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욕 타임스 인터뷰 ‘바이 더 북’


하루키는 ‘직업으로서의 소설가’ 에세이가 이번에 미국에서 출간된 기념으로 뉴욕타임스와 인터뷰를 가졌다. 여러 인터뷰가 오고 갔는데 몇 가지를 소개해 본다.


하루키는 마지막으로 읽은 좋은 책으로 피츠제럴드의 ‘마지막 대군’이라고 했다. 이 소설은 하루키가 일본어로 번역한 책이 올해 초에 출간도 되었다.


번역을 하면서 이 소설이 새삼 얼마나 놀라운지 다시 한번 알게 되었다고 했다. 하루키는 헤밍웨이보다 피츠제럴드를 작가로서 더 좋아한다. 고 생각한다.


헤밍웨이가 더 뛰어난 문장을 지녔을지 몰라도 작가로서 죽을 때까지 펜을 놓지 않고 성장하고 발전하고 자신의 고통을 깨물면서 마지막까지 글을 쓴 피츠제럴드에게 애정을 쏟아 냈다.


헤밍웨이는 노인과 바다에서도 말했듯이 ‘인간은 파괴될 수 있지만 패배하지는 않는다’고 했는데 결국 자신이 패배했다고 느꼈던 건지 총구를 자신의 머리에 대고 방아쇠를 당겼다.


그에 비해 나락으로 떨어질 때까지 떨어졌지만 마지막까지 펜을 잡고 글을 쓰다 죽은 피츠제럴드에게 한껏 애정을 쏟고 있음을 그간의 많은 에세이에서 크고 작게 언급을 했다.


또 하루키는 인터뷰에서 최근 들어 처음으로 읽은 고전 소설은 도스토옙의 ‘A Raw Yuth’라고 했고 아직 읽어 보지 않은 그의 작품이 몇 더 있고, 발자크도 그렇다고 했다. 커피 중독자 발자크는 김영하도, 천문학자 심채경도 아주 좋아한다. 그런 것 같다.


하루키는 또 그리스에 있을 때, 햇볕이 잘 드는 테라스에서 동네 고양이를 쓰다듬으며 존 파울즈의 ’The Magus’를 읽었을 때가 가장 마음에 드는 독서 경험이라고 했다. 그때 살았던 섬이 하루키의 소설의 배경이 되기도 해서 더 기억에 남는다고 했다.


하루키는 레이먼드 챈들러의 모든 소설을 번역했고, 레이먼드 카버는 모든 작품 - 단편, 시, 에세이 전부를 번역했지만 헤밍웨이의 소설은 한 편도 번역하지 않았다고 했다. 그러면서 그들의 작품에 대해서, 또 원작자의 글을 접하며 느끼는 것들에 대해서 이야기를 했다.


그 외 여러 인터뷰가 오고 갔다. 재미있는 건 레코드 컬렉션은 신중하고 정성을 다해서 정리를 하지만 책은 마구잡이로 쌓아두는 편이라, 문득 찾고 싶은 책이 있다면 그 책을 찾는데 시간이 꽤 걸린다고 한다. 그러다가 어떤 책은 결국 찾지 못하고 포기하기도 한단다. 여기까지가 인터뷰의 소소한 소식이다. 


하루키는 헤밍웨이 보다는 피츠 제럴드를 훨씬 좋아한다. 후에 그의 손녀인가, 딸인가? 와 인터뷰를 하기도 했고, 또 그 일화를 에세이에 올리기도 했다. 하루키는 자신의 에세이에서 ‘위대한 개츠비’를 세 번 읽은 사람과는 친구를 해도 된다고 할 만큼 그 소설을 끔찍이도 좋아한다. 그건 아마 김영하 소설가도 그럴 것이다. 저짝 일본에는 하루키가 번역을, 우리는 김영하 소설가가 번역을 했다. 이 소설로 인해 풍부한 직유의 사용으로 문장이 한껏 아름다워졌다고 한다.


나는 사실 위대한 개츠비는 그렇게 재미있는지 잘 모르겠다. 그래서 한 번 달랑 읽었다. 그러니 나 같은 놈과는 친구가 되지 않는 편이 좋겠지요. 위대한 개츠비라는 소설보다는 피츠 제럴드의 이야기가 훨씬 좋았다.


피츠 제럴드는 위대한 개츠비를 통해 자신을, 자아를 반으로 나누었다고 생각된다. 반은 데이지를 얻기 위해 모든 것을 포기해 버린, 오직 의지만을 지니는 개츠비의 모습과 나머지 반은 그 모습을 멍하게 바라보는 닉의 모습으로 말이다.


위대한 개츠비를 읽어보면 제일 첫 장에 ‘다시 젤다에게’로 포문을 연다. 1920년대 피츠제럴드는 미국이 가장 사랑하는 글쟁이였다. 출판사들은 그의 글을 내고 싶어 안달복달했다. 피츠제럴드는 그런 미국인들의 기대를 충족시켜 주었다.


피츠제럴드는 생긴 것도 아주 잘 생겼다. 육군 소위로 장교복을 입고 있는 피츠제럴드의 외모는 누구나 반할 만큼 멋있었다. 영화 속 디캐프리오의 개츠비가 데이지를 처음 만났을 때처럼 말이다. 하지만 1차 대전이 끝나고 군복을 벗어버리자 피츠제럴드는 한낱 볼품없는 청년의 모습과 같았다.


광고 회사를 다니면서 소설가의 꿈을 키웠다. 그는 프린스턴 대학을 성적 하락으로 중퇴를 하고 광고 문구를 만들면서 꾸준하게 소설을 썼다. 하지만 그의 글은 출판사에서 언제나 퇴짜를 맞았다. 그런 생활을 하던 그의 눈앞에 일생에 한번 사랑에 빠질만한 여자가 나타났으니, 그 여자가 바로 조지아 주와 앨라배마 주에서 가장 미인이었던 ‘젤다 세이’였다.


젤다는 발랄했고 기가 세고 승부욕이 강했다. 그리고 무엇보다 예. 뻤. 다. 젤다도 피츠제럴드를 사랑했지만 가난한 남자와 사는 것은 그녀가 원하는 사람이 아니었다. 그녀는 명문가 집안의 딸로 부족함 없이 자랐고 원하는 것은 가질 수 있는 여자였다. 그런 젤다는 가난한 삶을 사느니 죽는 게 낫다고 생각했다.


위대한 개츠비의 데이지는 젤다의 모습을 그대로 빼닮았다. 피츠제럴드가 그녀를 얻을 수 있는 방법은 오직 글밖에 없었다. 젤다는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여자였다. 그런 그녀를 손에 넣기 위해서 피츠제럴드는 세상이 놀랄만한 글을 써야 했다.


