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은 하루키가 강연을 마친 뒤 청중의 질문에 답을 하고 있는 모습이다. 일본어 교수이자 수지 뉴하우스 소장인 이브 짐머만과 스페인어 부교수 하기모토 코이지가 하루키와 함께 무대에 올랐다.

질문은 생략하고 하루키의 답변만 내 마음대로 의역으로 옮겨본다.

하루키:

거리와 그 불확실한 벽은 이달 초 일본에서 출판되었고 내년 중에 미국에서도 출간될 것으로 예상됩니다. 주인공은 두 세계 사이를 왔다 갔다 합니다. 하나의 세계는 높은 벽으로 둘러싸여 있고, 출구는 없습니다.

벽 안에서 사람들은 평화로운 삶을 보냅니다. 아무도 욕망 같은 건 품고 있지 않아요. 그래서 고통도 겪지 않습니다. 누구를 향해 비난도 하지 않죠.

또 다른 세상은 당신과 내가 사는 세상으로 고통과 욕망과 모순을 겪는 곳입니다. 주인공은 자신을 위해 하나의 세계를 선택해야 합니다. 그렇게 정해져 있으니까요.

이런 상황에서 거리와 그 불확실한 벽의 주인공은 높은 벽으로 둘러싸인 세계를 매력적으로 느낄까요? 이를 알기 위해서는 소설을 읽어야 합니다. 휘발성으로 소비되는 미디어 시대에 소설이 얼마나 많은 효과를 낼 수 있는지 저는 모릅니다.

분명 소설과 같은 예술의 형태는 순간적으로 생성되거나 소비될 수 없다는 단점을 가지고 있습니다. 시간을 들여야 독자들에게 전해지는 것이니까요.

저는 이 소설의 가장 강력한 미덕은 쓰고 읽는데 시간이 걸린다는 것이라 믿습니다. 이 세상에는 시간이 필요할 때만 창조될 수 있고 시간이 필요할 때만 감사할 수 있는 그런 것들이 있습니다. 그런 이유로 시간을 들여 쓰고 읽는 소설은 절대적으로 필수적입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3)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하루키의 단편소설집으로 이 소설집에 실린 소설들은 고베 지진을 주제로 만들어졌다. 총 6편의 단편이 실려 있다. 단편인데 장편 같은 소설들이다. 문학사상사에서 출간된 이 책의 추천의 말을 장석주 시인이 썼다. 장석주 시인도 이 책에 수록된 소설은 장편소설을 읽는 것 같다고 했는데 정말 읽어보면 장편 소설처럼 느껴진다.

소설 속 인물들은 고베 지진으로 인해 단절과 고립으로 기어 들어간다. 또는 들어가 있다. 그리고 거기에서 나오게 된다. 절망의 저 끝으로 가면, 절망의 끝으로 가야만 희망이라는 것이 있다는 것을 보여주는 것 같다.


수록된 소설 중에 ‘벌꿀 파이’는 ‘패밀리 어페어’나 ‘장님 버드나무와 잠자는 여자’, ‘개똥벌레(반딧불이)’와 궤를 같이 하는 소설이다. 리얼리티며 인간과 인간의 관계를 하루키 식으로 너무나 잘 보여주고 있다. 특히 패밀리 어페어는 너무 좋아서 몇 번을 읽었는지 모른다. 하루키가 이렇게나 유머러스하다니! 하는 부분으로 채워진 소설이었다.


이 단편집에 수록된 ‘벌꿀 파이’의 주인공 준페이는 하루키 자신을 투영했다. 아마도 ‘바람의 노래를 들어라’와 ‘1973년의 핀볼’을 쓰고 난 후 문단에서 받은 모질함?에 대해서 준페이라는 주인공을 빌려 내뱉고 있다. 준페이는 소설 속에서 나약한 인간이지만 강함을 지니고 있는 인물이다.


