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루키의 잡문집은 말 그대로 잡문집이다. 일기처럼 하고 싶은 말을 주절주절하는 것부터, 음악에 대해서, 또 옴진리교의 사린가스 사건에 대해서, 번역과 하루키가 보는 사람들과 초 단편 소설도 실려 있는 등 아무튼 오리온 종합 선물 과자세트다.

나는 책을 읽을 때 볼펜으로 줄을 긋거나 낙서 같은 걸 하지 않는데 왜 이렇게 줄을 그어놨는지 모르겠다. 게다가 별로 중요한 단어도 아닌 것에 얼씨구 표시까지 해두었다. 내가 줄을 그어가며, 각주를 달아가며 읽은 책은 소설 ‘남한산성’이 유일무이한데 조선시대 그대로의 단어들이 너무 많아서 오냐, 김훈 소설가, 내가 질 쏘냐 같은 마음으로 전부 이해하면서 읽어내리! 그런 각오를 하고 읽었는데 참 오래 걸린 기억이 있다.

하루키는 우드스톡이 발아하는 과정, 그 속에 있었다. 60년대에는 예술과 노래로 전쟁을 막고 기근을 멈출 수 있다고 믿었다. 그래서 보브 딜런을 비롯한 당시의 가수들은 생 날 것으로 총앞에서 자유와 평화를 노래로 불렀다. 그 자리에는 없었지만 그런 기운은 마음을 뜨겁게 하기에 충만하다.

하루키는 짐 모리슨의 음악을 아주 좋아했다. 그건 좋아했다는 표현보다 음악이 피부로 스며들어와서 몸을 그대로 자유화시켰다. 하루키가 노르웨이 숲을 펴낼 때 전공투 시위가 한창이고 학생운동이 일어나기 시작했다. 마찬가지로 한국에서도 민주화에 대한 열망이 대학생들을 기점으로 해서 들불처럼 퍼져나가기 시작했다. 하고 싶은 말을 하고, 부르고 싶은 노래를 부르는 것을 국가는 싫어했고 간섭했다.

짐 모리슨의 음악은 마음의 여러 곳에서 꽃을 피우게 한다. 제니스 조플린은 자다가 일어나서 바로 무대에 선 것처럼 보이는(보여지는) 것에 전혀 신경을 쓰지 않았다. 제니스 조플린의 노래는 늘, 언제나, 항상 분출이었고 자유분방함이었다. 그 밑바닥에는 박애가 깔려 있었다. 짐 모리슨과 제니스 조플린은 28살 즈음에 죽었다. 지미 핸드릭스도 28살에 죽었다. 지미 핸드릭스의 왼손 기타는 하나의 상징이 되었다. ‘헤이 죠'는 우드스톡을 시작으로 최근 ‘글래스톤베리’까지 울려 퍼졌다.

지미 핸드릭스 이후 방황하던 우리는 커트 코베인을 찾아냈다. 주류에 들어가기 싫은 뉴 제너레이션 세대. 커트 코베인은 왜 주류에 들어가기를 극심하게 싫어했을까. 60년대부터 불던 부모 세대에게서 저항을 느낀 이들이 일명 부모 세대, 전쟁세대에게 도움을 받기를 거절하면서 창고 같은 데서 지내면서 자기들의 생활은 자기들이 알아서 책임지겠다며 나오는 세대가 생겼다. 그것이 뉴 제너레이션 세대인데 그중에는 스티브 잡스도 그랬다.


커트 코베인 역시 친척 집을 떠돌면서 물질만을 쫓는 부모 세대들에게서 미래를 발견할 수 없었다. 그는 창고 같은 곳에서 자기 마음대로, 그러니까 이전 세대를 비판하는 음악을 만들기 시작했다. 자신이 추구하는 음악은 번뇌와 고뇌가 소멸한 상태로 가는 것이다.