피츠제럴드는 다른 건 눈에 들어오지 않았다. 오로지 젤다를 얻기 위해 피츠제럴드는 글을 썼다. 젤다는 피츠제럴드를 사랑했지만 별 볼 일 없는 피츠제럴드와의 약혼을 파기한다. 그만큼 젤다는 냉정하고 현실에 가까운 여자였다. 피츠제럴드는 마음이 아팠고 그녀가 자신의 곁을 떠나가는 두려움에 무서웠을 것이다. 사랑하는 여자가 바로 앞에 있는데 가난 때문에 헤어져야 한다니. 피츠제럴드는 그래서 죽어라 글을 썼다.


압박감에 글을 써야 하는 피츠제럴드의 기분은 어땠을까. 출판사에서 갈구하는 기분 좋은 압박감도 아니며 대중이 원하는 비바람 같은 압박감도 아니었다. 그것은 오직 자신이 자신에게 바늘로 찌르는 압박감 같은 것이었을 것이다.


세상 사람들은 자기 자신은 싸워서 이겨야 하고 넘어야 하는 존재로 말을 많이 한다. 자아라고 하는 것은 정말 그렇게 이겨야 넘어야 하는 존재일까. 자신은 자신의 에고를 보듬어 주고 사랑해주면 우리가 원하는 곳에 도달하지 못하는 것일까.


고통 끝에 펴낸 자신의 첫 소설 ‘This side of paradise’ 덕분에 젤다가 출판 일주일 후에 자신의 품으로 돌아온다. 그리고 위대한 소설 ‘위대한 개츠비’를 펴낸다. 당시 피츠제럴드는 ’위대한 개츠비‘의 제목이 원래 ' 개츠비'였는데 '위대한'을 삽입하는 것을 못마땅하게 생각했다. 하지만 젤다와 출판사의 권유로 '위대한'을 넣을 수밖에 없었다.


무엇 하나 피츠제럴드는 자신의 뜻대로 되는 것이 없다고 느꼈을 것이다. 하지만 젤다가 옆에 있기에 행복하다고 믿고 있었다. 아마도 굳게, 무엇보다 사랑하는 젤다의 얼굴을 매일 바라볼 수 있다는 것에 모든 것을 걸어도 좋다고 생각하지 않았을까. 마치 데이지를 바라보는 개츠비처럼 말이다.


그렇게 펴낸 ‘위대한 개츠비’는 실패에 가까웠다. 팔리지 않았다. 피츠제럴드는 경제적 궁핍 속에 시달려야 했지만 2차 대전을 치르는 과정에서 군인들이 위대한 개츠비를 읽기 시작했다. 그러면서 붐이 일어났다. 바로 군인들 자신의 모습이 개츠비에 투사되었기 때문이었다. 1925년에 2만 부에 거친 책은 군인들 덕분에 15만 부가 넘어 팔리게 된다. 비평가들은 개츠비에 대해서 호평을 쏟아내기 시작했고 50년대의 미국에 있는 고교에서는 필독 독서로 자리를 잡았고 이후 전 세계가 사랑하는 베스트셀러가 되었다.


피츠제럴드는 이제 부러울 것 없는 생활과 젤다를 완전히 자신의 여자로 만들 수 있었다. 그 점화가 된 글이 바로 위대한 개츠비였다. 피츠제럴드는 젤다가 원하는 파티를 매일 열었고 지폐에 불을 붙여 담배를 피우기도 했다. 젤다가 원하면 그는 다 들어주었다. 매일 파티를 즐기고 술을 마셨다. 그렇게 하지 않으면 젤다가 떠나갈 것이기 때문에 두려웠을 것이다.


젤다와 피츠제럴드가 위대한 개츠비로 성공을 거두자 두 사람은 명실 상부한 뉴욕의 셀러브리티 커플로 알려진다. 톡톡 튀고 독립심이 강하고 예술과 문화를 사랑하고 무엇보다 예쁘고 아름다운 그녀를 당시의 미디어와 사람들은 추앙했고 사랑했다.


그녀는 자신의 그런 삶을 더욱 사랑했고 옆에는 당대 최고의 소설가가 늘 지켜봐 주었다. 도취될 수밖에 없었다. 거울을 들여다보면 아름다운 여자가 늘 웃고 있었다. 부족함이 없었다. 자신의 모습에 스스로가 빠져 들었고 연일 열리는 파티에 참석하여 술과 문학과 재즈를 즐겼다. 주위에는 돈이 흘러넘쳤고 옆에는 명성이 있는 자신의 남편, 피츠제럴드가 있었다.


영원할 것만 같았다.

자신의 아름다움이.

이 모든 생활이.


파티가 지속되고 개츠비 이후에 개츠비만한 글이 나오지 않는 것에 안타까움을 느낀 사람이 피츠제럴드의 절친, 어니스트 헤밍웨이였다. 헤밍웨이는 파리의 한 파티가 열리는 곳으로 피츠제럴드를 찾아간다. 사람들에게 둘러싸여 술잔을 한 손에 뒤고 상류층의 복장을 하고 포마드로 단정하게 머리를 넘긴 피츠제럴드를 찾은 헤밍웨이는 그가 있는 곳으로 갔다.


이봐 스콧. 요즘 괜찮은가? 이건 너무 심하지 않은가?

이보게 어니스트. 잘 보게. 이것이 삶이라네. 더 이상 무엇이 있겠는가? 자 한잔하고 가게나.


아마도 이런 대화가 오고 갔을 것이다. 이런 장면은 영화 ‘미드나잇 인 파리’를 보면 잘 나온다. 피츠제럴드는 헤밍웨이가 왔음에도 예전 같지 않았다. 변해있었던 것이다. 헤밍웨이는 후에 그가 이렇게 망가진 것은 그의 옆에 있는 젤다 때문이라고 했다. 그녀가 그를 망치고 있는 것이다.


그렇지만 피츠제럴드는 그녀를 사랑했고 그녀가 원하는 것은 모든 들어주고 싶었다. 피츠제럴드와 젤다는 돈을 물 쓰듯 썼다. 술을 마시면 언제나 만취였고 호텔의 분수에 뛰어들었고 신문의 일 면을 장식했다. 연일 열리는 파티와 파티 사이에 천재적으로 써 내려간 단편은 거액으로 출판사에 팔려 나갔다. 피츠 제럴드의 이 모든 행동과 삶은 오로지 젤다를 위한 것이었다.


우리는 젤다와 개츠비 속의 데이지를 욕하지만 젤다는 피츠제럴드의 한없는 사랑을 받았다. 그의 눈과 촉은 젤다를 향해 있었고 그녀가 움직이면 그의 촉도 같이 따라 움직였다. 그녀가 먹고 싶은 것이 있으면 세 시간이 걸리는 곳도 마다하지 않았을 것이며 그녀가 바라는 옷이 있다면 어떻게든 구해서 선물했을 것이다. 투정을 부리면 받아줬을 것이고 눈물을 흘리면 안아줬고 매일 밤마다 그녀의 귀에 사랑을 속삭였을 것이다.


