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화영’ 이 영화는 아주 불편하다. 이 영화에 나오는 엄청난 폭력에 눈을 돌리고 싶고 귀를 막고 싶다. 하지만 그러면 안 되는 영화다. 이 영화는 학생이라는 단어보다 청소년이라는 단어가 굳이 말하자면 억지로 맞는 것 같다. 그렇지만 학생들은 봐서는 안 되는 영화, 볼 수 없는 영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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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화영 이 영화를 보면 자연스럽게 김영하의 단편소설 ‘비상구’가 따라온다. 자기들만의 언어를 내뱉고 자기들만의 질서를 만들어 작은방에서 솜뭉치처럼 뭉쳐서 생존해 가는 아이들. 어른들이 봐도 모른척하는 세계의 아이들. 이전 영화로는 봉태규의 데뷔작 ‘눈물’이 있었다. 당시 봉태규는 정말 양아치를 데려다 몰래 촬영을 했나 싶을 정도였다. 바로 박화영의 박화영이 그렇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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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화영의 생존방식은 스스로 익히게 되고 그 방법은 왜곡된 방식이다. 박화영을 가장 잘 나타내는 대사 ‘니들은 나 없으면 어쩔 뻔 봤냐’라는 말은 박화영의 외로움을 다른 말로 드러내는 대사인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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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화영의 외로움은 자신의 엄마로부터 나타난 것으로 외로움을 잊기 위해, 외로움을 이기기 위해 지옥 같은 정글에서 자신만의 방식으로 발버둥을 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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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는 우리 없을 때 뭐 하냐는 은미정의 말에 그냥 아무것도 하지 않고 기다린다고 한다. 박화영의 외로움은 인간의 가장 밑바닥의 것, 가장 근원적인 것이다. 박화영은 세상의 엄마처럼 무분별한 사랑을 주고 희생을 자처해서 폭력을 ‘당해야’하는 곳에는 망설임 없이 달려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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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작 아이들에게 화는 내지 못하고 비웃음 뒤에서 마저 그 아이들에게 의존을 하는 박화영은 슬픔이다. 박화영은 그 어떤 사람들보다 무서운 욕을 하고 폭력적인 언어를 내뱉지만 그 말을 할 때마다 박화영이 슬퍼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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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멍한 눈빛으로 표정 없이 치킨을 먹을 때, 그것이 유일하게 자신이 혼자 누릴 수 있는 것임을 알았을 때 박화영의 치킨을 먹는 이 장면은 더없이 슬프게만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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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영화를 보면서 왜! 아무도! 그 누구도 박화영을 끌어안아주지 못했나! 선생, 엄마, 경찰 들은 왜 어째서 박화영을 내치기만 했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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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화영은 비정상적이다. 너무나 부자연스럽고 이해되지 않는 행동, 생각, 사고를 하는데 영화가 박화영을 이렇게 대하는 태도가 온당하게 다가온다. 그것은 박화영은 그렇게밖에 될 수 없었기 때문이다. 박화영은 아직 학생, 아이이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상식에서 너무나 동떨어진 박화영이 온당하게 받아들여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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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화영은 출소 후에도 엄마로서 살아간다. 그리고 데리고 있는 아이들이 또다시 박화영을 깔보고 비난하며 비웃음치고 상처를 줄 것이라는 것을 우리는 알게 된다. 그 순간 박화영은 더없이 슬프고 안타깝게 느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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니들은 나 없으면 어쩔 뻔 봤냐, 상처로 똘똘 뭉친 아이. 하지만 상처가 났을 때 그것이 상처인지도 모르고 다시 상처를 받는 아이. 그래서 상처를 또 다른 상처로 덮는 아이 박화영의 이야기, 영화 박화영이다 

 

 

#영화#박화영#한국영화

#이말도안되게살아가는세계가#우리가살아가는세계에같이껴있다는것

#니들은나없으면어쩔뻔봤냐

#김가희는상도타고살도빼고그랬다한다

 

 

 