부모 세대처럼 살면 안 된다, 이전 세대, 물질을 찬양하고 쫓는 세대를 신랄하게 비판하는 자신의 음악을 부모 세대가 열광하는 것에 괴리감을 느끼고 고통스러워한다. 불행이 시작되는 것이다. 엄청난 고통을 겪게 된다. 정신적으로 받은 손상은 쉽게 치유되지 못한다. 경멸하던 사람들이 자신의 음악을 찬양하는 것에서 오는 모멸감은 대단했다. 오로지 헤로인 만이 그를 ‘무’의 상태로 되돌려 놓았다.


관객과 스타의 무대를 없애버린 장본인. 왼손 기타의 얼터너티브 록을 하던 코트 코베인은 기성세대들에게 욕을 왕창하고 싶어 반항했다. 그런데 기성세대들이 자신의 반항을 더 좋아하는 기염을 토했다. 거기에서 오는 괴리는 커트 코베인의 내면에 깊고 깊은 상처를 새겼다. 도저히 약을 하지 않으면 잠들 수 없는 밤들의 연속. 결국 코트 코베인 역시 지미 헨드릭스를 따라 28살에 돌이키지 못할 곳으로 가버리고 만다. 그리고 전 세계의 모두가 한 마디씩 했다. 아이 씨발 불꽃처럼 가버리다니.

하루키가 짐 모리슨의 음악을 들은 것이 18세였다. 나 역시 17, 8세 그즈음에 ‘도어스’를 들었다. 중학교를 기점으로 라디오로만 듣던 음악 경로가 뚫려 제니스 이안, 레드 제플린, 엑스재팬의 히데, 롤링 스톤즈가 물밀듯이 내게로 밀려왔다. 나는 학창 시절 장국영에게도 빠져 있었다. 아비정전의 아비(장국영)가 수리진(장만옥)에게 그런 말을 했다. 1960년 4월 16일 너와 나는 일분을 같이했어, 난 이 소중한 일분을 잊지 않을 거야, 지울 수도 없어 이미 과거가 되어버렸으니까. 그렇게 장국영도 과거가 되었고 짐 모리슨도 과거가 되었다.

하루키는 서른네 살에 짐 모리슨의 더 도어스의 앨범을 들으며 밤을 불사르고 있었다. 짐 모리슨이 그를 위해 마련된 소울 키친으로 사라진 지 십이 년이 흘렀다고 83년에 그랬다. 지금은 얼마나 과거가 되었을까. 짐 모리슨은 결코 전설이 아니라고 하루키는 말한다. 왜냐하면 전설로도 짐 모리슨의 공백은 채울 수 없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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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루키의 이 에세이는 일본 잡지 ‘앙앙’에 실린 글들을 모아놓은 글이다. 잡지 앙앙을 보면 청소년부터 성인까지 볼거리가 다양하다. 그 말은 청소년들이 좋아하는 연예인들, 당시 잘 나가는 연예들의 인터뷰도 실려있고 그 외에 핫한 인물들의 소식과 인터뷰, 사진화보까지 볼 수 있다. 앙앙은 최근까지 살아남아서 방탄소년단의 인터뷰도 했고 방탄이들의 멋진 사진들을 볼 수도 있다. 앙앙은 한국까지 진출하여 한국에서도 앙앙이 출간이 되었는데 몇 년 하지 못하고 사라진 것 같다. 2008년 정도 이후에는 한국에서 앙앙 잡지를 볼 수 없다.


예전 청계천이 지금처럼 바뀌기 전에는 그곳에 몇 달에 한 번씩 가서 보그나 코즈모폴리턴 잡지를 저렴하게 한 스무 권씩 사 오고 했다. 주로 독일이나 이태리, 프랑스에서 출간한 잡지들이었다. 미국의 잡지보다 좀 더 섬세하고 질감이 더 살아있는 것 같았다. 잡지의 속지는 분명 종이다. 프린트된 종이이지만 사진보다 출력물의 상태가 더 살아있다. 그것이 잡지가 가지는, 사진 잡지가 가지는 장점이 아닐까. 글을 읽을 줄 몰라도 상관없다. 잡지니까, 사진이 대량으로 실려 있으니까 넘기며 보는 재미가 좋다. 독일의 보그지는 몹시 야하다. 아니 어떻게 이런 사진이 잡지에 실릴 수 있지? 하게 되는 경우도 있다. 이제는 그런 잡지들을 그놈의 아이패드로 전부 볼 수 있다. 손으로 만져지지는 않지만 손쉽게 볼 수 있다는 점이 좋은 점이자 안 좋은 점이다.  