젤다의 사진을 보면 헤어스타일이 독특했고 의상도 화려했다. 당시에 가장 핫한 인물임을 나타낸다. 요즘도 하기 힘든 머릿결의 웨이브라든가 스타일은 당시 최고였고, 피츠제럴드의 열렬한 응원을 받고 있었다. 부족함 없이 돈을 쓸 수 있었다. 여자라면 누구나 원하고 바라는 삶일지도 모른다.


부족한 것 없는 집안에서 철없이 자란 여자를 대부분의 사람들은 욕하지만 죽을 때까지 철없이 살아갈 수 있다면 그것대로 꽤 멋지고 괜찮은 삶일 것이다.


모든 사람들이 많은 돈을 거머쥐며 부족함 없이 살기를 원하며 자식에게는 좀 더 나은, 보다 좋은 환경을 제공해 주고 싶어 한다. 그런 면에서 본다면 현실적인 젤다와 데이지에게 욕만 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젤다와 피츠제럴드의 방탕하고 호화로운 생활은 십 년 만에 비극을 맞이한다. 미국은 29년에 대공황을 맞이하게 된다. 피츠제럴드의 소설도 파국을 맞이하며 끝을 맺게 된다. 대신 미국의 문학적인 영웅을 새롭게 맞이하게 되는데 그가 바로 ‘어니스트 헤밍웨이’였다.


문학의 사조가 바뀌었고 피트제럴드의 글은 이제 더 이상 사람들의 관심에서 멀어지게 되었다. 그렇지만 헤밍웨이가 글을 통해서 구원을 받지 못했다며 총구를 입에 대고 방아쇠를 당긴 것에 비한다면 피츠제럴드는 어두운 곳에서 죽을 때까지 글을 썼다. 하루키는 이 부분을 몹시 높이 사고 있다. 그런 부분에 있어서 피츠제럴드는 진정한 글쟁이가 아닐까 싶다.


젤다는 몰락한 이후 자신의 퇴락해가는 모습에서 우울증에 시달렸다. 상승이 있으면 반드시 내리막길이 있는 법이다. 거울에 비친 자신의 모습은 더 이상 아름다운 젤다의 모습이 아니었다. 얼굴에는 알코올 중독자의 모습이 보였고 머리카락은 힘이 없어서 더 이상 이전처럼 예쁘게 말리지도 않았다.


늙어가고 힘 빠진 모습에서 우울해지는 여자가 어디 젤다뿐이겠는가. 사람들은 아름답게 늙어가기를 바라지만 ‘늙다’라는 동사에 가장 어울리지 않는 형용사가 ‘아름다운’ 일지도 모른다. 그래서 여자가 나이가 들었다고 해서 예쁘게 나이를 먹었네, 곱게 늙었네, 같은 말을 하지 말고 ‘늙었네’와 ‘나이 먹었네’를 빼야 한다.


젤다는 문학에 관심이 많은 실력을 살려 책도 펴냈지만 출판사는 다른 곳만 쳐다볼 뿐이었다. 젤다가 우울증으로 정신과 상담을 받는 과정을 피츠제럴드가 소설에 그대로 사용하고, 그 사실로 인해 젤다의 병은 더욱 깊어지게 되었다.


가장 사랑하는 사람에게 가장 깊은 배신감을 받았다. 젤다의 일기와 편지들은 피츠제럴드의 소설 속에 그대로 남아있을 뿐, 젤다의 이름으로 세상에 나온 것은 단 하나도 없었다. 그녀의 결락과 우울은 너무나 깊고 컸다. 자신을 추앙했던 사람들이 길거리를 지나가면 수군거렸고 손가락 짓을 했다.


저기 젤다가 지나가!

저 여자 매일 밤새도록 남자들에게 둘러싸여 술을 진탕 마시고 담배도 지폐에 불을 붙여 피웠대!

그 돈으로 불쌍한 사람들 좀 도와주지 말이야!

이젠 볼품없는 얼굴이 되었군!

남편의 글도 이젠 한물갔대 나 봐!

남편은 젤다의 퇴락해가는 이야기를 소설에 섰대! 불쌍하구만!


이런 수군거림을 젤다는 들어야 했을지도 모른다. 그녀는 사람들의 눈에 띄지 않기 위해 자신의 얼굴을 가리고 정신병원으로 땅만 보며 걸어갔을지도 모른다. 사람들의 시선을 견디기 어려웠을 것이다. 사람들은 자신들과 다르면 무섭도록 잔인해진다.


부흥기가 있었지만 젤다가 피츠제럴드를 만나지 않았다면 어떻게 되었을까. 데이지처럼 톰 뷰캐넌 같은 남편을 만나서 만족하지 못하는 삶을 살더라도 수면 위에서 평탄하게 살아갔을까. 1940년에 피츠제럴드가 죽고 정신병원을 오가던 젤다는 아주 비참하게 죽음을 맞이한다. 정신병원의 화재로 인해 3월의 봄날에 그녀는 자신의 남편 곁으로 가버린다.


영화 ‘위대한 개츠비’에서 개츠비는 그린라이트를 바라보며 데이지를 생각한다. 5년 만에 나타난 개츠비는 멋있고 유능한 갑부의 모습을 하고 있다. 개츠비는 5년 만에 성공의 가도에 올랐지만 그 5년 동안 어떠한 일이 있었을까.


피츠제럴드는 개츠비가 자신을 투자한 5년을 어떤 식으로 투사했을까. 무일푼이었던 인간이 5년 만에 성공을 한다는 것은 어떤 의미를 지니고 있는 것일까. 개츠비는 5년 동안 상상하지 못한 일들을 했을 것이다. 오로지 데이지를 만나기 위해서 개츠비는 어떤 부분에서는 서슴없이 행동했을 일들.


데이지를 사랑하는 자신처럼, 데이지 역시 자신을 자신만큼 사랑하리라는 것을 믿어 의심치 않았던 개츠비. 개츠비는 5년 동안 겪은 일들로 인해 자신의 앞을 막는 것을 광기로 밀어 버린다. 방해가 되는 것이 그 무엇이 되었든 간에.


5년 동안 개츠비의 머릿속에는 사랑을 속삭였던 데이지의 모습만이 가득했을 것이다. 마지막에 개츠비는 데이지가 오지 않을 것이라는 걸 안다. 그러면서도 개츠비는 처절하게 데이지를 기다린다. 마지막 수영장에서 비참하게 죽어가는 휑한 모습이 마치 어셔가의 몰락의 첫 장면을 떠올릴 만큼 황망하다.