리뷰에 감독님께서 코멘트를 달아 주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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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띠 신부, 이 영화는 코미디 영화다. 말띠 신부는 66년 1월 1일에 개봉을 했다고 한다. 맨발의 청춘 이후 대한민국의 대스타가 되어 버린 신성일과 엄앵란을 극중 부부로 만들어 주연을 하는데, 황정순의 젊은 시절도 볼 수 있고 남미리, 최지희, 윤일봉의 아주 젊은 모습을 볼 수 있는 것 역시 고전영화를 보는 재미라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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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영화는 당시 봉건주의적인 한국 문화, 문화 중에 전통보다는 악습을 꼬집는 영화라는 생각이 든다. 금기를 깨고 있다. 건드려서는 안 되는 것을 타파해버리는 것 역시 영화의 훌륭한 역할이라고 생각한다. 윤일봉과 신성일은 당시 전업주부로 나온다. 앞치마를 두르고 있는 윤일봉의 모습이 이채롭다. 선 굵은 역의 윤일봉이 앞치마를 두르고 어떻게든 예쁜 부인을 덮치려고 하는데 아내는 임신 중이라 안 된다고 한다. 그에 윤일봉은 남편인데 왜 아내도 못 덮치냐며 삐진다. 그건 엄앵란의 남편인 신성일도 그런다. 또 절개를 지켜야 하는 것을 덕목으로 삼고 있던 한국 여인의 표본이었던 사감 선생인 황정순은 그동안 순결을 지키며 살아온 것이 아까워 결혼과 동시에 남편과 섹스를 마음껏 하고 싶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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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의 대략적인 줄거리는 팔자가 세다는 42년 생의 말띠 동창생들, 엄앵란, 최지희, 남미리, 방성자의 이야기를 코믹하게 그리고 있다. 엄앵란과 남미리는 신성일과 윤일봉과 결혼을 해서 행복하게 지내지만 거짓 임신으로 남편과의 성관계를 거부하고 있는데, 이유는 다음 해가 60년에 한번씩 돌아온다는 백마 띠 해라 행여 팔자가 드센 딸이라도 낳을까 걱정해서이다. 최지희는 남자들 틈에서 남자들을 잘 다루면서 생활을 한다. 이 영화의 이야기가 뒤죽박죽 할 것 같은데 김희갑의 해설로 영화가 진행되기 때문에 개연성이 있게 전개되는 기분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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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속에서 우리나라 최초의 밴드 키보이스가 나온다. 이때부터 한국은 음악이 비약적으로 발전하지 않았나 싶다. 전쟁을 치른 나라들을 보면 미국이나 독일 같은 강대국이 개입을 함으로 해서 그 나라들의 문화가 전쟁국가에 흘러들어 간다. 미팔군에서 공연을 하던 윤복희, 패티 김, 신중현이 나왔고 이후 세시봉이 생기면서 조영남, 송창식, 윤형주 같은 미소년 스타일의 가수가 나타났다. 이때까지는 대체로 외국의 곡을 번안해서 불렀는데 이장희, 한대수 같은 가수가 등장하면서, 김민기 같은 가수가 나타나면서 한글로 된 시에 곡을 입히는 작업들이 늘어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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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띠 신부 속 최지희의 모습은 독보적이다. 