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망스 돌의 포스터가 마음에 들어 편집을 늘 하던 대로 내식으로 해봤다. 주연은 타카하시 잇세이와 아오이 유우다. 이 영화는 19금 영화다. 사람이 홀딱 벗고 나와서 그런 건 아니고 마네킹 즉 리얼돌이 깨알 딱 벗고 나오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상상하는 것처럼 리얼돌과 함께 환상적인,, 같은 장면은 영화에 나오지 않는다. 그저 영화 속에서 배경으로 앉아 있을 뿐이다. 주인공 테츠오가 리얼돌을 만드는 공장에서 일하다가 소노코(아오이 유우)를 만나게 되고 연인으로, 그리고 결혼을 하면서 이어지는 이야기다. 원작 소설이 있고(당시에 소설 또한 큰 반향을 일으켰다고 한다) 작가가 각본에 영화의 감독까지 했다.


미대를 나온 테츠오는 선배가 소개해준 공장으로 와서야 이곳이 리얼돌을 만드는 공장이라는 것을 알게 된다. 테츠오는 사람들의 시선도 있고, 리얼돌의 조형에 크게 관심이 없어서 눌러앉을 생각이 없다. 그저 돈이 없어서 공장에서 일하는 선배 조형사의 말을 듣고 일을 하게 된다. 공장에는 테츠오와 친하게 지내는 나이가 많은 조형사가 있는데 그는 30년 동안 리얼돌을 만들어 왔다. 그는 소프트 비닐부터, 실리콘까지 연구에 연구를 거듭해서 정말 촉감이 좋은 리얼돌을 만드는 것이 꿈이었다. 선배 조형사는 아이 같은 면모를 지니고 있는 아주 좋은 사람이었다. 테츠오는 저녁이면 선술집에서 선배 조형사와 함께 술을 마시며 세상 돌아가는 이야기를 하며 리얼돌 조형에 점점 빠져들게 된다.


테츠오는 선배 조형사와 함께 연구를 거듭해서 사람의 피부 같은, 그리고 애인 같은 리얼돌 샘플을 만들어서 사장에게 선보인다. 사장은 공장으로 내려와 가슴을 만져보더니 이건 실패라고 한다. 가슴이 너무 인형 같다, 너무 마네킹 같으며 너무 비현실적이다. 리얼돌이라고 해서 꼭 풍만한 가슴으로 만들 필요가 없다. 정말 같이 누울 수 있는 애인 같은 리얼리티 리얼돌을 만들어서 다시 오라고 한다. 테츠오는 선배 조형사에게 자신이 미대에서 누드모델을 아르바이트로 그림과 조각을 했는데 불러보자고 한다. 하지만 리얼돌을 만든다고 하면 오지 않을 테니까 유방암으로 가슴을 잃은 환자들에게 줄 인공 가슴의 형을 뜰 거라고 해서 누드모델 아르바이트를 부른다. 그렇게 해서 오게 된 사람이 소노코였다.


소노코는 테츠오 앞에서 가슴을 열고 가슴의 틀을 뜬다. 작업이 다 끝나고 난 뒤에 선배 조형사가 소노코에게 나의 바보 같은 조수가 가슴을 한 번 만져보면 좀 더 진짜 같은 가슴을 만들 수 있을 것이라고 죄송하지만 그렇게 해달라고 부탁한다. 테츠오는 난감해하는데 소노코는 그렇게 하라고 한다. 그래서 테츠오는 소노코의 가슴을 만지게 되고 그때부터 두 사람의 관계가 발전을 한다. 그 덕분에 테츠오는 정말 리얼한 가슴의 리얼돌을 만들고 사장은 오케이, 그래서 제품이 팔려나가기 시작했다. 그렇게 날개를 달고 4년이나 팔려나간다. 그 사이에 테츠오는 소노코와 소박한 결혼도 한다. 승승장구하는데 어느 날 선배 조형사가 출근을 하지 않아서 가보니 죽어 있었다.


이제부터 공장의 모든 연구를 도맡아야 하는 테츠오. 점점 일은 많아지고 집으로 들어가는 시간은 늦어졌다. 신입직원을 뽑아서 실컷 가르쳤다. 선배 조형사가 자신에게 잘해준 것처럼 테츠오도 신입직원과 술도 마시며 실리콘 이외의 재질을 연구해서 성과가 났을 때 연구결과를 들고 도망가버리는 신입직원. 그때부터 테츠오는 무너지기 시작했다. 소노코와 함께 이야기하는 시간도 줄어들고 그러다 보니 점점 두 사람은 소원해지고. 집으로 들어가는 어느 날 길거리에 만난 젊은 여성과(드라이브 마이카에서 미사키 역) 하룻밤을 보낸다.