개츠비는 데이지에게 받은 편지와 사진을 앨범 속에 포트폴리오로 소중하게 간직했다. 그런 모든 모습을 꾸준하게 바라보는 이, 개츠비의 유일한 친구 닉 캐러웨이가 있었다. 닉은 마지막에 타이핑 한 개츠비라는 글자 위에 손글씨로 ‘위대한’을 썼다. 그곳엔 스콧 피츠제럴드의 모습이 있었다.


지금 현실이 아름다워도 늘 불만스럽다. 현재라는 것이 그렇다. 만족을 하지 못한다. 지금 우리의 이 별 볼일 없는 모습도 과거가 되고 먼 미래에서 우리를 본다면 신비롭고 아름다운 모습일까.


댓글(0) 먼댓글(0) 좋아요(7)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하루키는 에세이에서 호밀밭의 파수꾼을 언급한 부분이 있다. 에세이에도 말하지만(맨 밑의 사진) 호밀밭의 파수꾼은 빙 크로스비의 화이트 크리스마스 앨범과 맞먹을 정도로 무지하게 팔렸다.


이만큼이나 사람들이 이 소설을 읽는 이유는 아직 아이 같은 마음이 강하게 남은 사람들이 많아서일지도 모른다. 홀든 녀석의 욕설을 듣고 있으면 그 녀석의 행동에 이입이 되어 버리고 마는 마법에 빠져든다.


샐린저는 이 소설을 적을 때 마치 정신이 나간 놈처럼 소설을 쓴 것으로 유명하다. 군인으로 2차 대전에도 참전했는데 막사가 폭격을 맞아서 허물어지는데도 책상 밑에서 타자기로 홀든 녀석의 이야기를 적고 있었다.


이 같은 샐린저의 일대기는 니콜라스 홀트가 샐린저로 분한 영화 ‘호밀밭의 반항아’를 보면 잘 나온다. 무척 재미있다. 샐린저가 왜 홀든 콜필드 녀석의 이야기에 빠져 드는지, 어째서 샐린저는 그 고독으로 들어갈 수밖에 없는 이유 같은 걸 니콜라스 홀트가 연기를 아주 잘했다. 영화는 실제 이야기와는 조금 다르게 각색되었다.

"제리, 거절에 익숙해져야 한다!"


그리고 또 다른 걸 쓰고 또 거절을 당하고 그다음 또 다른 거, 거절, 또 다른 거, 안타깝게도,라는 거절의 편지. 샐린저는 출판을 하고 싶지만 출판사에 끊임없이 거절을 당하고 교수(캐빈 스페이시)는 왜 글이 쓰고 싶냐고 묻는다. 제리는 화가 나는 일이 많은데 글을 쓰면 그것이 풀린다고 한다. 그리고 교수는 그걸 글에 녹아내라고 한다. 그리고 가장 중요한 것을 이야기한다.


평생 출판을 못 할 수도 있다.

영원히 출판을 하지 못하게 되더라도,

자신에게 물어봐,

아무것도 보상받지 못할지라도 평생을 글 쓰는 데에 바칠 수 있느냐,

아니다 싶으면 밖으로 나가서 먹고 살 딴 방법을 찾아봐야 한다.

왜냐면 진정한 작가가 아니니까


샐린저는 전쟁에 차출되어 나가게 되어서도 홀든을 생각했다. ‘솔직히 말하자면 홀든 덕분에 힘든 시기를 이겨내고 있었다, 글 쓸 때 가장 좋은 점 중에 하나가 그거다, 마음은 계속 이야기를 써 나간다는 점이다, 손에 펜이 들렸던 총이 들렸던 창작은 결코 멈추지 않는다’ 샐린저는 장편을 쓰기 위해 막사에서도 훈련을 받으면서도 홀든을 썼다.


샐린저는 전투에 참전하게 되고 거기서 포탄으로 전우의 다리가 떨어져 나가는 끔찍한 장면을 목격한다.

제리 제발 날 죽여줘, 샐린저는 그 악몽 같은 시간을 홀든을 생각하며 보낸다.

‘계속 쓰기 위해 별짓을 다했다. 정말이다. 펜도 타자기도 없었지만 상관없었다. 홀든 이야기를 계속해나갔다. 비록  혼잣말이라도’

추위에 양말을 챙겨주던 친구는 동사하고 샐린저는 점점 홀든과 자신의 경계가 모호해지기 시작한다.


홀든 콜필드는 반 정도 쓰고 못 쓰게 된다.

제대를 한 후 교수를 만나서 이제 쓰지 않기로 했다고 한다.

왜?

지워버리고 싶은 기억들을 되살려서요.


이미 샐린저는 홀든이 소설 속의 주인공이 아니라 이미 현실의 한 사람처럼 되어 버렸던 것이다.


유대인의 학살

나치를 잡는 순간

고문

다리가 잘린 전우

얼어 죽은 친구

무엇보다 실수로 그 지점에 늦게 도착하여 혼자만 살아난 샐린저.


영화는 제리가 호밀밭의 파수꾼, 홀든 콜필드의 이야기가 어떻게 탄생하는지에 대한 비화와 홀든 콜필드의 출간 이후 샐린저가 겪은 변화를 보여준다. 재미있다. 여담이지만 니콜라스 홀트는 또 반지의 제왕의 원작자 톨킨의 학창 시절의 이야기도 주연을 맡아서 했다. 뭔가 작가들의 내면을 니콜라스 홀트가 연기를 잘하는 모양이다. 이 영화보다는 샐린저를 연기한 호밀밭의 반항아가 더 좋았다 개인적으로.


'호밀밭의 파수꾼'은 존 레논을 죽인 마크의 손에도 들려 있었고, 멜 깁슨과 줄리아 로버츠의 ‘컨스피러시’에서 멜 깁슨의 집 책장에는 호밀밭의 파수꾼만 가득 꽂혀 있다. 이 영화는 지금 보면 촌스럽지만 영화학도들은 반드시 보고 연구를 하는 영화로 알려져 있다. 이 영화를 관통하는 것에 샐린저의 이 소설이 있다.


하루키의 이 에세이의 이 부분은(밑의 사진) 영어의 번역이나 해석에 관해서 말하고 있다. 책에도 나오지만 소설 속에는 270개의 ‘제기랄’과 58개의 ‘사생아’가 나오지만 ‘성교’나 ‘똥’은 0개로 나와있다고 하는데, 에세이에서도 말하지만 샐린저의 이 소설은 50년대에 가장 ‘지저분한 문체’를 이유로 박해당한 걸 보면 순 개 뻥 같은 이야기다.