이제까지와는 다른 소설을 쓰자고 준페이는 생각한다. 날이 새어 주위가 밝아지고, 그 빛 가운데서 사랑하는 사람들을 꼬옥 껴안고, 누군가가 꿈꾸며 애타게 기다리고 있는 것 같은 소설을, 하지만 지금은 우선 여기에 머물러 있으면서 두 여자를 지키지 않으면 안 된다. 상대가 누구든, 정체 모를 상자 속에 처넣어지게 해선 안 된다. 설사 하늘이 무너져 내린다고 해도, 대지가 소리를 내며 갈라진다고 해도.’ -벌꿀파이 중

개인적으로 가장 마음에 드는 소설은 ‘개구리 군, 도쿄를 구하다’이다. 보잘것없고 평범하기 그지없는 회사원 가타키리에게 어느 날 개구리가 나타나 도쿄를 구하자고 한다. 아무것도 할 줄 모르는 가타키리는 거절을 하지만 결국에는 개구리 군을 도와 악의 화신은 지하에 사는 지렁이를 물리치고 도쿄를 구해낸다. 읽는 내내 영화를 보는 것 같았다. 이 소설이 너무 좋아서 이보다 좀 더 길게 이 소설의 오마주를 써서 계간지에 보냈던 적이 있었다. 그곳에서 마음에 든다며 그 소설이 실리게 되었다. 오마주한 소설은 여기 브런치에도 있으니 혹시 보고 싶으시면 ‘그리즐리 씨, 고마워요’를 읽으시면 됩니다.

https://brunch.co.kr/@drillmasteer/3088


사람들은, 아니 이전의 전문가들(문학평론가들을 비롯해서 말하기 좋아하는 샌님 같은 문학가들)은 하루키의 소설은 영상으로 옮기기에 애매하고 이상하다는 평을 많이 내놓았다. 그래서 영화로 만들 수가 거의 없다는 식으로 말을 많이 했다. 하지만 지금 현시점에서 보면 하루키의 소설만큼 영화가 많이 된 소설가도 잘 없다.


또띠븐 킹이라 불리는 스티븐 킹이나 러브 크래프트는 미지의 세계, 초현실, 기괴한 괴물이나 유령 등이 나오는 이야기니까 주로 영화가 되는 경우가 많은 것을 제외하고 하루키의 소설만큼 영화로 많이 된 소설도 없다. 무엇보다 하루키의 소설은 여러 나라에서 영화로 만들어지고 있다는 게 신기하다면 신기한 일이다.


‘신의 아이들은 춤춘다’는 2007년 로버트 로지볼이라는 감독이 조안 첸 주연의 영화로 만들었다. 2008년에 폼 플린트 감독의 ‘4월의 어느 맑은 아침에 100% 여자아이를 만나는 것에 대해’가 만들어졌다는데 포스터도 찾을 수 없고 영상도 찾을 수 없어서 아쉽다. 2010년에는 카를로스 쿠아론 감독, 스파이더맨의 그녀 키얼스 던스턴 주연의 ‘빵 가게 재습격’도 만들어졌다. 이 영화에 하루키는 원안으로 참여를 하기도 했다.


이미 1980년에 ‘바람의 노래를 들어라’가 오오모리 가즈키 감독에 의해 영화로 만들어졌다. 이 부분을 하루키는 에세이 ‘작지만 확실한 행복’에서 언급을 했다. [오오모리는 효고 현에 있는 아시야 시립 세이도 중학교의 나의 3년 후배이며, 내가 쓴 소설 ‘바람의 노래를 들어라’가 영화화되었을 때 감독을 맡은 사람이기도 하다]라고 했다.


그뿐이 아니다. 드라이브 마이카, 버닝, 하나 레이 만, 토니 타키타니, 상실의 시대. 이렇게나 많은 영화가 그의 소설이 원작이다. 세계의 끝과 하드보일드 원더랜드가 영화가 되어 나온다면 정말 좋아 죽을 것 같다.

신의 아이들은 모두 춤춘다


빵 가게 재습격


바람의 노래를 들어라


이 소설집의 수록은 아니지만 소설만큼 좋았던 영화 하나 레이 베이의 예고편을 올려본다 https://youtu.be/W9O5RXGzrao


하나레이 베이는 우리나라에서 '하나레이 만'으로 하루키의 단편 소설집 '도쿄 기담집'에 실린 단편소설을 영화로 만든 것이다. 하나레이 베이를 한 번 더 봤다. 마지막 사치가 타카시의 헤드셋을 쓰고 음악을 들었을 때 감정이 순식간에 바뀐다. 그 감정을, 사치의 마음이 화면을 뚫고 나왔다.


내 마음에 뚫린 공백은 나도 알 수 없다.