그렇게 집으로 들오와 보니 소노코가 쪽지를 남겼다. 아버지가 편찮으셔서 친정이 며칠 갔다 오겠다고. 테츠오는 인스턴트식품으로 끼니를 때우며 일을 하다가 소노코가 집을 나간 지 이틀 만에 소노코의 친정에서 전화를 받고 소노코가 자신에게 거짓말을 한 것을 알게 되었다. 3일째 소노코는 어떤 남자에게 부축받으며 술이 취해서 들어온다. 오늘 소노코 동창회가 있었는데 모르냐며 남자는 테츠오에게 말한다. 화가 머리 꼭대기까지 난 테츠오는 소노코에게 화를 낸다. 거짓말까지 하며 3일 동안 어디에 있었냐고 한다. 그때 정색한 소노코가 테츠오에게 너? 나에게 뭐 속이는 거 없어?라고 한다.


급 반전된 분위기 속에 테츠오는 자세를 잡고 사실 직업에 대해서 속여서 미안하다고 한다. 소노코는 더 정색하며 또? 속이는 거?라고 한다. 이 멍청한 테츠오는 속으로 두근두근하다가 딱 한 번이야, 바람을 피운 건,라고 한다. 소노코는 전혀 예상하지 못했는데, 테츠오는 아뿔싸 한다.


현실에서 대부분 똑똑한 남편들도 아내 앞에서는 헛똑똑이가 된다. 지금 밥을 먹다 아내가 정색하고 남편에게 여보, 뭐 나에게 속이는 거 없어?라고 냉정하게 물으면 속이는 게 없어도 내가 속으로 옆집 아가씨를 좋아하는 거 티가 났나? 비상금을 알았나? 사무실에서 경리 아가씨가 업무 때문에 카톡 했는데 괜히 말 안 해서 화났나? 별의별 생각을 다 한다. 그러다가 아내가 냉철하게 캐물으면 아 미안, 그게 말이야, 하면서 정말 아내가 생각지도 못한 걸 토해내는 경우가 있다. 이때 남편들은 증거가 나와도 나는 모른다, 속이는 거 없다, 당당하게 말을 해야 한다.


혹시 아내의 정색에 더 속였다간 큰일 나겠구나 해서 테츠오처럼 딱 한 번 술을 마셔서 어쩌고 하면서 바람을 폈다고 하면 결혼 생활 도로아미타불이다. 얼마 전에 곽수산 기자가 코로나에 걸려 결혼할 여자 친구에게 기분 좋게, 나 코로나 걸렸어, 2주 동안 집에 있어야 해, 미안해. 하면서 속으로 야호를 불렀는데, 여자 친구가 오빠 나도 코로나야, 같이 집에서 보내자.라고 해서 죽을 것 같았다.라는 말에 남자들 댓글이 대부분 나도 그런데, 아 정말 미치지. 같은 말이 주르르르륵이었다. 호호호 우리 남편은 안 그래요, 우리 오빠는 안 그래.라고 생각하는 아내도 있겠지만, 우리는 가장 가까이 있고 사랑하는 사람을 위해서 늘 거짓말을 한다. 어쩔 수 없지만 인간은 그렇다.


우리 오빠는 그래, 우리 아내는 그래,라고 받아들이면 세상 편한데 참 그게 안 되는 것도 인간이라 그렇다. 사랑하기 때문에 늘 속이고 늘 거짓말을 한다. 사춘기의 자기 자식을 제일 모르는 사람은 부모들이라는 말도 있다. 친구와 학원 선생님, 또는 심지어 타로카드에 가서는 진심을 다 내보이지만 부모에게는 절대 진심을 보이지 않는다. 우리 애는 안 그런데,라고 말하는 부모는 참 자기 자식을 몰라도 너무 모른다.


내가 구치소에 있으면서 2년 동안 가장 많이 들었던 말이 우리 애는 잘못이 없는데 사람을 잘못 만나서 그런 겁니다, 라는 말이었다.