요컨대 비틀스의 ‘노르지안느 우드’는 영국에서는 노르웨이산 가구라고 받아들이지만 미국에서는 노르웨이 숲이라고 받아들인다. 그렇다면 한국은? 한국은 그저 하루키의 소설쯤으로 받아들이지 않을까 싶다.


욕이 난무한다고 해서 저질이나 저급은 아니다. 욕이 적절하게 들어가서 이야기를 살리는 현상을 우리는 영화에서 많이 봤다. 어쨌거나 한국에서만 제목을 호밀밭의 파수꾼으로 불리고 있다. 여러 나라에서는 제목이 다 다르다.


이탈리아: 한 남자의 인생

일본: 인생의 위험한 순간들

노르웨이: 모두들 자신을 위해 그리고 악마는 최후 순간을 취한다

스웨덴: 기억의 순간에 나타나는 구원자

덴마트: 추방당한 젊은이

독일: 호밀밭의 남자

네덜란드: 사춘기


사람들과 제목을 왜 그렇게 했을까 하며 이야기를 해도 꽤나 재미있는 이야기가 나온다. 소설 속에는 12월을 마녀의 젖꼭지처럼 춥다고 할 정도로 멋지고 좋은 문장이 많은데 나는 이 문장이 참 좋았다. 그 장면 속에 들어와 있는 기분이 든다.


난 하품했다.

이 방에 들어온 이후로 멈추질 않는다.

이 방이 지나치게 따뜻했기 때문이다.

사람들을 졸리게 만드는 것이다.


하루키는 이 소설을 번역하여 일본에 출판하면서 “꽤나 이상한 소설이에요. 잊을 수가 없었어요”라고 했다.

하루키의 에세이 중



댓글(0) 먼댓글(0) 좋아요(9)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양을 쫓는 모험’ 2편 격인 ‘댄스 댄스 댄스’에 나오는 유키의 엄마는 세계적인 사진작가로 나온다. 그녀는 사진에 몸과 영혼을 팔아버린 여자다. 나는 아직 세계적인 사진작가는 만나보지 못했다. 세계적인 사진작가는 유진 스미스처럼 대체로 히스테릭할까. 생각해보면 ‘세계적인’이 타이틀에 붙으려면 히스테릭하지 않으면 힘든 것 같다.


허허실실 해서는 사람들의 관심을 물리칠 수 없다. 유명인에게 공격하는 대상에게는 그에 응당한 대처를 확실하게 할 수 있는데 어설프게 친절을 베풀며 다가오는 사람들은 애매하다. 그러려면 자기만의 리추얼을 만들어야 할 것 같다.


유명인들을 만나보지 않았으니 알 수는 없다. 만나본다고 해서 또 다 알 수도 없다. 가족과 매일 만나도 가족을 제일 잘 모르는 사람이 가족일 수 있다.


유키의 엄마는 세계적인 사진작가로 잘 나갔던 소설가 마키무라 히라쿠(흥, 어쩐지 하루키를 말하는 거 같지만 소설 속 소설가 마키무라는 처녀작을 낸 후 퇴물에 가까워졌다. 그러나 하나뿐인 딸을 사랑한다. 아마도 하루키는 모든 소설에 유키, 메리, 마리, 에리, 후카에리 등 여자 아이들이 나오는 걸로 보아 하루키는 딸을 가지고 싶어 했던 걸로)를 만나 유키를 낳았지만 제대로 돌보지 않아 유키는 이미 어리지만 밉지 않은 어른 같은 아이가 되어 버린다.


유키의 엄마는 사진에 빠져서, 오늘 이것을 해야 하지만 그전에 사진을 담아야 하는 문제가 그녀 앞에 놓으면 모든 걸 내팽개치고 사진을 촬영하러, 사진 작업을 하러 가버리고 만다.


자신의 딸, 유키마저 내버려 둔 채. 덕분에 주인공은 유키와 친하게 되지만.


하루키는 이런 사진작가의 모델을 누굴 보고 유키의 엄마 캐릭터를 만들었을까 하며 생각하게 된다. 이런 캐릭터는 제목이 기억이 나지 않지만 단편에도 등장한다. 그림을 그리는 화가가 먹고살기 위해서 그린 한 장의 그림에 대한 이야기를 다룬 단편이 있다. 그리고 후에 장편소설 ‘기사단장 죽이기’에서 전면에 드러나지 않지만 시대의 화가 아마다 도모히코의 캐릭터로 발전이 되었다. ‘댄스 댄스 댄스’에서 외팔이 남자와 함께 가끔씩 드러나는 유키의 엄마에 비해 도모히코는 전면에 드러나지 않는다.


이복 오빠들에게 성폭행을 당하고 평생 남성 혐오증을 앓고 있다가 사랑하는 남편을 위해 자살한 버지니아 울프를 모델로 삼았을까? 하는 생각이 들다가도 아무래도 사진작가를 모델로 했겠지. 여류 사진작가 말이다. 메리 엘렌 마크를 본떠 유키의 엄마 캐릭터를 만든 것이다. 그녀의 소설 속 행보가 메리 엘렌 마크와 흡사해 보인다.


하지만 유키의 엄마가 어떤 사진을 담았는지 기억이 나지 않는다. 메리 엘런 마크는 현실에서 살짝 비켜간 사람들을 담았다. 그런 사람들을 담으려면 피사체에 다가가야 한다. 멀리서 줌 렌즈로 잠아 당겨서 찍는 것은 의미가 없고 작가 입장에서 자존심이 허락을 하지 않는다. 그러니까 온 마음과 몸을 다해서 피사체에 가까이 가려는 노력을 기울여야 하기 때문에 다른 것은 눈에 들어오지 않는다. 비록 소중한 사람들일지라도.


‘댄스 댄스 댄스’를 읽다 보면 그것이 마냥 궁금해진다. 그러다가 문득 아! 하루키 아내가 사진작가이지. 그러고 보면 하루키는 안 그런 척하지만 소설 속에 자신의 주위 사람들을 캐릭터로 등장시키는 일이 많다. 소설 속에 자주 등장하는 ‘와타나베 노보루’라는 이름은 ‘안자이 미즈마루’ 씨의 본명이고, 세계적인 사진작가인 유키의 엄마는 자신의 아내, ‘해변의 카프카’의 고양이 고마 녀석은 키웠던 고양이, 유키나 메이 또 ‘어둠의 저편’의 ‘아사히 메리’나 ‘아사히 에리’ 자매는 하루키가 늘 꿈꾸던 자신의 딸의 모습이 아닐까 하며 생각해본다. 위에서 말한 것처럼.


자식이 없는 하루키는 소설 속에서 아들보다는 딸을 조금씩 키워가는 것이다. 그리고 ‘스푸트니크의 연인’에서 어린 시절의 스미레가 잃어버린 고양이의 추억은 하루키가 아버지와 함께 처음으로 고양이를 버리러 갔을 때의 그 시절을 떠올리게 한다.