길을 잃어버려 뱅뱅 맴도는 느낌일 뿐이다.

이 공허하고 손에 닿을 것 같은데 끝에 도달할 수 없는 이 기분을 어떻게 할까.

나는 10년 동안 무엇을 위해 살아온 것일까.

나는 지금 누구이며, 지금 이전에는 누군가의 엄마였고 어떤 남자의 아내였다.

등신 같은 남편이 듣던 헤드 셋이 아들을 건너 내가 결국 듣고 있다.

앞이 보였던 내 인생을 깡그리 망가트리고 깨버린 내 삶에 들어온 남자들을 증오한다.

나는 그들을 사랑하지 않고 좋아하지 않는다.

그 남자들은 나에게 먼지만큼도 행복을 주지 않았다.

타카시를 가진 것을 알고도 마약에 빠져 있던 남편도, 남편의 모습을 그대로 물려받은 타카시도 어쩌면 내가 원하는 바대로 신이 있다면 신이 데리고 가버렸다.

낡은 티브이처럼 죽은 후에도 하얀빛이 화면 위로 깜빡깜빡 헤매다가, 어느 날 갑자기 뚝 끊어지는 경우처럼 나쁘지는 않다.

하지만 좋은 것만은 아니다.

성실하게 설명하려고 하면 할수록 불성실한 먼지가 안개처럼 가득 껴서 주변을 떠돈다.

남편과 타카시를 떠올리면 그렇다.

불성실한 공기다.

입구는 있지만 출구는 없는 이미 들어와 버린 내 인생의 낙인 같은 것이다.

그런데, 그런데 내가 내 인생을 송두리째 망가트린 그 남자들이 듣던 헤드 셋을 끼고 음악을 듣는 순간 나는, 나도 모르는 새 그들이 내게 소중하다는 것을 알았다.

욕이 입 밖으로 튀어나왔다.

나도 모르는 새.

그리고 눈물이 한 방울 흘렀다.

소리 내어 울고 싶지만 나는, 나는 바보라서... 다리 한쪽이 잘린 일본인 서퍼를 본 순간 나는 내 마음속의 공백에 대해서 알 수 있었다.

내 자신이 먼 옛날에 죽어 풍화되어 바짝 말라버린 거대한 생물의 미궁과도 같은 체내를 방황하고 있는 듯한 느낌에서 나는 시간의 구멍을 빠져나와 그 한가운데에 쑥 빠져버렸지만 타카시가 듣던 음악을 듣는 동안 나는 다리 한쪽이 없는 서퍼가 타카시라는 확신이 들었다.

타카시는, 내 아들은 10년 동안 나에게 말하고 싶었던 것이다.

나는 당신의 소중한 아들이었다고.




댓글(0) 먼댓글(0) 좋아요(7)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오늘은 하루키의 사소설 격인 ‘일인칭 단수’에 대해서 이야기를 해보자. 하루키의 장편소설이 아직 국내에 출간이 되지 않아서 한국 출판물로는 하루키의 단편 소설집 ‘일인칭 단수’가 제일 마지막에 나온 소설집이다.


소설집 속에 수록된 소설, 위드 더 비틀스는 두 번 정도 읽었다. 크림은 많이 읽었다. 한국 출판물이 나오기 전에 번역책자를 만들어 봤기 때문에 꽤 여러 번 읽었다. 적어도 15번은 넘게 읽은 것 같다. 하지만 지금은 기억이 아스라이 저 멀리.


시나가와 원숭이의 고백도 많이 읽었다. 시나가와 원숭이의 고백은 15년 전에 나온 시나가와 원숭이의 후편이다. 시나가와 원숭이도 나이가 많이 들었다. 하루키가 여행 중에 만나서 고백을 듣는 이야기다. 시나가와 원숭이는 단편 영화로도 만들어졌는데 중국 배우 후거가 재해석을 해서 영화로 만들었다. 꽤 잘 만들었다. 시나가와 원숭이가 이름을 훔쳐가는 이야기로, 현실에서 이름을 잃어버리고 살아가는 사람들을 말하고 있다.


누군가의 남편, 누군가의 엄마, 누군가의 딸로 불리며 조금씩 주위 사람들이 자신의 이름을 부르지 않게 되다가 결국 자신도 자신의 이름을 모르게 되는, 아무튼 소설을 읽으면 재미있다.