그래서 영화는 어떻게 되냐면, 소노코가 암에 걸려 3일 동안 검사받느라 집을 나간 것이고, 그걸 말하려 해도 테츠오가 너무 바쁘고 가정에 소홀해서 말을 하지 못했다. 그러면서 테츠오의 바람도 알았고 자신을 떠날 거라는 생각에 홀로 병원에서 수술을 하려고 하는데 테츠오가 간호를 하고, 뭐 그렇게 신파로 흘러가다가,,,


테츠오는 조형사로 리얼 돌을 리얼리티로 생명을 불어넣고 싶고, 아내는 암에 걸렸고 대충 이야기가 어떻게 흘러갈지 짐작이 가리라 본다. 2019년 영환데 우리나라에는 지금 나왔다. 아오이 유우의 얼굴을 클로즈업하는데 지금보다 아주 예쁘다.  


#로망스돌#아오이유우#타카하시잇세이#RomanceDoll#あおいゆう#蒼井優#AoiYu #たかはしいっせい#高橋一生 #TakahashiIsse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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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정의 달을 맞이해서,는 개뿔이고, 가정의 달 좀 이제 없앴으면 좋겠다. 중간에 껴서 어버이날, 어린이날, 스승의 날에 결혼식에 작작 좀 하자! 대한민국아.라고 외치고 깊은 밤. 오늘 같은 날과 잘 어울리는 영화가 오즈 야스지로의 ‘만춘’이 아닌가 싶다. 


이 영화는 홀로된 아버지를 두고 결혼 생각이 없는 노처녀(27살이라 노처녀라고 하기에는 이상하지만 그 당시에는) 노리코가 아버지가 재혼을 한다는 말에 흥! 하는 뭐 그런 이야기다. 이 영화가 1950년이 되기 전에 만들어진 영화인데 이혼 한 번 한 것은 원스트라이크로 별거 아닌 걸로 나온다. 결혼에 대한 회의와 재혼에 대한 의식이 당시 일본 사회와 부딪힌다.

노리코는 주위에서 결혼을 시키려는 것을 싫어한다. 아버지를 홀로 두고 결혼해 버리는 게 너무 싫다. 이런 출발은 이후 오즈 야스지로의 영화에 왕왕 나타난다. 그래서 노리코의 아버지와 고모는 아버지가 재혼하려는 것처럼 노리코를 은근슬쩍 속이려 든다. 아버지가 재혼한다는 사실도 싫은 노리코. 

두 가지의 마음이 부딪히는 노리코다. 아버지를 홀로 두는 것도 싫지만 아버지가 재혼을 하는 것도 싫은 노리코. 이때 노리코를 연기한 하라 세츠코의 표정이 극단적으로 바뀐다. 영화 시작부터 아름다운 웃음을 마음껏 보여주는 노리코지만 아버지의 재혼 앞에서는 아버지를 빼앗긴다는 생각 때문에 표정이 굳어 버리는데 무섭기까지 변한다. 

하라 세츠코는 동경 이야기(후에 동경 가족으로 리메이크)에 나올 때 보다 훨씬 예쁘다. 하라 세츠코는 20년 출생으로 2015년에 죽었다. 일본 영화계에서 빼놓을 수 없는 존재인데 40살 즈음에 더 이상 늙어가는 모습을 보이기 싫다며 오즈 감독의 장례식장에 나타난 이후 영화에 더 이상 나오지 않았다. 그리고 결혼을 하지 않은 채 성녀로 늙어 죽었다. 46년에 시세이도 화장품 광고 포스터에 등장했다. 이 포스터는 일본 영화 속에 소품으로 왕왕 등장하기도 한다. 

흑백 영화의 히로인 그레타 가르보, 일본의 그레타 가르보로 불린 하라 세츠코는 만춘에서 당시 기성세대에 반하는 젊은 사람을 잘 표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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쿠미코를 보면 답답하기만 하다. 그럼에도 쿠미코를 계속 보게 되는 건 그 답답함 속에서 나의 모습도 얼핏 보이기 때문이다. 쿠미코는 숨이 막힐 듯한 삶의 압박 속에서 선택지가 없다. 쿠미코는 그저 숨을 쉬는 것뿐, 그리고 자신 옆에 인간의 손을 탄 토끼 한 마리뿐이다. 쿠미코는 가장 가까운 사람들의 무게에 짓눌러 숨을 쉬고 싶어서 쉬는 게 아니라 숨을 쉴 수밖에 없어서 쉬는 것뿐이다.