초기의 하루키 에세이에 사진이 많은 건 세계를 같이 돌아다닌 아내가 찍은 사진 덕분이다. 사진에 대한 해박한 지식도 소설 적으로 살짝 돌려서 말할 수 있는 건 역시 아내 덕분일지도 모른다. 그러다 터키 지역의 위험한 곳을 돌며 사진을 찍고 글을 쓸 때에는 잡지사 사진작가와 함께 하면서 이후 아내의 사진이 덜 사용된 걸로 안다.


요컨대 ‘태엽 감는 새’에 나오는 전쟁터의 흔적을 따라 취재를 할 때에는 너무 힘드니까 아무래도 여자인 아내, 요코 씨가 험난한 곳을 따라다니기가 어려웠을 것이다. 하루키는 아이가 없기 때문일지 몰라도 늘 아내와 함께 다니며 함께 무엇을 하기를 바라는 것 같이 보인다. 실제는 어떨지 몰라도. 그렇게 한 번 세워놓은 리추얼은 세월이 흐르면서 어떤 방해에도 꽤 굳건해졌다.


어떤 에세이에는 출판사의 누군가가 집으로 와서 차를 내오는 동안 아내의 손금을 봐주고 있었는데 그게 질투가 나고 싫다는 말을 하루키 식으로 에둘러해 놨다. 하루키는 대체로 아내의 언급이 잘 없지만 초기 에세이에는 여행 중에 아내와의 일화를 많이 적어 놨다.


‘먼 북소리’에도 잘 나오지만 국경을 넘어 먼 곳까지 부웅 어렵게 차를 몰고 오는데 내내 기분이 이상하더니 여권을 묵었던 호텔이 두고 나와서 다시 가지러 가면서의 아내와의 일화 같은 것들이 꽤 있다.


‘댄스 댄스 댄스’의 유키의 엄마는 괴짜다. 유키의 엄마는 세계적인 사진작가다. 세계적인 사진가 중에는 괴짜가 많다. 로베르 두아노도 그렇다. 피카소의 친구인 그는 피카소의 모습도 사진으로 많이 담았는데 피카소 역시 괴짜가 아닌가. 웃음이 픽 터지는 사진들이 있다. 우리나라로 유명한 사진가로는 김중만이 그렇고 일전에 미투에 걸려버린 소나무의 대가 배병우도 그렇다.


배병우의 소나무 사진은 뉴욕 컬렉션에서 엘튼 존이 사진 한 장에 몇 천만 원을 주고 구입하기도 했다. 젊은 시절부터 매년 그 달 그날이 되면 경주에 가서 소나무를 찍는 것이다. 그러다 보면 십 년 전의 소나무, 오 년 전의 소나무가 하나의 기록이 되어 버린다. 이렇게 되기까지 아내와의 이혼, 빚더미 등 풍파를 겪지만 소나무 사진에 미쳐 있으니 말릴 수가 없는 것이다.


일본으로 가면 더 하다. 노부요시 할아버지가 그렇지, 셀 수도 없다. 유키의 엄마도 그렇다. 따지고 보면 유키가 제일 괴짜다. 꼬마 주제에 팝은 왜 그리도 잘 알고 있는지. 그러고 보면 고탄다도 주인공도 괴짜가 아닌 게 없다. 안 괴짜가 없는 것이다. 하루키는 그렇게 괴짜가 아닌 것 같은데 괴짜들의 이야기를 적었다. 그렇게 잘 적는 걸 보면 역시 하루키도 괴짜다. 결국 ‘양을 쫓는 모험’에 대한 이야기는 하나도 못했다.


양. 쫓. 모를 여러 번 읽었다. 비록 읽고 돌아서면 까먹지만 꽤 많이 읽어 버렸다.


그럼 오늘은 소설 속에 나온 음악 엘라 피츠 제럴드의 Air Mail Special https://youtu.be/rN0ww1OzEoY  영상: Kenobis Babe


댓글(0) 먼댓글(0) 좋아요(6)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두 사람의 만남을 합성해봄 ㅋㅋ



무라카미 라디오 43회에서는 패티 스미스의 노래도 하루키가 들려준다. 제목은 ‘Rock N Roll N Nigger’이다. 최근 애플뮤직에서 이 노래는 삭제가 되었다고 한다. 바로 제목의 니거와 내용 때문이다.


패티 스미스는 지금은 할머니가 되었지만 아무리 봐도 할머니처럼 보이지 않는 이유는 패티 스미스가 부른 노래가 나이를 먹지 않고 있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그녀의 무대 위 광기 어린 퍼포먼스, 그녀의 목소리, 그녀의 글이 나이를 전혀 먹지 않고 있다.


지금까지 언더에서 활동하는 수많은 밴드들이 자유를 갈망하고 울부짖으며 공연을 하고 몸부림을 보여주는데 패티 스미스의 모습이 나타난다. 그건 어떻게 생각을 해도 몹시 신기한 일이다. 패티 스미스가 멋있다는 말을 어떤 식으로 받아들여야 하면 스타일이 확고하다는 것이다. 그 확고함이 독보적이라는 것에 있다고 생각한다.


일단 패티 스미스의 움직임 하나하나가 많은 사람들에게 찌리릿 정신적 영향을 줘버린다. 어어? 하는 와중에 그녀의 노래와 몸짓 그리고 글에 빠져들고 만다. 만약 28살에 요절한 제니스 조플린이 살아 있었다면 우리는, 전 세계는 패티 스미스와 함께 나란히 덱체어 같은 곳에 앉아서 지는 노을을 보며 독한 위스키를 홀짝이며 독창적인 그녀들의 목소리로 예전에 라떼는 말이야, 하며 이야기하는 모습을 봤을지도 모른다.


제니스 조플린이 살아 있었다면 지구의 반은 이쪽에서 조플린의 주렁주렁 쇠 갈리는 목소리의 공연을 미친 듯이 볼 것이고, 또 다른 지구의 반은 하얗게 변한 길고 긴 머리를 늘어트린 패티 스미스의 흐느적 몸짓과 상대방을 일갈하는 듯한 표정의 공연을 볼 것이다. 그랬을 것이다. 그랬으면 지금보다 좀 더 나은 하루가 되지 않을까 생각한다.

하루키는 무라카미 라디오에서 패티 스미스와 만나서 식사를 한 일화를 소개했다. 하루키는 참 유명한 사람을 많이도 만나고 다닌다. 약속을 정해서 만나는 일도 많지만 어딘가 클럽에 갔더니 그녀가 노래를 하고 있었다던가, 옆 자리에 앉아 있던 그 사람이? 라든가, 하는 경우가 왕왕 있다고 에세이에서 말하고 있다.