이 시나가와 원숭이는 하루키가 아버지에 대해서 쓴 '고양이를 버리다'에도 등장한다. 첫 시작에 시나가와 원숭이가 나타나서 무라카미 하루키에게 이름과 성, 둘 중에 하나의 선택권을 주겠다. 무라카미와 하루키 둘 중에 하나를 선택하라면 너는 무엇을 택하겠나,라며 등장한다.


하루키의 글을 읽어보면, 특히 소설을 읽어보면 예전 소설들이 최근의 소설로 이어지면서 전부 연결이 되어 있는 것 같은 느낌을 지울 수 없다. 시나가와 원숭이처럼 같은 문장을 여러 소설에 사용하기도 하며, 와타나베 노보루라는 이름도 여기저기 소설에 등장한다. 이 이름은 꽤 부정적이고 호러블 한 인물의 이름으로 주로 쓰였는데 하루키의 절친 안자이 미즈마루 씨의 본명이다.

일인칭 단수는 소설이라기보다 거의 에세이에 가깝다. 일인칭 단수를 읽어보면 위에서처럼 아내는 혼자서 중국음식을 먹으러 간다. 왜냐하면 주인공은 중국음식을 전혀 먹지 못하기 때문이라고 했다. 중국음식에 들어가는 향신료 때문에 알레르기가 있는 모양이다. 그리고 주인공의 아내는 중국음식이 먹고 싶어 지면 중국음식을 못 먹는 주인공 때문에 친한 여자 친구들을 불러내서 먹으러 간다고 했다.라고 마치 남에게 말하듯 했지만 그건 하루키 본인의 이야기다.


일인칭 단수에는 주인공이 하루키 본인이라고 나오지 않았지만 우리는 확실하게 주인공이 하루키 본인이라는 것을 안다. 만약 처음 일인칭 단수를 읽는 사람이 내가 하는 말을 듣고 아니 무엇 때문에 그런 말을 하는 겁니까? 라며 따지듯 묻는다면 대답할 수 있을 정도다.

하루키의 일상의 여백을 읽어보면 확실하게 소설 일인칭 단수에 나온 문장이 그대로 주욱 나오는 것을 볼 수 있다. 에세이에 중국음식을 전혀 먹지 못해서 하루키는 아내에게 핀잔을 들었던 이야기, 그리고 아내가 몰래 중국음식이 아닌 척하며 하루키에게 먹이려 했지만 실패하고 만 이야기, 그리하여 아내는 중국음식이 먹고플 때는 친구들과 간다는 이야기를 죽 써놨다.

하루키는 여러 글에서 자신은 본격적으로 소설을 쓰기 이전에 피터캣을 운영하면서 담배도 하루에 한 갑씩 피우고 먹는 것도 가리지 않고 먹었다고 했다. 소설을 쓰기 시작하면서 그런 생활방식으로는 전혀 글을 쓰는 패턴을 찾을 수 없어서 기름기 있는 음식을 멀리하고 달리기를 하며 담배를 끊어 버렸다고 했다.

그리하여 위의 에세이에서 아내가 라면이 먹고 싶은데 하루키는 라면을 먹지 못해서 결국 혼자서 라면을 먹다가 “나이가 들어서도 혼자 라면을 먹으러 오는 여자만은 되고 싶지 않다”라는 말을 옆에 테이블에서 들었다고 하루키에게 마구 화를 냈다.


그런데 혼자서 라면을 먹는 40대 여인이 어때서 그럴까. 나 돼지국밥 집에 한창 다닐 때 홀로 국밥을 맛나게 먹는 여성들이 얼마나 많았는데. 소주병도 앞에 두고 면사리도 넣어서 야무지게 먹는 모습이 이상하지 않았는데.


하루키는 이렇게 먹는 것 때문에 세계를 돌아다니며 취재 겸 여행을 하면서 곤란한 경우가 많았다. 대표적으로 먼 북소리에도 잘 나와있고, 태엽 감는 새의 연대기 속의 노몬한과 만주 이야기를 보고 잡지사에서 실제로 가보지 않겠냐 해서 여행길에 오르게 되어서 쓴 하루키의 여행법, 우천염전에도 잘 나와있다.