사람들과 춤을 추는 장면은 뮤지컬 영화를 보는 것 같다. 이 장면은 수많은 리메이크 장면을 탄생시킨 존 트라볼타의 토요일 밤의 열기를 연상케 한다. 말띠 신부가 66년이고 토요일 밤의 열기가 77년이니까 얼마나 앞선 것인가. 60년대에도 이렇게 뮤지컬 형식의 영화가 있었는데 근래의 한국 영화에서는 찾아볼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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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장 근래의 영화 속 등장인물들이 다 같이 노래를 부르는 장면은 ‘전국노래자랑’에서였다. 전국노래자랑은 꽤 괜찮은 영화였다. 재미도 있었고 영화가 갖추어야 할 덕목도 가지고 있었다고 나는 생각이 들었다. 김인권과 류현경 역시 연기도 좋았고. 류현경은 참 연기를 잘 하는 거 같은데, 뒤늦게 뜨는 배우가 있는데 그렇게 되지 않을까 생각한다. 그 영화가 12년도 영화였으니 인도영화처럼 영화 속에 등장인물들이 노래를 부르며 춤을 추는 장면이 들어가는 한국 영화는 없다고 봐야 한다. 500일의 썸머에서도 그런 장면은 영화 속에 잘 녹아서 괜찮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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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지희는 밀착된 춤추던 복장으로 허장강의 사무실에 들어가는데 사무실에 일하는 사람들도 놀란다. 하지만 최지희는 여봐란듯이 허장강의 방에 들어가 수표를 받아내는데, 이때에도 네일 손질을 하고 스킨톤의 매니큐어를 했다. 마광수 교수가 젊은 시절 이런 영화를 보면서 손톱에 강한 페티시즘을 강하게 느끼지 않았을까. 당시에는 네일 손질하는 곳이 따로 없었을 텐데 주로 집에서 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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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는 악습의 금기를 깨는 장면과 캐릭터가 등장하지만 결국 백마 띠의 드센 딸이 태어날까봐,라고 생각하는 관습에 얽메여 있다. 아홉수라는 관습은 아직까지 내려오고 있고 점집은 없어지지 않고 망하지 않는다는 말처럼, 요즘도 재미든, 생사가 걸린 문제든, 젊은 사람들은 타로를 보러, 어머니들은 점을 보러 간다. 미국이라고 다르지 않다. 아마 우리나라보다 미신을 더 믿을 것이다. 더 이상한 점집이 우리나라보다 더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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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속에는 속옷만 입은 장면이 자주 나오고 성관계 바로 직전까지 가는 코믹한 장면이 많이 나온다. 총알 탄 사나이의 이전 버전이라고 할까. 꽤 야한 장면이 많이 나오는데 코믹하게 넘어가는, 그런 영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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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구가 끝장나는 날, 이 영화는 병맛인 영화다. 하지만 퀄리티가 높은 병맛인 영화다. 무엇보다 사이먼 페그와 닉 프로스트 그리고 에드가 라이트 감독의 조합으로 ‘황당한 새벽의 저주’ ‘뜨거운 녀석들’이후 사람들은 이들의 조합을 기다리고 또 기다리고 계속 기다렸다. 그리하여 에드가 라이트는 이 병맛의 조합으로 이 병맛의 영화를 만들어냈다