[다음은 패티 스미스의 '록 앤 록 니거'를 부릅니다. 제목이 엄청나죠? 저는 한 번 패티 스미스 씨와 베를린에서 식사를 함께 한 적이 있습니다. 그때 한 시간 정도 이야기를 하고 있었는데 이 노래 '록 앤 롤 니거' 이야기가 나와서 "어,,, 제목이나 내용이라든지 문제가 되지 않았나요?”라고 물어봤습니다. “물론이에요”라고 그녀가 말했습니다. 많은 방송사에서 방송금지가 되었습니다. 하지만 그런 것은 전혀 신경 쓰지 않고 무대 위에서 열심히 노래를 불렀다고 합니다.

역시 펑크의 여왕 패티 스미스 멋있습니다. 그런데 어느 날 클럽에서 이 '록 엔 롤 니거'를 부르고 있는데 맨 앞자리에 흑인 아저씨가 앉아서 얼굴을 몹시 찡그리고 인상을 쓰며 그녀를 똑바로 노려보고 있었다고 합니다. 그래서 그녀는 '누구일까?’ 하고 자세히 보니 바로 제임스 브라운이었다고 해요.

“그때는 정말 깜짝 놀랐네”라는 거였어요. 패티 스미스도 제임스 브라운 앞에서는 쫄아버리는구나. “그렇죠, 제임스 브라운이잖아요.” 스미스 씨의 이야기는 매우 재미있어서 소개하고 싶은 에피소드가 많이 있습니다만, 어쨌든 들어주세요. ‘Rock N Roll N Nigger’] 라며 그녀의 노래를 튼다.


이 노래 제목의 니거가 흑인을 비하하는 깜둥이라는 말이다. 쪽발이나 조센진 같은 의미로 받아들여 애플 뮤직에서 삭제가 되었다고 한다. 그런데 패티 스미스는 배위의 반어를 통해 하고픈 말을 한다고 본다. 한 블로그에서 이 부분에 대해서 좋은 글을 발견했다. 주인장은 몹시 글을 잘 쓰는데 블로그에 대한 어떤 수식도 없다. 그저 자유하게 하고 싶은 이야기를 하는 그런 블로그인데 링크를 걸어 둔다. 그 블로그에 이 부분에 대한 글이 있다. https://blog.naver.com/nh5584/222936228025[최근 지워진 노래의 가사는 그런 “깜둥이”를 말 그대로 백인 여성이 노래 부르고 있을 뿐 흑인의 인권에 전혀 위협이 되지 않는 노래다. 잭슨 플록도 니그로, 너네도 니그로, 추방되고 기쁨을 잃은 우린 니그로, 일본인에게 너네도 죠센징이다라고 소리 지르는 일본인이라고 생각해보자. 뭐가 잘못되었나? 패티 스미스는 그런 쓰레기를 지칭하는 단어들을 전복하여 이용하고 있다. 패티 스미스는 단어의 천사 역할을 하고 있다. 그 누가 그녀의 노래를 인종차별적이라고 짓밟는가. 심지어 시대착오적이지 않다. 시대착오적인 건 그 말을 입에 담고 있는 사실밖에 없다. 진정 니그로라는 표현을 가볍게 여기고 있는 것은 니그로들이다]


제임스 브라운은 흑인 소울의 대부라고 불리는데 제임스 브라운도 죽은 지가 꽤 되었다. 성룡의 영화에도 나올 정도로 대중에게 친숙하게 다가왔던 사람이었다. 노래는 들어보면 대부분 아? 할 정도로 많은 노래를 불렀다.


패티 스미스는 펑크 록의 대부, 대모로 불리고 있다. 패티 스미스 하면 빠지지 않는 인물이 바로 로버트 메이플소프(이하 메플소프)를 이야기하지 않을 수 없다. 로버트 메플소프는 사진작가이다. 사진을 좋아했던 나는 한때 메플소프의 사진에 빠져서 그의 광기에 먹혀 버리지나 않을까 싶을 적이 있었다. 메플소프의 사진을 검색해 보면 알겠지만 이걸 예술이라고 해야 할지 포르노라고 해야 할지 어렵고 애매하다. 그의 사진은 미국에서 조차 논란이 끊임없이 되고 있다.


메플소프의 꽃 사진 시리즈 역시 감각적이며 사진을 들여다보고 있으면 빠져나오기 싫다. 1분 이상 보고 있으면 사진 속의 꽃이 움직일 것만 같고 스멀스멀하더니 인간의 아름다운 모습으로 바뀌는 것 같은 착각을 불러일으킨다. 조지아 오키프의 꽃 그림과도 다르고, 아라키 노부요시의 피 같은 꽃 사진과도 다르다.


메플소프와 패티 스미스의 이야기는 패티 스미스가 책으로 젊은 날의 모습을 쓴 ‘저스트 키즈’가 있다. 두 사람의 세계는 일반인들이 들여다볼 수 없는 광기와 환상을 가지고 있다. 그 세계는 넓은 것 같으면서도 협소하고 그러면서 깊고 우울하지만 새롭고 반짝인다.

이 두 사람의 모습만 봐도 너무나 위안이 된다. 60년대에 청춘을 보낸 이들은 한없이 부럽다. 그들은 자유롭고, 자유하고, 하고 싶은 것이 있으면 그대로 해버렸다. 팔을 벌려, 하는 모든 것이 시작이 되었으며 부르는 노래는 시가 되어 하늘에 한 글자 한 글자 아로새겼다. 미지근하지 않았다. 뜨겁게 타오르면서 차가운 온도를 유지한다. 자석처럼 끌어당기는 그 힘은 바로 상상력과 환상 그리고 사랑을 벌리고 나오는 사랑 그것이었다.


록의 대모이지만 시인이었던 패티 스미스는 메플소프를 떠올리며 시를 써주고, 메플소프는 앨범 커버 사진을 촬영해 주었다. 두 사람은 가난했지만 그들의 야망과 꿈을 절대 놓치지 않았다. 바로 60년대의 청춘을 힘 있게 보내고 있었다.