여행지에서 먹는 것이 안 맞아서 불만 섞인 말을 내뱉는 모습부터 쇠파리, 구더기, 철조망, 국경까지 긴박한 이야기도 잘 나온다. 그러면서 노몬한 전투에 대한 이야기도 빠트리지 않고 한다.


[해가 지면 몽고의 하늘은 별들로 뒤덮인다]로 시작해서 [피투성이의 싸움을 벌이고, 그곳에서 수만 명이나 되는 병사들이 총에 맞고 화염 방사기에 불태워지고, 탱크의 캐터필러에 깔려 죽는다며 생매장을 당하고 또 그것의 몇 배나 되는 사람들이 깊은 상처를 입고 팔이나 다리를 잃었을 거라고 생각하니 참으로 암담한 심정이다]라고 쓴 부분을 읽으면 하루키식 유머만으로 이루어진 여행기가 아니라는 것이 느껴져서 좋다.


이런 기록은 장편 소설 태엽 감는 새의 연대기에 잘 나온다. 포로의 가죽을 조금씩 벗기는 이야기, 전투 중에 버려진 군인들을 처리하는 방법. 전쟁의 아이러니가 바로 평화를 위해 서로의 몸에 총을 겨누고 총구멍을 낸다는 것이 잘 드러난다. 모순인 것이다. 온통 모순으로 점철된 처절한 모습까지 소설에 잘 녹아있다.


어떻든 일인칭 단수는 에세이에 근접한 소설, 사소설인 것이다. 특히 아내에 대한 부분은 실제 하루키의 아내 요코 여사에 관한 이야기다.


하루키는 그간 아내에 대해서 대체로 함구하고 있지만 일상의 여백을 읽으면 아내 이야기가 많이 나온다. 이래도 돼? 할 정도다. 아내가 갑자기 일정을 바꾸자고 하는 바람에 난처했는데 이유가, 아내가 읽는 책에 빠져서 책에 나오는 곳으로 갑자기 사자고 해서 혼났다는 이야기를 시작으로 아내에게 핀잔을 들은 이야기를 마치 수다를 떨듯 주절주절하고, 또 하루키 자신은 바빠서 취재를 가지 못하니 사진기사 겸 조사원을 파견하는데 그 사람이 아내였다는 이야기까지. 재미있는 이야기들이 많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7)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크림은 하루키 단편 소설집 ‘일인칭 단수’에 수록된 단편 소설이다. 2020년 9월쯤인가, 이미 한국에 하루키의 ‘일인칭 단수’가 나왔어야 하는데 내 생각에 너무 늦어지는 것 같았다. 일본에서 출간이 되고 1년 정도가 지나면 한국에도 하루키의 소설이 출판이 되는데 오래 걸리는 기분이 들었다. 너무하잖아? 이러다간 신간이 아니라 재출판물 같은 기분이었다.


신간의 반대말은 무엇일까. 헌간? 지금도 생각 중이다.


하루키의 ‘일인칭 단수’에 실린 신간은 한 편을 제외하고 2019년에 뉴요커에 전부 실렸다. 하루키는 언젠가부터 뉴요커와 밀접한 관계가 되었고 인터뷰를 종종 가지며 자신의 개인적인 이야기와 신간, 지나간 소설에 대한 이야기를 풀어놓는다. 뉴요커는 젊디 젊은 하루키 적 시절에 이미 알아본 거지. 아 이 사람은 세계적인 소설가가 되겠구나, 뭐 이런 미래를 보고 꾸준하게 하루키와 접촉을 해왔다.

하루키가 근래에는 일본 내에서 도쿄 FM 라디오 디제이도 하고(무라카미 라디오), 일본의 여러 잡지와 인터뷰도 진행하면서 자신의 소설이 영화가 된 이야기도 뱉어내고 있다. 드라이버 마이카, 버닝 같은 영화를 언급하면서 이창동 감독이나 하마구치 류스케 감독에 대한 이야기도 했다.


이전의 하루키를 보면 일본문단에서 하루키를 너무 적대시하니, 일본문단! 흥!하며 늘 외국에 체류하면서 소설을 쓰고, 일본 내에서 인터뷰는 거의 하지 않은 것에 비하면 하루키도 인자하고 마음씨 좋은 할아버지 같은 모습이 된 것 같다. 개인적으로는 작가뿐 아니라 배우도 화가도 너무 인자하고 마음씨 좋은 것보다 깐깐하고 욕도 하고 침도 뱉고 하는 게 좋은데 나이가 들면 대체로 뭔가 나는 자연이구나, 같은 모습이 되는 것 같다.