여하튼 그런 잡지에 실린 하루키의 에세이니까 연령층이 다양하게 볼 수 있는 이야기가 가득하다. 그중에 조지아 오키프에 관한 챕터가 있다. 대략적인 내용은 오키프는 1938년에 파인애플 통조림으로 유명한 돌 사의 초대를 받아 하와이에 석 달 정도 체류했다. 비용은 전부 댈 테니 마음껏 하와이에 머물며 광고에 쓸 파인애플 그림 한 장만 그려달라는 제안을 했다.

오키프는 이혼의 상처도 달랠 겸 제안을 받아들였다. 오키프는 하와이 이곳저곳을 다니며 그림을 그렸다. 눈에 보이는 모든 신선한 것이 그녀의 창작욕구를 부추겼다. 오키프는 다들 잘 알겠지만 꽃을 초현실 예술로 승화시킨 세계적인 화가이다. 벨라도나, 하비스쿠스, 꽃 생강, 연꽃 등 많은 그림을 아름답게, 오키프 식으로 그렸다.

그런데 파인애플만은 그리지 않았다. 그리고 석 달 동안 파인애플은 한 장도 그리지 않은 채 그대로 뉴욕으로 돌아가 버렸다. 그 뒤로 난감해진 돌 사. 하루키도 오키프의 이런 이야기를 들으면 오오 하며 한 번쯤 이렇게 대담해지고 싶지만 천성이 그러질 못한다고 했다. 그런데 오키프도 어쩌면 천성이 대담한 여성이지는 않았을 것이다.


조지아 오키프는 화가로서 가장 유명하지만 또 근대 사진가 스티글리츠의 아내로도 유명하다. 화가로서 이름을 떨치기 전까지는 스티글리츠의 부인으로 더 유명했을 것이다. 오키프는 남편의 카메라 앞에서 모든 것을 다 보여줬다. 실오라기 한 톨 걸치지 않은 채 부끄럽고 민망할지도 모르는 자신을 다 내보였다.


두 사람은 교수와 제자로 만났다. 사진 수업을 듣던 꼬맹이 오키프는 스티글리츠가 보기에 너무나 재능이 많이 보였다. 특출한 능력을 보고 예술에 대해서 본격적으로 가르쳐주면서 연인으로 발전을 했다. 하지만 이미 스티글리츠는 아내가 있었다. 그렇지만 오키프는 타오르는 불꽃이었다. 그런데 스티글리츠는 그런 아름다운 오키프를 두고 또 바람을 피웠다. 그 충격으로 오키프는 두 달간 신경쇠약으로 정신병원에 입원을 한다. 우울증이 심했고 유방에 생긴 양성종양을 제거하는 동안에도 스티글리츠는 다른 여자와 연애를 즐겼다.


오키프는 이 모든 것을 이를 앙 다물고 이겨내고 화가로서 명성을 떨치게 되었다. 오키프는 자기 돌보기로 모든 것을 딛고 화가로서 일종의 권력을 쥐게 되었다. 고개를 들고 사진 수업을 듣던 꼬맹이 오키프가 훌쩍 성장하여 청탁이 들어와도 ‘나는 내가 그리고 싶은 것만 그릴 테야, 그리고 싶지 않은 건 청탁이 들어온데도 그리지 않을 테야’라며 그리고 싶은 그림만 잔뜩 그리며 살다 갔을지도 모른다.