그런 쿠미코에게 한 줄기 빛과도 같은 선택지가 생겨난다. 영화 파고가 허구가 아니라는 것, 파고에 가면 그 돈 가방을 찾을 수 있을 거라는 믿음이 생긴다. 쿠미코는 영화 내내 일그러진 표정이나 무표정이나 화난 표정일 뿐이다.


쿠미코는 3천만 명이 사는 도쿄에서 29살이라는 나이라는 것이, 웃지 않는 여자라는 것이, 결혼을 하지 않는다는 것이, 남자 친구가 없다는 것이, 사회생활을 못한다는 것이 쿠미코가 선택하지 않았음에도 마치 그녀의 선택처럼 당연시해버리는 사회는 무서운 얼굴을 하고 쿠미코에게 손가락질을 한다.


쿠미코는 사장의 아내의 생일선물을 사 오라며 받은 법인카드를 들고 파고에 갈 준비를 한다. 분신과도 같은 토끼를 공원에 풀어주지만 토끼 역시 선택지를 선택하지 못하고 어디에도 가지 못한다. 쿠미코는 토끼를 보며 자신을 보는 것처럼 마음이 아프다. 결국 토끼를 안고 전철을 타지만 토끼를 전철 안에 두고 내린다. 엉엉 울면서.


쿠미코는 미국의 한 모텔에서 이불을 뒤집어쓰고 파고의 돈 가방을 찾으러 다닌다. 운명이 달린 도서관에서 받은 지도 한쪽을 들고 비디오에서 본 부세미 씨가 눈밭에 묻은 그곳으로 이불을 질질 끌며 간다. 만나는 사람 모두가 파고에는 못 간다, 돈 가방이 없다며 쿠미코를 딱하게 여긴다.


쿠미코는 우여곡절 끝에 지도의 그곳에 도착한다. 추위에 얼굴은 얼었고 손가락은 다 터져 손톱 밑으로 피가 흘러나왔지만 돈 가방은 있었다. 하지만 너무 추웠다. 눈보라가 몰아닥쳤고 온도는 심하게 떨어졌다. 하지만 아침이면 돈 가방을 들고 갈 수 있다, 쿠미코는 피곤에 지쳐 이불을 돌돌 말아서 몸을 덮고 그 자리에서 잠이 든다.


하얀 설원의 아침이 밝아오고 쿠미코는 영화 속 그 자리에 눈을 파내고 돈 가방을 집어 든다. 그 속에는 부세미 씨가 넣어 둔 돈이 가득했다. 쿠미코는 얼굴도 깨끗했고 처음으로 활짝 웃는다. 쿠미코는 자신의 선택이 올바르다는 것에 더 기뻤다. 그리고 옆에 있는 토끼를 끌어안고 가방을 들고 기분 좋게 파고를 떠난다.


쿠미코는 영원히 미소 지을 수 있을 것이다. 죽음 같았던 삶 속에서 벗어나 생존에 괴로워하지 않아도 되는 쿠미코의 행복을 보며 안타깝고 애달프고 아름다운 뒷모습이 기억에 남았다. 영화 ‘쿠미코, 더 트레져 헌터’였다.


https://youtu.be/rrsiRTwysYc <= 예고편 클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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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드는 아니고 벨기에 드라마 시리즈였나, 넷플릭스에서 했던 드라마였는데 초자연적인 스릴러 이야기였다. 어느 날 태양을 보는 순간 모두가 죽어버린다. 그래서 비행기를 타고 태양이 아직 비치지 않는 나라로 가는 이야기. 태양이 솟아올라 빛을 보면 그 사람은 죽어 버린다. 마치 몸에 있는 모든 세포와 기운이 빠져나가 버리듯이 그대로 푹 꼬꾸라져 죽어버린다. 그리고 태양이 훑고 지나간 곳의 과일이나 채소에는 맛이라는 것이 전부 빠져나가버린다. 그렇게 세상에서 남아있는 사람들은 벨기에인지, 어떤 나라의 군용 벙크 안으로 모여들면서 시리즈 1이 끝이 난다. 태양을 보는 순간 고통스럽거나 아파하지 않고 그냥 죽어버린다.


여기까지 적고 나서 생각해보니 짤막한 리뷰를 적어 놓은 게 있어서 드레그 해서 가져와 봤다. 2020년 7월의 글이다.