아니면 톰 크루즈처럼 다른 나라에 비해 한국을 유달리 좋아하는 것처럼 보인다던가. 사실 11번이나 내한을 했다는 건 그냥 스케줄만으로만 그렇게 할 수가 없다. 이번 미션 임파서블을 촬영 중에 영국에서 톰 크루즈는 자신의 BMW 차령을 도난 당해 그 안에 있던 개인 소유물과 돈이 없어진 것에 분노했다. 그래서 더 많은 수행원들을 대동해서 이동을 했다. 화가 난 거지.


그런데 이번 한국, 아니 늘 한국에 올 때에는 단출한 수행원을 대동해서 서울의 밤거리를 저렇게 헤헤 다니고 있다. 과격한 팬들이 달려들 법도 해서 경호원이 톰 크루즈에게 빨리 들어가자,라고 하니까 톰이, 이봐 괜찮아, 여긴 괜찮다고. 하는 장면이 이번에 포착되었다.

사인만 두 시간 했다지


톰 크루즈가 그도 그럴 것이 엄청난 제작비가 들어간 미이라가 전 세계적으로 개봉을 했을 때 모든 나라에서 폭망 했는데 한국에서만 370만이 관람하며 흥행을 이루었다. 백만이 넘을 수 없는 영화였는데 한국관객들이 톰 크루즈를 보고 달려든 것이다.


그렇지만 톰 크루즈는 개인 생활이 철저하게 벽으로 가려져 있다. 잘 나가는 배우 한 명 정도는 그래도 좋을 것 같다. 오래전 우리나라 최은희나 신성일처럼 약간 거리를 두고 멋있는 모습을 보이는. 최은희 하니까 디마지오와 결혼한 먼로가 일본으로 신혼여행 중에 혼자 잠시 한국으로 와서 한국전에 참전한 미군을 위해 공연을 하는데 그때 최은희가 동행을 했다. 최은희는 영화 속에서 늘 이국적이었는데 한복을 입은 최은희는 단아하고 먼로는 금발의 미녀였다.

정말 사진만 남는구나


아, 그래서 하루키의 단편 소설집에 실릴 단편 소설이 한 편을 제외하고 뉴요커에 실렸는데 그중에 ‘크림’을 번역해서 책자로 몇 권 만들어봤다. 판매목적으로 만들면 안 된다. 그저 취미로 책자를 만들어 보는 것이다. 디자인도 나름대로 하고 영차영차 해서 몇 번 수정 작업을 거쳐 책자로 만들었다.


몇 권 만들어서 하루키를 좋아하는 사람들에게 나눠줬다. 이렇게 만들어 본 건 후에 제대로 된 한국 출판물이 나왔을 때 비교해서 보면 얼마나 다를까 하는 그런 기대가 있었다.

먼저 번역을 하고


뉴요커지의 크림을 번역해 본 책자


좌: 한국 출판물,  우: 번역본 책자


그때를 생각하면 재미있는 일은 번역을 하면서 무라카미 라디오도 동시에 듣고 있었는데 하루키가 그 당시에 장편 소설 하나 정도는 쓸 수 있겠다고 하는 것이다. 아마 당시의 무라카미 라디오를 듣던 사람들은 –일본인이건 다른 나라 독자들이건, 일큐팔사만큼 길고 긴 이야기를 써 주길 바라겠지만 그렇게 되지는 않을 거라는 걸 알고 있었다.


그때 장편소설 한 편쯤, 하던 게 지금은 일본에서는 새로운 장편소설이 출판되어 있다. 4월에 일본에서 출판이 되었으니 한국에도 곧 나올 것이다. 이미 여러 블로그에서는 장편소설을 읽고 번역해서 올리는 사람도 있다.


나 얼마 전에 일큐팔사 세 권을 다시 읽었는데 이로써 일큐팔사를 여섯 번인가? 읽어버렸다. 하지만 머리가 나빠서 그런지 대략적인 줄거리는 알지만 좀 세세한 것들은 잘 기억이 벌써 안 난다. 해변의 카프카도, 일각수의 꿈도 거의 열 번 정도 읽었는데 기억은 나의 편이 아니다.