앞선 영화가 좀비였다면 이번에는 외계인이다. 이들의 구질구질한 대화 속에는 비트는 대사들이 많다. 풍자와 해학이 가득한 영국의 코미디의 진수를 볼 수 있다. 요컨대 외계인들이 스타벅스를 만들어 지구를 정복하려 한다거나 하는 대사들이 가득하다

아무런 정보 없이 보면 그저 어릴 때 살던 동네로 가는 내용으로 볼 수 있다가 앗 하며 반전을 맞이하게 된다. 고향으로 돌아온 사이먼 페그와 닉 프로스트와 친구들은 늘, 언제나, 주야장천, 주구장창 이 병맛같은 퍼브로 간다. 영국 하면 퍼브니까. 거기 화장실에서 외계인들과 마주치게 되고 외계인들은 죽지도 않고 서서히 인간들을 아나힐레이션으로 만들려고 하는 음모에 휘말리고 마지막에는 외계인들이 이 주인공 녀석들과 대화를 섞기 싫어서 지구를 멸망시키고 마는 내용이다. 뜬금없는 반전과 뜬금없는 대화와 뜬금없이 시도 때도 없이 나오는데 그래서 에드가 라이트의 팬이라면 취향을 저격 당하게 된다

에드가 라이트의 베이비 드라이버는 거의 완벽에 가까운 영화였다. 밀고 당기고의 강약과 잘 익은 떡과 같은 질감, 섹시하고 큐티하며 빛과 그늘을 잘 다뤘다. 군더더기 없고 영화 속 노래가 사람을 미치게 했다. 캐릭터는 팔딱이는 물고기처럼 살아있었고, 모든 리듬은 액션이 되었다. 쉴 틈 없는 음악, 정말 최고였다고 말하겠다. 에드가 라이트가 각본, 기획, 감독을 도맡아 하면 다 재미있는 것 같다. 에드가 라이트의 코르네토 3부작 중 ‘지구가 끝장나는 날’을 최고로 뽑는 사람들이 많다. 병맛인 소식이지만 로자먼드 파이크는 명예부산시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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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포가는 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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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대체 한국 영화는 왜 미학적으로 퇴보하는가. 대사나 장면이나 씬 사이의 여백이 많은 것들을 설명하는 영화. 인물에서 느껴지는 페이소스가 대단하다. 피고 지고하는 인생사가 온전히 온전히 묘사된다. 마음 깊이 슬퍼지는 장면들이 너무나 많다. 훌륭한 영화 - hdm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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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dmi라는 아이디를 쓰는 사람의 삼포 가는 길의 댓글이다. 딱 영화의 감상을 잘 요약해 놓아서 들고 왔다. 황석영의 소설을 오래전에 읽었는데 후에 영화를 봤지만 설원과 문숙의 활달한 모습만 기억에 있어서 다시 찾아본 영화 ‘삼포 가는 길’은 명작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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웃으며 소리를 지르고 거칠게만 살아와서 거침없이 욕을 하고 미친 것처럼 만개한 꽃과 같은 백화를 보면 마음 깊이 슬프다. 이 영화는 그런 힘을 지니고 있다. 백화에게는 특질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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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들린 것처럼 문숙은 연기를 한다. 세련된 대사에 세련된 영상이다. 이야기를 빛나게 하는 건 문숙이다. 이 영화의 문숙을 보고 허스토리의 문숙을 보면 이상하게 슬프고 눈물이 난다. 왜 그런지는 잘 설명할 수가 없다. 잘 설명할 수 없는 것은 언제나 그렇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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뭐 화냥년? 그래 난 화냥년이다. 화냥년이야. 더러운 년이라구. 더럽고 썩고 썩은 년이라고. 난 너희들 사내놈들한테 살이 빠지도록 팔고 사는 년이라고. 그게 왜 내 잘못이냐고, 왜. 라고 울부짖는 백화의 모습에서 우리는 빠져들고 같이 무너지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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익살스러운 대사도 있다. 그 대사를 잘 들어보면 백화의 애이불비를 느낄 수 있다. 

야 너 몇 살 쳐 자셨냐

흥, 화류계에서 누가 나이 따져서 언니 동생하는 줄 아나, 마신 술잔하고 사내 숫자로 셈하는 거야, 요 병신아.

농땀, 미얀미얀 재송해용. (치마를 들춰 올리며) 어때 마음에 들어? 

헤헤 지랄로. 같은 대사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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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란을 주는 장면은 참 촌스럽지만 슬픈 장면이라 백화가 받은 삶은 계란은 이 세상에서 제일 슬픈 삶은 계란이다. 백화는 삶은 계란을 먹으며 꿋꿋하고 거칠게 앞으로도 살아갈 것이다. 욕쟁이 백화와 풋풋한 점순의 모습을 동시에 지닌 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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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포 가는 길은 춥고 고되기만 하다. 발가락은 눈밭에 빠지는 바람에 떨어져 나갈 것 같지만 함께 삼포로 가는 일행들이 있어 참고 견딜 수 있다. 하지만 그토록 바라던 고향인 삼포는 이미 사람이 살 수 있는 안온한 곳이 아니고 낯설기만 하고, 또다시 뜨내기의 길만이 앞에 놓일 뿐이다. 마치 하루키의 주인공들을 보는 것 같다. 지금 이렇게 하는 일은 이미 정해져 있는 것처럼. 일상에서 밀려나버린 주인공은 나의 모습인 동시에 내 주변의 모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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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의 휴일’이라는 이 영화는 1956년도 영화다. 영화가 시작하고 내레이션이 나온다. 내레이션과 배우가 말을 주고받는 영화 작법으로 시작하여, 서울의 거리가 왜 이렇게 한산할까, 이상야릇한 노릇이군, 어허 이건 무슨 일일까.라며 내레이션이 나오다가 아, 그러고 보니 오늘이 서울의 휴일이라면서 영화는 포문을 연다

50년대의 영화는 60년대의 영화와는 또 달라서 목소리 톤이 거의 이북 사투리에 가깝다. 개인적으로 오래된 한국 영화를 여러 편 본 편이라 지난 배우들의 얼굴을 꽤 알고 있지만 50년대 영화 속 배우들의 모습은 생소하다