[넷플릭스 벨드(벨기에 드라마) ‘인 투 더 나이트’, 한국 제목으로 ‘어둠 속으로’는 상당히 흥미 있는 영화다. 비행장에서 한 비행기로 군인 출신의 남자가 총을 들고 들어와서 문을 닫고 출발하라고 한다. 그는 빨리 떠나지 않으면 모두가 죽는다고 말한다. 비행장의 티브이에는 뉴스가 한창이고 전 세계의 사람들이 죽어 있는 모습이 비친다. 남자는 총을 들고 이미 시작되었으니 빨리 출발하라고 한다. 안 그러면 총을 쏘겠다고 한다.


그렇게 해서 비행기에는 몇 명 타지 않고 이륙을 하게 된다. 부조종사 한 명에 그저 헬기를 몰아본 실비라는 여자가 조종석에 앉고 각각 사연이 있는 주인공들을 태운 채 비행기는 어두운 밤하늘을 난다. 어둠 속으로는 제목처럼 어둠을 찾아서 계속 비행을 하는 주인공들의 이야기다. 세계는 무슨 이유인지 태양이 비치는 순간 모두가 죽어 버린다. 과학적으로 $%$^&^&@@% 이런 이유로 해서 11년 만에 오는 태양의 어떤 부분이 과부하가 되면서 문제를 일으키고 지구의 해가 비치는 곳의 생명체는 모두 죽고 만다. 사람들은 겉모습은 멀쩡하지만 혀 같은 장기는 바짝 마른 상태로 죽는다.


그 사실을 믿지 못하던 주인공들도 나중에는 믿게 되면서 비행기는 어두운 항로를 따라 태양이 비치는 밝은 날을 피해 어둠만 찾아서 비행을 한다. 그리고 연료가 떨어질 때는 아직 어두운 나라의 가까운 비행장을 찾아가면서 연료를 넣는다. 영화는 비행기에서 일어날 수 있는 모든 사건사고를 보여준다. 그리고 태양은 통조림의 음식을 제외하고 과일 같은 식재료의 모든 분자구조를 망가트려 종이 맛을 내게 한다. 그리고 비행기 연료의 탄소성분도 망가트려 사용할 수 없게 만든다. 이런 상황에서 사람들은 서로 불신하거나 리더를 교체하거나, 그 와중에 어떤 나라의 비행장에는 또 누군가를 버리고 오거나 엉망진창이다. 시즌 1은 6부작인데 한 회가 시작될 때마다 주인공들이 어떤 이유로 비행기를 탔는지 짤막하게 보여주며 시작을 한다.


영화는 답답함이 없다. 비행기라는 갇힌 공간에서 디스토피아적인 세계관을 살아가려고 발버둥을 친다. 그러면서 마지막에는 무전으로 연락이 된 살아있는 군인들이 있는 어느 나라의 벙커 속으로 들어가면서 시즌 1이 막을 내린다. 벨기에 영화인데 잘 만들었다. 태양이 망가져서 지구의 생존한 것들을 죽음으로 몰고 가는 설정에 빠져든다. 근래에는 세계의 종말, 아포칼립스가 도래한 이야기가 영화, 드라마. 소설 전반에 걸쳐 있다. 사람들은 왜 이렇게 지구가 멸망하는 것을 다루고 그런 이야기에 열광하는 걸까. 아포칼립스가 도래하면 나만 죽는 게 아니라 모두가 똑같이 죽기 때문에 삶이 힘들어서 이런 멸망하는 이야기에 빠져드는 것일까.