그래서 크림을 번역해서 책자로 만들어서 들고 있다가 나중에 ‘일인칭 단수’가 출간되었을 때 날름 구입해서 비교를 해보았는데 너무나 허무하게 비슷해서 맥이 풀렸다. 이게 뭐랄까 하루키의 소설을 많이 읽고 또 읽고 – 나 같은 재미없는 인간은 새로운 무엇을 보고 듣고 느끼기보다 읽었던 소설을 또 읽고 자꾸 읽는다, 계속 읽다 보니 하루키 소설의 분위기를 알게 되었나? 싶은 생각이 들었다.


이 단편 소설집은 사소설 형식으로 주인공이 하루키다. 그래서 소설 '일인칭 단수'에서 아내의 식성에 대해서 말하는 문장은 에세이 '하루키 일상의 여백'에 나오는 문장을 그대로 옮겨다 놓았다고 할 정도로 똑같은 부분도 많다. 이것도 재미있는 부분이라 나중에 한 번 이야기를 하자.


나에게 크림 책자가 한 권이 남아 있어서 가끔 앉아서 읽곤 했는데, 오늘 다시 읽어보려고 찾아보니 또 없어졌다. 거참 기묘한 일이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하루키 에세이 ‘하루키 일상의 여백’의 북커버는 이렇게나 촌스럽다. 이 책 보다 더 촌스러운 북커버는 ‘하루키 여행법’이다. 이렇게나 촌스럽게 북커버를 디자인했는데 시간이 지나니 이게 유니크해서 이런 예전 버전을 찾는 하루키 마니아들이 생겼다고 한다.


이렇게 촌스러운 북커버 덕분에 친근하게 느껴진다. 디자인이 마치 이제 일러스트나 포토샵을 배우고 갓 직장에 뛰어든 사회 초년병이 디자인해 놓은 것처럼 날 것 같다. 이 폰트도 넣어보고, 이 정도 크기도 한 번 집어넣어보고, 다 같이 한 번 해보자.라고 해서 만들어 버린 북커버의 디자인 같다. 그래서 촌스럽지만 그래서 세련돼 보인다.

이 책은 정사각형에 가까운데, 정확한 정사각형은 아니다. 일반적인 책의 비율에서 벗어났고 그렇다고 정사각형도 아닌, 이도 저도 아니라서 가지고 있는 사람에게는 레어템이 될지도 모르는 책이다.

추천의 말을 장석주 시인의 글로 시작한다. 한때 문학사상사에서 나오는 하루키의 출판물은, 소설이고 에세이고 추천사에 장석주 시인이 글을 썼다. 단편 소설집 ‘신의 아이들은 춤춘다’에서도 장석주 시인의 추천의 말로 시작을 한다. 장석주의 글을 읽는 재미도 있다. 장석주 시인의 시만 읽어서는 하루키와 어떻게든 어울리지 않을 것 같은데 장석주는 또 문학평론가이기도 해서 그런지 하루키의 문체에 대해서, 그의 문학 세계관에 대해서도 잘 알고 있다.


장석주 시인은 시인이나 문학평론가로도 유명하지만 언젠가부터는 박연준 시인의 남편으로 더 유명한 것 같다. 박연준 시인도 장석주 시인의 아내로 유명하기도 하고. 두 사람의 나이차 때문에 두 사람은 유명하게 되었다. 박연준 시인의 시와 산문은 명치끝을 바늘로 찌르는 것처럼 날카롭고 아픈 구석이 있는데 인스타그램의 일상에서는 아주 깨발랄해서 좋다. 전혀 어른스럽지 않다.  


어른이라는 건 되고 싶지 않아도 언젠가는 어른이 되어 있다. 하지만 겉으로 보기에 어른이 되었다고 해서 늘 진지하고 진중하게 말하고 다녀야 하는지 모르겠다. 내가 하는 말이나 어떤 행동이나 사람들과의 관계나 담아내는 사진에게 농담이 섞여 있고 철이 없다고 해서 타인에게 피해를 주지 않는다면 앞으로도 죽 철 없이 지낼 거야. 남들에게 말 못 할 불안을 가득 안고 매일 아슬아슬하게 지내고 있기에 그걸 잠시 라도 잊기 위해서는 철들지 않고 지내는 것뿐이야. 그 방변으로 글을 쓰는 것을 멈출 수가 없다. 모두가 아는 이야기 말고 모르는 이야기, 나만 간직한 이야기, 깜깜한 이야기, 빛과 어둠이 아니라 그늘과 옅은 그림자에 대한 글을 지치지 않고 쓰고 싶어. 저를 비롯해서 글 쓰는 걸 멈추지 마세요,라고 하는 것 같다.