[어떤 날은 미술관에 갔다. 티켓 한 장밖에 살 돈이 없었던 우리는 한 명만 들어가 전시를 보고 나와 어땠는지 이야기해주곤 했다. 어페이스트사이드로 자리를 옮긴 새 휘트니 미술관에 간 날은 내가 들어갈 차례였다. 미안해하며 들어가서 전시를 봤지만, 지금 내 기억 속에는 그날 미술관 건물의 거대한 창 너머로 건너편 주차 미터기에 기대 담배를 피우던 로버트의 모습밖에 남아 있지 않다. 전시를 보고 나와 전철역으로 걸어가던 길에 로버트는 나에게 말했다. “언젠가 우리가 함께 저 미술관에 들어가는 날, 그날은 우리 작품이 전시되어 있을 거야.”] - 저스트 키즈 중에서


황망하게도 이 문장을 읽었을 때 눈물이 주룩 흐르고 있었다. 60년대는 얼마나 아름다운가. 울부짖고 분노하고 기뻐하며 사랑하며 다 태운 에너지의 그을음으로 2000년대까지 살다가 그 그을음이 다 했을 무렵 코로나 직전에 눈을 감는 삶이 얼마나 아름다운가.


이 두 사람을 보면 앤디 워홀과 그의 뮤즈 에디 세즈윅도 떠오른다. 앤디 워홀을 너무나 동경했던 메플소프. 하지만 앤디 워홀의 예술을 전혀 이해하지 않는 패티 스미스. 예술은 혼돈이며 비규정적이다. 이는 인간과 흡사하다. 영화 ‘팩토리 걸’에서 시에나 밀러는 그야말로 에디 세즈윅이었다.


패티 스미스는 글도 무척 잘 쓴다. 그녀의 문학적 상상력은 미시마 유키오, 앙드레 지드, 장 주네의 작품들을 읽으며 키웠다. 패티 스미스는 다른 예술가들처럼 그 흔한 약에 손을 댔을 것 같지만 전혀 약을 하지 않았다. 어쩌면 그 점이 지금까지 열심히 노래를 부르고 책을 쓰고 예술을 할 수 있게 하지 않았나 하는 생각도 든다.


패티 스미스를 한 마디로 말하자면 존나 멋지다. 그녀는 노래를 부른다. 그녀는 록을 한다. 그녀의 노래는 나이를 먹지 않는다. 그것뿐이다.


Patti Smith의 Rock 'n' Roll Nigger를 들어보자. 물론 라이브. 1979년.https://youtu.be/LNnC8hYOmlw


2009. 지산록페에 와서 환하게 한국 팬들에게 인사를 했던 모습






댓글(0) 먼댓글(0) 좋아요(5)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https://www.tfm.co.jp/murakamiradio/index_20221030.html


43회는 지난달 30일 저녁 7시부터 한 시간 가량 진행되었습니다. 한 달에 한 번씩 무라카미 라디오 방송을 해서 43회를 맞이했네요.


무라카미 라디오 방송은 중국 유튜브라고 불리는 빌리빌리로 듣고 있습니다. 유튜브로는 모든 방송을 들을 수 없는데 빌리빌리는 모든 방송을 들을 수 있어서 종종, 아니 거의 매일 한두 시간씩 듣습니다.


도쿄 에프엠 홈페이지에 올라오는 일러스트도 매 회에 맞게 올라와서 보는 재미가 좋습니다. 43회에 네코야마상이 야구방망이를 들고 있는 일러가 보이죠. 야구광으로 알려진 하루키가 43회 방송 초반에 야쿠르트 스왈로즈에서 뛰고 있는 무라카미 무네타카 선수에 대해서 이야기를 합니다.


"무라카미 무네타카 군이 왕(정치) 씨를 넘는 56개의 홈런을 쳐서 매우 경사스러운 일이었습니다. 근데 사실 저는 올해 몇 번이나 진구구장에 다니면서도 무라카미 군의 홈런을 치는 광경은 어쩐일인지 한 번도 보지 못했습니다. 운이 나빴던 걸까요? 상당히 유감스러운 일입니다. 저는 구장에 갈 때 늘, 언제나, 대체로 글러브를 딱 가지고 갑니다만. 언젠가 라이트 스탠드에서 무라카미 군의 홈런볼을 가지고 싶습니다"라고 시작을 합니다.


무라카미 무네타카는 우리나라 스포츠 신문에도 크게 보도된 일본의 괴물신인으로 알려졌습니다. 야구팬들에게는 좋은 소식이죠. 일본에서는 왕정치를 제치고 일본인 한 시즌 최다 홈런 기록을 새롭게 썼다고 합니다. 그리고 본인은 빅리그로 진출하고 싶어 하네요. 무라카미 무네타카는 2000년 생입니다.


하루키는 43회 무라카미 라디오에서 집에서 꽁꽁 들고 온 자신의 음반을 들려줍니다. 이번 회에서는 꽤 많은 음악을 들려주었는데 다른 회보다 더 좋은 것 같네요. 특히 제가 여기저기에 몇 번 글을 적었던 다이애나 크롤의 노래도 있고, 패티 스미스의 노래도 있습니다.


처음에 들려주는 음악은 뉴 올리언즈 출신의 전설적인 세션이자 피아니스트 앨런 투세인트의 I WAVE BYE BYE입니다. 너무 좋아요. 정말 이 늦가을에 어울리는 곡이 아닙니까. 듣고 있으면 강물 위를 스치듯 날아가는 물수제비가 되는 것만 같습니다.


무엇보다 다이애나 크롤이 부르는 다이애나 버전의 캘리포니아 드림이 정말 좋습니다. 다이애나 크롤은 이래도 되나 싶을 정도로 세상 부러울 것이 없어 보입니다. 완벽한 여성이라면 바로 다애이나 크롤을 말하지 않나. 키도 크고, 늘씬한 데다, 예쁘기까지 한 이 어려운 길을 한 번에 가고 있으니, 거기에 천상의 목소리를 가지고 재즈를 불러재끼니 이건 뭐.


그 어떤 노래도 다이애나 크롤을 거치면 크롤화가 되어 버립니다. 캘리포니아 드림이 이렇게 탄생할 수 있다니 놀랍습니다. 다이애나 크롤의 남편은 엘비스 코스텔로입니다. 영화 노팅힐의 쉬~~~ 의 그.


엘비스 코스텔로가 지금은 할아버지에 가까운 모습이지만 젊은 시절의 엘비스 코스텔로를 보면 우리나라 윤상이나 그 짝의 가수들이 엘비스 코스텔로를 많이 따라 하고 싶어 하지 않았나 그런 생각이 들 정도로 멋있네요.


링크가 되면 다이애나 크롤의 이 허스키함의 라이브 버전을 걸어두고 싶은데 아쉽네요 [라고 인스타그램에는 썼지만 여기서는 링크를 걸어 둘 수 있어서 아주 좋네요]. 무라카미 라디오의 백미는 아무래도 청취자들의 사연을 듣고 답해주는 것인데요. 차차 올려보겠습니다. 아주 재미있어요.


이 가을에 빠져들게 하는 목소리를 가진 다이애나 크롤의 캘리포니아 드리민

https://youtu.be/0U8XWyHaGkI <=출처: RTL


댓글(0) 먼댓글(0) 좋아요(6)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