지금은 바다의 중심이 되는 빙하도 많이 녹아서 해수면이 조금씩 오르는데 2100년가에는 해수면이 1미터가 오른다는 연구결과가 있다. 그렇게 되면 쓰나미가 밀려오는데 천천히 전조가 있게 오는 것이 아니라 한 순간에 덮치는데 일본은 많은 땅덩어리가 바다에 잠긴다고 한다. 한반도도 뭐 어떻게 된다는 그런 과학적인 연구 이야기가 있다. 쨍쨍해야 할 올해 7월은 6월보다 시원했고 매미소리 또한 듣지 못했다. 비가 오면 차들이 잠기고 사람들이 실종되거나 죽기까지 한다. 비가 많이 왔다고 해서 이 정도로 사람들이 우왕좌왕하리라고는 이전에는 몰랐었다. 자연도 미쳐 가는데 사람들은 나날이 더 난리고 더 미쳐간다. 근래에는 사람이 하는 일을 로봇이 대신하는 점포가 생겨나기 시작했다. 사람들은 점점 내몰린다. 코로나 때문에 수영장에서는 침을 뱉으면 안 된다지만 일부러 침을 뱉는 미친놈도 있다. 이러다간 우리는 죽는 날까지는 별 탈이 없겠지만 우리 아이들은 말 그래도 매일이 생존이 될 가망이 높다. 그 사이에서 범죄가 필수가 되기도 하고 평범함이라는 것이 멀어질 수도 있다. 영화들은 여봐란듯이 지구가 조금씩 멸망해가는 이야기를 만들어내고 있다. 그것도 과학적으로 바짝 접근해서 만들어 낸다. 가을이 오고 겨울이면 독감과 코로나가 쌍으로 온다는데 현실인지, 영화 속에서 살아가는지 애매한 지금이다.]


https://youtu.be/meaXftZ_vpI


이 영화를 보며 든 생각은 이렇게 죽는 것이 그렇게 나쁘지 않다는 생각이 들었다. 곧 넷플릭스에서 할 미드 ‘프럼’이라는 미지의 공포 스릴러 시리즈에는 한 마을이 나오고 그 마을에 들어가면 빠져나오지 못하게 되어 그 속에서 공동체를 이루며 사는 사람들이 있다. 휴대폰도 터지지 않고 그야말로 이 세계, 완전히 다른 세계에 갇히게 된다. 스티븐 킹의 소설을 떠올리면 된다. 그런데 밤이 되면 사람의 몸을 파 먹는 괴물들이 출몰한다. 괴물들은 인간의 모습을 하고 문을 열어 달라고 사람들을 현혹한다. 도시에서 생활하며 캠핑 같은 것을 가다가 이런 마을에 고립되어 있기에 사람들은 정신이 약해져 있다.


그런 사람들의 마음속을 파고 들어간다. 예쁜 여자, 보고 싶은 할머니 같은 인물로 사람들을 현혹해서 문을 열어 주는 순간 괴물의 모습이 되어 신체를 훼손한다. 아주 고통스럽게 죽인다. 이 시리즈에는 아이들도 가차 없이 신체가 훼손된다. 이 마을에 아이들이 없는 이유가 바로 아이들은 쉽게 괴물에게 현혹되기 때문이다. 미드 프럼에서는 사람들이 괴물에게서 벗어나고자 고군분투한다. 오로지 오늘 밤을 견디는 것이 일상이 된다. 마을을 빠져나가지 못하는 이유는 아무리 차를 몰고 마을 밖으로 가봐야 다시 마을 안으로 들어오기 때문이다. 그러니 오직 오늘 밤을 괴물에게서 살아남는 것이 삶이 된다. 너무하다 싶을 정도로 고통스럽게 죽기 때문에.


그런데 태양빛을 보고 아무런 고통 없이 죽는다면 오히려 그렇게 죽는 방법이 작은 벙커 안에서 많은 사람들이 질병에 걸려가며 똥오줌도 제대로 못 보며 갇혀있다가 서로 죽이려 들고 욕을 하고 강간을 하려고 하는 삶보다 더 낫지 않을까 싶다. 태양에서 살아남은 인간들은 질병으로 아파하면서 좁은 벙커 속에서 아무것도 하지 못하고 더러운 냄새에 그저 살아있는 좀비 같은 신세일뿐이다. 알랭 드롱은 아들에게 목숨 연명은 하지 말라고 했다. 그렇게 살아있어 봐야 살아 있되 죽은 것과 마찬가지다. 고통 없이 죽음을 맞이하는 이가 이 세상에 몇이나 있을까. 인간은 어떤 식으로든 죽기 직전 고통으로 아파할지도 모른다. 그건 늙어서 그럴지도 모르고, 질병이나 불치병으로 그럴지도 모른다. 또는 인간관계에 지친 사람들은 정신적으로 뇌를 칼로 썰어대는 것처럼 고통스러워할지도 모른다.