하루키도 자신의 책에 사인을 안 해주는 걸로 알고 있다(요즘은 어떤지 모르겠지만). 왜냐하면 ‘노르웨이 숲’이 10만 부가 팔렸을 때는 꽤 만족하여 기분이 좋았다고 한다. 하지만 100만 부가 팔렸다는 소식에는 이제부터는 슬슬 공격이 들어오겠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했다. 터무니없는 글에 그 정도의 판매가 되었다며 공격을 해 오고 더불어 자신의 사인이 된 책이 말도 안 되는 가격에 거래가 되는 모습을 보고 싶지 않았다고 했다. 그러니까 일종의 예술적 고집은 타고나는 부분보다는 강력한 ‘자기 돌보기'가 가능케 하지 않았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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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주비행사들이 우주에서 처리하는 대변의 냄새는 엄청나다고 한다. 아마도 그건 먹는 음식이 위에 영향을 줬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뭐 공기의 압력, 밀도, 생체의 리듬, 맥박 같은 것들도 그렇지만 우리가 보통 일반적으로 생활하면서 먹는 음식에서 벗어난 음식을 먹고, 대체로 보통의 생활처럼 대변이 마려울 때마다 시원하게 보는 것이 아니라 참고 참았다가 대변을 보기 때문에 그 냄새가 엄청날 수 있다. 군대 훈련소에 가면 그렇다. 일반적인 식단이 아니다. 기름지고 입맛을 돋우는 면식보다는 탄수화물, 지방, 단백질 섭취에 맞게 식단이 나온다. 그러다 보니 먹고 일주일 정도 있다가 대변이 나오는데 화장실에 들어가지도 못 할 만큼의 냄새가 가득하다.

화장실 하니, 내가 일하는 건물의 화장실에는 비밀번호가 있다. 이걸 풀지 못하면 화장실 안으로 접근이 불가하다. 마치 대탈출의 한 부분 같다. 화장실에 비번을 달기 전에는 청소하는 아주머니가 세 번이나 바뀌었다. 지금 건물의 화장실(건물은 13층까지 있지만 아주머니들이 청소하는 화장실은 1, 2, 3층의 화장실이다)을 청소하는 아주머니들은 한국사람들이지만 예전에는 조선족 출신으로 일자리가 급급할 텐데도 두 손 두발 다 들고 그대로 아아, 화장실 청소라는 건 정말 할 짓이 못 되는 군, 하며 그대로 가버리고 말았다.

 

사람들은 어째서 자기 집 화장실이 아닌 화장실은 열과 성의를 다해서 더럽게 사용하는지 모를 일이다. 그것이 아니라면 그런 사람 대부분이 자신의 집 화장실도 더럽게 사용을 하여 아내나 모친과 늘 다툴지도 모른다. 이렇게 말을 하면 화장실을 더럽게 사용하는 사람들이 남자들로 좁혀지는 것 같지만 청소하시는 아주머니들의 말을 빌리면 여자 화장실이 남자 화장실보다 압도적으로 더럽다.

 

화장실이라는 공간은 인간 생활에서 떼려야 뗄 수 없고 없어서는 도저히 안 되는 공간이다. 반드시, 꼭, 당연하게도 있어야만 하는 공간이다. 오래전처럼 화장실이 집 밖에 있다고 생각해보면 요즘 같은 날씨에 옷을 몇 겹이나 껴 입고 입으로 숫자와 동물이 조합된 욕을 하면서 화장실에 가야 한다. 엉덩이를 까는 순간 뭔가 제대로 될 것 같지도 않다. 그만큼 화장실이라는 곳은 몹시도 중요한 곳인데 어쩐지 인간은 그런 화장실을 업신여기거나 나만 알고 있는 나만의 단점으로 치부해버린다.