장석주 시인이 말한 것처럼 하루키의 ‘가벼움’ 속에는 하찮은 것들에 대한 따뜻한 시선이 가득하다. 그건 하루키의 여러 에세이를 읽어보면 알 수 있다. 큭큭 하며 웃게 되는 포인트가 마음의 위로를 한다. 그런 하루키의 시선은 우리가 보통 가지고 있는 일종의 이타성과 비슷할지도 모른다. 하찮은 것들을 위해서 방탄소년단도 노래를 불러 세상의 다양한 사람들의 마음을 움직였다.

책을 읽다 보면 재미있는 부분이 있는데 오래된 책이라 그런지, 아니면 이 책만 그런 건지 글과 글 사이의 간격이 뒤죽박죽이다. 간격이 일정하지 않은 건 물론이고, 그 간격이 조금씩 다르다. 간격이 아주 짧은 것부터 강처럼 아주 길게 벌어진 간격도 있다.


이 책의 타이틀이 ‘달리기, 고양이, 여행’이다. 하루키의 루틴 같은 생활의 습관과 태도를 통해서 여백을 채워나간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그중에서 달리기에 관한 부분은 달리기 에세이 ‘달리를 말할 때 내가 하고 싶은 이야기’의 전초전 같은 모습이다. 하루키가 달리는 것에서 느끼고 얻는 것에 대해서 잘 말하고 있다.

나 같은 경우가 10년을 넘게 거의 매일 한두 시간씩 달리고 있는데, 주위에서 가끔 하루키를 얼마나 좋아하면 하루키처럼 매일 달리냐,라고 하는 말을 듣는데, 하루키를 좋아해서 조깅을 매일 하는 것이 아니라 달리는 게 좋아서 매일 조깅을 하는 것인데 사람들 중에서는 편견을 가지고 그렇게 말을 하기도 한다.


하루키 빠에다, 조깅 마니아인 소설가 김연수도 하루키를 따라 하고 싶어서 달리는 게 아니라 조깅이 좋아서 달리는 것뿐일지도 모른다. 그건 김연수의 달리기 에세이 ‘지지 않는다는 말‘을 읽어보면 잘 나온다. 김연수 소설가도 하루키처럼 번역을 하기도 했다. 여러 모로 하루키와 닮긴 닮았네.


하루키의 이 책에서는 어떤 무언가를 설명하는데 길게 하지 않는다. 간결하고 간단하게 끝낸다. 그런데 어? 더 궁금한데? 하는 생각이 들지 않는다. 애초에 술렁술렁 읽어주세요,라고 하는 것처럼 느껴지지만 또 포인트는 적확하게 집어낸다.

재미있는 것은 글의 내용과는 조금 다른 사진들이 책 사이사이에 있다. 근 몇 년 동안 나오는 하루키의 에세이에는 그런 점을 발견하지 못했지만 이 책에는 로드킬을 당해 죽어있는 아르마딜로의 사진을 조그마하게 삽입을 한다던가, 다람쥐에 대한 사진도 아주 작게 삽입을 해놨다. 놀려 먹는 공간이 없도록 하겠다! 뭐 이건가? 싶기도 하고. 게다가 교미 중인 다람쥐에 대한 설명은 진지하다. 하긴 저들은 진지하게 교배를 위해 교미를 한다.


인간처럼 쾌락을 위해 교미를 하지 않는다. 설명에는 하루키도, 진지하게 대낮에 일을 벌이고 있는데 싱글벙글 웃으며 일을 벌이면 곤란하다고 했다. 다람쥐를 관찰했던지 검은 다람쥐는 검은 다람쥐끼리 사귀고 갈색 다람쥐는 갈색 다람쥐끼리 사귀는 것 같다고 했다. 끼리끼리 논다는 말이 맞는 건가. 여기까지가 초반인데 뒤로 갈수록 큭큭 거릴 수 있는 재미있는 이야기들이 점점 불어난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3)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