이 영화의 줄거리는 신문사 사회부 기자와 뷔너스 산부인과 의사인 부부, 노능걸(기자는 휴일이 따로 없다)과 양미희가 서로 바빠서 둘 만의 시간을 갖지 못하다가 모처럼 둘 만이 시간이 되는 서울의 휴일에 같이 보내려다가 남편 노능걸이 전화 한 통을 받고 부인인 양미희에게 한 시간만 기다리라며 나가서 후암동 살인 사건에 휘말려 쫓기면서 부인에게 돌아오는 시간을 못 지키고 양미희는 친구들의 말과 신문사에 전화를 해도 오늘 안 나왔다는 말을 듣고 남편은 바람을 핀다고 의심을 하고, 남편은 취재를 갔다가 살인범과 격투 끝에 검거하고, 다른 곳에서 살인범의 아내가 출산을 하는 것을 도와준 양미희는 그곳에서 남편을 만나고 남편을 이해 하게 된다. 이 영화는 오전 8시부터 오후 8시까지의 서울의 신 세대, 신 여성과 신 남성인 부부의 이야기다

이 영화에는 서스펜스, 미스터리, 휴먼, 가족애, 불륜, 정신질환, 배신, 리벤지 모든 것을 영화 속에서 녹아내려고 했고 그리고 잘 했다. 영화는 무엇보다 세련됐다

이 영화 ‘서울의 휴일’은 ‘로마의 휴일’의 스타일을 잘 따라 하고 있다. 주인공으로 나오는 신여성의 모습인 양미희의 헤어스타일은 오드리 헵번을 따라 했고 입고 있는 세련된 양장 스타일 역시 그렇다

영화 속에서는 대화 역시 신시대에 맞게끔 영어를 섞어가며 하고 대사는 소설처럼 화려한 문체를 구사한다. 희한한 운명의 희롱이로군 짓밟힌 인생과 생명의 탄생. 같은 대사가 이 영화 속에는 널려 있다. 그리고 영화 시작 초반 두 사람의 대화는 이렇다

우리 둘만의 시간을 가져본 적 있어요?

그러니까 이렇게 엔조이 하고 있는 거잖소.

석 달 만에 우리 둘만의 시간인데 당신은 너무 에고이스트에요.

요즘의 여성들은 애정의 진리를 통 모르는군.

이러다가 오늘 플랜이 다 틀어지고 말 거예요.

그렇게 빈정만 대시면 전 동무들하고 놀러 갈 테니까 그렇게 아세효

친구들을 동무들이라 칭하는 것도, 말끝이 올라가는 이북 사투리에 요, 가 효,처럼 들린다. 

무엇보다 이 영화는 당시에 누릴 수 없는 사람들의 동경이 되는 생활과 배경, 그리고 건물과 술을 영상 속에 가득 집어넣었다. 당시에는 아주 세련되게 만든 영화다

양미희 뒤로 보이는 건물은 우리나라 최초의 호텔인 반도 호텔이다. 계단이 밖으로 나와 있는 것이 보인다. 집 안 내부의 모습도 지금 우리집 보다 좋다. 거실과 침실도 크고 벽지도 세련됐다. 분명 로마의 휴일이나 그레이스 캘리가 나오는 영화의 배경을 답습했다. 당시에는 엄청난 돈을 들여 영화 속 세트를 만들었던 것이다. 창문의 커튼과 책장의 모습도 세련됐다. 다른 장면을 보면 책장 속의 책은 아주 오래된 것이다

신문을 보면 한글보다는 한문이 많은 것을 알 수 있다. 50년대에는 한글보다 한문으로 글을 읽는 것이 어쩌면 더 수월했을 것이다

이 영화 이전에는 시도하지 않았던 키스 장면도 있다. 두 사람의 대화는 소설책을 읽는 듯 흘러가다가 두 사람은 포개져서 키스를 한다. 아마 극장 밖에 이런 장면을 볼 수 없기에 사람들은, 즉 서울에 있는 사람들은(지방에는 극장도 없었을뿐더러 있다 해도 상영이 되지 않았을 것이다) 기를 쓰고 보러 가지 않았을까

산부인과의 모습도 세련됐다. 의사 가운을 입은 주인공 양미희의 모습이다

후암동 살인사건의 제보를 받는 모습이다. 전화기의 모습을 보면 세트에 맞추기 위해 소품을 구하려 고생을 한 듯 보인다. 외국에서 들여왔거나 그랬을 것이다. 뒤의 페치카의 모습도 좋다

서울의 당시 시내 모습도 볼 수 있는데 당시 사람들은 구경도 해보지 못할 최초의 자동차가 이 영화 속에는 오드리 헵번의 로마의 휴일만큼이나 많이 나온다

 

 