 

내가 일하는 건물의 화장실은 공중 화장실이 아니다. 그냥 일반 주택의 화장실 같은 개념이지만 건물에 가게들이 있고 가게를 찾는 손님들이 있으니 화장실을 사용하게 해야 한다. 여기까지는, 물론 나만의 생각일지는 모르지만 화장실 사용을 집에서처럼 개념적으로, 개념적이라고 해봐야 그저 일반적으로 사용을 하는 사람들이라고 생각된다. 왜냐하면 그들이 화장실을 오만방자하게 사용을 하게 되면 어떻든 이후에 누가 이랬지? 같은 말이 나오고 결국 사건의 범죄자는 좁혀지게 된다. 건물의 가게에 오는 사람들이 일정기간에 늘 오던 사람들이니 그럴 수는 없을 것이다. 그리고 입점해있는 가게의 주인들인데 아무래도 그들이 일부러 화장실을 망가트리려고 엉망으로 사용하지는 않을 것이다. 그러다 보니 비번을 달기 전에는 건물을 지나치는, 또는 밖에서 담배를 피우다가 소변이나 대변을 봐야 하면 으레 건물로 들어와서 볼일을 보는 사람들이 막 사용하는 화장실쯤으로 치부되었다고 생각된다.

 

공중화장실이 아니니까 개방형 화장실이냐면 그것도 아니다. 그럼에도 비번을 달기 전에는 모두가 사용을 하게 했다. 그런데 물을 안 잠그고 나오는 건 보통이다. 신발을 갈아 신고 변기에 빠트리는 사람도 있고, 여자 화장실에는 생리대가 휴지통 밖으로 마구 나와서 버려진 것들도 많았다. 대변을 변기 밖에도 싸 놓는 사람도 있었다. 화장실 안에는 시시티브이를 설치할 수 없으니 누군지 알 길이 없다. 오직 그걸 치우는 아주머니들만 골치 아프다. 시시티브이를 설치해서 누군가가 밝혀졌다고 해도 잡는 것까지의 시간이 오래 걸릴뿐더러, 잡혔다고 해도 그날 술을 마셔서요,라고 해버리면 그저 훈계를 받고 끝나는 일이다. 만약 붙잡힌 범인에게 아주머니들이 욕을 하지만, 이미 청소가 다 끝난 상태이니까.

 

화장실의 폭파는 매일 일어나고 매일 아침 청소를 해야 했다. 그러던 중 어느 날부터는 누구인지는 전혀 알 길이 없지만 변기 뚜껑을 내려서 그 위에 대변을 본 다음 손으로 휘저어놓고 간 사람도 있었다. 이런저런 정황상 손가락이 아니면 나올 수 없는 그런 모습이었다. 문제는 이렇게 대변을 온 화장실에 그림처럼 피워 놓으면 들어가는 순간 숨을 쉴 수 없을 정도의 냄새가 난다는 거다. 도대체 뭘 주워 먹고 다녔던지 냄새가 우리가 일반적으로 각오하고 생각하며 맡을 수 있는 냄새의 범주를 넘어선다.


하루키의 글에서 말하는 우주비행사의 엄청난 냄새였다. 압도하는 냄새. 화장실에 대변냄새가 나는 게 뭐 어때,라고 하겠지만 범위를 벗어나는 종류의 것들이 존재한다. 그중에서도 단연 으뜸, 최고였다. 그렇기에 청소하는 아주머니가 사표를 던지고 도망을 가버렸다. 아침에 오면 난리도 아니며 바뀐 아주머니들도 한 두 달을 버티지 못하고 그대로 가바리고 말았다. 그래서 지금은 결국에 이렇게 비밀번호를 달게 되었다. 무슨 얘길 하다 이렇게 됐지. 다들 점심은 드셨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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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루키는 그동안 홀리오 이글레시아스를 홀대하는 느낌을 꽤 적었다. 그 홀대에는 뭐랄까 일종의 질투가 담겨 있다. 다른 에세이에서는 여자들이 홀리오 이글레시아스가 노래를 부르면 모두가 티브이 앞으로 모여든다면서 투덜거리기도 했다. 아마도 아내인 요코(이름이?)마저도 홀리오 이글레시아스가 노래를 부르면 캔디 같은 눈망울로 빠져들어가니 투덜거릴 수밖에.


