서관이 마련되어 있어서 공부를 핑계 삼아 엎드려 잠자기에도 좋고 학생부 선생님이 있었는데 질문을 하면 학교 선생님보다 대답을 잘해주는 이런저런 이유 때문에 교회를 3년 동안 다녔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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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학교 때는 뭐랄까 인간 같지도 않았다. 어린이도 아니며 그렇다고 제대로인 청소년의 모습도 아닌 뭔가 어정쩡하고 아주 냄새나고 기분이 썩 좋지 않은 상태였다. 게다가 나는 평소에는 그러지 않다가도 교회에만 가면 아주 개구쟁이가 되었다. 좋은 쪽으로 포장을 해서 개구쟁이지 조금은 극악무도한 중학생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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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등학생 누나들이 앉는 의자의 자리에 호치키스로 지뢰를 만들어 뿌려 놓거나 콩알탄으로 숨어있다가 휙 던져서 놀라게도 했고, 내가 기도하는 날이면 작은 교회의 전선을 끊어서 불이 들어오지 않게 해서 모두가 그것 때문에 서성거리게 만들기도 했다. 목사님도 깜짝 놀라게 한 사건이 있었지만 그건 적지 않겠다. 그럼에도 미움을 받지 않았다. 형들에게 혼나려고 하면 두 살 많았던 민정이 누나가 히어로처럼 다 막아 주었다. 민정이 누나가 형들을 한 번 노려보면 아무 소리도 못했다. 속으로 메롱이다 이 형들이라고 불리는 놈들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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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정이 누나 덕분인지 크리스마스이브때 나는 성가대에도, 성냥팔이 소녀의 연극에도 4중창에도 불려가서 하룻밤에 몇 번이나 무대에 섰다. 말썽쟁이에 사고뭉치였던 내가 미움을 받지 않고 3년 동안 교회를 다닐 수 있었던 건 어쩌면 꽤 대단한 일이었는데 민정이 누나가 있어서였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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넌 중학생인데 이런 음악을 듣니. 민정이 누나는 내가 듣고 있던 카세트테이프를 보며 그런 소리를 늘어놓곤 했다. 생각해보니 중학생 주제에 나는 바쏘리, 판테라, 오비추어리 같은 노래를 듣고 있었다. 과격하고 무슨 말을 하는지도 못 알아들을 정도로 음악이 강한. 너 이런 노래 많이 들으니 기도 많이 해야겠다. 앨범 카버에는 온통 해골이니 피가 터지는 그림이 잔뜩 있었고 그런 음악을 들으며 잘도 교회를 갔던 것이다. 하지만 휘트니 휴스턴의 두 번째 앨범이 있어서 그걸 교회에서 민정이 누나와 함께 듣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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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리스마스이브에 교회에서 하는 모든 행사가 끝나면 새벽송을 돌았다. 자정이 되기 전에 지하에서 소고기국에 밥을 말아 먹고 구역별로 나누어서 새벽송을 도는데 봉고차에 짐 꾸러미처럼 실려서 돈다. 봉고차는 짐을 싣는 용도라 운전석을 빼고 뒤에는 의자도 없고 창문도 없다. 그저 휑한 공간만 있고 그 안에 쪼그리고 앉아서 목적지까지 계속 이동을 한다

처음에는 재미가 있어서 차가 커브를 돌 때마다 매트로놈처럼 요렇게 움직이지만 새벽송을 한 곳, 두 곳 돌면서 계속 이동을 하다 보니 나는 그만 멀미를 심하게 했다. 새벽송을 돌기 전에 먹은 소고기국에 밥 말아 먹은 것이 그대로 올라올 것만 같다. 하지만 여자아이들이 있기에 참을 대로 참지만 이미 목까지 올라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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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그만 참지 못하고 봉고차 그 안에 우웩 하고 전부 다 토하고 말았다. 소고기국에 밥 말아 먹은 것의 냄새가 봉고차 안에 퍼졌다. 나는 고통스러웠고 그것보다 창피했다. 그때 나에게 어쩌면 제일 많이 괴롭힘을 당한 민정이 누나가 차를 세우고 나를 시원한 밖에 내리게 해서 등을 두드리게 하고 더러워진 차 안을 다 닦아 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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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토를 하면서 눈알이 튀어나올 것 같았고 뱃속의 장이 전부 꼬이는 것처럼 고통스러웠다. 그때 묘하게도 괜찮아, 괜찮아, 하는 그 소리가 고통을 덜어주었다. 민정이 누나는 그날 새벽에 나를 집 앞까지 데려다주고 돌아갔다. 나는 어쩐지 그 이후로 슬슬 교회에 덜 나가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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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각해보면 남녀가 스스럼없이 어울릴 수 있었던 공간이 교회였기에 민정이 누나는 나의 옆에 자주 앉아 있곤 했다. 이후에 나는 왜 민정이 누나에게 연락 한 번 해보지 못했을까. 나는 누나가 없기에 누나라는 존재가 주는 의미가 누나가 있는 아이들과는 달랐던 것 같다. 딱히 말로 설명을 못 하겠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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