 

이 영화는 비행기 안에서 기름이 떨어져 저 먼 하늘에서 태양이 서서히 일출할 기미가 오고, 다른 비행장에서 기름을 공수하는 과정이 아주 현실적으로 그려졌다. 조마조마하며 볼 맛이라는 것이 났다. 그러나 살아야 할 이유가 있다면 모를까. 단지 죽는 것에서 피하려고 이렇게 고생을 해야 한다면 잘 모르겠다. 왜냐하면 고통 없이 죽음을 맞이하니까. 이 세상에 고통 없이 죽음을 맞이하는 사람은 그렇게 많지 않다. 이 영화 속 세계에서는 그저 태양을 보는 순간 그대로 쓰러져 고통 없이 죽어버리기 때문이다. 일말의 어떤 기척도 보이지 않는다. 만약 누워서 태양을 본다면 쓰러질 필요도 없다. 덱체어에 건방진 자세로 누워 태양을 보며 그대로 죽음을 맞이하는 것도 나쁘지 않다.

 

인간은 태어나는 순간 죽음으로 가는 항해를 한다. 죽기 위해 태어난 것이 인간이다. 그러니 삶에서 죽음을 배제할 수는 없다. 그럼에도 우리는, 나는 내 삶에서 죽음이라는 것을 멀리하고 있다. 오늘 죽어도 이상하지 않는 삶을 사는 것이 인간이다. 친구가 죽었을 때 많은 생각들이 오고 갔다. 거센 물살에 휩쓸려 물에 빠졌으니까 물 밖으로 나오려고 온갖 힘을 썼을 것이다. 폐에 물이차고 얼마나 놀라고 고통스러웠을까. 세월호 속에서 공기가 빠져나가 점점 조여 오는 공포에 죽음으로 갔을 아이들도 얼마나 고통스러웠을까. 잘 모르지만 죽음이라는 걸 잘 받아들이려면 오늘을 그저 열심히 사는 수밖에 없다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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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상수 월드 안에서 가장 완벽한 영화가 이 영화 ‘그 후’가 아닌가 싶다. 이 비겁한 찌질함과 속물적인 찌질함과 회피성 찌질함과 한결같은 여자관과 그런 여자를 대하는 찌질함과 그런 찌질한 주인공을 몰아 부치는 부인 역시 찌질하다. 

그 후에 등장하는 인물은 모두가 찌질하다. 주인공도 그 주인공을 사랑하는 불륜녀도, 그리고 그 불륜녀와 닮은 새로운 직원도, 그런 남편을 의심하는 부인도 찌질하게 그려냄으로 인간은 모두가 공평하고 동등하다고 말하는 것 같다. 인간이 원래 다 그래, 인간이 더 배우고 덜 배우고의 차이는 있을지 모르나 본성의 차이는 없단 말이지.라고 대 놓고 영화는 영화적 언어로 잘 도 말한다.

내가 나쓰메 소세키의 ‘그 후’를 읽어보지 못해서 어떻다 말할 수는 없지만 이 영화가 나쓰메 소세키의 소설과 비교를 하던데 정말 그럴만한가. 소설 속 다이스케가 사랑을 통해 자아를 깨달고 난 그 후의 이야기라면 영화 ‘그 후’에서는 그전과 그 후의 찌질한 사랑에 대해서 말하는 것인가. 

권해효는 바람을 피는 지식인의 찌질함의 극치를 보여준다. 김민희와 술을 마실 때 술이 취해서 테이블 위에 손목시계를 풀어 놓은 것을 보면서 이런 디테일을 살리다니, 찌질한 남자들이 술자리에서 찌질한 이야기를 진지하게 할 때 꼭 손목시계를 풀어서 놓곤 하는데, 풀어 놓은 손목시계 만으로도 그걸 해냈다. 

그러면서 출판사에 찾아와서 생난리를 부리는 부인까지 같이 찌질하게 묶어가면서, 부인이 주인공에게 그런다. 그래 너 바람핀 그년이 (김민희를 가리키며) 이 여자보다 예뻐?라고 한다. 이 찌질함이 오고가는 대사 속에서도 김민희는 반짝이게 표현한다. 홍상수는 정말 자신의 내면 밑바닥까지 내장 꺼내듯 꺼내서 영화로 만들어 버리는 세계 유일한 감독이다. 

자신을 걸나 비판하고 욕하면서도 그 안에서 상대방도 자신과 같은 찌질함으로 엮어 가고 동시에 연인에 대한 찬사는 아끼지 않는다. 아이그 씨바 라고 욕을 하면서도 보는 건 재미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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