홀리오 이글레시아스는 축구선수 출신답게 키도 크고  슈트도 잘 어울리고 무엇보다 기기 막힌 목소리의 스페인어로 특유의 억양이 들어간 노래를 부르면 누구라도 아 하게 된다. 홀리오 이글레시아스의 노래는 하루키가 좋아할 만한 타입이 아닌 것이다. 그러거나 말거나 홀리오의 인기는 하늘을 찌르고 뚫고 나갔다.


그런 홀리오에게 엔리케라는 아들이 있다. 엔리케 이글레시아스. 엔리케라는 이름은 미국으로는 데이빗, 영국으로는 토마스 정도로 한국으로는 철수처럼 아주 흔한 이름이다. 그러니까 명자아키코쏘냐다. 홀리오는 아들인 엔리케와 아주 사이가 안 좋은 걸로 유명하다.


아마도 예측을 하자면 슈퍼 스타답게 전 세계를 돌며 금발의 섹시한 여성들과 풍문을 일으키다 보니 엔리케가 태어났고 이름도 귀찮다는 듯 그냥 '철수'로 해.라는 느낌이 강하다. 세계를 돌며 노래를 부른다며 아들 돌보기는 뒷전이었을 테니까 엔리케가 컸을 때는 아버지에게 대들었을 것이다. 이름도 이게 뭐냐면서, 아버지와 대등하게 놓였을 때 엔리케는 가수가 되었다. 아버지를 닮아서 그런지 정말 잘 생겼다. 아마 어느 시점을 넘어서는 아버지보다 인기가 더 좋았을 것이다. 지금까지도 꾸준하게 앨범 활동을 하고 있으니.


어쩐지 그래서 그런지 하루키는 엔리케가 인기가 많아진 시점부터는 에세이에 그렇게 투덜거리던 홀리오 이글레시아스에 대한 이야기도 없는 것 같다. 이제는 미즈마루 씨도 없으니 그에 대한 투덜거림도 들을 수 없고, 왠지 시간이 간다는 느낌이 많이 든다. 


깊어가는 새해의 첫날밤 홀리오 이글레시아스의 노래를 들으며, 노래를 듣다가 조용필의 노래로 끝맺음을,,, 왜냐하면 홀리오의 노래 중에는 자연스럽게 조용필의 노래가 떠오르는 노래가 있거든. 사랑의 그림자 되어, 끝없이 머물게 하여 주오! 깊어가는 밤 조용필의 노래와 함께.

-2021. 1. 1. 



하루키는 이렇게 대놓고 홀리오 이글레시아스를 까고 있다. 아주 유쾌하고 위트가 넘치게 까고 있다. 발랄하다고는 하지만 당사자인 홀리오 입장에서는 뭐야 저 달리기만 할 것 같은 놈은,라고 생각할지도 모른다. 어쩌면 하루키와 홀리오가 달리면 하루키가 질지도 모른다. 반평생 조깅을 해 온 하루키지만 홀리오는 축구선수 출신이기에 단거리는 대번에 하루키를 이겨 버릴지도 모른다.

하루키가 이토록 홀리오를 싫어하는 이유는 노래를 잘하기 때문이다. 더 큰 이유는 키가 크고 잘생겼다는 것이다. 게다가 외계 언어 같은 스페인어로 노래를 부르면 키, 잘생김, 목소리가 전부 어우러져 여자들에게 페로몬 같은 직설 화살을 날려 버린다. 부르는 노래들이 하루키가 좋아하는 노래가 아니라 더 홀리오를 깐다. 그러거나 말거나 전 세계 여자들은 홀리오가 마이크를 잡으면 열광했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하루키가 펜을 잡았다고 해서 세계의 여자들이 열광하지는 않는다. 세계의 아무리 유명한 작가라도 결과물 하나를 만들어 내는 데는 시간과 노력을 요하고 어떤 공식적인 자리에서도 고작 단상에서 말로 멋지게 몇 마디 하는 게 전부다.