이 장면은 꽤 쇼킹한 장면이었다. 양미희의 회상 부분인데 한강에서 보트를 타는 장면을 회상하는 장면인데 이렇게 영상으로 옮겨놨다. 수영복의 모습 역시 당시 미국의 할리우드 영화 속의 배우들이 입던 세련된 수영복을 떠올리게 한다. 이런 수영복이 있다는 것조차 당시 사람들은 몰랐을 테니까

60년대의 로맨스 빠빠나 서울의 지붕 밑 같은, 이 영화보다 더 후에 만들어진 영화 속에도 막걸리를 마시는 장면이 대부분인데 이 영화에서는 맥주를 마시는 장면이 나온다. 맥주도 아마 최초로 등장하지 않았나 싶다. 크라운 맥주로 여성은 맥주를 마실 때 새끼손가락을 든다

당시에는 없었을, 빨대로 주스를 마시는 모습도 나온다. 이 한 장면으로 이 영화가 미술적으로 얼마나 세련되었는지 잘 보여준다. 테이블 보의 문형부터, 뒤로 보이는 건물과 신여성들도 보이는 옷들 역시 한껏 세련됐다. 이 장면에 두 명의 신 여성이 등장하는데 대화는 남편들을 까는 내용인데 바람을 피우는 남자를 난봉쟁이라 일컫는다

남편의 회사 동료들과 어울리는 장면이다. 남편의 동료들도 남편이 바람을 피우고 있는 것으로 알고 양미희를 데리고 기분을 풀어 주려고 맥주를 마시러 간다. 이런 장면은 요즘은 흔한 장면이나 봉건 제도가 강했던 50년대에서는 틀을 깨는 장면이다. 여자 혼자 남자 셋과 어울려 술을 마신다는 건 사실 요즘도 안 된다고 하는 사람들이 많을 것이다

굉장히 세련된 장면으로, 야외의 테라스에서 맥주를, 남녀가 마주 보며 맥주 잔을 부딪힌다. 역시 뒤로 반도호텔의 모습이 보인다

맥주를 마시기 전 남편의 친구들과 골프를 친다. 내기 골프에서 양미희가 져서 맥주를 마시러 가는 것이다. 사실 골프보다는 크로케에 가깝다. 공을 좁은 곳에서 이리저리 굴려 홀에 집어넣는다

캡처한 장면 되로 보이는 지붕에 서울시청의 모습이다. 그러니까 이 영화는 집어넣을 수 있는 한국의, 서울의 세련된 배경은 다 넣었다

이 장면에서 아주 멋진 대사가 나온다. 남편 친구들은 양미희에게 왜 술잔을 부딪히는지 아냐고 묻는다. 그러면서 대사가 나온다. 

말할 수도 없이 우리의 미각을 만족시키는 것은 두 말할 나위도 없습니다만은 이 황금색 액체는 우리의 시각도 만족시키고 이렇게 시원한 것이 제법 촉각도 만족시키죠. 야릇한 향기는 후각도 만족시킵니다만은 다만 한 가지 모자라는 청각은 요렇게 해서 사람의 오감을 만족시키는 거랍니다. 

이 이상 맥주 잔의 부딪힘을 잘 설명할 수 있는 말이 있을까

이 영화는 당시 사람들에게는 저 높은 동경의 대상이라 재미도 있지만 기록성을 지니는 아주 귀한 영화가 아닐까. 사람들은 로마의 휴일은 기억하지만 이렇게 좋은 한국 영화는 전혀 모르니까. 참고로 컬러로 된 복원 판도 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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곰곰생각하는발 2018-11-15 14:1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50년대, 60년대, 70년대 한국 영화를 볼 때마다 느끼는 것은 배우뿐만 아니라 서울 도시 풍경을 보여줄 때의 군중 모두 날씬하다는 것을 느끼게 됩니다. 그때는 모두다 탄수화물 위주의 식사였을 텐데 말이죠. 요즘은 탄수화물의 비만의 주범이라고 하던데... 옛날 한국 영화 보면 틀린 답일수도 있다는 생각이 듭니디ㅏ..

교관 2018-11-16 13:34   좋아요 0 | URL
요즘 탄수화물에는 이것저것 여러가지가 많이 들어 있나 봅니다. 저 시대에는 좋은 콜레스테롤 나쁜 콜레스테롤 같은 것도 따지지 않았을 것 같아요.