홀리오를 보자. 야외 수영장에서 멋진 몸매를 드러내고 선탠을 즐기고 있다가 수영장에 서서히 어둠이 오고 음악이 흐르는데 그만 음향장비의 문제로 고요하게 되었다. 그때 홀리오가 일어나서 피아노 앞으로 가서 멋지게 연주하며 특유의 스페인어로 노래를 부른다. 여자들은 모두가 홀리오 앞으로 모여든다. 눈은 전부 초승달처럼 변해가지고.

제아무리 하루키라도 하루키에겐 그런 점이 없다. 아유 저 홀리오 정말 짜증 나. 요컨대 수려한 문장으로 사람들을 홀리는 허지웅이라도 사람들이 많은 곳에서 피아노를 치며 투라이 리 멤버,를 부르는 성시경에게는 당해내지 못한다. 성시경이 눈을 그렇게 감고 피아노를 치며 노래를 부르는 순간 모든 여자들의 마음을 흠뻑 빼앗아버리고 만다. 아무튼.

하지만 어느 시점을 지나고 나서는 하루키는 이제 더 이상 홀리오의 흉 같은 건 보지 않는다. 독자로서 무척 아쉽다. 홀리오도 43년 생이니까 할아버지가 되었다. 하루키도 씩씩거리며 유쾌하지만 누군가의 험담을 늘어놓을 수 없는 나이가 되었다.

그래도 열심히 험담을 늘어놓을 수 있을 때까지 늘어놓아주세요! 이렇게 깜찍하고 발랄한 험담은 세상에 없을 테니까.

#무라카미하루키 #하루키에세이 #작지만확실한행복 #소확행 #나는그인기있다는가수가싫다 #MURAKAMIHARUK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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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루키의 '포트레이트 인 재즈'는 2500원을 더 하면 이만 원이나 한다. 이 책은 하루키의 다른 책에 비해서 좀 비싸다. 하지만 와다 마코토의 그림을 볼 수 있고 하루키의 글까지 있으니 이만 원이 그렇게 비싸게 느껴지지 않는다. 그리고 책 겉표지도 다른 하루키의 에세이집과는 달리 무척 세련됐다. 손으로 만지면 그림이 만져진다.

하루키는 재즈 마니아인 만큼 우리가 모르는 재즈도 좋아하겠지만 이 책에서는 모두가 알만한, 대중적으로 좋아하는 재즈를 보다 쉽게, 보다 친근하게 말하고 있다. 고 생각된다. 음악에 대해서 장황하게 설명하기보다 인간을 주로 말하며 대체로 한 페이지 정도로 짤막하게 소개하기 때문에 지루하지 않다.

처음으로 쳇 베이커에 대해서 이야기한다. 하루키는 쳇 베이커를 제임스 딘을 닮았다고 했다. 얼굴도 그렇고 존재의 카리스마적인 면모나 파멸성도 아주 유사하다고 했다. 하지만 제임스 딘과 달리 쳇 베이커는 그 시대를 살아남았고 그것이 비극이라고 했다.

쳇 베이커의 평전을 읽어보면 알겠지만 쳇 베이커는 어마어마한 양의 약을 했다. 그 양이 아마도 20만 명이 할 만큼의 양일 것이다. 쳇 베이커만큼 약을 많이 한 사람이 그룹 ‘머틀리 크루’의 ‘니키’다. 내 몸에 모든 화학실험을 다 했다고 할 정도로 약물을 많이도 했다.

전기를 읽지 않아도 에단 호크의 ‘본 투 비 블루’를 보면 쳇 베이커에 대해서 잘 알 수 있다. 하루키는 그의 음악에서 청춘의 냄새가 난다고 했다. 그도 그럴 것이 쳇 베이커는 나이가 들었어도 어쩐지 그의 음악에 이끌려 많은 여자들이 그를 사랑했다. 쳇 베이커의 여자 중에서는 친구의 딸도 있었다.

약 때문에 이가 몽땅 빠져서 연주한 곡들을 들어보면 그 힘 빠진 쓸쓸함이 그대로 연주에 묻어 나오기도 한다. 약 때문에 약하디 약한 인간이 되어버린 쳇 베이커. 그는 약물 때문에 정교함을 잃어가지만 대신 개성과 깊이가 생겼다. 

https://youtu.be/UOEIQKczRP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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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루키는 빌리 홀리데이에 대해서 여러 에세이에서 언급을 했다. ‘잡문집‘에서도, ‘그러나 즐겁게 살고 싶다’에서도 또 잡지에도 빌리 홀리데이를 이야기했다. 초반에는 노래보다는 유명세가 먼저 하루키를 강타해서인지 시큰둥했지만, 가수와 팬이 함께 나이가 들어가며 같이 숙성되어 성숙하듯이 하루키는 점점 빌리 홀리데이의 음악에 심취하게 된다.

빌리 홀리데이는 한때 지나치게 신격화되었던 적이 있어서, 나 같은 사람은 약간 짜증이 나 멀리하기도 했지만, 아무래도 좋을 그런 주변적인 일들에서 완전히 벗어나 허심탄회하게 음악 그 자체에 귀를 기울여 보면 역시 진지하게 노래를 듣게 만드는 멋진 가수임을 알 수 있다. 그녀의 노래에는 몸속 깊은 곳에서 자연히 배어 나오는 원액 같은 것이 들어 있어서, 청중들을 압도하고 감싸 안고 도취시키고 완전히 뻗어나가게 한다 – 그러나 즐겁게 살고 싶다 – 빌리 홀리데이에게 바친다, 중에서

그리고 잡문집에서는 빌리 홀리데이에 관한 경험담을 들려준다. 바를 운영할 때 흑인과 그저 친구로 보이는 여자와 함께 와서 늘 빌리 홀리데이의 음악을 신청하다 간 그 사람이 보이지 않고 여자만 와서 빌리 홀리데이의 음악을 그 대신 들어달라고, 그러면서 그 흑인이 음악을 들으며 눈물을 흘리는 모습을 회상한다.

이전의 에세이에서 길게 서술한 것에 비해 이 에세이에서는 아주 짤막하고 간결하고 멋들어지게 빌리 홀리데이에 대해서 이야기한다. 나이가 들어서 들어보니 그녀의 음악이 얼마나 멋진 음악이었는지 알게 되어서 나이가 드는 것도 나쁘지 않다고.

하루키는 빌리 홀리데이의 음악을 ‘치유’가 아닌 ‘용서‘로 보고 있다. 내가 삶을 통해서 또는 쓰는 일을 통해서 지금까지 저질러온 수많은 실수와 상처 입힌 많은 사람들의 마음을, 그녀가 두말없이 고스란히 받아들이고 그것을 한꺼번에 용서해 주고 있는 기분이 든다고 했다.

이제 그만 됐으니까 잊어버려요.라고. 그것은 ‘치유’가 아니다. 나는 절대로 치유되지 않는다. 그것은 무엇으로 치유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다만 용서될 수 있을 뿐이다.

이런 문장을 읽고 있으면 하루키가 신의 영역에 발을 걸치고 있다가 이제는 완전한 인간으로 들어와 버린 기분이다. 약간은 나약해 보일 수 있고 힘이 빠진 것처럼 보이기도 하지만, 그래서 더욱 리얼리티 하고, 강인한 소설가보다 부드러운 시인에 좀 더 가까워진 듯한 느낌이다. 하루키에게 말하고 싶다. 이미 그러고 지내고 있겠지만 너무 애쓰지 않아도 된다. 고. 그리고 치유를 주려고만 하지 말고 이제는 받아도 된다고. 뭐 나 같은 놈이 말한다고 뭐 어찌 될 것은 아니지만. 하하하.


https://youtu.be/hexEUw60a-U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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